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궁지 몰린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성공가도 스톱 ‘독종의 몰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재필 기자 = 검찰에서 손꼽히는 특별수사통으로 불리던 우병우 민정수석이 도마에 올랐다. 청와대 안팎에서 우 수석을 거론할 때 ‘실세’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박근혜 대통령의 신임을 받고 있어서 ‘리틀 김기춘’으로 불리기도 한다. 우 수석의 현재까지의 자취를 짚어봤다.

검사 시절 ‘독종’으로 불린 우병우 수석은 ‘엄친아’ 스타일의 수재였다. 1967년 교사 집안에서 태어나 1984년 영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학력고사서 전국석차 53위의 성적을 냈다. 이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들어가 3학년인 1987년 만 20세에 사법시험 최연소 합격자가 됐다. ‘소년등과’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리틀 김기춘’
대통령 신임

우 수석은 1990년 제 19기로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후 검찰에 들어가 검사의 길을 걸었다. 검사 생활 내내 선두권으로 평가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업무를 뚝심있게 밀어붙이지만 성격이 깐깐하다는 말도 들었다. 서울중앙지검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한 우 수석은 서울중앙지검 형사 4부와 6부를 거쳐 대구지검 경주지청, 창원지검 밀양지청, 제주지검 등에서 일했다.

평검사 시절 우 수석의 전적은 화려하다. 그는 조폭 서방파 행동대장과 대전진술파 두목은 물론 이대병원 수련의 임용과정서 돈을 받고 혜택을 준 피부과장을 구속했다. 서울 시내 폐수·소음·진동을 배출한 환경오염업체 55곳과 세균폐수를 방출한 중대부속병원 등 굵직한 병원도 적발했다. 1992년엔 대구지검 경주지청 검사로 있으면서 경주대 설립자 민자당 전 김일윤 의원을 학교공금 53억원 횡령으로 기소해 주목받았다.

지난 1999년 법무부 국제법무과를 거처 2001년 서울 동부지청 형사6부에 배치되면서 우 수석은 다시 ‘수사 검사’로 돌아갔다. 이때 영화배급을 대가로 금품을 수수한 직배영화사 전 대표와 영화사 대표를 구속했다. 2002년까진 ‘이용호 게이트’ 특검팀의 특별수사관으로 있었다. 당시 우 수석은 송해운·윤대진 검사와 함께 이용호 게이트 특검 특별수사관 3인방으로 활약했다.


이용호 게이트는 권력형 게이트의 전형, 모범답안이라고 불린다. 이 게이트는 지난 2001년 이용호 G&G그룹 전 회장이 계열사 전환사채 680억원을 횡령하고 보물선 사업 등을 미끼로 주가를 조작해 구속기소되면서 시작됐다. 당시 검찰은 이 전 회장의 주가조작 혐의에 대해 불기소 처분을 내렸고 이에 검찰에 대한 의혹이 터져 나왔다.

이로 인해 이 전 회장이 김대중정부와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것이 드러났다. 그가 구속되면서 여당, 검찰, 국정원, 금감원, 국회 등 관련자들이 줄줄이 검찰에 소환되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여기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 김홍업도 포함돼 있었다. 이용호 게이트 특검은 노무현정부 시절 ‘대북송금 특검’과 함께 가장 성공한 특검으로 평가받는다. 당시 차정일 특검이 우 수석을 두고 “매우 훌륭한 검사”라는 평가를 한 기록도 있다.

‘엄친아 수재’ 20세 사시 최연소 합격
깐깐·묵묵 평검사 시절…전적은 화려

우 수석은 이용호 게이트 특검 수사 등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특수통 검사’의 길에 접어 들었다. 그는 2002년 춘천지방검찰청 영월지청장으로 부임했고, 2003년엔 서울지방검찰청 부부장을 맡기도 했다. 이 시절 우 수석은 민주당 이정일 전 의원을 상대 후보 도청기 설치 의혹으로 긴급체포하는가 하면, 잠실야구장 광고물 수의계약 뇌물수수로 이상국 전 한국야구위원회(KBO) 사무총장을 구속시키기도 했다.

카드깡을 통한 강원랜드 도박자금 제공과 메인 카지노 진입도로 보강공사 비리혐의를 받던 김광식 전 강원랜드 대표도 그의 시선을 벗어나지 못했다. 특히 우 수석은 삼성그룹의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발행사건’ 수사에 참여해 두각을 나타냈다.

당시 수사진은 업무상 배임의 공소시효(7년)을 하루 앞두고 전·현직 에버랜드 사장을 전격 기소했다. 그들은 공소시효가 끝나기 전에 전환사채 헐값 발행에 직접 관여한 인사들을 표본으로 기소해 공소시효를 정지시켰다. 이 아이디어는 우 수석이 낸 것으로 알려졌다.

공직자 재산 NO.1
재벌사위로 유명


지난 2008년 서울중앙지검 금용조세조사2부장 땐 이명박 전 대통령의 처사촌 김옥희씨의 공천 청탁 금품수수 사건도 수사했다. 이명박정권이 출범한지 5개월 만에 일어난 사건이었다.

김옥희씨는 한나라당 비례대표 공천을 미끼로 30억여원을 받은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를 받고 그 해 8월 구속됐다. 이후 2009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중앙수사1과장이 되면서 ‘박연차 로비’ 사건을 맡게 된다. 여기서 우 수석의 승진 가도는 멈춘다.

박연차 로비는 지난 2008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둘째 형인 노건평이 뇌물 수수혐의로,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정관계에 뇌물을 제공한 혐의로 구속되면서 노 전 대통령에게 이어졌다. 대검찰청은 박 회장이 노 전 대통령에게 15억을 받았다는 차용증을 확보했다.

이후 2009년 우 수석과 이인규·홍만표가 수사에 투입됐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그의 부인과 조카사위 등이 박 회장으로부터 총 600만달러(약 68억원)를 받았다는 혐의를 받고 중앙수사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당시 우 수석은 이 사건의 주임검사로 미리 준비한 200여개의 질문으로 노 전 대통령을 심문했다.

그는 윗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 소환 조사 후 20여일 뒤 언론에 유출되던 수사과정과 악의적 보도에 시달리던 노 전 대통령은 고향의 부엉이바위에서 뛰어내려 생을 마감했다.

그 여파로 임채진 검찰총장이 퇴진하기도 했다. 이후 우 수석은 자리를 옮겨 대검 범죄정보기획관과 수사기획관을 지냈다. 지난 2011년에는 부산저축은행 사건 수사를 지휘하고 이후 인천지검 부천지청장과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을 거치기도 했다.

당시 김준규 신임 검찰총장과 법무부에서 함께 일하는 등 인연이 있었던 덕분이라는 말도 있었으나 노 전 대통령을 직접 수사한 것이 약점이 되어 두 번의 검사장 승진에 실패하게 된다. 대검의 한 관계자는 “노 전 대통령 수사에 참여한 것 때문에 검사장 승진이 좌절됐다”고 말했다. 결국 지난 2013년 우 수석은 검찰을 떠나게 된다.

우 수석은 고위 공직자 중 가장 재산이 많은 사람으로도 꼽힌다. 그는 검사 시절부터 ‘재력가 사위’로 알려졌다. 지난해 청와대 민정비서관에 발탁되며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재산을 공개했을 때 신고한 재산은 423억3230만원이었다. 지난 3월에는 393억6754만원으로 집계됐다.

우 수석의 장인은 고 이상달 기흥CC 및 정강중기·건설 회장이다. 이 회장은 4명의 딸을 뒀는데, 이 중 한명이 우 수석과 결혼을 했다. 두 사람은 우 수석이 20대 새내기 검사 시절에 만난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은 지난 2008년 사망했고 그의 재산은 부인과 4명의 딸들이 물려받았다. 그의 부인은 (주)에스디엔제이홀딩스 주식을 2200주(자본금의 20%)를 보유하고 있다. (주)에스디엔제이홀딩스는 현재 기흥 CC를 운영하고 있는 (주)삼남개발의 모회사로 자산총액은 토지를 포함해 1967억원에 이른다.

우 수석의 재산은 지난해 기준으로 본인과 부인 명의 예금 183억2077만원,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 있는 현대아파트 등 건물 66억8651만원, 사인간 채권 165억8051만원 등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그의 검사장 탈락은 노 전 대통령 수사보다 ‘너무 많은 재산’이 문제였다는 견해도 있다. 검사가 재산까지 많다면 사회에서 질시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다.

강직했는데…
먹구름 낀 앞날


두 차례 승진에서 떨어지며 검찰을 떠났던 우 수석은 박근혜 정권 2년차인 지난 2014년 청와대 대통령비서실로 새 출사표를 냈다. 그는 민정수석실의 민정비서관으로 근무하며 입지를 다지기 시작한다. '리틀 김기춘'이라고 불린 것도 이 시점부터다.
 

청와대서 일하기 시작하면서 우 수석은 청와대 문건 유출사건 등 까다로운 일들을 무난하게 마무리하면서 김기춘 전 비서실장에게 높은 신임을 얻는다. 상관인 김영한 전 민정수석을 통하지 않고 김 전 실장에게 직접보고를 하는 일도 잦아졌다.

이에 김 전 수석은 사석에서 “재임 7개월 동안 제대로 박 대통령에게 대면보고를 하지 못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후 김 전 수석은 ‘정윤회 문건’ 유출자를 회유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청와대 문건 유출사건으로도 불리는 이 사건으로 인해 그는 지난해 1월 ‘항명사태’를 일으키며 사의를 표명한다. 일각에선 우 수석이 김 전 실장에게 직보하는 일이 벌어지면서 생긴 갈등이 사의의 원인이라는 말도 있다.

민정비서관 시절 이미 우 수석은 민정수석실 파견 인원의 상당수를 교체하는 데 앞장서는 등 실 내의 권한이 컸다는 말도 전해진다. 당시 한 청와대 관계자는 “조직을 다잡고 일을 밀어붙이는 기질 면에서 김기춘과 우병우 두 사람은 닮은 점이 있다”고 했다.

김 전 수석의 자리가 공석이 되면서 우 수석은 청와대에 들어간 지 8개월 만에 민정수석이 됐다. 노무현정부 시절 전해철 민정수석(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같이 40대에 민정수석에 오르는 기록을 세운 셈이다. 동급의 자리인 법무부장관으로 당시 황교안 국무총리가 재직하고 있었다. 그는 우 수석과 열 살 정도 차이가 난다. 이 같은 초고속 승진도 흔치 않다.

‘뒤 구린’ 굵직한 사건들
알고 보니 수백억 ‘갑부’


민정수석의 자리는 무겁다. 민정이라는 글자 그대로 민심의 동향, 국민들의 여론을 파악해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일을 주업무로 삼는다. 국정의 모든 부분에서 대통령을 보좌하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공직사회 감찰과 기강 확립 등으로 청와대 업무 대부분에 관여하니 정치 등 모든 면에서 민정수석이 연관되지 않은 일이 없는 셈이다. 일도 많고 정보도 많이 얻다보니 민정수석의 자리는 언제나 시끄러웠다.

뇌물수수 등의 혐의나 업무상 실수로 책임지고 불명예 퇴진하는 경우도 많았다. 박근혜정권에 들어 민정수석의 자리는 3번이나 바뀌기도 했다.

우 수석은 검찰 시절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이 잡히면 과도하게 앞뒤 안가리고 수사를 한다” “너무 직선적인 성격으로 배려심이 없다”는 평가를 통해 타협이 없는 강직함과 배타적인 이미지를 갖게 됐다. 평검사 시절부터 그는 외압과 로비에 타협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일각에선 그가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 2부의 부부장검사를 지내고 대구지방검찰청 특수부장에 있던 지난 2003∼2004년을 최고로 꼽는다. 서울중앙지검이 국내 모 대기업 수사를 진행하고 있을 때 이 기업은 부장검사부터 평검사까지 모든 인맥을 찾아 로비할 사람을 붙였다고 한다. 하지만 유독 우 수석만 수사 중 기업 측 사람을 만나주지 않았다.

대구지검에서는 대구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광고 비리 사건을 꼽는다. 지역에서 상당한 힘을 자랑하던 한나라당 전 강신성일 의원과 열린우리당 배기선 전 의원을 수사하면서 쏟아진 온갖 외압에도 흔들리지 않았다고 한다. 대구지검 특수부는 결국 두 사람을 소환조사했다. 이로 인해 대구지검에서는 특수부의 전성기가 열렸다는 평가도 받았다.

‘최연소 사시 합격자’ ‘40대 민정수석’ 등 화려하고 성공적인 타이틀을 달고 있는 우 수석은 최근 화제의 주역이 됐다. 게임회사 넥슨에 부탁해 처가의 부동산을 매입시켰는지 모른다는 의혹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자고 나면 의혹
무너질 위기

의혹의 핵심은 장인이 물려준 강남역 부근 1300억원대 부동산을 상속세 때문에 매물로 내놓았으나 매입자가 나오지 않아 세금 부담이 가중되던 와중 이를 넥슨이 매입해줬다는 것. 이 때 넥슨은 당시 공시지가보다 높은 가격으로 매입했다고 한다. 평소 강직하고 성실한 이미지로 청와대의 젊은 실세가 된 우 수석이지만 이번 일로 그의 승승장구에 먹구름이 꼈다. 한순간에 무너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anjapil@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민정수석실 굴욕사

박근혜정권 민정수석실은 ‘수난’을 겪고 있다. 3년간 3명의 민정수석이 1년을 채우지 못하고 퇴진했다. 현 정권 초기 곽상도 민정수석은 장관 후보자들의 낙마 등 연이은 인사 검증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지난 2013년 자리에서 물러났다. 뒤를 이어 홍경식 전 민정수석은 세월호 참사 이후 국무총리 후보자 2명의 낙마에 책임을 지고 임명 10개월 만에 교체됐다. 우병우 민정수석의 전임자 김영한 전 민정수석은 임명 7개월 만에 퇴진했다.

김 전 수석은 전임자들과 다르게 청와대에 ‘항명사태’를 일으키며 주목을 받았다. 그는 정윤회 문건 유출 파문으로 청와대 운영위원회에 출석하라는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사표를 냈다.

김 전 수석은 당시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문건 유출 사건 이후 사건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자신의 출석 여부가 쟁점으로 부각되는 것은 정치 공세”라고 주장하며 출석 지시를 거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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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