<이슈&인물> 상생경영 모범 함영준 오뚜기 회장

대통령도 엄지척 ‘미담 자판기’

[일요시사 취재1팀] 박호민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으로 주요 기업인들과 회동했다. 이번 회동이 눈길을 끈 것은 오뚜기 때문이다. 재계서열이 초청 명단에 포함된 기업보다 낮지만 오뚜기의 윤리경영이 재계에 미치는 ‘울림’이 크다는 청와대의 판단에서다. 연일 화제가 되고 있는 오뚜기의 과거와 현재를 조명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7, 28일 청와대 상춘재 앞에서 호프미팅을 열고 주요 기업인들과 대화를 나눴다. 27일과 28일에 걸쳐 총 15개 기업의 기업인들이 초청됐다. 이 자리에 참석한 중견기업은 오뚜기 함영준 회장이 유일했다.

“부담스럽다”
겸손한 모습

오뚜기가 호프미팅에 참석한 이유는 명쾌했다. 호프미팅을 주최하기 전인 지난 23일 청와대는 일정을 설명하며 “오뚜기는 상생협력, 일자리 창출 부문서 모범적 기업이라 초청해 격려하고자 했다”고 오뚜기에 대해 따로 언급했다.

미팅 당시에 청와대의 배려도 돋보였다. 문 대통령은 호프미팅에 도착해 “요즘 젊은 사람들은 오뚜기를 갓뚜기(god+오뚜기)로 부른다면서요”라고 덕담을 건넸다.

이어 “새 정부 경제정책에 부합하는 기업모델이니 노하우를 전수해달라”며 “기업에게 국민들 성원이 가장 큰 힘이니 앞으로 발전할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함 회장은 “(갑작스런 관심이) 부담스럽다”면서도 “더욱 열심히 하겠다. 감사하다”고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함 회장은 또 “중소기업과의 협력관계를 30년 이상 유지하며 서로 성장해왔다”며 “앞으로도 중소기업과의 협력을 계속 늘려나갈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상춘재 안으로 들어왔을 때에도 청와대의 오뚜기에 대한 배려가 엿보였다. 상춘재 안에선 자리 배정이 돼있었는데 함 회장은 문재인 대통령 오른쪽 자리에 앉은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옆자리에 착석했다.

계속 쏟아지는 
‘갓뚜기’ 신화

청와대 초청으로 오뚜기의 관심은 더욱 고조되는 양상이다. 사실 최근 오뚜기가 갓뚜기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식품회사로서의 확고한 자리를 굳히고 있는 기업이다. 

오뚜기는 다방면으로 사업 영역을 넓힌 다른 기업과는 달리 식품관련 사업에 집중해 50년 가까이 사업을 키워나가고 있다. 오뚜기의 주요 제품 가운데 업계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제품은 30가지가 넘는다. 그 배경에는 함태호 창업주와 장남 함 회장의 경영자로서 능력이 주효했다는 평이 나온다.

오뚜기는 1969년 함태호 창업주가 그 모체를 창립했다. 1971년 풍림 식품공업주식회사로 상호를 변경했으며, 1973년 오뚜기 식품공업주식회사로 상호를 다시 변경한 뒤 오뚜기란 상호를 지금까지 쓰고 있다.
 


함 회장은 풍림상사를 창립하면서 카레를 선보였다. 1971, 1972년 잇달아 선보인 케첩과 마요네즈는 함 회장이 국내 소비자에게 처음 소개한 제품이다.

청와대 15명 기업인 초청 간담회
중견기업은 오뚜기 함 회장 유일

오뚜기는 토종기업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케첩과 마요네즈 시장에서 입지를 굳혔다. 전세계 시장서 유통되고 있는 케첩의 절반 이상이 미국산 제품인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란 평가가 나온다. 

오뚜기는 하인즈, 유니레버 등 전 세계 1등 기업들에게 밀리지 않고 평균 시장 점유율 70~80%를 지켰다. 

실제로 세계 최대 케첩 회사인 미국의 하인즈가 80년에 국내에 진출했을 때는 오뚜기와 10년 넘게 점유율 전쟁을 치렀다. 함 회장은 “우리 시장을 지켜내야 한다는 책임감을 갖고 싸웠기 때문에 경쟁서 이길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서민 식품
48년 외길

라면 부분의 성장은 함 회장의 뚝심 때문으로 평가된다. 함 회장은 한양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오뚜기에 입사했으며, 2000년부터 오뚜기 사장으로 취임해 회사 경영을 이끌었으며, 2010년부터 회장직에 올라 회사를 대표하고 있다. 오뚜기는 1987년 라면회사로 이름을 알린 청보식품을 인수하면서 본격적으로 라면시장에 뛰어들었다. 

오뚜기 내부서도 라면 사업 진출에 이견이 갈렸다. 당시 라면업계는 신라면과 삼양라면이 양분하고 있던 시기였기 때문이었다. 사업진출 초기 오뚜기가 출시한 라면은 시장의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1988년 야심차게 준비한 진라면 역시 출시 초기 소비자의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이미 형성된 소비자의 입맛을 바꾸기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또한 연예인 마케팅 중심으로 시장을 공략했던 청보식품의 원천 기술 수준이 높지 않았던 것도 시장 진입을 어렵게 만든 요소였다. 
 

하지만 제품에 대한 연구에 집중한 결과 시장서 오뚜기라면이 갖는 위치는 점점 올라가기 시작해 마침내 양강 구도를 깼다. 2013년 하반기 삼양라면을 누르고 시장점유율 2위로 올라선 것. 

닐슨코리아 자료에 따르면 오뚜기는 2013년 14.1%의 점유율로 삼양라면을 따돌리고 업계 2위로 올라섰다. 이후 오뚜기는 농심의 아성에 도전하고 있다. 2014년 16.2%, 2015년 18.3%의 점유율로 꾸준한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농심은 2015년 기준 61.6%의 점유율을 기록할 정도로 업계서 압도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의 점유율을 살펴보면 오뚜기의 추격세가 매서운 양상이다. 농심은 지난해 53.8%의 점유율로 50%대로 주저앉았으나 오뚜기는 23%로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특히 지난 5월 기준 농심의 점유율이 49.4%로 낮아진 반면, 오뚜기의 25.2%까지 상승하면서 격차를 더욱 좁히고 있는 상황이다.

함 회장은 해외시장 공략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오뚜기는 러시아 이외에도 라면, 카레 등 주요 제품을 미국, 멕시코, 중국 등 전 세계 30여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오뚜기 마요네즈의 경우 러시아에선 모든 음식에 넣어 먹는 ‘만능 소스’로 불릴만큼 인기가 많은 것으로 전해진다. 

수출은 2011년 500억원을 넘어선 뒤 매년 10% 이상 늘어나고 있다. 유사 제품이 출시되고 있지만 오뚜기의 아성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회사측의 설명이다.

오뚜기의 꾸준함을 동력으로 삼아 성장세를 이어간 결과 외연확장에 성공하고 있는 상황이다. 오뚜기는 2007년 매출 1조를 돌파한 이후 9년만에 매출 2조원을 돌파했다. 조용하지만 무서운 성장세라는 평가가 가능한 대목이다.

이런 상황서 오뚜기의 선행까지 주목받으면서 회사의 이미지가 제고되고 있다. 오뚜기의 함 창업주 부자의 선행은 오랜 기간에 걸쳐 이뤄졌다. 지난해 함 창업주가 별세했는데 장례식장서 여느 기업총수의 빈소와는 다른 모습이 펼쳐졌다. 


나이 어린 조문객이 슬피 우는 모습이 목격된 것. 주인공은 15살(당시) 최경훈군, 15살 박하늘양, 11살 한재균 군 등이다. 이들은 함 회장부자의 심장병 어린이 후원으로 새 생명을 얻은 아이들이었다. 

실제 오뚜기는 꾸준히 심장병 어린이를 후원해 새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 함 창업주은 매년 태어나는 신생아 중 선천선 심장병 환자 0.8%가 돈이 없어 수술을 받지 못한다는 소식에 심장병 어린이 지원을 시작, 1992년부터 2016년까지 24년간 4242명에게 후원했다. 오뚜기도 함 창업주의 정신을 이어받아 사회공업 사업을 진행 중이다.

외국업체 공세 속
한국인 입맛 지켜

투명한 경영승계 역시 오뚜기의 이미지를 높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함 회장은 지난해 12월 선대회장인 고 함태호 명예회장으로부터 오뚜기 46만5543주와 계열사 조흥 지분을 상속받았다. 

이에 함 회장은 총 1500억 원에 이르는 상속세를 5년에 걸쳐 완납하기로 했다. 내야할 상속세였지만 각종 편법으로 경영권을 승계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재계서 시원하게 상속세를 내는 모습이 오뚜기를 ‘갓뚜기’로 만들었다.

비정규직 낮은 오뚜기의 기업 운영방식도 네티즌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오뚜기는 지난 3월 말 기준 전체 직원 3099명 가운데 기간제 근로자는 36명(비정규직 비중 1.16%) 수준이다. 오뚜기의 정규직 비율은 98.84% 수준이다. 

 

함 창업주가 과거 1800명의 시식사원을 모두 채용하며 “사람을 비정규직으로 쓰지 말라”고 생전에 말한 바 있다.

라면가격을 10년간 동결한 점도 양심 경영의 사례로 꼽히고 있다. 최근 식료품 물가가 급등하고 있는 가운데 대표적인 서민상품인 라면의 가격 인상을 10년째 보류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긍정적인 평가 일색이다.

최근에는 계열사 일감몰아주기로 지적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한쪽에선 일감몰아주기를 통한 수직계열화로 효율을 극대화해 라면값 동결을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기도 한다.

최근 이미지 제고 덕분에 주가는 연일 상승세다. 소비자들과 네티즌 사이서 긍정적인 평가가 나오면서 연초 65만원선이던 주가는 현재 80만원 대에서 움직이고 있다.

꾸준히 성장
해외서도 인정

업계 관계자는 “오뚜기의 경우 B2C(기업·소비자간 거래) 기업이기 때문에 소비자 사이서의 명성이 중요하다”며 “최근 오뚜기를 둘러싸고 있는 미담이 향후 오뚜기의 장기적인 성장동력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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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