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구속된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정운호 불똥이…다음은 남동생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일요시사 취재1팀] 안재필 기자 = 재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롯데그룹이 신음 중이다. 오너일가를 향한 검찰 수사가 속도를 내고 있다. 그 첫 케이스로 롯데가 장녀가 쇠고랑을 찼다. 그녀는 왜….

지난 7일, 거액의 뒷돈을 받고 회사 돈을 횡령한 혐의로 신영자(74·여)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이 구속됐다. 롯데 측은 “회사가 아닌 개인의 문제”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지만, 핵심 계열사인 롯데쇼핑의 경영에 오랜 시간 관여했던 신 이사장의 구속은 롯데그룹에 만만치 않은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롯데가 장녀
꼬리 잡혔다

서울중앙지검 방위사업수사부(박찬호 부장검사)에 따르면 신 이사장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배임, 배임수재의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 2012년부터 작년까지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와 프렌차이즈 업체 대표 등에게 롯데면세점·백화점 입점 로비를 받은 혐의다. 입점 청탁비로는 30여억원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딸들을 면세 컨설팅 업체 비엔에프(BNF)통상의 임원으로 거짓 등록해 40억원 상당의 급여를 챙겨준 혐의도 받고 있다. 또 신 이사장은 비엔에프통상의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포맷하고 메인 서버를 교체하는 등 증거를 인멸하려 한 혐의도 받고 있다.

비엔에프통상은 신 이사장의 장남이 지분 100%를 소유한 업체로 알려져 있지만 검찰은 사실상 신 이사장이 운영하는 업체로 보고 있다. 이번 사태로 검찰에 소환된 신 이사장은 지난 6일 피의자 심문에서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신 이사장의 비리는 지난달 ‘정운호 게이트’ 사건을 검찰이 수사하면서 드러나게 됐다. 네이처리퍼블릭의 롯데 면세점 입점 로비 의혹으로부터 출발한 검찰은 우선 롯데호텔 면세사업부와 신 이사장의 저택을 압수수색하며 조사에 착수한다.

검찰은 비엔에프통상의 대표 이씨와 이원준 롯데쇼핑 대표 등 관계자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신 이사장의 지시로 네이처리퍼블릭이 롯데면세점에 입점할 수 있었고, 네이처리퍼블릭 매장 위치도 유리한 쪽으로 바꿔줬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롯데 측은 “사실무근”이라고 했다.

이후 검찰은 롯데그룹 정책본부를 비롯한 총 17곳에 대한 압수수색을 전격적으로 단행하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롯데그룹 오너 일가를 저격하는 대규모 경찰수사가 진행된 것. 당시 압수수색 대상으로 신격호(94)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집무실과 신동빈(61) 회장의 자택도 대상에 들어가 있었다. 검찰은 공식적으로 롯데그룹의 비자금 조성 의혹을 수사 이유로 밝혔다.

네이처 면세점 입점 로비 혐의로 구속
30억 수수…40억 자녀 챙겨준 의혹도

롯데에 대한 검찰 수사는 지난 2015년 신동주(62) 전 부회장이 직위에서 해임되면서 비롯된 경영권 분쟁 ‘형제의 난’이 기폭제가 됐다. 이 과정에서 검찰은 계좌 추적을 통해 롯데쇼핑·홈쇼핑·정보통신 등에서 비정상적인 자금 흐름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신 전 부회장이 세운 SDJ코퍼레이션 측이 제출한 롯데의 회계장부를 통해 수사가 진행되었다고 전했다.

롯데 내부와 일부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법조 비리와 관련된 물타기로 제 식구 감싸기에 이용되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하고 있다. 홍만표 변호사 사건과 정 전 대표, 그리고 이번 신 이사장의 사건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있기 때문.

이번 사건 최고의 수혜자가 법조 비리 관련 인물이기에 그렇다는 이야기도 있다. <중앙일보>에선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앱 ‘블라인드’의 롯데그룹 라운지에 올라온 글을 통해 롯데 내부에서 홍만표 변호사 사건을 덮으려는 물타기가 아니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SBS의 <직설 토크>에서는 “홍만표 변호사와 관련해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를 조사하다가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이 걸렸다”고 했다. 또 굳이 이득을 본 사람이 있다면 “검찰 수사를 한동안 받고 있었던 홍만표 변호사라든가 진경준 전 검사장일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유통가 대모
기업의 주역

모든 일은 정 전 대표에게서 시작됐다. 정 전 대표가 원정도박으로 기소되고, 이어 검사장 출신 변호사와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가 그를 변호하면서 엄청난 수임료를 받은 것이 밝혀진 것이다. 정운호 게이트로 알려진 이 사건을 통해 검찰은 수임료가 브로커를 통해 로비 자금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의혹을 제시했다. 정 전 대표는 동남아에서 100억원대 도박을 한 혐의로 조사를 받고 1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정 전 대표는 항소를 했고 항소심에서 부장판사 출신인 최유정 변호사가 선임된다. 항소심에서 정 전 대표는 보석 신청을 하고 검찰에서도 신청을 거부하지 않았다. 이에 최 변호사는 정운호 대표로부터 50억원을 받았다. 하지만 보석 신청이 기각되자 최 변호사는 30억원을 정 전 대표에서 돌려준다. 사실상 20억원을 착수금으로 받은 셈. 이에 정 전 대표는 “석방이 되지 않았으니 나머지 20억원도 돌려달라”고 주장하나 최 변호사는 착수금으로 받은 것이라며 거부를 했다.

구치소에서 두 사람의 다툼이 생기게 되고 최 변호사는 정 전 대표를 폭행죄로 고소한다. 여기서 정운호 게이트가 열리게 된다. 세간에 재벌들의 변호사 수임료가 수십억원이라는 풍문이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20억원이라는 구체적인 금액이 드러난 것.

논란이 일자 최 변호사는 “받은 돈은 6800만원이었으며 그 중 서류 복사비 1400만원, 2개월간 서울 구치소로 접견을 가기 위한 교통비 2400만원을 제외하고 수익은 3000만원에 불과”하다는 억지를 부린다. 최 변호사의 변명을 들은 정 전 대표는 로비스트 8인의 리스트를 공개한다. ‘전관예우’로 논란을 불러일으킨 홍 변호사도 여기에 연류 돼 있었다. 일각에선 대한민국 법조계의 썩은 실태와 전관예우의 폐해를 온 천하에 드러내는 사건이라는 비판을 가하기도 했다.

위 사건만 보면 롯데와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 같지만 검찰이 정 전 대표의 로비 계좌를 추적하면서 의혹은 연결이 됐다. 롯데 그룹 입장에선 마른하늘에 날벼락은 맞은 꼴. 롯데면세점 로비 의혹이라는 연결고리를 통해 신 이사장에게 사건이 이어진 것이다. 신 이사장으로 시작된 롯데 비자금 의혹은 결국 롯데그룹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수사로 번지고 말았다.

안그래도 그룹 뒤숭숭한데…
수사 롯데가 전체로 ‘활활’

롯데그룹 비리 수사 착수 이후에 오너가의 일원이 구속된 건 신 이사장이 처음이다. 구속된 신 이사장은 창업주 신 총괄회장의 장녀로 신 총괄회장이 일본 유학길에 오르기 전에 결혼한 고(故) 노순화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신 총괄회장은 신 이사장이 태어나기 전 일본으로 떠나 딸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고, 그 사이에 어머니를 여읜 신 이사장은 많은 고생을 하며 자랐다고 한다. 이후 신 총괄회장은 처음 얻은 자식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는 미안함에 큰 딸을 애틋하게 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 이사장은 부산여고와 이화여대를 나와 1973년 롯데호텔에 입사해 경영수업을 받았다. 한때 대학동문인 이명희(73·여) 신세계그룹 회장과 함께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며 ‘유통가의 대모’로 불린 적도 있다. 신 이사장은 탁월한 경영능력으로 오늘날 롯데쇼핑과 면세점을 일군 장본인으로도 꼽힌다.

신 이사장은 1983년부터 롯데백화점 영업담당 이사와 상무, 롯데쇼핑 상품본부장과 총괄 부사장 등을 거쳐 2008~2012년 롯데쇼핑 사장을 지내기도 했다. 롯데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롯데쇼핑의 성장을 이끌어온 인물이자 경쟁사에 비해 후발주자였던 롯데가 국내 유통업계서 우뚝 설 수 있게 만든 주역인 셈.

신 이사장은 현재 롯데호텔, 부산롯데호텔, 롯데자이언츠, 롯데쇼핑 등 계열사 4곳의 사내이사와 대홍기획, 롯데건설, 롯데리아 등 3사의 비상무이사를 맡고 있다. 신 이사장은 롯데제과(2%), 롯데칠성(2%), 롯데푸드(1%), 롯데정보통신(3%), 코리아세븐(2%), 대홍기획(6%) 등의 지분도 보유하고 있다.


자녀로는 1남3녀를 두었고, 장남 장재영(48)씨는 이번에 조사를 받은 비엔에프 통상의 최대 주주다. 차녀 장선윤(45)씨는 롯데호텔의 해외사업개발 담당 상무로 재직 중이다. 삼녀 장정안(43)씨는 2004년 국제 변호사와 결혼 후 줄곧 미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15년 형제의 난 때 신 전 부회장과 신 회장이 큰누나인 신 이사장을 끌어들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신 이사장이 아버지의 큰 신임을 얻고 있기 때문에 그녀의 선택으로 결과가 변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

신동빈 편?
신동주 편?

롯데그룹이 국내에서 우뚝 서게 한 주역이자 사랑받던 맏딸이 롯데가 전체로 번지는 수사의 시작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현재 롯데 측은 신 이사장의 혐의에 대해 “전혀 몰랐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핵심 계열사에서 오랜 시간 경영에 관여해온 신 이사장이 구속되면서 검찰은 롯데그룹의 비자금 의혹 관련 등 수사에 가속이 붙을 것으로 보고 있다.

향후 검찰 수사 과정에서 구형량 감경을 조건으로 신 이사장이 롯데그룹 측에 불리한 진술을 할 가능성도 배제 할 수 없을 것이라는 법조계의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신 이사장의 구속은 롯데그룹의 임원급들을 포함한 오너일가 전체에 대한 검찰의 강력한 수사 의지로 보고 있다.

검찰의 수사망에 오른 것은 신 총괄회장의 셋재 부인 서미경과 그의 딸 신유미까지 포함된 것으로 전해진다. 서씨 모녀는 그동안 철저하게 베일에 싸여 있었고 형제간 경영권 분쟁 속에서도 아무런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검찰은 서씨 모녀가 보유한 부동산이 신 총괄회장의 비자금 통로라는 의혹을 제시하며 자산을 조사하고 있다. 현재 서씨 모녀 소유의 부동산은 1000억원 상당으로 전해졌다.


앞서 서씨에게 롯데시네마 매점 독점운영 특혜를 줬다고 ‘일감 몰아주기’라며 공정위에 지적받았던 건도 재조명되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통상 대기업의 비자금 조성은 부동산 거래나 일감 몰아주기 등을 통해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며 앞으로 서씨 모녀에 대한 검찰의 수사 강도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롯데그룹 정책 본부의 핵심 3인방에 대한 검찰 소환도 시작된다. 일명 ‘신동빈의 남자들’로 알려진 이들은 신 회장의 측근으로 이인원 롯데그룹 정책본부장, 황각규 운영실장, 소진세 커뮤니케이션실장이다. 롯데그룹의 배임·횡령이 사실로 들어나면 그 과정에 개입했을 것이라는 의심을 받고 있다. 검찰은 신 이사장의 신병처리가 끝나는 대로 이 본부장 등 3인을 소환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출국금지 조치도 내려진 상태라고 한다.

신 이사장을 시작으로 측근들의 조사까지, 검찰의 롯데그룹에 대한 수사는 사실상 신 회장을 직접 겨냥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지금까지의 속도대로 수사가 진행되면 그룹 내 핵심 인물들은 물론 신 회장의 검찰 소환도 예견된 수순이라는 말. 법조계 일각에선 신 회장에 대한 소환 시점이 이달 중순이 되지 않을까라는 의견과 함께 구속을 면하기 힘들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지난 3일 일본 하네다 공항을 출발해 김포공항을 통해 귀국한 신 회장은 언론을 통해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고 말했다. 이어 신 회장은 “성실히 협조하도록 하겠다”며 검찰수사에 대한 뜻을 밝혔다. 신 회장은 지난달 25일 롯데홀딩스 주주총회에서 형 신 전 부회장에게 승리를 거둬 경영권을 지켜냈다. 또 신 회장은 서울중앙지검장을 지낸 천성관 변호사와 서울고검장 출신 차동민 변호사 등을 선임했다. 수사에는 협조하겠지만 불거지는 의혹 등에 대해선 확실하게 처리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셈.

신 총괄회장은 현재 비자금 조성 혐의를 받고 있지만 지난달 10일 검찰의 1차 압수수색 직전 고열 등을 이유로 입원을 해 검찰이 소환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또 신 회장과 경영권을 두고 경쟁 중인 신 전 부회장 역시 검찰 수사 대상에 올랐다.

부친도 위험해
수사 대상 올라

현재 검찰은 지난달 롯데케미칼이 원료를 수입할 때 일본 롯데물산 등 해외 계열사를 끼워 넣어 이른바 ‘통행세’를 받아 수익을 남긴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신 전 부회장은 롯데 홀딩스 부회장직을 역임하며 일본 롯데그룹을 경영했으며 국내 롯데그룹 계열사들에 등기임원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신 전 부회장은 검찰이 한·일 롯데계열사간 수사의 초점을 맞추고 있는 롯데케미칼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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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년 만에 해체’ 검찰 분해 전조

‘78년 만에 해체’ 검찰 분해 전조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검찰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한때 정부의 ‘칼’ 역할을 맡아 위세를 떨쳤던 검찰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면서 우리나라는 또 한 번 가보지 않은 길을 가게 됐다. 검찰청이 완전히 폐지되기까지 유예기간은 1년. 검찰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살펴봤다. 검찰은 새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그 쓰임새가 달라졌다. 개혁의 도구로 이용되기도 했고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한 적도 있다. 칼로 쓰이면서 동시에 고쳐야 할 기관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정부도 검찰의 존재 자체를 지우진 못했다. 견제 기관을 만들어 권한을 축소한 적은 있지만 ‘폐지’를 가시화한 적은 없었다는 뜻이다. 대통령 의지 당이 화답? 지난달 26일 검찰청을 폐지하고 기획재정부를 분리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개정안에 따라 검찰청은 설립 78년 만에 문을 닫게 됐다. 검찰청 업무 중 수사는 중대범죄수사청(이하 중수청), 기소는 공소청이 맡는다. 중수청은 행정안전부 장관, 공소청은 법무부 장관 소속으로 정해졌다. 검찰청 폐지와 중수청·공소청 설치에는 1년 유예기간을 두기로 했다. 지난달 30일 개정안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되면서 검찰청 폐지는 내년 10월로 정해졌다. 내년 10월1일에 법률안이 공포되고 이튿날인 10월2일 중수청·공소청이 설치되는 것이다. 문재인정부가 검찰의 권한을 줄이는 방향으로 검찰개혁을 본격화한 데 이어 이재명정부에서 검찰 폐지를 결정하면서 진보 정부의 숙원이 이뤄졌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이정부 출범 직후부터 검찰청을 폐지하겠다는 뜻을 드러냈다. 검찰의 수사‧기소 업무를 분리하고 수사권 등은 신설 기관으로 이관하겠다는 게 주요 내용이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취임한 이후부터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정 대표는 당 대표 선거 전부터 “추석 전 처리”를 공공연하게 말해왔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국무회의에서 “검찰이 되도 않는 것을 기소해 무죄를 받고 나면 면책하려고 항소하고, 상고하면서 국민한테 고통을 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형사소송법에 ‘10명의 범인을 놓쳐도 1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면 안 된다’는 말이 있다”며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 무죄추정의 원칙(으로 하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혹시 무죄거나 무혐의일 수 있으면 기소하지 말라는 것”이라며 “(검찰이) 마음에 안 들면 기소해서 고통을 주고 자기 편이면 죄가 명확한데도 봐주면서 기준이 다 무너졌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정성호 법무부 장관에게 “1심이 무죄라고 했는데 (검찰이) 무조건 항소해서 유죄로 바뀌면 타당한가”라며 “검찰이 1심에서 무죄 난 사건을 항소해서 유죄로 바뀔 가능성이 얼마나 되나”라고 물었다. 정부조직법 개정안 통과 내년 10월 폐지 확정돼 정 장관이 ‘5% 정도’라고 답하자 이 대통령은 “95%는 무죄를 한 번 더 확인하기 위해서 항소심으로 생고생한다는 말”이라며 “나중엔 무죄는 났는데 집안이 망했다, 이거 윤석열 대통령이 한 말 아닌가”라고 했다. 또 “국가가 왜 이리 국민한테 잔인한가”라며 “인류 수천년 역사에서 경험으로 정한 역사가 있다. 의심스러우면 피고인 이익으로 하라는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검찰청 폐지를 바라보는 정치권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린다. 검찰개혁을 숙원으로 여겼던 여권에선 일제히 ‘환영’의 뜻을 보였다. 반면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일방 독주’라고 비판했다. 실제 정부조직법 개정안은 국민의힘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퇴장하면서 민주당 주도로 표결이 진행됐다.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정부조직법 개정안 본회의 의결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김대중 대통령님에게 사형을 구형했고 노무현 대통령님을 죽음으로까지 내몰았던 정권의 칼, 검찰은 이제 사라졌다”며 “역사적인 날이다. 검찰청이 78년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고 말했다. 박 대변인과 함께 기자간담회를 진행한 민주당 한정애 정책위의장은 “78년이라는 세월 사이 우린 여러 번에 걸친 개혁의 후퇴, 개혁의 좌절을 맛보기도 했다”며 “이제는 그 길을 다시 가지 않겠다고 하는 개혁 의지가 제대로 발현된 정부조직법”이라고 개정안을 평가했다. 표결에 불참한 국민의힘은 강하게 반발했다. 국민의힘 최보윤 수석대변인은 “이재명정권이 끝내 검찰청을 없앴다. 이는 간판을 바꾼 문제가 아니라 국민을 지켜주던 마지막 사법 안전망을 무너뜨린 폭거”라며 “가장 먼저 피해를 보는 건 사회적 약자”라는 내용의 논평을 냈다. 그러면서 “그 공백은 가장 약한 곳에서부터 드러난다. 아동 학대, 장애인 대상 범죄, 노인 학대 사건은 피해자가 말문을 열기 어렵고 증거는 금세 사라진다”며 “예전에는 빠진 단서를 보완하고 잘못된 수사를 되돌릴 두 번째 기회가 있었지만 이제 그 문이 닫혔다”고 비판했다. 검사들은 집단 반발 하루아침에 조직이 사라지게 된 검찰 내부는 참담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은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위헌 소지가 있다는 입장이다. 노 대행은 지난달 29일 검찰 구성원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78년간 국민과 함께해 온 검찰이 충분한 논의나 대비 없이 폐지되는 현실에 총장 직무대행으로서 매우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이어 “헌법상 명시된 검찰을 법률로 폐지하는 것은 위헌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역대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들도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명백한 위헌”이라면서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들은 “헌법은 89조에서 검찰총장 임명에 대해, 또한 제12조와 제16조에서는 검사의 영장 청구권에 대해 명백히 규정하고 있다”며 “이런 규정은 헌법의 삼권분립의 원칙에 따라 정부의 준사법기관인 검찰청을 둔다는 것을 명백히 한 것이므로 이를 폐지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설명했다. 검사들 사이에서도 동요가 상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이정부 1호 법안인 3대 특검법을 통해 발동한 특검에 파견된 검사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 상황이다. 법조계에 따르면 현재 3대 특검팀에는 110명의 검사와 99명의 검찰 수사관이 파견돼있다. 김건희 특검팀에는 40명, 내란 특검팀과 채 상병 특검팀에는 각각 56명, 14명의 검사가 근무하고 있다. 김건희 특검팀과 내란 특검팀에 파견된 검사 수를 보면 웬만한 일선 검찰청 검사 정원 규모와 비슷한 수준이다. 이 가운데 김건희 특검팀에 파견된 검사들이 “검찰청으로 복귀하겠다”고 요청한 사실이 드러났다. 정부조직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 국무회의 의결에 대한 집단 반발로 해석된다. 위헌 주장 헌재 가나 검사들은 지난달 30일 민중기 특검에게 입장문을 제출했다. 입장문에는 정부여당의 검찰개혁 핵심은 ‘수사와 기소의 분리’ ‘검찰의 직접 수사 금지’인데 특검에 검사들이 남는 건 모순이라는 취지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여권이나 시민사회 단체 등에서는 ‘자업자득’이라는 의견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검찰이 정권의 입맛에 따라 칼을 휘두르면서 현재 상황을 자초했다는 지적이다. 권력의 방향에 따라 태도를 달리하는 검찰에게 수사권과 기소권을 동시에 줄 수 없다는 의지가 이번 정부조직법 개정안에서 뚜렷하게 나타났다는 설명이다. 실제 진보 정부에서는 오랜 시간 검찰의 권한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개혁을 시도해 왔다. 본격화된 것은 문정부 때부터지만, 그 시발점은 김대중·노무현정부 때라고 봐야 한다.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립 등 검찰개혁의 핵심 방안들은 다 그 시기에 나왔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의 검찰개혁은 실패했다. 검찰의 반발이 대단했고 당시 정치권에 대한 전방위적인 수사를 진행하면서 이들의 위세도 엄청났다. 실질적인 검찰개혁이 이뤄진 건 문정부 들어서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검찰개혁에 대한 목소리가 커졌고 국민 여론도 정부에 힘을 더했다. 문정부에서 검찰은 ‘적폐 청산’의 칼로 기능하면서 동시에 개혁 대상으로 지목됐다. 검·경 수사권 조정이 이뤄졌고 공수처가 출범했다. 문제는 검찰개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내부 출혈이 상당했다는 점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박근혜정부에서 국가정보원 댓글 수사 이후 한직으로 좌천돼있던 윤석열 전 대통령을 서울중앙지검장, 검찰총장으로 연이어 영전시켰다. 진보 정부의 숙원 노·문 거쳐 결말 이는 향후 문정부를 뒤흔들었던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 간의 갈등, 윤 전 대통령의 대선 출마, 당선 등의 불씨가 됐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관련 의혹이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떨구기도 했다. 조 전 장관의 뒤를 이어 취임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윤 전 대통령과 정면으로 출동했다. ‘추·윤 대전’이라는 표현이 1년 내내 언론에 오르내릴 정도였다. 이 과정에서 검찰개혁은 흐지부지됐다. 법안이 급하게 처리되면서 ‘누더기’라는 지적이 잇따랐고 우여곡절 끝에 출범한 공수처는 제대로 된 성과를 내지 못했다. 특정 사건에 대한 수사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등을 두고 기관끼리 갈등을 빚는 일도 일어났다. 경찰에 수사가 몰리면서 재판이 지연되는 일도 벌어졌다. 문정부의 검찰개혁을 ‘반쪽짜리’라고 평가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이후 이정부는 아예 검찰청을 없애겠다는 뜻을 품고 임기를 시작했다. 대선후보 때는 물론 윤석열정부 시기 내내 ‘사법 리스크’에 시달렸던 이 대통령은 검찰에 대판 비판적인 시각을 줄곧 드러낸 바 있다. 그리고 이 대통령의 뜻은 민주당을 거쳐 법안을 통해 실현됐다. 물론 과제는 산적해 있다. 당장 보완수사권 문제를 두고 이견이 있고 중수청과 공소청을 어떻게 운영할지 세밀하게 구상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검찰은 보완 수사권을 존치해 달라고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검사가 경찰의 기록만 갖고 기소 여부를 판단하면 부실 기소, 불기소 남발 등으로 국민에게 피해가 돌아갈 수 있다는 게 주장의 배경이다. 또 검찰에 집중된 권한을 분산하기 위해 개혁을 진행했지만, 이 과정에서 또 다른 기관이 비대해지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실제 일각에서는 이름만 다른 ‘검찰’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검찰이 정권의 칼로 기능했던 것처럼 다른 이름의 ‘칼’이 등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걱정이다. 산적한 과제 후폭풍 남아 검찰은 꽤 오랜 시간 외줄 위에 서 있던 상황이다. 이정부가 그 줄을 끊으면서 검찰은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 검찰에 대한 경고는 늘 있었고 전조도 뚜렷했다. 이제 후속조치를 두고 정치권은 물론 사회가 시끄러워질 전망이다. 검찰 해체가 가져올 후폭풍은 국민에게 언제쯤 닿을 것인가.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