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없는 룸살롱 인기 끄는 이유

‘1석2조’ 화류계 즐기기…룸에서 놀고 안마방 고고씽!

과거에는 ‘룸살롱’하면 ‘다 같은 룸살롱’이라고 생각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슷한 인테리어, 별반 다를 것 없는 세팅 방법,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비슷비슷한 초이스의 과정과 수질까지…. 따라서 그간 많은 남성들이 룸살롱을 선택할 때 자신만의 독특하고 특별한 ‘기준’이 있을 수 없었다. 그저 안면이 있거나 아니면 꾸준히 관계를 맺어왔던 담당상무를 통해 술자리를 할 뿐이었다. 하지만 최근 이런 풍속도가 완전히 달라졌다. 저마다 독특한 ‘콘셉트’를 내세운 업소들이 범람하기 시작했고, 손님들도 자신의 취향과 스타일에 따라 룸살롱을 ‘골라가는 시대’가 됐다는 이야기다. 특히 최근에는 불법 성매매를 의미하는 소위 ‘2차’라는 것을 완전히 없앤 업소가 새로운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페티시나 이미지클럽을 추구하는 역삼동의 ‘쇼셜’ 등 새로운 룸살롱 시스템을 취재했다.

아가씨들에 팔찌 끼워 2차 여부 가름하기도 해 
최근 아예 2차 없는 룸살롱 등장해 인기몰이 중 

룸살롱이라고 하면 ‘퇴폐’의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는 것이 일반적인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의 업소들이 소위 불법 성매매를 의미하는 ‘2차’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워낙 암묵적으로 이뤄져 왔고 단속도 쉽지 않기 때문에 그간 집중적인 단속의 대상이 되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 만큼 일부 남성들은 룸살롱에서 간간이 ‘2차’를 즐기기도 했다. 그런데 수년 전부터 ‘룸살롱의 분화’라는 것이 이뤄지기 시작하면서 룸살롱에서 2차를 가지 않는 여성들이 생겨났고, 이를 허락하는 업주들도 생기기 시작했다.

‘퇴폐’ 이미지 홀딱 벗은 룸살롱들

2차를 가지 않는 여성들은 자신들이 룸살롱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소위 말하는 ‘윤락녀’가 되고 싶지는 않다는 ‘마지막 의지’ 때문에 2차를 거부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움직임은 룸살롱 아가씨들의 ‘대중화’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에는 거의 대부분의 아가씨들이 ‘독한 마음’을 먹은 화류계 아가씨들이었고, 그녀들에게 2차는 거의 ‘필수코스’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굳이 ‘2차’를 가지 않아도 돈벌이에 지장이 없는 여성들, 예컨대 대학생?휴학생?일반 직장여성들이 아르바이트로 룸살롱에서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분위기가 확 변했다.

때문에 지금까지 대부분의 업소들은 ‘2차를 가는 여성’과 ‘2차를 가지 않는 여성’들이 혼재되어 있었다. 이에 업소 측에서는 아가씨들의 손에 팔찌를 끼우는 방법을 통해 손님들이 사전이 이를 알고 초이스하는 시스템을 도입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아예 ‘NO 2차’를 선언하고 있는 업소들이 생겨나고 있다. 이들은 ‘아내들도 인정할 수 있는 건전한 룸살롱 문화를 만들고 싶다’는 기치아래 불법적인 요소는 완전히 제거했다.

당초 업계에서는 이 같은 시도에 대해 ‘미션 임파서블’이라고 여겼고, 대부분의 업주들은 이 업소가 얼마 지나지 않아 망할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장사가 잘 되지 않으면 곧 2차를 다시 도입하게 될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런 업소들은 망하지 않았고 꾸준히 성업을 했다. 초기에 이 업소가 망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대부분의 업주나 화류계 관계자들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러한 일이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이러한 비밀은 무엇보다 ‘손님’들에게서 찾을 수 있다.

그들은 왜 2차 없는 룸살롱에 가는가

‘왜 그들은 2차 없는 룸살롱에 가는가’라는 물음의 해답이 바로 이 새로운 트렌드가 생겨나고 유지되는 ‘비밀’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남성들은 ‘룸살롱에서 할 수 있는 본연의 권리(?)’를 포기하고 있는 것일까.

“이제는 술 문화 자체도 예전하고는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한다. 술을 먹지 않는 회식문화도 많아 지지 않았나. 그와 일맥상통한다고 보면 된다. 굳이 2차까지 가면서 질펀하게 놀고 싶지 않은 것이다. 룸살롱이 일반적으로 늘 갈 수 없는 장소이다 보니 한 번 정도 가면 신나고 즐겁게 아가씨들과 놀고 싶은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술에 ‘곤드레만드레’ 취해서 2차까지 하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그렇게 건전하고 건강하게 살아가면서 나름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이 요즘 남성들의 트렌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애인이 있거나 유부남인 경우에는 미안함 때문이라도 2차를 잘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직장인 J씨)

결국 2차 없는 룸살롱은 기존의 업주들이 예상치 못했던 전혀 새로운 트렌드를 잡아낸 성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2차 없는 룸살롱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과연 남성들이 여성들과 술만 마시는 ‘밋밋한 술자리’까지 즐겨할까.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니다’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2차 없는 룸살롱들은 불법 성매매를 없애는 동시에 여기에서 오는 ‘허전함’을 채워줄 수 있는 또 다른 ‘특별한 콘셉트’를 만들어 냈다. 그것이 바로 페티시 룸살롱, 티팬티 룸살롱, 란제리 룸살롱 등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화류계에서 가장 특징적으로 보이는 모습 중의 하나가 바로 이러한 새로운 콘셉트를 주 무기로 하는 업소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색다른 취향에 대한 만족이 바로 2차 없는 룸살롱이 살아남은 비법이라고 할 수 있는 것.

2차 대신 페티시·티팬티 등 새로운 콘셉트 중무장 
룸살롱에서 놀고 2차는 안마방에서 즐기는 추세


최근 티팬티 룸살롱의 매력에 푹 빠졌다는 한 직장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페티시 룸살롱에는 2차라는 것이 없지만 ‘여신’을 만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일부 남성들은 ‘그래봐야 나가요 아가씨 아니냐’라고 말하지만, 실제 그녀들이 입고 있는 옷이며, 그 옷들 사이로 비치는 가슴, 쿵쾅거리는 티팬티를 본다면 그렇게 말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한마디로 눈부신 ‘섹시의 여신’들이 있다는 이야기다. 특히 나 같은 경우는 페티시적 취향이 있기 때문에 2차를 하면서 성관계를 갖는 것보다는 그저 그녀들의 모습을 즐기고, 만지고 대화하는 것을 더욱 선호하는 편이다. 굳이 2차를 나가지 않아도 상관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2차 없는 룸살롱은 그들만의 독특한 그 무언가로 승부한다고 볼 수 있고, 그것이 바로 내가 그런 룸살롱에 가는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이 직장인의 말을 통해서 ‘페티시의 확산’이 이러한 2차 없는 룸살롱이 살아남을 수 있는 또 하나의 비밀코드라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실제 과거와는 다르게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을 통해서 페티시 세계에 눈을 떴고, 또 그것을 현실에서 추구하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룸살롱에서 반영되고 있는 이러한 페티시적 성향은 룸살롱의 계보를 새롭게 쓴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룸살롱이 계속해서 인기를 얻을 수 있는 또 다른 이유가 하나 있다. 그것은 최근 몇 년 사이에 변종 성매매 업소들이 지나치게 많이 생긴 것에 기인한다. 예를 들어 룸살롱에서 술을 먹고 신나게 논 손님들이 안마나 휴게텔에 가면 훨씬 저렴하면서도 더욱 뛰어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것.

룸살롱도 서비스 개선 ‘선택과 집중’에 주안점

룸살롱에서의 2차는 대략 많게는 30만원까지 지불해야 한다. 하지만 안마의 경우 18만 원 정도의 저렴한 비용으로 만족할만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룸살롱 아가씨들이 가히 범접할 수 없는 ‘짜릿한 수준’의 서비스라는 것이 이 바닥 마니아들의 설명이다. 룸살롱 아가씨들의 2차가 이제는 더 이상의 경쟁력을 잃었다는 이야기이다.

결국 2차 없는 룸살롱은 더 이상 경쟁력 없는 서비스로 손님들에게 바가지를 씌울 것이 아니라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자는 적극적인 발상의 전환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2차가 없어지면서 향후 룸살롱의 스펙트럼은 더더욱 화려해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 인기를 얻고 있는 페티시, 티팬티, 란제리 룸살롱에 이어 지금보다 더욱 자극적이고 충격적인 서비스들이 선을 보이면서 ‘2차의 공백’을 메우며 남성 손님들을 유혹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이는 한편으로 불법 성매매가 점차 사라진다는 점에서 보다 긍정적일 수 있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만큼 자극적인 업소들이 많이 생긴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때문에 향후 룸살롱의 변신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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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