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산업부 직원’ 의문의 청와대 파견 내막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7.04.10 09:50:41
  • 호수 110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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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전문가가 민정수석실에 왜?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MB(이명박)정부 해외자원개발사업은 실패했다. 자유한국당 최경환 의원은 당시 지식경제부장관을 지내며, 자원외교 ‘몸통’으로 지목됐다. 하지만 그는 빠져나갔다. <일요시사> 취재결과 최 의원이 감사원의 해외자원개발사업 감사 내용을 민정수석 고위관계자 A씨를 통해 알아봤으며, 민정수석실로 파견 간 산업통상자원부 직원들을 통해 이를 ‘크로스 체크’했다는 의혹이 안팎서 제기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뇌물 혐의로 구속됐다. 이 와중에 박근혜정권 2인자로 불렸던 최경환 의원도 중소기업진흥공단(이하 중진공) 특혜 채용 압력 의혹으로 불구속 기소됐다. 그는 박근혜정권서 기획재정부장관 겸 경제부총리를 지낸 실세 중 실세였다. 현 정권서 최 의원의 손길은 정·재계 전방위로 미쳤다는 시각이 다분하다.

두 정권서 실세
민정실에 입김?

특히 사정기관까지 그의 손길이 닿았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최 의원의 발목을 잡고 있는 중진공 특혜 채용 감사 무마다. 중진공 측은 최 의원의 전 인턴직원인 황모씨의 신입사원 채용 문제에 대한 감사원 감사를 무마하기 위해 최 의원(당시 부총리) 측과 긴밀히 협의했다.

또 이영애 중진공 감사(전 새누리당 의원)가 김영호 당시 감사원 사무총장을 노래방서 만나 ‘봐주기 감사’를 약속한 정황도 드러난 바 있다.

실제로 감사원은 최 의원의 채용비리를 적발하고도 감사 보고서에는 그의 이름을 적시하지 않고 ‘외부’라고만 표현했다. 이 때문에 감사원이 정권 실세인 최 의원을 감싸려 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지기도 했다.


황찬현 감사원 원장은 당시 “진술이 엇갈리는 상황서 단정적으로 (최 의원) 실명을 밝히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외부라고 한 것”라고 해명했다.

그런데 <일요시사> 취재결과 최 의원이 청와대 민정수석실과도 유착됐다는 정황을 포착했다. 민정수석실은 사정권력(검찰·국정원·국세청·감사원·금융감독원·공정거래위원회)의 정점에 있는 무소불위 권력이다.

복수의 사정기관과 정치권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최 의원이 민정수석 고위 관계자 A씨에게 자신과 관련된 민원을 알아봤다. 이와 관련된 민정수석실 관계자의 전언도 있다.

이 관계자는 “민정수석실 핵심 관계자 A씨는 청와대로 파견 나온 감사원 직원을 통해 해외자원개발사업 감사 내용을 보고받았으며, 진행 상황을 최 의원과 공유했다”고 말했다. 덧붙여 이 관계자는 “감사원 수뇌부도 인지하고 있었으며 협조했다”고 귀띔했다.

또 이 시기 해외자원개발사업 업무와 밀접한 관계가 있던 산업통상자원부 인사를 청와대 민정수석실로 파견 보내며 감사 내용을 ‘크로스 체크했다’는 말도 나왔다.
 

실제로 <일요시사> 취재결과 최태현 청와대 민정수석실 민원비서관은 산업부 출신으로 MB정부 시절 ‘에너지 통’이었던 것으로 확인했으며, 현재 청와대 민원비서관으로 파견 중이다. 최 비서관은 지경부 시절 최 의원이 장관으로 같이 근무한 바 있다.

자원부 소속 2명 ‘우병우 민정실’ 합류
업무와 전혀 관련 없는데 파견 이유는?


그는 해외자원개발사업이 한창이던 시절 에너지 부서의 핵심 요직을 거쳤다. 최 비서관은 ▲산업자원부 에너지자원정책본부 원자력산업팀 팀장(2007년2월~2008년2월) ▲지식경제부 에너지자원정책과 석유산업과장(2008년3월~2008년9월) ▲지식경제부 에너지자원정책과 과장(2008년9월 ~ 2009년11월) ▲국무총리실 산업정책관(2010년2월 ~ 2011년6월) ▲지식경제부 에너지자원실 원전산업정책관(2011년6월~2013년4월) 등을 지냈다.

이 부서들은 하나 같이 에너지 공기업 부채감축, 해외자원개발사업, 신재생에너지정책 수립 및 확산 보급을 맡고 있다. 국무총리실 산업정책관 역시 에너지자원 및 공무부문 에너지 절약 정책의 기획·관리를 한다. 산업부 내·외부에선 최 비서관울 우리나라 에너지 정책 기본 계획을 세운 에너지 전문가로 평가하고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최 비서관이 거친 보직이 해외자원개발사업과 관련이 없다”며 선을 그었다. 하지만 취재결과 최 비서관은 2008년 7월 ‘기업 에너지절감 생존 전략 세미나’서 해외자원개발사업에 관련된 강의를 했으며, 2012년 2월에는 국가 자원개발사업에 대한 협력 조율을 위해 동남아 국가들을 대상으로 출장도 갔다.

최 비서관의 민정수석실 파견도 상당히 이례적인 인사였다. 통상 민정수석실은 법조계나 정치권, 사정기관 출신들이 근무한다. 또 중앙부처 공무원을 기용한 사례가 극히 드문 일인 것으로 전해진다. 청와대는 이 인사에 대해 “규제개혁 차원의 민원 해결을 위해 정부부처의 업무 프로세스를 잘 이해하면서 공무원과 소통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아무도 못믿어
크로스 체크?

하지만 사정기관과 정치권 관계자들의 시각은 달랐다. 한 검찰 관계자는 “민정수석실은 업무의 특수성 때문에 법조계나 사정기관 출신이 대부분”이라며 “산업부 출신이 민정수석실에 파견 갔다는 얘기는 처음 들었으며,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법사위 출신 보좌관들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산업부 내부서도 이 인사에 대한 잡음이 많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심지어 이런 내용은 국무조정실서도 회자됐을 정도라고 한다.

 

최 비서관이 민정수석실로 파견 간 시점도 예사롭지 않다. 그는 2015년 2월 민원비서관으로 임명됐다. 그런데 이 때는 감사원서 해외자원개발사업과 관련된 대대적인 감사를 앞둔 시기였다. 감사원의 감사는 2015년 3월25일 시작됐으며, 그 해 11월6일 감사결과가 최종 확정됐다.

이 기간 동안 최 의원이 A씨를 통해 알아본 내용을 해외자원개발사업과 밀접한 관계가 있던 최 비서관에게 크로스 체크했다는 시각이 다분하다. 해외자원개발사업은 전문가가 아니면 접근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 양이 방대하고 복잡한 것으로 전해진다. 최 의원 입장서 해외자원개발사업을 잘 알 만한 ‘아군’이 바로 최 비서관인 셈이다.

청와대로 들어오는 해외자원개발사업 민원을 사전에 통제할 포석으로 최 비서관을 파견했다는 해석도 있다. 실제로 당시 청와대에는 에너지와 원전 사업 관련 민원이 끊이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막후에 최경환 존재설 부상
MB정권 자원외교 주도 찔려
감사원 감사 등 수시 체크?

왜 최 의원이 ‘해외자원개발사업에 대한 감사 내용을 민정수석실을 통해 알아봤을까’라는 의혹이 안팎에서 나올까. 당시는 박근혜정권의 국정 지지율이 정윤회 문건으로 집권 이례 최저치를 기록했던 시기. 반등의 계기를 삼기 위해 MB시절 문제 많던 사업들을 수사했다.


2015년 2월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적폐청산’을 외치며 포스코 비리, 4대강 비리, 해외자원개발사업 실패 수사 등에 사활을 걸었던 것도 이 맥락서 나왔다. 이 때문에 사실상 ‘MB수사’였으며, 이것을 주도한 곳이 청와대 민정수석실이었다는 게 정설이다.

그런데 코너에 몰린 사람은 정권 실세였던 최 의원이었다. 그는 MB정부 시절 지식경제부장관을 지냈으며, 수십조원의 손실을 빚은 해외자원개발사업 몸통으로 지목됐다. 감사원조차 ‘이명박정부가 해외자원개발사업에 실패했다’고 못 박았다.

정치권서도 해외자원개발사업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를 출범했다. 야당은 최 의원을 국정조사 청문회 증인으로 채택했지만 여당의 반대로 무산됐다. 또 감사원의 감사 보고에서도 최 의원을 비롯한 4인방(이명박 전 대통령, 이상득 전 의원,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윤상직 전 산업통상부장관)의 이름이 빠지면서 책임론에서 빠져 나갔다.

이런 정황들에 대해 감사원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인사는 “최 의원은 해외자원개발사업 책임서 자유로울 수 없다”며 “정권 실세였던 그는 모든 책임을 피해갔다. 결과적으로 본인의 민원들이 성공적으로 처리됐기 때문이 아니겠느냐”라고 반문했다.
 

이어 “검찰 수사와 감사원 감사는 다르다. 전산을 돌리다가 무엇이 ‘툭’ 걸려나올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한 번 대대적으로 시작된 감사는 중간에 조용히 덮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구조”라며 “그렇기 때문에 중진공 감사와 마찬가지로 해외자원개발 감사에서도 최 의원의 ‘이름’ 정도는 가려줄 수 있지 않았겠는가 하는 의혹을 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원외교 감사
보고 받았나?


반면 의혹의 당사자들은 하나같이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다. 산업부 측은 최 비서관 인사에 대해 최 의원과 “연관성 없다”며 선을 그었다. 최 의원에게 이 같은 해명을 듣기 위해 전화와 문자메시지를 남겼지만, 끝내 답변은 없었다. 다만 최 의원실 보좌관은 “의원님이 감사원 감사에 개입했으면 중진공 특혜 채용으로 고발당했겠느냐”며 “A씨가 누구한테 보고할 사람이 아니다. 말도 안 되는 의혹”이라고 일축했다.


<cmp@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산업부장관 비서관도 민정수석실 파견, 왜?

최우석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비서관도 민정수석실에 파견 근무한 것으로 확인된다. 그는 2014년 7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근무했다. 최 비서관은 민정비서관실 행정관으로 A씨와 함께 근무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민정비서관실은 고위 공직자 및 대통령 친인척에 대한 사정을 책임지는 자리다.

공교롭게도 최 비서관과 최경환 자유한국당 의원은 공통분모가 상당하다. 먼저 최 비서관 역시 자원외교와 인연이 있다. 그는 노무현정부 때 해외자원개발사업 실무자였다. 노무현정부 때부터 시작된 해외자원개발사업의 기틀을 닦은 인사 중 한 명인 것으로 보인다.

반면 MB정부 때는 자원외교와 무관한 부서에서 근무했다. 또 최 비서관은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출신으로 최 의원과 동문이다. 이 외에도 부산 동천고등학교 출신으로 최 의원과 같은 경상도 출신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 때문에 산업부 내부에서는 최 비서관이 ‘최 라인’이라는 말도 나왔다. <창>
 

<기사 속 기사> 산업부 인사과 관계자 일문일답
“직원 3명 더 나갔었다”

산업통상자원부 인사과 관계자는 최태현 청와대 민원비서관이 청와대 민정수석실 파견된 것에 대해 이례적인 인사가 아니라고 설명했다. 다음은 산업부 인사과 관계자와 일문일답이다.

- 산업부 출신들이 민정수석실에 간 이유는?
▲그동안 산업부에서 계속 민정수석실에 파견을 나갔다. 이번 정권에서는 이들 말고도 산업부 출신 세 사람이 민정수석실에서 근무한 전례가 있다. 최 비서관 밑으로 산업부 직원이 행정관으로 파견 가기도 했다. 이례적인 게 아니다.

- 정치권이나 사정기관에선 이례적인 인사라고 보는데?
▲민정수석실 업무는 다양하다. 주로 사정과 인사를 검증한다. 최 비서관은 민원업무를 담당하기 때문에 사정과 검증 업무는 하지 않는다. 최 비서관은 청와대로 들어오는 각종 민원을 담당했다. 당시 청와대 민원을 담당할 비서관을 뽑는다고 해서 여러 부처에서 파견 대상을 추천받아 뽑은 것이다.

-최 비서관은 해외자원개발 업무와 연관된 일을 한 것 같은데?
▲최 비서관은 해외자원개발 업무를 한 게 아니라 에너지 전문가다. 특히 오랫동안 원자력 쪽에 근무했다. 해외자원개발과는 관련 없는 것으로 안다. 일반 법 감정으로 어려운 분야가 에너지다. 그런 점을 감안해서 최 비서관이 민정수석실에 파견 간 것으로 알고 있다.

- 해외자원개발 때문에 갔나?
▲그렇게 볼 수는 없다. 해외자원개발 업무 한 사람이 민원 업무 부서에 갈 이유가 없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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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독주가 이어지고 있다. 당원의 명령인 개혁을 완수하기 위한 질주다. 당의 ‘아웃사이더’였던 그가 당을 휘어잡기까지 수많은 당원이 등을 밀어줬다. 비주류에서 주류 ‘인싸’로 자리 잡기 위한 정 대표의 다음 스텝이 주목된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행보가 매섭다. 윤석열정부에서 막힌 과제를 해치우는 동시에 공약이었던 각종 개혁을 빠르게 완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 대표는 같은 당 박찬대 의원보다 덜 알려졌다는 평이 나오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위원장으로서 보여준 ‘사이다’ 면모가 주목받으면서 강성 지지층의 환호를 받았다. 정청래가 걸어온 길 비주류였던 그가 당 대표가 되기까지의 여정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21대 국회 때는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 수석 최고위원을 지냈고, 22대 국회에선 법사위원장으로서 국민의힘에 호통을 치며 유튜브 단골 주제가 됐다. 당시 정 대표는 국민의힘이 반대하는 쟁점 법안을 밀어붙이고 상대편 의원과 대립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인기를 끌었다. 그동안 정 대표는 언론 대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유튜브 등 SNS를 통해 지지자와 직접 소통해 왔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보다 주목도가 떨어진다는 평이 나오지만 팬덤 정치에 최적화된 모습을 보여줬다. 정 대표는 최근에도 자신을 둘러싼 의혹과 청-명 프레임에 대해 직접 입장을 밝혔다. 그는 SNS에 ‘언론의 자유와 횡포 그리고 언론의 게으름의 관성’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조국 전 대표의 사면·복권을 놓고 일부 언론에서 ‘정청래 견제론’을 말한다.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근거 없는 주장일뿐더러 사실도 아니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바로 반박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어 “정청래는 김어준이 밀고, 박찬대는 이재명 대통령이 밀었다는 식의 가짜 뉴스가 이 논리의 출발”이라며 “어심이 명심을 이겼다는 황당한 주장, 그러니 정청래가 이재명 대통령과 싸울 것이란 가짜 뉴스에 속지 말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각을 세울 일이 1도 없다. 당정대가 한 몸처럼 움직여 반드시 이재명정부를 성공시킬 생각이 100(이다)”이라고 덧붙였다. 계파 갈등 프레임이 씌워질 조짐이 보이자 이를 사전에 차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 대표의 정치적 뿌리를 따지자면 친노(친 노무현)에 가깝다. 그러나 문재인 전 정부서는 친문(친 문재인),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는 친명(친 이재명)으로 분류되는 등 계파색이 비교적 옅은 편이다. 1989년 미국 대사관저 점거 농성을 주도한 혐의로 2년형을 선고받은 등 학생 운동권 출신이지만, 대표 운동권인 민주당 86 그룹과의 친분을 공개적으로 과시하지 않았다. 따라서 정 대표는 당의 주류보다 비주류에 가깝다는 게 여의도에 떠도는 평이다. 친문? 친명? 오히려 ‘계파 청산파’ “잘못된 586 문화 배운 97도 청산” 전당대회가 한참이던 당시 한 민주당 의원은 “사석에서 만난 정 의원은 아주 뚝심 있는 사람이었다. 박찬대 의원은 특유의 재치로 호감을 얻는 편이라면 정 의원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할 말은 제대로 하는 캐릭터”라며 “그래서 계파를 분류하기 어려운 것 같다. 나만의 길을 가는 것 같으면서도 한번 정한 길은 꺾지 않고 걷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오히려 정 대표는 ‘계파 청산’을 외치는 인물이다. 그는 당 대표 후보이던 당시 “국민께서 비판하시는 586의 운동권 문화는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라디오에 출연해서는 “계파는 당을 좀먹는 독약”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정파와 노선은 필요하지만, 계파는 없어져야 한다. 저 스스로 계파에 가입하지 않고, 그런 데서도 저는 안 불러준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586의 질서, 운동권의 수직적 관계가 싫었다. 그런 분들과 몰려 다니는 게 너무 비생산적”이라며 “586의 안 좋은 문화를 따라 배운, 너무 빨리 늙어버린 97 세대들의 그런 것도 청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수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당원들의 요구를 파악해 발 빠르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8·2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는 당선 이후 “이 대통령이 대통령이 된 것은 민주당 주류가 바뀌었단 뜻이고, 민주당에서 정청래가 대표가 됐다는 것은 당의 주인인 당원들이 당의 운명을 결정하는 시대가 왔다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해석했다. 이날 전당대회를 “예전에는 당원들이 국회의원 눈치를 봤지만, 이제는 국회의원들이 당원 눈치를 봐야 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민주당의 민주화’가 드디어 그 깃발을 높이 든 8·2 전당대회”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이처럼 정 대표를 탄탄히 받쳐주는 건 여의도 인맥이 아닌 당원이었다. 정 대표는 이들을 대주주 삼아 힘을 키워 주류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에는 당원권에 힘을 쏟으며 역사상 처음으로 ‘평당원 최고위원’ 선출을 시도하는가 하면 당원 주권 정당 실현을 강조하기 위해 ‘대의원 1인1표제’를 띄우기도 했다. 대의원 1인1표제는 당원들의 권한을 대폭 향상하는 방안이다. 정 대표는 지난 18일 열린 국회 당원주권 정당특위 출범식에서 “10년 넘게 당원주권정당, 1인1표를 주장해 왔지만, 아직까지도 열리지 않았다”며 “헌법에서 얘기하고 있는 평등 선거가 민주당에서도 구현이 될 수 있도록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3대 개혁 풀가동 이어 “대한민국 헌법에는 평등 선거가 명시돼있고, 많은 선거에서 1인1표가 행사되지만 유독 더불어민주당에선 누구는 1표, 누구는 17표를 행사한다”며 “헌법적으로 보나 상식적으로 보나 매우 부끄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재명정부가 국민주권시대를 강조하는 만큼 이에 발맞추기 위해서라도 민주당은 권리당원의 권리를 보장하고 상징적인 ‘1인1표’ 시대를 반드시 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밖에도 정 대표는 당헌·당규 개정을 비롯한 ▲평당원 선출 준비 지원 ▲연말 당원 콘서트 지원 등을 약속했다. 당원의 힘이 커질 수록 정 대표의 정치적 입지도 넓어진다. 정 대표는 연일 국민의힘 때리기에 집중하며 당원으로부터 지지를 받았고, 민주당의 목표로 3대 개혁 완수를 내걸었다. 이는 비주류였던 자신의 정체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전략으로도 읽힌다. 이 대통령이 ‘사이다’ 발언으로 당권까지 올랐다면 정 대표는 각종 특위를 띄우며 거침없는 개혁가의 모습을 굳히겠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강성 지지층의 요구에 따라 검찰개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청을 폐지하는 대신 가칭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과 공소청을 신설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다음 달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정 대표는 지난달 21일 의원총회에서 이 대통령과 당 지도부의 만찬 회동을 언급하며 “검찰청 폐지, 공소청·중수청 설립을 담은 정부조직법을 9월 내 본회의에서 처리하자고 당과 대통령실이 입장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약속드린대로 추석 귀향길 뉴스에서 ‘검찰청은 폐지됐다’ ‘검찰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는 기쁜 소식을 국민 여러분께 전해드릴 수 있도록 당에선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임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된 추미애 의원 역시 “법사위원장 선출은 검찰과 언론, 사법개혁 과제를 완수하라는 국민의 명령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전폭적으로 힘을 실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위원회도 속속들이 들어섰다. 우선 민주당은 ‘국민주권 검찰정상화 특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정 대표는 출범식 및 1차 회의에 참석해 “지금의 시대적 과제는 내란 종식, 내란 척결, 이정부 성공에 있다”며 “가장 시급히 해야 할 개혁 중 개혁이 검찰개혁”이라며 “개혁도 골든타임을 놓친다면 저항이 거세져서 좌초되고 말 것이기 때문에 시기가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특위의 주요 과제로는 ▲수사·기소 완전 분리 ▲국민 주권 실현 및 민생 뒷받침 등을 제시했다. 새로운 구심점 이어 언론개혁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언론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추석 전까지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언론의 허위·조작 보도에 대해 피해자에게 손해액의 최대 5배 배상을 의무화하는 법적 장치다. 언론뿐만 아니라 ‘유튜버’도 포함하는 안이 논의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중심 사법개혁특별위원회’도 출범했다. 정 대표는 “대법관의 증원과 추천 방식을 변경하는 내용의 사법개혁안을 추석 전까지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구석구석 눈도장을 찍기 위한 지역별 공략에도 나섰다. 지난 21일 호남발전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다들 대한민국 민주화에 대해서 호남이 기여한 바가 지대하다는데, 국가는 ‘호남을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에 대한 답을 이제 할 때가 되지 않았나”라고 꼬집었다. 정 대표는 “호남만 발전시키면 되겠느냐”며 영남발전특위도 띄웠다. 이는 내년 6월에 있을 지방선거를 대비해 대구·경북 등의 표밭을 다지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광폭 행보를 보이는 정 대표를 구심점으로 신흥 세력이 탄생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정 대표는 계파 정치와 거리를 두겠다고 거듭 밝혔지만, 권력자의 주변에 사람이 모이는 것은 당연하다는 해석이다. 정 대표의 편에 선 동료 의원들에게도 시선이 쏠린다.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를 공식적으로 지지했거나 개혁 선봉에 함께 섰던 의원 등이다. 정 대표가 당권 도전을 선언한 국회 기자회견장에는 장경태·최기상·문정복·임오경·양문석 의원 등이 자리했다. 여의도 이야기를 종합하면, 정 대표는 ‘당원 중심 정당’ 철학에 부합하는 인사로 장 의원을 꼽았다. 현재 장 의원은 평단원 최고위원 선출 절차를 위한 특위위원장을 맡고 있다. 최민희 의원은 정 대표를 공개 지지한 인물이다. 당시 정 대표가 수박 논란에 휩싸였을 당시 최 의원은 “심하게 비난받는 정청래 후보를 지켜보면 짠하다”며 “비난에도 역비난하지 않고 여전히 유쾌·상쾌하게 선거운동하는 정 후보를 격하게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 밖에도 한민수·김영환·이성윤 의원은 경선 유세 현장에 함께하며 힘을 실어줬다. 왼쪽으로 붙는 민주당…좁아지는 공간 강성 지지층 등에 업고 개혁가의 길로 개혁가의 길을 걷는 정 대표의 존재감이 커지자 일각에서는 조기 대선을 거치며 ‘중도 보수론’으로 넓혀놨던 민주당의 정치 공간이 다시 좁아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 대표의 강경한 태도가 민주당의 기조가 된다면 야당과의 협치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평이다. 실제 정 대표는 “악수는 사람하고만 한다”며 국민의힘을 척결 대상으로 대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6주기 추모식에서 정 대표는 국민의힘 송언석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과 악수는커녕 인사조차 나누지 않았다. 송 비대위원장 역시 적대감을 드러내면서 그야말로 ‘국회 빙하기’ 시대가 열렸다. 여당인 민주당은 좌우를 넓게 아우르는 정당이 돼야 앞으로 다가올 선거에서 유리한 구도를 유지할 수 있다. 지금처럼 국민의힘이 보수로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왼쪽은 조국혁신당, 진보당 등에 맡겨둔 채 중도 보수를 자처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당원의 힘으로 대표가 된 만큼 그는 개혁을 완수하기까지 지금과 같은 태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민주당 상임고문단도 “집권여당은 당원만 바라보고 정치를 해선 안 된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당 상임고문단 간담회에서 “정당의 주인은 당원이어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면서도 “우리 국민은 당원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도 “내란의 뿌리를 뽑기 위해 전광석화처럼, 폭풍처럼 몰아쳐 처리하겠다는 대목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과유불급이다. 의욕이 앞서 결과를 내는 게 지리멸렬한 것보다는 훨씬 나으나, 지나치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또 다른 민주당으로 민주당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포스트 이재명’ ‘이재명 키즈’가 아닌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새로운 길을 열어야 당이 계속해서 순환하는 등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어 “민주당의 주류는 강성 지지층이다. 당원이 당을 좌지우지하는데 그들의 숫자가 얼마가 되든 목소리가 커 여론을 만드는 것”이라며 “이 주류의 흐름에 올라탄 사람이 정 대표다. 이 대통령이 대표이던 때와는 다른 모습의 민주당을 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아직 남은 정 견제 세력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SNS에 올렸다 곧바로 삭제한 게시글이 화제다. 민주당은 지난달 19~20일 양일간 경주를 찾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준비 상황을 점검했는데 정 대표가 마치 천마총 금관을 쓰고 있는 듯한 착시 사진이 문제가 된 것이다. 정 대표가 금관을 직접 착용한 것은 아니지만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시에 왕 노릇을 한다” “벌써 왕인 것처럼 군다” 등 거친 비판이 쏟아졌다. 현재 해당 사진은 삭제됐지만 8·2 전당대회 때 불거진 박찬대 의원과의 앙금이 아직 남은 게 아니냐는 뒷말이 나온 이유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