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날씨가 더워질수록 야외 활동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흐드러지게 핀 꽃과 울창한 숲에 마음이 끌려 산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지난해 산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은 등산객을 불안에 떨게 만든다.
지난해 이맘 때 등산로서 각종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가장 먼저 발생한 사건이 광주 어등산 살인 사건이다. 김모(49)씨는 ‘묻지마 칼부림’으로 등산객을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혐의(살인)로 징역 18년 중형이 선고됐다.
산타는 계절
김씨는 지난 4월17일 오후 5시17분께 광주 광산구 서봉동 어등산 팔각정 인근서 등산객 이모(63)씨의 목 등을 흉기로 마구 찔러 숨지게 한 혐의로 구속됐다. 김씨는 통화 중이던 이모씨가 자신을 경찰에 신고한 것으로 오인해 시비를 걸었고, 말다툼 끝에 흉기를 휘두른 것으로 조사됐다.
범행 직후에도 산 정상인 동자봉 부근으로 달아나며 또다시 흉기로 하산 중이던 중년 남성을 위협했다.
김씨는 피해자와 일면식도 없었다. 전문기관 정신 감정 결과 김씨는 잔류성 정신분열병 증세를 나타내고 심신미약 상태를 보였다. 범행 후 “가족이 나를 정신병원에 보내려 했다. 생명의 위험을 느껴 나를 보호하기 위한 행동이었다”고 횡설수설하며 심한 과대망상 증세를 보이기도 했다.
김씨는 법정서도 “개인의 삶과 죽음, 우리의 진실이 달려 있고 나아가 세계 평화를 위해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한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이어 같은 해 5월 서울 노원구 상계동 수락산 등산로서 여성 A씨가 무참히 살해됐다. 이른바 ‘수락산 살인 사건’이다. 피고인 김모(62)씨는 지난 1월24일 항소심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김씨는 지난해 5월29일 오전 서울 노원구 상계동 수락산 등산로서 여성 A씨(당시 64세)를 흉기로 10여차례 찔러 숨지게 한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됐다. 김씨는 강도살인죄로 15년 형을 살고 지난해 1월 출소했지만 오랜 수감생활로 가족과 친구, 지인이 거의 없는 상태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생활보호 등 지원을 받지 못하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닥치자 누구든지 2명을 죽이고 본인도 스스로 삶을 마감하려 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1심 결심공판서 “살인범죄 누범기간에 범행을 저질렀고 잔혹하고 계획적으로 피해자를 살해했다”며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구형했다. 이어 “살인은 피해를 복구할 수 없는 중대한 범죄”라며 “피해자는 극도의 고통 속에 삶을 마감했고 유족들도 엄청난 고통을 겪었다”고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이후 한 달도 안 돼 사패산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해 6월7일 피의자 정모(45)씨는 사패산 4부 능선 바위 위에 홀로 쉬고 있던 A(55·여)씨에게 성폭행을 시도했다가 여의치 않자 폭행해 숨지게 한 뒤 1만5000원을 훔쳐 달아난 혐의로 재판서 중형이 선고됐다.
살인·성폭행·추행…등산이 무서워
주변 CCTV 부족 “여전히 사각지대”
A씨는 다음 날인 오전 7시 7분쯤 상의 일부와 하의가 벗겨진 채로 등산객에 의해 발견됐다. 정씨는 이틀 뒤 강원도 원주서 경찰에 전화를 걸어 자수했다. 정씨는 범행 직전까지 휴대전화로 음란 동영상을 수시로 검색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프로파일러가 정씨를 면담한 결과 정신과적 이상 소견은 나오지 않았다.
의정부지법 형사합의12부는 지난해 11월30일 성폭력특별법(강간 등 살인) 위반 혐의로 기소된 정씨에게 징역 25년을 선고했다. 또 40시간의 성폭력 치료강의 수강을 명령하고 정씨에 대한 정보를 10년간 공개·고지하도록 했다.
검찰이 청구한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명령은 기각됐다.
재판부는 “정씨는 피해자에게 극도의 고통과 공포감을 주고 유족에게도 평생 치유하기 어려운 정신적 고통을 줬다”며 “불특정 여성을 범행 대상으로 삼아 일반 국민에게까지 충격과 공포를 줬다”고 밝혔다.
이어 “그럼에도 유족에게 용서받기 위한 노력도 보이지 않았다”며 “상당 기간 사회와 격리하고 엄중한 책임을 물을 이유가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범행을 계획한 것은 아닌 점과 우발적 살인이며 범행 이후 자수한 점 등을 참작했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발생한 이 3건의 살인 사건 때문에 한 동안 등산객들은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관할 구청에서는 CCTV 설치 등 예방 대책에 힘썼다. 사패산을 관리하는 북한산 국립공원 도봉사무소는 사건 이후 등산로 초입에 ‘여성 혼자 산행하지 말라’는 내용의 현수막 등을 통해 안전산행 캠페인을 벌였다.
하지만 여전히 등산로는 범죄의 사각지대에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패산의 경우 등산로의 안전시스템이 진입로에 집중된 것이 문제라는 우려가 나온다. 수년간 일어난 살인 사건 대부분은 등산로서 떨어진 샛길서 발생했는데 진입로에 집중된 경고문은 효과가 작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 전국의 등산로에 설치된 CCTV가 여전히 500대 수준에 불과하다는 점도 문제가 되고 있다. 그마저도 서울에 70%가 몰려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혼자 다니면 위험
CCTV를 추가로 설치하려 해도 비용에 기술적인 문제가 발목을 잡고 있다. 등산로 갈림길마다 CCTV를 설치하려고 해도 전선을 연결해야 하는 문제가 있어 쉽지 않다. 전문가들은 감시체계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어두운 시간을 피하고 가급적 함께 산에 오르는 등 등산객 스스로 주의를 기울일 것을 조언한다. 지난 2011년부터 전국의 산에서 발생한 범죄는 매년 8000∼9000건. 이 가운데 강력범죄만 매년 100여건이 넘는다.
<cmp@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등산로 범죄 예방수칙
경찰에서는 안전한 등산을 위해 등산로 범죄 예방수칙을 홍보하고 있다.
첫째, 야간산행은 등산객이 적고 어두워 범죄의 표적이 될 수 있다. 가급적 야간산행은 지양하고, 등산객이 많은 낮 시간대 등산을 추천한다.
둘째, 호루라기를 소지하면 범죄나 조난 시 도움을 받기가 쉽다. 위급상황 시 호루라기를 불어 주변사람들에게 자신의 위치를 알리기 용이하다.
셋째, 정해진 등산로가 아니면 길을 잃거나 다칠 가능성이 높고, 긴급신고를 하더라도 수색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넷째, 2인 이상 산행은 긴급 상황에도 서로 도와줄 수 있어 안전하다. <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