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봉 옥중 기행> 고위공직자 협박편지 파문

'함바게이트'는 끝나지 않았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끝은 어딜까. 유상봉 함바비리 사건이 터진지 벌써 5년이 흘렀다. 하지만 수사는 현재진행중이다. 유씨는 자신과 친분을 맺었던 고위 공직자들에게 “돈을 달라”는 내용으로 협박 편지를 보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돈을 주지 않으면 검찰에 폭로하겠다는 말로 관계자들의 심장을 ‘쫄깃하게 만든다. <일요시사>가 이런 내용이 담긴 편지들을 입수했다.

함바는 일제강점기에 토목 공사장이나 광산 등지에서 노동자들이 숙식을 하도록 임시로 지은 건물을 가리킨다. 함바는 본래 일본어 ‘한바〔飯場〕’에서 온 말로 한자어 그대로 하자면 ‘밥을 먹는 장소’를 뜻한다.

현직 구청장
전직 관료에

함바집은 건설 사업장이 생기면 그 현장 직원과 인부들이 먹는 식사를 독점적으로 공급할 수 있다. 개설되는 순간 이익이 보장된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수익이 보장되는 이권사업 중 하나로 꼽혔다. 함바집 운영권을 따내기 위해서는 건설사 현장 소장이나 고위층과 인맥이 주로 활용된다. 확실한 수익 때문에 이 운영권은 일종의 뇌물로 제공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 함바 운영권을 한때 400여 개 이상 거머쥐었던 인물이 있다. 바로 유상봉이 그 주인공이다. 그는 지난 1990년대 중반부터 함바 사업에 뛰어들어 로비와 화려한 인맥을 동원해 손쉽게 함바 수주를 성공시켰다. 그러다가 2011년 함바 게이트가 터졌다.

당시 유씨 입에서 수많은 고위 공직자들의 이름이 나왔다. 이 때문에 전남 순천시의 한 야산서 농림부장관을 역임했던 임상규 순천대 총장이 자살했다. 당시 강희락 경찰청장도 구속되는 등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유씨는 최근 몇 년간 수감생활과 출소를 되풀이했다. 사기로 수감 중인 그는 최근에 함바 운영권을 따도록 해주겠다고 꾀어 수억원을 받았다가 추가로 다시 기소되기도 했다.

그는 이전에 고위 공무원들에게 “함바 운영권을 따게 도와달라”는 청탁과 함께 거액을 건넨 혐의로 구속 수감됐다. 유씨는 교도소에서 편지를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자신이 전에 거액의 뇌물을 건넸던 고위 공직자에게 보내는 것이다. 주로 “내가 이전에 당신한테 줬던 돈을 되돌려 주지 않으면 뇌물을 받은 사실을 검찰에 폭로하겠다”는 내용이다.

수감·출소 되풀이…현재 사기죄 수감중
평소 친분 맺었던 주변인들에 “돈 달라”

최근 유씨의 편지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유씨가 자신에게 돈을 갚지 않았다며, 복수의 고위공직자들을 고소했기 때문이다. 이들 피고소인들은 하나 같이 “유상봉에게 수 차례 편지를 받으며 시달렸다”고 토로했다.

<일요시사>는 유씨가 고위 공직자에게 “돈을 달라”는 내용으로 보낸 협박성 편지를 입수했다. 편지 내용은 오랫동안 공직생활을 해온 한 광역자치단체의 A구청장과 청와대 출신 중앙정부 전직 관료이자 현재 수도권 소재 유명사립대 교수로 재직 중인 B씨에게 배달된 편지에서 발췌한 것이다.
 

▲옥중편지1 = 존경하는 A청장님께. 며칠 전에 편지했던 유상봉입니다. OOO은 그동안 저에게 청장님을 비롯한 10여명에게 충분한 인사를 하면 저에게 건설현장 식당을 운영할 수 있게 도와주겠다며 2억4000만원을 받아 이를 편취했습니다. 현재 저는 서울의 공직자 비리 합동수사단의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로 이송갔습니다.

제가 청장님께 편지한 것은 OOO과 그의 지인인 OOO가 서로 짜고 저에게서 2억4000만원을 받아 편취한 사실에 대해 합동범죄수사단에 진정서를 접수했으며…(중략) 분명히 말씀 올리지만 늦어도 이번주 금요일까지 OOO이 처리해주도록 이야기 해주시길 바랍니다. 진정서에 나타나 있는 공직자가 10여명이나 도대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데 연락이 없는지 정말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2015년 2월24일)


하루 7∼8통씩
계속 보내기도

▲옥중편지2 = A청장님께 드립니다. 지난번 편지 했던 유상봉입니다. 제 처가 병원에 있어 당장에 면회 온 사람이 없어서 이곳 생활하기가 정말 어렵고 힙듭니다. 무엇 때문에 OOO이 지난 지방선거 당시에 사무장을 통해서 선거비용으로 지불했던 200만원을 반환하지 않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반환해주세요. OOO이 주소를 전부 바꿔 버려서 현재 연락이 안 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물론 OOO을 비롯한 OOO과 관계된 모든 사람을 검찰에 고소는 했습니다만 검찰에 고소했다고 지금 당장 돈을 받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정말 극한 어려움에 처해져 있는 제 입장을 헤아려 주시고 OOO 통해서 받은 200만원을 편지 받은 죽시 우체국에 가셔서 군포우체국 사서함 20-3894번 유상봉 앞으로 꼭 영치금으로 송금해주시기 바랍니다.(2015년 6월22일)

▲옥중편지3 = 존경하는 A청장님께 드립니다. 벌써 몇 차례 글드렸습니다만 입금이 되지 않아서 다시 한번 글드리옵니다. 2014년 5월31일 일요일 OOO을 통해 청장님 선거 사무실 사무장께 드린 200만원을 군포우체국 사서함 20-3894번 유상봉 앞으로 영치금으로 우체국에 가서 보내주시던지 제 처 OOO 농협 000-00-000000번으로 입금해주시기 바라옵니다…

(중략) 꼭 필요한 절실한 금액이오니 편지 받으신대로 급히 도와주시기 바라옵니다. 저에게는 절대 피해가 없게 해주세요. 정말 꼭 부탁드립니다. 하시는 일과 가정에 늘 복이 함께 하시길 충심을 다해 기원드립니다.(2015년 6월25일)

유씨의 편지내용은 ‘A구청장의 지인 OOO을 통해 돈을 줬으며 자신의 처지가 어려우니 다시 돌려달라’는 것이다. 또 유씨는 ‘검찰에 이러한 내용을 진정했다’며 구청장들을 압박하는 내용도 있다. A구청장은 지난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유씨에게 총 35통의 협박성 편지를 받았다. 다음은 유씨가 B교수에게 보낸 협박 편지의 일부를 발췌했다. B교수도 오랫동안 협박 편지로 시달렸다.

“선거 자금
돌려주세요”

▲옥중편지4 = 존경하는 B님께 드립니다. 바쁘신 업무에 얼마나 고초가 많으시옵니까? 정말 진실이 통하는 그런 사회가 됐으면 하는데 진심으로 제가 원하는 그런 사회입니다. 지금 당장에는 제 말뜻을 잘 모르실 수도 있습니다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아시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주에는 많은 변화가 있을 것입니다.
 

OO현장 급식 운영권 수주를 위해 OOO 사장님과 만남을 추진 중에 있습니다. 또 OO지구에서 LH가 발주한 OO건설현장 급식 운영권에 대해서도 추진하고 있습니다. OOO 시장이 이사장으로 있는 OO와 계약했던 건설현장 급식 운영권이 계속 유효하도록 해주시길 바랍니다. 꼭 도와주시길 바라고 OOO을 급히 좀 만나주세요.(2013년 11월25일)

▲옥중편지5 = B님께 드립니다. 부산구치소에서 수용생활하다가 합수단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남부구치소에 있다가 인천지검에서 조사받고 있습니다. 지난번에 주시기로 했던 4000만원을 급히 제 처 김OO 농협계좌 001-12-15XX XX로 1억원을 보내주십시오. 서로간의 좋은 만남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조치이오니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저도 그동안 많이 기다렸고, 여러 사람들의 얼굴 때문에 모든 예의를 다 갖춰 드렸습니다. 정말 많이 서운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2015년 4월1일)

▲유상봉 옥중편지6 = B님께 드립니다. 사건 해결을 위해 1억원만 도와주기 바랍니다. 자세한 내용은 쓰지 않겠습니다만 이미 저에게 8000만원을 주었으니 이번주까지 1억원만 더 해 주세요. 저도 이제 B님과의 모든 관계를 이것으로 끝내려고 합니다. 더 이상 시간이 없으니 제 처 김OO 농협계좌 001-12-15XXXX로 1억원을 보내주십시오. 입금하시고 010-9XXX-5XXX로 전화주시면 모든 진정서는 취하하겠습니다. 꼭 이번주까지 부탁합니다.(2015년 5월3일)

B교수는 2013년 4월 처음으로 유씨를 만났다. 이후 B교수는 급전이 필요해 유씨에게 1900만원을 빌렸다. 그리고 그해 7월 빌린 돈을 유씨에게 갚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유씨는 끊임없이 B교수에게 협박편지를 보냈다. B교수는 “돈을 내놓으라는 지속적인 협박에 시달려 정신병을 얻을 정도였다. 대학교수직을 포기할까도 고민했다”고 토로했다. B교수 역시 유씨에게 30여 차례 협박 편지를 받았다.


“지금도 마음만 먹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

이런식으로 유씨는 지금까지 감옥에서 수백 통의 협박 편지를 측근과 공직자에게 보냈다. <JTBC> 보도에 따르면 유씨의 편지 119통에는 약 347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그중 3급 이상 공무원이나 정치인 등 고위 공직자가 92명에 달한 것으로 전해진다.

유씨의 편지에는 이 사람들에게 뇌물을 줬다거나 편의를 제공했다는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 그의 수법은 먼저 편지를 보내 돈을 요구한다. 이걸 거절하면 유씨는 ‘서운하다’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냐’ 등 신경질적으로 나온다. 그리고 이것도 되지 않으면, 유씨는 ‘공직 생활 끝나게 만들겠다’는 등의 협박성 편지를 보냈다. 그는 감옥에서도 하루에 7∼8통의 편지를 쓴 것으로 전해진다.
 

“인생의 마지막 뒷모습을 망쳤다. ‘악마의 덫’에 걸려 빠져 나가기가 어려울 것 같다. 그동안 너무 쫒기고 시달려 힘들고 지쳤다. 더 이상 수치도 감당할 수 없다. 모두 내가 소중하게 여겨온 만남에서 비롯됐다. ‘잘못된 만남’을 주선한 결과가 너무 참혹하다.”

임상규 전 순천대 총장 유서에는 ‘악마의 덫에 걸렸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물론, 유서 속 악마는 유상봉씨였다.

유씨는 정관계 인맥을 총동원해 수주경쟁에서 매번 승자로 군림했다. 검은 거래는 필연적으로 뒤따랐다. 유씨 입에서 하나 둘 관료들의 이름이 거론될 때 마다 수많은 공직자들은 공포에 떨어야 했다. 경찰청장을 비롯한 경찰 수뇌부급 인사들이 유씨의 폭로에 줄줄이 나가 떨어졌다.


“이러다 경찰 조직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장탄식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당시 정권의 실세 소리를 들었던 공기업 사장, 정부부처 산하기관장도 무사하지 못했다.

사건은 전직 장관이자 한 대학의 총장으로 재직 중이던 인사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면서 절정으로 치달았다.

임 총장. 유씨의 정관계 인맥을 만들어준 것으로 알려진 인물. 그는 한때 대한민국 예산을 쥐고 흔드는 막강한 자리에 있었다. 유씨는 그를 배경으로 자신의 함바 왕국을 만들어 갔다. ‘악마의 덫’에 걸렸다는 그의 마지막 절규와 결말은 비극 그 자체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함바 게이트는 서서히 사람들의 기억에서 멀어졌다.

여전히 함바왕
운영권 쥐락펴락

‘악마의 덫’은 여전히 희생양을 기다리고 있다. 감옥으로부터 배달된 유씨의 편지. 구속 수감된 직후부터 최근까지 써 내려간 이 편지에 수 많은 전현직 공직자들이 공포에 떨고 있다. 유씨는 측근들에게도 ‘악마의 덫’을 준비하라는 편지를 끊임없이 보냈다. 함바 게이트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서서히 제2막을 올리고 있다. 그는 지금도 누군가의 이름을 편지에 새기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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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고 흔드는’ 민주당 꽃놀이패

‘쥐고 흔드는’ 민주당 꽃놀이패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1일 이재명정부의 첫 정기 국회가 열리면서 100일 대장정이 시작됐다. 늘 그렇듯 각종 입법과 개혁, 예산안 등을 두고 여야가 거세게 충돌할 것으로 예상된다. 개회 첫날부터 기싸움이 만연한 가운데 거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국회 고삐를 틀어쥐면서 주도권 잡기에 나섰다. 9월에 접어듦과 동시에 빽빽한 일정이 여야를 기다리고 있다. 9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 오는 10일, 국민의힘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이 진행되고, 15~18일 나흘 동안 정부를 상대로 ▲정치▲외교 ▲통일·안보 ▲사회 ▲교육 ▲경제 등 대정부질문이 예정됐다. 벌써부터 국정감사 제보센터를 개설하는 의원실도 눈에 띄었다. 사면초가 국민의힘 민주당은 이번 정기국회에서 민생과 성장, 개혁 안전 등 4대 핵심 과제를 골자로 한 224개 법안을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검찰개혁, 금융위원회 등 정부조직법 개정을 포함해 언론개혁, 대법원 개혁 등 공약으로 내걸었던 법안도 지체 없이 빠르게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반면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계획을 ‘입법 폭주’라고 비판하며 ‘경제·민생·신뢰 바로 세우기’를 기조로 하는 100대 입법 과제를 선정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미래 첨단산업 육성을 비롯한 경제 활성화 및 민생경제 회복, 청년 희망 및 취약계층 돌봄 등을 통해 국민신뢰를 회복하겠다는 계획이다. 큰 틀에서 봤을 때 이번 정기국회는 인사청문회와 대정부질문을 둘러싼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특히 인사청문회서 국민의힘은 최교진·주병기 후보를 정조준하면서 이정부의 ‘인사 실패’ 프레임을 부각시키겠다는 전략을 내세웠다. 먼저 국민의힘은 최 후보의 과거 음주 운전 전력과 천안함 폭침 관련 음모론을 제기한 것을 문제 삼았다. 당내 교육위원회 간사인 조정훈 의원은 기자회견을 열고 “최 후보는 인사청문회에서 음주 운전, 학생 체벌, 막말, 천안함 음모론 제기, 부산·대구 폄하 발언, 입시 비리 조국 사태 옹호 등 셀 수 없는 범죄와 논란에 고개 숙여 사과했다”며 “그 사과가 진심이라면 자진 사퇴하라. 이재명정부는 후보를 즉각 지명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주 후보에 대해선 세금 ‘상습 체납’ 이력 등을 파고들었다. 국민의힘 강민국 의원실에 따르면 주 후보와 배우자가 공동 소유한 아파트에는 압류 등기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도 주 후보는 종합소득세 납부기한도 여러 차례 어겼으며 2023년(406만원)과 2024년(183만원) 종합소득세도 올해 6월에야 낸 것으로 전해진다. 반면 민주당은 통일교 측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 체포동의요구서에 대한 국회 표결을 벼르고 있다. 앞서 지난 1일 권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국회에 제출된 만큼 국회의장은 요구서가 접수된 후 다음 본회의인 오는 9일에 국회 보고를 거쳐 72시간 이내에 표결 절차에 들어가야 한다. 다만 국민의힘 교섭단체 연설일인 10일에 체포동의안을 처리하는 것은 부담스럽다는 의견이 있어 이날을 제외한 11일 또는 12일 처리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이정부 첫 정기국회 100일 대장정 권성동 체포동의안 변수도 ‘주목’ 체포동의안은 무기명 투표로 진행돼 국회 의석 과반을 차지한 민주당의 주도하에 가결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에 힘이 실린다. 권 의원은 혐의를 부인하며 체포동의안 처리와는 관계없이 구속 적부심사를 받겠다는 입장이다. 그는 지난달 31일 자신의 SNS를 통해 “민주당은 야당 교섭단체 대표연설 일정에 저의 체포동의안 표결을 집어넣으려 한다”며 “이는 야당 대표 연설을 덮으려는, 국회를 정치 공작 무대로 삼으려는 행태”라고 주장했다. 이어 “우원식 국회의장은 민주당과 정치적 일정 거래에 저의 체포동의안을 이용하지 말라”고 밝혔다. 국회 문이 열리기도 전부터 살얼음판을 걷는 분위기였던 만큼 결국 개원 첫날부터 여야가 격돌했다. 우 의장은 “차이보다 공통점을 통해 함께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것을 보여주는 화합의 메시지”를 예로 들며 개회식에서 한복 착용을 권유했지만, 국민의힘은 “국회 민주주의를 말살하는 이재명정권의 독재정치에 맞서자는 심기일전의 취지”라며 검정 양복과 검정 넥타이, 근조 리본을 맨 상복 차림으로 참석했다. 민주당 한준호 최고위원은 “정부와 여당에 항의하는 차원의 퍼포먼스라고 들었지만 정작 애도해야 할 대상은 국민의힘 자당”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 황명선 최고위원 역시 “국민이 국회에 바라는 것은 희망과 미래지, 장례식이 아니”라고 일침을 가했다. 국회 상임위에서도 크고 작은 해프닝이 발생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전체회의서 추미애 법사위원장이 ‘검찰개혁 공청회 계획서 채택의 건’을 표결하려 하자 국민의힘 의원이 위원장석 앞으로 몰려가 항의했고, 초선인 민주당 이성윤 의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들어가시라”고 목소리를 높이자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이 “초선은 가만히 앉아 있어” “아무것도 모르면서, 앉아 있어”라고 반말로 말한 것이 문제가 됐다. 굽히지 않는 강대강 매치 이를 두고 범여권에서는 나 의원을 향한 질타가 쏟아졌고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초선 의원은 의정활동을 하지 말라는 것이냐”며 “5선 의원이 가만히 있으라면 무조건 따라야 하냐. 초선 의원이 가마니인가”라고 직격했다. 정 대표는 “초선 의원이 무엇을 모른다는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나 의원은 일단 예의를 모르는 것 같다”고 공개적으로 저격했다. 검찰개혁 관련 공청회에서도 설전이 오갔다. 오는 25일 본회의에서 처리할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담길 검찰개혁안의 핵심은 검찰청 폐지와 수사·기소권 분리 및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공소청 신설인데, 국민의힘이 이를 두고 “검찰해체법을 통해 독재 국가로 가는 길”이라고 반발하면서 제동을 건 것이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태도를 굽히지 않고 있다. 민주당은 검찰개혁에 대한 국민적 여론이 높다는 점을 들어 추석 전에 개혁을 완수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오는 25일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검찰개혁안을 통과시킬 것으로 보인다. 3대 특별검사(내란·김건희·순직해병)의 수사 인력과 기한을 확대하고 재판 중계를 가능하게 하는 내용을 담은 ‘더 센 특검법(특검법 개정안)’도 민주당 주도로 상정됐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특검 수사 기간은 기존 한 차례 30일 연장에서 두 차례, 최대 60일까지 연장할 수 있게 된다. ‘3대 특검(내란·김건희·순직해병)’ 재판의 녹화 방송 중계도 가능해진다. 재판 내용이 공개돼야 윤석열 전 대통령의 친위 쿠데타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란 교훈을 후손에 남겨야 한다는 게 민주당의 주장이다. 마찬가지로 민주당 주도로 통과된 노란봉투법도 쟁점이다. 국민의힘이 ‘사용자’와 ‘노동쟁의 대상’ 범위를 제한하는 보완 입법으로 맞불을 놓으면서 여야의 입법 주도권 싸움이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의힘은 “파업 시 대체 근로 허용, 사업장 점거 금지, 형사처벌 규정 개선, 최소한의 방어권 보장도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오는 12월까지인 정기국회에서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민주당도 쉽게 물러서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정 대표는 소상공인연합회를 찾아 중소기업계의 의견을 청취하는 등 기업 달래기에 나서면서 경제 행보를 넓히고 있다. 저항해도 질질∼ 국민의힘은 매일같이 보이콧과 논평을 쏟아내지만 무용지물이다. 의석수로 민주당을 이길 수 없을 뿐더러, 특검의 대대적 압수수색 등 당 내부도 시끄러운 만큼 민주당이 휘두르는 대로 속절없이 끌려다니는 형국이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을 겨냥해 ‘야당 탄압’ ‘야당 말살’ 프레임 씌우기에 나섰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정치 특검이 연이틀 국민의힘 심장부에 쳐들어왔다”며 “법사위에서는 특검 기간을 연장하고, 특별재판부도 설치하고, 재판까지 검열하겠다는 무도한 법들이 통과될 예정”이라고 소리 높였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민주당을 향해 “요즘 정부여당을 보면 폭주 기관차를 떠올리게 된다”며 “역사적 전례를 보면 폭주 기관차는 반드시 궤도를 이탈해 전복된다”고 꼬집었다. 특검이 국민의힘 압수수색을 시도하고 민주당이 내란특별법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 “지금처럼 과도한 행태를 계속 보이면 국민의 냉엄한 견제가 시작될 것”이라고도 주장했다. 오 시장은 “지금 국민의힘은 정권을 잃어버리고 이제 겨우 전열을 재정비하는 중”이라며 “그런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과도한 정치 공세로 야당을 뒤흔드는 폭주 기관차의 모습에서 저는 정말 전복이 멀지 않았구나 하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고 주장했다. 같은 당 송언석 원내대표도 “(이번 특검은) 이재명정부의 앞잡이를 자처하고 있는 조은석 정치특검”이라며 “국회의 권위와 헌정 질서를 파괴하려는 이재명정권과 특검의 야당 탄압에 맞서 끝까지 싸우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역풍 기우제” 오히려 똘똘 뭉쳤다 윤석열·김건희 지지율 올리는 주역 오히려 민주당은 단일대오로 뭉치면서 “역풍 기우제”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민주당이 야당이던 당시 개혁을 앞세워 조금이라도 앞서 나가려고 하면 역풍 타령이 이어졌다”며 “이는 개혁에 걸림돌이 된다. 지금이 개혁 적기다. 순풍이 부는데 이를 자꾸 역풍이라 하는 건 민주당이 돛을 펼치는 걸 막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이재명 대통령을 당선시킨 민주당 강성 지지층의 목소리가 당원 전체의 목소리로 인식돼 당분간은 이들이 주도권을 쥘 것이라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중론이다. 정치 효능감을 느낀 강성 지지층이 당 분위기는 물론 방향까지 주도하는 만큼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민주당 의원들의 강경한 태도가 요구된다는 설명이다. 날이 갈수록 민주당 의원들의 혀가 독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게다가 강성 지지층에게 있어 지금은 ‘이재명과 개혁의 시간’이다. 아직 국민의힘이 ‘내란 동조범’이라는 꼬리를 떼지 못한 만큼 여야 협치에서 국민의힘은 논외 대상으로 여겨진다. 범여권 의석수를 합하면 180석이 넘는 만큼 입법 과정에서도 국민의힘 눈치를 보거나 숙일 필요가 없다. 정부여당 지지율이 소폭 하락하더라도 다시 솟아날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윤 전 대통령과 김건희씨가 수사에 비협조적일수록 민주당을 향한 여론이 다시 우호적으로 변하는 상황을 노리는 것이다. 그 예시가 바로 윤 전 대통령의 구치소 CCTV 사건이다. 윤 전 대통령이 체포영장 집행을 거부하며 속옷만 입고 있었다는 민주당 의원들의 증언이 이어지면서 국민의 관심이 다시 전 정권으로 쏠렸다. 국회 법사위원장인 추미애 의원은 자신의 SNS에 “체포영장을 모면하려 한참 나이 차이가 나는 젊은 교도관들을 상대로 온갖 술수와 겁박을 늘어놓는 궁색하고 옹졸한 모습뿐이었다”고 비판했다. 추 의원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한때 대통령이셨던 분 아닌가, 옷을 입어달라”는 말에 “나 검사 27년 했다” “내 몸에 손대지 마라” “이거 따르면 앞길이 구만리인 여러분 어떻게 할 거냐” 등 극구 반발했다. 추 의원은 “(윤 전 대통령은) 내란의 밤에 불법 명령을 내리고, 사령관들에게 따르라고 거듭 재촉해 군 간부들의 신세를 망쳐 놨다”며 “재판 거부와 수사 방해, 회피로 책임지기를 거부하면서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갈수록 첩첩산중 여기에 국정감사까지 줄지어 있어 민주당의 강경한 태도가 더욱 강해질 것이란 해석이다. 국정감사는 흔히 야당의 시간으로 여겨지지만, 국민의힘은 여전히 탄핵의 강에서 헤어나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제 막 정기국회가 시작된 만큼 국민의힘은 갈 길이 멀다.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서 “악재가 동시다발적으로 사방에서 터지니 빠르게 수습해도 세월이 걸릴 것 같다”고 푸념했다. 이어 “걱정인 건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는 점이다. 수사가 끝나고 상황이 일단락돼도 속은 여전히 곪아 있을 것”이라며 “(민주당은) 계속해서 밀고 들어올 텐데 여기에 대응할 현실적인 방법이 아직은 없어 보인다. 언제까지나 민주당의 실책에 기댈 수만은 없는 노릇”이라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민주당 또 다른 솟아날 구멍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2차 민생회복 소비쿠폰 띄우기에 나섰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오는 22일부터 지급되는 정부의 2차 민생회복 소비쿠폰을 언급하며 “지난번 1차 소비쿠폰이 마중물이었다면, 이번에는 좀 더 물이 콸콸 나오는, 경제계에 활기가 넘치도록 하는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재명정부가 출범한 것만으로 재계엔 긍정의 시그널을 줬다”며 “주가도 3200을 오르락내리락하고 있고 시총이 700조원 늘었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 역시 “이정부 출범 이후 실행한 민생소비쿠폰 효과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22일부터 발급되는 2차 소비쿠폰은 내수와 소비 회복을 더욱 앞당길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같은 여당 의원들의 평가로 미뤄볼 때, 민주당은 정기 국회에 돌입하면서 정쟁으로 치우친 국회를 벗어나 민생과 경제로 시선을 돌리며 다시 한번 지지율 견인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