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헌재 결정에도…‘말 많은’ 김영란법 해부

의원님들 입맛 따라 ‘넣고 빼고’

[일요시사 취재1팀] 안재필 기자 = ‘부정청탁’에 대한 이슈가 올라오면 대중은 분노 이전에 ‘그럼 그렇지’라는 생각을 바탕에 깔고 판단한다. 그만큼 부정청탁에 대한 인식은 일반화되어 있다. 이를 극복하고자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일명 ‘김영란법’이 나왔다. 탈도, 말도 많은 김영란법이 합헌 되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본다.

김영란법은 지난 2012년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추진했던 법안이다. 공직자나 국회의원이 100만원이 넘는 금품이나 향응을 받으면 대가성이 없어도 형사처벌을 받는다’는 것이 골자다. 지난 2015년 3월에 국회본회의에 통과되었으며 1년6개월간의 유예기간을 거쳐 오는 9월28일 시행된다.

9월28일 시행
관련산업 맨붕

부패방지 제재에 관한 관심은 지난 2011년 불거진 속칭 ‘벤츠 여검사’사건에서 시작된다. 내연관계의 여검사 A씨와 남변호사 B씨가 연루된 형사사건이다. 두 사람의 관계는 A씨가 검사가 되기 전부터 이어졌다. A씨와 연인관계가 된 부장판사 출신 B씨는 아파트 보증금을 대신 내주거나 다이아 반지, 시계 등을 선물했다. 심지어 지난 2008년엔 벤츠 승용차를 리스해주고 2010년엔 신용카드도 줬다. 그러던 중 A씨는 B씨에게 사건 하나를 부탁받았다.

B씨가 동업중인 건설업자와 분쟁이 생겨 고소하게 된 일로 A씨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B씨는 A씨에게 “담당검사에게 부탁해서 동업자가 구속되거나 고소 사건이 신속하게 처리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한다. 이에 A씨는 담당검사에게 직접 사건을 빨리 처리해주면 좋겠다는 말을 전했다.

이러한 사실은 B씨의 또 다른 내연녀가 검찰에 진정을 내면서 드러났다. 특임검사팀도 꾸려져 조사에 들어갔다. 검찰은 A씨의 행동이 단순 부적절한 관계를 넘어 형사처벌 대상이라고 판단 A씨를 알선수재 혐의로 기소했다.

당시 피고인으로 법정에 선 A씨는 “청탁 받은 기억이 없다”고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탁을 받았다 하더라도 의혹이 되고 있는 신용카드나 벤츠 승용차는 대가성이 없고 사랑하는 연인을 위한 호의적 행동이라는 주장을 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A씨가 B씨에게 받은 금품들이 청탁의 대가로 보기 힘들다는 판결이 나온 것이다. 법원은 A씨가 받은 금품은 내연관계의 B씨에게 선물 받은 것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A씨는 지난 2015년 4년간의 재판 끝에 무죄판결을 받았다.

이와 같이 대가성이 없다는 이유로 처벌할 수 없는 일이 생기자 부패 방지를 위해 더욱 강한 제재 수단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다. 이후 김 전 위원장은 제정안을 발표한다. 형법 등에 뇌물죄가 있지만, 뇌물죄가 성립하려면 직무관련성이나 대가성이 입증되어야 했다. 김 전 위원장은 대가성이 없어도 금품과 향응 등을 받으면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김 전 위원장이 제출한 원안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명목에 상관없이 공직자가 금품이나 향응을 받거나 요구, 약속을 하면 처벌받는다(제공자도 마찬가지). 금액이 100만원이 넘을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수수 금액 5배 이하의 벌금을 받는다. 100만원 이하면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내야한다.
▲제 3자를 통해 부정 청탁을 하면 이해당사자와 제 3자 모두 처벌을 받는다. 이때 1000만∼30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고위 공직자나 인사 담당자가 자신의 가족을 소속 기관에 채용하거나, 본인·가족·친척과 이해관계가 있는 직무를 수행하는 것을 금지한다. 위반할 시 3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차관급 이상 공직자, 지자체장, 공공기관장이 새로 임용되면 민간에서 했던 관련 업무에 2년간 참여할 수 없다.

이후 김 전 위원장은 남편 강지원 변호사가 대통령선거에 출마하자 돌연 사직서를 냈다. 발의한 법안 중 ‘고위 공직자와 이해관계가 있는 자리에 친인척을 두면 안 된다’는 조항에 위반이 된다는 이유였다.

수정 또 수정
제 모습 잃어

지난 2013년 5월 권익위와 법무부가 법안 내용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지나치게 가혹하고 법리에 맞지 않다’며 반대를 하던 법무부와의 합의여서 이목을 끌었다. 하지만 법안 내용이 눈에 띄게 변해 구설수에 올랐다. 이해관계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든 금품을 받으면 처벌할 수 있다는 조항이 삭제된 것이다.

논란이 커지자 권익위는 말을 바꿨다. 수정안인 ‘직무 관련성이 있을 때만 처벌한다’는 조항은 유지하면서 직무 관련자의 범위를 ‘공직자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이들’로 변경했다. 그러나 이러한 권익위의 입장은 원안에 가깝게 직무 관련 여하를 떠나 누구에게든 금품을 받을 수 없도록 하겠다고 변한다.

이에 정홍원 전 국무총리는 ‘직무와 관련하여 또는 그 지위·직책에서 유래되는 사실상 영향력을 통한 금품품수는 대가 관계가 없더라도 형사처벌’을 받도록 했다. 직무관련성이 없는 돈을 받은 경우는 형사처벌에서 과태료를 물리는 것으로 후퇴한다. 이는 원안에 비해 원만해졌다는 원성을 샀다. 이후 김영란법은 국회로 넘어가게 됐다.

하지만 국회는 김영란법을 신경쓰지 않았다. 여야는 법안을 처리하겠다는 말을 반복했지만 아무런 결과를 보이지 못했다. 국회에서 김영란법에 대해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된 것은 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면서부터다. 참사의 원인으로 한국 사회에 만연한 각종 청탁 등 부정부패가 지목됐기 때문이다.



2011년 벤츠 여검사 사건서 촉발
당시 김영란 위원장이 처음 제의


일명 ‘관피아’를 바로잡을 대책으로 김영란법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후 국회 정무위원회(이하 정무위)는 총 6차례에 걸쳐 법안심사 소위를 열었다. 김영란법은 지난 2015년 정무위 전체회의에서 의결됐다. 그러나 여기서도 변화를 거치게 된다.

법안 적용 대상자를 공직자에서 언론종사자와 사립학교 교직원까지 확대한 것이다. 사립 유치원과 학교 교직원들이 포함된 것도 논란이 됐다. 넓어진 적용 범위에 혼란은 계속됐다. 이어 지난 2015년 3월3일 여야가 법안 최종안에 합의하고 국회 본회의에서 김영란법을 처리하기로 했다. 투표에 참석한 의원들은 총 247명으로 찬성 228명, 반대 4명, 기권 15명으로 압도적인 찬성률을 보였다.

통과된 법안에는 원안에 있던 ‘이해충돌 방지법’이 제외돼 있었다. 이해충돌 방지법은 김영란법의 핵심 중 하나다. 국회의원을 포함한 고위 공직자나 인사 담당자가 자신의 가족을 소속 기관에 채용하거나, 본인·가족·친척과 이해관계가 있는 직무를 수행하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이다.

이로 인해 김영란법은 반쪽짜리 법안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어 부정청탁 금지 대상에서 국회의원 등 선출직 공직자 일부가 처벌대상에서 제외됐다. 조문 5조 2항에 ‘공익적인 목적으로 제 3자의 민원 전달 행위’를 예외조항으로 세운 것이다. 지역 주민들의 고충이나 민원을 정부에 전달하는 것은 선출직 공직자들의 고유 업무이기에 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였다.

당시 김 전 위원장은 “자칫 잘못하면 국회의원 등 선출직 공무원이 브로커화 될 수 있는 현상을 용인하는 결과가 초래된다”며 우려를 표했다. 또 “적절히 거르겠지만 (부정청탁의)문을 열어놓는 결과가 되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기 위해 만든 취지에 비춰보면 (선출직 공직자)본인에게 스스로 걸러주는 것을 맡기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약 4년간 수술대에 올랐던 김영란법은 몇 가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우선 헌법상 연좌제 금지에 대한 위헌시비가 있다. 김영란법 22조 2항에 ‘수수 금지 금품 등을 받거나 요구하거나 제공받기로 약속한 사실을 알고도 신고하지 아니한 공직자’를 벌한다는 조항이 있어 이는 위헌이라는 것이다.

현행 형법에서 친족은 가족의 범죄를 숨겨주더라도 은닉죄에 해당하지 않는데 반해 김영란법에서만 은닉을 벌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비판이 일었다. 형법 151조 2항은 ‘친족 또는 동거의 가족이 본인을 위하여 전항의 죄를 범한 때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과잉금지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말도 나왔다. 언론종사자와 사립학교 교직원 등 민간영역에 속하는 이들을 대상에 포함하는 것은 침해의 최소성에 어긋난다는 의견이다. 과잉금지의 원칙은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법률은 목적의 정당성과 방법의 적절성, 법익의 균형성 침해의 최소성 등이 준수되어야 한다’고 지정하고 있다.

‘사회상규에 따라 허용되는 금품’의 범위가 애매하다는 지적도 있다. 업무와 관련이 없는 연인들의 선물 등도 물품의 금액에 따라 처벌받을 수 있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는 주장이다. 물품의 금액으로 뇌물 여부를 판단하다보니 고가 선물세트를 판매하는 업계에 피해가 우려된다는 의견도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이하 한경연)에선 김영란법 시행 시 약 11조원의 경제 손실이 우려된다는 보고서를 제출했다. 한경연은 비용제한 한도액을 상향 조정 할 시 업계에 미치는 경제적 손실이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음식 접대비 상한을 3만원으로 하면 음식업계는 연 8조5000억원 정도의 매출이 줄어들지만 5만원으로 올리면 감소액이 4조7000억원으로 줄어든다는 것이다.

이에 김영란법의 상한선을 인상해야한다는 말도 나왔다. 농림축산식품부는 김영란법 적용 대상에서 농축산물을 빼줄 것을 권익위에 건의했다. 건의안에는 식사 5만원, 선물 10만원의 인상안과 김영란법의 시행시기를 5년 이후로 하자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뇌물 상한선 인상’이냐는 비난도 나타났다. 앞선 일들로 인해 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대한민국 부패 규모가 11조란 소리인지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부패 방지’사회적인 공감대 형성
국회 거치면서 이상하게 다듬어져


논란이 많은 탓에 김영란법은 시행이 되기도 전인 지난 28일 헌법재판소에서 위헌심사를 받게 됐다. 결과는 ‘합헌’판정이었다. 판정이 내려지기 전 가장 큰 쟁점은 대한변호사협회 등이 “언론인과 사립학교 관계자를 적용 대상에 포함한 것은 언론과 사학의 자유를 침해하고, 배우자의 금품 수수에 대한 신고를 의무화한 것은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낸 헌법소원이었다.

이는 “교육과 언론이 국가나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고, 이들 분야의 부패는 피해가 광범위하지만 원상회복이 어렵다”며 관계자들은 공직자에 버금가는 청렴성, 업무 불가매수성이 요청된다며 합헌 판정을 받았다.

부정청탁과 사회상규 등 조항의 모호성에 대해선 “부정청탁이란 용어는 여러 법령에서 사용되고 있으며 대법원도 많은 판례를 축적하고 있다. 사회상규도 형법 제20조에서 사용되고 있는 등 명확성 원칙에 위배된다고 보기 어렵다”며 전원일치로 합헌 판정 됐다.

배우자의 금품 수수 신고 의무에 관한 조항도 합헌 판결이 났다. 이 조항에 대해 재판관들은 “배우자를 통해 부적절한 청탁을 시도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고지할 의무를 부과할 뿐”이라며 “연좌제에 해당한다거나 양심의 자유를 직접 제재한다고 볼 수 없다. 배우자에 대해서는 어떠한 제재도 가하지 않는 만큼 기본권 침해도 최소화했다”고 밝혔다.

사회상규에 따라 허용되는 금품에 관한 위임조항 역시 합헌 판정을 받았다. 재판관들은 “사교·의례 목적의 경조사비·선물·음식물 등의 가액을 일률적으로 법률에 규정하기 곤란하다. 탄력성이 있는 정부 시행령에 위임할 필요성이 인정된다”는 의견을 냈다.

김영란법은 합헌 판정을 받아 오는 9월28일 시행된다. 여야는 대부분 헌재 판결을 수용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법 시행 시 부작용을 우려하는 시선은 여전하다.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은 “시행착오가 많이 생길 것”이라며 국내 경제에 미칠 부작용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헌재 판단에도
계속되는 논란

국민의당 황주홍 의원은 시행령에 규정된 음식접대 상한액을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금지하고자 하는 것은 현금과 부정청탁이 오가는 것과 차떼기(비자금을 현금으로 제공)”라며 “밥을 3만원짜리를 먹느냐, 선물을 5만원짜리를 하느냐에 대한 것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선 조문 5조2항에 국회의원이 빠져나갈 구멍이 있다는 점도 지적됐다. 시행을 앞두고 있는 김영란법은 여전히 뜨거운 감자로 남아있다.
 

<anjapil@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김영란법’ 김영란 누구?


1956년생으로 부산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법과대학을 졸업하였으며 재학 중 사법시험에 합격해 판사가 됐다. 제 18대 대통령 선거 후보였던 강지원 변호사가 남편이다. 노무현정권 때 대법관을 지내고 이명박정권 들어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남편인 강 변호사가 대통령 선거 후보로 출마하면서 권익위원장 자리에서 물러나 현재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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닻 올린 ‘2차 계엄’ 수사 큰 그림

닻 올린 ‘2차 계엄’ 수사 큰 그림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내란 특검팀이 2차 계엄 의혹에 대한 실마리를 풀기 시작했다. 비상계엄 선포 다음 날인 지난해 12월4일 새벽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가 핵심이다. 법무부와 민정수석실 간 교감과 이날, 군 수뇌부의 움직임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당시 상황을 재구성 중인 특검팀은 윤석열 전 대통령을 재소환할 방침이다. 내란 특검팀(특별검사 조은석)은 비상계엄 선포 이후의 상황을 재구성해 왔다. 법무부와 민정수석실의 역할은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고 있다. 특히 2차 계엄 논의 여부는 여전히 의혹에 그치고 있다.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과 김주현 전 민정수석이 무엇을 위한 법률을 검토했는지가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안가 회동 정조준 특검팀은 지금까지 12·3 내란이 어떻게 준비됐는지에 대해 수사력을 집중했다. 북풍 공작과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 국군정보·방첩사령부의 움직임 등이 상당 부분 사실로 확인됐다. 내란 이후의 상황을 수사하기 시작한 특검팀은 지난달 24일 오전 10시 박 전 장관을 소환 조사했다.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를 받는 박 전 장관은 13시간가량 조사를 받고 귀가했다. 박 전 장관은 내란 당일 대통령 집무실에서 계엄 선포 계획을 가장 먼저 들은 국무위원 중 한 명이다. 이후 법무부로 돌아와 실·국장 회의를 열고 검찰국에 ‘합동수사본부 검사 파견 검토’ 지시를 내렸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계엄 당일 법무부 출입국본부에 출국금지팀을 대기시키라고 지시한 혐의도 적용됐다. 계엄 이후에는 정치인 등 수용을 위해 교정본부에 수용 여력 점검 및 공간 확보를 지시한 혐의도 있다. 특검팀은 이를 뒷받침할 만한 근거로 그가 지난해 12월3일 오후 11시쯤 대통령실에서 정부과천청사로 이동하면서 통화한 내역을 확보했다. 박 전 장관이 통화한 인물은 임세진 전 검찰과장, 배상업 전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 신용해 전 교정본부장, 심우정 전 검찰총장 등이다. 임 전 과장은 박 전 장관과의 통화를 마치고 검사·수사관 인사를 담당하는 실무진 2명에게 전화를 걸었고, 배 전 본부장은 출국금지·출입국 관련 담당자들에게 연락했다. 신 전 본부장은 김문태 전 서울구치소장과 연락을 취했다. 박 전 장관은 이후 간부 회의를 열어 관련 논의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다음 날 한상대 전 검찰총장과 연락하기도 했다. 한 전 총장은 퇴직 검사 모임인 검찰동우회 회장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과 탄핵 당시 가장 많이 연락한 인물이다. 국회 계엄 해제 요구안 의결 이후에는 김 전 수석과 비화폰으로 통화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검팀은 두 사람이 2차 계엄 등 후속 대책을 논의했다고 보고 있다. 박 전 장관 측은 김 전 수석에게 포고령에 문제가 있으며 국회가 의결했으니 국무회의를 신속히 소집해 계엄을 해제해야 한다고 전했다는 입장이다. 박성재·김주현 곧바로 2차 계엄 법률 검토? 용산 CCTV 속 최측근들 메모 후 문건 만지작 특검팀은 박 전 장관이 ▲계엄사령부 산하 합동수사본부 검사를 파견하라고 검찰국에 지시 ▲출입국본부 ‘출국금지팀’ 대기 지시 ▲교정본부 수용 여력 점검 및 공간 확보 지시 등을 추진했다고 판단한다. 조사를 마친 박 전 장관은 “제가 한 일에 대해 소상하게 다 말씀드렸다”며 “통상적인 업무 수행에 대한 다른 평가를 하는 것에 대해 제가 알고 있는 모든 내용을 상세하게 말씀드렸다”고 했다. 이어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지속적으로 특검법의 위헌성에 대해 지적을 했었는데, 이 부분이 현재 특검법에도 시정되지 않은 채 시행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 점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어떤 내용을 (특검에) 말했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의문이 제기되는 모든 점에 대해 상세히 말씀드렸다”고 답했다. ‘혐의를 전면 부인하는지’ 묻자 “나는 항상 업무를 했을 뿐”이라고 했다. ‘5급 이상 간부들에게 비상대기를 지시했다’는 주장에는 “부당한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했다. ‘구치소장 연락 지시’ 관련 질문에는 “질문이 어디에 근거한 것인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수용 지시가 계엄과 관련됐느냐’는 질문에는 “누구에게도 체포·구금하라는 지시를 한 사실이 없다”고 답변했다. 특검팀은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직전 국무회의를 열기 위해 일부 국무위원을 용산 대통령실로 소집했을 때의 CCTV 영상도 확보했다. 박 전 장관은 대통령실 대접견실에서 A4 용지에 직접 내용을 메모하고 특정 문건을 들여다봤다고 한다. 특검팀은 그가 윤 전 대통령 등으로부터 문건 형태로 계엄 이후 법무부가 해야 할 조치 등을 지시받고 현장에서 이를 직접 정리했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 앞서 계엄 선포 당일 대통령실에 모인 일부 국무위원 등은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계엄 이후 조치 사항이 담긴 문건을 직접 전달받았다. 최상목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계엄 이후 가동할 비상입법기구 예산 편성 등을 지시받았고,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은 <경향신문> 등 언론사에 단전·단수 조치하라는 지시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지시를 한 사실 없다” 조태열 전 외교부 장관은 ‘공관을 통해 대외 관계를 안정화시키라’는 지시를 받았다. 박 전 장관 측은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개별 지시 문건을 받지 않았고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법무부에 지시를 내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지난달 24일 특검 조사에서도 A4 용지에 메모했는지 등에 대해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장관 측은 이날 “해당 CCTV 장면을 보여달라”는 취지의 의견서를 특검에 제출했다. 특검팀이 김 전 수석을 소환한 건 지난 7월 초다. 그는 지난해 12월4일 서울 삼청동에 위치한 대통령 안전가옥(안가)에서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박 전 장관, 이완규 전 법제처장 등과 계엄 관련 법률 검토를 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모두 윤 전 대통령과는 고교·대학 및 검찰 동기나 선·후배로 윤석열정부 최고위직 법률가들이다. 지난해 말부터 정치권에서 “비상계엄 수사 등 법률적 대응 방안 또는 제2의 내란 모의 가능성을 논의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자 이들은 국회와 경찰 조사에서 “연말에 얼굴 보자는 취지였다”(박성재 전 장관), “신세 한탄이나 하자는 자리였고, 법률을 검토할 겨를도 없었다”(이상민 전 장관)며 의혹을 부인했다. 그러나 검찰과 경찰은 이 자리에 한정화 전 법률비서관이 동석한 사실을 확인했다. 주변 CCTV 등 안가 회동 참석자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한 전 비서관의 존재를 인지하고 소환 조사까지 진행했다. 특검팀은 삼청동 안가 모임 성격을 ▲비상계엄 선포 절차 사후 보완 ▲대통령 탄핵 대비 법적 대응 논리 개발 자리 등으로 보고 있다. 특히 내란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나온 관련자 진술의 위법성을 면밀히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장관과 김 전 수석, 이 전 처장 등은 안가 회동 이후 휴대전화를 바꿨다. 류혁 전 법무부 감찰관은 지난 3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윤 전 대통령 최측근으로 꼽히는 김주현 전 민정수석,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 등 밑에서 일하던 검찰 고위 관계자들은 대통령을 ‘운명 공동체’로 생각한다”며 “박 전 장관이나 김 전 수석에 대해서는 검찰이 적극적으로 수사하지 않았다. 이들에 대해 합리적이고 납득할 만한 수사 결론이 나오지 않으면 국민이 받아들이겠나. 모든 의혹이 해소될 때까지 그 사람들에 대한 수사는 계속돼야 한다. 이들은 죽을 때까지 수사선상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증거 이미 폐기했다? 특검팀은 과거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가 작성했던 수사보고서도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검찰 특수본 수사보고서의 제목은 ‘2차 비상계엄 가능성에 대한 의혹 등 정리 보고’다. 수사보고서에는 “12·4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통과되고 난 직후, 윤 대통령이 계엄사령부 상황실로 찾아가 김용현 국방부 장관에게 ‘왜 국회의원들을 잡지 않았느냐’ ‘내가 다시 계엄을 할 테니 그때는 철저히 준비해서 국회부터 장악하라’라고 지시한 정황”이 있다고 적혔다. 해당 의혹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처음 제기했다. 민주당은 지난해 12월6일 비상 의원총회에서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2차 발령을 준비했다는 정황을 공개했다. 검찰이 이 같은 민주당의 의혹 제기와 관련해 수사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수사보고서에 “계엄사령관인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은 윤 대통령, 김용현 장관과 함께 합참 지휘통제실 내 별도의 방에 들어갔다고 국방위 현안 질의에서 답한 바 있으나 대화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발언했으나 박 총장이 답변한 날인 12월5일은 윤 대통령의 위와 같은 발언이 공개되지 않은 시점”이라며 박 전 총장에 대해 조사 필요가 있다고 적었다. 검찰은 수사보고서에서 시민단체와 언론사 보도 등 2차 계엄 의혹과 관련한 의혹 확인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육군 복수 부대에 지휘관 휴가 통제 지침이 내려졌고 비상계엄 선포 이후 경계 태세가 유지되고 있다는 의혹과 계엄 둘째 날 지방 공수여단의 서울 진입 계획이 있었다는 육군특수전사령부 간부의 언론사 인터뷰 등이 그 근거다. 검찰은 윤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에게 ‘국회 문을 열고 들어가 의사당 내 의원들을 밖으로 이탈시킬 것’이라고 동일한 명령을 내렸지만, 지시가 이행되지 않아 2차 계엄이 준비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12월4일 새벽 중요…검도 “수사 필요” 인정 자료 이미 사라졌나…용산 PC 전부 포맷 확인 검찰은 수사보고서에 “윤 대통령의 ‘국회의원 이탈 명령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자 김 장관에게 위와 같은 발언(왜 국회의원들을 잡지 않았느냐)을 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어 보이고, 이와 더불어 ‘추가 계엄 선포’와 관련된 발언을 했을 가능성도 있어 보이므로 관련 내용 수사 필요성 있음”이라고 적었다. 특검팀은 대통령실 고위 간부들이 조직적으로 2차 계엄 관련 자료를 폐기했다고 보고 있다. 지난달 18일 정진석 전 대통령실 비서실장을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한 특검팀은 정 전 실장에게 계엄 이후의 상황을 따져 물은 것으로 파악됐다. 정 전 실장은 불법 계엄 전후 윤석열 전 대통령을 가까이서 보좌했다. 그는 계엄 선포 직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 있었다. 국무위원은 아니지만 계엄 선포 전 국무회의에 신원식 전 국가안보실장과 함께 참석했다. 이튿날 새벽에 계엄 해제 국무회의가 열리기 전, 윤 전 대통령이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에 머물 때 찾아가 만나기도 했다. 정 전 실장은 지난해 12월4일 국회가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한 이후 윤 전 대통령, 박 전 총장, 김 전 장관 등과 함께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 내 결심지원실에 함께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의결된 후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와도 통화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앞서 “지난해 12월4일 오전 2시58분쯤 정 전 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국회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정부에 도착했음을 확인하고 정부의 신속한 계엄 해제 조치를 촉구했다”고 밝혔다. 정 전 실장은 대통령실 윗선이 계엄 증거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의혹에도 연루돼있다. 특검은 지난 4월 대통령실 컴퓨터(PC) 전체 초기화 계획이 정 전 실장의 지시로 실행됐을 가능성을 살펴보고 있다. 특검팀은 앞서 별도 전담팀을 꾸려 정 전 실장 관련 의혹을 수사해 왔다. 특검팀은 이날 정 전 실장을 상대로 계엄 당시 국무회의와 대통령실 상황, 추 전 원내대표와의 통화 경위 등을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간이 부족하다 특검팀은 박 전 총장도 참고인 신분으로 재조사했다. 앞서 박 전 총장은 계엄 당시 계엄사령관으로서 불법 포고령을 발령한 혐의(내란중요임무종사) 등으로 구속 기소됐다. 박 전 총장도 국회가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한 뒤 윤 전 대통령, 김 전 장관 등과 합참 결심지원실에 함께 있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