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더민주 새리더 추미애

뚝심 있는 여장부 추다르크가 떴다!

[일요시사 안재필 기자 = ‘추다르크’ 추미애 의원이 더불어민주당 새 대표로 선출됐다. 야당 최초의 영남출신 대표로 지역주의를 무너뜨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추다르크라는 별명은 여당 텃밭인 영남 출신으로 지역감정에 맞서 영남에서 야당 지지운동을 펼치는 과정에서 얻어졌다. 뚝심 있는 여장부 추 대표가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짚어본다.

지난달 27일, 전당대회를 맞이한 야당에 이례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여당 텃밭의 영남 출신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 추미애 의원이 당대표로 선출된 것이다. 지난날 고 노무현 대통령 탄핵과 노동조합법 개정 논란이 약점으로 작용했지만 추 대표는 이에 맞서 여장부의 이미지를 더 굳건하게 했다.

세탁소집 둘째 딸
소신 있는 판사로

추 대표는 대구 달성군 출신으로 1958년 세탁소를 운영하는 부모 밑에서 2남2녀 중 둘째 딸로 태어났다. 이후 경북여고를 졸업하고 한양대 법대에 전액 장학금과 4년 기숙사 사용을 보장받으며 입학했다. 지난 1982년엔 제 24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1995년까지 춘천지방법원, 인천지방법원, 전주지방법원, 광주고등법원 등에서 판사를 지냈다. 같은 대학 출신의 서성환 변호사와 결혼해 법조인 부부로 유명세를 탔다.

지난 1986년 춘천지방법원서 근무하던 초년 판사 시절엔 군사정권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이념서적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소신대로 판결해 ‘껄끄러운 판사’ ‘운동권 판사’로 불렸다.

추 대표가 약 10년간 입던 법복을 벗고 정계로 진출한 것은 지난 1995년 새정치국민회 창당을 준비하던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권유에서 비롯됐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은 1997년 대선 출마에 대비해 제 15대 국회의원 선거에 내세울 인재를 영입 중이었다.

추 대표가 정계 입문을 수락하자 김 전 대통령은 “호남 사람인 제가 대구 며느리를 얻었습니다. 고맙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추 대표는 그렇게 야당의 여성 부대변인 1호로 정치에 입문해 이듬해인 지난 1996년 제 15대 국회의원 선거서 서울 광진구 을 새정치국민회 후보로 출마한다.

선거를 앞두고 여자는 이기기 힘들다며 외면 받은 일화도 있었다. 추 대표는 돈 안쓰는 선거를 선언하고 오직 진심 하나로 당원들을 만나고 설득했다. 떠났던 당원들은 그녀의 노력에 마음을 열고 돌아왔다. 노력을 증명하듯 선거에 압도적인 표차로 승리, 추 대표는 서울 지역구 소선거구 최초의 여성국회의원이 됐다.

지역주의 타파할 영남출신 첫 야당 대표
“우선은 정권교체” 당내 계파 청산 숙제

그녀는 자신을 ‘세탁소집 둘째 딸’로 소개하며 “구멍가게 둘째 딸로 태어난 영국의 대처 수상이 영국병을 고쳤듯이 세탁소집 둘째 딸이 한국의 썩은 정치를 세탁하겠다”고 공약했다.

지난 1997년 김 전 대통령이 대통령 후보로 나섰을 때 추 대표는 유세단장을 맡았다. 지역주의가 극심했던 당시 여당 텃밭인 영남 출신이면서 야당인 김 전 대통령의 유세를 했기 때문에 대구 사람들에게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그녀의 별명 ‘추다르크’는 이 과정에서 얻어진 결과다.

추 대표는 지난 2002년 제 1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새천년민주당 대통령 후보 선출 전당대회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후보였던 노 전 대통령의 ‘국민참여운동본부’의 공동본부장을 맡기도 했다.

그녀는 노 대통령의 행보에 앞장서며 노 전 대통령과 친밀한 관계를 보여줬다. 국민참여운동본부를 이끌며 희망돼지저금통 사업으로 국민성금을 모아 돼지엄마라는 별명도 얻었다. 노 전 대통령이 대선후보로 확정된 이후 후보 교체를 위한 후보단일화 압박이 있을 때도 추 대표는 노 전 대통령을 지지했다.

노 전 대통령 취임 이후 김 전 대통령의 대북송금 특별검사를 수용하는 일이 일어났다. 추 대표와 노 전 대통령이 갈라서는 것은 이 시기부터다. 특검 수용 이후 친노(친 노무현) 의원들은 새천년민주당서 분당, 열린우리당을 만든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열린우리당을 지지하는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추 대표는 분당 사태에도 새천년민주당에 남아야 한다며 자리를 옮기지 않았다. 열린우리당의 분당에도 반대 입장을 보였다.

DJ 따라 정계 입문
노 정권 때 부침

2004년 당시 새천년민주당 대표였던 조순형 의원이 노 전 대통령의 총선 개입 발언을 문제 삼아 탄핵을 추진했을 때, 추 대표는 ‘이성계의 3불가론’으로 탄핵에 맞섰다. 그녀의 3불가론은 첫째 탄핵 대신 개혁으로 지지층의 동요를 막고, 둘째 탄핵 찬성은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지지층이 주도하고 있어 현혹되면 안되며, 셋째 그래도 탄핵을 강행하면 역풍을 맞아 총선에 참패할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탄핵을 반대하는 추 대표의 행동은 당론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며 당내 비난을 샀다. 그러나 비난을 감수하며 탄핵에 맞선 그녀는 결국 노 전 대통령의 탄핵에 손을 들게 된다.

당시 추 대표는 “감옥 간 분들 표까지 긁어모아 탄핵을 한다면 말이 안된다. 숯댕이가 검댕이를 나무랄 수 없다. 민주당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내가 기꺼이 표를 드리겠다”며 노 전 대통령의 탄핵에 찬성했다.

그러나 탄핵은 부결됐고, 역풍이 되어 새천년민주당에게 돌아갔다. 추 대표도 탄핵 유탄을 맞았다. 탄핵 찬성이라는 굴레는 쉽게 벗겨지지 않았다. 추 대표는 삼보일배를 통해 여론을 돌리려 했지만 국민들의 마음을 돌릴 수 없었다.

결국 그녀는 지난 2004년 17대 총선서 패배를 맛보게 된다. 이에 반해 열린우리당은 의석 과반수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당시 새천년민주당은 17대 국회의원 선거서 9석을 얻는 데 그쳐 원내교섭단체서 제외된다.

이후 지난 2007년 추 대표는 제 17대 대선을 앞두고 대통합민주신당에 입당해, 대통령 후보로 출마한 정동영 캠프의 공동선대위원장을 맡는다. 2008년엔 제 18대 총선서 통합민주당 후보로 서울 광진구 을에 재도전 해 51%의 득표율을 얻어 당선된다. 또 같은 해부터 2010년까지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한다.

당선 이후 삼성그룹 특검 시 삼성그룹 내부 문건에 로비를 받지 않는 정치인으로 분류돼 있다는 말도 돌았다. 그 말을 검증이라도 하듯 추 대표는 삼성그룹 특검서 로비가 있었다는 진술을 한다. 재선을 앞둔 상태에서 선거운동을 한 뒤 사무실에 오니 비서가 삼성에서 골프가방을 주고 갔다는 말을 했다. 그 안에는 얼마인지 알 수 없을 정도의 현금이 있었는데 추 대표는 골프가방을 받지 않고 삼성에 돌려줬다.

이후 지난 2010년 추 대표는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며 생긴 ‘노조법’ 분쟁이 원인이 돼 다시 한번 굴곡을 겪는다. 노조법의 복수노조금지 및 노조전임자급여지급 규정에 대한 개정과 관련돼 비판을 얻었다. 개정과 관련해 여야의 대립이 계속되자 추 대표는 ‘사용자가 동의하는 경우 산별노조의 교섭권을 보장한다’는 내용의 개정안을 내놨다.

그녀의 개정안에 야당은 산별노조의 교섭권을 무력화한 노동개악이라며 반발했다. 당 내부에선 추 대표에 대한 징계도 논의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던 그는 여당 의원들과 함께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결국 추 대표는 2개월 당원 자격 정지 징계를 받고 당내 입자도 줄어들었다. 그녀는 수정안을 통과시키며 야당의 출입을 막아 날치기 통과의 오명서 벗어나지 못했다.

일각에선 추 대표의 이 결정이 당원이 아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의 입장서 어쩔 수 없었다는 옹호론도 돌았다. 아무런 준비가 안된 상태서 복수노조가 허용되고 전임자급여지급이 금지되게 되면 사회적 혼란이 커질 것을 우려했다는 의견이다. 그들은 추 대표가 반대표를 던진 점을 근거로 삼았다.

이후 추 대표는 2012년 19대 총선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출마해 55%의 득표율로 당선된다. 같은 해 있었던 제 18대 대선서 후보로 출마한 문재인 의원 선거 캠프의 ‘국민통합위원장’으로 활동했다. 이 영향으로 지난해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 전당대회서 당 대표로 선출된 문 의원에 의해 지명직 최고위원으로 임명되게 된다.

탄탄한 인지도
5선 여성 의원

당시 새정치는 비노(비 노무현)가 끊임없이 문 대표의 사퇴를 요구해 비노와 친노의 대립이 고조된 상황이었다.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주승용 최고위원(현 국민의당)은 문 대표의 사퇴를 요구하며 최고위원직을 내려놓기도 했다. 이후로 비노계의 탈당 행렬이 이어졌으나 추 대표는 이에 가담하지 않았다. 그녀의 행동은 과거 열린우리당 창당에 반대했던 모습과 함께 자신이 속한 조직을 배신하지 않는 이미지로 굳어졌다.

그 덕분인지 올해 있던 20대 총선서도 48%라는 득표율을 얻어 5선 여성의원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고 노 전 대통령 탄핵 역풍을 맞아 지진부진 했던 17대를 제외하고 도전한 모든 총선서 당선돼 탄탄한 인지도를 증명한 셈이다.
 

총선 이후 추 대표는 지난 7월28일, 전당대회 당대표 경선 출마를 선언한다. 그녀는 자신의 정치활동에서 치명적으로 작용했던 두 개의 약점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추 대표는 지난달 12일 CBS라디오 <심현정의 뉴스쇼>서 당대표 경선에 출마한 김상곤 후보가 지난 2004년 고 노 전 대통령 탄핵에 찬성한 것을 문제 삼자 “진심으로 여러 차례 사과했지만 아무리 사과한다 해도 어디 그게 갚아지겠나? 그 당시 삼보일배로 사죄도 국민께 드렸다”며 “정치인생 최대의 실수”라고 사과했다.

노무현 탄핵·노조법 날치기 통과
치명적인 2개 약점 어떻게 극복?

이어 “그 후로 제가 정치와 절연한 채 멀리 떠나 있을 때 대통령님이 세 번이나 사람을 보내 장관직을 제의하셨다”며 삼보일배를 한 것에 대해서도 “'무릎 아프지 않냐 괜찮냐. 언제 돌아올 거냐'고 말했다”고 반박했다. 탄핵이 있었지만 노 전 대통령과 사이가 틀어지지 않고 친분을 계속 유지한 것을 부각한 것이다.

이후 2009년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으로 노동조합법 개정안을 직권상정으로 통과시켜 ‘2개월 당원 정지’ 징계를 받았던 사실이 문제로 거론되자 “다자 협의체에서 논의한 것”이라는 말로 일축했다. 이렇게 추 대표는 자신의 정치적 약점 두 가지를 극복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27일, 전당대회서 당 대표 투표 결과가 나왔다. 과반수가 넘는 추 대표의 압도적인 승리로 투표는 마무리됐다. 총 득표율은 54%라는 과반수 확보로 압도적인 결과를 보였고, 현장 대의원 투표는 51% 권리 당원 투표는 61%를 받았다. 당원 여론조사와 국민 여론조사에선 각각 51%와 61%의 압도적인 표를 받았다. 김상곤 후보는 22.08%, 이종걸 후보는 23.89%를 얻는 데 그쳤다.

추 대표가 더민주 당대표로 선출됨에 따라 여야 양쪽서 이례적인 일이 일어난 모양새가 됐다. 신임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는 야당 텃밭인 호남출신으로 여당의 대표가 됐고, 추 대표는 여당 텃밭인 영남 출신으로 야당의 대표가 돼 지역갈등이 무색한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지역주의가 무너졌다는 환호도 나온다.

추 대표는 당 대표 선출 이후 수락연설과 기자회견서 대선주자 이름을 부르며 “모두 함께 공정하고 깨끗한 경선, 정당사에 길이 남을 역동적인 경선을 함께 만들자”며 제안했다. 문재인 대세론에 관해선 “누가 국민에게 희망과 감동을 줄지 민생 처방을 들고 나와 설득할 때 정권교체 가능성이 생긴다”고 언급했다. 이어 “주류와 비주류, 친문과 비문이라는 말이 안 나오도록 하겠다”며 당 대표로서의 각오를 다짐했다.

추 대표는 강한 야당을 기조로 행보에 나섰다. 그녀는 지난달 29일, 서울 현충원에 방문해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의 묘역 뿐 아니라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역까지 참배했다. 이어 박근혜 대통령에게 “3년 연속으로 불참한 5·18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과 이명박·박근혜정부 8년간 한 번도 방문하지 않은 제주 4·3 추념식에 참여해줄 것을 당부한다”고 밝혔다.

취임 직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 방어체계) 반대 당론화를 거론, 시작부터 여당과 충돌이 예상돼기도 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취임 이틀째인 지난달 30일, 추 대표가 개인소신보다 전체 의원들의 중론을 따르겠다며 한발 물러서는 모양새를 보였다.

강한 야당 강조
시작부터 충돌

지난달 31일 예정됐던 전문가 좌담회도 오는 5일로 연기됐다. 일각에선 그간 더민주가 유지해온 전략적 모호성 기조를 뒤집을 명분이 여의치 않기 때문에 이 같은 행보를 보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사드 반대 당론을 밀어봤자 득이 없다는 판단이 작용했다는 의견도 나왔다.


<anjapil@ilyosisa.co.kr>

 

[추미애 대표는?]

▲1958년 대구 출생 ▲경북여고 ▲한양대 법대 ▲인천·전주지법·광주고법 판사 ▲15·16·18·19·20대 국회의원 ▲제 15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위원 ▲새천년민주당 김대중 총재 비서실장 ▲새천년민주당·민주통합당 최고위원 ▲노무현대통령 당선자 특사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 ▲더불어민주당 지명직 최고위원

 

<기사 속 기사> 추미애 남편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 추미애 대표는 남편 서성환 변호사와 7년의 열애 끝에 결혼했다. 대학 동기동창이던 두 사람의 인연은 서 변호사의 편지로 변화를 맞이한다. 서 변호사는 추 대표보다 3살 많지만 서 변호사가 3년 늦게 학교에 입학을 해 법대 동기생으로 함께 학교를 다녔다.

연인관계가 된 후 추 대표는 대학을 나서 집까지 걸어가며 공중전화가 나타날 때마다 서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기도 했다고 알려졌다. 연애에 집중하다 보니 사법시험서 낙방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서 변호사는 사고를 당해 아직까지도 다리를 저는 장애를 가지게 됐다.

서 변호사는 호남 출신으로 당시 영남서 호남 사위를 보는 일은 흔치 않았다. 추 대표의 부모님은 서 변호사의 장애와 출신을 보고 결혼을 반대했다. 그러나 서 변호사의 진솔한 모습에 결국 결혼을 허락하게 된다. 호남 출신의 남편을 둬 추 대표는 자신을 ‘호남의 며느리’라고 칭하기도 한다.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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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진주교대 교수 논문 표절 의혹

[단독] 진주교대 교수 논문 표절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학의 교수 수준은 강의의 질과 비례한다. 학교는 학생에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해야 할 의무를 지고 있다. 과거와 비교해 그 의미가 많이 퇴색했지만 ‘상아탑’으로 불리는 대학의 본질은 여전히 유효하다.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인재 양성, 특히 초등학생을 가르칠 선생님을 배출하는 ‘교대’라면 그 본질을 향해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 진주교육대학교(이하 진주교대)에서 2020년 시작된 교수 채용 논란이 6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1932년 공립사범학교로 시작해 100여년 동안 초등교육 발전에 힘을 보태 온 학교로서는 불명예스러운 논란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진주교대가 마치 ‘제3자’인 것처럼 멀찍이서 논란을 지켜만 보고 있다는 점이다. 첫 단추 잘못 끼웠나 2020년 10월 진주교대는 미술교육과, 수학교육과 등에 각 1명씩 총 4명의 교수를 채용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했다. 2021년 1학기 임용을 목표로 같은 해 11월부터 채용 절차가 시작됐다. 교육공무원법에 명시된 결격사유가 없어야 한다는 일반 요건과 함께 ‘전공 분야별 박사학위 소지자’라는 자격 요건이 붙었다. 전형은 ▲자격 심사 ▲전공 적부 및 전공 심사 ▲경력 심사 ▲면접 심사(심화 과정) ▲면접 심사(최종) 등으로 이뤄졌다. 논란은 미술교육과 교수 채용 과정에서 불거졌다. 진주교대는 채용 계획에서 미술교육과 전공 분야를 ‘도자공예 또는 미술교육(도자공예)’으로 정했다. 도자공예 교수가 정년 퇴임을 앞두고 있어 그 후임자를 뽑기 위한 채용이었다. 문제는 미술교육과에 최종 합격한 A 교수가 도자 관련 전공을 이수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A 교수는 진주교대에서 초등교육을 전공(학사)했고, 석사 학위는 초등미술 교육(진주교대), 박사학위는 디자인학(광주대) 전공으로 받았다. 미술교육과 채용에 지원하려면 ‘전공 분야별 박사학위’ 즉, 도자 관련 전공 박사학위가 있어야 하는데 그가 자격 요건에 못 미친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 A 교수의 전공 적부 논란은 면접 심사 과정에서 언급됐다. 면접에 들어간 한 심사위원이 A 교수의 전공이 채용 분야와 맞지 않는다고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면접 심사(5배수) 대상자 명단’ 자료에 따르면 A 교수를 제외한 4명의 지원자는 학사, 석사, 박사 과정 등에 도자 관련 전공을 이수한 사실이 확인된다. 당시 면접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미술교육과 B 교수는 “전공 적부와 관련해 다시 심사해야 한다고 이의를 제기했고 재심사가 이뤄지긴 했다”며 “그런데 첫 번째 전공 적부 전형에 참여했던 위원들이 재심사를 담당했다. 결과가 바뀔 리가 있겠나”라고 한탄했다. A 교수는 2021년 2월 최종 임용됐다. A 교수를 둘러싼 논란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가 쓴 <프리미티비즘의 조형 표현 요소 및 특성을 통한 현대 도자 작품 연구> 논문이 표절 시비에 휘말린 것이다. 광주대학교 대학원 디자인학 전공으로 박사 과정을 밟은 A 교수의 학위 논문이다. 2020년 6월경 논문 심사를 통과한 것으로 파악된다. 진주교대 교수 채용공고가 뜨기 3~4개월 전이다. 채용 과정에서 전공 적부 논란 임용 이후 추가 문제 제기됐다 2021년 3월, B 교수는 A 교수의 연구 부정행위(표절)를 광주대에 제보했다. A 교수가 해당 논문으로 광주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기에 검증도 광주대에서 진행해야 했다. 교육부 훈령 제449호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제18조(연구부정행위 검증 절차)에 따르면 연구 부정행위를 검증하려면 예비조사와 본조사, 판정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 절차를 총괄하는 게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다.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는 예비조사와 본조사를 위한 위원회 구성과 운영에 대한 심의, 의결 권한을 갖는다. 또 예비조사와 본조사에서 나온 결과를 승인한다. 제보를 받은 광주대는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를 소집했다. 황당한 지점은 광주대에서 A 교수의 논문을 두고 예비조사와 본조사를 수차례 반복했다는 사실이다. B 교수가 마지막에 나온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 결과를 두고 민사소송을 제기한 시점은 2024년 8월로, 처음 제보했던 2021년 3월 이후 무려 3년5개월이나 걸렸다. 그나마도 표절 여부는 여전히 판명 나지 않았다. 교육부의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제25조(판정)에 따르면 예비조사 착수 이후 판정까지의 모든 조사는 6개월 이내에 종료해야 한다고 돼있다. 물론 이 기간 안에 조사가 이뤄지기 어렵다고 판단될 경우 연장도 가능하다. 하지만 광주대의 경우는 ‘절차상 하자’가 연이어 발생했다. 제보자나 피조사자 양측에서 이의를 제기하고 재조사하는 일이 반복됐다. 2021년 8월 광주대 본조사위원회는 A 교수의 논문에 대해 만장일치로 표절 판정을 내렸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A 교수에게 의견 진술권을 부여하지 않은 점이 문제로 떠올랐다. 다시 말해 A 교수가 자신의 논문이 표절이 아니라고 반론할 기회를 주지 않은 것이다. 결국 모든 조사는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2022년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가 재구성됐는데 5월 예비조사와 8월 본조사에서 정반대의 결론이 나왔다. 예비조사위원회는 ▲A 교수 논문의 총 1234개 문장 중 425개(34.4%)가 표절로 의심되며 ▲특정인의 논문을 몇 페이지에 걸쳐 연속적으로 사용했고 ▲독창적인 부분을 적시해 달라는 요청에 피조사자가 답변을 회피하며 적극적 방어를 하지 않아 비교 대조표를 그대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점 등을 근거로 표절로 판정했다. 거듭된 하자 조사만 4번 반면 본조사위원회는 “이 사건 논문은 ‘작품 논문’이라는 특성상 다른 분야와 같은 기준으로 표절 여부를 판단하기 쉽지 않다”며 “작품 논문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논문의 핵심 부분인 작품 그 자체에는 독창성이 인정되므로 논문 자체를 표절이라고 판정할 수 없다”고 했다. 두 번째 조사에서도 또다시 ‘하자’가 발견되면서 판정이 무효로 돌아갔다. B 교수는 피조사자인 A 교수가 심사위원 제척 여부를 이유로 외부위원 명단을 요청했고 실제 공개된 점, 제보자에게 의견 진술의 기회를 주지 않은 점 등의 절차상 하자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본조사위원회 보고서에 각 당사자의 진술 요지와 조사 결과 등이 반드시 포함돼야 하는데도 이 부분을 빠뜨리면서 실체상 하자도 발생했다고 강조했다. B 교수는 광주대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동시에 법원에 본조사위원회 판정 효력 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 건은 피고(광주대 측)가 “원고 측 이의를 받아들이고 기존 본조사 판정을 무효화하고 다시 본조사위원회를 소집하겠다”고 약속하고 B 교수가 소를 취하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2023년 세 번째로 소집된 본조사위원회는 A 교수의 논문을 표절로 판정했다. 의견서에는 ▲전체 1200여개 문장 중 출처 표시 없이 인용된 문장이 360여개로 과도하게 많은 점 ▲저자의 독창성을 보여주는 부분이 많지 않은 점 ▲논문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제4장과 결론에서도 타인의 학술 논문과 내용이 유사하거나 출처 표시가 없는 문장이 다수인 점 등이 근거로 기재됐다. 하지만 이 결과도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의 구성 문제가 대두되면서 전면 무효화됐다. ‘광주대학교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의 설치 운영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학장, 교무처장 및 산학협력단장은 당연직으로 하고 교무처장이 위원장이 된다’는 조항이 있는데 이를 일부 준수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다시 해를 넘겨 2024년 6월 예비조사위원회는 표절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놨다. 예비조사위원회는 A 교수의 논문이 박사학위 논문 심사를 통과했고, A교수가 KCI 논문 유사도 검사에서 1%의 유사도를 보인 결과서를 제출한 점을 근거로 들었다. 저작위원회 “유사성 인정” 또 A 교수가 인용 표시를 하지 않은 부분이 타인의 아이디어나 창작물을 침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다른 저자의 논문 역시 다른 논문이나 저서를 그대로 따른 것으로 ‘독창적인 아이디어나 창작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눈여겨볼 대목은 표절이 아니라고 판정한 예비조사위원회의 결론을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에서 승인했다는 점이다.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는 본조사를 실시할 필요가 없다는 판정을 내리고 결론을 확정했다. 3년5개월여 동안 진행된 조사에서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의 판정 승인이 떨어진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일단 표면상으로는 최종 결론이 난 셈이다. 첫 채용 공고 시기로 따지면 4년 가까이 이어진 논란은 B 교수의 반발로 법정에 가게 됐다. B 교수는 2024년 7월 광주대가 자신의 이의 신청을 기각하자 같은 해 8월 광주대의 운영 주체인 학교법인 호심학원을 상대로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 판정 무효확인 등’의 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른다. 예비조사위원회의 결론을 승인한 부분과 본조사위원회가 불필요하다고 한 부분을 무효로 판단해 달라는 취지였다. 이 과정에서도 절차상 하자가 언급됐다. B 교수는 “광주대 연구윤리위원회 규정에 따르면 연구 부정행위에 대한 충분한 혐의를 인지했을 경우에 예비조사를 생략할 수 있고, 피조사자가 연구 부정행위 사실을 모두 인정할 경우 본조사를 생략하고 바로 판정을 내릴 수 있다”며 “또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는 예비조사 결과를 확정해 판정할 근거가 없다. 본조사 결과만 승인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A 교수 논문에 대한 표절 여부도 제대로 다시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비조사와 본조사를 거치는 과정에서 표절 판정이 엇갈린 만큼 저작권법,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및 한국연구재단이 제시하는 인용 방법 및 논문 표절 기준 등에 따라 A 교수의 논문을 구체적으로 살펴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실제 B 교수는 A 교수의 논문을 한국저작권위원회에서 감정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법원에 요청했다. 한국저작권위원회는 저작권법 제112조에 따라 설립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이다. 법원이 B 교수의 요청을 받아들이면서 한국저작권위원회는 A 교수가 박사학위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표절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12편의 논문을 비교, 감정했다. 반복된 조사 엇갈린 판정 결국 법정 공방으로 번져 <일요시사>가 입수한 감정 결과서에 따르면 A 교수의 논문은 총 12편의 비교 대상 논문 중 총 11편에 대해 저작권법상 보호를 받는 창작적인 표현 형식을 상당 부분 복제하고 있다며 저작권법상 실질적인 유사성이 인정된다고 했다. 또 ‘단순히 학술적 아이디어나 이론적 사실을 공유하는 수준을 넘어 선행 저작자들이 자신의 학문적 관점과 예술적 주관에 따라 논리적으로 체계화한 문장 구조, 단어 선택, 서술 방식 등을 그대로 사용했다’ ‘외국 문헌을 연구자 본인의 시각으로 재해석해 요약하거나 번역한 문장의 경우에도 원저작자의 창작적 개성이 반영돼 저작권법의 보호 범위에 포함됨에도 불구하고 A 교수의 논문은 이를 무단으로 복제해 논문에 활용했다’ 등의 감정 결과를 내놨다. B 교수는 “저작권법 위반 여부는 표절보다 그 인정 범위가 좁다. 논문의 독창성을 저작권으로 인정해 그 부분을 침해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한국저작권위원회의 결론은 A 교수가 다른 사람이 쓴 논문의 독창성을 인용 없이 가져다 썼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광주대의 운영 주체인 호심학원 관계자는 “소송 중인 사안으로 드릴 말씀이 없다”는 답변을 해왔다. 문제는 상황이 여기까지 흘러오는 동안 손 놓고 있는 진주교대의 태도다. A 교수의 박사학위 논문 표절 여부는 진주교대의 교수 채용과 밀접하게 얽혀있다. 채용 공고에서 지원 자격으로 박사학위 소지자가 명시됐던 만큼 논문 표절 여부는 이번 논란의 중요한 요소다. 표절로 판명되면 학위 자체가 취소되는 사례도 있어 A 교수가 진주교대 교수 채용에 아예 지원조차 할 수 없었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진주교대는 ‘강 건너 불구경 하듯’ 광주대와 B 교수 간의 소송 결과가 나오고 그에 따라 광주대가 조치한 뒤에야 행동을 취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진주교대 교무처 관계자는 “(학교가) 손 놓고 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며 “소송이 진행 중인 만큼 결과를 기다리는 과정에서 법률 검토 등 내부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B 교수는 “학교는 학생들의 수업권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다. 그저 누가 학교에 책임을 물을까 봐 전전긍긍할 뿐이다. 학교 측에서 했다는 법률 검토도 현재 손 놓고 있는 학교의 행보가 나중에 직무유기로 문제가 될까 알아본 것이라고 한다. 교대는 학생들이 커리큘럼에 따라 수업을 신청해야 하는 구조라 교수에게 문제가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수업을 들을 수밖에 없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학생들만 뒷전 됐다 그러면서 “광주대와의 소송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면 그 결과가 나올 때까지만이라도 A 교수가 수업을 하지 못하도록 제한해야 한다. 공무원의 경우 문제가 발생하면 일단 ‘직위해제’ 조치를 하지 않나. 그런 조치가 필요하다. 초등학교 교사를 길러내는 대학이다. 학교가 그 이름에 걸맞은 행보를 보여야 한다”고 거듭 주장했다. 한편, A 교수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드릴 말씀이 없다”고 답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