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통합 대한체육회장 선거 일갈한 유준상 전 대한롤러경기연맹 회장

“2년 정당원 제한 규정은 위헌!”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초대 통합대한체육회장을 두고 벌어지고 있는 난맥상에 체육계 거물이 고심 끝에 입을 열었다. 유준상 전 대한롤러경기연맹 회장은 국회 88서울올림픽 특별지원 위원, 대한레슬링연맹 이사 및 국가대표 전지훈련단 단장 등을 지낸 체육계 산 증인이자 차기 통합체육회장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이다. 그는 당초 인터뷰 요청을 여러 차례 고사했지만, 통합체육회장 선거를 약 한 달여 앞둔 지난 5일, 현 상황이 너무도 우려스럽다며 인터뷰에 응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왔다.

그야말로 진흙탕 싸움이 펼쳐지고 있다. 통합대한체육회장(이하 통합체육회장) 선거를 앞두고 통합준비위원회와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가 넣은 ‘2년 전 정당원 자격을 문제 삼은 회장선거 입후보 자격 규정’이 발단이 됐다. 소식이 알려지자 체육계는 물론 사회 각계에서도 해당 규정 철회를 요구하고 나섰다.

도대체 왜?

선거규정 11조2항에는 ‘후보자 등록 신청 개시일로부터 과거 2년 동안 정당의 당원이었거나 공직선거법에 따라 실시되는 선거에 후보자로 등록한 경력이 있는 사람’의 피선거권을 제한하고 있다. 즉 ▲최근 2년 동안 정당의 당원이었던 자 ▲공직선거에 후보자로 등록된 경력이 있는 자는 통합체육회장 선거에 출마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유준상 전 대한롤러경기연맹 회장은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서 해당 규정이 위헌적 요소를 안고 있다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는 “2년 동안 정당의 당원을 선거관리규정으로 제한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그것은 국민 직업선택의 자유, 평등권 등 헌법에 명시된 기본권을 박탈하는 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그는 “대한체육회 정관엔 정당의 당원을 제한하는 내용이 없다”며 “다수의 법조인들이 현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 전 회장의 말대로 대한체육회 정관을 살펴본 결과 당원을 제한한다는 내용은 일절 찾아볼 수 없었다. 정관은 선거관리규정보다 상위법으로, 통상 상위법의 상세한 내용을 하위법서 정해야 함에도 하위법이 상위법에 없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문체부 등은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선거관리위원회의 자문을 받아 2년 당원 제한 조항을 규정에 넣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유 전 회장은 이 또한 말이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는 “현역 국회의원이라든지 정당의 지도급 인사들은 출마를 안 하는 게 맞지만, 일반 평당원의 신분을 가진 사람들까지 제한하는 것은 맞지 않다”며 “17개 시도체육회 회장들과 경기(競技)단체장들도 당적이 있는 사람들이 하고 있는데 왜 그(통합체육회장) 자리만 제한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만약 정치적 중립이 우려스럽다면, 국회의장처럼 탈당하고 무 당적으로 출마하게 하면 되지 않겠나. 탈당증명서를 내게 하면 된다”고도 했다. 결국 형평성을 고려했을 때도 출마를 제한하는 것은 맞지 않다는 게 유 전 회장의 입장이다.

유 전 회장 혼자만의 주장이 아니다. 박상구 전 강원도생활체육회 사무처장과 1000여명의 체육계 인사들은 2년 당원 제한 규정의 문제점을 지적한 진정서를 수차례 청와대와 국회, 문체부, 대한체육회에 제출하고 시정을 촉구하고 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진정서 내용을 보면 박 전 처장 외 1009명은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이하 교문위) 소속 국회의원이나 문체부 소속 국장급 이상 공무원들이 임기종료 또는 퇴직 후 2년 내에 입후보한다면 정치적 중립성에 의심을 받을 수 있다”면서 “현재 대한체육회장 선거관리 규정에서는 문체부 고위직이 후보자로 나오는 것은 전혀 제한하지 않고 있는 반면, 아무런 영향력도 없는 정당인만 자격을 제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논란되는 선거 규정…체육계 반발 거세
정치권 등 각계도 “너무 과하다” 일침


교문위 소속 위원들 또한 2년 당원 제한 규정은 문제가 있다는 입장이다. 새누리당 이은재 의원은 국회 교문위 상임위 회의서 의사진행 발언을 통해 “통합체육회장뿐만 아니라 그 밑의 종목별 위원장을 뽑는 것, 예를 들면 당원이면 안된다고 하는 그런 원칙을 지금 만들고 있다”며 “이는 불공정한 룰이므로 원칙을 만들어서 새롭게 정비하자”고 제안했다.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도 같은 회의서 “통합체육회장 출마에 2년 당원을 제한했다. 너무 과하다”고 지적했다.

통합체육회장 선출에 있어서 문제가 되고 있는 부분은 이뿐만이 아니다. 정치인 출신을 무조건적으로 제한하려는 움직임 또한 문제가 있다고 유 전 회장은 지적했다.

그는 “이철승, 민관식, 김운용, 이연택, 김정길 등 역대 체육회장 중 당적을 가졌던 정치인들이 있었지만, 모두 체육회를 잘 이끌어왔다”며 “왜 초대 통합체육회장에 대해서만 유독 제한을 두는지 모르겠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박 전 처장 또한 <일요시사>와의 전화통화서 “역대 정치인 출신 체육회장 중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못해 문제가 됐던 적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전했다.

오는 10월5일 열리는 통합체육회장 선거는 각 체육회에서 추천한 1만5000명 중 1500명의 선거인단을 무작위로 뽑은 후 이들이 회장을 선출하는 시스템이다. 1만5000명은 종목별 체육회와 시도체육회, 시군구체육회가 추천권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몇몇 종목의 체육회가 추천권을 가지지 못하는 사례가 발생해 논란이 되고 있다. <일요시사>가 대한체육회에 알아본 결과 전체 90여개 중 62개 종목만 추천권을 가진 것으로 파악됐다(지난 6일 기준). 선거가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30여개의 종목이 추천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상황인 것이다.

이에 대해 유 전 회장은 “선거관리 규정에 (대한체육)회장 임기만료일 전 55일까지 선거인 후보자를 추천하도록 함에 따라 지난 8월10일까지 단체장 선거를 하지 않은 곳은 추천권도 없게 만들어놨다”며 “심지어 (제외된 종목의) 단체장은 추천권은 물론 투표권도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올림픽 종목과 같이 인기 있는 종목은 단체장을 찾기 쉽지만, 비올림픽 종목은 단체장을 찾기 힘든 게 현실”이라며 “거기다 연임제한 규정까지 두고 있어 아무도 비인기 종목의 단체장을 하지 않으려 한다. 이런 전반적인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8월10일까지 단체장 선거를 하지 않은 곳에 추천권을 박탈한 행위는 현실을 무시한 행정”이라고 쏘아붙였다.

국민체육진흥법이 미완성인 상태로 선거가 강행되고 있다는 비난도 나오고 있다. 해당 법안을 보면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회의 통합에 대한 내용만 나와 있고, 시도 등 지역체육회나 종목별 통합에 대해서는 내용이 없는 상태다.

유 전 회장은 “전문체육과 생활체육을 통합한 것은 굉장히 시의 적절하게 잘한 일”이라면서도 “그러나 하부조직을 통합하는 과정서 과연 법적으로 제대로 절차를 밟아서 불만이 없었는가 하면 그건 아니다"라고 잘라말했다.

그는 "그런데도 선거를 강행하는 것은 ‘통합’이라는 본래 취지를 훼손할 뿐만 아니라 향후 갈등의 단초를 제공하는 꼴이 된다"며 "체육회 내에서부터 갈등이 초래되면 국민 화합이라든지 국민의 삶을 질을 높이고자 하는 통합체육회 본질을 수행하지 못하게 될 우려가 있다”고 걱정했다.

때문에 체육계는 물론 정치권에서도 선거 일정을 연기해야 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당초 취지인 ‘통합’의 의미를 고려한다면 시간이 늦더라도 최대한 많은 사람이 선거에 참여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정을 조정해야 한다는 것.

유 전 회장은 “말도 안 되는 2년 당원 제한 규정을 풀어주고 선거 일정도 연기해서 최대한 많은 인재들이 선거에 참여해 선의의 경쟁을 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며 “특히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과 2020년 일본올림픽을 앞두고 있는 만큼 혁신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이 뽑힐 수 있도록 축제의 장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누구를 위해?

일각에선 선거 규정의 조정이 없을 시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진정서를 낸 박 전 처장은 “독소조항으로 인해 유능한 인재가 대한체육회 수장으로 오는 길을 원천봉쇄한다면 체육인들은 이를 좌시하지 않고 법적투쟁 및 집단행동을 벌일 것”이라고 전했다.

법조계에선 문제의 조항에 대해 효력정지가처분 소송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시민단체에서는 불법선거 규정을 만든 자를 검찰에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고발조치 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chm@ilyosisa.co.kr>


[유준상은 누구?]

▲ 전 국회 88서울올림픽 특별지원 위원
▲ 전 대한레슬링연맹 이사 및 국가대표 전지훈련단 단장
▲ 전 대한롤러경기연맹 회장
▲ 전 국민생활체육회 고문
▲ 전 대한체육회 생활체육위원
▲ 현 아시아롤러경기연합 부회장
▲ 현 국제롤러경기연맹(FIRS) 올림픽특별위원 및 스피드기술위원회 위원
▲ 현 대한울트라마라톤 연맹 명예회장
▲ 현 세계경찰무도연맹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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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초반 난맥상이 이어지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용꿈을 꾸지만, 새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강경 보수 세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 대표에게 그와 용꿈을 함께 꿀 수 있는 창조적 소수가 없는 이유는 뭘까? 국민의힘은 지난달 장외투쟁에 집중했다. 지난달 21일엔 대구에서, 지난달 28일엔 서울에서 각각 개최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장외투쟁을 통해 정부·여당의 잘못을 국민에게 알렸다”며 “그 과정에서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하락했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고, 지지층 결집으로 싸울 동력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벌어지는 지지율 격차 하지만 외부의 평가는 다르다. 보수 신문 <조선일보>는 지난달 23일 사설에서 “스마트폰과 각종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라서 국민은 정치권 소식을 실시간으로 보고 듣는다”며 “장외투쟁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느낌을 준다”고 비판했다.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2일 오후엔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체포됐다가 지난 4일 체포적부심이 인용돼 석방됐다. 김건희 여사의 경기 양평군 공흥지구 개발사업 개입 의혹과 관련해 김건희 특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던 고 정희철 단월면장도 “특검이 강압 수사를 했다”는 취지의 자필 메모를 남긴 채 같은 날 사망했다. 이후 국민의힘은 국회에 정 면장의 분향소를 차렸고, 의원들이 돌아가면서 빈소를 지키고 있다. 지난달 6일 방송된 JTBC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엔 이재명 대통령 부부가 출연했다. 이 방영분은 지난달 26일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사건 이후인 지난달 28일 촬영됐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국가적 재난 때문에 지금도 국민은 피해를 보고 있는데, 한가하게 예능 촬영하고 있었다면, 이 대통령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추석 연휴 내내 쟁점화를 주도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대여 투쟁엔 힘이 붙지 않는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일부터 2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전주 대비 2.4% 하락한 35.9%로 확인됐다. 47.2%의 지지를 얻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보다 11.3% 뒤처지는 수치였다. 이는 장 대표의 자화자찬과는 다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이 대통령과 민주당엔 ▲검찰 해체 시도 ▲조희대 대법원장과의 갈등 ▲이 대통령의 예능프로 출연 논란 ▲김현지 제1부속실장 관련 논란 등 악재가 이어졌다. 그런데도 지지율 격차가 10% 이상 벌어진 결과가 나온 것이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지난 13일 장 대표와 상임고문단의 오찬 회동에 참석해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정 전 의장은 장 대표에게 “과거 안하무인 정치 행태를 보여온 보수 정당의 잘못이 크다는 걸 인정해야 하고, 깊은 반성과 성찰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 등과 함께 못할 이유가 없다. 새 지도부는 용광로 같은 화합의 정치를 만들어내길 바란다”며 “부정선거론이나 ‘윤 어게인’ 같은 낡은 의제와 결별하고, 민생을 살피면서 국가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데 온 힘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답 없는 장외투쟁에 멀어지는 대권 ‘밖에서’ 집착… 본질 “사람 없어서” 정 전 의장의 발언 중 핵심은 한 전 대표를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와 관련해 의견이 엇갈려 한 전 대표와 결별했다. 장 대표는 지난달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전 대표를 지지하는 분들이 무차별적으로 저를 비난·모욕·배척하는데 어떻게 정치 행보를 같이 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엔 자신의 당 대표 당선을 도운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의 반발을 감수하면서 당내 중도 성향으로 평가받는 김도읍 의원을 정책위의장으로 발탁하는 등 중도 공략을 고려하는 것으로 보였다. 유튜버 고성국씨는 이에 크게 반발하면서 “많은 분이 ‘김도읍이 웬 말이냐’고 비판하는데, 김 의원은 그런 비판을 받을 만하다”고 주장했다. 고씨는 “국민의힘은 자유통일당 등 원외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양보하라”고 요구했다. 장 대표는 이들의 요구를 일체 무시하면서 이들의 영향력 감소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였다. 한때는 “공천 청탁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보수의 김어준 반열에 오르려는 것 아니냐”는 평가까지 들었던 전한길씨도 최근엔 전당대회 당시의 기세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장 대표는 추석 연휴이던 지난 7일, 서울의 한 극장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 2>를 관람했다. <건국전쟁 2>는 1947년부터 군·경찰·서북청년단 등과 남조선노동당이 제주도에서 번갈아 이어간 학살 사건인 4·3 사건을 다뤘다. 이를 연출한 김덕영 감독은 주로 남조선노동당의 학살 위주로 내용을 구성했다. 김 감독은 평소 이승만 전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부정선거론을 주장해 왔던 인물이다. 4·3 사건은 국가 폭력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여전히 민감하다. 하지만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 일각에선 잊을 만하면 양민 학살을 부정하거나 군경의 대응을 찬양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장 대표의 <건국전쟁 2> 관람은 보수 정당 수장이 4·3 사건에 대한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를 남긴다. 아울러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주장을 수시로 제시하는 세력은 강경 보수 세력이다. 이런 대응은 이재명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국민의힘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힘 지지율 추세로 확인할 수 있다. 추석 연휴 전까지 집중했던 장외투쟁도 장 대표 스스로 직접 전면에 나서 여론을 움직이려 한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하지만 장 대표가 강경 보수 진영의 지원을 토대로 당선됐던 것 자체가 강경 보수 외 유권자에겐 큰 호감을 주지 못하는 족쇄가 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민의힘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됐던 것은 당내 쇄신이었다. 기행은 멈췄지만… 특검 3개(김건희·내란·채 상병)가 국민의힘을 동시에 겨냥하는 현 상황은 모두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따라서 국민의힘엔 ▲부정선거론 근절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 제거 ▲중도 공략 등 산적한 숙제가 있었다. 장 대표가 무시 전술로써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을 서서히 줄이고 있지만, 유권자로선 만족을 느끼기 어렵다. 정권을 맡을 수 있는 정당으로 다시 도약하기 위해선 확실한 절연이 필요했다. 하지만 장 대표 스스로 <건국전쟁2>를 관람하면서 그동안 구사했던 무시 전술도 그 진의를 의심받을 가능성이 열렸다. “당내 쇄신이 아닌 자신의 영향력 확대만을 위한 무시였느냐”는 의심이다. 특정 세력의 지원을 받은 수장이 수성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대개 토사구팽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정치력을 높이 평가받는 역사적 인물들은 적절한 토사구팽을 통해 수성기를 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이 이전과 달라진 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장 대표 취임 이전 국민의힘은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전 원내대표가 일명 ‘쌍권 체제’를 구성해 ▲대선후보 심야 교체 시도 ▲자체 개혁안에 대한 특정 계파의 조직적 저항 등 기행을 저지르면서 여론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에서 이런 기행은 잘 보이지 않으나, 그 이상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다. 이는 재보궐선거 당선으로 국회에 입성해 재선 의원이 된 지 불과 1년여가 지난 장 대표의 짧은 정치 경험 등 부실한 정치 기반으로부터 비롯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에 대해 꾸준히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이를 직접 부인하진 않는다. 그런데 용꿈은 특정 정치인 1명이 특출나다는 이유만으로 꿀 수 있는 꿈이 아니다. 장 대표는 아직 “용꿈을 꿀 만큼 특출난 정치인”이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다. 용꿈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선 ▲시대적 사명 구현 ▲강한 개혁 의지 ▲구체적 개혁 대안 제시 ▲강도 높은 자체 혁신 ▲추상적 비전을 구체화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 구성 등 요소가 필요하다. 용꿈은 용이 되려는 사람과 이를 뒷받침하는 집단의 상호 작용으로 현실이 된다. 전문가 집단은 추상적 비전을 구체적 개혁 대안으로 제시해야 하고, 용꿈을 꾸는 사람은 구체적 개혁 대안을 현실에서 구현해 민심의 호응을 얻어야 한다. 부실한 정치 기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저서 <역사의 연구>를 통해 ‘창조적 소수’라는 개념으로 용꿈을 현실화하는 과정을 이론화했다. 토인비는 문명의 순환을 통해 역사의 변혁 과정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문명이 쇠퇴하거나 낯선 도전에 직면했을 때 이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발전을 꿈꾸는 집단이 나타난다. 토인비는 이들에게 ‘창조적 소수’라는 이름을 붙였다. 장 대표가 강경 보수와의 관계에 명확하게 선 긋지 못한 채 장외투쟁에 집중하는 것에 대한 해답도 있다. 토인비는 창조적 소수가 새로운 발전을 이끌 수 있는 비결로 혁신적인 구상을 제시했다. 혁신적인 구상을 통해 세상에 충격을 주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우리 역사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진골 귀족들 간 왕위 쟁탈전이 장기간 이어져 중앙정부가 지방 통제 능력을 잃었던 통일신라 말기엔 후삼국시대가 이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미 멸망한 고구려·백제가 통치했던 지역에선 유민 의식이 유지되고 있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을 물리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정치적 비전이었다. 왕건은 ‘삼한일통’이란 구호를 내걸면서 신라에 우호적인 관점을 유지했다. 이는 신라를 무력으로 함락해 경애왕을 살해한 후 신라의 각종 기술자를 후백제로 압송했던 견훤의 대응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견훤의 대응에 분노했던 신라 호족은 고려로 기울었고, 이는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게 된 결정적 밑거름이 됐다. 훗날 고려는 원나라의 간접 지배와 권문세족의 수탈로 인해 저물었다. 권문세족이 산과 강을 경계로 대농장을 소유하면서, 조세·부역을 직접 감당하는 평민의 경제 기반이 무너졌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2000명 규모의 사병 집단 가별초를 거느린 대부호였다. 그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기반으로 왜구와의 전쟁에서 대활약해 실력자로 부상했다. 그의 막료로 가담한 정도전·조준·남은·윤소종은 당시 새로운 흐름이었던 성리학을 배운 신진사대부였다. 이들 중 조준은 권문세족의 토지 겸병을 막을 수 있는 방편으로 과전법을 제시했다. 과전법은 권문세족의 토지를 모두 몰수해 국유화한 후 전·현직 관료에게 경기도에 한정해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였다. 과전법은 이성계의 막강한 권력·군사력을 기반으로 실현됐고, 그가 새 왕조의 문을 열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됐다. 과전법이 시행돼 백성들이 춤을 추면서 기뻐할 때, 국왕 즉위 이전부터 대토지를 보유했던 고려 마지막 임금 공양왕은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다. 고려가 왜 멸망했고, 조선이 왜 개창될 수 있었는지 잘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싸울 동력 확보” 자화자찬 “이미 한계만 노출” 평가도 이성계의 등장 이전 강력한 권력과 군사력을 가졌던 사람은 최씨 무신정권을 열었던 최충헌이었다. 그런데 최충헌은 정치개혁과 체질 개심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정예 병력을 자신의 사병 조직에 포함할 뿐, 거란 유민의 고려 침공을 방치했다. 거란 유민은 당시 떠오르던 몽골과의 협력을 통해 물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늑대를 몰아내고 호랑이를 불러들였을 뿐이었다. 최충헌 사후 닥친 국난은 여몽 전쟁이었다. 최우 등 최충헌의 후계자들은 임시 수도 강화도에서 오로지 정권 보위에만 집중했다. 그들은 몽골군이 쳐들어오면 항복한 후 몽골군이 철군하면 항복 조건을 어기는 행태를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백성들은 각자도생해야 했다. 최씨 정권이 몰락한 후 집권했던 무신 집권자들도 이 행태를 반복했다. 그들이 국난 극복을 등한시한 결과, 고려는 몽골이 중국을 접수한 후 세운 원나라의 간섭을 장기간 받아야 했다. 이는 현대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역대 정권은 모두 새로움을 강조하는 슬로건을 제시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군정 종식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람 사는 세상을,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제위기 극복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적폐 청산을, 이 대통령은 내란 종식을 제시했다. 토인비가 문명의 순환을 강조했던 이유는 성공하거나 많은 것을 누리면 나태해지는 인간의 속성과 관련돼있다. 토인비는 “성공한 창조자는 다음 단계에서 다시 창조자가 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는 “성공 자체가 큰 흠결이 되기 때문”이라며 “이미 성공했기 때문에 노를 젓는 손을 쉬고 있어서 사회 발전에 쓸모를 다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에선 김용태 전 비대위원장과 윤희숙 전 혁신위원장이 당 체질을 개선할 혁신안을 발표한 후 실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일명 ‘언더 찐윤’으로 통하는 영남권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은 조직적으로 이를 방해했다. 이를 똑똑히 목격한 장 대표는 지방선거 승리를 외치면서도 당내 혁신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 주류와 반목하는 한 전 대표와 친한계(친 한동훈)를 겨냥해 패널 인증제를 언급하는 등 당 주류의 영향력을 고착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누구나 꿈꿔도 이룰 수 없는… 하지만 여론은 국민의힘의 혁신과 중도 확장을 바라고 있다. 이 때문에 이재명정부의 초반 난맥상에도 불구하고,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용꿈을 함께 실현할 창조적 소수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기 사람은 진득하게 비전을 통해 설득하면서 만들어진다. 장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국정감사 이후엔 어디서 장외투쟁을 하느냐”가 아니라 “왜 내 주변엔 사람이 없어서 내가 직접 장외투쟁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용꿈은 누구나 꿀 수 있지만, 아무나 이룰 수는 없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