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안재필 기자 = 교회와 같은 종교기관에서 성추문이 공공연하게 드러나는 것은 인터넷의 발달로 더 이상 비밀스러운 일이 아니다. 종교인들의 성적탈선 행위는 지금도 매년 일어나고 있다. 국민은 물론 교인들에게도 종교의 타락이라며 손가락질을 받고 있지만, 아직까지 성추문에 관한 근본적인 대책은 세워지지 않았다. 새로운 피해자를 막을 제동장치가 없는 셈이다.
지난 19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 더불어 민주당 박남춘 의원은 지난 2011년부터 2015년 사이 전문직군에 의한 성폭력 범죄 검거자 수가 모두 1258명이라는 경찰청 자료를 공개했다. 이 통계에는 종교인, 예술인 등 6개 전문직군이 조사됐다. 그중 종교인이 450명으로 성폭력 범죄 비율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원인? 다양한 견해
박 의원은 “해당 전문직군이 대부분 자유직이라 윤리교육이나 징계를 강제할 수 없다”며 “전문직군의 성범죄는 은폐의 여지도 많아 사법당국의 엄격한 법적용이 필요하다. 조직 스스로 자정능력을 강화하는 등의 대책을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즉 대책 마련이 용이하지 않아 자체적으로 관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종교계에서 일어나는 성추문은 한두 건이 아니다. 덕성과 믿음을 실천하며 교인들의 신앙을 이끌어야 할 이들이 종교적 타락에 앞장서고 있다. 지난 1990년대엔 한 목사는 “몸을 합쳐야 천국에 간다”며 여신도 5명을 꾀어 간음한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받았다. 목사의 상습적 성폭행을 견디다 못한 딸이 아버지를 신고한 경험담을 책으로 출간해 이슈가 된 사건도 있다.
올해 들어선 유명 종교인들의 성추문이 잇달아 발생했다. 지난달 8일 청소년 사역 단체 라이즈업무브먼트 대표 이동현 목사가 여대생과 미성년자인 여고생 등 회원들을 상대로 성관계를 지속해온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안겼다.
지난 2004년엔 여고생이던 회원을 모텔에 데리고 가 무리한 성관계를 요구하고 이후에도 부적절한 관계를 지속해 왔다. 사건이 불거지자 그는 동생인 이동호 사무총장에게 사역을 맡기고 사퇴했다.
이어 이주노동자의 대부로 불리는 김해성 목사도 추문에 올랐다. 그는 지난 13일 봉사자와 부적절한 관계가 있었고 교회 성도에게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행동을 했다며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모든 직책을 내려놓겠다고 선언했다.
그동안 종교인의 성범죄는 박 의원의 말처럼 기관 내에서 숨기거나 비밀리에 다루어지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성적 문제를 금기시하는 전통적 가치관이 내재된 국내서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면 교인 수의 감소로 이어질 수 있기에 공개적으로 다루지 못했다.
지금에 와선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 피해 사실을 공개하고 있지만, 불과 수년 전까지만 해도 범죄 사실을 밝히지 못해 지속적인 피해를 당한 사람들이 많았다.
기독교여성상담소에 따르면 교회 내 성폭력 유형 대부분은 목회자가 여신도와 청소년 등을 상대로 한 성범죄다. 피해횟수도 일회성 피해보다 한 목회자에 의해 장기적인 피해를 입는 경우가 많았다. 3년에서 길게는 10년간 피해를 본 사람도 있다. 이런 피해는 개인상담이나 안수 등 종교 행위를 빙자해 일어난다. 피해자 대부분은 자신이 성폭력 피해를 당한 것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교인들의 버팀목이자 정신적 지주가 되어야 할 종교인들의 성범죄 원인으로는 다양한 견해가 있다. 가장 일반화된 견해는 성 개방 풍조다. 성문화의 개방이 종교인들을 성적 자극을 주는 환경에 노출시켰다는 주장이다.
즉 인터넷 포르노그래피에 접근이 용이하고 성과 관련된 사업이 확산, 종교인들이 과거보다 더 많은 성적 유혹에 노출돼 성범죄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는 주장이다.
박 전 소장의 주장에 따르면 종교인 성범죄의 원인 중 하나로 통제력의 환상이 꼽힌다. 통제력의 환상은 종교인들이 흔히 범하는 우발적 실수를 말한다. 여신도와의 관계서 자신은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기에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박 전 소장은 이를 알콜중독자들이 자신은 술을 통제하면서 마실 수 있다고 생각하는 환상을 갖고 있는 것과 같다고 봤다. 그리고 성직자는 심리적으로 감정적 결핍과 의존성을 가지고 있기에 화간으로 이어지는 성적 비행을 하는 종교인들은 피해자 여성과의 관계성에서 동반의존성을 가지고 있다고 해석했다.
영남신학대학교 김승호 기독교윤리학 교수는 그의 논문 <목회자 성윤리 교육의 방향성(2011)>에서 종교인 성범죄의 원인을 성윤리과 관련된 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신학생들이 예비 목회자로서 신학대학원 과정을 이수하는 기간 동안 성윤리와 관련된 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신학생들은 성에 대한 문제를 개인적이고 사적인 차원의 문제로만 인식하고 올바른 성 윤리관 확립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이다. 김 교수는 이런 세태가 종교인들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성적 유혹을 제어할 능력과 방법을 기르지 못하게 해 범죄가 발생할 수 있다고 봤다.
종교인들의 성범죄는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목회자의 경우 성범죄와 관련된 윤리 강령과 징계 규정이 아직 마련되어 있지 않아 제동을 걸지 못하고 있다. 일각에선 “양성평등기본법 제정 등 사회가 변하는 것과 달리 교계는 여전히 가부장제 아래 있다”는 일침도 나왔다.
이진오 더함공동체 목사는 종교 내 성범죄의 이유를 성평등 교육과 징계 규정의 부재, 동료 목회자들의 봐주기 등을 문제 원인으로 지적하며 ‘총체적 부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만큼 교인들이 목회자의 성범죄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다.
변하려는 노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 2015년 대한예수교회장로회 합동 총회는 ‘세습’ ‘성범죄’ ‘표절’문제가 담긴 목회자 윤리지침안을 마련했다. 지난 19일 한국기독교회관에선 ‘교회 성폭력 근절을 위한 정책 제안 포럼’도 열렸다.
온정주의가 문제
이날 포럼에선 현재 종교인 성범죄에 대해 “교회 성폭력은 표면적 증상이며 교회 내 여성 차별 의식과 목회자 중심의 권력 구조등이 뿌리 깊은 원인일 것”이라고 진단하며 해결을 위한 논의를 진행했다. 이에 목회자 윤리지침안 등은 선언적 수준이라 한계가 있고, 성범죄 재발 이유는 성범죄를 저지른 목회자들에 대한 적절한 처벌이 없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교회 내 성범죄 근절을 위해선 ‘면직’ ‘출교’를 원칙으로 온정주의를 근절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anjapil@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처조카 수년간 성폭행한 목사
지난 13일 수원지법 안산지원 형사1부(부장판사 김병철)는 성폭력범죄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13세 미만 미성년자 강간) 위반 등의 혐의로 목사 A(57)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법원에 따르면 A씨는 지난 2007년부터 2015년까지 9년간 처조카 B양을 성추행 및 폭행했다. 그의 본격적인 범행은 2010년 B양의 집이 경제적으로 어려워져 B양을 자신의 집에서 양육하면서부터다. 심지어 자신의 부인과 함께 한 잠자리에서 B양과 성관계를 가지기도 했다.
재판부는 “높은 도덕성을 지녀야 할 종교인의 신분을 가진 피고인이 피해자를 보호해야 할 책임을 도외시하고 왜곡된 성적 욕망을 해소하기 위해 간음하고 추행하는 등 죄질이 불량하고 반인륜적”이라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