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궁지 몰린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성공가도 스톱 ‘독종의 몰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재필 기자 = 검찰에서 손꼽히는 특별수사통으로 불리던 우병우 민정수석이 도마에 올랐다. 청와대 안팎에서 우 수석을 거론할 때 ‘실세’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박근혜 대통령의 신임을 받고 있어서 ‘리틀 김기춘’으로 불리기도 한다. 우 수석의 현재까지의 자취를 짚어봤다.

검사 시절 ‘독종’으로 불린 우병우 수석은 ‘엄친아’ 스타일의 수재였다. 1967년 교사 집안에서 태어나 1984년 영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학력고사서 전국석차 53위의 성적을 냈다. 이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들어가 3학년인 1987년 만 20세에 사법시험 최연소 합격자가 됐다. ‘소년등과’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리틀 김기춘’
대통령 신임

우 수석은 1990년 제 19기로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후 검찰에 들어가 검사의 길을 걸었다. 검사 생활 내내 선두권으로 평가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업무를 뚝심있게 밀어붙이지만 성격이 깐깐하다는 말도 들었다. 서울중앙지검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한 우 수석은 서울중앙지검 형사 4부와 6부를 거쳐 대구지검 경주지청, 창원지검 밀양지청, 제주지검 등에서 일했다.

평검사 시절 우 수석의 전적은 화려하다. 그는 조폭 서방파 행동대장과 대전진술파 두목은 물론 이대병원 수련의 임용과정서 돈을 받고 혜택을 준 피부과장을 구속했다. 서울 시내 폐수·소음·진동을 배출한 환경오염업체 55곳과 세균폐수를 방출한 중대부속병원 등 굵직한 병원도 적발했다. 1992년엔 대구지검 경주지청 검사로 있으면서 경주대 설립자 민자당 전 김일윤 의원을 학교공금 53억원 횡령으로 기소해 주목받았다.

지난 1999년 법무부 국제법무과를 거처 2001년 서울 동부지청 형사6부에 배치되면서 우 수석은 다시 ‘수사 검사’로 돌아갔다. 이때 영화배급을 대가로 금품을 수수한 직배영화사 전 대표와 영화사 대표를 구속했다. 2002년까진 ‘이용호 게이트’ 특검팀의 특별수사관으로 있었다. 당시 우 수석은 송해운·윤대진 검사와 함께 이용호 게이트 특검 특별수사관 3인방으로 활약했다.


이용호 게이트는 권력형 게이트의 전형, 모범답안이라고 불린다. 이 게이트는 지난 2001년 이용호 G&G그룹 전 회장이 계열사 전환사채 680억원을 횡령하고 보물선 사업 등을 미끼로 주가를 조작해 구속기소되면서 시작됐다. 당시 검찰은 이 전 회장의 주가조작 혐의에 대해 불기소 처분을 내렸고 이에 검찰에 대한 의혹이 터져 나왔다.

이로 인해 이 전 회장이 김대중정부와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것이 드러났다. 그가 구속되면서 여당, 검찰, 국정원, 금감원, 국회 등 관련자들이 줄줄이 검찰에 소환되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여기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 김홍업도 포함돼 있었다. 이용호 게이트 특검은 노무현정부 시절 ‘대북송금 특검’과 함께 가장 성공한 특검으로 평가받는다. 당시 차정일 특검이 우 수석을 두고 “매우 훌륭한 검사”라는 평가를 한 기록도 있다.

‘엄친아 수재’ 20세 사시 최연소 합격
깐깐·묵묵 평검사 시절…전적은 화려

우 수석은 이용호 게이트 특검 수사 등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특수통 검사’의 길에 접어 들었다. 그는 2002년 춘천지방검찰청 영월지청장으로 부임했고, 2003년엔 서울지방검찰청 부부장을 맡기도 했다. 이 시절 우 수석은 민주당 이정일 전 의원을 상대 후보 도청기 설치 의혹으로 긴급체포하는가 하면, 잠실야구장 광고물 수의계약 뇌물수수로 이상국 전 한국야구위원회(KBO) 사무총장을 구속시키기도 했다.

카드깡을 통한 강원랜드 도박자금 제공과 메인 카지노 진입도로 보강공사 비리혐의를 받던 김광식 전 강원랜드 대표도 그의 시선을 벗어나지 못했다. 특히 우 수석은 삼성그룹의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발행사건’ 수사에 참여해 두각을 나타냈다.

당시 수사진은 업무상 배임의 공소시효(7년)을 하루 앞두고 전·현직 에버랜드 사장을 전격 기소했다. 그들은 공소시효가 끝나기 전에 전환사채 헐값 발행에 직접 관여한 인사들을 표본으로 기소해 공소시효를 정지시켰다. 이 아이디어는 우 수석이 낸 것으로 알려졌다.

공직자 재산 NO.1
재벌사위로 유명


지난 2008년 서울중앙지검 금용조세조사2부장 땐 이명박 전 대통령의 처사촌 김옥희씨의 공천 청탁 금품수수 사건도 수사했다. 이명박정권이 출범한지 5개월 만에 일어난 사건이었다.

김옥희씨는 한나라당 비례대표 공천을 미끼로 30억여원을 받은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를 받고 그 해 8월 구속됐다. 이후 2009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중앙수사1과장이 되면서 ‘박연차 로비’ 사건을 맡게 된다. 여기서 우 수석의 승진 가도는 멈춘다.

박연차 로비는 지난 2008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둘째 형인 노건평이 뇌물 수수혐의로,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정관계에 뇌물을 제공한 혐의로 구속되면서 노 전 대통령에게 이어졌다. 대검찰청은 박 회장이 노 전 대통령에게 15억을 받았다는 차용증을 확보했다.

이후 2009년 우 수석과 이인규·홍만표가 수사에 투입됐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그의 부인과 조카사위 등이 박 회장으로부터 총 600만달러(약 68억원)를 받았다는 혐의를 받고 중앙수사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당시 우 수석은 이 사건의 주임검사로 미리 준비한 200여개의 질문으로 노 전 대통령을 심문했다.

그는 윗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 소환 조사 후 20여일 뒤 언론에 유출되던 수사과정과 악의적 보도에 시달리던 노 전 대통령은 고향의 부엉이바위에서 뛰어내려 생을 마감했다.

그 여파로 임채진 검찰총장이 퇴진하기도 했다. 이후 우 수석은 자리를 옮겨 대검 범죄정보기획관과 수사기획관을 지냈다. 지난 2011년에는 부산저축은행 사건 수사를 지휘하고 이후 인천지검 부천지청장과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을 거치기도 했다.

당시 김준규 신임 검찰총장과 법무부에서 함께 일하는 등 인연이 있었던 덕분이라는 말도 있었으나 노 전 대통령을 직접 수사한 것이 약점이 되어 두 번의 검사장 승진에 실패하게 된다. 대검의 한 관계자는 “노 전 대통령 수사에 참여한 것 때문에 검사장 승진이 좌절됐다”고 말했다. 결국 지난 2013년 우 수석은 검찰을 떠나게 된다.

우 수석은 고위 공직자 중 가장 재산이 많은 사람으로도 꼽힌다. 그는 검사 시절부터 ‘재력가 사위’로 알려졌다. 지난해 청와대 민정비서관에 발탁되며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재산을 공개했을 때 신고한 재산은 423억3230만원이었다. 지난 3월에는 393억6754만원으로 집계됐다.

우 수석의 장인은 고 이상달 기흥CC 및 정강중기·건설 회장이다. 이 회장은 4명의 딸을 뒀는데, 이 중 한명이 우 수석과 결혼을 했다. 두 사람은 우 수석이 20대 새내기 검사 시절에 만난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은 지난 2008년 사망했고 그의 재산은 부인과 4명의 딸들이 물려받았다. 그의 부인은 (주)에스디엔제이홀딩스 주식을 2200주(자본금의 20%)를 보유하고 있다. (주)에스디엔제이홀딩스는 현재 기흥 CC를 운영하고 있는 (주)삼남개발의 모회사로 자산총액은 토지를 포함해 1967억원에 이른다.

우 수석의 재산은 지난해 기준으로 본인과 부인 명의 예금 183억2077만원,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 있는 현대아파트 등 건물 66억8651만원, 사인간 채권 165억8051만원 등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그의 검사장 탈락은 노 전 대통령 수사보다 ‘너무 많은 재산’이 문제였다는 견해도 있다. 검사가 재산까지 많다면 사회에서 질시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다.

강직했는데…
먹구름 낀 앞날


두 차례 승진에서 떨어지며 검찰을 떠났던 우 수석은 박근혜 정권 2년차인 지난 2014년 청와대 대통령비서실로 새 출사표를 냈다. 그는 민정수석실의 민정비서관으로 근무하며 입지를 다지기 시작한다. '리틀 김기춘'이라고 불린 것도 이 시점부터다.
 

청와대서 일하기 시작하면서 우 수석은 청와대 문건 유출사건 등 까다로운 일들을 무난하게 마무리하면서 김기춘 전 비서실장에게 높은 신임을 얻는다. 상관인 김영한 전 민정수석을 통하지 않고 김 전 실장에게 직접보고를 하는 일도 잦아졌다.

이에 김 전 수석은 사석에서 “재임 7개월 동안 제대로 박 대통령에게 대면보고를 하지 못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후 김 전 수석은 ‘정윤회 문건’ 유출자를 회유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청와대 문건 유출사건으로도 불리는 이 사건으로 인해 그는 지난해 1월 ‘항명사태’를 일으키며 사의를 표명한다. 일각에선 우 수석이 김 전 실장에게 직보하는 일이 벌어지면서 생긴 갈등이 사의의 원인이라는 말도 있다.

민정비서관 시절 이미 우 수석은 민정수석실 파견 인원의 상당수를 교체하는 데 앞장서는 등 실 내의 권한이 컸다는 말도 전해진다. 당시 한 청와대 관계자는 “조직을 다잡고 일을 밀어붙이는 기질 면에서 김기춘과 우병우 두 사람은 닮은 점이 있다”고 했다.

김 전 수석의 자리가 공석이 되면서 우 수석은 청와대에 들어간 지 8개월 만에 민정수석이 됐다. 노무현정부 시절 전해철 민정수석(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같이 40대에 민정수석에 오르는 기록을 세운 셈이다. 동급의 자리인 법무부장관으로 당시 황교안 국무총리가 재직하고 있었다. 그는 우 수석과 열 살 정도 차이가 난다. 이 같은 초고속 승진도 흔치 않다.

‘뒤 구린’ 굵직한 사건들
알고 보니 수백억 ‘갑부’


민정수석의 자리는 무겁다. 민정이라는 글자 그대로 민심의 동향, 국민들의 여론을 파악해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일을 주업무로 삼는다. 국정의 모든 부분에서 대통령을 보좌하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공직사회 감찰과 기강 확립 등으로 청와대 업무 대부분에 관여하니 정치 등 모든 면에서 민정수석이 연관되지 않은 일이 없는 셈이다. 일도 많고 정보도 많이 얻다보니 민정수석의 자리는 언제나 시끄러웠다.

뇌물수수 등의 혐의나 업무상 실수로 책임지고 불명예 퇴진하는 경우도 많았다. 박근혜정권에 들어 민정수석의 자리는 3번이나 바뀌기도 했다.

우 수석은 검찰 시절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이 잡히면 과도하게 앞뒤 안가리고 수사를 한다” “너무 직선적인 성격으로 배려심이 없다”는 평가를 통해 타협이 없는 강직함과 배타적인 이미지를 갖게 됐다. 평검사 시절부터 그는 외압과 로비에 타협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일각에선 그가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 2부의 부부장검사를 지내고 대구지방검찰청 특수부장에 있던 지난 2003∼2004년을 최고로 꼽는다. 서울중앙지검이 국내 모 대기업 수사를 진행하고 있을 때 이 기업은 부장검사부터 평검사까지 모든 인맥을 찾아 로비할 사람을 붙였다고 한다. 하지만 유독 우 수석만 수사 중 기업 측 사람을 만나주지 않았다.

대구지검에서는 대구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광고 비리 사건을 꼽는다. 지역에서 상당한 힘을 자랑하던 한나라당 전 강신성일 의원과 열린우리당 배기선 전 의원을 수사하면서 쏟아진 온갖 외압에도 흔들리지 않았다고 한다. 대구지검 특수부는 결국 두 사람을 소환조사했다. 이로 인해 대구지검에서는 특수부의 전성기가 열렸다는 평가도 받았다.

‘최연소 사시 합격자’ ‘40대 민정수석’ 등 화려하고 성공적인 타이틀을 달고 있는 우 수석은 최근 화제의 주역이 됐다. 게임회사 넥슨에 부탁해 처가의 부동산을 매입시켰는지 모른다는 의혹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자고 나면 의혹
무너질 위기

의혹의 핵심은 장인이 물려준 강남역 부근 1300억원대 부동산을 상속세 때문에 매물로 내놓았으나 매입자가 나오지 않아 세금 부담이 가중되던 와중 이를 넥슨이 매입해줬다는 것. 이 때 넥슨은 당시 공시지가보다 높은 가격으로 매입했다고 한다. 평소 강직하고 성실한 이미지로 청와대의 젊은 실세가 된 우 수석이지만 이번 일로 그의 승승장구에 먹구름이 꼈다. 한순간에 무너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anjapil@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민정수석실 굴욕사

박근혜정권 민정수석실은 ‘수난’을 겪고 있다. 3년간 3명의 민정수석이 1년을 채우지 못하고 퇴진했다. 현 정권 초기 곽상도 민정수석은 장관 후보자들의 낙마 등 연이은 인사 검증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지난 2013년 자리에서 물러났다. 뒤를 이어 홍경식 전 민정수석은 세월호 참사 이후 국무총리 후보자 2명의 낙마에 책임을 지고 임명 10개월 만에 교체됐다. 우병우 민정수석의 전임자 김영한 전 민정수석은 임명 7개월 만에 퇴진했다.

김 전 수석은 전임자들과 다르게 청와대에 ‘항명사태’를 일으키며 주목을 받았다. 그는 정윤회 문건 유출 파문으로 청와대 운영위원회에 출석하라는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사표를 냈다.

김 전 수석은 당시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문건 유출 사건 이후 사건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자신의 출석 여부가 쟁점으로 부각되는 것은 정치 공세”라고 주장하며 출석 지시를 거부하기도 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걸리면 철퇴’ 대법정 417호의 저주

‘걸리면 철퇴’ 대법정 417호의 저주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법원은 내란 혐의로 기소된 전직 대통령에게 철퇴를 내렸다. 2024년 12월 비상계엄 사태 이후 400여일 만이다. 이날 선고로 서울중앙지법 대법정 417호는 ‘전직 대통령의 무덤’이라는 악명을 이어가게 됐다. 5명의 전직 대통령에게 가해진 ‘대법정의 저주’를 <일요시사>가 살펴봤다. 지난달 19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운명의 날’이었다. 각종 혐의로 받는 재판 중에 가장 핵심 사안에 대한 법원의 첫 번째 판결이 이날 나왔다. 1심 재판부는 윤 전 대통령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앞서 관련자들에 대한 판결이 나오는 족족 유죄였기에 반전이라고 할 만큼 놀라운 결과는 아니었다. 443일 걸렸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5부 지귀연 부장판사는 지난달 19일 내란 우두머리 혐의 사건 선고 공판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내란 우두머리죄의 법정형은 사형, 무기징역, 무기금고로 윤 전 대통령은 최고형을 피해갔다. 재판부는 12·3 비상계엄이 형법상 내란죄가 맞다고 판시했다. 지 판사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자체는 헌법상 권한 행사로서 내란죄에 해당할 수 없고 사법 심사의 대상이 된다고 보기 어렵다면서도 그 목적에 따라 내란죄가 성립할 수 있다고 했다. 비상계엄의 목적이 국회나 행정·사법의 본질적 기능을 침해했다면 내란죄가 성립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사실관계의 핵심으로 군을 국회로 보낸 점을 꼽았다. 지 판사는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국회를 제압해야겠다고 결심했기 때문에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는 게 실체에 부합한다”고 밝혔다. 결국 군을 국회로 보낸 행위 자체가 내란죄 성립 요건인 ‘국헌문란 목적’과 ‘폭동’에 부합한다는 취지다. 이어 “윤 전 대통령은 국회에 군을 보내 봉쇄하고 주요 정치인 등을 체포하는 방법으로 국회 활동을 저지·마비시켜 국회가 상당 기간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없게 하려는 목적을 내심으로 갖고 있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며 “군대를 보내 폭동을 일으킨 사실도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야당의 연이은 탄핵, 예산 삭감 등에 따른 국가 위기를 타개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기 위한 비상계엄이었다는 윤 전 대통령 측 주장에는 “명분과 목적을 혼동한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이 대목에서 지 판사는 “성경을 읽는다는 이유로 촛불을 훔칠 수는 없다”고도 언급했다. 전두환·노태우·박근혜·이명박 법정에 선 전직 대통령 5명 국가 위기 상황 타개는 명분에 불과할 뿐 본질은 헌법기관의 마비였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재판부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의 내란죄 수사에 대해서도 인정했다. 윤 전 대통령 측은 공수처가 내란죄를 수사할 권한이 없다며 수사의 적법성을 문제 삼아 왔다. 재판부는 “공수처에 내란죄 수사권이 없다고 하더라도 검찰은 공수처 송부 기록 외 다른 증거들을 종합해 기소한 것으로 보이고 공수처가 수집한 증거를 다 빼더라도 피고인에 대해 유죄 판단을 할 증거가 충분하다”고 정리했다. 검찰과 조은석 내란특별검사팀(이하 내란 특검)의 주장 중 윤 전 대통령이 장기 독재를 하기 위해 2023년께부터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국회를 제압할 의도로 내외적 여건을 조성했다는 공소 사실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보기엔 지나치게 준비가 허술했다는 것이다. 또 국회를 무력화할 계획 등에 관한 별다른 증거나 자료,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윤 전 대통령 무기징역 선고 외에도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내란 중요임무종사죄가 인정돼 징역 30년,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은 징역 18년, 조지호 전 경찰청장은 징역 12년, 김종식 전 서울경찰청장은 징역 10년, 목현태 전 서울경찰청 국회경비대장은 징역 3년을 각각 선고받았다. 최고형 피했다 윤 전 대통령 측은 선고 닷새 만인 지난달 24일 항소했다. 윤 전 대통령 측 변호인단은 “법정의 기록은 물론, 훗날 역사의 기록 앞에서도 이번 판단의 문제점을 분명히 남겨야 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특검의 무리한 기소, 그 전제 위에서 이뤄진 1심의 모순된 판단과 그 정치적 배경에 대해 저희는 결코 침묵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윤 전 대통령이 중형을 선고받으면서 서울중앙지법 대법정 417호의 ‘저주’가 이번에도 나타났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대법정 417호는 150석 규모의 형사 법정이다. 대법정 417호가 주목받는 이유는 이곳에서 윤 전 대통령을 포함한 전직 대통령 5명이 재판을 받았기 때문이다. 전직 대통령의 ‘무덤’이라는 별칭이 생길만한 대목이다. 전두환씨, 노태우 전 대통령의 하늘색 반팔 수의 차림은 국민의 뇌리에 깊게 남아 있다. 최고 권력이라 할 수 있는 대통령이 법정에 서서 판결을 듣고 있는 모습 자체가 충격인 시대였다. 12·12 군사반란과 5·18 광주민주화항쟁 관련 내란 우두머리(당시 내란 수괴) 등 혐의로 넘겨진 전직 대통령은 대법정 417호에서 중형을 선고받았다. 1996년 당시 검찰은 반란 및 내란 수괴 외에도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 혐의 등 총 10개 죄목으로 전씨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노 전 대통령에게는 내란 중요임무 종사 등 9개 죄목으로 기소,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전 씨는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2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고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됐다. 노 전 대통령은 1심에서 징역 22년6개월, 2심에서 징역 17년, 이후 대법원에서 확정 판결을 받았다. 국정 농단 다스 재판 그로부터 30여년 뒤 윤 전 대통령이 같은 장소에서 같은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검찰 측 구형도 사형으로 같았다. 내란 특검은 지난 1월13일 “법률가로서 검찰총장까지 지낸 피고인은 대통령으로서 누구보다 앞장서 헌법을 준수하고 헌법 질서를 수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점을 잘 알면서도 헌법 질서 파괴로 나아간 점에서 비난받아 마땅하다”며 “피고인은 반성하지 않는다. 양형에 참작할 사유가 없고 오히려 중한 형을 정해야 한다”고 구형 배경을 밝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 농단 사건의 1심 선고도 대법정 417호에서 이뤄졌다. 박 전 대통령은 헌정사상 처음으로 탄핵으로 지위를 잃고 구속 기소됐다. ‘비선 실세’ 최순실씨가 국정을 좌지우지하는 등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사적으로 남용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국민의 공분이 하늘을 찌르던 시기였다. 2018년 4월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는 대기업 등으로부터 231억9427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박 전 대통령에게 징역 24년, 벌금 180억원을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2016년 10월 이후 불거진 국정 혼란의 장본인으로 박 전 대통령을 지목했다. 박 전 대통령이 국정 농단 사태에 궁극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는 취지였다. 그러면서 “국정 혼란과 대통령 파면의 주된 책임은 피고인과 최순실에게 있다”며 “그럼에도 잘못을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납득하기 어려운 변명으로 일관하면서 책임을 주변에 전가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이 받던 18개 혐의 중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 등 16개를 유죄로 봤다. 150명 규모 방청석 역사적 재판의 현장 이명박 전 대통령도 ‘저주’를 피하지 못했다. 자동차 부품업체 ‘다스’ 자금을 횡령하고 삼성 등에서 거액의 뇌물을 챙긴 혐의로 기소된 이 전 대통령은 2018년 10월5일 1심 재판에서 징역 15년, 벌금 130억원을 선고받았다. 법원이 다스의 실소유주를 이 전 대통령으로 결론 내리면서 ‘다스는 누구 겁니까’라는 논란에 종지부가 찍힌 순간이었다. 당시 재판부는 “2007년 대통령선거 기간 내내 피고인에 대한 각종 의혹이 제기됐지만 피고인의 결백을 믿는 다수의 국민 덕분에 피고인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며 “피고인은 대통령으로서의 막강한 권한을 오직 헌법과 법률에 따라 국민 전체를 위해 행사해야 할 책무를 부담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재판 결과 피고인이 친인척 명의를 빌려 다스를 설립해 실소유하면서 246억원가량 횡령한 사실이 드러났다”며 “범행 기간이 길고 이득액이 상당하며 범행 당시 이미 국회의원, 서울시장으로 활동했다는 점에서 죄질이 나쁘다”고 비판했다. 또 “의혹만 가득했던 사건의 실체적 진실이 밝혀지는 과정에서 대통령 재임 시절 저질렀던 다른 범행이 함께 드러남으로써 당시 피고인을 믿고 지지했던 국민은 물론 사회 전반에 큰 실망과 불신을 안겼다”며 “그런데도 친인척이나 측근이 범행을 저지른 것이라는 등 책임을 전가해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되풀이된 30년 역사 전직 대통령 관련 재판 등 사회적 관심이 높은 사건이 대법정 417호에서 열리는 건 규모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많은 사람이 방청을 원하기에 대형 법정에서 재판을 진행한다는 것이다. 5명의 전직 대통령은 방청석의 150여명과 실시간으로 중계된 재판을 본 국민 앞에서 단죄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