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억 박스 발견된 개인 물품보관소 실태 추적

신분·물건 확인 허술한 비밀금고 "수상하다 수상해"

지난 9일 여의도 백화점에 위치한 개인물품 보관업체 C사에서 현금 10억원이 든 두 개의 상자가 발견됐다. 경찰 조사 결과 10억원을 맡긴 의뢰인은 불법 스포츠도박 사이트를 운영해온 김모(32)씨인 것으로 밝혀졌지만 김씨는 박스 발견 이틀 전 이미 인도네시아로 출국한 후였다. 사라진 10억원의 주인과 함께 발견된 현금의 출처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되면서 박스를 보관해준 개인물품 보관업체에 대한 호기심 또한 커지고 있다. 고객정보에 대한 ‘묻지마 서비스’로 물품을 보관해준 수상한 개인물품 보관업체에 대해 취재했다.

고객 비밀 유지가 생명, 은행보다 절차 간단해
서류, 가구, 가방 등 뭐든지 맡아주는 만능창고

폭발물로 오인해 신고했던 두 개의 박스에서 현금 10억원이 발견되면서 돈의 출처에 대한 궁금증이 하늘을 찔렀다.

물품보관 업체가 궁금타

서울 영등포경찰서의 조사 결과 현금 상자를 물류보관업체에 맡긴 의뢰인은 불법 스포츠도박 사이트를 운영해온 김모(32)씨인 것으로 밝혀졌고, 김씨는 이미 같은 전과가 있는 것으로 드러나 김씨가 맡긴 10억원의 출처에 대한 궁금증은 더욱 커지고 있다.

하지만 김씨는 박스가 발견되기 이틀 전 이미 한국을 떠나 인도네시아로 출국했고, 발견된 돈이 범죄에 이용됐다는 정황을 파악하기 이전에는 한국으로 강제소환이 불가능하다. 김씨의 비자가 만료돼 인도네시아에서 불법체류자 신세가 될 때까지 마냥 기다려야 하는 것.

오리무중이었던 10억원의 주인이 김씨인 것으로 좁혀지면서 새삼 개인물품 보관업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씨가 10억원을 맡길 때 기록한 전화번호 3개가 모두 대포폰이었고, 주민등록번호 역시 없는 번호인 것으로 드러나 물품과 고객의 신분에 대한 확인절차가 충분치 못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 이유에서다.

특히 김씨가 이용한 C사는 의뢰를 받은 물품의 보관·유지는 물론 최고급 수준의 지문인식 장치인 디지털 도어록 등 첨단장비를 이용해 보안·경비를 철저히 했다. 하지만 정작 의뢰인의 신원확인 절차가 사실상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C사처럼 개인물품을 전문으로 보관해주는 업체는 미국이나 일본, 홍콩 등에서는 대중화돼 있는 반면 국내에는 2007년 무렵 선을 보이기 시작했다. 현재 국내에는 대기업이 운영하는 업체를 비롯해 전국적으로 영세업체 수십여 개가 영업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개인물품 보관업체가 이번 사건과 비슷한 방법으로 운영될 경우, 범죄에 악용될 소지가 다분하다는 데 있다. 사생활 보장을 이유로 고객의 신원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는 것은 물론 보관물품의 내용물도 묻지 않은 게 관행이기 때문이다.

실제 서울에서 영업 중인 한 물품보관소에 전화를 걸어 이용 문의를 해보니 상황은 비슷했다. A업소 관계자는 “컨테이너 보관료와 실내 창고 보관료에 차이가 있다”면서 “부피가 크지 않다면 보증금 없이 저렴하게 이용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신원확인 방법에 대해 묻자, “신분증을 가지고 와서 확인시켜 주면 되고, 부득이할 경우 현장에서 통화 가능한 핸드폰 번호와 주민번호를 적어주면 된다”고 덧붙였다.

어떤 물건을 맡기는지는 묻지도 않았다. 다만 상자가 몇 개나 되는지만 확인했고, 규정상 현금이나 금품 등은 보관할 수 없게 되어 있지만 밀봉된 상자를 열어 일일이 확인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음을 시사했다.
그런가 하면 김씨가 상자를 맡긴 C사 역시 첨단장비에 대한 홍보에만 신경 쓰고 정작 중요한 고객 신원과 물품에 대해서는 충분한 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물품보관업체가 이같이 운영되는 것은 아니다. ‘행복다락방’이라는 개인물류창고를 운영하는 서울도시철도공사는 고객이 써준 인적사항을 그대로 접수한 C사와는 달리 신분증 확인 절차를 까다롭게 거친다. 위탁 보관이 가능한 물품도 제한되며, 돈이나 귀중품은 받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체마다 중구난방으로 운영되는 이유는 물품보관창고에 대한 규정이 따로 정해지지 않은 데 있다. 창고업에 대한 규정은 상법에 명시돼 있지만 보관 대상 물품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규정이 없고, 물건을 맡기는 사람의 권리와 창고업자의 안전한 보관 의무를 나열하고 있을 뿐이다.

정확한 규정 없어 ‘중구난방’

또 현재로서는 물건을 맡길 때 신원확인을 해야 한다는 규정도 없는 상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누가 어떤 물건을 맡기든 이를 확인하거나 제한할 방법이 사실상 없다. 이에 따라 개인물품 보관업체가 기업의 비자금 은닉 공간으로 활용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또 개인물품 보관업체가 대대적으로 드러남으로 인해 각종 범죄의 증거물들을 이곳에 숨겨둘 수도 있다. 업체가 철저히 비밀을 지켜주겠다고 나서는 마당에 업체를 이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 같은 우려에 업계는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A사 관계자는 “지금까지 업체를 운영하면서 문제가 됐던 적은 없었다. 이번 사건을 확대 해석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편, 김씨가 상자를 맡긴 C사는 국내 대기업 ○○그룹 창업주 중 막내인 K모 명예회장의 자녀와 연결되어 있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C사의 모회사인 ○○물류의 최대주주가 K 명예회장의 장녀이기 때문이다. 결국 김씨가 귀국해 10억원에 관한 사실을 밝히기 전까지 이 돈에 대한 온갖 추측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