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장수제품이 주를 이뤘던 식음료업계서 ‘허니버터칩’의 등장은 대단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유례가 없을 만큼 온 국민의 폭발적 관심에 품귀현상을 빚기도 했다. 하지만 빨리 끓었던 만큼 식는 속도도 빨랐다. 이후 여러 반짝상품들이 등장했지만 오래가지 못 했다. 예전 2∼3년은 너끈히 버텼(?)던 히트상품 유행주기가 길게는 1년, 짧게는 6개월로 단축되자 업체들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지난 2014년 해태제과는 ‘허니버터칩’을 출시했다. 이후 허니버터칩은 연일 품귀현상을 빚으며 제과업계에 구매 대란을 일으켰다. 출시 3개월 만에 매출 50억원을 돌파하며 ‘없어서 못 팔' 상황이 도래했다. 하지만 해태제과의 행복한 고민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수요를 맞추기 위해 제2공장까지 증설했지만 현재 일부 온라인쇼핑몰서 봉지당 최저 690원에 판매되는 등 2년이 채 되지 않아 상황이 역전됐기 때문. 허니버터칩은 지난 2·4분기 매출이 전 분기 대비 17.1% 감소하는 등 지난해 4·4분기부터 세 분기 연속 하향곡선을 그리며 사람들 기억에서 잊혀갔다.
벌써 잊었나
올 상반기엔 ‘바나나 열풍’이 식품업계를 휘몰아쳤다. 바나나맛 파이서 출발해 바나나맛 디저트, 아이스크림, 막걸리까지 속속 등장하면서 유행을 이끌었다. 하지만 불과 3개월여 만에 그 인기가 사그라들고 있는 추세여서 결국 ‘반짝 인기’에 그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이마트에 따르면 오리온 ‘초코파이 바나나맛’, 롯데제과 ‘몽쉘 바나나맛’ 등 바나나맛 파이 매출은 지난 4월 출시 첫 달인 3월 대비 140% 증가했지만 지난 5월에는 4월 대비 9.5% 감소했고 6월에는 5월 대비 51.1%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출시 첫 달인 3월 매출을 지수 100으로 잡았을 때 4월은 240, 5월은 217, 6월은 106으로 바나나맛 파이의 인기는 4월에 치솟았다가 이후 하락세를 보였다.
꼬꼬, 허니, 믹스…품귀현상 옛말
바나나 열풍도 6개월 만에 하락세
편의점서도 바나나맛 파이 매출 신장률은 지난 4월에 가장 높았다. 편의점업계에 따르면 바나맛 파이 매출 신장률은 지난 4월 전월 대비 385.9%로 치솟았다가 지난 5월 -5.4%, 지난 6월 -38.1%로 두 달 연속 감소세를 나타냈다. 바나나 열풍은 관련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었다는 점에선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지만 롱런할 뒷심은 다소 부족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지난해 여름에는 과일맛 소주 트렌드가 주류시장을 강타했다. 주류업계는 과일을 활용한 저도 소주를 잇따라 등장시켰지만 이들의 인기도 불과 반년에 불과했다. 한 대형마트에 따르면 전체 소주 매출에서 과일맛 소주 비중은 지난해 7월 12.9%에서 같은 해 12월 4.8%로 급감했다.
지난해 4월 농심 짜장라면 ‘짜왕’을 시작으로 형성된 굵은 면발 라면도 오뚜기와 팔도, 삼양라면 등이 합세하며 시선을 끄는 등 장기 호황이 예상됐지만 파장은 6개월여만에 그쳤다.
빠르게 사라진 제품을 논할 때 팔도 꼬꼬면을 빼놓을 수 없다. 꼬꼬면은 지난 2011년 출시 이후 ‘하얀국물라면’ 전성시대를 열었다. 당시 대단한 인기를 구가하며 3개월 만에 20%가 넘는 점유율을 차지했다. 또 전체 라면 시장 매출 2위를 기록하면서 라면업계의 지형도를 바꿔놓기도 했다.
일부 대형마트에선 ‘절대강자’ 신라면의 매출을 뛰어넘는 기염을 토했다. 오래갈 줄 알았던 꼬꼬면의 인기는 고작 1년을 가지 못했다. 출시 8개월이 지나기도 전인 2013년 초, 점유율은 1%대로 곤두박질쳤다. 소비자들은 익숙한 ‘빨간국물라면’으로 돌아갔다. 팔도는 빨간국물 앵그리 꼬꼬면을 출시했지만 반등에는 실패했다.
기존 상품들에 반짝 인기가 사그라들자 ‘추억의 옛날제품’을 찾는 소비자들이 늘어나는 현상도 벌어졌다. 식품업계에 ‘역주행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 역주행이란 최근 유행하는 신조어로 연예계서 처음엔 인기를 얻지 못했지만 차츰 사람들에게 관심을 얻게 되면서 다시 인기를 얻는 현상에서 파생된 말이다.
최근 농심은 부대찌개 라면으로 인기를 끌다 지난 2011년 판매가 중단됐던 ‘보글보글 찌개면’을 프리미엄화한 ‘보글보글 부대찌개면’을 출시했다. 보글보글 부대찌개면은 재출시된 지 4주 만에 50억원 매출을 돌파하는 등 인기 라면 반열에 올랐다.
또한 태극무늬 디자인으로 2000년대 토종 콜라 시장을 풍미했던 815콜라 역시 다시 출시됐다. 1998년 외국 콜라 브랜드에 맞서 출시됐던 토종 브랜드인 815콜라는 콜라 시장서 약 13.7%의 시장 점유율을 기록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지만 IMF의 여파로 모기업이 파산하면서 시장에서 밀려났다. 하지만 지난해 웅진식품이 가야 F&B를 인수·합병하면서 815브랜드는 다시 빛을 보게 됐다.
“응답하라 추억의 맛”
단종된 상품 재출시도
이처럼 단종됐던 상품이 다시 출시되면서 소비자들에게 추억의 맛을 자극하는 사례가 속속 잇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단종된 상품을 다시 출시하는 것은 기업 입장에서 쉽지 않은 결정이다.
경쟁력을 잃고 시장에서 철수해야만 했던 제품이기 때문에 업그레이드된 부분이 없거나 시장 변화가 있지 않으면 신상품 출시보다 훨씬 조심스럽다는 이야기다. 한 업계 관계자는 “쏟아져 나오는 새 제품에 흥미를 잃은 소비자들이 추억을 자극하는 옛 제품에 눈길을 돌린 것 같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식품업계 히트상품의 인기 주기가 갈수록 짧아지는 이유는 ‘먹방’과 ‘쿡방’ 등의 영향으로 소비자의 식품 선호도가 다양해진 데다 업체 간 경쟁이 치열해지며 간식 종류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특히 SNS를 통해 제품 정보를 접하는 소비자가 많아지면서 신제품이 단기간에 인기 상품으로 등극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지만 그만큼 다른 제품으로 교체되기도 쉬워졌다는 분석이다. 무분별한 모방 제품이 양산되는 것도 제품의 인기를 빠르게 꺾는 요인으로 꼽았다.
이렇게 되자 식품업체들은 짧아지는 유행 주기에 맞춰 차기 제품을 서둘러 출시하기 위해 사활을 걸고 있다. 앞선 제품들과 같은 반짝 인기에 그치지 않고 제품의 수명을 늘리기 위한 연구 작업도 한창이다.
장수 어렵다
업계 관계자는 “요즘은 SNS 등의 영향으로 신상품이 단숨에 판매 1위를 기록하기도 하지만 또 그만큼 인기가 쉽게 사그라들어 오히려 장수 상품이 탄생하기 어려운 환경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트렌드가 빠르게 바뀌며 소비자의 피로도가 높아져 품귀현상을 빚었던 제품의 인기가 더욱 쉽게 꺾이는 상황”이라며 “장수제품을 만들려는 업체의 연구개발 노력이 좀 더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