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코오롱인더스트리 공장서 산업재해가 일어났는데도 소방서·노동청에 신고하지 못하게 하고 심지어 진료비마저 본인에게 부담토록 한 사실이 드러나 파장이 일고 있다. 회사 측이 산재처리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 것은 이로 인해 떠안아야 하는 부담이 걱정됐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이런 행태에 피해를 본 근로자들은 이렇다할 보상도 받지 못한 채 피눈물을 흘리며 근무를 계속하고 있다.
코오롱인더스트리㈜ 1공장이 최근 5년간 산업재해 17건을 보고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구미고용노동지청은 지난 3일, 코오롱인더스트리 1공장의 산업재해 은폐 의혹을 조사한 결과 미보고 17건을 비롯해 협력업체 2곳서 발생한 2건 등 모두 19건의 산재 미보고 건을 적발해 과태료 5700만원을 부과 조치했다고 밝혔다.
은폐·축소 급급
또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사항 32건(협력업체 포함)에 대해 과태료부과 등의 사법 조치와 더불어 사업장 내 안전보건의 근원적인 문제점 및 개선방안을 도출하기 위해 외부 전문기관으로부터 종합적인 안전보건진단도 받도록 조치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코오롱인더스트리(주) 1공장에선 해마다 산업재해가 7∼10건 발생해도 대부분 산업재해로 처리하지 않고 사고를 은폐·축소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사에선 최근 근로자들이 작업 중 손을 다치는 등 안전사고가 자주 발생했으나 사측이 산재 처리를 제대로 해 주지 않아 말썽을 빚어왔다.
근로자 수가 200명(협력업체 근로자 200명 별도)인 김천 1공장은 광학용·산업용·포장용·폴리에스터 필름을 생산한다. 광학용은 전자회로·TV패널에, 산업용은 기왓장 중간에, 포장용은 포장지·선팅지에 각각 사용한다.
근로자 A씨는 이달 초 폴리에스터 필름을 둥글게 감는 일을 하다가 냉각 롤에 왼손이 빨려 들어가 손 전체가 망가지고 피부가 대부분 벗겨지는 사고를 당해 대구 모 병원서 입원치료 중이다. 사고 당시 동료직원이 119구조대에 전화했으나 담당 부장이 전화기를 낚아채 통화를 중지시켰다고 한다. 119구조대에 신고하면 기록이 남고 외부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병원에선 A씨의 손뼈가 골절되고 근육·인대 등이 망가져 손목을 절단해야 할 수도 있는데 아직 치료경과를 살펴보는 중이다. 근로자 B씨는 지난 14일, 발열 롤(필름이 넘어가면서 늘어지는 장치)에 닿아 왼쪽 손에 화상을 입었으나 1주일 전 A씨의 산재 사고 때문에 회사 분위기가 좋지 않자 과장 등 묵인 아래 자비로 치료를 받았다.
수십건 산업재해 은폐…위반사항 32건
다쳐서 신고하자 핸드폰 낚아채기도
지난 10월 초에는 C씨가 롤 옆의 체인 커리어에 오른 손가락이 끼어 찢어지고 파이는 사고로 구미 모 병원서 봉합 수술을 받았다. 담당 과장은 “수술비를 냈으니 공상 처리(회사가 치료비만 부담)하지 말자”고 권유하기도 했다.
근로자 D씨는 지난해 3월 고무벨트에 손이 끼는 사고로 오른쪽 손가락을 다쳐 김천제일병원서 봉합 수술을 받았으나 회사 간부들 묵인 아래 전액 사비를 들였다. 지난해 이 공장서 7∼10건의 사고가 발생했지만 산재 처리한 것은 지난해 1월 한 근로자가 오른손이 발열 롤에 말려 들어가 심각한 상처를 입고 병원서 수술과 피부이식을 한 경우뿐이다.
대부분 공상 처리하거나 아예 본인이 치료비를 부담했다. 산재처리를 하면 회사는 산업안전보건법상 법인·책임자 처벌, 작업환경개선, 보험료 상승 등 부담을 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근로자는 공상처리보단 산재처리를 해야 재발 시에 재요양을 받을 수 있고 장해가 남으면 보상을 쉽게 받을 수 있다. 혹시 회사가 부도나거나 폐업을 하더라도 산재보상을 계속 받을 수 있다.
근로자들은 “회사가 산재처리를 꺼리고 공상처리 하도록 하거나 개인 치료를 받도록 압박한다. 장기간 입원 치료가 아니면 수술 직후 작업장에 곧바로 투입한다”고 했다. 잦은 안전사고는 간부들이 “그것도 못하냐” “빨리해라”며 일을 다그치는 데서 비롯된다고 근로자들은 주장했다.
구미고용노동지청 신병희 근로감독관은 “김천지역 기업 산업재해 업무를 맡으면서 코오롱인더스트리서 산재사고보고를 받은 적이 없다”며 “산업안전보건법상 사망 또는 3일 이상 휴업에 해당하는 안전사고가 발생하면 1개월 이내 고용노동지청에 보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근로복지공단 구미지사 관계자는 “근무 중 다칠 경우 단 한 번의 치료라도 받으면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따라 사업주 또는 해당 근로자가 산재 요양급여를 신청할 수 있고 심사를 통해 승인 여부를 결정한다”고 했다.
김천 1공장 관계자는 “1년에 1∼2건 안전사고가 날 뿐 자주 발생한다는 주장은 사실무근이다. 사고가 발생하면 법에 따라 산재처리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회사 “사실무근”
구미지청 이전홍 산재예방지도과장은 “처벌과 함께 전문기관의 종합적인 안전보건진단을 받도록 조치했다”며 “향후 산업재해 은폐로 근로자들이 피해를 보는 사례가 없도록 지도·감독을 더욱 강화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