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은 전통적으로 범죄를 통제하며, 그만한 책임과 역할이 있다고 여겨져왔다. 그리고 거의 모든 경찰이 안전의 중심에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현실은 더 안전해지기보다 범죄로부터 더 위험하고 두려운 ‘잔인한 세계 증후군(Mean World Syndrome)’에 노출돼있다. 이 같은 현실의 이면에는 범죄예방과 관련된 경찰의 역할에 관한 오해와 과신이 있다.
안전과 보안에 관한 전통적 접근은 ‘범죄와의 전쟁(War on crime)’으로 대표되는 ‘범죄에 대한 강경 대응(Tough on crime)’이 핵심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이 같은 접근법이 사회 안전에 끼친 영향은 미미한 수준이었다.
최선의 범죄대책은 범죄가 일어나지 않도록 사전에 예방하는 것이지만, 그간 경찰은 범죄 발생 이후 대응법에 집중했던 게 현실이다.
질병을 치료하려면 비용, 고통, 시간 등을 투입해야 한다. 게다가 치료하더라도 질병에 걸리기 전보다 몸 상태가 좋아진다고 확신하기도 어렵다.
범죄 역시 마찬가지다. 질병을 예방하려면 병의 원인을 진단하고 진단에 따라 사전조치를 해야 하듯이, 범죄도 예방을 위해서는 범죄를 유발하거나 초래하는 저변의 근본적 원인을 찾아야 한다.
안타깝게도 근본적인 범죄 원인의 해소와 경찰은 그 접점이 거의 없다. 빈곤, 정신질환, 사회구조 등이 범죄의 원인이라면 과연 경찰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당연히 범죄와 안전에 대한 경찰-중심(police-centric) 접근법에 수정이 필요해진 것이다.
범죄예방을 단순한 경찰 활동의 범주를 넘어 관련된 민관기관의 공조와 표적화된 대응을 용이하게 하는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 바로 다학제적(Multi-disciplinary) 지역사회-중심(community-centered)의 대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전문적이고 매우 숙련된 경찰 활동과 서비스를 제공함과 동시에 범죄의 미시적, 거시적 원인이라고 지목되고 있는 개인, 가정, 지역사회, 그리고 사회 수준서 범죄 저변의 근본적 원인이 되는 위험 요소들에 맞설 수 있는 개입을 권장한다.
이를 위해 범죄와 안전에 대한 상호-교차적(inter-sectoral), 다학제적 대응을 주문한다.
우선 경찰이 비군대화(demilitarized), 지역사회-중심의 책임 있고, 인권을 중시하는 경찰 활동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견지에서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이의 한 방편으로 ‘무관용 경찰 활동(Zero tolerance policing)’을 강조하는 전통적 접근은 인권을 경시하면서도 범죄를 억제하지 못하고, 범죄를 예방하지도 못하는 데다 더 중요하게는 시민을 더 안전하게 느끼게 해주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경찰 활동에 대한 지역사회-중심 접근(community-centered approach)의 중요성이 다시 한번 강조되고 있다. 지역사회와 시민들에 대한 더 다양하고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지역사회와 시민이 경찰 활동과 지역사회에 더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지지하고 지원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메커니즘(mechanism)을 구축하는 것이다.
미래 범죄와 폭력사건의 발생을 효과적으로 억제하기 위해 범죄 피해자가 범죄 사건을 경찰에 더 빨리, 더 쉽게 신고할 수 있도록 권장하고, 중요한 법 집행 서비스에 대한 시민의 접근을 방해하는 장애물은 반드시 제거돼야 한다.
또 능동적인 시민 참여를 구축하는 것이 지역사회서의 장기적인 지속 가능한 경찰 서비스의 전달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적인 부분이라는 점도 잊지 않아야 한다.
범죄 문제는 지역사회의 문제고, 지역사회와 함께 해결돼야 한다. 특히 범죄예방은 그 근본적인 저변의 원인과 범죄를 유발하거나 조장하는 위험요인들의 해소가 관건이라면, 이는 경찰의 책임도 아니고 경찰이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당연히 지역사회 속에서 지역사회와 함께 풀어야 할 숙제다. 한 방편으로 최근 폐지가 논의되고 있는 ‘치안센터’를 지역사회, 경찰, 관계기관과 사람이 함께 범죄를 예방하는 전진기지로 활용하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이윤호는?]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명예교수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