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궁지 몰린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성공가도 스톱 ‘독종의 몰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재필 기자 = 검찰에서 손꼽히는 특별수사통으로 불리던 우병우 민정수석이 도마에 올랐다. 청와대 안팎에서 우 수석을 거론할 때 ‘실세’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박근혜 대통령의 신임을 받고 있어서 ‘리틀 김기춘’으로 불리기도 한다. 우 수석의 현재까지의 자취를 짚어봤다.

검사 시절 ‘독종’으로 불린 우병우 수석은 ‘엄친아’ 스타일의 수재였다. 1967년 교사 집안에서 태어나 1984년 영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학력고사서 전국석차 53위의 성적을 냈다. 이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들어가 3학년인 1987년 만 20세에 사법시험 최연소 합격자가 됐다. ‘소년등과’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리틀 김기춘’
대통령 신임

우 수석은 1990년 제 19기로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후 검찰에 들어가 검사의 길을 걸었다. 검사 생활 내내 선두권으로 평가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업무를 뚝심있게 밀어붙이지만 성격이 깐깐하다는 말도 들었다. 서울중앙지검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한 우 수석은 서울중앙지검 형사 4부와 6부를 거쳐 대구지검 경주지청, 창원지검 밀양지청, 제주지검 등에서 일했다.

평검사 시절 우 수석의 전적은 화려하다. 그는 조폭 서방파 행동대장과 대전진술파 두목은 물론 이대병원 수련의 임용과정서 돈을 받고 혜택을 준 피부과장을 구속했다. 서울 시내 폐수·소음·진동을 배출한 환경오염업체 55곳과 세균폐수를 방출한 중대부속병원 등 굵직한 병원도 적발했다. 1992년엔 대구지검 경주지청 검사로 있으면서 경주대 설립자 민자당 전 김일윤 의원을 학교공금 53억원 횡령으로 기소해 주목받았다.

지난 1999년 법무부 국제법무과를 거처 2001년 서울 동부지청 형사6부에 배치되면서 우 수석은 다시 ‘수사 검사’로 돌아갔다. 이때 영화배급을 대가로 금품을 수수한 직배영화사 전 대표와 영화사 대표를 구속했다. 2002년까진 ‘이용호 게이트’ 특검팀의 특별수사관으로 있었다. 당시 우 수석은 송해운·윤대진 검사와 함께 이용호 게이트 특검 특별수사관 3인방으로 활약했다.


이용호 게이트는 권력형 게이트의 전형, 모범답안이라고 불린다. 이 게이트는 지난 2001년 이용호 G&G그룹 전 회장이 계열사 전환사채 680억원을 횡령하고 보물선 사업 등을 미끼로 주가를 조작해 구속기소되면서 시작됐다. 당시 검찰은 이 전 회장의 주가조작 혐의에 대해 불기소 처분을 내렸고 이에 검찰에 대한 의혹이 터져 나왔다.

이로 인해 이 전 회장이 김대중정부와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것이 드러났다. 그가 구속되면서 여당, 검찰, 국정원, 금감원, 국회 등 관련자들이 줄줄이 검찰에 소환되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여기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 김홍업도 포함돼 있었다. 이용호 게이트 특검은 노무현정부 시절 ‘대북송금 특검’과 함께 가장 성공한 특검으로 평가받는다. 당시 차정일 특검이 우 수석을 두고 “매우 훌륭한 검사”라는 평가를 한 기록도 있다.

‘엄친아 수재’ 20세 사시 최연소 합격
깐깐·묵묵 평검사 시절…전적은 화려

우 수석은 이용호 게이트 특검 수사 등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특수통 검사’의 길에 접어 들었다. 그는 2002년 춘천지방검찰청 영월지청장으로 부임했고, 2003년엔 서울지방검찰청 부부장을 맡기도 했다. 이 시절 우 수석은 민주당 이정일 전 의원을 상대 후보 도청기 설치 의혹으로 긴급체포하는가 하면, 잠실야구장 광고물 수의계약 뇌물수수로 이상국 전 한국야구위원회(KBO) 사무총장을 구속시키기도 했다.

카드깡을 통한 강원랜드 도박자금 제공과 메인 카지노 진입도로 보강공사 비리혐의를 받던 김광식 전 강원랜드 대표도 그의 시선을 벗어나지 못했다. 특히 우 수석은 삼성그룹의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발행사건’ 수사에 참여해 두각을 나타냈다.

당시 수사진은 업무상 배임의 공소시효(7년)을 하루 앞두고 전·현직 에버랜드 사장을 전격 기소했다. 그들은 공소시효가 끝나기 전에 전환사채 헐값 발행에 직접 관여한 인사들을 표본으로 기소해 공소시효를 정지시켰다. 이 아이디어는 우 수석이 낸 것으로 알려졌다.

공직자 재산 NO.1
재벌사위로 유명


지난 2008년 서울중앙지검 금용조세조사2부장 땐 이명박 전 대통령의 처사촌 김옥희씨의 공천 청탁 금품수수 사건도 수사했다. 이명박정권이 출범한지 5개월 만에 일어난 사건이었다.

김옥희씨는 한나라당 비례대표 공천을 미끼로 30억여원을 받은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를 받고 그 해 8월 구속됐다. 이후 2009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중앙수사1과장이 되면서 ‘박연차 로비’ 사건을 맡게 된다. 여기서 우 수석의 승진 가도는 멈춘다.

박연차 로비는 지난 2008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둘째 형인 노건평이 뇌물 수수혐의로,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정관계에 뇌물을 제공한 혐의로 구속되면서 노 전 대통령에게 이어졌다. 대검찰청은 박 회장이 노 전 대통령에게 15억을 받았다는 차용증을 확보했다.

이후 2009년 우 수석과 이인규·홍만표가 수사에 투입됐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그의 부인과 조카사위 등이 박 회장으로부터 총 600만달러(약 68억원)를 받았다는 혐의를 받고 중앙수사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당시 우 수석은 이 사건의 주임검사로 미리 준비한 200여개의 질문으로 노 전 대통령을 심문했다.

그는 윗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 소환 조사 후 20여일 뒤 언론에 유출되던 수사과정과 악의적 보도에 시달리던 노 전 대통령은 고향의 부엉이바위에서 뛰어내려 생을 마감했다.

그 여파로 임채진 검찰총장이 퇴진하기도 했다. 이후 우 수석은 자리를 옮겨 대검 범죄정보기획관과 수사기획관을 지냈다. 지난 2011년에는 부산저축은행 사건 수사를 지휘하고 이후 인천지검 부천지청장과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을 거치기도 했다.

당시 김준규 신임 검찰총장과 법무부에서 함께 일하는 등 인연이 있었던 덕분이라는 말도 있었으나 노 전 대통령을 직접 수사한 것이 약점이 되어 두 번의 검사장 승진에 실패하게 된다. 대검의 한 관계자는 “노 전 대통령 수사에 참여한 것 때문에 검사장 승진이 좌절됐다”고 말했다. 결국 지난 2013년 우 수석은 검찰을 떠나게 된다.

우 수석은 고위 공직자 중 가장 재산이 많은 사람으로도 꼽힌다. 그는 검사 시절부터 ‘재력가 사위’로 알려졌다. 지난해 청와대 민정비서관에 발탁되며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재산을 공개했을 때 신고한 재산은 423억3230만원이었다. 지난 3월에는 393억6754만원으로 집계됐다.

우 수석의 장인은 고 이상달 기흥CC 및 정강중기·건설 회장이다. 이 회장은 4명의 딸을 뒀는데, 이 중 한명이 우 수석과 결혼을 했다. 두 사람은 우 수석이 20대 새내기 검사 시절에 만난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은 지난 2008년 사망했고 그의 재산은 부인과 4명의 딸들이 물려받았다. 그의 부인은 (주)에스디엔제이홀딩스 주식을 2200주(자본금의 20%)를 보유하고 있다. (주)에스디엔제이홀딩스는 현재 기흥 CC를 운영하고 있는 (주)삼남개발의 모회사로 자산총액은 토지를 포함해 1967억원에 이른다.

우 수석의 재산은 지난해 기준으로 본인과 부인 명의 예금 183억2077만원,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 있는 현대아파트 등 건물 66억8651만원, 사인간 채권 165억8051만원 등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그의 검사장 탈락은 노 전 대통령 수사보다 ‘너무 많은 재산’이 문제였다는 견해도 있다. 검사가 재산까지 많다면 사회에서 질시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다.

강직했는데…
먹구름 낀 앞날


두 차례 승진에서 떨어지며 검찰을 떠났던 우 수석은 박근혜 정권 2년차인 지난 2014년 청와대 대통령비서실로 새 출사표를 냈다. 그는 민정수석실의 민정비서관으로 근무하며 입지를 다지기 시작한다. '리틀 김기춘'이라고 불린 것도 이 시점부터다.
 

청와대서 일하기 시작하면서 우 수석은 청와대 문건 유출사건 등 까다로운 일들을 무난하게 마무리하면서 김기춘 전 비서실장에게 높은 신임을 얻는다. 상관인 김영한 전 민정수석을 통하지 않고 김 전 실장에게 직접보고를 하는 일도 잦아졌다.

이에 김 전 수석은 사석에서 “재임 7개월 동안 제대로 박 대통령에게 대면보고를 하지 못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후 김 전 수석은 ‘정윤회 문건’ 유출자를 회유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청와대 문건 유출사건으로도 불리는 이 사건으로 인해 그는 지난해 1월 ‘항명사태’를 일으키며 사의를 표명한다. 일각에선 우 수석이 김 전 실장에게 직보하는 일이 벌어지면서 생긴 갈등이 사의의 원인이라는 말도 있다.

민정비서관 시절 이미 우 수석은 민정수석실 파견 인원의 상당수를 교체하는 데 앞장서는 등 실 내의 권한이 컸다는 말도 전해진다. 당시 한 청와대 관계자는 “조직을 다잡고 일을 밀어붙이는 기질 면에서 김기춘과 우병우 두 사람은 닮은 점이 있다”고 했다.

김 전 수석의 자리가 공석이 되면서 우 수석은 청와대에 들어간 지 8개월 만에 민정수석이 됐다. 노무현정부 시절 전해철 민정수석(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같이 40대에 민정수석에 오르는 기록을 세운 셈이다. 동급의 자리인 법무부장관으로 당시 황교안 국무총리가 재직하고 있었다. 그는 우 수석과 열 살 정도 차이가 난다. 이 같은 초고속 승진도 흔치 않다.

‘뒤 구린’ 굵직한 사건들
알고 보니 수백억 ‘갑부’


민정수석의 자리는 무겁다. 민정이라는 글자 그대로 민심의 동향, 국민들의 여론을 파악해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일을 주업무로 삼는다. 국정의 모든 부분에서 대통령을 보좌하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공직사회 감찰과 기강 확립 등으로 청와대 업무 대부분에 관여하니 정치 등 모든 면에서 민정수석이 연관되지 않은 일이 없는 셈이다. 일도 많고 정보도 많이 얻다보니 민정수석의 자리는 언제나 시끄러웠다.

뇌물수수 등의 혐의나 업무상 실수로 책임지고 불명예 퇴진하는 경우도 많았다. 박근혜정권에 들어 민정수석의 자리는 3번이나 바뀌기도 했다.

우 수석은 검찰 시절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이 잡히면 과도하게 앞뒤 안가리고 수사를 한다” “너무 직선적인 성격으로 배려심이 없다”는 평가를 통해 타협이 없는 강직함과 배타적인 이미지를 갖게 됐다. 평검사 시절부터 그는 외압과 로비에 타협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일각에선 그가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 2부의 부부장검사를 지내고 대구지방검찰청 특수부장에 있던 지난 2003∼2004년을 최고로 꼽는다. 서울중앙지검이 국내 모 대기업 수사를 진행하고 있을 때 이 기업은 부장검사부터 평검사까지 모든 인맥을 찾아 로비할 사람을 붙였다고 한다. 하지만 유독 우 수석만 수사 중 기업 측 사람을 만나주지 않았다.

대구지검에서는 대구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광고 비리 사건을 꼽는다. 지역에서 상당한 힘을 자랑하던 한나라당 전 강신성일 의원과 열린우리당 배기선 전 의원을 수사하면서 쏟아진 온갖 외압에도 흔들리지 않았다고 한다. 대구지검 특수부는 결국 두 사람을 소환조사했다. 이로 인해 대구지검에서는 특수부의 전성기가 열렸다는 평가도 받았다.

‘최연소 사시 합격자’ ‘40대 민정수석’ 등 화려하고 성공적인 타이틀을 달고 있는 우 수석은 최근 화제의 주역이 됐다. 게임회사 넥슨에 부탁해 처가의 부동산을 매입시켰는지 모른다는 의혹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자고 나면 의혹
무너질 위기

의혹의 핵심은 장인이 물려준 강남역 부근 1300억원대 부동산을 상속세 때문에 매물로 내놓았으나 매입자가 나오지 않아 세금 부담이 가중되던 와중 이를 넥슨이 매입해줬다는 것. 이 때 넥슨은 당시 공시지가보다 높은 가격으로 매입했다고 한다. 평소 강직하고 성실한 이미지로 청와대의 젊은 실세가 된 우 수석이지만 이번 일로 그의 승승장구에 먹구름이 꼈다. 한순간에 무너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anjapil@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민정수석실 굴욕사

박근혜정권 민정수석실은 ‘수난’을 겪고 있다. 3년간 3명의 민정수석이 1년을 채우지 못하고 퇴진했다. 현 정권 초기 곽상도 민정수석은 장관 후보자들의 낙마 등 연이은 인사 검증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지난 2013년 자리에서 물러났다. 뒤를 이어 홍경식 전 민정수석은 세월호 참사 이후 국무총리 후보자 2명의 낙마에 책임을 지고 임명 10개월 만에 교체됐다. 우병우 민정수석의 전임자 김영한 전 민정수석은 임명 7개월 만에 퇴진했다.

김 전 수석은 전임자들과 다르게 청와대에 ‘항명사태’를 일으키며 주목을 받았다. 그는 정윤회 문건 유출 파문으로 청와대 운영위원회에 출석하라는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사표를 냈다.

김 전 수석은 당시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문건 유출 사건 이후 사건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자신의 출석 여부가 쟁점으로 부각되는 것은 정치 공세”라고 주장하며 출석 지시를 거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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닻 올린 ‘2차 계엄’ 수사 큰 그림

닻 올린 ‘2차 계엄’ 수사 큰 그림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내란 특검팀이 2차 계엄 의혹에 대한 실마리를 풀기 시작했다. 비상계엄 선포 다음 날인 지난해 12월4일 새벽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가 핵심이다. 법무부와 민정수석실 간 교감과 이날, 군 수뇌부의 움직임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당시 상황을 재구성 중인 특검팀은 윤석열 전 대통령을 재소환할 방침이다. 내란 특검팀(특별검사 조은석)은 비상계엄 선포 이후의 상황을 재구성해 왔다. 법무부와 민정수석실의 역할은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고 있다. 특히 2차 계엄 논의 여부는 여전히 의혹에 그치고 있다.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과 김주현 전 민정수석이 무엇을 위한 법률을 검토했는지가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안가 회동 정조준 특검팀은 지금까지 12·3 내란이 어떻게 준비됐는지에 대해 수사력을 집중했다. 북풍 공작과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 국군정보·방첩사령부의 움직임 등이 상당 부분 사실로 확인됐다. 내란 이후의 상황을 수사하기 시작한 특검팀은 지난달 24일 오전 10시 박 전 장관을 소환 조사했다.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를 받는 박 전 장관은 13시간가량 조사를 받고 귀가했다. 박 전 장관은 내란 당일 대통령 집무실에서 계엄 선포 계획을 가장 먼저 들은 국무위원 중 한 명이다. 이후 법무부로 돌아와 실·국장 회의를 열고 검찰국에 ‘합동수사본부 검사 파견 검토’ 지시를 내렸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계엄 당일 법무부 출입국본부에 출국금지팀을 대기시키라고 지시한 혐의도 적용됐다. 계엄 이후에는 정치인 등 수용을 위해 교정본부에 수용 여력 점검 및 공간 확보를 지시한 혐의도 있다. 특검팀은 이를 뒷받침할 만한 근거로 그가 지난해 12월3일 오후 11시쯤 대통령실에서 정부과천청사로 이동하면서 통화한 내역을 확보했다. 박 전 장관이 통화한 인물은 임세진 전 검찰과장, 배상업 전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 신용해 전 교정본부장, 심우정 전 검찰총장 등이다. 임 전 과장은 박 전 장관과의 통화를 마치고 검사·수사관 인사를 담당하는 실무진 2명에게 전화를 걸었고, 배 전 본부장은 출국금지·출입국 관련 담당자들에게 연락했다. 신 전 본부장은 김문태 전 서울구치소장과 연락을 취했다. 박 전 장관은 이후 간부 회의를 열어 관련 논의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다음 날 한상대 전 검찰총장과 연락하기도 했다. 한 전 총장은 퇴직 검사 모임인 검찰동우회 회장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과 탄핵 당시 가장 많이 연락한 인물이다. 국회 계엄 해제 요구안 의결 이후에는 김 전 수석과 비화폰으로 통화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검팀은 두 사람이 2차 계엄 등 후속 대책을 논의했다고 보고 있다. 박 전 장관 측은 김 전 수석에게 포고령에 문제가 있으며 국회가 의결했으니 국무회의를 신속히 소집해 계엄을 해제해야 한다고 전했다는 입장이다. 박성재·김주현 곧바로 2차 계엄 법률 검토? 용산 CCTV 속 최측근들 메모 후 문건 만지작 특검팀은 박 전 장관이 ▲계엄사령부 산하 합동수사본부 검사를 파견하라고 검찰국에 지시 ▲출입국본부 ‘출국금지팀’ 대기 지시 ▲교정본부 수용 여력 점검 및 공간 확보 지시 등을 추진했다고 판단한다. 조사를 마친 박 전 장관은 “제가 한 일에 대해 소상하게 다 말씀드렸다”며 “통상적인 업무 수행에 대한 다른 평가를 하는 것에 대해 제가 알고 있는 모든 내용을 상세하게 말씀드렸다”고 했다. 이어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지속적으로 특검법의 위헌성에 대해 지적을 했었는데, 이 부분이 현재 특검법에도 시정되지 않은 채 시행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 점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어떤 내용을 (특검에) 말했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의문이 제기되는 모든 점에 대해 상세히 말씀드렸다”고 답했다. ‘혐의를 전면 부인하는지’ 묻자 “나는 항상 업무를 했을 뿐”이라고 했다. ‘5급 이상 간부들에게 비상대기를 지시했다’는 주장에는 “부당한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했다. ‘구치소장 연락 지시’ 관련 질문에는 “질문이 어디에 근거한 것인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수용 지시가 계엄과 관련됐느냐’는 질문에는 “누구에게도 체포·구금하라는 지시를 한 사실이 없다”고 답변했다. 특검팀은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직전 국무회의를 열기 위해 일부 국무위원을 용산 대통령실로 소집했을 때의 CCTV 영상도 확보했다. 박 전 장관은 대통령실 대접견실에서 A4 용지에 직접 내용을 메모하고 특정 문건을 들여다봤다고 한다. 특검팀은 그가 윤 전 대통령 등으로부터 문건 형태로 계엄 이후 법무부가 해야 할 조치 등을 지시받고 현장에서 이를 직접 정리했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 앞서 계엄 선포 당일 대통령실에 모인 일부 국무위원 등은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계엄 이후 조치 사항이 담긴 문건을 직접 전달받았다. 최상목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계엄 이후 가동할 비상입법기구 예산 편성 등을 지시받았고,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은 <경향신문> 등 언론사에 단전·단수 조치하라는 지시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지시를 한 사실 없다” 조태열 전 외교부 장관은 ‘공관을 통해 대외 관계를 안정화시키라’는 지시를 받았다. 박 전 장관 측은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개별 지시 문건을 받지 않았고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법무부에 지시를 내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지난달 24일 특검 조사에서도 A4 용지에 메모했는지 등에 대해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장관 측은 이날 “해당 CCTV 장면을 보여달라”는 취지의 의견서를 특검에 제출했다. 특검팀이 김 전 수석을 소환한 건 지난 7월 초다. 그는 지난해 12월4일 서울 삼청동에 위치한 대통령 안전가옥(안가)에서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박 전 장관, 이완규 전 법제처장 등과 계엄 관련 법률 검토를 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모두 윤 전 대통령과는 고교·대학 및 검찰 동기나 선·후배로 윤석열정부 최고위직 법률가들이다. 지난해 말부터 정치권에서 “비상계엄 수사 등 법률적 대응 방안 또는 제2의 내란 모의 가능성을 논의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자 이들은 국회와 경찰 조사에서 “연말에 얼굴 보자는 취지였다”(박성재 전 장관), “신세 한탄이나 하자는 자리였고, 법률을 검토할 겨를도 없었다”(이상민 전 장관)며 의혹을 부인했다. 그러나 검찰과 경찰은 이 자리에 한정화 전 법률비서관이 동석한 사실을 확인했다. 주변 CCTV 등 안가 회동 참석자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한 전 비서관의 존재를 인지하고 소환 조사까지 진행했다. 특검팀은 삼청동 안가 모임 성격을 ▲비상계엄 선포 절차 사후 보완 ▲대통령 탄핵 대비 법적 대응 논리 개발 자리 등으로 보고 있다. 특히 내란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나온 관련자 진술의 위법성을 면밀히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장관과 김 전 수석, 이 전 처장 등은 안가 회동 이후 휴대전화를 바꿨다. 류혁 전 법무부 감찰관은 지난 3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윤 전 대통령 최측근으로 꼽히는 김주현 전 민정수석,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 등 밑에서 일하던 검찰 고위 관계자들은 대통령을 ‘운명 공동체’로 생각한다”며 “박 전 장관이나 김 전 수석에 대해서는 검찰이 적극적으로 수사하지 않았다. 이들에 대해 합리적이고 납득할 만한 수사 결론이 나오지 않으면 국민이 받아들이겠나. 모든 의혹이 해소될 때까지 그 사람들에 대한 수사는 계속돼야 한다. 이들은 죽을 때까지 수사선상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증거 이미 폐기했다? 특검팀은 과거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가 작성했던 수사보고서도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검찰 특수본 수사보고서의 제목은 ‘2차 비상계엄 가능성에 대한 의혹 등 정리 보고’다. 수사보고서에는 “12·4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통과되고 난 직후, 윤 대통령이 계엄사령부 상황실로 찾아가 김용현 국방부 장관에게 ‘왜 국회의원들을 잡지 않았느냐’ ‘내가 다시 계엄을 할 테니 그때는 철저히 준비해서 국회부터 장악하라’라고 지시한 정황”이 있다고 적혔다. 해당 의혹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처음 제기했다. 민주당은 지난해 12월6일 비상 의원총회에서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2차 발령을 준비했다는 정황을 공개했다. 검찰이 이 같은 민주당의 의혹 제기와 관련해 수사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수사보고서에 “계엄사령관인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은 윤 대통령, 김용현 장관과 함께 합참 지휘통제실 내 별도의 방에 들어갔다고 국방위 현안 질의에서 답한 바 있으나 대화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발언했으나 박 총장이 답변한 날인 12월5일은 윤 대통령의 위와 같은 발언이 공개되지 않은 시점”이라며 박 전 총장에 대해 조사 필요가 있다고 적었다. 검찰은 수사보고서에서 시민단체와 언론사 보도 등 2차 계엄 의혹과 관련한 의혹 확인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육군 복수 부대에 지휘관 휴가 통제 지침이 내려졌고 비상계엄 선포 이후 경계 태세가 유지되고 있다는 의혹과 계엄 둘째 날 지방 공수여단의 서울 진입 계획이 있었다는 육군특수전사령부 간부의 언론사 인터뷰 등이 그 근거다. 검찰은 윤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에게 ‘국회 문을 열고 들어가 의사당 내 의원들을 밖으로 이탈시킬 것’이라고 동일한 명령을 내렸지만, 지시가 이행되지 않아 2차 계엄이 준비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12월4일 새벽 중요…검도 “수사 필요” 인정 자료 이미 사라졌나…용산 PC 전부 포맷 확인 검찰은 수사보고서에 “윤 대통령의 ‘국회의원 이탈 명령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자 김 장관에게 위와 같은 발언(왜 국회의원들을 잡지 않았느냐)을 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어 보이고, 이와 더불어 ‘추가 계엄 선포’와 관련된 발언을 했을 가능성도 있어 보이므로 관련 내용 수사 필요성 있음”이라고 적었다. 특검팀은 대통령실 고위 간부들이 조직적으로 2차 계엄 관련 자료를 폐기했다고 보고 있다. 지난달 18일 정진석 전 대통령실 비서실장을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한 특검팀은 정 전 실장에게 계엄 이후의 상황을 따져 물은 것으로 파악됐다. 정 전 실장은 불법 계엄 전후 윤석열 전 대통령을 가까이서 보좌했다. 그는 계엄 선포 직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 있었다. 국무위원은 아니지만 계엄 선포 전 국무회의에 신원식 전 국가안보실장과 함께 참석했다. 이튿날 새벽에 계엄 해제 국무회의가 열리기 전, 윤 전 대통령이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에 머물 때 찾아가 만나기도 했다. 정 전 실장은 지난해 12월4일 국회가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한 이후 윤 전 대통령, 박 전 총장, 김 전 장관 등과 함께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 내 결심지원실에 함께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의결된 후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와도 통화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앞서 “지난해 12월4일 오전 2시58분쯤 정 전 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국회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정부에 도착했음을 확인하고 정부의 신속한 계엄 해제 조치를 촉구했다”고 밝혔다. 정 전 실장은 대통령실 윗선이 계엄 증거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의혹에도 연루돼있다. 특검은 지난 4월 대통령실 컴퓨터(PC) 전체 초기화 계획이 정 전 실장의 지시로 실행됐을 가능성을 살펴보고 있다. 특검팀은 앞서 별도 전담팀을 꾸려 정 전 실장 관련 의혹을 수사해 왔다. 특검팀은 이날 정 전 실장을 상대로 계엄 당시 국무회의와 대통령실 상황, 추 전 원내대표와의 통화 경위 등을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간이 부족하다 특검팀은 박 전 총장도 참고인 신분으로 재조사했다. 앞서 박 전 총장은 계엄 당시 계엄사령관으로서 불법 포고령을 발령한 혐의(내란중요임무종사) 등으로 구속 기소됐다. 박 전 총장도 국회가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한 뒤 윤 전 대통령, 김 전 장관 등과 합참 결심지원실에 함께 있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