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25.04.09 01:01
방화 사건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조금 멀리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희생자가 나온 대구 지하철 방화와 국보 1호 숭례문(남대문) 방화, 가까이는 강릉 산불과 대구 변호사 사무실 방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화 범죄가 이어져온 실정이다. 전통적으로 강력범의 경우 20~30대에 범죄성이 정점으로 부각되는 데 비해, 대다수 방화범은 40~50대다. 지난 5년간 방화범의 53%가 40~50대였다는 통계가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심지어 60대 이상의 방화범도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상당수 방화범은 술에 취한 상태였고, 방화 이유는 대부분 ‘화를 참지 못해’ 불을 질렀다. 실제로 통계상에서도 술을 마신 상태에서 발생한 살인·강도 범행은 28-30% 정도였으나, 방화 범죄의 주취자 비율은 매년 40%를 상회한 것으로 집계됐다. 방화가 무서운 것은 일종의 다중살인이 될 수도 있는 동시에 엄청난 규모의 재산상 손실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경찰은 방화를 살인·강도·강간 등과 함께 강력범죄로 분류하고 있다. 미국 역시 FBI 범죄통계에서 강력범죄와 유사한 개념인 ‘지표범죄(Index Crime)로 분류하는 이유다. 방화가 중요한 형사정책의 대상이 돼야 하는 이유는
‘이태원 참사’는 우리 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다. 온 나라가 슬픔과 분노가 들끓었고, 참사의 책임소재를 놓고 들썩인다. 수많은 희생이 있었기에 당연히 그 책임소재를 명확히 따지는 과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소나기 피하기 식의 분풀이나 화풀이는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비슷한 참사가 반복되는 걸 막기 위해서라도 문제의 근본 원인이 규명돼야 한다. 이번 이태원 참사의 근본적인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사람들은 경찰의 안이한 판단과 무책임을 질타한다. 경찰은 주최나 주관이 없어서였다고 주장한다. 가장 근원적인 원인을 찾는다면 경찰은 물론이고, 정부와 국가,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팽배한 안전 불감증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안전에 충분히 민감했다면, 일어날 수 없었던 참사였기 때문이다. 유사한 사건이 반복되지 않게 하려면 이제라도 ‘안전인지 감수성(Safety Awareness/Sensitivity)’에 민감해져야 한다. 그렇다면 글자만큼 그렇게 자기-설명적이지는 않은 안전인지 감수성이란 낯선 용어는 무엇을 뜻할까. 대중은 ‘인지(Awareness)’라고 하면 일시적인 캠페인이나 간헐적인 사회운동이나 활동쯤으로 생각하기 쉽다. 안전인지 감수성은 통
그간 범죄는 하류계층의 전유물처럼 인식됐다. 적어도 공식적인 범죄 통계로는 그렇다. 미국 FBI의 공식 범죄 통계인 ‘UCR(Uniform Crime Reports)’을 비롯한 전 세계의 거의 모든 공식 범죄 통계는 하류계층에 속하는 사람들이 절대적으로 많은 범죄를 범하는 것으로 보고하고 있다. 전통 범죄학은 하류계층의 노상 범죄, 재산범죄, 또는 ‘낯선 사람(stranger)’에 의한 범죄에 집중적으로 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범죄가 하류계층만의 문제는 아니다. 중상류 계층도 다양한 범죄를 범하고 있으며, 그들의 범죄로 인한 피해는 하류계층 범죄 피해보다 심각할 때가 많다. 중상류층, 소위 돈이나 권력을 가진 자들의 범죄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것은 가진 자가 만든 법을 중심으로 하는 사법체계에 기인하거나 그들의 범죄 특성 때문이라는 게 ‘비판범죄학’에서 주장하는 내용이다. 최근 비판 범죄학계를 중심으로 사회적 엘리트들과 기업의 범죄에 경각심을 울리기 시작했다. 전통 범죄학에서 다뤄지지 않았던 가진 자의 범죄가 하류계층 범죄자와 이들에 의한 전통적 노상 범죄보다 빈도와 피해 규모 면에서 훨씬 더 심각하다고 주장한다. 미국 FBI에 따르면 실제로 노상 범죄의
경찰과 검찰에 접수된 ‘보복범죄’ 건수가 최근 몇 년 동안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보복범죄는 자신이나 가족이 범죄나 사고로 입은 신체적·정신적·물질적 피해에 대한 보복을 가해자에게 가하는 것을 의미한다. 보복범죄는 그 자체만으로도 강력 범죄일 뿐만 아니라, 피해자나 제보자 등의 신고를 위축시킨다. 이는 곧 형사사법기관의 작동과 기능을 위협해 존재 이유조차 흔들리게 하며, 사법기관에 대한 시민의 불신을 조장하게 한다. 보복범죄는 범죄에 대한 최초 신고를 이유로 가정폭력, 데이트폭력, 범죄조직 간 충돌 등 다양한 관계와 형태와 동기에서 비롯된다. 일반적으로는 어떤 것이나 무언가에 앙심을 품고 그것을 보복하기 위해 저지르는 범죄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들어 사회적 문제이자, 관심사가 되고 있는 형태의 보복범죄는 일종의 ‘관계 폭력(Relationship violence)’에 가깝다. 헤어지기를 원하는 상대에 대한 헤어지기 싫어하는 가해자의 일방적 보복 행위가 대표적이다. 국내에서 보복과 복수 범죄를 혼용하듯, 미국에서도 ‘Retaliatory’ 범죄와 ‘Revenge’ 범죄라는 용어를 상호교환적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복수나 보복은 범죄와 폭력에 대한
얼마 전 ‘8살 나영이’를 성폭행한 조두순의 출소로 전국이 떠들썩했다. 최근엔 11명의 미성년자에 대한 성폭력으로 수형생활을 해온 김근식의 출소로 또 다시 성범죄자 신상정보 공개와 고지에 대한 관심과 논란이 일고 있다. 범죄자, 특히 성범죄자, 그것도 아동 대상 성범죄자의 신상정보 공개와 고지는 전혀 새로운 내용이 아니다. 성범죄자 신상정보 공개와 고지제도의 시작은 미국 연방 법률, 즉 법집행기관으로 하여금 등록된 성범죄자에 대한 정보를 일반에 공개하도록 하는 연방 법률인 ‘메간법(Megan’s Law)‘이다. 미국 뉴저지의 7살 소년 메간이 길 건너 동네에 거주하던 성범죄 전과범에 의해 납치·강간·살해된 사건을 계기로, 만약 성범죄 전과가 많은 자가 동네 주민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았더라면 사전에 주의하고 조심했다면 메간에게 불행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을 거란 판단에서 시작됐다. 연방 메간법은 등록된 정보를 일반에 공개하는 것 소위 ‘지역사회 고지’에 관한 것이라면, 주 단위의 메간법은 성범죄자 등록과 지역사회 고지 두 가지 모두에 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신상정보 공개와 고지제도가 기대하는 것은 범죄자에게는 자신의 신상이 공개됐다는 점에서 심리적 억제와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폭력과 동물에 대한 학대는 피해자가 생명체라는 공통점이 있다. 피해를 받는 대상은 고통을 느끼고, 경험하고, 최악의 경우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오랫동안 동물에 대한 폭력성이 아동, 노인에 대한 폭력과 무관한 것으로 간주됐지만, 최근에는 동물을 학대하는 사람이 타인에게도 위해를 가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 입증되고 있다. 흉악범 상당수가 과거 동물에 해를 가했다고 보고된 사례와 일맥상통한다. 동물 학대와 사람에 대한 폭력의 연계에 대해, 범죄심리학자들은 학대나 기타 폭력을 목격한 사람이 폭력에 무감각해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동물 학대는 생명 존중을 파괴하고, 동물 학대를 목격한 아이일수록 학대자가 될 수 있는 위험에 놓이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사회복지 전문가, 교육자, 정신건강 전문가 등은 동물에 대한 학대와 잔인성이 장래 폭력 행위에 대한 하나의 경고신호라고 우려하고 있다. 이들은 동물 학대를 중요한 형태의 공격적이고 반사회적인 행위로 간주하고, 아동의 동물에 대한 공격적, 가학적 행위가 성인이 된 이후 폭력적인 성향으로 발현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다수의 연쇄살인범이 어린 시절 동물을 학대했던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미국 연
범죄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것으로 알기 쉽다. 당연히 범죄의 피해자도 가해자도 사람이라고 이해하게 된다. 물론 절대 다수의 범죄는 가해자도 그 피해자도 사람이다. 그러나 엄격하게 말하면 가해자도 피해자도 사람이 아닐 수 있다. 전통적 범죄, 특히 대인 범죄는 절대적으로 가해자도 피해자도 자연인이겠지만 사실은 자연인 외에도 기업 또는 법인(corporation)도, 가해자도 피해자도 될 수 있으며, 심지어 살아있는 사람만이 아니라 죽은 사람도 범죄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최근 동물애호가들이 늘면서 애완동물, 반려동물에 대한 관심이 증대됐고, 범죄 피해자로서의 반려동물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됐다. 추세를 반영하듯, 범죄학에서도 동물이나 식물에 대한 학대는 물론이고, 자연환경의 훼손과 같은 반사회적 행위들을 관심의 초점으로 하는 ‘환경 범죄학’이 급속하게 발전하고 있다. 반대로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로서 자연인이 아닌 법인 또는 기업의 범죄행위인 기업범죄(Corporate crime)나, 이를 확장해 화이트칼라 범죄(White color crime) 또는 엘리트범죄(Elite crime)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영국에서는 소위
경찰의 지나친 총기 사용은 지난 몇 년 미국 사회의 논쟁거리였다. 이런 가운데 미네소타에서 발생한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을 계기로 경찰에 대한 반감이 극에 달했다. 시민들은 급기야 ‘경찰 예산 지원 중단(Defund the police)’을 요구하기에 이르렀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경찰을 폐지하라(Abolish the police)”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물론 미국 사회의 현실에는 인종차별이라는 사회문제가 저변에 깔려있다. 그럼에도 미국 경찰의 지나친 총기 사용은 큰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가? 일단 미국과의 단순 비교는 어렵다. 미국의 경우 다인종·다문화·다언어 형태를 띠는 복합사회(plural society)로서 인종차별의 논란이 여전하고, 총기 소지와 휴대가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반면 한국은 단일사회의 특성이 강하고 총기 규제가 어쩌면 가장 엄격하다. 미국과 한국은 총기나 무력 사용은 물론이고 경찰권이 대표하는 국가권력, 공권력이라는 측면에서 봐도 매우 대조적이다. 미국이 무력의 지나친 사용으로 비난을 받지만, 한국은 경찰관에 대한 주취 폭력 등으로 경찰권의 약화를 우려하는 실정이다. 사실 경찰의 무력 사용은 정당한 경찰권
‘피해자 없는 범죄(Victimless crime)’라는 학술용어처럼 사실은 피해자가 없는 범죄는 있을 수 없는데도 피해자 없는 범죄라고 하는 것은 전통적 범죄 피해자와 전혀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에서 붙여진 용어일 뿐이다. 전통적 범죄는 특정한 가해자가 특정한 피해자에게 특정한 동기에서 가하는 범죄인 반면, 피해자 없는 범죄는 마약처럼 가해자와 피해자가 동일인이거나, 환경 범죄나 기업 범죄처럼 피해자가 불특정 다수인 경우다. ‘묻지마 범죄’도 전통 범죄와 구별하기 위한 의도에서 언론이 작명한 신조어다. 전통 범죄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 속에서 분명한 동기를 가지고 행해지지만, 묻지마 범죄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도 없고, 따라서 특정한 동기도 없다는 점에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도 동기도 묻지도 따질 수도 없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피해자에 대한 특별한 특정한 동기가 없다는 점에서 ‘동기 없는 범죄(Motiveless crime)’, 혹은 증오의 표출이라는 점에서 ‘증오범죄(Hate crimes)’로 분류하기도 하며, 전형적인 동기가 아닌 이상한 동기의 범죄라는 점에서 ‘이상 동기 범죄’로 표현하기도 한다. 왜 극히 일부이지만 사람들은 자
‘앰버 경보’는 어린이가 납치된 것으로 추정돼 신고가 들어오면 경찰이 납치 용의자와 피랍 어린이와 관련된 정보를 국민들에게 알리는 시스템이다. 정보, 시기, 절차 등에 따라 발령하는 경보의 종류가 다양하지만, 목적은 한결같다. 경보를 다수 국민과 공유해 시민들의 제보와 감시를 극대화해 어린이를 구하고 납치범을 검거할 가능성을 높이자는 것이다. 경찰은 시민의 협조와 참여가 없다면 존재할 수 없다는 말이 있다. 과거 탈옥수 신창원 사건이 그랬듯이 시민의 신고를 토대로 경찰이 사건을 해결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봐왔지 않은가. 앰버 경보 제도를 도입해야 할 정도로 시민의 관심, 협조, 참여가 필요한 것은 납치, 유괴사건의 경우 사건 발생 후 비교적 길지 않은 시간에 살해되는 경향이 높아 시간을 다퉈 해결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전 국민의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앰버 경보의 영어 표기인 ‘AMBER’는 두 가지를 함축하고 있다. 하나는 AMBER가 1996년 미국 텍사스주 알링턴시에서 납치돼 살해된 ‘Amber Hagerman’의 이름을 딴 것이다. 앰버의 아버지가 어린이 납치에 대한 심포지엄에 참가해 어린이 납치, 유괴, 실종 사건이 경찰의 보다 신속하고 적
지금으로부터 46년 전 미국의 ‘경찰재단(The Police Foundation)’은 경찰관을 위한 고등교육에 관한 국가 자문위원회(The National Advisory Commission on Higher Education for Police Officers)를 구성해 50개주 고등교육 책임자, 형사사법 기획기관, 100개 이상의 경찰교육 관련 조직과 단체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해당 설문조사에서 결론은 ①경찰교육이라고 일반 인문학 교육과 달라서는 안되며 ②경찰교육은 직무와 관련돼야 하며 ③경찰교육이 현대사회의 복잡하고 변화하는 요구와 필요에 대응하는 경찰직업을 향상시키기 위한 도구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후 학계를 중심으로 경찰관에 대한 고등교육의 필요성이 강조되기 시작했다. 경찰의 과도한 무력 사용이나 권한의 오·남용으로 인한 경찰의 잔인성, 폭력성이 이들에 대한 고등교육의 필요성을 더욱 키웠다고 할 수 있다. 고등교육이 경찰의 자질 향상과 전문직업인으로서의 직업윤리를 강화시켜 줄 것이라 믿는 것이다. 실제로 학계에선 경찰관에게 고등교육이 필요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들기도 한다. 대학교육을 받은 경찰관일수록 무력 사용 개연성이 더 낮고, 결과적
최근 사형제도 존폐 여부가 사회적 쟁점으로 부각된 가운데, 폐지의 대안 또는 그 전제로 ‘가석방 없는 종신형(Life Sentence Without Parole)’과 유사 개념인 ‘삼진 아웃’이 논의되고 있다. 가석방 없는 종신형은 글자 그대로 수형자가 목숨을 다할 때까지 가석방이 허용되지 않는 종신형이다. 삼진 아웃도 결과적으로는 죽을 때까지 교도소에 수감돼있어야 한다는 점은 큰 차이가 없다. 다만 ‘Strike’를 세 개 받아야 한다는 전제조건 혹은 자격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삼진 아웃은 원래 미국에서는 ‘Three strikes and you are out’이라고 하는데, 이는 야구에서 따온 표현으로서 타자에게 3개의 스트라이크가 기록되면 타석에서 물러나야 하는 것과 같은 경우다. 보통 ‘삼진 아웃법’으로 불리지만, 원래는 상습범법(Habitual offender laws)로 시작했으며, 유죄가 확정된 범법자가 과거 두 번 이상의 강력범죄 경력이 있으면 강제로 종신형을 살게 하는 것이다. 당연히 이런 유형의 법의 목적은 강력범죄 경력이 있는 상습범죄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함으로써 더 이상 범행하지 못하도록 원천적으로 방지하자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무
최근 사형제도의 존폐 여부에 관한 논쟁이 사회적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1997년 이후 국내에서는 사형을 선고하지만 집행은 단 한 건도 하지 않아 국제사회로부터 실질적인 사형 폐지 국가로 분류되고 있다. 실질적인 사형 폐지 국가로 분류됨에도 왜 갑자기 이 사형제도 존폐가 다시 한 번 논쟁의 중심에 서게 됐을까. 1996년 처음으로 사형제도가 헌법에 위배되는지 여부를 묻는 헌법소원에서 합헌 7과 위헌 2로 합헌 판정이 내려졌다. 2010년의 두 번째 헌법재판에서는 합헌 5와 위헌 4로 그 격차가 줄어들었으나, 여전히 합헌으로 남았다. 2019년 세 번째로 사형제도의 위헌과 합헌 여부를 되묻게 됐고, 그 변론이 이제 시작된 상황이다. 어느 국가에서나 살인을 가장 엄중한 범죄로 규정하고 있는 것은 생명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죽음이라는 대체 불가능한 형벌로 다스렸던 것이다. 여기서 쟁점은 인간이기를 포기한 살인범에게도 우리와 동일한 생명권을 논할 수 있는가의 논쟁이다. 일각에서는 스스로 포기한 생명의 고귀함까지 국가가 보호해야 하는가 묻는다. 또 국가가 국민에게 살인은 결코 허용될 수 없는 범죄이기에 누구도 살인을 해서는 안 된다고
‘동반자살(Joint suicide)’이란 여러 사람이 동시에 같은 공간에서 같은 방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다. 1978년 11월 남아메리카 가이아나 요릭 타운에서 미국인 사이비 목사 짐 존스의 주도 하에 벌어진 ‘구주의 사도 인민사원 집단 자살 사건’이 전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동반자살 사건으로 꼽힌다. 국내에서는 1987년 8월 발생한 ‘오대양 집단 자살 사건’이 대표적인 동반자살 사건으로 분류된다. 국내에서 발생한 동반자살 사건은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첫째는 모르는 사람끼리 모여 자살을 택하는 경우다. 동호인 모임처럼 뜻을 같이 하는 사람이 온라인상에서 만나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하는 형태다. 두 번째는 가족 동반자살이다. 1960년 4·9 혁명 당시 이기붕 부통령 일가의 동반자살이 여기에 해당된다. 동반자살 사건이 발생하면 목숨을 잃은 모든 사람이 자살에 동의하고 자발적으로 참여했다고 단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책임소재를 두고 논란이 불거지곤 한다. 구주의 사도 인민사원 집단 자살 사건과 오대양 집단 자살 사건의 경우에도 주도자들이 추종자를 먼저 살해하고, 나중에 극단적 선택을 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가족 동반자살 사건의
‘데이트 폭력’이란 데이트 관계에서 발생하는 언어적·정서적·경제적·성적·신체적 폭력과 폭력의 위협을 뜻하는 대표적인 ‘관계의 범죄(Relational crimes)’다. 여기서 데이트 관계란 연애를 목적으로 현재 만나고 있거나 과거 만난 적이 있는 관계, 소개나 채팅 등을 통해서 연인 관계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고 만나는 관계, 아직은 사귀지는 않지만 호감을 가진 관계 등을 일컫는다. 데이트 폭력은 이성보다는 감성이 앞서는 관계의 특성상 폭력이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발생한다. 따라서 재범률도 높고, 폭력의 정도가 매우 심각한 수준인 경우가 많다. 반면 폭력의 빈도와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잘 신고되지 않고, 신고되더라도 연인 간의 사적인 문제, 남녀 간의 애정 문제 정도로 치부되기 쉽다. 이런 이유로 폭력이 반복되고 악화될 수 있는 개연성을 높인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여성단체의 조사에 따르면 설문에 응답한 여성의 61.6%가 최근 데이트 관계에서 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고, 이들 가운데 48.8%는 데이트 성폭력 피해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자신의 성폭력 피해 사실을 경찰에 신고한 적이 있다고 답한 피해자는 5.4%에 불과했다. 데이트
‘증오범죄(Hate Crime)’는 편견이나 오해로 인한 각종 차별이 그 동기가 된 살인·방화·폭력 등의 범죄를 말한다. 통상 증오범죄는 특정집단 구성원들이 종교적·인종적·문화적·성적 차별의 대상에게 가하는 범죄라는 점에서 ‘표적 범죄(Target Crime)’로 불리기도 한다. 증오범죄의 형태는 국가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미국에서는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증오범죄의 표적이 바뀌고 있다. 지금까지는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흑인을 표적으로 하는 인종차별적 증오범죄가 주를 이뤘다면, 최근에는 아시아계 인종이 표적으로 부각된 양상이다. 일본에서도 미국 못지않게 증오범죄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옴진리교 도쿄 지하철 사카린 테러 사건’ ‘교토 애니메이션 회사 방화 사건’ ‘가나가와현 장애인 시설 살상 사건’ ‘게이오센 지하철 방화’ 등이 일본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증오범죄 사례들이다. 일본의 증오범죄는 종교적 광신과 개인적 일탈 차원에서 발생하곤 한다. 옴진리교 테러 사건이 첫 번째 형태라면, 게이오센 지하철 방화는 두 번째에 해당한다. 개인적 증오범죄를 벌인 대다수는 “할 일은 다 했는데 되는 일은 없고, 그렇다고 할 수 있는 일도 없다”는 자기 포기 상태에
경찰을 주식시장에 빗댄다면, 아마도 가장 뜨거운 종목이 아닐까 한다. ▲검경 수사권 조정 ▲자치경찰제 도입 ▲국정원 대공수사권 이양 ▲국수본 설치 등도 모자라, 검수완박으로 수사 개시와 종결을 포함한 수사권마저 인수받으며 상종가를 쳤기 때문이다. 다만 13만명이 소속된 무장 집단인 경찰이 단순 초식공룡이 아니라는 점은 문제가 될 수 있다. 시민의 인신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조직 규모와 권한에 걸맞는 견제와 통제장치는 마련돼있지 않다. 이는 비단 한국 경찰만의 문제는 아니다. 일찍이 막스 베버는 국가의 ‘폭력에 대한 독점’을 경고하면서 적절한 책임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경찰 권한이 커질수록 권한의 남용에 대한 유혹이 커지기 마련이고, 경찰의 정치화로 인해 시민의 권리와 인권이 침해될 위험도 커지기 마련이다. 경찰에게는 절차적 정당성과 결과적 정당성이 강조되지만, 효율성도 경시돼서는 안 될 중요 가치다. 사법절차의 모형은 효율성을 강조하는 범죄 통제 모형과 효율성보다는 민주성과 절차적 정당성을 더 중시하는 적법절차의 모형이 있다. 범죄 통제 모형은 흔히 대량생산을 위한 컨베이어벨트, 적법절차 모형은 장애물 경주에 비유되곤 한
전직 대통령의 사저 주변에서 발생한 집회 및 시위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 지금껏 집회 및 시위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화염병·죽창·물대포·차벽 등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집회 및 시위와 관련된 쟁점은 폭력성이었다. 그러나 민주화에 힘입어 최근에는 집회 및 시위를 바라보는 시각이 많이 달라졌다. 최근에는 집회 및 시위의 자유와 공공의 이익 사이에서 우선순위를 어디에 둬야 하느냐에 대한 논쟁이 부각되는 양상이다. 집회 및 시위에 앞서 그 이상의 책임을 우선해야 한다는 주장과 소수자의 유일하다시피 한 자기표현의 권리를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립하는 것이다. 자유 민주사회에서 시민은 다양한 권리를 헌법으로 보호받고 있다. 집회 및 시위의 자유도 헌법으로 보호받는 권리며, 이는 자유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수단이자 목표가 되는 기본 가치다. 미국에서는 수정헌법 1조에 명시해 어느 권리보다 최우선의 가치임을 공표했고, 우리 헌법에서도 당연히 보장하고 있다. 이처럼 집회 및 시위의 자유를 중시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오늘날 계층·이념·인종 등 수많은 갈등요소가 부각되는 상황에서 다양성과 관용은 중요한 가치다. 영향력을 가진 집단이나 계층에 비해 자신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1960년대 미국사회는 반전 데모와 마약으로 점철됐다. 이 무렵 일본의 한 문화인류학자는 미국이 인종차별, HIV, 마약 등으로 망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리처드 닉슨은 마약을 미국의 공공의 적으로 규정하고 ‘마약과의 전쟁(War on Drugs)’을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범죄와 마약의 연계성은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할 수밖에 없었던 결정적 이유였다. 마약은 제조·판매·경작·소지·복용 등 관련된 거의 모든 행위가 범죄다. 몇몇 국가는 마약의 합법화(Legalization), 비범죄화(Decriminalization)를 추진 중이지만, 아직까지 마약은 대다수 국가에서 사회적 폐단으로 인식된다. 마약과의 전쟁은 공급을 어떻게 차단하느냐가 핵심이다. 지금껏 마약은 수요에 비해 공급량이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에 마약의 제조·유통에 관여하면 엄청난 돈을 쓸어 담을 수 있었다. 이런 이유로 마약을 둘러싼 조직범죄가 기승을 부렸고, 범죄조직 간 이권다툼으로 유혈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마약과의 전쟁은 실패로 귀결됐다. 마약 복용자는 전혀 줄지 않았고, 마약에 중독된 사람이 마약 자금마련을 위해
최근 경찰에 ‘신변보호(범죄 피해자 안전조치)’를 받던 여성들이 목숨을 잃는 사건이 연달아 발생했다. 피해 여성들은 멀쩡히 작동하는 스마트워치를 착용하고 있었으며, 스마트워치로 신고를 받은 경찰이 3분 만에 현장에 도착했음에도 사고를 피할 수 없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일단 경찰·검찰·법원 등 사법당국이 신변보호를 요청하게 만드는 스토킹이나 이별범죄 등 소위 ‘관계의 범죄(Relational crimes)’에 소극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관계의 범죄를 비롯한 대부분의 대인범죄(Personal crimes)는 잠재적 가해자와 잠재적 피해자가 같은 시간과 같은 공간에 같이 있어야 발생한다. 잠재적 가해자가 잠재적 피해자와 같은 시간과 공간이 있지 못하게 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범죄 예방책인 셈이다. 안타깝게도 현재 사법당국은 이 간단한 원리를 가장 소극적인 방법으로 대응하고 있다. 피해 여성으로 하여금 가해자를 피하라는 것이다. 그나마 예방책으로 내세운 게 가해자가 가까이 접근할 때 스마트워치로 신고하는 방식이다. 문제는 긴급한 상황에서 피해자가 미처 스마트워치를 사용하지 못하거나, 신속히 신고하고 경찰도 곧바로 현장에 출동해도 사고를 막기 힘든 경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