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감무쌍’ 신정아 <4001> 노림수

유명인사들 실명 거론 자전 에세이 출간


지난 22일 낮 12시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36층 아스토홀. 회색 정장을 입은 여성이 등장했다. 4년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신정아씨다. 그동안 자신이 쓴 자전적 에세이를 들고서다. 책을 팔아볼 요량으로 기자간담회를 자청한 신씨의 한마디 한마디에 국민들이 귀를 기울였다. 또 다시 ‘신정아 파문’이 이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혀에 대한민국이 놀아나기 시작했다.


[신정아 의도 뭔가]
▲지난날 반성하려?
▲사회에 대한 복수?
▲주머니 돈 떨어져?
▲정치적 의도 품고?

신정아씨의 자서전 <4001>(신씨가 1년6개월간 복역 당시 수인번호)은 2007년 학력위조로 불거진 ‘신정아 사건’ 발생 전후부터 최근까지 신씨가 써온 일기 중 일부를 편집한 내용이다. 특히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의 스캔들을 비롯해 예일대 박사학위 수여 전말과 동국대 교수 채용 과정, 정치권 배후설, 유명 인사들의 부도덕한 행위 등 신씨를 둘러싼 각종 의혹과 진상에 관한 이야기를 과감하게 담았다. 

“참회·용서 담았다” 사실 바로잡기 중점

세간의 관심은 신씨가 책을 낸 의도에 쏠리고 있다. 신씨가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면서까지 거침없이 폭로한 노림수가 뭐냐는 것이다. 특히 일부 인사들의 경우 민감한 사생활을 건드리면서 실명을 그대로 적어 명예훼손 등 법적 다툼이 불 보듯 뻔한데도 용감무쌍하게 책을 들고 세상에 나와 그 속사정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신씨는 기자간담회에서 책을 쓴 동기와 이유를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책을 출판한 사월의책 안희곤 대표도 “지난해 여름부터 준비했다. 기획 등의 내용은 불필요한 오해를 줄이기 위해 대외비로 하는 것으로 저자와 약속했다”며 “사실 원고는 훨씬 더 셌다. 논란이 될 만한 부분은 편집을 한 데다 책 내용에 대해 법적인 검토를 모두 마친 상태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해 출간했다”고 말을 아꼈다. 다만 책소개를 통해 신씨의 출간 목적을 엿볼 수 있다.

‘지난날을 반성하는 마음으로 썼다. 짊어지고 살아야 했던 지난 사연을 꾸밈없이 밝히고 지나온 뼈아픈 고통의 시간을 솔직하게 고백했다. 잘못에 대해 참회와 용서의 뜻을 전하겠다는 마음도 담았다.’

그런가하면 신씨가 자신을 미화하기 위해 책을 낸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있다. 미술에 관심을 갖게 된 순간부터 미술계에 자리잡기까지 노력한 과정을 상세히 기술했기 때문이다.

중간 중간 변명도 끼어있다. 신씨는 책의 상당부분을 학력위조 등 자신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 해명하는 글로 채웠다. 출판사 측도 “신씨는 잘못하지 않은 부분까지 과도하게 비난받아왔고, 잘못 알려진 사실을 바로잡는다는 데 더 중점을 뒀다”고 했다.

한편으론 사회에 대한 복수란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신정아 사건’을 다시 상기시킨 데다 유명인사들의 실명을 그대로 거론한 점에서다. 신씨는 자신을 외면한 미술계, 언론계, 법조계 등 사회 각 분야의 원색적이고 고발적인 내용을 사정없이 써버렸다.


단순히 돈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자서전을 통해 금전적 수익을 올리고자 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신씨는 무직인 상태. 돈 나올 구멍이 없다. 그런데도 ‘명품병’은 여전한 듯 했다. 출판 기자간담회에 명품으로 치장하고 등장한 행색이 그랬다.

신씨가 들고 나온 가방은 프랑스 브랜드인 ‘입생로랑’ 제품으로, 가격이 200만원에서 300만원가량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는 물론 아시아 시장에서도 구할 수 없는 희귀제품이다. 신씨는 학력위조 파문 당시 ‘보테가 베네타’ 가방과 피에로가 그려진 ‘알렉산더 매퀸’ 티셔츠, ‘돌체&가바나’ 재킷, ‘버버리’ 데님 청바지 등을 입어 시선을 끌기도 했다.

신씨는 미술관 공금을 빼돌린 혐의 등으로 2007년 10월 구속기소돼 1·2심에서 징역 1년6월을 선고받는 과정에서 이미 상당한 돈을 변호사 비용으로 쓴데다 현재 특별한 직업이 없어 ‘품위유지비’도 모자랄 판에 당장 거액이 필요한 상황이다. 법원은 지난달 23일 신씨가 성곡미술관 재직 때 횡령한 것으로 확정판결이 난 부분에 대해 성곡미술관에 1억2975만원을 돌려주라는 강제조정 결정을 내렸다. 법원은 “신씨는 횡령금액 3억2000만원에서 박문순 관장이 반환한 1억원을 제외한 2억2000만원의 60%에 해당하는 금액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불티나게 팔려 ‘대박’  이대로라면 ‘돈방석’

하지만 신씨가 물어야 할 1억2975만원은 자서전으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금액이다. <4001>은 대박이 났다.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각 서점마다 없어서 못 팔 정도다. 신씨와 출판사의 ‘치부 마케팅’전략이 적중했다는 분석이다.

<4001>은 출간 하루 만에 초판 5만부가 모두 출고됐다. 신씨와 출판사간 인세 계약은 비공개여서 알 수 없다. 통상적으로 책값의 10% 정도가 인세로 책정되는 점을 감안하면 권당 1만4000원 하는 책이 5만부 팔렸으니까 신씨는 7000만원의 수익을 올린 셈이 된다.

출판업계에선 2만∼3만부 추가 인쇄작업에 들어가는 등 이런 추세라면 20만부는 무난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20만부로 계산하면 신씨가 챙길 수 있는 돈은 2억8000만원이 된다. 여기에 이 책을 바탕으로 영화나 드라마가 제작될 경우 신씨는 저작권료 등으로 수십억대 돈방석에 앉을 것으로 보인다. ‘신정아 사건’은 한 영화사이트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영화하기 좋은 소재 1위’로 꼽히기도 했다.

신씨는 출간을 앞두고 명품과 돈 얘기를 꺼낸 적이 있다.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평범한 옷과 가방도 많은데 명품을 지닌 모습만 지나치게 부각됐다. 난 좋은 제품을 구입해 오래 사용하는 스타일”이라고 해명했다. 또 “그리 넉넉하지 않다. 백수 생활 4년째 아닌가”라며 “(그렇다고) 돈 때문에 책을 내는 것은 아니다. 마음 달래고 새 출발 겸해서 책을 낸 것”이라고 밝혔다.

왜 하필 이 시점에 정운찬 까발렸나
 

정치권에선 신씨의 책을 두고 음모론이 제기되고 있다. 책에서 눈에 띄는 인물은 단연 정운찬 전 총리다. 신씨가 주장한 정 전 총리와의 비화는 다소 충격적이다. 신씨는 “언론을 통해 보던 정 총장의 인상과 실제로 내가 접한 정 총장의 모습은 너무나 달랐다”고 까발렸다.

‘정 총장은 처음부터 나를 단순히 일 때문에 만나는 것 같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만나려고 일을 핑계로 대는 것 같았다…정 총장이 나를 만나자는 때는 늘 밤 10시가 다 된 시간이었다. 아무리 지위와 힘이 있다고 해도 나를 밤 10시에 불러내야 할 이유는 없었다. 내가 보기에는 겉으로만 고상할 뿐 도덕관념은 제로였다. 필요한 자문을 하는 동안 처음에는 슬쩍슬쩍 내 어깨를 치거나 팔을 건드렸다…바로 다음번에 만났을 때는 아예 대놓고 내가 좋다고 했다. 앞으로 자주 만나고 싶다고 했고, 심지어 사랑하고 싶은 여자라는 이야기까지 했다.’


이에 대해 정 전 총리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주장”이라고 일축했지만, 여권 일각에선 신씨 측이 정치적 의도를 품고 책을 펴낸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고 있다. 정 전 총리를 겨냥했다는 점과 왜 하필 지금이냐가 논란거리다.

정 전 총리는 4·27 재보궐 출마가 유력한 한나라당 후보 중 한 명이다. 재보궐 선거를 ‘코앞’에 두고 책이 나온 것도 석연치 않다는 것이다. 더욱이 정 전 총리는 재보궐뿐 아니라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상당한 역할을 할 가능성이 있어 의혹을 증폭시켰다.

일부에선 출판사 안 대표가 1980년대 초·중반 대학을 다닌 386세대란 것을 들어 야권 인사와 친분이 있다는 얘기까지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관련 안 대표는 “정치적 의도는 전혀 없다”며 “오래 전부터 준비하고 작업이 다 끝나서 나온 것이지 시기를 따로 조정한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이어 “여권에서 거론되는 야권 386 인사가 누구인지 짐작이 가지만 그 사람들과는 대학에 다닐 때도 만난 적 없고 지금까지 일면식도 없다”며 “저자와 내가 서로 알고 있는 예술계나 출판계 인사가 있긴 하지만 정치권 인사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조4000억원 규모 초대형 사업에 ‘변수’가 등장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불거진 절차적 정당성에 시비가 붙었다.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던 문제는 이제 결론만 남은 상태다. ‘모로 가도 수익만 내면 된다’는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5-1구역, 5-3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이하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재 확인된 소송만 ▲손해배상 청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등 3건에 이른다. 겉으로는 순탄하게 진행 중인 듯한 사업의 이면에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일요시사> 1539호 ‘<단독> 1조4000억원 세운5구역 재개발 복마전’(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0331) 기사 참조). 꼬리에 꼬리 사법 리스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은 서울 중구 산림동 190-3번지 일원 7672㎡ 부지에 지상 37층 규모의 업무복합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주주로 참여 중인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PFV)가 시행을, GS건설이 시공을 맡고 있다. 태영건설이 시공권과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워크아웃에 돌입한 이후 GS건설이 인수했다. 대신자산운용이 업무시설에 대한 선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선매입 가격은 3.3㎡당 3500만원가량으로 계약금으로만 700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자산운용에 따르면, 현재 사업은 철거 단계로 예정대로 2030년에 개발이 끝나면 연면적 13만㎡가 넘는 최상급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몇 년째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는 ‘사법 리스크’다. 검찰, 경찰에 고발된 몇몇 사건은 종결됐지만 일부는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눈여겨볼 대목은 송사에 휘말린 이들이 현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아무런 지분이 없는 ‘외부인’이라는 사실이다. 사업 초창기 기틀을 닦은 이른바 ‘개국공신’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지금은 연결고리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도 이들의 송사에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끊임없이 언급되는 이유는 시행을 맡은 이지스자산운용이 연루돼있기 때문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자금 조달 역할로 합류했다. 부동산 매매, 분양 등을 하는 업체 대표 염모씨와 부동산 개발 관리 등을 하는 업체 공동대표 오모씨, 권모씨 등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토지 매입 자금이 부족해지자 이지스자산운용을 끌어들였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사업에 합류할 무렵 인허가 문제 등이) 어느 정도 진행돼있었고 저희가 투자하기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투자해 진행하면 안정권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염씨가 대표로 있는 연합와이앤제이(이하 연합)와 이지스자산운용은 2019년 1월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은 50대 50으로 맞췄다. 여기에 연합은 오씨, 권씨, 최씨, 박 전 이사 등과 따로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 구조는 연합 50%, 오씨 30%, 권씨 10%, 최씨 7%, 박 전 이사 3% 등으로 구성됐다. 2030년 13만㎡ 업무복합시설 법정 공방 최소 3건 진행 중 2019년 6월 연합, 이지스자산운용, 국민은행(이지스펀드의 신탁사), 생보부동산신탁(현 교보자산신탁) 등은 주주협약서를 작성하고 ㈜세운5구역 PFV를 설립했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위한 시행사가 정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당시 지분 구조는 연합 47.1%, 이지스자산운용(17.2%)+이지스펀드(29.9%) 47.1%, 생보부동산신탁 5.8% 등이다. 대표이사는 염씨가 맡기로 했고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은 각 2명씩 이사를 추천해 총 4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됐다. 연합 측에서는 염 대표와 박 전 이사가 이사로 참여했다. 이 구성은 박 전 이사가 2020년 8월14일 이사직을 사임할 때까지 유지됐다. 이후 염 대표가 이지스자산운용에 지분을 넘기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빠져나왔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염 대표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손을 떼는 과정에서 오간 돈, 이지스자산운용이 오씨와 권씨, 최씨 등에게 준 돈을 두고 불거졌다. 염 대표가 받은 378억원, 오씨 등 3명 등이 받은 94억원 등 약 480억원을 둘러싸고 소유권 논쟁이 진행 중이다. 세운5구역 PFV, 이지스자산운용은 돈을 지급한 주체라 송사에 연루돼있다. 이 소송은 당시 사업의 지분 구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시작됐기에 어떤 결론이 나오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최근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소송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던 이사회 관련 소송이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것. 세운5구역 PFV 4명의 이사 가운데 1명이었던 박 전 이사는 2023년 9월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6월20일부터 2020년 8월14일까지 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기간 세운5구역 PFV가 진행했다고 알려진 이사회는 16번이다. 480억원 두고 초기 멤버 갈등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는 상근 직원이 없고 등기임원의 보수도 없는 특수목적법인으로, 이사회는 업무 집행의 법률적 효력과 정당성을 보장해 주는 가장 중요한 기구이자 어쩌면 회사 그 자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사회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진행됐으니 그 결의 내용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운5구역 PFV는 명목상 구성된 페이퍼컴퍼니였던 만큼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실질적인 경영 주체(이지스자산운용), 총괄 관계자가 책임져야 한다. 리모컨을 누른 사람(이지스자산운용)이 문제지, 리모컨(세운5구역 PFV)이 잘못이 아닌 것과 같다”며 “14개월 동안 이사로 재직하다가 정기총회도 거치지 않고 중도 사퇴한 건 더 가다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릴 것 같아서였다”고 털어놨다. 박 전 이사는 이사회가 실제로 진행되지 않고 서류 작업을 통해 조작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상법에 따르면 이사회는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게 돼있다. 어디에도 서면으로 진행해도 된다는 문구는 없다. 대표이사였던 염씨가 이사회를 소집 통지하는 과정에서 보낸 공문에도 정확하게 기재돼있다”고 주장했다. 상법 제391조(이사회의 결의방법)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는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이사의 과반수로 해야 한다. 다만 정관으로 그 비율을 높게 정할 수 있다. 그러면서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사회는 이사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직접 회의에 출석하지 않고 모든 이사가 음성을 동시에 송·수신하는 원격통신 수단에 의해 결의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일요시사>가 입수한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 주식회사 이사회 소집통지’ 공문에 따르면 2020년 3월27일 오전 11시 이지스자산운용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진행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방법’ 부분에 ‘직접 참석 or 컨퍼런스 콜’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방어 근거 무너지나 박 전 이사는 해당 이사회에 참석한 적 없지만, 자신의 막도장을 이용해 의결이 이뤄진 것처럼 꾸몄다고 주장했다. 이사회 당일 다른 곳에 있던 적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박 전 이사는 “2019년 3차 이사회 이사록을 보면 그해 10월31일 재적 이사 전원 출석으로 이사회가 개최된 것으로 기재돼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지인들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서 스크린 골프를 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1시간가량 차이 나는 곳에 있던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사회 결의는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박 전 이사는 이 내용을 가지고 서울영등포경찰서에 염 대표 등을 ‘배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박 전 이사가 재직 당시 이사회 소집이나 의사록 작성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불송치 처분했다. 박 전 이사는 “사후에 통보식으로 이사회 의결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이사회 자체의 절차적 하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검찰은 물론 염 대표, 이지스자산운용 모두 물리적 행위 자체가 없었던, 그래서 의결 자체가 무효인 이사회를 무기로 각종 고소·고발건을 방어해 왔다”며 “이사회에서 특별 결의사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본인들이 체결한 공동사업약정서 등에 기재돼있는데도 그조차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가 토지를 매입하는 내용을 안건으로 다룬 이사회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이 맺은 공동사업약정서에 따르면 ‘승인된 사업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자본적 지출’은 이사회 특별 결의사항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 특별 결의사항은 재적 이사 전원의 동의로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법원 절차적 하자 인정하면 사업 자체 흔들릴 가능성도 연합 등이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땅값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됐다. 염 대표와 오씨 등이 재개발 구역의 땅을 사는 과정에서 특수관계인을 이용해 비싼 값에 매입했다는 의혹이다. 시행사가 직접 원주민에게 토지를 사는 방식이 아니라 그사이에 특수관계인을 끼워 넣어 차익을 봤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불기소의 근거 중 하나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언급한 바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도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땅값은 사실 정해져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재개발사업에서는 토지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협의에 따라 하는 것이지, 정확한 시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너무 비싸게 샀다면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의사회 결의는 무조건 다 있었고 더 큰 의사결정은 주주총회를 통해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전 이사의 주장대로 이사회의 절차적 하자가 인정돼 그 존재 자체가 무효가 된다면 결의 내용 역시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사회 관련 소송에 증인으로 참석한 당시 세운5구역 PFV 이사의 발언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4명의 이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가 같은 이사였던 박 전 이사를 ‘전혀 모른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이다.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 온·오프라인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박 전 이사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박 전 이사는 “내가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런데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만나기는커녕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 세운5구역 PFV 측은 그제야 대면 결의는 없었다고 인정하면서 서면 결의도 인정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에 서면으로 이사회 결의를 한다고 말하면 조합장이 당장 쫓겨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지스자산운영 측은 “해당 건은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답변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리며 향후 법적 과정에서 투명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성실히 소명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전해왔다. 1심 판결 곧 나온다 일각에서는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위반될 소지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경험이 풍부한 한 관계자는 “SPC가 설립되고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사회 문제가 불거진 만큼 소송 결과에 따라 주무 관청의 인허가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