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딸 정유라 둘러싼 '소문과 진실'

소문이 곧 진실로 "어디까지가 팩트?"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최순실씨는 비선 실세 의혹을 받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을 움직이는 사람이 최씨라는 것. 그런데 최씨를 움직인 것은 딸 정유라씨였다. 최씨를 둘러싼 비리와 특혜 의혹이 딸 정씨와 연관돼 있어서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진정한 비선은 정씨’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정씨는 이렇다할 해명도 없이 잠적해 있다가 지난 30일, 전격 귀국했다.

“웃고 있는 내 아들 벌써 하늘에서 주신 천사가 25주나 되었어요. 더 이상 숨길 마음도 없고 그럴 수도 없어서 이제 밝히고자 해요. (중략) 제 아들을 지키기 위해서 그 어떤 짓도 할 수 있어요. 이 세상에서 제 아들보다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중략) 모두 다 저버리더라도 아이를 살리고 싶습니다.”

언제 임신했나?
아이 출산설은?

2015년 1월8일 ‘유연’이라는 이름의 사용자가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렸다. 유연은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가 개명하기 전 이름이다 (정씨는 지난해 6월 정유연에서 정유라로 개명했다). 그 동안 항간에 정씨의 임신설이 소문으로 돌았다. 정씨가 쓴 페이스북의 글을 보면 임신설이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는 게 세간의 시선이다.

먼저 정씨와 이 페이스북의 유연이라는 사람이 동일인물인가 하는 점이 매우 중요하다. 정씨의 페이스북에 나와 있는 사진과 시중에 떠돌고 있는 정씨의 사진들을 비교했을 때 얼핏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정씨와 유연은 동일인물인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승마연맹에 올라온 사진과 유연의 사진이 일치한다. 항간에 ‘최씨가 딸 정씨의 성형 날짜까지 무당한테 물어봤다’는 소문 중에 정씨가 성형했다는 것은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정씨가 페이스북에 쓴 대로 병원서 ‘임신 25주차’ 진단을 받았다면, 태아는 2014년 7월26일∼8월4일 사이 임신한 것으로 추정된다. 출산예정일은 2015년 4월23일. 정씨가 예정대로 출산했다면 이 아기는 지금 18개월이다.

언론들의 추적 보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확인됐다. 최씨 모녀가 ‘어린 아이’와 독일서 생활하며 아동학대 의심을 받아 보건 당국서 조사를 받았다는 것. 정씨가 승마 훈련을 하기로 계약한 독일 예거호프 승마장 소유주는 “정씨가 지난해 10월께 아동학대를 의심받아 독일 헤센주 보건당국의 방문조사를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좁은 별채 공간서 갓난 아이와 개 15마리, 고양이 5마리를 함께 키우는 것을 목격한 이웃 주민들이 불결한 생활을 걱정해 신고했다”고 덧붙였다. 그에 따르면 아이가 태어난 지 6개월 안에 받아야 하는 검진을 받지 않은 것도 문제가 됐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아이는 지난해 4월께 독일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정씨가 최근까지 머무른 독일 프랑크푸르트 인근 슈미텐 그라벤비젠베크가의 주택에선 어린이 진료와 관련된 병원 영수증이 나왔다. 어린이 운동화가 여러 켤레 있기도 했다. 이 같은 정황을 종합했을 때 정씨의 출산설은 사실에 가깝다고 추정할 수 있다.

그동안 루머만 무성…하나씩 밝혀지는 사실
각종 비리와 특혜 의혹들 두고 ‘진실공방’

정씨의 페이스북에는 남자친구로 추정되는 신모씨와 커플티를 입은 채 입맞춤하고 있는 사진이 있다. 신씨의 페이스북에는 본인의 결혼 소식을 알리는 메시지를 게재해 놓았다. 이 둘의 비밀 결혼설이 흘러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들은 결혼 후 독일서 머물고 있다는 소문도 있다. 정씨는 독일의 ‘비덱스포츠 유한책임회사(Widec Sports GmbH·비덱)’의 신용평가보고서에 미스(Miss)가 아닌 미세스(Mrs)로 기재돼 기혼이라는 추측에 힘이 실리는 추세다.


정씨와 결혼했다는 정황은 신씨의 SNS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 12월12일 신씨는 2개의 글을 게재했다. 첫 번째 글에는 하트 모양의 아이콘과 함께 ‘got married’(결혼했음)라고 적어 놓았으며, 두 번째 글에는 말 두 마리가 검은색 개를 바라보는 사진을 올려놨다.
 

첫 번째 글을 통해 신씨가 어디에 거주했는지도 추정할 수 있다. 신씨의 페이스북에 표시된 그의 위치는 독일의 오베루셀(Oberursel)이다. 오베루셀은 최씨와 정씨의 호텔이 있는 독일 프랑크프루트 인근 ‘타우누스’의 지명이다.

정유라 남편
그의 정체는?

신씨가 ‘got married'라는 글을 올렸으며, 위차상 최씨와 정씨 모녀의 최후 목격 장소라는 점에서 신씨와 정씨가 현재 함께 은신 중일 가능성이 높다는 게 중론이다. 이와 더불어 둘이 결혼했다고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이다.

신씨는 정씨와 같이 승마선수 출신인 것으로 알려졌다. 고등학교 시절 같이 승마를 하며 가까워진 것으로 전해진다. 정씨는 지난 2014년 12월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말 타는 사람 중에 친한 사람이 네 명밖에 없는데 그중 하나가 신○○”이라고 썼다.

하지만 이와 정반대의 얘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신씨가 휴대폰 판매원도 했고, 나이트 삐끼(호객행위)도 했다는 것. 최씨가 정씨의 출산을 반대했을 정도로 집안이 좋지 않았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신씨는 국대에 들어와 한 때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소문도 무성하다.

이런 사실 관계가 드러나자 이화여대 입학과 학점 취득서 특혜를 받았던 정씨를 둘러싼 논란이 더욱 가열될 전망이다. 이대는 그동안 “정씨가 국제대회에 출전했기 때문에 결석해도 출석과 학점을 인정해줬다”고 해명해왔다. 그러나 정씨가 결석한 까닭이 국제대회 출전이 아니라 임신과 육아, 결혼 때문일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이대 측 해명과 달리, 정씨는 입학 이후 한동안 국제대회에 출전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국제승마연맹 출전 기록에 따르면, 정씨는 임신과 출산 전후로 추정되는 지난 2014년 10월부터 2015년 9월까지 단 한 차례도 경기에 출전하지 않았다. 정씨는 올 1학기에도 열리지도 않은 경기 출전 기록까지 제출해 출석을 대체하려 했던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언제 얼마나
대기업 후원?

정씨가 오랫동안 삼성의 후원을 받아 왔다는 말도 있다. 먼저 정씨가 독일서 임대계약을 맺은 승마장 대표에게 "삼성으로부터 200억 후원을 받을 예정"이라고 말한 것으로 드러났다.

앞서 K스포츠재단이 최씨 개인회사를 위해 대기업에 80억원을 요구했다는 정황은 이미 나왔다. 이 외에도 올해 초 유럽의 승마 잡지 <유로드레사지>는 삼성이 정씨를 위해 ‘비타나V’ 말을 구입했고, 독일에 승마장까지 구입했다는 기사를 내보내면서 삼성과 정씨와의 관계가 거론됐다.

이 때문에 그 동안 “삼성이 정씨의 뒤를 봐주고 있다”는 말이 떠돌기도 했다. 그런 찰나에 정씨의 국제승마연맹(FEI) 선수 소개 프로필에 소속팀이 삼성으로 돼 있어 논란이 증폭됐다. 문제가 된 정씨의 프로필은 지난 22일 삭제됐다.


삼성은 정씨가 독일서 전지 훈련할 수 있도록 승마장 등을 지원했다는 의혹을 부인했으며, 당시 삼성승마단은 경기 출전이 아닌 환자들의 재활 치료를 지원하는 목적으로만 운영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정유라가 삼성 소속 승마단이라고 프로필에 적시한 것도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했다.

삼성은 오너 일가가 대대로 승마를 즐겨왔다. 이건희 회장도 승마를 즐겼고, 이재용 부회장은 승마 국가대표로 활동했다. 현재 승마협회 회장이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이다.

진짜 비선은 최씨 아닌 정씨?
찌라시 내용들 믿어도 되나

정씨의 국제 승마연맹 선수 소개 프로필은 논란은 더 있다. 프로필의 친인척 소개란에는 ‘아버지 정윤회씨가 박근혜 대통령을 보좌하고 있다(Her father Jeong Yun-Hoe has served as an aide to Park Geun-Hye, president of Republic of Korea)’고 적혀 있다.

이 문장의 참고자료는 2014년 12월 3일 한겨레신문 홈페이지 기사(hani.co.kr, 03 Dec. 2014)로 돼 있는데 정씨가 아닌 다른 이가 이 기사를 참고해 작성했을 가능성도 있다. 당시는 정윤회씨가 현 정부 비선 실세라는 논란이 뜨거웠던 시기다.

정씨의 개명을 두고도 뒷말이 무성하다. 앞서 개명전 이름은 정유연이었다. 그런데 개명한 사실조차 최근까지 알려지지 않았고, 지난해 6월12일 이름을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로서는 그 이유 또한 당사자들에게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일부에선 종교적 이유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기도 한다. 정씨의 개명 시기는 상당한 논란 끝에 대학에 들어간 뒤, 1학년 중반쯤 되던 때다.

최근 고등학교 때 올린 그녀의 SNS글(“돈도 실력…니네 부모를 원망해”)이 공개되면서 대중의 공분을 샀다. 정씨는 특권층 자녀로서 누리는 특혜와 특유의 태도 때문에 학우들이나 친구들로부터 줄곧 매도를 당하는 입장에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모녀는 권력의 비선서 권력과 특혜를 누렸지만, ‘비선’이 지녀야 하는 그림자 노릇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자취를 지우고 존재를 세탁하는 방식으로 개명을 활용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물론 개명을 하는 데 특별한 자격이나 제약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이름이 오해를 부르거나 촌스럽거나 하여 인격권과 행복추구권에 장애가 된다면 개명할 수 있도록 2005년부터 대법원이 길을 열어놨다.

개명은 왜 했나?
종교적 이유 때문?

하지만 이름을 세탁하는 방식으로 권력을 취한 사람이 있다. 바로 정씨의 할아버지인 최태민씨다. 그는 7번이나 개명했다.

일제 순사(최태민씨는 1990년 우먼센스와의 전화인터뷰서 자신의 부친이 독립운동가였다고 주장), 해방 후 경찰관, 기업가, 교육자, 종교인(승려, 목사, 불교 천도교 기독교를 합한 신생 영생교 교주) 등 경이롭게 직업을 전전하면서 그때마다 자신의 캐릭터를 새롭게 만들어냈다.

원래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알 수 없으며, 최태민 이전에는 '퇴운'이란 이름만이 알려져 있다. 복잡한 최태민씨의 개명사를 들여다보면 그의 삶이 꼬리를 자르며 내달려온 인생이었다는 것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min1330@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정유라 특혜 입학 의혹' 결국 교육부가 나섰다

교육부가 ‘정유라 특혜 의혹’ 조사 기간을 3주로 설정하고 지난 21일 공식 조사에 착수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르면 다음달 중순 조사 결과가 나올 전망이다. 정유라씨와 같은 시기에 이화여대 체육특기자 선발에 응시한 학생들, 학칙 개정과 이를 소급 적용하면서 혜택을 받은 학생들로 조사 범위를 넓힌 것으로도 확인됐다.

이화여대 관계자는 24일 “정부가 지난 21일 ‘사안조사 실시 통보’란 제목으로 공문을 보내왔다”며 “현재 교육부가 요구한 자료들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앞서 교육부는 국정감사 등에서 정씨 관련 의혹이 제기되자 이화여대로부터 관련 자료를 받아 검토해 왔다. 주로 이화여대 학칙과 정씨 관련 서류들이었다. 교육부의 조사 착수는 1차 자료 검토서 조사 필요성이 확인된 것으로 해석된다.

이화여대에 따르면 교육부는 정씨가 입학한 2015학년도 당시 수시 체육특기자 합격자 전원에 대한 입학 자료를 요구했다. 정씨에 대한 특혜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다른 학생들의 입학 과정도 살펴봐야 한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정씨 입학 당시 체육특기자 지원자는 116명이었다.

이대 수시 체육특기 합격
3주간 공식 조사에 착수

서류 심사에서 21명을 뽑았고, 서류 심사 점수 80%와 면접 20%를 합산해 최종 합격자 6명을 가렸다. 이화여대는 2015학년도부터 승마 특기생을 뽑기로 결정했는데, 유일하게 정씨만 최종 합격자에 이름을 올렸다. 서류 마감시한 이후에 받은 아시안게임 단체전 금메달이 입시에 반영됐다는 의혹도 제기된 상태다.

또 지난 6월 학칙 개정에 따라 영향을 받은 학생들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이화여대는 지난 6월 출석하지 않아도 보고서 등을 제출하면 교수 재량으로 학점을 받을 수 있도록 학칙을 개정했다. 개정된 학칙은 3월부터 소급 적용토록 했다. 덕분에 정씨는 지난해까지는 평점 0.11로 제적 위기에 몰렸다가 올해 1학기 성적이 2.27로 껑충 뛰었다.

교육부의 조사 기간은 3주다. 21일 공식 조사에 착수했으므로 다음달 11일(금요일) 마무리된다. 따라서 다음달 14일, 늦으면 수능(17일) 이후에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국정 역사 교과서가 발표되는 다음달 28일 발표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교육부 조사만으로는 조직적인 입시 부정이나 특혜를 밝혀내기 역부족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대학 측의 해명대로 ‘학사운영 부실’로 마무리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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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