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20여 개 지점을 가지고 있는 국내 최고의 여성전용바인 ‘레드모델바’를 모르는 여성은 아마 별로 없을 것이다. 현재 레드모델바는 기존의 어두운 밤 문화의 하나였던 ‘호스트바’를 건전하게 바꿔 국내에 정착시킨 유일한 업소로 평가받고 있다. 이곳에 근무하는 ‘꽃미남’들만 전국적으로 무려 2000명에 이르고, 여성들의 건전한 도우미로 정착하는데 성공했으며 매일 밤 수많은 여성 손님들에게 생활의 즐거움을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성공의 배경에는 한때 ‘전설의 호빠 선수’로 불리던 김동이 대표의 고군분투가 녹아있다. 그런 그가 자신의 삶과 유흥업소의 창업 이야기를 담은 자서전 <여자의 밤을 디자인하는 남자>를 펴낸다. <일요시사>는 김 대표의 책 발행에 앞서 책 내용을 단독 연재한다.
눈물이 핑 돌았다.내가 왜 이렇게 된 것일까.
빠찡고 입문,‘아~ 이렇게 하는 게 빠찡고구나!’
■ 에이스 정우와의 인연
사람들에 의하면 나는 거의 기절하듯 쓰려져 있었다고 한다. 눈을 뜨자 숙소에 누워 있었다. 간밤의 사건들이 토막 난 채 머리속에 떠올랐다. 지금도 지옥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뒤척이는 데에만 해도 신음소리가 날 정도로 아팠다.
겨우 정신을 차리니 형석이라는 또 다른 친구가 우유 한 잔을 가져다준다. 샤워실에 갔더니 온몸에 시커멓게 피멍이 들어있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도대체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것인가. 내가 왜 이렇게 된 것일까.
돌이켜 보면 모든 것이 내 욕심 때문이었다. ‘지나친 욕심이 화를 부른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깨달았다. 배우에 대한 욕심이 지금의 나를 이렇게 만든 것이었다. 그렇게 쉽게 될 일이라면 누구든 못할까. 돈 몇 천만원만 있으면 누구나 다 배우로 성공할 것이 아닌가. 따지고 보면 누구를 탓할 일도 아니었다.
20여 분 정도 뜨거운 물에 몸을 담갔더니 겨우 몸이 조금 풀리는 듯 했다. 시간은 오후 4시였다. 선수들은 대부분 이 시간에 일어나 밥을 준비한다. 마마와 부쪼 등 간부급들은 밥이 다 차려진 다음에 일어나 밥을 먹고 서서히 영업을 준비한다. 정우가 말했다.
“같이 시장 보러 안 갈래요?”
생글생글 웃는 게 친근감이 가는 얼굴이다. 몸은 아팠지만 나도 바깥 구경을 해보고 싶었다. 정우가 입던 츄리닝을 주워 입었다. 정우는 일본어를 아주 잘했다. 일본 시장에 가서 각종 부식거리를 아무렇지도 않은 듯 계산했다. 돌아오는 길에 정우가 물었다.
“몇 살이에요?”
“25살요.”
“그게 진짜 나이예요?”
“예, 그럼요.”
“나도 25살인데 그럼 우리 친구해요. 자!”
정우가 손을 내밀었다. 정우와 나는 그때부터 말을 놓았다. 이 낯설고 험한 땅에서 친구가 생겼다는 것이 신기했다. 정우는 늘 나를 도와줄 것만 같았다. 잘생긴 사람들은 인물값을 한다. 콤플렉스가 없으니 상대를 배려해 주고, 질투나 부러움이 없으니 마음에 꼬인 것도 없다. 물론 모든 잘생긴 사람들이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그런 경향이 있는 건 사실이었다.
정우는 ‘지마마’였다. 마마 바로 밑의 계급이다. 에이스이기도 하거니와 가게에도 어느 정도 영향력이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정우는 단둘이 있을 때는 그냥 말을 편하게 하자고 했다. 다만 사람들이 있을 때는 존댓말을 써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솔직하게 말해주는 정우가 더 좋았다.
“옷 사러 가야지.”
맞다. 나에겐 옷도 한 벌이 없었다. 첫 출근도 정우의 옷을 입고 출근했다.
“그런데 정우야, 어떻게 하냐, 그 옷 이제 더 못 입을 텐데.”
“괜찮아. 어차피 버리려고 했던 옷이야. 하하.”
사실 버릴 만한 옷은 아니었다. 그냥 정우가 나를 배려하기 위해서 해준 말이었다. 젊은 나이답지 않게 생각이 깊은 게 정우였다. 근사한 옷까지 한 벌을 산 뒤에 정우는 나를 이끌고 어딘가로 향했다.
■ 일본 빠찡고에 빠지다
“우리 저기 한번 가볼까?”
빠찡고였다. 그 안에서는 엄청난 굉음이 들렸다. 귓속말을 해도 잘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사람들은 오로지 화면만을 들여다보며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어떤 사람의 얼굴에는 행복이, 또 어떤 사람의 얼굴에는 절망이 씌여있었다.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빠찡고라는 곳에 들어갈 수 있었다.
정우가 5000엔을 내게 건넸다.
“이걸로 돈 따면 반땅 해야 한다.”
하지만 빠찡고라는 것도 난생 처음 해보는 것이라 하는 방법을 알 리가 없었다. 정우가 가르쳐 주는 대로 해보니 제법 구슬이 잘 들어갔다. 구슬이 많이 들어갈수록 돈을 딸 수 있는 가능성도 높아진다. 또르르, 또르르… 구슬은 들어갈 듯 안 들어갈 듯 하다가 들어가기도 했고, 또 실패를 하기도 했다. 점점 흥미가 붙기 시작했다.
‘아하~ 이렇게 하는 게 빠찡고구나!’
나는 순식간에 빠찡고에 빠져 들었다. 그 순간만큼은 내 마음이 너무도 편안했다. 한국에서의 고생도, 장대표도, 사채도, 일본에 팔려온 나의 처지도 모두 잊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때만큼은 행복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구슬을 다 잃자 정우가 또다시 5000엔을 주었다. 한 10분이 지났을까. 그 동안 흘끔 흘끔 나의 ‘경기 상황’을 보던 정우가 갑자기 두 손을 번쩍 들며 소리를 쳤다.
“야, 야, 터졌다. 터졌어!”
“어? 뭐가?”
나는 정우의 기계를 유심히 바라봤다. 하지만 게임의 규칙을 잘 모르니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 정우는 연신 ‘쓰리세븐’을 외쳤다. 도대체 뭐가 터졌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나 말고 너, 동이 너 말이야.”
내 기계에서 드디어 대박이 터진 것이다. 기계에서 구슬이 쏟아져 나왔다. 끝도 없이 나왔다. 다섯 박스, 여덟 박스, 열 박스… 무려 열다섯 박스가 나왔다.
“야, 이러다가 야쿠자가 쫓아오는 거 아니냐. 하하.”
나는 그때 처음으로 일본에서 농담을 해봤다. 우리나라 돈으로 계산해 보니 거의 100만원어치였다. 매일 빠찡고에서만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시간은 어느덧 8시가 다 됐다. 너무 늦지 않았을까. 나는 내심 불안했지만 정우는 태연했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사쪼가 불호령이다.
“야, 정우 너 또 빠찡고 갔냐?”
“헤헤, 오늘은 대박이에요 사쪼!”
“으이구 저 녀석 돈 벌어서 다 빠찡고에 갖다 주냐!”
정우는 넉살도 좋았다. 저녁 할 시간을 다 까먹었으니 정우가 ‘곰탕 회식’을 제안했다.
“내가 살게!”
선수들은 오랜만의 외식이었는지 다들 즐거워했다. 나도 조금씩 마음이 누그러들고 있는 듯 했다. 그래도 이곳도 사람 사는 곳 같았다. 하루 이틀 지나다 보니 정도 조금씩 들고 적응도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날 저녁에는 오랜만에 배불리 곰탕을 먹었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