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흙수저’ 정세균 국회의장

평범한 회사원서 국가서열 2위로…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20대 국회 전반기를 책임질 국회의장으로 정세균 의원이 선출됐다. 과반의석이 없는 정당에서 야당 출신 국회의장이 정부·여당과 야 3당의 중재자가 될지 앞으로 정 의장의 행보가 주목된다. 이 같은 상황에서 그는 국회 청소노동자를 직접 고용하겠다며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벌써부터 정 의장의 존재감이 폭발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은 지난 9일, 20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후보로 정세균 의원을 선출했다. 국회는 이날 오후 본회의를 열어 국회의장단선거를 치르지만 여야 합의로 더민주 후보를 국회의장으로 선출키로 했다.

14년 만에…
야당출신 의장

국회는 이날 오후 본회의를 열어 무기명투표 방식으로 국회의장 투표를 진행했다. 총 287표 가운데 274표를 얻은 정 의장이 신임 국회의장으로 선출됐다. 2002년 16대에서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 박관용 의원이 국회를 이끈 후 14년 만의 야당 국회의장이다.

정 의장은 이날 오전 더민주 의원총회에서 진행된 국회의장후보 선출을 위한 당내 경선에서 총 121표 가운데 71표를 얻어 문희상 의원(35표), 박병석 의원(9표), 이석현 의원(6표)을 누르고 20대 국회 전반기 더민주 국회의장 후보로 선출됐다.

정 의장은 당선소감으로 가장 먼저 “헌법정신을 구현하는 국회를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국회는 3부 중에서 ‘민주적 정통성’이 가장 높은 대의기구”라며 “국회의 위상과 역할을 확립하고 3권분립의 헌법정신을 구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아울러 “국회가 명실상부한 책임정치의 주체로서 당면한 경제위기 앞으로의 구조적 위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위기극복에 앞장서도록 하겠다”며 “국회의장으로서 유능한 갈등관리와 사회통합의 촉매 역할을 통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국민에게 짐이 아닌 힘이 되는 국회를 만들어나가겠다”고 약속했다.

정 의장은 지난 16일 기자간담회에서부터 국회 수장으로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이날 정 의장은 기자간담회를 열고 “지금까지 개헌 논의가 지지부진했던 이유는 권력의 관점에서만 유불리를 따져왔기 때문”이라며 “그런 좁은 시야를 벗어나 지난 30년간 우리 사회의 다양한 변화의 흐름을 수용하고 대한민국이 나아갈 방향을 담아내는 개헌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력구조 개편뿐 아니라 국민의 기본권 향상을 위한 개헌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그러면서 “지금 많은 분이 개헌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며 “개헌은 이제 더이상 논의의 대상이 아니라 의지의 문제다. 20대 국회에서 이 문제가 매듭지어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국민은 먹고사는 문제와 고단한 삶의 문제를 정치인들이 우선 해결해야 한다고 요청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개헌 논의가 우선순위에 자리 잡을 경우 과연 국민적 동의와 추동력을 담보 받을 수 있겠느냐“고 회의론을 폈다. 하지만 여권에도 개헌 필요성에 공감하는 의원이 상당수 존재하는 게 사실이다.

개헌 거론에 청소 노동자 직접 고용
특권 내려놓기…벌써부터 존재감 폭발

그동안 고질적인 문제로 꼽혔던 국회 청소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하겠다고 밝혔다. 정 의장이 그간 용역업체를 통해 간접고용했던 국회 청소노동자 207명을 직접고용하기로 한 것이다. 공공기관 전반에 만연한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고용형태 전환의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정 의장은 이날 “그간 우리 사회가 비정규직 일자리 문제 해결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이 문제에 앞장서야 할 국회가 아직 이 문제를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며 “빠른 시일 내에 이 분들을 직접고용할 방안을 찾아 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선도적으로 나설 생각”이라고 밝혔다.

높은 친화력
청렴함 인정

국회 청소노동자의 고용 형태에 대한 문제 제기는 18대 국회에 본격화됐었다. 당시 박희태 국회의장이 고용형태 전환을 약속한 바 있으나, 결국 이행되지 않았다. 더민주 을지로위원회와 국회 환경미화노동자 노조가 지난 2014년에 약속 이행을 요구하기도 했으나, 여당의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

더민주와 정의당 등 정당을 비롯해 노동계는 일제히 환영 입장을 표했다. 을지로위원회와 국회환경미화노조도 이날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 환경미화노동자를 직접고용할 경우 3억9000만원의 예산 절감효과가 있다. 절감된 예산을 인건비로 사용할 경우 20만원, 약 17%의 임금인상 효과가 있다”고  직접고용 전환 방침에 환영했다.

을지로위와 노조는 국회 청소노동자 직접고용이 상시지속 업무·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고령자 일자리 창출, 질 좋은 일자리 확대 등에 국회가 선도적 역할을 하겠다는 의미라고 평가했다.

한국노총도 성명을 내고 “새누리당이 4·13총선에서 참패하고 국회의장이 바뀌고 나서야 직접고용의 길이 열렸다”며 “결정권자의 의지만 있다면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준 것이고, 정치가 바뀌어야 삶이 바뀐다는 말을 실감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고 밝혔다.

이재정 더민주 원내대변인도 같은 날 국회 브리핑에서 “정 국회의장의 국회 환경미화노동자 직접고용 결정을 환영한다”며 “오늘 국회의 이러한 결정이 오늘날 우리 사회가 직면한 ‘위험의 외주화’의 확산을 단계적으로 차단해 나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김종대 정의당 원내대변인 또한 “정의당은 국회의장의 결단을 적극 환영한다”며 “상시지속업무 노동자들의 정규직화,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에 입각한 차별 철폐를 이루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 의장은 조용하고 포용력 넓은 정치인으로 평가받는다. 2005년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와 당의장, 2007년 열린우리당 당의장, 2008년 민주당 대표 등의 결정력에서 알 수 있듯이 당이 위기에 빠질 때마다 전면에 나서 위기를 진정시켰다. 당 안팎에서 뚜렷한 반대세력이 없는 것이 최대 장점이다.

1년에 한 번 기자 투표로 선정되는 백봉신사상을 7번이나 수상했을 만큼 두루두루 높은 친화력을 자랑한다. 1997년 한보사태에서 비롯된 특별청문회 당시 전문경영인이 “유력 정치인들에게 불법자금을 건넸지만 유일하게 받지 않은 인물”로 정 의장을 꼽으면서 청렴함을 인정 받기도 했다.

‘미스터 스마일’
에이스 구원투수

정 의장은 1950년 전북 진안의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처음엔 전주공업고등학교에 진학했으나, 4년제 대학에 진학하고자 결심하고 전주신흥고등학교로 전학했다. 이와 관련된 일화가 하나 있다.


전주신흥고 교장에게 대학에 가고 싶은데 돈이 없으니 날 장학생으로 입학시켜달라는 편지를 보낸 것. 교장은 장학생 대신 매점 일을 맡겼고, 그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면서 공부를 해 고려대학교 법과대학에 진학했다는 이야기가 방송에 소개되기도 했다. 고려대 재학 당시엔 <고대신문> 기자, 총학생회장으로 활동했고, 유신체제 반대운동을 주도하기도 했다.
 

그는 1978년 쌍용그룹에 입사했다. 쌍용에서 미국 뉴욕과 로스앤젤레스 종합상사 주재원으로 일했다. 그런 가운데 뉴욕주재원 시절 뉴욕대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LA주재원 시절 페퍼다인대 경영대학원에서 MBA를 취득했다. 이후 1995년까지 쌍용그룹에서 수출 관련 업무를 맡았다.

1995년에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의 정계 입문 제안을 받고 1995년 총재특별보좌역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래 20대 국회까지 연달아 6선을 기록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참여정부 시절 열린우리당에서 정책위의장, 국회 예결특위위원장을 거치며 주로 경제분야에서 정책역량을 과시했다. 2005년 1월에는 당시 집권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를 역임했다. 당시 사학법 등 이른바 '4대 개혁입법' 처리 실패로 흐트러진 당의 전열을 추스르면서 야당의 반대에 부딪혔던 주요 법안을 통과시키는 역할을 맡아 수행했다.

가난한 농부 아들로 태어나 쌍용 입사
DJ 권유로 정계 입문해 15대부터 6선

2005년 3월에는 한나라당의 반대를 뚫고 행정복합도시특별법, 과거사진상규명법을 통과시켰다. 2005년 10·26재보선에서 열린우리당이 패배한 후 3개월 동안에는 임시 당의장을 겸임하며 사립학교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2006년 2월부터 2007년 1월까지는 산업자원부(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역임했다. 재임 기간 동안 수출 3000억달러를 달성하기도 했다.


대통합민주신당이 창당되기 전 열린우리당의 마지막 의장으로 활동했고, 2008년 7월6일에 통합민주당의 대표로 선출됐다. 그의 대표시절 첫 선거인 2009년 10·29재보선에서 민주당은 수원시 장안구, 안산시 상록을, 충북 증평군에서 승리하며 3:2로 한나라당에 승리했다. 당시 민주당은 이 결과를 MB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심판으로 해석하는 논평을 냈으며, 한나라당은 패배를 인정한다면서도 참패는 아니라 국민들에게 감사하다는 논평을 냈다.

2010년 6·2지방선거에서는 민주당이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바람과 진보야당들과의 선거연대, 의무급식 등 복지공약을 적절히 조합하며 큰 승리를 거두었다. 친노성향 후보가 출마한 인천, 강원, 충남을 모두 가져왔고, 특히 충북을 가져오며 민심의 바로미터인 충청도의 과반을 차지하기도 했다.

이밖에 당선은 되지 못했지만 부산의 김정길 후보가 45%의 득표율을 올리는 등의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서울의 경우 시장 자리는 오세훈 후보에게 근소한 차(0.6%)로 패배했지만 의회 의석의 상당수를 점유했다. 몇몇 기자들은 그때까지 이른바 관리형 정치인으로 불리우던 정 의장을 가리켜 ‘구원투수’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했다.

정 의장은 2009년 7월24일 한나라당의 미디어법 강행처리에 반발해 당시 김형오 국회의장에게 의원직 사퇴서를 낸 뒤 원외에 머물러오다 제5회 지방선거 승리에 힘입어 다시 국회로 복귀했다. 하지만 그해 8월2일에 7·28재보궐선거에서 패배한 책임을 지고 대표직을 사퇴했다.

2013년부터는 문재인 전 대표와의 연대, 새정치민주연합 비주류 의원들이 문 전 대표를 흔들자 그를 옹호하기도 했다. 2015년 2월의 새정연 당직인선에서는 정세균계 의원들의 약진이 두드러졌는데, 정책위의장에 강기정, 사무총장에 최재성, 전략홍보본부장은 안규백 의원 등이 감투를 썼다. 또한 2015년 8월에는 정세균계의 김성주 의원이 정책위 수석부의장이 됐다.

정 의장은 20대 총선서 현재 지역구인 서울 종로구에 공천을 받았고, 새누리당 후보로 공천된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대결하게 됐다. 지난 3월21일 여론조사에서 ‘오세훈 45.1% : 정세균 32.6%’로 크게 밀리는 등 당선이 어렵겠다는 평가를 받았다.

“불법자금 줬지만
그만 받지 않았다”

정 의장은 트위터에 “(중략) 17.3%p 격차입니다. 이 숫자를 꼭 기억해 주십시오. 이것이 왜곡인지 아닌지 제가 증명해 보이겠습니다”고 밝히기도 했다. 결국 정 의장은 20대 총선서 언론들의 여론조사가 왜곡됐다는 걸 증명했다. 4월13일 총선 당일, 최종적으로 정 의장은 52.6%의 지지를 받아 39.7%에 그친 오세훈 후보를 꺾고 6선(종로구에서는 재선)에 성공했다.
 

<min1330@ilyosisa.co.kr> 

 

[정세균 의장은?]

 

▲1950년 전북 진안 출생 ▲전주 신흥고 ▲고려대 법학과 ▲미국 페퍼다인대학 경영학석사(MBA) ▲경희대 경영학 박사 ▲고려대 총학생회장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총재 특별보좌역 ▲새천년민주당 정책위의장 ▲열린우리당 정책위의장·당의장·원내대표 ▲산업자원부 장관 ▲통합민주당 상임고문 ▲민주당 대표 ▲15·16·17·18·19·20대 국회의원(6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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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표 계승?’ 이재명정부 태양광 로드맵

‘문재인표 계승?’ 이재명정부 태양광 로드맵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전 세계적으로 기후 위기가 가시화되면서 에너지 정책은 범국가 차원에서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최근 환경부 장관 후보자의 발언으로 이재명정부의 에너지 정책 방향이 윤곽을 드러내는 모양새다. 일각에서는 문재인정부의 태양광 사업이 어른거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3일 대통령실은 “국회 기후위기특위에서 활동하는 등 미래 환경문제를 지속적으로 고민해온 3선 국회의원”이라고 소개하면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성환 의원을 환경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김 후보자는 22대 국회 기후위기특별위원회(위원장 한정애, 민주당) 위원으로 활동하며 탈원전·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노력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 대선공약 대통령실은 그가 “‘기후 위기는 모두의 생존 위기’라는 대통령의 문제의식을 잘 이해하고 그동안의 입법 경험을 바탕으로 환경문제에 적극 대응할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실제 김 후보자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안’ ‘환경친화적 자동차의 개발 및 보급 촉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 등을 발의한 바 있다. 이번 김 후보자의 지명으로 이재명정부의 환경 정책이 구체화되고 있는 모양새다. 김 후보자는 지난 24일 오전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기자들을 만나 “재생에너지 기반으로 모든 에너지 체계를 바꾸고 화석연료에 의존하지 않는 재생에너지 중심의 체계를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원전은 보조 에너지원으로 활용하겠다는 뜻도 비쳤다. 그는 ‘재생에너지를 늘리면 전기료가 오른다’는 우려에 대해 “전 세계적으로 균등화발전비용(같은 양의 전력을 생산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가장 싼 전원은 이미 풍력과 태양광”이라며 “다만 아직 한국에선 여러 기회 비용, 시간 비용, 금융 비용이 쌓여 상대적으로 비쌀 뿐이다. 실제 요금이 오를 일은 없다. 오히려 그런 식의 접근이 대한민국의 에너지 전환을 가로막고 있다”고 주장했다. 탈원전에 대해서는 “각 나라 특성에 따라 원전을 쓰는 나라가 있는데 한국도 탈원전을 바로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주 에너지원으로 재생에너지를 쓰고 원전을 보조 에너지원으로 쓰는 것이 (이재명정부의) 탈탄소 정책 기조”라고 말했다. 김 후보자는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으로 신설 예정인 기후에너지부 장관으로도 거론되고 있다. 기후에너지부는 분리돼있는 기후와 에너지 관련 부처 업무를 통합한 조직이다. 그는 “기후에너지 문제를 어떻게 하는 게 가장 효과적인지 빠른 시일 내로 큰 방향을 잡겠다”며 “국정기획위원회에서 조직개편안을 검토하고 있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신재생에너지로 전환 필요” “원전은 보조 에너지원으로” 환경부 장관 후보자가 에너지 ‘전환’을 예고하면서 일각에서는 문재인정부의 태양광 사업이 떠오른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대선공약으로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내세운 바 있다. 이를 세부적으로 진행하는 과정에서 태양광 사업이 크게 대두돼 국가 예산이 투입됐다. 문정부는 출범하면서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비율을 20%까지 높이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정부는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늘리기 위해 설비를 확충하기로 했다. 태양광, 풍력발전소 등이다. 당시 내용대로면 총 110조원에 이르는 돈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정부는 국가 예산과 공기업, 민간 등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문정부 임기 내내 전국 단위로 태양광 사업을 위한 지원금이 뿌려졌다. 당시 문정부는 신재생에너지 확대와 함께 탈원전 로드맵을 동시에 진행했다. 일부 원전이 영구적으로 정지됐고 짓고 있던 원전 공사가 중단됐다. 단계적 원전 감축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신재생에너지로 대체하겠다는 취지였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나온 잡음이다. 특히 태양광 사업을 둘러싼 각종 비리 의혹은 정권이 교체된 이후에도 문정부를 오랫동안 괴롭혔다. 국가 주력 사업이었던 만큼 정권이 바뀐 이후 새 정부의 표적이 된 상황에서 실제 문제가 드러난 것이다. 천문학적 예산 투입 윤석열정부는 신재생에너지 지원 사업에 대한 대대적인 점검을 진행했다. 윤정부 국무조정실은 일부 표본만 조사했는데도 불구하고 2000억원이 넘는 돈이 불법으로 사용된 정황이 드러났다고 발표했다. 당시 국무조정실 정부합동 부패예방추진단은 전국 12개 지자체와 한국전력, 한국에너지공단을 대상으로 ‘전력산업 기반기금 사업’ 운영 실태에 대한 합동 점검을 벌인 결과 총 2267건(2616억원)의 위법·부당 사례를 적발했다고 밝혔다. 해당 기금은 산업자원통상부(이하 산업부)가 전기 요금의 3.7%를 징수해 조성한 돈으로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지원과 보급에 주로 사용됐다. 5년간 투입된 금액은 12조원에 이른다. 1차 조사에 따르면 신재생에너지 지원 사업에서 부적절한 대출과 보조금 부당 집행, 회계 부실 등이 적발됐다. 태양광 사업의 경우 점검 대상의 17%인 1129건에서 1847억원의 위법 대출 등이 확인됐다. 2차 점검에서는 적발 금액이 2배로 늘었다. 국무조정실은 2019~2021년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에 쓰인 금융지원사업(1조1325억원) 내역과 2017~2021년 보조금 지원 규모가 컸던 25개 지자체의 발전소 주변 지역 지원사업 등을 조사했다. 그 결과 금융지원 사업에서 4898억원, 발전소 주변 지역 지원 보조금 사업에서 574억원, 전력 분야 연구개발 지원사업에서 266억원, 기타 전력기금 사업에서 86억원의 부정 집행 사례가 나타났다. 당시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신재생에너지 지원금 대부분은 태양광 사업에 쓰였다”며 “가장 규모가 컸던 부정 금융지원 사업 사례 중 99%는 태양광 사업”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태양광 업자들은 허위 세금계산서를 발행해 불법 대출을 받았고 가짜 세금계산서로 공사비를 부풀려 지원금을 타냈다. 감사원 조사로 검찰 수사까지 대출을 받은 뒤 세금계산서를 취소, 축소하는 등 탈루가 의심되는 정황도 드러났다. 가짜로 버섯 재배 시설이나 곤충 사육 시설, 축사 등 농림축산업 시설을 만들어 놓고 신재생 시설을 짓겠다고 대출을 받은 경우도 있었다. 농지에 신재생 시설을 지을 때는 용도변경 등 인허가 절차가 필요하지 않고 생산한 전력을 팔 때 받을 수 있는 보조금 한도도 커진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한 마을회는 마을 창고를 짓겠다며 전력기금에서 돈을 받아 부지를 사들였지만 실제 창고는 짓지 않았고 부지는 마을회장이 6촌에게 되팔았다. 지방자치단체의 문제도 드러났다. 한 군은 타낸 보조금을 다 쓰지 못하고 약 24억원이 남자 이를 다른 계좌로 빼돌렸다가 적발됐다. 한 시는 보조금을 빼돌려 관용차를 사기도 했다. 감사원 조사도 이뤄졌다. 감사원은 2023년 11월 ‘신재생에너지 사업 추진 실태’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신재생에너지 사업의 목표와 이행, 인프라 구축, 관리 등 3개 분야로 나눠 추진 과정과 집행 전반을 들여다봤다. 감사원에 따르면 산업부는 2017년 신재생 발전 목표를 상향하면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검토했지만 막상 후속 조치 이행에는 소홀했다. 감사원은 “톱다운(하향식) 방식으로 내려온 목표에 따라 무리한 계획이라도 수립해야 했다는 이유로 실현 가능성이 떨어지는데도 면밀한 검토 없이 강행되고 짧은 기간 내 일관성 없이 변경됨으로써 정책 혼선과 신뢰성 저하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윤석열정부서 전반적 점검 8000억 넘는 예산 줄줄 샜다 대통령의 대표 공약이었던 만큼 정부 부처가 이를 맞추기 위해 과도하게 정책을 추진했다는 것이다. 문정부가 신재생에너지 확대로 야기될 수 있는 전기요금 인상 가능성을 감췄다는 지적도 나왔다. 감사원 감사 결과에 따르면 산업부는 문정부의 국정 과제대로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늘릴 경우 2030년까지 전기요금을 40% 가까이 올려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당시 청와대의 압박에 12년 동안 10.9%만 오를 것이라고 국민 부담을 축소했다. 태양광 사업의 여파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새만금 태양광 발전사업 비리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은 지난 1월 군산시청에 대한 추가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감사원 감사 결과 군산시 태양광 발전사업 수주 과정에서 뒷돈이 오간 정황이 포착됐고 이를 검찰에 수사 의뢰를 하면서 시작된 일이다. 당시 군산시장은 군산시가 1000억원 규모의 태양광 사업을 추진할 때 자신의 고교 동문이 대표로 있는 업체에 특혜를 준 혐의를 받고 있다. 해당 업체가 사업자금을 조달하는 금융사가 제시한 연대보증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는데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해 계약 체결을 지시했다는 게 감사원의 판단이다. 앞서 검찰은 새만금 태양광 사업을 주도한 회사 대표를 알선수재 혐의로 기소했다. 그는 태양광 발전사업 과정에서 정·관계 인사에게 로비를 해주겠다며 뒷돈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그의 진술로 비리 의혹은 정치권으로까지 번졌다. 핵심 수사 대상에 올랐던 건설사 대표가 실종됐다가 시신으로 발견되는 일도 일어났다. 관련 시장은 반응 오는 중 이 대통령이 기후, 에너지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김 후보자가 재생에너지를 언급하면서 관련 시장이 다시 들썩이는 모양새다. 실제 태양광 관련 주가가 오르는 등 주식시장에는 벌써부터 반응이 나타나고 있다. 윤정부는 문정부의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통째로 부정하다시피 했다. 반대로 문정부의 정책을 다시 끄집어낸 이정부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