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구속된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정운호 불똥이…다음은 남동생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일요시사 취재1팀] 안재필 기자 = 재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롯데그룹이 신음 중이다. 오너일가를 향한 검찰 수사가 속도를 내고 있다. 그 첫 케이스로 롯데가 장녀가 쇠고랑을 찼다. 그녀는 왜….

지난 7일, 거액의 뒷돈을 받고 회사 돈을 횡령한 혐의로 신영자(74·여)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이 구속됐다. 롯데 측은 “회사가 아닌 개인의 문제”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지만, 핵심 계열사인 롯데쇼핑의 경영에 오랜 시간 관여했던 신 이사장의 구속은 롯데그룹에 만만치 않은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롯데가 장녀
꼬리 잡혔다

서울중앙지검 방위사업수사부(박찬호 부장검사)에 따르면 신 이사장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배임, 배임수재의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 2012년부터 작년까지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와 프렌차이즈 업체 대표 등에게 롯데면세점·백화점 입점 로비를 받은 혐의다. 입점 청탁비로는 30여억원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딸들을 면세 컨설팅 업체 비엔에프(BNF)통상의 임원으로 거짓 등록해 40억원 상당의 급여를 챙겨준 혐의도 받고 있다. 또 신 이사장은 비엔에프통상의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포맷하고 메인 서버를 교체하는 등 증거를 인멸하려 한 혐의도 받고 있다.

비엔에프통상은 신 이사장의 장남이 지분 100%를 소유한 업체로 알려져 있지만 검찰은 사실상 신 이사장이 운영하는 업체로 보고 있다. 이번 사태로 검찰에 소환된 신 이사장은 지난 6일 피의자 심문에서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신 이사장의 비리는 지난달 ‘정운호 게이트’ 사건을 검찰이 수사하면서 드러나게 됐다. 네이처리퍼블릭의 롯데 면세점 입점 로비 의혹으로부터 출발한 검찰은 우선 롯데호텔 면세사업부와 신 이사장의 저택을 압수수색하며 조사에 착수한다.

검찰은 비엔에프통상의 대표 이씨와 이원준 롯데쇼핑 대표 등 관계자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신 이사장의 지시로 네이처리퍼블릭이 롯데면세점에 입점할 수 있었고, 네이처리퍼블릭 매장 위치도 유리한 쪽으로 바꿔줬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롯데 측은 “사실무근”이라고 했다.

이후 검찰은 롯데그룹 정책본부를 비롯한 총 17곳에 대한 압수수색을 전격적으로 단행하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롯데그룹 오너 일가를 저격하는 대규모 경찰수사가 진행된 것. 당시 압수수색 대상으로 신격호(94)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집무실과 신동빈(61) 회장의 자택도 대상에 들어가 있었다. 검찰은 공식적으로 롯데그룹의 비자금 조성 의혹을 수사 이유로 밝혔다.

네이처 면세점 입점 로비 혐의로 구속
30억 수수…40억 자녀 챙겨준 의혹도

롯데에 대한 검찰 수사는 지난 2015년 신동주(62) 전 부회장이 직위에서 해임되면서 비롯된 경영권 분쟁 ‘형제의 난’이 기폭제가 됐다. 이 과정에서 검찰은 계좌 추적을 통해 롯데쇼핑·홈쇼핑·정보통신 등에서 비정상적인 자금 흐름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신 전 부회장이 세운 SDJ코퍼레이션 측이 제출한 롯데의 회계장부를 통해 수사가 진행되었다고 전했다.

롯데 내부와 일부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법조 비리와 관련된 물타기로 제 식구 감싸기에 이용되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하고 있다. 홍만표 변호사 사건과 정 전 대표, 그리고 이번 신 이사장의 사건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있기 때문.

이번 사건 최고의 수혜자가 법조 비리 관련 인물이기에 그렇다는 이야기도 있다. <중앙일보>에선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앱 ‘블라인드’의 롯데그룹 라운지에 올라온 글을 통해 롯데 내부에서 홍만표 변호사 사건을 덮으려는 물타기가 아니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SBS의 <직설 토크>에서는 “홍만표 변호사와 관련해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를 조사하다가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이 걸렸다”고 했다. 또 굳이 이득을 본 사람이 있다면 “검찰 수사를 한동안 받고 있었던 홍만표 변호사라든가 진경준 전 검사장일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유통가 대모
기업의 주역

모든 일은 정 전 대표에게서 시작됐다. 정 전 대표가 원정도박으로 기소되고, 이어 검사장 출신 변호사와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가 그를 변호하면서 엄청난 수임료를 받은 것이 밝혀진 것이다. 정운호 게이트로 알려진 이 사건을 통해 검찰은 수임료가 브로커를 통해 로비 자금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의혹을 제시했다. 정 전 대표는 동남아에서 100억원대 도박을 한 혐의로 조사를 받고 1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정 전 대표는 항소를 했고 항소심에서 부장판사 출신인 최유정 변호사가 선임된다. 항소심에서 정 전 대표는 보석 신청을 하고 검찰에서도 신청을 거부하지 않았다. 이에 최 변호사는 정운호 대표로부터 50억원을 받았다. 하지만 보석 신청이 기각되자 최 변호사는 30억원을 정 전 대표에서 돌려준다. 사실상 20억원을 착수금으로 받은 셈. 이에 정 전 대표는 “석방이 되지 않았으니 나머지 20억원도 돌려달라”고 주장하나 최 변호사는 착수금으로 받은 것이라며 거부를 했다.

구치소에서 두 사람의 다툼이 생기게 되고 최 변호사는 정 전 대표를 폭행죄로 고소한다. 여기서 정운호 게이트가 열리게 된다. 세간에 재벌들의 변호사 수임료가 수십억원이라는 풍문이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20억원이라는 구체적인 금액이 드러난 것.

논란이 일자 최 변호사는 “받은 돈은 6800만원이었으며 그 중 서류 복사비 1400만원, 2개월간 서울 구치소로 접견을 가기 위한 교통비 2400만원을 제외하고 수익은 3000만원에 불과”하다는 억지를 부린다. 최 변호사의 변명을 들은 정 전 대표는 로비스트 8인의 리스트를 공개한다. ‘전관예우’로 논란을 불러일으킨 홍 변호사도 여기에 연류 돼 있었다. 일각에선 대한민국 법조계의 썩은 실태와 전관예우의 폐해를 온 천하에 드러내는 사건이라는 비판을 가하기도 했다.

위 사건만 보면 롯데와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 같지만 검찰이 정 전 대표의 로비 계좌를 추적하면서 의혹은 연결이 됐다. 롯데 그룹 입장에선 마른하늘에 날벼락은 맞은 꼴. 롯데면세점 로비 의혹이라는 연결고리를 통해 신 이사장에게 사건이 이어진 것이다. 신 이사장으로 시작된 롯데 비자금 의혹은 결국 롯데그룹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수사로 번지고 말았다.

안그래도 그룹 뒤숭숭한데…
수사 롯데가 전체로 ‘활활’

롯데그룹 비리 수사 착수 이후에 오너가의 일원이 구속된 건 신 이사장이 처음이다. 구속된 신 이사장은 창업주 신 총괄회장의 장녀로 신 총괄회장이 일본 유학길에 오르기 전에 결혼한 고(故) 노순화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신 총괄회장은 신 이사장이 태어나기 전 일본으로 떠나 딸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고, 그 사이에 어머니를 여읜 신 이사장은 많은 고생을 하며 자랐다고 한다. 이후 신 총괄회장은 처음 얻은 자식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는 미안함에 큰 딸을 애틋하게 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 이사장은 부산여고와 이화여대를 나와 1973년 롯데호텔에 입사해 경영수업을 받았다. 한때 대학동문인 이명희(73·여) 신세계그룹 회장과 함께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며 ‘유통가의 대모’로 불린 적도 있다. 신 이사장은 탁월한 경영능력으로 오늘날 롯데쇼핑과 면세점을 일군 장본인으로도 꼽힌다.

신 이사장은 1983년부터 롯데백화점 영업담당 이사와 상무, 롯데쇼핑 상품본부장과 총괄 부사장 등을 거쳐 2008~2012년 롯데쇼핑 사장을 지내기도 했다. 롯데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롯데쇼핑의 성장을 이끌어온 인물이자 경쟁사에 비해 후발주자였던 롯데가 국내 유통업계서 우뚝 설 수 있게 만든 주역인 셈.

신 이사장은 현재 롯데호텔, 부산롯데호텔, 롯데자이언츠, 롯데쇼핑 등 계열사 4곳의 사내이사와 대홍기획, 롯데건설, 롯데리아 등 3사의 비상무이사를 맡고 있다. 신 이사장은 롯데제과(2%), 롯데칠성(2%), 롯데푸드(1%), 롯데정보통신(3%), 코리아세븐(2%), 대홍기획(6%) 등의 지분도 보유하고 있다.


자녀로는 1남3녀를 두었고, 장남 장재영(48)씨는 이번에 조사를 받은 비엔에프 통상의 최대 주주다. 차녀 장선윤(45)씨는 롯데호텔의 해외사업개발 담당 상무로 재직 중이다. 삼녀 장정안(43)씨는 2004년 국제 변호사와 결혼 후 줄곧 미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15년 형제의 난 때 신 전 부회장과 신 회장이 큰누나인 신 이사장을 끌어들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신 이사장이 아버지의 큰 신임을 얻고 있기 때문에 그녀의 선택으로 결과가 변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

신동빈 편?
신동주 편?

롯데그룹이 국내에서 우뚝 서게 한 주역이자 사랑받던 맏딸이 롯데가 전체로 번지는 수사의 시작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현재 롯데 측은 신 이사장의 혐의에 대해 “전혀 몰랐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핵심 계열사에서 오랜 시간 경영에 관여해온 신 이사장이 구속되면서 검찰은 롯데그룹의 비자금 의혹 관련 등 수사에 가속이 붙을 것으로 보고 있다.

향후 검찰 수사 과정에서 구형량 감경을 조건으로 신 이사장이 롯데그룹 측에 불리한 진술을 할 가능성도 배제 할 수 없을 것이라는 법조계의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신 이사장의 구속은 롯데그룹의 임원급들을 포함한 오너일가 전체에 대한 검찰의 강력한 수사 의지로 보고 있다.

검찰의 수사망에 오른 것은 신 총괄회장의 셋재 부인 서미경과 그의 딸 신유미까지 포함된 것으로 전해진다. 서씨 모녀는 그동안 철저하게 베일에 싸여 있었고 형제간 경영권 분쟁 속에서도 아무런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검찰은 서씨 모녀가 보유한 부동산이 신 총괄회장의 비자금 통로라는 의혹을 제시하며 자산을 조사하고 있다. 현재 서씨 모녀 소유의 부동산은 1000억원 상당으로 전해졌다.


앞서 서씨에게 롯데시네마 매점 독점운영 특혜를 줬다고 ‘일감 몰아주기’라며 공정위에 지적받았던 건도 재조명되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통상 대기업의 비자금 조성은 부동산 거래나 일감 몰아주기 등을 통해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며 앞으로 서씨 모녀에 대한 검찰의 수사 강도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롯데그룹 정책 본부의 핵심 3인방에 대한 검찰 소환도 시작된다. 일명 ‘신동빈의 남자들’로 알려진 이들은 신 회장의 측근으로 이인원 롯데그룹 정책본부장, 황각규 운영실장, 소진세 커뮤니케이션실장이다. 롯데그룹의 배임·횡령이 사실로 들어나면 그 과정에 개입했을 것이라는 의심을 받고 있다. 검찰은 신 이사장의 신병처리가 끝나는 대로 이 본부장 등 3인을 소환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출국금지 조치도 내려진 상태라고 한다.

신 이사장을 시작으로 측근들의 조사까지, 검찰의 롯데그룹에 대한 수사는 사실상 신 회장을 직접 겨냥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지금까지의 속도대로 수사가 진행되면 그룹 내 핵심 인물들은 물론 신 회장의 검찰 소환도 예견된 수순이라는 말. 법조계 일각에선 신 회장에 대한 소환 시점이 이달 중순이 되지 않을까라는 의견과 함께 구속을 면하기 힘들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지난 3일 일본 하네다 공항을 출발해 김포공항을 통해 귀국한 신 회장은 언론을 통해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고 말했다. 이어 신 회장은 “성실히 협조하도록 하겠다”며 검찰수사에 대한 뜻을 밝혔다. 신 회장은 지난달 25일 롯데홀딩스 주주총회에서 형 신 전 부회장에게 승리를 거둬 경영권을 지켜냈다. 또 신 회장은 서울중앙지검장을 지낸 천성관 변호사와 서울고검장 출신 차동민 변호사 등을 선임했다. 수사에는 협조하겠지만 불거지는 의혹 등에 대해선 확실하게 처리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셈.

신 총괄회장은 현재 비자금 조성 혐의를 받고 있지만 지난달 10일 검찰의 1차 압수수색 직전 고열 등을 이유로 입원을 해 검찰이 소환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또 신 회장과 경영권을 두고 경쟁 중인 신 전 부회장 역시 검찰 수사 대상에 올랐다.

부친도 위험해
수사 대상 올라

현재 검찰은 지난달 롯데케미칼이 원료를 수입할 때 일본 롯데물산 등 해외 계열사를 끼워 넣어 이른바 ‘통행세’를 받아 수익을 남긴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신 전 부회장은 롯데 홀딩스 부회장직을 역임하며 일본 롯데그룹을 경영했으며 국내 롯데그룹 계열사들에 등기임원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신 전 부회장은 검찰이 한·일 롯데계열사간 수사의 초점을 맞추고 있는 롯데케미칼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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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