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박의 남자’ 이원종 청와대 신임 비서실장

공중전화 수금원서 청와대 2인자로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이병기 전 비서실장이 총선 패배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그 자리에 이원종 신임 비서실장이 투입됐다. “소통과 협치의 정치를 시작하겠다”고 했다. 과연….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5일 여야 3당 원내지도부와 청와대 회동을 한지 불과 이틀 만에 청와대 참모진 개편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이는 4·13 총선 민의를 수용해 여야 정치권은 물론 각계와의 소통·협치 정치를 강화해 나가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인사 때마다 
총리 물망에 

특히 여야 정치권을 중심으로 청와대 참모진과 내각의 인적쇄신과 개편이 강하게 요구되고 있는 상황에서 일단 청와대 비서진의 상징인 비서실장을 전격 교체하고 국정 전반의 정책을 총괄하는 정책수석, 경제를 책임지고 있는 경제수석을 교체함에 따라 앞으로 국정 운영에 있어서 소통·협치, 민생·경제에 방점을 찍었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김성우 홍보수석은 지난 15일 춘추관에서 이런 내용의 청와대 참모진 개편 인사를 발표했다. 김 홍보수석은 “이원종 신임 비서실장은 행정 전반에 걸쳐 풍부한 경험을 갖추고 있고 친화력과 신망이 있는 분이다”며 “박 대통령을 원활히 보좌하여 국민 소통과 국가 발전에 기여할 적임자”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 비서실장이 친박이 차기 대선후보로 점찍어 놓고 있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함께 충청모임 ‘청명회’에서 함께 활동해온 멤버라는 점에서 ‘박 대통령이 본격적으로 반 총장을 차기 대선후보로 영입하기 위한 작업에 나선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이런 정치권의 반응에 대해 이 비서실장은 “두텁다고는 하는데 같은 고향인 정도”라며 “각별하게는 뭐…”라고 청와대 기자들에게 말했다. ‘최근에 언제봤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오래됐다. (반 총장이 청와대) 수석 하실 때 부부 모임으로 청와대 초청받아서 식사하는데 옆자리에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반 총장 방한을 앞두고 있는 미묘한 시기에 이 비서실장의 인사가 이뤄져 정치권에는 적지 않은 파장이 일고 있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이번 인사에 대해 반응이 엇갈렸다.

총선 참패 후 참모진 개편카드
행정 전반에 걸쳐 풍부한 경험

민경욱 새누리당 원내대변인은 “이 비서실장은 행정 전반에 걸쳐 풍부한 경험을 갖췄을 뿐 아니라 대통령직속지역발전위원회 위원장으로 근무하여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공유한 분”이라며 “탁월한 친화력과 신망을 갖춘 분으로 앞으로 청와대와 정치권 간 원활한 의사소통 등에도 앞장서 주시리라 기대한다”고 평가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이번 인사를 강도 높게 비난했다. 이재경 더민주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비서실장 교체 등 일부 청와대 참모진 교체는 총선 민의와 거리가 있는 인사다”며 “교체폭과 인사 내용이 총선에서 드러난 성난 민심에 최소한의 답도 되지 못한다는 평가를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손금주 국민의당 수석대변인 역시 “박 대통령의 이번 비서실장 교체 인선 등 참모진 개편의 폭과 내용에대해서 깊은 우려를 금할 수 없다”며 “이 비서실장이 민심을 가감 없이 직언할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이 비서실장은 임명 직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기자들을 만나 “국가적으로 매우 어려운 시기에 대통령님을 보필하는 소임을 맡게 돼 우선 두려운 생각과 아울러서 어깨가 매우 무겁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평생 공직자는 자기가 맡은 일에 충성을 다하는 것이 국민에게 충성하는 것이요. 국가에 충성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살아왔다”며 “앞으로 노력해서 대통령께서 지향하는 희망의 새시대, 국민이 행복한 시대를 열어가는 데 일조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체신학교 나와
신화적인 존재

박 대통령이 이 비서실장을 발탁한 것은 안정적인 국정 운영을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많다. 오랜 공직 경험으로 이른바 ‘행정의 달인’으로 불려온 이 비서실장은 대통령 보좌 및 청와대 업무를 안정적으로 끌고 가는 데 있어 적임자라는 평가 속에 박 대통령의 낙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2월 말 임명된 이병기 비서실장은 4·13 총선 이후 사의를 표명했으나 박 대통령이 사표 수리를 미뤄왔다.

이 비서실장은 현 정부의 4대 실장이다. 초대 허태열(경남 고성), 2대 김기춘(경남 거제), 3대 이병기(서울) 비서실장에 이은 첫 충청권 출신 인사이기도 하다.
 

이 비서실장은 ‘두루 원만하고 무난하게 일을 처리하는 안정적인 사람’이라는 게 주변의 대체적인 평가다. 이 비서실장은 어릴적 소나무 껍질로 허기를 채울 만큼 어렵게 자랐으나 서울시장과 충북도지사를 거쳐 대통령 비서실장까지 올랐다.

이 비서실장은 1942년 충북 제천 출신이다. 너무 가난해 고교 진학을 꿈도 꾸지 못한 이 비서관은 국립 체신학교에 입학했다. 이후 1963년 서울로 올라와 광화문 전화국에서 9급 공무원으로 시작한다. 가죽가방을 매고 걸어 다니며 서울시내 공중전화기의 동전을 거둬들이는 일을 했다. 밤에는 성균관대 행정학과를 야간으로 다녔다.

1966년 행정고시에 합격해 서울시청 사무관으로 첫 발을 내디딘 뒤 대부분 공직 경험을 서울시에서 쌓았다. 용산·성동·강동·성북·동대문 등 5개 지역 구청장을 지냈다.

광화문 전화국서 9급 공무원으로 시작
충북지사 3번 자타공인 ‘행정의 달인’

이 비서실장은 사무관 시절 청와대 내무행정관으로 근무했고, 박 전 대통령 지시로 새마을운동의 기초 작업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비서실장은 2014년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새마을운동 사업에 대해 “박정희 대통령에겐 못살고 굶주린 농촌을 바꿔야겠다는 무서운 집념이 있었다”며 “아침마다 대통령께서 밤새 고민한 흔적이 글과 그림으로 표시된 쪽지가 내려오는데 그 쪽지를 받아들고 열심히 연구하곤 했다”고 말했다. 이 비서실장의 이런 경력 때문에 ‘아버지’와의 인연을 중시하는 박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또 노태우정부 때인 1991년에는 청와대 내무행정비서관, 이듬해 관선 충북지사(제26대), 1993년에는 관선 서울시장(제27대)으로 일했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사고 이후 서울시장에서 물러났지만, 검찰에서는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이후 모교인 성균관대에서 강의하고 청주 서원대 총장을 지내는 등 교육계에 몸담기도 했다. 정치에서 벗어나 자연인으로 살아가지만, 지방자치제 선거를 통해 다시 부활한다.

1998년 지방선거 때는 자유민주연합(자민련) 소속으로 민선 제2기 충북지사(제30대)에 당선됐다. 당시 당선소감문에서 “박달재 알쫑이(알토란 같은 원종이)가 충북을 꿈과 희망이 넘치는 한반도의 중심지로 만들겠다”며 일성을 밝혔다.


2002년 선거는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으로 당적을 바꿔 31대 충북지사 재선 고지를 밟았다. 관선까지 합쳐 모두 3차례에 걸쳐 충북 도정을 이끌었다. 충북지사 재임 때 2002 오송 국제바이오엑스포를 개최하는 등 오성바이오단지의 기틀을 다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6년 지방선거 때는 50%가 넘는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불출마를 선언하며 용퇴했다.

소탈한 스타일
반기문과 연결?

이 비서실장의 성품은 소탈하고 부드러워 정치권과의 관계가 두루 원만하다는 평이다. 박 대통령이 이 비서실장을 발탁한 배경이기도 하다. 충북지사 시절 비서실 직원도 모르게 맏딸 결혼식을 치를 정도다. 또 자기 주장을 강요하지 않고 상대방의 말에 귀 기울이는 친화력이 장점으로 꼽힌다. 풍부한 행정 경험과 친화력을 바탕으로 국무총리 인선 때마다 단골 후보자로 물망에 올랐다. 현 정부 출범 이후 2013년 8월 대통령 직속 지역발전위원장에 임명됐다. 


<min1330@ilyosisa.co.kr> 

 

[이원종은?]

▲1942년 충북 제천 ▲제천고 ▲성균관대 행정학과 ▲한양대학교 행정학 석사 ▲제4회 행정고시 ▲서울시 용산구청장 ▲청와대 내무행정비서관 ▲제26·30·31대 충북지사 ▲제27대 서울시장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 법무행정분과 자문위원 ▲제4대 서원대학교 총장 ▲성균관대 국정관리대학원 석좌교수 ▲한국지방세연구원 이사장 ▲대통령 직속 지역발전위원회 위원장  

 


<기사 속 기사> 안종범 정책조정수석, 강석훈 경제수석은 누구? 
 

새누리당의 4·13 총선 패배 한 달 만인 지난 15일 전격 단행된 청와대 경제팀 개편인사로 안종범 신임 정책조정수석과 강석훈 신임 경제수석을 발탁했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 경제브레인의 한 축인 강 수석의 등판은 기업 구조조정 등 현안과 함께 4대 구조개혁 등 핵심 국정과제에 대한 공격적 대응을 의미한다는 해석이다. 다른 축인 안 수석을 거중 정책조정을 담당하는 정책조정수석으로 업그레이드시키면 국정 기조도 뚝심 있게 밀어붙이겠다는 뜻도 분명한 것으로 풀이된다.

강 수석과 안 수석은 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을 만든 주인공들로 ‘진박’으로 통한다. 따라서 그 어느 때보다 속도감 있는 경제정책 운영이 예상된다. 일각에선 청와대 경제팀의 무게감은 경제부총리보다 무거울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온다.

강 수석은 경제학자 출신으로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시절 박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2012년 대선 당시엔 새누리당 대통령선거대책위원회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실무추진단 부단장을 맡아 공약을 주도했다. 아울러 강 의원은 19대 국회에선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여당 간사로 활동했고, 공무원연금제도개혁TF 위원을 맡아 공무원연금 개혁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강 의원은 경북 봉화 출신으로 서울대 경제학과를 거쳐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어 대우 경제연구소를 거쳐 한국재정학회 이사, 성신여대 입학홍보처장 등을 재임했고, 18대 대통령직인수위 국정기획조정분과 인수위원을 지냈다. 강 의원은 또한 20대 총선에서 재선을 노렸지만, 당내 경선에서 박성중 당선인에게 패배해 낙천했다.

안 수석은 1981년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 학사, 1984년 동 대학원 경제학과 석사를 마친 후 1991년 위스콘신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2년 대우경제연구소 선임연구위원, 1996년 한국조세연구원 연구조정부장, 2002년까지 감사원 국책사업감시단 자문위원 등을 역임한 경제 전문가다.

1996년부터 1998년까지 서울시립대학교, 1998년부터 현재까지 성균관대학교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며 학계에도 몸을 담았다. 2012년 새누리당 비례대표로 19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뒤 국회 예산재정개혁특별위원회 간사,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개혁소위원회 간사 등을 지냈다.

특히 2012년 새누리당 대통령 선거후보 경선캠프 정책메세지 본부장, 제18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고용복지분과위원회 위원 등을 지내며 박 대통령의 경제정책을 총괄하고 2014년부터 최근까지 경제수석을 역임하면서 현 정부의 국정운영 방향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인물로 평가 받는다. 청와대에서는 안 정책조정수석이 각종 정부 정책을 원활히 보좌해 후반기 정책운영 효율성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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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독주가 이어지고 있다. 당원의 명령인 개혁을 완수하기 위한 질주다. 당의 ‘아웃사이더’였던 그가 당을 휘어잡기까지 수많은 당원이 등을 밀어줬다. 비주류에서 주류 ‘인싸’로 자리 잡기 위한 정 대표의 다음 스텝이 주목된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행보가 매섭다. 윤석열정부에서 막힌 과제를 해치우는 동시에 공약이었던 각종 개혁을 빠르게 완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 대표는 같은 당 박찬대 의원보다 덜 알려졌다는 평이 나오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위원장으로서 보여준 ‘사이다’ 면모가 주목받으면서 강성 지지층의 환호를 받았다. 정청래가 걸어온 길 비주류였던 그가 당 대표가 되기까지의 여정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21대 국회 때는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 수석 최고위원을 지냈고, 22대 국회에선 법사위원장으로서 국민의힘에 호통을 치며 유튜브 단골 주제가 됐다. 당시 정 대표는 국민의힘이 반대하는 쟁점 법안을 밀어붙이고 상대편 의원과 대립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인기를 끌었다. 그동안 정 대표는 언론 대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유튜브 등 SNS를 통해 지지자와 직접 소통해 왔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보다 주목도가 떨어진다는 평이 나오지만 팬덤 정치에 최적화된 모습을 보여줬다. 정 대표는 최근에도 자신을 둘러싼 의혹과 청-명 프레임에 대해 직접 입장을 밝혔다. 그는 SNS에 ‘언론의 자유와 횡포 그리고 언론의 게으름의 관성’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조국 전 대표의 사면·복권을 놓고 일부 언론에서 ‘정청래 견제론’을 말한다.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근거 없는 주장일뿐더러 사실도 아니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바로 반박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어 “정청래는 김어준이 밀고, 박찬대는 이재명 대통령이 밀었다는 식의 가짜 뉴스가 이 논리의 출발”이라며 “어심이 명심을 이겼다는 황당한 주장, 그러니 정청래가 이재명 대통령과 싸울 것이란 가짜 뉴스에 속지 말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각을 세울 일이 1도 없다. 당정대가 한 몸처럼 움직여 반드시 이재명정부를 성공시킬 생각이 100(이다)”이라고 덧붙였다. 계파 갈등 프레임이 씌워질 조짐이 보이자 이를 사전에 차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 대표의 정치적 뿌리를 따지자면 친노(친 노무현)에 가깝다. 그러나 문재인 전 정부서는 친문(친 문재인),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는 친명(친 이재명)으로 분류되는 등 계파색이 비교적 옅은 편이다. 1989년 미국 대사관저 점거 농성을 주도한 혐의로 2년형을 선고받은 등 학생 운동권 출신이지만, 대표 운동권인 민주당 86 그룹과의 친분을 공개적으로 과시하지 않았다. 따라서 정 대표는 당의 주류보다 비주류에 가깝다는 게 여의도에 떠도는 평이다. 친문? 친명? 오히려 ‘계파 청산파’ “잘못된 586 문화 배운 97도 청산” 전당대회가 한참이던 당시 한 민주당 의원은 “사석에서 만난 정 의원은 아주 뚝심 있는 사람이었다. 박찬대 의원은 특유의 재치로 호감을 얻는 편이라면 정 의원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할 말은 제대로 하는 캐릭터”라며 “그래서 계파를 분류하기 어려운 것 같다. 나만의 길을 가는 것 같으면서도 한번 정한 길은 꺾지 않고 걷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오히려 정 대표는 ‘계파 청산’을 외치는 인물이다. 그는 당 대표 후보이던 당시 “국민께서 비판하시는 586의 운동권 문화는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라디오에 출연해서는 “계파는 당을 좀먹는 독약”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정파와 노선은 필요하지만, 계파는 없어져야 한다. 저 스스로 계파에 가입하지 않고, 그런 데서도 저는 안 불러준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586의 질서, 운동권의 수직적 관계가 싫었다. 그런 분들과 몰려 다니는 게 너무 비생산적”이라며 “586의 안 좋은 문화를 따라 배운, 너무 빨리 늙어버린 97 세대들의 그런 것도 청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수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당원들의 요구를 파악해 발 빠르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8·2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는 당선 이후 “이 대통령이 대통령이 된 것은 민주당 주류가 바뀌었단 뜻이고, 민주당에서 정청래가 대표가 됐다는 것은 당의 주인인 당원들이 당의 운명을 결정하는 시대가 왔다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해석했다. 이날 전당대회를 “예전에는 당원들이 국회의원 눈치를 봤지만, 이제는 국회의원들이 당원 눈치를 봐야 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민주당의 민주화’가 드디어 그 깃발을 높이 든 8·2 전당대회”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이처럼 정 대표를 탄탄히 받쳐주는 건 여의도 인맥이 아닌 당원이었다. 정 대표는 이들을 대주주 삼아 힘을 키워 주류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에는 당원권에 힘을 쏟으며 역사상 처음으로 ‘평당원 최고위원’ 선출을 시도하는가 하면 당원 주권 정당 실현을 강조하기 위해 ‘대의원 1인1표제’를 띄우기도 했다. 대의원 1인1표제는 당원들의 권한을 대폭 향상하는 방안이다. 정 대표는 지난 18일 열린 국회 당원주권 정당특위 출범식에서 “10년 넘게 당원주권정당, 1인1표를 주장해 왔지만, 아직까지도 열리지 않았다”며 “헌법에서 얘기하고 있는 평등 선거가 민주당에서도 구현이 될 수 있도록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3대 개혁 풀가동 이어 “대한민국 헌법에는 평등 선거가 명시돼있고, 많은 선거에서 1인1표가 행사되지만 유독 더불어민주당에선 누구는 1표, 누구는 17표를 행사한다”며 “헌법적으로 보나 상식적으로 보나 매우 부끄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재명정부가 국민주권시대를 강조하는 만큼 이에 발맞추기 위해서라도 민주당은 권리당원의 권리를 보장하고 상징적인 ‘1인1표’ 시대를 반드시 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밖에도 정 대표는 당헌·당규 개정을 비롯한 ▲평당원 선출 준비 지원 ▲연말 당원 콘서트 지원 등을 약속했다. 당원의 힘이 커질 수록 정 대표의 정치적 입지도 넓어진다. 정 대표는 연일 국민의힘 때리기에 집중하며 당원으로부터 지지를 받았고, 민주당의 목표로 3대 개혁 완수를 내걸었다. 이는 비주류였던 자신의 정체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전략으로도 읽힌다. 이 대통령이 ‘사이다’ 발언으로 당권까지 올랐다면 정 대표는 각종 특위를 띄우며 거침없는 개혁가의 모습을 굳히겠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강성 지지층의 요구에 따라 검찰개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청을 폐지하는 대신 가칭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과 공소청을 신설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다음 달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정 대표는 지난달 21일 의원총회에서 이 대통령과 당 지도부의 만찬 회동을 언급하며 “검찰청 폐지, 공소청·중수청 설립을 담은 정부조직법을 9월 내 본회의에서 처리하자고 당과 대통령실이 입장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약속드린대로 추석 귀향길 뉴스에서 ‘검찰청은 폐지됐다’ ‘검찰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는 기쁜 소식을 국민 여러분께 전해드릴 수 있도록 당에선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임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된 추미애 의원 역시 “법사위원장 선출은 검찰과 언론, 사법개혁 과제를 완수하라는 국민의 명령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전폭적으로 힘을 실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위원회도 속속들이 들어섰다. 우선 민주당은 ‘국민주권 검찰정상화 특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정 대표는 출범식 및 1차 회의에 참석해 “지금의 시대적 과제는 내란 종식, 내란 척결, 이정부 성공에 있다”며 “가장 시급히 해야 할 개혁 중 개혁이 검찰개혁”이라며 “개혁도 골든타임을 놓친다면 저항이 거세져서 좌초되고 말 것이기 때문에 시기가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특위의 주요 과제로는 ▲수사·기소 완전 분리 ▲국민 주권 실현 및 민생 뒷받침 등을 제시했다. 새로운 구심점 이어 언론개혁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언론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추석 전까지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언론의 허위·조작 보도에 대해 피해자에게 손해액의 최대 5배 배상을 의무화하는 법적 장치다. 언론뿐만 아니라 ‘유튜버’도 포함하는 안이 논의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중심 사법개혁특별위원회’도 출범했다. 정 대표는 “대법관의 증원과 추천 방식을 변경하는 내용의 사법개혁안을 추석 전까지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구석구석 눈도장을 찍기 위한 지역별 공략에도 나섰다. 지난 21일 호남발전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다들 대한민국 민주화에 대해서 호남이 기여한 바가 지대하다는데, 국가는 ‘호남을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에 대한 답을 이제 할 때가 되지 않았나”라고 꼬집었다. 정 대표는 “호남만 발전시키면 되겠느냐”며 영남발전특위도 띄웠다. 이는 내년 6월에 있을 지방선거를 대비해 대구·경북 등의 표밭을 다지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광폭 행보를 보이는 정 대표를 구심점으로 신흥 세력이 탄생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정 대표는 계파 정치와 거리를 두겠다고 거듭 밝혔지만, 권력자의 주변에 사람이 모이는 것은 당연하다는 해석이다. 정 대표의 편에 선 동료 의원들에게도 시선이 쏠린다.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를 공식적으로 지지했거나 개혁 선봉에 함께 섰던 의원 등이다. 정 대표가 당권 도전을 선언한 국회 기자회견장에는 장경태·최기상·문정복·임오경·양문석 의원 등이 자리했다. 여의도 이야기를 종합하면, 정 대표는 ‘당원 중심 정당’ 철학에 부합하는 인사로 장 의원을 꼽았다. 현재 장 의원은 평단원 최고위원 선출 절차를 위한 특위위원장을 맡고 있다. 최민희 의원은 정 대표를 공개 지지한 인물이다. 당시 정 대표가 수박 논란에 휩싸였을 당시 최 의원은 “심하게 비난받는 정청래 후보를 지켜보면 짠하다”며 “비난에도 역비난하지 않고 여전히 유쾌·상쾌하게 선거운동하는 정 후보를 격하게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 밖에도 한민수·김영환·이성윤 의원은 경선 유세 현장에 함께하며 힘을 실어줬다. 왼쪽으로 붙는 민주당…좁아지는 공간 강성 지지층 등에 업고 개혁가의 길로 개혁가의 길을 걷는 정 대표의 존재감이 커지자 일각에서는 조기 대선을 거치며 ‘중도 보수론’으로 넓혀놨던 민주당의 정치 공간이 다시 좁아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 대표의 강경한 태도가 민주당의 기조가 된다면 야당과의 협치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평이다. 실제 정 대표는 “악수는 사람하고만 한다”며 국민의힘을 척결 대상으로 대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6주기 추모식에서 정 대표는 국민의힘 송언석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과 악수는커녕 인사조차 나누지 않았다. 송 비대위원장 역시 적대감을 드러내면서 그야말로 ‘국회 빙하기’ 시대가 열렸다. 여당인 민주당은 좌우를 넓게 아우르는 정당이 돼야 앞으로 다가올 선거에서 유리한 구도를 유지할 수 있다. 지금처럼 국민의힘이 보수로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왼쪽은 조국혁신당, 진보당 등에 맡겨둔 채 중도 보수를 자처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당원의 힘으로 대표가 된 만큼 그는 개혁을 완수하기까지 지금과 같은 태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민주당 상임고문단도 “집권여당은 당원만 바라보고 정치를 해선 안 된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당 상임고문단 간담회에서 “정당의 주인은 당원이어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면서도 “우리 국민은 당원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도 “내란의 뿌리를 뽑기 위해 전광석화처럼, 폭풍처럼 몰아쳐 처리하겠다는 대목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과유불급이다. 의욕이 앞서 결과를 내는 게 지리멸렬한 것보다는 훨씬 나으나, 지나치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또 다른 민주당으로 민주당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포스트 이재명’ ‘이재명 키즈’가 아닌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새로운 길을 열어야 당이 계속해서 순환하는 등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어 “민주당의 주류는 강성 지지층이다. 당원이 당을 좌지우지하는데 그들의 숫자가 얼마가 되든 목소리가 커 여론을 만드는 것”이라며 “이 주류의 흐름에 올라탄 사람이 정 대표다. 이 대통령이 대표이던 때와는 다른 모습의 민주당을 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아직 남은 정 견제 세력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SNS에 올렸다 곧바로 삭제한 게시글이 화제다. 민주당은 지난달 19~20일 양일간 경주를 찾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준비 상황을 점검했는데 정 대표가 마치 천마총 금관을 쓰고 있는 듯한 착시 사진이 문제가 된 것이다. 정 대표가 금관을 직접 착용한 것은 아니지만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시에 왕 노릇을 한다” “벌써 왕인 것처럼 군다” 등 거친 비판이 쏟아졌다. 현재 해당 사진은 삭제됐지만 8·2 전당대회 때 불거진 박찬대 의원과의 앙금이 아직 남은 게 아니냐는 뒷말이 나온 이유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