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20여 개 지점을 가지고 있는 국내 최고의 여성전용바인 ‘레드모델바’를 모르는 여성은 아마 별로 없을 것이다. 현재 레드모델바는 기존의 어두운 밤 문화의 하나였던 ‘호스트바’를 건전하게 바꿔 국내에 정착시킨 유일한 업소로 평가받고 있다. 이곳에 근무하는 ‘꽃미남’들만 전국적으로 무려 2000명에 이르고, 여성들의 건전한 도우미로 정착하는데 성공했으며 매일 밤 수많은 여성손님들에게 생활의 즐거움을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성공의 배경에는 한때 ‘전설의 호빠 선수’로 불리던 김동이 대표의 고군분투가 녹아있다. 그런 그가 자신의 삶과 유흥업소의 창업 이야기를 담은 자서전 <여자의 밤을 디자인하는 남자>를 펴낸다. <일요시사>는 김 대표의 책 발행에 앞서 책 내용을 단독 연재한다.
“너 지금 거기서 도망갈 수 있는 방법이 생겼는데”
“너무 걱정 마세요. 언제 그쪽에서 출발할 수 있어요?”
■ 정우의 빈자리
내가 일본에 도착한 지 1년이 지났을 때, 정우는 이제 한국으로 나가겠다고 했다. 일본이 지겹고 호스트빠가 싫다고 했다. 나는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정우가 부러웠다. 그는 어디든 자유롭게 갈 수 있는 여권이 있었고, 또 그렇게 간다고 해도 아무도 그를 쫓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정우는 떠날 때 ‘더 이상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다. 그리고 언젠가 반드시 필요할 테니 꼭 돈을 모으라고 했다. 정우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마치 마음속의 큰 대들보라도 잃는 듯 했다. 그날부터 빠찡고도 재미가 없어졌다. 정우와 함께 빠찡고를 하던 시절이 그리워졌다.
하루하루가 너무 무료했다. 내가 일본에서 알고 있는 것은 무척 단순했다. 택시를 부르고 타는 방법, 시장가서 반찬 사고 옷 맡기는 방법, 그리고 빠찡고와 업소 출근. 한번은 일본어를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부쪼와 사쪼에게는 의심거리가 된다. 이곳 선수들이 일본어 공부를 하는 것을 싫어한다. 나 역시 일본어를 공부할 수 없게 됐다.
거기다가 나는 불법체류자 신세였다. 밖에 나가서 운동도 할 수 없었고 사회생활 같은 건 꿈도 못 꿨다. 자칫 단속에 걸렸다가는 곧바로 철창행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지금과 같이 살아갈 수는 없었다. 평생 빚만 갚아야 하는 생활, 아무런 발전도 없고 꿈과 희망도 없는 생활은 지옥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도망가야 했다. 나중에 잡혀서 형석이처럼 손가락이 잘린다고 해도 도망가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우선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이 필요했다. 손님들에게 받는 팁을 숨겨놓을 곳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것조차 마땅치 않았다. 개인 사물함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은행을 이용하는 것도 말이 안됐다. 겨우 찾아낸 곳이 1층 화단 아래였다. 흙을 파고 돈을 비닐에 넣고 그 안에 숨겨 놓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주변의 눈을 피해 조금씩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두 번째로 필요한 건 일본 지도였다. 도망을 간다면 어디로 도망가는지를 결정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한국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오사카는 어딘지, 요코하마는 어딘지, 택시를 타면 돈은 얼마나 나올 것인지 알아야 했다. 하지만 예측을 하는 건 쉽지 않았다. 우선 그래도 일단 돈은 꾸준히 모아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나에게 기회가 왔다. 내가 맨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정우가 많은 도움을 주었듯이, 한국으로 돌아간 정우는 나에게 또다시 탈출의 기회를 선사해주었던 것이다.
■ 새로운 자유를 향해
정우가 한국으로 돌아간 뒤 한 달. 어느 날 숙소 공용전화로 한 통의 전화가 왔다. 통화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분명 정우였다. 정우는 돌아가면서 선수들의 안부를 묻고 있는 듯 했고 제일 마지막에 나를 바꿔달라고 했다. 반가운 마음에 ‘정우야!’를 소리쳤지만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목소리는 사뭇 진지했다.
“동이야, 그냥 듣고만 있어. 너 지금 거기서 도망갈 수 있는 방법이 생겼는데, 한번 해볼래?”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소름이 쫙 끼쳤다. 내가 그토록 갈망하는 바깥 세상에 대한 새로운 희망이 솟았다. 하지만 통화는 오래되지 못했다.
“오늘은 그냥 이 정도에서 끊을게. 내가 다시 전화해서 자세한 걸 알려줄게. 통화가 너무 길면 의심받을 수 있잖아.”
정우는 나랑 통화하기 위해서 전화를 걸었고 의심을 피하기 위해 선수들의 안부를 일일이 물은 것 같았다. 그로부터 며칠 뒤. 일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아무도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내가 전화를 받았다. 정우였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이야기 잘 들어. 요코하마 옆에 가와사키라는 곳이 있어. 사촌누나가 이번에 가게 하나 차리거든. 전화번호는 000-0000 이야. 내가 전부 이야기 해놨으니까 통화 한 번 해봐. 택시 타고 가면 한 3만 엔 정도 나올 거다. 일본말로 ‘가와사끼 에끼 오네가이시마스’라고 하면 가와사끼 전철역까지 데려다 줄 거야.”
곧 인기척이 들렸다. 서둘러 전화를 끊고 받아 적은 쪽지를 들고 재빨리 욕실로 들어갔다. 가슴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우선 급한 건 이 쪽지를 숨겨야 했다. 역시 숨길 만한 곳은 정원 나무 밑이었다.
그렇게 흥분된 마음으로 잠이 들었고 다음 날 시장에 간다는 핑계를 대고 밖으로 나와 공중전화 박스를 찾았다. 전화 한 통 하는 데에도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려야 했다.
“저, 김동이라고 합니다.”
상대방은 이미 나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야기를 들었다는 듯이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그리고 자신이 정우의 사촌누나며, 그러니 아무 것도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특히 야쿠자 문제는 더욱 확고하게 이야기했다.
“야쿠자 같은 건 걱정 하지 마세요. 저희도 그 정도는 충분히 해결할 수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언제 그쪽에서 출발할 수 있어요?”
여권 문제도 해결해주겠다고 했다. 나에게는 절호의 기회인 셈이다. 하지만 걱정이 안 되는 건 아니었다. 아무리 그쪽에서 야쿠자 문제를 해결해준다고 해도 정말인지는 알 수 없었다. 공중전화 옆에는 공원이 있었다. 마지막 결단을 내려야 했다. 공원길을 걸으며 한참 생각에 잠겼다. 보복에 대한 두려움이 많았지만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에 생각이 많아지니 자연히 말수가 줄었다. 마마가 어디 아프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그날 이후 하루하루는 끊임없이 ‘탈출의 기회’를 엿보는 것이 나의 일상이 되었다. 하지만 최대한 태연한 척 연기를 해야 했다. 그렇게 보름이라는 시간이 지나버렸다.
그러던 또 어느 날 오후 2시. 잠을 자고 있는데 전화벨 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나는 순식간에 몸을 일으켰다. 직감적으로 정우가 확실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동이야, 나야 정우.”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