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후폭풍> ‘특검보다 더할’ 특수본 수사 시나리오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7.03.13 10:52:15
  • 호수 110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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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목에 검찰 운명 달렸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특검 수사가 막을 내렸다. 정권실세들이 줄줄이 구속됐다. 성역이라 불렸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구속시키며 화룡점정을 찍었다. 하지만 아쉬움도 남는다. 나머지 부역자들에 대한 수사를 마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헌재 판단도 끝났다. 향후 온 국민의 시선이 검찰에 쏠렸다. 2기 검찰 특별수사본부(이하 특수본)가 국정농단 ‘3라운드’ 수사에 착수한다. 1기 검찰 특수본이 하지 못한 수사를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90일간의 대장정을 마치고 지난 6일 수사결과를 국민에게 보고했다. 122명으로 꾸려진 ‘블록버스터’급 특검은 30명을 재판에 넘기는 기염을 토했다. 특검팀은 국정 농단 의혹사건에 대한 수사결과를 발표하며 활동을 종료했다. 특검은 총 46회의 압수수색을 통해 수사 대상에 대한 광범위한 자료를 수집했으며 이를 근거로 총 30명을 기소했다고 밝혔다.

46회 압색
30명 기소

특검법상 특검의 수사 대상은 수사 중 인지된 사건을 포함, 총 15가지였다. 특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뇌물공여 사건 ▲국민연금공단의 삼성물산 합병 관련 사건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 ▲이화여대 입시 및 학사비리 사건 ▲비선 진료 및 특혜 의혹 사건 ▲비선 실세 최순실씨의 민관 인사 및 이권사업 개입 사건 ▲청와대 행정관 차명폰 개통 사건 등 7가지로 분류했다.

먼저 특검이 가장 집중했던 이 부회장의 뇌물공여 사건에선 이 부회장을 비롯해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부회장), 장충기 전 미래전략실 차장(사장), 박상진 전 삼성전자 사장, 황성수 삼성전자 전무, 최씨 등 6명을 기소했다. 특검은 이 사건 수사를 위해 총 15곳을 압수수색하는 등 사실상 특검 수사력을 모두 쏟아부었다.

특검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경영권 승계 및 지배구조 개편 과정서 박근혜 전 대통령으로부터 편의를 제공받는 대가로 최씨 일가에 433억2800만원의 뇌물을 건네거나 약속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돈을 마련하기 위해 총 298억2535만원의 회사자금을 횡령했다는 것이 특검 판단이다.


특검은 이 부회장이 최씨 딸 정유라씨에게 지원한 78억여원을 재산국외 도피로, 말과 훈련비용 지원을 숨기기 위해 허위계약서를 작성한 것을 범죄수익 은닉으로 판단했다. 이 부회장에게는 국회서 “최씨를 몰랐다”고 위증한 혐의도 적용됐다.

특검팀 수사 자료 검찰로 넘겨
놓치거나 못 건드린 부분 숙제

문형표 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과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혐의로 기소됐다. 특검은 국민연금이 삼성물산 합병에 찬성해 이 부회장 등 삼성그룹 대주주가 최소 8549억원의 이득을 챙기고 국민연금은 최소 1388억원의 손해를 봤다고 밝혔다.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대한 수사로 특검은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장관 등을 비롯해 7명을 재판에 넘겼다.

특검은 “세월호 참사와 같이 선량한 국민의 희생을 추모하자는 의견을 밝힌 것만으로 탄압의 대상이 됐다”고 강조했다. 특정 단체에 활동비를 지원하도록 한 ‘화이트 리스트’ 사건 역시 사실로 드러났다.

이화여대 학사비리에는 최경희 전 이화여대 총장 등 9명이 연루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최씨 딸 정씨의 입시 및 학사관리에 특혜를 준 것으로 조사됐다. 특검은 이대가 각종 국책사업에 선정된 것은 사실이나 이와 관련된 대통령의 지시나 최씨의 관여 사실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연장만 됐어도’
기간 짧아 한계


최씨가 금융기관 인사에 개입하거나 미얀마 공적원조 사업 이권 확보를 위해 미얀마 대사, 코이카 이사장 인선에 개입한 것도 특검 수사 결과 모두 사실로 밝혀졌다. 박 전 대통령을 ‘비선 진료’했던 김영재 원장은 의료법 위반과 마약류관리법 위반으로, 휴대전화를 옷에 닦아 최씨에게 건넨 영상으로 유명한 이영선 전 청와대 행정관은 의료법 위반과 전기통신사업법 위반으로 불구속 기소됐다.
 

박영수 특검팀은 특별검사 제도가 도입된 이후 최대의 성과를 올린 팀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하지만 아쉬움도 남는다. 특검 기간이 짧은 탓에 남은 부역자들에 대한 수사가 미진했기 때문이다. 특검이 하지 못한 수사는 향후 검찰의 2기 특수본이 공을 넘겨받는다.

대검찰청은 지난 3일 “김수남 검찰총장이 기존 특수본을 재정비해 특검서 인계받은 사건을 차질 없이, 엄정하게 수사하도록 지시했다”고 밝혔다. 이어 “특수본은 특검서 받은 자료를 면밀히 검토하고 조속히 수사팀을 재구성한 뒤 본격 수사에 착수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특검팀은 이날 오후 7시30분쯤, 지난 90일의 수사기록을 검찰에 넘겼다. 특검팀의 수사자료는 모두 10만 페이지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압수물 박스 20개 분량이다. 앞서 검찰은 2만 페이지 상당의 자료를 넘긴 바 있다.

검찰 특수본(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은 지난 6일 특검으로부터 이첩받은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이영렬 수사본부장, 노승권 1차장 및 총 31명 검사들로 수사본부를 재편했다. 지난해 최순실게이트를 수사했던 형사8부(부장검사 한웅재), 특수1부(부장검사 이원석), 첨단범죄수사2부(부장검사 이근수)가 다시 수사에 나선다.

박 전 대통령·우병우 핵심 타깃
대기업들 조사도 관심거리

2기 특수본은 ▲박근혜 전 대통령 조사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수사 ▲SK·롯데·CJ그룹 등 대기업 수사 등에 주력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검이 실패한 박 전 대통령 대면조사, 우 전 수석 구속 수사 등을 성사시킬 수 있을지 주목된다.

특검은 박 전 대통령을 피의자로 입건만 했고, 우 전 수석의 경우 수사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사건 일체를 인계했다. 삼성 외 다른 대기업에 대한 수사는 본격적으로 벌이지 못했다.

특수본의 첫 번째 타깃은 우 전 수석이 될 전망이다. 검찰은 지난해 우 전 수석의 개인비리 의혹 등을 수사했으나 ‘봐주기 수사’ 논란에 시달렸다. 뚜렷한 결론도 내리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특검팀으로부터 우 전 수석에 대해 모두 8개 항목의 11가지 범죄 사실을 넘겨받았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공정거래위원회, 외교부 공무원 등 인사에 부당 개입한 혐의, 특별감찰관의 직무수행을 방해한 혐의, 미르·K스포츠재단 관련 진상 은폐 혐의, 민간인 불법사찰 혐의 등이 포함됐다.

검찰에 따르면 특수본 내부에는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2부를 주축으로 한 ‘우병우 전담팀’이 꾸려졌다. 김 총장은 검찰 요직을 장악한 ‘우병우 사단’의 수사 방해를 막기 위해 우 전 수석과 연고가 없는 검사들 위주로 전담팀을 꾸리도록 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우 전 수석의 직권남용 혐의에 초점을 맞춘 특검과 달리 검찰은 탈세·횡령 등 개인비리 확인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우 전 수석이 자신의 통신비와 승용차 유지비 등을 가족회사 ‘정강’ 자금으로 충당한 것이 탈세와 횡령에 해당하는지 등은 그간 상당한 수사가 이뤄졌다. 여기에 검찰은 몇몇 기업서 입금된 30억∼40억원에 이르는 수상한 자금 흐름을 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은 부역자
이번엔 골인?

검찰에 따르면 우 전 수석은 변호사로 활동하다 청와대 민정비서관에 발탁된 2014년 5월 3∼4군데 기업으로부터 수억원을 받았다. 검찰은 일단 변호사 시절 받기로 한 수임료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으나 대가성 불법자금일 수도 있다는 판단 아래 강도 높은 조사를 벌이고 있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도 강행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 특별수사본부 관계자는 지난 8일 오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서 “박 전 대통령 탄핵 정국과 관계없이 수사하나”라는 질문에 “그래야 하지 않겠나. 넘어온 사건을 안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탄핵심판이 어떤 식으로 결론 나든 일체의 다른 고려 없이 법과 원칙에 따라 계획대로 맡은 수사를 진행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특검이 손대지 못한 대기업 수사도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특수1부의 경우 대기업 관련 수사를 담당할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팀은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건넨 것으로 의심되는 SK, 롯데그룹 등 대기업 관련 수사를 검찰로 넘긴 바 있다. 이들 기업은 특수본의 주요 수사 대상으로 꼽히고 있어 검찰에서도 정예인력인 특수1부가 맡을 게 유력해 보인다.


미르·K스포츠재단에 대한 대기업 출연금을 둘러싸고 드러난 특검과의 시각차를 어떻게 조화시킬지도 관심사다. 지난해 10∼11월 수사를 담당한 1기 특수본은 박 전 대통령과 최씨 등이 강압적으로 대기업들의 출연을 성사시켰다고 보고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와 강요 등 혐의를 적용했다.

하지만 특검은 청와대-삼성 부당거래 의혹을 수사하면서 삼성의 재단 출연금 204억원을 대가성 뇌물로 보고 뇌물 혐의를 적용했다. 특검팀은 지난달 28일 최씨를 뇌물수수 혐의 등으로 기소하면서 최씨의 기존 사건 재판과 병합해 심리해 달라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에 신청했다.
 

지난 6일 재판서 검찰 측은 “기록 검토를 마치지 못했으니 추후 의견을 밝힐 수 있도록 해 달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재판부는 “특검이 추가 기소한 최씨에 대한 뇌물죄 관련 사건은 당분간 병합하지 않고 별도로 공판 준비절차를 진행하는 게 좋겠다”고 답했다.

지난해 12월 검찰 특수본은 삼성을 포함한 대기업이 미르·K스포츠재단에 낸 출연금을 ‘강요’에 의한 것으로 판단했다. 당시 검찰은 최씨와 박 전 대통령,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대기업을 압박해 돈을 받아낸 것으로 보고 최씨와 안 전 수석에게 강요와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했다.

반면 특검팀은 두 재단 출연금을 포함해 삼성이 최씨 측에 건네기로 한 433억여원 모두를 뇌물로 의율했다. 최씨와 박 전 대통령이 공모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작업을 돕는 대가로 돈을 받았다는 법리다.

뇌물 혐의는?
공소장 변경?

검찰이 대기업을 강요와 직권남용 피해자로 본 반면 특검팀은 뇌물공여자로 법리를 구성했고, 이 사건이 다시 검찰로 돌아온 것이다. 직권남용과 뇌물공여는 병립이 불가능한 혐의인 만큼 검찰이 공소장 변경을 신청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게 법조계의 분석이다. 검찰의 공소장 변경이 받아들여지면 출연금을 낸 다른 대기업에 대한 수사도 뇌물공여 혐의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cmp@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재판 준비하는 특검

수사결과 발표를 끝으로 공식적인 활동을 마무리한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공소유지를 통한 법정 공방 체제로 전환, 새로운 보금자리 마련에 나섰다. 특히 공소유지 업무를 하며 법정을 오가야 하는 탓에 서울중앙지법과 가까운 서초동에 사무실 이전을 추진하고 있다. 법조계에 따르면 공식수사 기간 대치동에 사무실을 마련했던 특검은 현재 사무실 이전 장소로 법조타운이 있는 서초동을 최우선 검토 중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등 30명에 달하는 국정농단 사건의 피고인 수사 자료를 재판 때마다 법정에 옮겨 법리 공방을 벌이려면 지리적으로 법원과 가까운 곳이 낫다는 게 특검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특검은 또 서울중앙지검과 이번 사건 피의자와 피고인 수사 및 공판 공조를 위해 서초동에 사무실을 마련하는 게 용이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하지만 특검 일각에선 서초동 건물에 공실이 많지 않고 임대료가 비싸다는 점에서 다른 지역에 사무실을 두는 방안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창>

 

<기사 속 기사> 이재용 초호화 변호인단

뇌물공여 혐의 등을 받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재판이 지난 9일부터 시작됐다. 현재 이 부회장 변호인단으로는 대법원 선임재판연구관과 수석재판연구관을 지낸 고등법원 부장판사 출신의 송우철 변호사와 판사 출신 문강배 변호사 등 태평양에서만 10명의 변호인이 이름을 올렸다.

또 2003년 ‘대북송금 의혹 사건’수사 당시 특별검사보를 지낸 김종훈 변호사와 고검장 출신인 행복마루 법무법인의 조근호 대표변호사, 오광수 변호사도 합류했다. 이 부회장 변호인단은 담당 재판부(형사합의33부)가 지정된 지난 2일 곧바로 특검 수사 기록 열람과 복사를 재판부에 신청했다.

이 부회장은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소환조사와 법원 영장실질심사 당시 법무법인 외에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법무팀의 법률 지원을 받았다. 그러나 지난달 28일 미래전략실이 전격 해체되면서 그룹 차원의 법무팀 지원을 받을 수 없게 됐다. 해체된 미래전략실 법무팀 관계자 중 일부는 법무법인 태평양으로 적을 옮겨 이 부회장 사건을 계속 맡는 것으로 알려졌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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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