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일가’ 베트남 커넥션 의혹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7.01.20 17:25:33
  • 호수 109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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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갔다오고 동생 들어갔다” 반씨 형제의 기막힌 타이밍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은 유독 ‘베트남’과 인연이 깊다. 지금까지 나온 의혹에는 늘 베트남이 등장해서다. 최근 반 전 총장의 둘째 동생 반기호씨가 사외이사로 있는 광림이 베트남 국영기업과 합작법인까지 세웠다. 일각에서는 반씨 일가와 베트남과 수상한 커넥션이 있는 게 아니냐는 막연한 추측까지 나올 정도다.

지난 12일,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귀국했다. 사실상 대선 출마를 선언하며, 검증대에 올랐다. 그동안 반 전 총장 친인척들의 사건·사고가 연일 구설에 오르고 있다. 반 전 총장의 귀국 전후로 터진 의혹들에는 공통분모가 있다. 바로 베트남이다.

정치권과 재계 관계자는 “반 전 총장의 구설 대부분은 베트남과 연관이 있다”며 “향후 언론 검증에서 반 전 총장과 베트남은 복마전이 될 수도 있다”고 입 모아 말했다.

막연한 추측들
연결고리 의심

반 전 총장의 둘째 동생 반기호씨가 사외이사로 있는 코스닥 기업 광림이 최근 베트남 국영기업과 합작법인을 설립했다. 광림은 중량물 운반을 위한 크레인과 소방차·청소차·전기작업차 등 특장차를 생산하는 업체다. 기호씨는 지난해 3월부터 이 회사의 사외이사로 재직 중이다.

광림은 베트남의 피코서비스 앤 트레이딩 파이낸셜 인베스트먼트 스탁 컴퍼니(이하 피코)와 특장차 판매 및 동남아 시장 진출을 위한 합작법인 설립 계약을 지난해 11월 체결했다. 피코는 베트남의 국영기업인 비나코민(베트남 천연자원개발공사)이 직접 출자해 출범한 기업이다.
 


계약 체결 당시 찍은 사진에는 기호씨도 등장한다. 이에 대해 코스닥 기업의 한 사외이사는 “기업 사외이사는 이사회만 잘 나오면 된다”며 “사외이사가 기업 간의 계약 체결에 등장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첫째동생·조카 사기, 박연차 금품 의혹
모두 베트남과 관련돼 “의혹에 늘 등장”

이와 관련해 광림 측의 입장을 듣기 위해 수차례 통화를 시도했지만,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시사저널> 보도에 따르면, 광림이 기호씨를 영입한 배경에 대해 “(기호씨의) 해외 네트워크가 좋다는 말을 듣고 사외이사로 모셨다”며 “베트남 기업과 합작법인을 설립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줬다”고 영입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실제로 이날 계약식에 베트남 고위공직자들이 대거 참석했다. 응우옌 반 두 베트남 공안부 기술총국 부국장, 부엉 쥐 비엔 베트남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등이 등장한다.

베트남서 원단 공장을 운영하는 한 사업가는 “베트남은 공산당 국가라 외국기업에 상당히 엄격하다”며 “국영 기업과 합작법인 등을 설립하기 위해서는 정부 고위공직자 등 상당한 인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을 종합해보면 기호씨가 광림의 베트남 계약에 주도적으로 관여했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이외에도 기호씨는 코스닥 기업 에스와이패널 부회장으로도 재직 중이다. 에스와이패널이 기호씨를 영입한 이유 역시 ‘베트남 등 해외 사업 공헌 활동을 위해서’라고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기호씨는 베트남과 한국을 오가며 지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상한 계약
과연 우연일까?

공교롭게 반 전 총장의 귀국 직전 터져 나온 ‘박연차 23만 달러 의혹’에도 베트남이 등장한다. 2005년 5월2일부터 5일까지 3박4일 일정으로 응우옌 지 니엔 베트남 외교장관 일행 7명이 방한했다. 이 기간 중 반 전 총장(당시 외교부장관) 주최로 환영 만찬이 한남동 외교부 장관 공관서 열렸다.
 

이날 만찬엔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도 초청받았다. 주한 베트남 명예총영사 자격이었다. 박 회장은 2003년 7월, 3년 임기인 주한 베트남 명예총영사로 재위촉됐다. 박 회장은 1994년 7월 ‘태광비나’라는 베트남 현지법인을 설립한 뒤 1만2000여명의 현지인을 고용하고 연간 1억달러 이상 수출실적을 기록하는 등 베트남 경제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그가 명예총영사로 위촉된 이유다.

그런데 이날 만찬 행사가 열리기 직전 박 회장이 반 전 총장에게 거액을 줬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박 회장은 반 전 총장에게 20만달러(한화 약 2억4000만원)가 담긴 쇼핑백을 전달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박 회장이 20만달러를 준 배경에 반 전 총장 직무와 관련됐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온다.

박 회장은 베트남서도 사업을 하고 있다. 따라서 ‘외교 업무’와 관련해 외교부의 도움이 필요할 수 있다. 이런 차원에서 외교부 수장이었던 반 전 총장에게 “잘 봐달라”는 메시지로 금품을 건넸다는 분석이다. 이외에도 박 회장이 반 전 총장이 베트남과 긴밀한 ‘커넥션’이 있다는 걸 알고 20만달러를 줬을 것이라는 추측도 배제할 수는 없다.

2015년 정국을 뒤흔들었던 ‘성완종 리스트’ 사태 때도 반 전 총장의 동생과 조카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이 두 사람이 ‘작업’하려던 건물도 베트남에 있다. 반 전 총장의 첫째 동생인 기상씨와 조카 주현씨는 베트남 하노이 경남기업의 초고층 복합건물을 매각하면서 중동 국부펀드 고위 관리에게 50만달러(약 6억원)의 뇌물을 건네려 한 혐의를 받고 있다.

2013년 베트남 하노이에 초고층 빌딩 ‘랜드마크 72’를 세운 경남기업은 자금난으로 이 건물을 매각하기로 결정한다. 이 과정서 경남기업 고문인 기상씨가 자신의 장남 주현씨를 독점 매각 주관사로 기업에 추천했다.

유엔 사무총장 자격으로 전격 방문
이후 동생의 회사 국영기업과 합작

2015년 독점 매각 주간사로 선정된 주현씨는 2013년 8월, 아버지 기상씨에게 새로 부임하는 카타르 국왕에게 개인적인 네트워킹을 통해 랜드마크 72를 매각할 수 있다고 알렸다. 이후 주현씨는 카타르 투자청이 이 건물을 매입할 의사가 있다는 공문(인수의향서)을 경남기업에 보냈다.

그러나 공문은 허위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카타르 투자청은 랜드마크 72에 투자할 의사도 없으며, 주현씨를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인수의향서는 허위문서라고 주장했다. 경남기업은 2015년 7월 주현씨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반 전 총장과 베트남이 직접 얽힌 듯한 뉘앙스가 담긴 방명록까지 있다. 반 전 총장은 2015년 5월22일 이틀 간의 일정으로 베트남을 방문했다. 일정 마지막 날 반 전 총장은 비공개로 베트남 수도 하노이 외곽에 있는 판(반·潘) 후이 타인씨 집을 찾아 사당에 향을 올렸다. 판 후이 타인씨는 반 전 총장과 같은 성씨다. 

이날 반 전 총장은 방명록에 이렇게 썼다. “潘(반)가의 일원으로, 지금은 유엔사무총장으로, 조상의 가르침을 따르도록 노력하겠다”(As one of 潘 family, now serving as Secretary General UN, I commit myself that I will try to follow the teaching of ancestors.)


실제로 반씨의 근원은 중국과 베트남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서 반(潘)을 ‘판’이라고 발음하고, 베트남서도 중국과 비슷하게 발음한다. 당시 유엔 측에선 이에 대해 ‘사실 무근’이라고 해명했다. 유엔 측은 “판씨 가문이 베트남서 유명한 학자 집안으로 존경받아 잠시 비는 시간에 들른 것일 뿐 반 총장의 조상과는 관련이 없다”고 해명했다.

반 전 총장은 언어와 수사학에 익숙한 외교관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사당의 방명록에 ‘반씨의 일원으로서’(As one of 潘 family)라고 표현한 것은 뭔가 인연이 있음을 암시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 게다다 ‘조상의 가르침’(the teaching of ancestors)을 따르겠다고 쓴 것은 같은 조상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유독 인연 깊어
조상 베트남인?

반 전 총장은 지난 19일 이명박 전 대통령을 예방했다. 그 자리서 이 전 대통령은 반 전 총장에게 “유엔 사무총장으로 근무하며 몇 개국이나 다녔느냐”고 물었고, 반 전 총장은 “154개국을 다녔다”고 답했다. 반 전 총장은 10년 간 150여개국을 다녔지만 의혹은 단 한 개국에 집중된 것이다. 향후 베트남 관련 의혹이 대권을 노리는 반 전 총장의 발목을 잡을 방아쇠가 될 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cmp@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반기호 미얀마 사업도 특혜?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동생인 반기호씨의 미얀마 사업에 유엔 대표단이 참석하는 등 특혜 소지가 있었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정미 정의당 의원은 17일, 미얀마 현지 기사와 미얀마 정부 계정 페이스북을 토대로 이같이 밝혔다. 이 의원에 따르면 반 전 총장 동생 반기호씨는 KD파워 사장과 보성파워텍 부회장에 역임했다가 최근 사임했으며 현재는 에스와이패널 부회장을 맡고 있다.

반씨가 몸담은 회사들은 모두 미얀마서 사업을 진행 중이거나 추진 중이다. 이 의원이 미얀마 현지 기사와 미얀마 정부 계정 페이스북을 확인한 결과, 2015년 1월21일 반씨가 참석한 보성파워텍과 미얀마 정부간 사업회의에 유엔 대표단과 한국 산업자원통상부 관계자가 참석했다.

이 의원은 “유엔 전문매체인 이너시티프레스 매튜 리 기자가 이 회의에 유엔 대표단이 참석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문제를 제기했다”면서 “민간사업자가 추진하는 사업에 유엔 대표단이 관여하는 것이 타당한지 의문스럽다. 유엔 대표단이 왜 거기에 있었는지, 참석한 사람이 누구인지, 어떤 역할을 했는지 밝혀져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 의원은 KD파워가 미얀마 태양광사업에 본격 진출하기로 한 2012년 4월은 반 전 총장이 미얀마를 공식 방문해 국제사회가 미얀마의 경제제재를 풀어달라고 호소했던 시기라고도 했다. 형제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는 시점이라는 지적이다.

그는 KD파워가 2012년 유엔 글로벌컴팩트에 가입해 유엔 조달시장 정보를 제공받는 등의 혜택을 받다가 2015년 유엔 글로벌콤팩트 가입사 의무사항인 친환경 등 10대 원칙 이행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아 제명됐다는 과정에서 특혜 유무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에 따르면 유엔 글로벌컴팩트 가입은 반 전 총장에게 직접 신청서를 보내 승인을 받으면 된다. 국내 가입사는 73곳(대기업 40곳)에 불과하다. KD파워는 미얀마에서 태양열 사업과 석탄화력발전소, 망간채광 사업, 건설업 등을 하고 있다.

이 의원은 “자신의 형이 유엔 사무총장임에도 인권증진이나 환경보호에는 전혀 상관없는 망간채광사업과 석탄화력발전소를 추진하다가 결국 2015년 유엔 글로벌컴팩트에서 제명까지 당하는 망신을 겪었다. 반 전 총장은 KD파워의 UN글로벌컴팩트 가입과 관련해 특혜가 있었는지 밝혀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반 전 총장 측은 “반씨가 유엔 직원 직함을 사용한 적이 전혀 없고 광산사업과도 관계가 없다”며 “허위사실 보도나 무차별적인 인용보도에 대해서는 민형사상 모든 법적조치를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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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