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신승훈 기자 = 국회가 ‘파행’을 거듭하면서 정세균 국회의장에 대한 존재감이 부쩍 커졌다. “로봇은 되지 않겠다”던 그가 대통령을 꿈꾸고 있다는 이야기가 여권을 중심으로 들려온다. 최근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도 차차기 대선의 사전 포석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일요시사>는 최근 불거진 정세균 ‘대권병’의 실체를 들여다봤다.
새누리당은 지난달 1일, 정세균 국회의장의 정기국회 개회사 논란에 대해 “야권 전체가 대권병이라는 전염병에 오염됐다”며 긴급 최고위를 소집했다. 이정현 대표는 이날 국회서 열린 정기국회 개회식 직후 의원총회를 열고 “정 의장이 이런 일을 한 근본적 목적은 대선이다. 내년 대선에 본인이 나가든, 자기가 과거에 소속된 정당이 집권을 하게 할 순전히 대권병에 걸린 것”이라며 “아주 중증의 대권병이 아니라면 헌정 사상 초유의 이런 국회의장의 도발은 있을 수 없다”고 성토했다.
중증의 병?
이 대표는 이어 “상임위원장은 위원장대로, 의장은 의장대로 당직자들도 모두 다 대권병이라는 전염병에 오염됐다”며 “또 박근혜 정부를 무력화시켜 식물 정부로 만들겠다는 의도”라고 거듭 비난했다.
친박(친 박근혜) 중진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달 2일 정세균 국회의장의 개회사 논란과 관련해 “정치하는 분이 국회의장하면 전부 다 대권병에 걸린다는 얘기가 있다”고 비꼬았다. 홍 의원은 이날 YTN라디오 <신율의 출발새아침>에 출연해 전날 이정현 대표가 ‘정 의장이 대권 중증병에 걸렸다’고 비난한 데 대해 동조한 셈이다.
그는 “지금 더불어민주당에 주자가 별로 없고 뭔가 주자를 다양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들리고 있다”며 “정 의장도 대권주자의 한 사람이었던 사람으로서 의장이 된 이 마당에 뭘 주저할까,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고 말했다.
여권서 정 의장의 우병우 민정수석, 사드 배치에 대한 발언에 심기가 불편했음을 알수 있다. 여권서 ‘대권병’이란 단어까지 쓰면서 국회의장 임기가 1년7개월여 남은 정 의장을 압박한 이유는 무엇일까.
정 의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 특보로 정계에 입문해 15∼18대 까지 전북서 내리 4선을 지냈다. 19대 총선 부터는 서울 종로구로 지역구를 옮기는 승부수를 던졌다. 19대에선 홍사덕 후보를 근소한 차이로 이기면서 5선의 고지에 올랐고, 지난 4·13총선에선 여권 잠룡 오세훈 전 서울시장을 13%차로 따돌리며 6선 고지에 올랐다.
정 의장은 지난 2012년, 18대 대선에 도전한 바 있다. 비록 당내 경선서 문재인 전 대표에 밀려 주춤했지만, 이후 6선을 달성한 그를 두고 정치권에선 차기 혹은 차차기를 노릴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다만 정가에선 국회의장직에 오른 정 의장이 임기를 마치고 조용한 퇴장을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게다가 지난 5월 정 의장은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국회이장이 되면 대권은 자동 포기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에 “당연한 일”이라고 답한 바 있다.
하지만 지난달 초 여권서 ‘대권병’ 발언이 나온 이후 정 의장은 보다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면서 여권과 청와대를 곤경에 빠트렸다. 김재수장관 해임건의안 투표가 늦춰지자 차수변경으로 대정부 질문을 종료시켰다.
결국 김 장관 해임건의안이 가결되면서 청와대가 역대 정권 중 최초로 국회 해임건의안에 거부권을 사용했고, 여당 당 대표가 단식투쟁을 벌이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지난달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는 해임건의안 가결 이후 “아무리 정권이 욕심나고 대권병에 걸린 사람이라도 금도가 있는 법”이라고 말해 정 의장의 행보를 대권병으로 치부했다.
정 의장은 지난달 28일 이 대표 단식과 관련해 “지금까지 의장 직무수행에 헌법, 국회법을 어긴 적이 없다”며 “중립적 입장이지만 적절한 의사표시는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의장의 직위를 감안해 신중해야 한다는 것도 알지만 국회의장은 로봇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부쩍 커진 존재감…차차기 노리나
커지는 목소리 대선도전 사전포석?
새누리당이 사퇴 압박을 펼쳤음에도 정 의장은 “정치적 중립을 지켰을 뿐”이라며 버텼다. 이 대표는 단식 초반 강경한 입장을 보였지만, 국감 복귀 전제하 단식을 중단한다고 밝혀 정 의장 손보기는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정치권에선 정기국회서 발생한 일련의 사태를 두고 정 의장의 존재감이 부각됐다고 평가했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많은 정치 평론가가 ‘정세균 의장의 목표는 다르다. 의장 이후로 정치를 계속하는 것은 물론 개헌을 통해 분권형이든 내각제든 대통령을 한번 하고 싶은 욕망이 속에 꿈틀거리는 것 아니냐’는 말을 많이 한다”며 “정세균, 별로 존재감 없는 이름이지만 이번 일로 전국구 내셔널 피겨(전국적 인물)가 됐다”고 말했다.
반면 새누리당이 ‘정세균 중립법’을 추진하고 있어 운신의 폭이 줄어들었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우선 새누리당이 오해할 만한 발언들로 빌미를 줬다는 것이다.
지난달 24일, 김 장관 해임건의안이 투표가 진행되던 새벽에 정 의장이 “세월호(특조위 연장) 아니면 그 어버이연합(청문회) 둘 중에 하나 내놓으라고 그러는데 안 내놔. 맨입으로…. 그냥은 안 되는 거지…"라고 한 발언이 언론에 공개됐다. 이에 새누리당은 ‘맨입 정세균’이라 부르며 힐난했고, 이후 맹공을 퍼부었다.
연말 예산 정에서 정 의장이 국회 초기처럼 힘을 발휘하기는 힘들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더민주와 국민의당은 각각 법인세와 소득세를 인상하는 관련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발의한 상태다. 하지만 국회 안팎에선 이번 국감 파동으로 정 의장이 또다시 여권의 반대를 무릅쓰고 야권의 손을 들어주기가 쉽지 않을 거라는 분석이 나온다.
박명호 동국대 정치외교학 교수는 “정 의장으로서는 또 다시 국회 파행의 축으로 부각되는 것에 많은 정치적 고민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당 관계자도 “야권의 승리라고는 하지만 김재수 장관도 그대로 임명이 됐고, 박근혜 대통령도 해임건의안 거부로 인한 화살을 피했다”며 “실제로 얻은 건 없는데 예산안에 영향을 받는다면 아무런 실익이 없는 밑지는 장사가 된다”고 말했다.
더민주 관계자는 “이정현 대표의 논개 작전이 성공한 측면도 있다”며 “정세균 의장을 껴안고 진흙탕으로 몸을 던졌다”고 해석했다.
행보 두고 해석
최근 정 의장의 행보를 두고 여권의 한 관계자는 “정 의장의 친야(親野) 행보는 다분히 국회의장 이후의 큰 꿈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라며 “의장직을 통한 자기 정치를 하면서 야권 지지층에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한 뒤 내년 대선이 아닌 그 다음 대권을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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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속 기사> 국회의장 출신 대통령은?
이승만 전 대통령은 1948년 5월31일 구성된 제헌국회서 제1대 제헌국회 의장으로 선출됐다. 당시 국회의장이 된 이 전 대통령은 윤보선 전 대통령을 국회의장 비서로 채용했다.
당시 한민당에 의해 내각 책임제가 언급되자, 이 전 대통령은 대통령중심제를 헌법기초위원회에 강력히 주장했다. 이후 헌법 제정과 함께 대통령 선거가 준비됐다.
이 전 대통령은 1948년 7월20일 열린 대통령 선거서 김구, 안재홍, 서재필을 누르고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