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억대 대기업 돈사고 횡령왕 백태

“몇 년만 들어가 살면 다 내돈”

[일요시사 취재1팀] 안재필 기자 = 대규모의 영업 손실을 기록하고, 임직원들에게 고액의 성과금을 지급해 비리의 온상 취급을 받던 대우조선해양이 이제 안팎으로 비판을 받는 상황이 됐다. 오너, 임원진이 아닌 ‘차장’이 수년간 저지른 비리에 국민들은 경악하고 있다.

지난 17일 8년간 공금 180억여원을 빼돌린 대우조선해양 임모(46) 전 차장이 검찰에 송치됐다. 이 사건은 대중들로 하여금 기업들의 자금관리에 대한 안일함을 다시금 생각하게 했다.

허술한 관리
새어나간 자금

어떻게 180억원이나 되는 사내 자금 횡령 사실을 모르고 있을 수가 있느냐는 의견이 많았다. 그러면서 정부는 이러한 회사에 공적자금을 계속해서 투자해도 되는 것이냐는 의문도 제기됐다. 임 전 차장은 기술자의 숙소 임대차 계약을 하는 과정에서 허위 계약을 통해 9억여원을 빼돌리기도 했다.

이처럼 재계의 부정, 비리는 끊이지 않고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은 그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국내 굴지의 기업들도 자금이 사라지고 나서야 때 늦은 조취를 취하는 사례들을 찾아 볼 수 있다.

지난 2012년 12월 ‘삼성전자’ 대리급 직원이 100억원대의 공금을 횡령한 혐의로 도마에 올랐다. 삼성전자 경리부서에서 근무하던 대리 박모(30)씨는 자신이 속한 부서의 이점을 통해 은행전표 등 입출금 관련 서류를 위조해 자금을 몰래 빼돌려 개인적 용도로 대부분 탕진한 것이 드러났다.


당시 이건희 삼성 회장이 경영일선으로 복귀한 뒤 계속해서 ‘부정부패 척결’을 강조하던 시기이기에 더 큰 논란으로 불거졌다. 박씨는 횡령한 돈을 '마카오 원정도박' '인터넷 도박' 등으로 대부분 탕진한 상태였다. 이 회장은 이후로 “회사의 자랑이던 깨끗한 조직 문화가 훼손됐다”며 “감사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것 같다”고 감사팀을 보강토록 했다.

임원도 아닌데…‘억’소리 나는 횡령·사기
간큰 실무자들 회사 공금 빼돌려 사적 유용

2009년 1890억원을 횡령한 간 큰 부장도 있다. 동아건설 재무경제과에서 근무하던 박모(48)씨는 2004년부터 4년간 하자보수보증금 명목으로 건설공제조합에 ‘질권설정’을 한 뒤, 예치한 통장에서 477억원을 빼냈다. 돈이 예치된 하나은행 차장 김모(49)씨는 박씨의 고등학교 선배로 서류상으로만 질권설정을 하고 전산에는 입력하지 않았다.

질권설정은 자기 또는 제삼자의 채무를 담보하기 위하여 담보의 목적물을 채권자에게 제공하여 질권을 설정하는 제도를 말한다.

이어 박씨는 2008년부터 예금청구서에 법인인감을 미리 찍어두는 수법으로 회사자금 523억원을 횡령하는 데 성공한다. 이는 고교 후배인 동아건설의 자금과장 유모(36)씨가 눈을 감아줘 가능했다. 박씨는 범행을 은폐하기 위해 회계법인의 감사 업무를 방해하는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2013년 경남 통영시의 사량수협에서 있었던 횡령 사건도 볼만하다. 유통판매과에 과장으로 근무하던 안모(46)씨가 2009년부터 2013년까지 100억여원을 횡령한 사건이다.

안씨는 경남 사천, 전남, 여수 등지의 중간도매상들에게 마른멸치를 구매한 것처럼 서류를 조작해 구매대금을 송금한 뒤, 일정액을 다시 송금 받는 수법을 사용했다. 그의 범행은 사량수협이 미수금 현황을 파악하면서 드러났다. 안씨는 타 지역으로 출장을 나갈 때 외제차를 타고 다니다 사량도에 들어오면 국산 중고차로 바꿔 타는 등의 이중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이 저지른 범행도 존재한다. 포스코건설의 현장채용 사무보조원 김모(34)씨가 2009년부터 2014년까지 100억여원을 횡령한 사건이다. 포스코건설은 김씨가 현장 직원 숙소를 임차했다고 허위 전표를 청구하면 본사는 확인 없이 전도금 통장으로 임차보증금을 보냈다. 현장 사무보조원은 전표를 작성하고 현장소장과 관리팀장의 내부 결재를 받은 후 청구를 해야 한다. 하지만 현장소장과 관리팀장은 김씨에게 결재를 할 수 있도록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알려주었다.


말단도 가능하다
직위 가리지 않아

내부 결재가 넘어가면 본사의 재무, 자금 부서에서 결제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제대로 된 검토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전표가 오는 대로 돈을 입금한 것이다. 김씨는 그런 허술함을 이용해 허위 전표를 작성해 범행을 시작했다. 사회가 발전하고 기업이 발전할수록 부정, 비리 역시 함께 발달했고 제도의 허점 속에 자리를 잡아 왔다. 매번 ‘투명성’을 강조하는 국가기관 역시 횡령 건으로 얼룩져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2012년도에는 여수의 8급 공무원이 80억여원을 횡령하는 일도 있었다. 여수시청의 8급 기능직 공무원 김모(47)씨의 사건은 수사를 진행할수록 횡령액이 늘어나는 모습을 보여줬다. 검찰은 “횡령액이 계속 늘어나고 있어 향후 수사과정에서 100억원에 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씨의 횡령은 감사원이 세무서와 시청 회계정산 과정에서 잔고가 다르다는 점을 발견해 감사에 나서면서 발견됐다. 김씨는 2007년부터 여수시청 회계과에서만 근무하면서 전체 직원의 근로소득세 일부를 빼돌리거나 직원 급여를 가로채는 수법 등으로 주머니를 불렸다. 당시 언론은 여수시의 허술한 재정관리를 지적했다. 여수시는 김씨가 퇴직했거나 전출된 동료의 명단을 파악해 가짜 급여계좌를 만든 뒤 제출한 직원들의 계좌번호만 보고 월급을 계속 송금했다.

동아건설 부장 1900억 역대 최고
대우조선 차장 180억 들고 튀어
보험왕 120억…수협 과장 100억

2015년 국세청 산하 직원이 환급금을 통해서 무려 107억원에 이르는 자금을 횡령한 사건도 있다. 서인천세무서 재산범인납세과에 재직 중인 8급 국세공무원 최모 (33)조사관이 저지른 비리다. 최 조사관은 2014년 7월부터 2015년 10월까지 인천 오류동 일대에 유령 무역업체 10여개를 세워 바지사장 명의로 사업자 등록을 했다.

이후 가짜 물품 거래 자료를 통해서 한 무역업체에 매입 실적을 몰아줬고, 국세청 홈페이지 홈택스를 통해 허위 전자세금계산서를 발급받았다. 그는 발급받은 허위 전자세금계산서를 매입자료로 활용하여 총 9차례에 걸쳐 100억7000만원여의 부가세를 횡령했다. 최 조사관과 일당은 물건이나 2차 사업자의 경우 매출세액보다 매입세액이 많으면 그 차액인 부가세를 돌려받을 수 있다는 점을 파고들었다.

위 사건들은 재정관리의 허술함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범행을 저지른 이들은 실무자이기에 소속처의 빈틈을 쉽게 찾아 틈새 도둑질이 가능했다.

금융계도 마찬가지다. 2013년에 있던 국민은행의 '국민주택기금 약 100억원 횡령 건'은 국민은행의 신용도를 크게 떨어렸다. 이 사건은 국민은행 본점 신탁기금본부 직원들이 공모해 소멸시효 완성이 임박한 국민주택채권을 위조 후 판매하는 수법을 통해 돈을 빼돌린 사건이다.

수사 초기에는 신탁기금본부와 영업점 직원 3명의 범행으로 알려졌으나, 수사가 진행되며 범행에 관여한 이들이 10명 이상인 것으로 밝혀졌다. 연루된 직원 중에는 과거 감찰반에 근무했던 직원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후 국민은행은 경영쇄신위원회를 만들어 불거진 문제점의 원인을 진단하고 쇄신책을 내 놓기로 했다.
 

2000년 울산종금 서울지부에서 과장으로 근무하던 이모(38)씨는 회사가 현대증권 MMF(머니마켓펀드)계좌에 맡겨놓은 100억여원의 자금을 2차례에 걸쳐 인출한 일도 있다. 이씨는 이 사실을 은닉하기 위해 현대증권이 울산종금에 제출하는 잔액 증명서를 중간에서 위조한 것으로 밝혀졌다.

회사는 멍∼
금융업도 구멍


자금이 사라지는 것을 모르고 있다가 뒤늦게야 알게 되는 것은 기업뿐만이 아니다. 소위 ‘사기행위’에 애꿎은 돈을 투자하고 피해를 입는 사람들도 있다. 금융권의 전문적인 지식을 이용해 현혹하는 수법은 진위 여부를 파악하기가 힘들다.

2012년 국내의 외국계 자산운용사의 펀드매니저 배모(37)씨의 행적을 보자. 그는 어느 정도 투자를 해 본 이들을 대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 10년 전 배씨는 회사의 이름과 펀드매니저라는 신분을 이용해 사람들에게 믿음을 심어주고 자신이 만든 가짜 펀드 상품을 만들어 판매했다.

8% 확정금리라는 미끼를 통해 배씨는 투자를 유치했다. 허황되게 많지도 않고 아까울 정도로 적지 않은 안정적인 금리에 자산가들은 주머니를 열었다. 한 투자자에게는 최대 23억원을 받아내기도 했다. 하지만 10년간 이루어지던 그의 횡령은 어떤 투자자가 은행에서 자신이 가입한 펀드를 자랑하면서 막을 내렸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품이라고 판단한 은행 창구 직원은 배씨의 회사에 문의 전화를 하게 된 것이다. 결국 배씨의 회사의 자체 조사로 인해 그가 판매하던 펀드가 가짜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배씨는 투자자 27명으로부터 200여차례 100억원 이상을 받아 횡령했다.

2011년에는 ‘보험왕 사건'이 있다. 사람간의 신뢰를 악용한 사례로 A생명보험사의 보험왕 출신 보험설계사 이모(47)씨가 벌인 행각이다. 동대문과 명동 일대 상인들을 대상으로 벌어진 환치기 비용 횡령건은 상인들의 이씨에 대한 믿음에서 시작됐다.

환치기는 통화가 다른 두 나라에 각각의 계좌를 만든 뒤, 국내에서 의뢰인이 한화를 중개업자의 계좌에 입금하면 외국에 있는 자신의 계좌에서 그 나라의 화폐로 금액을 지불받는 불법 외환거래 수법이다. 이씨는 상인들이 일하는 저녁부터 새벽까지 10년간 매일 시장에서 고객관리를 하며 신뢰를 쌓았다.


상인들은 점차 이씨에게 마음을 열었고, 친인척처럼 따르기 시작했다. 범행은 그렇게 신뢰를 쌓은 뒤 2009년 일어났다. 이씨가 상인들에게 환치기에 투자하면 원금을 보장하고 월 6%의 이자를 지급하겠다며 속임수를 펼친 것이다. 이씨는 그렇게 100여명의 사람들에게 받은 약 117억5000만원을 횡령했다.

한국은행 총재와의 친분이 있다는 거짓말로 사람들에게 접근한 40대 여성이 지난 9일 검거됐다. C(49)씨는 2009년 통영의 유명 학원 강사로 시작해 학원의 부원장을 맡게 되면서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갔다. 동료 강사와 학부모 등 주변 지인들에게 고가의 가방과 화장품 등을 선물하며 환심을 사며 친분을 쌓으며 사심을 드러냈다.

C씨는 지인들에게 “은행권 상위 1%의 VIP 고객 극소수만이 아는 투자방법이 있는데 원금 보장에 월 5%의 고수익 보장된다”며 투자를 권했다. C씨는 그렇게 지난 4월까지 7년간 지인 11명에게 269회에 걸쳐서 100억8200만원을 받아냈다. 투자금액을 돌려주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자 C씨의 사기행각이 밝혀지게 되었다. 경찰 조사결과 C씨는 피해자들에게 “서울 유명사립대 불문학과를 졸업했다. 한국은행 총재와도 친분이 있어 같이 밥을 먹는 사이다”라고 자신을 과시했지만, 이는 모두 거짓말로 드러났다.

가상화폐를 통한 사기건도 눈길을 끈다. 문모(43)씨는 지난 2013년부터 올해 4월까지 경기도 안양에 무등록 다단계 업체를 차렸다. 그리고 “말레이시아 본사에서 만든 가상화폐를 사면 짧은 시간에 큰돈을 벌 수 있다”고 속였다. 가상화폐는 정부나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일반 화폐와 달리 컴퓨터 등에 정보 형태로 남아 사이버상으로만 거래되는 화폐를 뜻한다.

‘믿었는데…’
신뢰의 함정

가상화폐가 실질적인 금액으로 써의 가치를 지니려면 시중에서 현금 교환이 가능해야 하거나 발행업체가 가상화폐의 가치를 담보할 수 있는 실질 자산을 보유해야 한다. 하지만 문씨가 판매한 가상화폐는 현금으로 환전 할 수도 없고 시중에서 유통도 불가능한 가짜였다. 문씨는 가짜 가상화폐 판매를 통해 수백명으로부터 900차례에 걸쳐 모두 100억원을 받아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