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구속된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정운호 불똥이…다음은 남동생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일요시사 취재1팀] 안재필 기자 = 재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롯데그룹이 신음 중이다. 오너일가를 향한 검찰 수사가 속도를 내고 있다. 그 첫 케이스로 롯데가 장녀가 쇠고랑을 찼다. 그녀는 왜….

지난 7일, 거액의 뒷돈을 받고 회사 돈을 횡령한 혐의로 신영자(74·여)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이 구속됐다. 롯데 측은 “회사가 아닌 개인의 문제”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지만, 핵심 계열사인 롯데쇼핑의 경영에 오랜 시간 관여했던 신 이사장의 구속은 롯데그룹에 만만치 않은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롯데가 장녀
꼬리 잡혔다

서울중앙지검 방위사업수사부(박찬호 부장검사)에 따르면 신 이사장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배임, 배임수재의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 2012년부터 작년까지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와 프렌차이즈 업체 대표 등에게 롯데면세점·백화점 입점 로비를 받은 혐의다. 입점 청탁비로는 30여억원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딸들을 면세 컨설팅 업체 비엔에프(BNF)통상의 임원으로 거짓 등록해 40억원 상당의 급여를 챙겨준 혐의도 받고 있다. 또 신 이사장은 비엔에프통상의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포맷하고 메인 서버를 교체하는 등 증거를 인멸하려 한 혐의도 받고 있다.

비엔에프통상은 신 이사장의 장남이 지분 100%를 소유한 업체로 알려져 있지만 검찰은 사실상 신 이사장이 운영하는 업체로 보고 있다. 이번 사태로 검찰에 소환된 신 이사장은 지난 6일 피의자 심문에서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신 이사장의 비리는 지난달 ‘정운호 게이트’ 사건을 검찰이 수사하면서 드러나게 됐다. 네이처리퍼블릭의 롯데 면세점 입점 로비 의혹으로부터 출발한 검찰은 우선 롯데호텔 면세사업부와 신 이사장의 저택을 압수수색하며 조사에 착수한다.

검찰은 비엔에프통상의 대표 이씨와 이원준 롯데쇼핑 대표 등 관계자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신 이사장의 지시로 네이처리퍼블릭이 롯데면세점에 입점할 수 있었고, 네이처리퍼블릭 매장 위치도 유리한 쪽으로 바꿔줬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롯데 측은 “사실무근”이라고 했다.

이후 검찰은 롯데그룹 정책본부를 비롯한 총 17곳에 대한 압수수색을 전격적으로 단행하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롯데그룹 오너 일가를 저격하는 대규모 경찰수사가 진행된 것. 당시 압수수색 대상으로 신격호(94)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집무실과 신동빈(61) 회장의 자택도 대상에 들어가 있었다. 검찰은 공식적으로 롯데그룹의 비자금 조성 의혹을 수사 이유로 밝혔다.

네이처 면세점 입점 로비 혐의로 구속
30억 수수…40억 자녀 챙겨준 의혹도

롯데에 대한 검찰 수사는 지난 2015년 신동주(62) 전 부회장이 직위에서 해임되면서 비롯된 경영권 분쟁 ‘형제의 난’이 기폭제가 됐다. 이 과정에서 검찰은 계좌 추적을 통해 롯데쇼핑·홈쇼핑·정보통신 등에서 비정상적인 자금 흐름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신 전 부회장이 세운 SDJ코퍼레이션 측이 제출한 롯데의 회계장부를 통해 수사가 진행되었다고 전했다.

롯데 내부와 일부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법조 비리와 관련된 물타기로 제 식구 감싸기에 이용되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하고 있다. 홍만표 변호사 사건과 정 전 대표, 그리고 이번 신 이사장의 사건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있기 때문.

이번 사건 최고의 수혜자가 법조 비리 관련 인물이기에 그렇다는 이야기도 있다. <중앙일보>에선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앱 ‘블라인드’의 롯데그룹 라운지에 올라온 글을 통해 롯데 내부에서 홍만표 변호사 사건을 덮으려는 물타기가 아니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SBS의 <직설 토크>에서는 “홍만표 변호사와 관련해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를 조사하다가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이 걸렸다”고 했다. 또 굳이 이득을 본 사람이 있다면 “검찰 수사를 한동안 받고 있었던 홍만표 변호사라든가 진경준 전 검사장일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유통가 대모
기업의 주역

모든 일은 정 전 대표에게서 시작됐다. 정 전 대표가 원정도박으로 기소되고, 이어 검사장 출신 변호사와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가 그를 변호하면서 엄청난 수임료를 받은 것이 밝혀진 것이다. 정운호 게이트로 알려진 이 사건을 통해 검찰은 수임료가 브로커를 통해 로비 자금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의혹을 제시했다. 정 전 대표는 동남아에서 100억원대 도박을 한 혐의로 조사를 받고 1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정 전 대표는 항소를 했고 항소심에서 부장판사 출신인 최유정 변호사가 선임된다. 항소심에서 정 전 대표는 보석 신청을 하고 검찰에서도 신청을 거부하지 않았다. 이에 최 변호사는 정운호 대표로부터 50억원을 받았다. 하지만 보석 신청이 기각되자 최 변호사는 30억원을 정 전 대표에서 돌려준다. 사실상 20억원을 착수금으로 받은 셈. 이에 정 전 대표는 “석방이 되지 않았으니 나머지 20억원도 돌려달라”고 주장하나 최 변호사는 착수금으로 받은 것이라며 거부를 했다.

구치소에서 두 사람의 다툼이 생기게 되고 최 변호사는 정 전 대표를 폭행죄로 고소한다. 여기서 정운호 게이트가 열리게 된다. 세간에 재벌들의 변호사 수임료가 수십억원이라는 풍문이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20억원이라는 구체적인 금액이 드러난 것.

논란이 일자 최 변호사는 “받은 돈은 6800만원이었으며 그 중 서류 복사비 1400만원, 2개월간 서울 구치소로 접견을 가기 위한 교통비 2400만원을 제외하고 수익은 3000만원에 불과”하다는 억지를 부린다. 최 변호사의 변명을 들은 정 전 대표는 로비스트 8인의 리스트를 공개한다. ‘전관예우’로 논란을 불러일으킨 홍 변호사도 여기에 연류 돼 있었다. 일각에선 대한민국 법조계의 썩은 실태와 전관예우의 폐해를 온 천하에 드러내는 사건이라는 비판을 가하기도 했다.

위 사건만 보면 롯데와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 같지만 검찰이 정 전 대표의 로비 계좌를 추적하면서 의혹은 연결이 됐다. 롯데 그룹 입장에선 마른하늘에 날벼락은 맞은 꼴. 롯데면세점 로비 의혹이라는 연결고리를 통해 신 이사장에게 사건이 이어진 것이다. 신 이사장으로 시작된 롯데 비자금 의혹은 결국 롯데그룹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수사로 번지고 말았다.

안그래도 그룹 뒤숭숭한데…
수사 롯데가 전체로 ‘활활’

롯데그룹 비리 수사 착수 이후에 오너가의 일원이 구속된 건 신 이사장이 처음이다. 구속된 신 이사장은 창업주 신 총괄회장의 장녀로 신 총괄회장이 일본 유학길에 오르기 전에 결혼한 고(故) 노순화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신 총괄회장은 신 이사장이 태어나기 전 일본으로 떠나 딸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고, 그 사이에 어머니를 여읜 신 이사장은 많은 고생을 하며 자랐다고 한다. 이후 신 총괄회장은 처음 얻은 자식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는 미안함에 큰 딸을 애틋하게 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 이사장은 부산여고와 이화여대를 나와 1973년 롯데호텔에 입사해 경영수업을 받았다. 한때 대학동문인 이명희(73·여) 신세계그룹 회장과 함께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며 ‘유통가의 대모’로 불린 적도 있다. 신 이사장은 탁월한 경영능력으로 오늘날 롯데쇼핑과 면세점을 일군 장본인으로도 꼽힌다.

신 이사장은 1983년부터 롯데백화점 영업담당 이사와 상무, 롯데쇼핑 상품본부장과 총괄 부사장 등을 거쳐 2008~2012년 롯데쇼핑 사장을 지내기도 했다. 롯데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롯데쇼핑의 성장을 이끌어온 인물이자 경쟁사에 비해 후발주자였던 롯데가 국내 유통업계서 우뚝 설 수 있게 만든 주역인 셈.

신 이사장은 현재 롯데호텔, 부산롯데호텔, 롯데자이언츠, 롯데쇼핑 등 계열사 4곳의 사내이사와 대홍기획, 롯데건설, 롯데리아 등 3사의 비상무이사를 맡고 있다. 신 이사장은 롯데제과(2%), 롯데칠성(2%), 롯데푸드(1%), 롯데정보통신(3%), 코리아세븐(2%), 대홍기획(6%) 등의 지분도 보유하고 있다.


자녀로는 1남3녀를 두었고, 장남 장재영(48)씨는 이번에 조사를 받은 비엔에프 통상의 최대 주주다. 차녀 장선윤(45)씨는 롯데호텔의 해외사업개발 담당 상무로 재직 중이다. 삼녀 장정안(43)씨는 2004년 국제 변호사와 결혼 후 줄곧 미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15년 형제의 난 때 신 전 부회장과 신 회장이 큰누나인 신 이사장을 끌어들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신 이사장이 아버지의 큰 신임을 얻고 있기 때문에 그녀의 선택으로 결과가 변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

신동빈 편?
신동주 편?

롯데그룹이 국내에서 우뚝 서게 한 주역이자 사랑받던 맏딸이 롯데가 전체로 번지는 수사의 시작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현재 롯데 측은 신 이사장의 혐의에 대해 “전혀 몰랐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핵심 계열사에서 오랜 시간 경영에 관여해온 신 이사장이 구속되면서 검찰은 롯데그룹의 비자금 의혹 관련 등 수사에 가속이 붙을 것으로 보고 있다.

향후 검찰 수사 과정에서 구형량 감경을 조건으로 신 이사장이 롯데그룹 측에 불리한 진술을 할 가능성도 배제 할 수 없을 것이라는 법조계의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신 이사장의 구속은 롯데그룹의 임원급들을 포함한 오너일가 전체에 대한 검찰의 강력한 수사 의지로 보고 있다.

검찰의 수사망에 오른 것은 신 총괄회장의 셋재 부인 서미경과 그의 딸 신유미까지 포함된 것으로 전해진다. 서씨 모녀는 그동안 철저하게 베일에 싸여 있었고 형제간 경영권 분쟁 속에서도 아무런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검찰은 서씨 모녀가 보유한 부동산이 신 총괄회장의 비자금 통로라는 의혹을 제시하며 자산을 조사하고 있다. 현재 서씨 모녀 소유의 부동산은 1000억원 상당으로 전해졌다.


앞서 서씨에게 롯데시네마 매점 독점운영 특혜를 줬다고 ‘일감 몰아주기’라며 공정위에 지적받았던 건도 재조명되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통상 대기업의 비자금 조성은 부동산 거래나 일감 몰아주기 등을 통해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며 앞으로 서씨 모녀에 대한 검찰의 수사 강도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롯데그룹 정책 본부의 핵심 3인방에 대한 검찰 소환도 시작된다. 일명 ‘신동빈의 남자들’로 알려진 이들은 신 회장의 측근으로 이인원 롯데그룹 정책본부장, 황각규 운영실장, 소진세 커뮤니케이션실장이다. 롯데그룹의 배임·횡령이 사실로 들어나면 그 과정에 개입했을 것이라는 의심을 받고 있다. 검찰은 신 이사장의 신병처리가 끝나는 대로 이 본부장 등 3인을 소환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출국금지 조치도 내려진 상태라고 한다.

신 이사장을 시작으로 측근들의 조사까지, 검찰의 롯데그룹에 대한 수사는 사실상 신 회장을 직접 겨냥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지금까지의 속도대로 수사가 진행되면 그룹 내 핵심 인물들은 물론 신 회장의 검찰 소환도 예견된 수순이라는 말. 법조계 일각에선 신 회장에 대한 소환 시점이 이달 중순이 되지 않을까라는 의견과 함께 구속을 면하기 힘들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지난 3일 일본 하네다 공항을 출발해 김포공항을 통해 귀국한 신 회장은 언론을 통해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고 말했다. 이어 신 회장은 “성실히 협조하도록 하겠다”며 검찰수사에 대한 뜻을 밝혔다. 신 회장은 지난달 25일 롯데홀딩스 주주총회에서 형 신 전 부회장에게 승리를 거둬 경영권을 지켜냈다. 또 신 회장은 서울중앙지검장을 지낸 천성관 변호사와 서울고검장 출신 차동민 변호사 등을 선임했다. 수사에는 협조하겠지만 불거지는 의혹 등에 대해선 확실하게 처리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셈.

신 총괄회장은 현재 비자금 조성 혐의를 받고 있지만 지난달 10일 검찰의 1차 압수수색 직전 고열 등을 이유로 입원을 해 검찰이 소환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또 신 회장과 경영권을 두고 경쟁 중인 신 전 부회장 역시 검찰 수사 대상에 올랐다.

부친도 위험해
수사 대상 올라

현재 검찰은 지난달 롯데케미칼이 원료를 수입할 때 일본 롯데물산 등 해외 계열사를 끼워 넣어 이른바 ‘통행세’를 받아 수익을 남긴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신 전 부회장은 롯데 홀딩스 부회장직을 역임하며 일본 롯데그룹을 경영했으며 국내 롯데그룹 계열사들에 등기임원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신 전 부회장은 검찰이 한·일 롯데계열사간 수사의 초점을 맞추고 있는 롯데케미칼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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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리면 철퇴’ 대법정 417호의 저주

‘걸리면 철퇴’ 대법정 417호의 저주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법원은 내란 혐의로 기소된 전직 대통령에게 철퇴를 내렸다. 2024년 12월 비상계엄 사태 이후 400여일 만이다. 이날 선고로 서울중앙지법 대법정 417호는 ‘전직 대통령의 무덤’이라는 악명을 이어가게 됐다. 5명의 전직 대통령에게 가해진 ‘대법정의 저주’를 <일요시사>가 살펴봤다. 지난달 19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운명의 날’이었다. 각종 혐의로 받는 재판 중에 가장 핵심 사안에 대한 법원의 첫 번째 판결이 이날 나왔다. 1심 재판부는 윤 전 대통령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앞서 관련자들에 대한 판결이 나오는 족족 유죄였기에 반전이라고 할 만큼 놀라운 결과는 아니었다. 443일 걸렸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5부 지귀연 부장판사는 지난달 19일 내란 우두머리 혐의 사건 선고 공판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내란 우두머리죄의 법정형은 사형, 무기징역, 무기금고로 윤 전 대통령은 최고형을 피해갔다. 재판부는 12·3 비상계엄이 형법상 내란죄가 맞다고 판시했다. 지 판사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자체는 헌법상 권한 행사로서 내란죄에 해당할 수 없고 사법 심사의 대상이 된다고 보기 어렵다면서도 그 목적에 따라 내란죄가 성립할 수 있다고 했다. 비상계엄의 목적이 국회나 행정·사법의 본질적 기능을 침해했다면 내란죄가 성립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사실관계의 핵심으로 군을 국회로 보낸 점을 꼽았다. 지 판사는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국회를 제압해야겠다고 결심했기 때문에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는 게 실체에 부합한다”고 밝혔다. 결국 군을 국회로 보낸 행위 자체가 내란죄 성립 요건인 ‘국헌문란 목적’과 ‘폭동’에 부합한다는 취지다. 이어 “윤 전 대통령은 국회에 군을 보내 봉쇄하고 주요 정치인 등을 체포하는 방법으로 국회 활동을 저지·마비시켜 국회가 상당 기간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없게 하려는 목적을 내심으로 갖고 있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며 “군대를 보내 폭동을 일으킨 사실도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야당의 연이은 탄핵, 예산 삭감 등에 따른 국가 위기를 타개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기 위한 비상계엄이었다는 윤 전 대통령 측 주장에는 “명분과 목적을 혼동한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이 대목에서 지 판사는 “성경을 읽는다는 이유로 촛불을 훔칠 수는 없다”고도 언급했다. 전두환·노태우·박근혜·이명박 법정에 선 전직 대통령 5명 국가 위기 상황 타개는 명분에 불과할 뿐 본질은 헌법기관의 마비였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재판부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의 내란죄 수사에 대해서도 인정했다. 윤 전 대통령 측은 공수처가 내란죄를 수사할 권한이 없다며 수사의 적법성을 문제 삼아 왔다. 재판부는 “공수처에 내란죄 수사권이 없다고 하더라도 검찰은 공수처 송부 기록 외 다른 증거들을 종합해 기소한 것으로 보이고 공수처가 수집한 증거를 다 빼더라도 피고인에 대해 유죄 판단을 할 증거가 충분하다”고 정리했다. 검찰과 조은석 내란특별검사팀(이하 내란 특검)의 주장 중 윤 전 대통령이 장기 독재를 하기 위해 2023년께부터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국회를 제압할 의도로 내외적 여건을 조성했다는 공소 사실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보기엔 지나치게 준비가 허술했다는 것이다. 또 국회를 무력화할 계획 등에 관한 별다른 증거나 자료,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윤 전 대통령 무기징역 선고 외에도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내란 중요임무종사죄가 인정돼 징역 30년,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은 징역 18년, 조지호 전 경찰청장은 징역 12년, 김종식 전 서울경찰청장은 징역 10년, 목현태 전 서울경찰청 국회경비대장은 징역 3년을 각각 선고받았다. 최고형 피했다 윤 전 대통령 측은 선고 닷새 만인 지난달 24일 항소했다. 윤 전 대통령 측 변호인단은 “법정의 기록은 물론, 훗날 역사의 기록 앞에서도 이번 판단의 문제점을 분명히 남겨야 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특검의 무리한 기소, 그 전제 위에서 이뤄진 1심의 모순된 판단과 그 정치적 배경에 대해 저희는 결코 침묵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윤 전 대통령이 중형을 선고받으면서 서울중앙지법 대법정 417호의 ‘저주’가 이번에도 나타났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대법정 417호는 150석 규모의 형사 법정이다. 대법정 417호가 주목받는 이유는 이곳에서 윤 전 대통령을 포함한 전직 대통령 5명이 재판을 받았기 때문이다. 전직 대통령의 ‘무덤’이라는 별칭이 생길만한 대목이다. 전두환씨, 노태우 전 대통령의 하늘색 반팔 수의 차림은 국민의 뇌리에 깊게 남아 있다. 최고 권력이라 할 수 있는 대통령이 법정에 서서 판결을 듣고 있는 모습 자체가 충격인 시대였다. 12·12 군사반란과 5·18 광주민주화항쟁 관련 내란 우두머리(당시 내란 수괴) 등 혐의로 넘겨진 전직 대통령은 대법정 417호에서 중형을 선고받았다. 1996년 당시 검찰은 반란 및 내란 수괴 외에도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 혐의 등 총 10개 죄목으로 전씨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노 전 대통령에게는 내란 중요임무 종사 등 9개 죄목으로 기소,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전 씨는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2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고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됐다. 노 전 대통령은 1심에서 징역 22년6개월, 2심에서 징역 17년, 이후 대법원에서 확정 판결을 받았다. 국정 농단 다스 재판 그로부터 30여년 뒤 윤 전 대통령이 같은 장소에서 같은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검찰 측 구형도 사형으로 같았다. 내란 특검은 지난 1월13일 “법률가로서 검찰총장까지 지낸 피고인은 대통령으로서 누구보다 앞장서 헌법을 준수하고 헌법 질서를 수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점을 잘 알면서도 헌법 질서 파괴로 나아간 점에서 비난받아 마땅하다”며 “피고인은 반성하지 않는다. 양형에 참작할 사유가 없고 오히려 중한 형을 정해야 한다”고 구형 배경을 밝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 농단 사건의 1심 선고도 대법정 417호에서 이뤄졌다. 박 전 대통령은 헌정사상 처음으로 탄핵으로 지위를 잃고 구속 기소됐다. ‘비선 실세’ 최순실씨가 국정을 좌지우지하는 등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사적으로 남용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국민의 공분이 하늘을 찌르던 시기였다. 2018년 4월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는 대기업 등으로부터 231억9427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박 전 대통령에게 징역 24년, 벌금 180억원을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2016년 10월 이후 불거진 국정 혼란의 장본인으로 박 전 대통령을 지목했다. 박 전 대통령이 국정 농단 사태에 궁극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는 취지였다. 그러면서 “국정 혼란과 대통령 파면의 주된 책임은 피고인과 최순실에게 있다”며 “그럼에도 잘못을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납득하기 어려운 변명으로 일관하면서 책임을 주변에 전가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이 받던 18개 혐의 중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 등 16개를 유죄로 봤다. 150명 규모 방청석 역사적 재판의 현장 이명박 전 대통령도 ‘저주’를 피하지 못했다. 자동차 부품업체 ‘다스’ 자금을 횡령하고 삼성 등에서 거액의 뇌물을 챙긴 혐의로 기소된 이 전 대통령은 2018년 10월5일 1심 재판에서 징역 15년, 벌금 130억원을 선고받았다. 법원이 다스의 실소유주를 이 전 대통령으로 결론 내리면서 ‘다스는 누구 겁니까’라는 논란에 종지부가 찍힌 순간이었다. 당시 재판부는 “2007년 대통령선거 기간 내내 피고인에 대한 각종 의혹이 제기됐지만 피고인의 결백을 믿는 다수의 국민 덕분에 피고인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며 “피고인은 대통령으로서의 막강한 권한을 오직 헌법과 법률에 따라 국민 전체를 위해 행사해야 할 책무를 부담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재판 결과 피고인이 친인척 명의를 빌려 다스를 설립해 실소유하면서 246억원가량 횡령한 사실이 드러났다”며 “범행 기간이 길고 이득액이 상당하며 범행 당시 이미 국회의원, 서울시장으로 활동했다는 점에서 죄질이 나쁘다”고 비판했다. 또 “의혹만 가득했던 사건의 실체적 진실이 밝혀지는 과정에서 대통령 재임 시절 저질렀던 다른 범행이 함께 드러남으로써 당시 피고인을 믿고 지지했던 국민은 물론 사회 전반에 큰 실망과 불신을 안겼다”며 “그런데도 친인척이나 측근이 범행을 저지른 것이라는 등 책임을 전가해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되풀이된 30년 역사 전직 대통령 관련 재판 등 사회적 관심이 높은 사건이 대법정 417호에서 열리는 건 규모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많은 사람이 방청을 원하기에 대형 법정에서 재판을 진행한다는 것이다. 5명의 전직 대통령은 방청석의 150여명과 실시간으로 중계된 재판을 본 국민 앞에서 단죄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