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24.11.23 03:01
2주 전 수요일 아침의 일이다. 지난 주 황교안 대표의 단식과 관련해 게재된 칼럼 ‘단식과 꼼수’를 송고할 지에 대해 잠시 망설였다. 황 대표의 단식이 그 글이 기사화되는 순간에도 이어질지 확신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와 관련해 전날 초안을 잡고 지인들과 가볍게 대화를 나눈 바 있다. 필자의 원고가 기사화되는 순간까지 황 대표가 단속을 지속하겠느냐에 대한 내용이었다. 이에 대해 지인들은 이구동성으로 힘들다는 의견을 내놨다. 그 중 가장 큰 이유는 황 대표의 태생적 한계, 즉 정치권에 들기 전까지 양지서만 생활해온 행태를 들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고생을 경험해보지 못했을 그가 단식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무모하게 덤벼들었다는 게 그 요지였다. 다음은 진실인지는 모르지만, 그가 병역을 면제 받은, 혹은 기피한 담마진에 대한 우려였다. 담마진은 일종에 두드러기로 날씨가 차가우면 증세가 심화되는데 그를 견뎌낼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등장한 게 명분이었다. 그는 죽음을 불사한다는 전제하에 단식을 시작했는데 그가 내건 요구 조건은 단지 정치꾼들의 정쟁거리에 불과했다. 필자도 같은 견해를 밝혔었지만, 그에 대한 지인들의 의견도 동일했다. 이 대목은
1983년 5월18일에 일이다. 전두환의 신군부 정권에 의해 정치 규제에 묶인 김영삼 전 대통령(이하 김영삼)이 5·18 발생 3주년을 맞이해 상도동 자택서 민주화 5개항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생명을 담보로 단식투쟁에 돌입한다. 김영삼은 ‘광주사태와 민주투쟁서 희생된 사람들의 고통에 동참하고 전두환 독재정권에 저항하기 위해 이 투쟁을 전개한다’는 성명과 구속인사 전원 석방, 전면해금, 해직 교수 및 근로자와 제적 학생의 복직·복교·복권, 언론 자유, 그리고 개헌 및 국가보위입법 회의 제정 법률 개폐의 5개항을 요구한다. 가택연금 상태였던 그의 단식투쟁이 우여곡절 끝에 세상에 알려지자 그의 지지자들이 동조 단식에 들어갔고, 학생들은 전국적으로 시위를 이어갔다. 그러자 전두환은 당시 민정당 사무총장인 권익현을 보내 김영삼에게 해외로 출국을 요구한다. 김영삼은 “나를 시체로 만들어 외국으로 내보내라”며 신군부의 요구를 거절하고 단식을 지속한다. 결국 신군부는 김영삼의 가택연금을 해제하지만, 그의 단식은 지속되고 급기야 생명마저 위태로운 지경에 처하게 된다. 이에 직면하자 김영삼을 살리기 위해 각계서 단식을 중단하라는 간곡한 권유가 이어지고 급기야 단식 23일
필자가 정치판에 머물던 당시에 일이다. 김종필 전 총리께서 술자리를 마련했는데, 술이 여러 순배 돌고 대화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을 즈음에 김 전 총리가 운을 뗐다. “보수는 보수만 하는 게 아니라 보수도 해야 한다”고.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마신 술의 영향 탓도 있었지만 의아해했다. 그를 감지한 김 전 총리가 부연설명을 곁들였다. 결국 김 전 총리의 이야기는 보수는 보수(保守)는 물론 보수(補修)를 병행해야 참다운 보수라는 의미였다. 보수(保守)는 보전해 지키는 일을, 보수(補修)는 낡은 것을 수선해 새롭게 고치는 일을 의미하는 바, 진정한 의미의 보수는 지켜야 할 부분은 반드시 지키되 잘못된 일은 개혁 세력보다 더욱 강하게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전 총리의 변에 이끌려서인지 몰라도 필자의 경우도 그의 이론과 맥을 함께하고 있다. 아울러 필자가 바라보는 보수는 방법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어떤 일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욕심을 배제하고 정도로 임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에 반해 소위 진보는 목적 달성을 최우선 과제로 삼는다. 그런 이유로 목적을 이루기 위한 과정에 수단과 방법은 개의치 않는다. 그러다 보니 보수는 느리고 고리타분하다는 감을 주고 진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우스갯소리를 먼저 하고 넘어가자. 요즘 지하철을 이용하기 위해 지하철역으로 향하다 보면 문재인 대통령 하야 서명운동에 동참을 요구하는 일단의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만나게 된다. 하루는 그 중 한 사람이 필자에게 다가와 서명을 요구했다. 필자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그 이유를 묻자 마치 자유한국당의 황교안 대표라도 된 듯 거침없이 기염을 토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말미에 당당하게 재차 서명을 요구했다. 필자가 가볍게 미소를 보이며 응답했다. “당신이 설명한 그런 이유 때문에 서명할 수 없다”고. 상대방은 망치로 뒤통수 맞은 듯 멍한 표정을 지었다.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듯 말이다. 그 사람에게 필자는 시사칼럼을 연재하는 소설가인데 끊임없이 글거리를 제공해주는, 내게는 고마운 대통령인데 내가 어떻게 하야 운동에 서명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자 그 사람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물러섰다. 이에 부연해 사족을 달아보자. 어느 정도 인간사에 욕심을 버려가고 있다고 자부하는 필자에게는 요즈음 작은 고민이 일어나고는 한다. 필자가 원하는 공명정대한 세상이 이뤄진다면 과연 그 사회는 어떤 의미를 지닐까하는 의문 때문이다. 만일 그런 사회가
필자가 대학생으로서 한창 감수성을 불태우던 시절, 엄밀하게 이야기해서 1981년 1월에 있었던 일이다. 1979년 발생했던 10‧26사건을 계기로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씨를 비롯한 신군부 세력이 정해진 수순에 따라 창당한다. 그리고 민주주의 정착과 정의사회 구현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당명을 민주정의당으로 정한다. 민주는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이 나라 제 정당들의 단골 단어이기 때문에 그러려니 했는데 정의는 그야말로 어울리지 않는다 생각했었다.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 세력의 정의롭지 못한 권력 쟁취 과정에 한때 몸으로 항거했던 필자로서는 그들의 뻔뻔함에 한동안 치를 떨었었다. 그리고는 그들이 왜 정의를 부르짖었는지 쉽사리 결론내리기에 이른다. 이 나라에서 정의는 물 건너갔다고, 그래서 그를 위장하기 위해 당명을 그리 정했다고. 당시 필자의 순간적인 생각이 어떻게 진행됐는지는 독자들의 판단에 맡기고 현대판 정의당에 대해 접근해보자. 정의당은 2012년 12월 통합진보당을 탈당한 세력이 주축이 돼 창당하며 ‘함께 행복한 정의로운 복지국가’를 지향한다고 했다. 이 대목서 민주정의당의 ‘정의사회 구현’과 정의당의 ‘정의로운 복지국가 건설’은 무슨 차이가 있을까
먼저 내 글을 읽어주는 고마운 독자들을 위해 흥미로운 사실을 전해주고 넘어가자. 주로 자연과 벗 삼아 지내는 필자로서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독자들이 미처 느끼지 못하고 넘어가는 자연계의 생태 변화에 대해 알려주고픈 마음에서다. 올 가을 필자는 단풍과 관련해 두 가지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먼저 소나무와 잣나무 등 상록수들도 상당 부분 단풍이 든다는 사실이다. 이와 관련 지난 가을에도 목격했지만, 당시는 소나무 잎 전체가 적갈색으로 변하면서 말라 죽는 소나무 재선충 병의 영향을 의심했는데 올 가을 확실하게 인지하게 된다. 독자분들도 잠시 주변을 주의 깊게 살피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차라리 황홀하다고해도 좋을 정도로 곱게 물들어가는 상록수의 단풍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는 단풍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일본 잎갈나무의 노랗게 물든 단풍을 연상시킬 정도다. 다음은 단풍과 감에 대해서다. 지금까지는 단풍이 모두 지고 나면 발갛게 익은 감을 바라보며 그 아쉬움을 달래고는 했는데, 올 가을은 단풍이 완연해지기도 전에 감이 발갛게 익어가는 현상을 목격하게 됐다. 이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실로 난감하다. 아내에게 그 원인을 묻자 기후 변화 때문에 그런 게 아닌가 하고 반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속담이 있다. 이 속담은 누구나 알고 있다고 판단해 그 의미는 생략하겠다. 그런데 왜 이 속담을 인용했을까. 어떤 사안이든 정치권이 개입하면 같은 상황이 그대로 발생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지금 검찰 개혁이라는 최대 현안에 대해 정치권이 하이에나처럼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검찰 개혁의 본질은 외면하고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라는 희한한 기구 설치 문제로 이전투구를 벌이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필자는 지난 5월에 ‘공수처, 옥상옥이 아니라 위인설관이다’라는 제하로 여러 이유를 들어 공수처가 신설된다면 결국 권력의 시녀로 전락할 수밖에 없고 진정한 검찰개혁의 의미는 지니지 못한다고 했었다. 그렇다면 검찰 개혁의 본질은 무엇일까. 이를 살피기 위해 그동안 인용했던 두 개의 법 조항을 다시 인용한다. 먼저 검찰청법 제4조(검사의 직무) 중 1항과 2항이다. 1항은 범죄수사, 공소의 제기 및 그 유지에 필요한 사항, 그리고 2항은 범죄수사에 관한 사법경찰관리 지휘·감독에 대해 규정하고 있다. 다음은 형사소송법 제196조 1항으로 ‘수사관, 경무관, 총경
2011년에 일이다. 정치판과 완전히 거리를 두고 집필에 오로지 매진하던 필자에게 기초단체장이었던 지인의 아내가 방문했다. 그리고는 대뜸 1심 법원으로부터 유죄를 선고받고 영어의 몸이 된 자신의 남편을 도와 달라고 요청해왔다. 법과는 담을 쌓고 지내는 필자에게 도움이라니, 그야말로 아닌 밤중에 홍두깨 식이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이유를 확실하게 인지하고 글로 지역 언론과 법원을 상대로 검찰의 전형적인 공권력 남용에 대해 가열하게 몰아세웠다. 필자가 무슨 근거로 그랬는지 동 사건의 검찰 측 기소 내용을 살펴본다. ‘선거 기간 중에 당선 가능성이 가장 유력한 무소속 후보가 공개된 장소인 레스토랑서 중재인의 소개로 생면부지의 기획부동산업자 두 사람을 만나 거액을 받았다.’ 아울러 증거는 돈을 건넸다는 부동산업자의 진술이 전부였다. 상기 요약 내용, 즉 검찰 측 기소 내용이 일반인들에게는 어떻게 비쳐질지 모르나 당시 정치판 상황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던 사람, 또 선거와 관련해 미미한 지식이라도 지니고 있던 사람이라면 검찰의 ‘오만의 극치’에 치를 떨었을 게다. 왜냐, 검찰 측 기소 내용은 현실서 발생할 수 없는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어처구니없는 대목을 짚어보고 넘어가자. 대검창청 홈페이지를 접속하면 좌측 상단에 ‘검찰’, 그리고 그 아래 부분에 ‘prosecution service’라고 기록돼있다. 아마도 검찰(檢察)을 영어로 그런 식으로 표기한 모양인데 절로 실소가 흘러나온다. 왜 그런지 구분해 살펴보자. 먼저 prosecution에 대해서다. prosecution은 우리말로 기소, 즉 검사가 일정한 형사사건에 대해 법원의 심판을 청구하는 소송행위만을 지칭한다. 그런데 대한민국 검찰의 실상은 그럴까. 검찰청법 제4조를 살피면 검사는 기소 외에도 범죄수사 및 그와 관련해 사법경찰까지 지휘·감독할 수 있도록 명시돼있다. 이런 경우라면 수사의 의미를 지닌 단어 investigation이 추가돼야 한다. 다음은 service에 대해서다. service는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행위, 즉 봉사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 검찰의 실상이 그럴까. 역시 천만에다. 검찰은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법 위에 군림하는 단체로 각인된 지 오래다. 이런 경우라면 검찰에게 service란 단어는 어불성설이다. 당연하게도 ‘불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조국 법무부장관 수사와 관련한 검찰의 행태에 대해 “검찰이 아무런 간섭을 받지 않고 전 검찰력을 기울이다시피 엄정하게 수사하고 있는데도 검찰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현실을 검찰은 성찰해 주시기 바란다”며 “지금의 검찰은 온 국민이 염원하는 수사권 독립과 검찰 개혁이라는 역사적 소명을 함께 가지고 있으며, 그 개혁의 주체임을 명심해 줄 것을 특별히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그러자 대검찰청은 즉각 “검찰은 헌법정신에 입각해 인권을 존중하는 바탕서 법 절차에 따라 엄정히 수사하고 국민이 원하는 개혁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이와 맞물려 조 장관이 압수수색 담당 검사와 통화한 일에 대해서는 “본질은 수사압력 사건”이라고 못을 박았다. 문 대통령의 당부에 따른 검찰의 대응에 대해 문학인의 입장을 떠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실로 난감하다. 검찰이 내놓은 반응을 상세하게 살피면 속된 표현으로 ‘개소리 말고 너나 잘해라’라는 식으로 비쳐지기 때문이다. 왜 그런지 검찰의 발표 내용을 세밀히 살펴보자.
조선조 3대 임금인 태종 조에 일이다. 태종 이방원이 신문고를 설치하며 다음과 같은 교서를 내린다. 『대체로 억울함을 펴지 못하여 호소하고자 하는 사람으로, 서울 안에서는 주무 관청에, 외방에서는 수령·감사에게 글을 올리되 따져서 다스리지 아니하면 사헌부에 올리고, 사헌부에서도 따져 다스리지 아니한다면 바로 와서 북을 치라. 원통하고 억울함이 명확하게 밝혀질 것이다.』 그리고 말미에 덧붙인다. 『무고(誣告)한 자가 있다면 반좌(反坐)의 율로 죄줄 것이다.』 반좌의 율, 즉 반좌법은 무고 또는 위증으로 타인을 죄에 빠지게 한 자에게 ‘눈에는 눈, 이에는 이’식의 함무라비법전처럼 그 죄에 빠진 자와 동일한 형에 처하도록 규정한 동해보복법(同害報復法, 동일한 상해나 배상의 원칙을 적용한 처벌법)이다. 여하튼 이방원은 신문고를 이용해 무고를 범한 사람에게 무고죄가 아닌 반좌의 율로 죄를 주겠다고 했다. 그 당시에도 무고죄에 대한 법이 있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일까. 상기 교서를 상세하게 살피면 답이 나온다. 이방원은 신문고를 친 사람의 억울함을 해결하기 위해 주무관청 그리고 사헌부 등 국가기관을 상대로 직접 조사를 해야 했다. 이는
한가위를 맞이해 시사 문제는 잠시 접고 조금은 색다른 글로 이야기를 풀어보자. 제목에 언급한 식품의 유통기한에 대해서다. 유통기한은 엄밀하게 언급하면 유통업체가 식품을 소비자에게 판매해도 되는 최종시한을 말한다. 아울러 유통기한을 넘긴 식품은 부패와 변질 등에 관계없이 판매할 수 없도록 돼있다. 이를 위반할 경우 제조사는 식품위생법에 따라 최대 3개월의 영업정지, 혹은 3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얼핏 살피면 제대로 말이 되는 듯 싶다. 그러나 그 이면을 살피면 한마디로 웃긴다는 사실, 필자가 누누이 이야기한 우리 법과 제도의 모순을 발견하게 된다. 유통기한과 소비는 전혀 별개의 문제라는 이야기다. 그 실례를 들어보자. 근 두 달여 전 필자는 우연한 기회에 시중에 유통되는 파김치의 유통기한이 20일도 안 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됐다. 참으로 의외였다. 짧아도 너무 짧다는 느낌이 강하게 밀려왔다. 그런 느낌이 일어난 데에는 필자의 식습관 때문일 수도 있다. 김치, 특히 쉰 김치를 좋아하는 필자는 새로 만든 김치에는 손도 대지 않는다. 냉장고에 여러 날 보관한 이후 김치가 완전히 숙성됐다 싶으면 먹기 시작한다. 그런 필자의 습성 때문에 아내는 좋아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역사 속으로 들어가 보자. 임진란이 발생하기 전 상황이다. 『임진란이 발생하기 두 해 전인 1590년에 선조는 통신사 황윤길(黃允吉), 부사 김성일(金誠一), 서장관(書狀官) 허성(許筬)을 일본으로 보낸다.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려는 징후가 포착되자 그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이듬해 초 일본을 방문하고 돌아온 사절단은 선조에게 보고를 올리는데 황윤길과 김성일의 내용이 달랐다. 황윤길은 전쟁 도발 징후가 뚜렷하니 전쟁 준비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한 데 반해, 부사인 김성일은 전쟁의 징후가 전혀 없다는 거짓 보고를 올린다. 참으로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분명 전쟁 징후가 뚜렷한 사실을 눈으로 봤음에도 불구하고 김성일은 거짓 보고를 올리는데 그 이유는 바로 당파 싸움에 기인한다. 동인에 속했던 김성일은 서인에 속한 황윤길과 같은 의견을 내놓을 수 없었던 데에 따른다. 결국 선조는 서장관으로 함께 일본을 다녀온 허성에게 일본 상황에 대해 보고를 올리라는 지시를 내린다. 당시 <홍길동전>의 저자인 허균의 큰형 허성은 동인에 속했지만, 당파를 초월해 일본의 전쟁 도발 주장 징후에 대해 강하게 보고를 올린다. 그러나 무능하기 짝이
1980년 5월에 발생한 일이다. 대한올림픽위원회(KOC)는 긴급총회를 개최해 그해 7월 소련의 모스크바서 개최되는 제22회 하계올림픽에 선수단을 파견하지 않기로 최종 결정을 내린다. 동 결정은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일에 대해 미국이 주도한 올림픽 참가 보이콧 운동에 동조한 결과다. 결국 모스크바올림픽은 정치적인 문제로 한국을 포함해 미국, 캐나다, 일본 등 서방 진영 국가들이 대거 불참한다. 그리고 1988년 초의 일이다. 소련올림픽위원회는 그해 서울서 개최되는 올림픽에 자국 선수단을 파견하기로 결정한다. 소련올림픽위원회는 올림픽 정신과 국제올림픽 운동의 결속 강화, 또 세계평화 증진이라는 명분을 내걸었다. 당시 분위기는 소련이 서울올림픽에 참가하지 않으리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당시 모 정당 중앙당 당직자로 근무하던 필자 역시 부정적으로 여겼었다. 소련이 공산주의 국가기도 하지만, 우리나라가 1980년에 개최된 모스크바올림픽에 불참한 결과에 따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련올림픽위원회는 정치적 요소를 배제하고 대승적인 결단을 내렸고 788명의 대규모 선수단을 참가시킨다. 소련의 결정은 많은 국가에 영향을 미쳤고 그로 인해 서울올림픽은 올림픽 사상 최대
조선 후기 문신인 한장석(韓章錫, 1832~1894)의 ‘충무공 이순신 치제문’ 중 일부를 인용해본다. 『誓海盟山(서해맹산) 바다와 산에 맹세하니 壁壘變彩(벽루변채) 성벽과 보루 광채 새롭게 변하고 以少敵衆(이소적중) 적은 수로 많은 왜군 대적해 每戰必凱(매전필개) 싸움마다 반드시 승리했네』 임진란 당시 파죽지세로 조선 영토를 유린하던 왜군이 해상서 이순신 장군이 지휘하는 수군에게 발목을 잡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이에 직면한 왜가 해전에의 패배를 만회하기 위해 병력을 증강해 맞서자 이순신 장군은 소수의 병력과 함선으로 적을 한산도로 유인해 대파한다. 상기 작품에 등장하는 誓海盟山(서해맹산)은 이순신 장군이 한산도에 머물 당시 지은 작품 중에 등장하는 誓海魚龍動, 盟山草木知(서해어룡동, 맹산초목지 : 바다에 서약하니 어룡이 꿈틀대고, 산에 맹세하니 초목이 알아주네)를 응용한 표현이다. 이순신 장군은 상기 시구로 자신의 마음을 다잡고 상기 작품 내용대로 해전서 연승을 거두게 된다. 즉 상기 시구는 중요한 일전을 앞둔 이순신 장군의 일련의 출사의 변으로 ‘죽음을 불사하고 조선의 산하를 지켜내겠다’는 의미다. 상기
법을 멀리해야 하는 필자는 법이 없어도 한 점 부끄러운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하는 문학가로서 가끔 헌법을 위시해 여러 모순을 포함하고 있는 법률들에 대해 이야기하고는 한다. 법이 정도를 벗어난 이유는 법을 제정 혹은 개정하는 국회의원들이 염불보다는 잿밥, 즉 공익에 앞서 사리사욕에 혈안이 되어 그렇기 때문이라고. 그리고 첨언한다. 입법 및 법의 개정 과정서 주요 역할을 담당하는 국회 법사위원들 상당수가 법조계 출신이기 때문이라고. 결국 이 나라 법은 국회와 법조계가 공고히 결탁한 추악한 산물이라고 농담조로 이야기하고는 한다. 그런데 필자의 이야기를 듣는 상대방은 연신 고개를 끄덕인다. 필자의 말에 깊이 공감한다는 듯 말이다. 그들의 반응을 바라보며 가장 공정하고 엄격해야 할 법이 천덕꾸러기로 전락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까지 일어난다. 이를 염두에 두고 지난주 <일요시사>에 게재했던 내용을 다시 인용해본다. 형사소송법 제196조(사법경찰관리) 중 1항이다. ‘수사관, 경무관, 총경, 경정, 경감, 경위는 사법경찰관으로서 모든 수사에 관해 검사의 지휘를 받는다.’ 필자가 이를 다시 인용하는 이유는 아무리 되짚어 생각해봐도 도저히
조선 제16대 임금인 인조시절의 일이다. 인조반정의 주역인 이괄이 일으킨 반란으로 한양을 버리고 공주로 피신했던 인조가 다시 한양으로 돌아와 당시 좌승지였던 포저(浦渚) 조익(趙翼, 1579∼1655)에게 조정이 화합하는 방안에 대해 묻는다. 그러자 후일 김육과 함께 대동법 시행을 주도해 실학의 선구자 반열에 들어서는 조익이 “이른바 ‘화합’이란 구차히 비위를 맞추는 것이 아닙니다. 조정의 처사가 모두 공정(公正)서 나오면 화합을 구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저절로 화합합니다”라고 답변했다. 공정은 ‘공명정대하다’의 줄임말로 하는 일이나 태도가 사사로움이나 그릇됨 없이 정당하고 떳떳함을 의미하는데 조정의 처사가 공정하면 저절로 화합한다는 조익의 답은 아무리 곱씹어봐도 진리다. 이제 이를 염두에 두고 최근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이 취임사서 행한 발언을 살펴보자. 그는 “권력기관의 정치·선거 개입, 불법자금 수수, 시장 교란 반칙행위, 우월적 지위의 남용 등 정치·경제 분야의 공정한 경쟁 질서를 무너뜨리는 범죄에 대해서는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하게 대응해야 할
<조선왕조실록> 영조 3년(1727) 7월1일 기록이다. 『도승지 유복명(柳復明)·우부승지(右副承旨) 임주국(林柱國)의 벼슬을 파면하였다. 하교(下敎)하기를, “자신이 후원(喉院)에 있으면서 오늘 삼사(三司)의 청대(請對, 급한 일로 임금께 뵙기를 청함)는 매우 간사한데도 태연히 입계(入啓, 임금에게 상주하는 글월을 올리거나 또는 직접 아뢰는 일)하였으니 매우 무엄하다. 사진(仕進, 규정 시간에 출근함)한 승지를 모두 파직하라” 하였다.』 후원은 지금의 청와대 비서실인 승정원으로 도승지는 비서실장 격이고, 우부승지는 현재 민정수석의 역할을 수행하는 직책이다. 삼사는 조선시대 언론을 담당한 기관인 사헌부·사간원·홍문관을 지칭한다. 임금이 도승지와 우부승지를 동시에 파면한 경우로 조선 역사를 살피면 상당히 이례적이다. 그런데 더욱 흥미로운 대목은 두 사람이 파면된 이유다. 이와 관련해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간략히 설명을 덧붙여보자. 영조 전의 임금인 경종 시절 신임사화가 발생한다. 신임사화는 경종의 왕통문제와 관련해 소론이 노론을 숙청한 사건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피면 노론이 경종의
필자가 대학 졸업 후 정치판에 들어왔을 때 정치를 하는 사람은 국민에게 밝은 미래를 제시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차원서 정치는 봉사의 개념이 아니라 이끌어가는, 즉 사회 구성원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영역으로 보였다. 그런데 지금은 정치를 바라보는 시각이 많이 달라졌다. 이 시대의 정치는 각기 이해관계가 다른 사회 구성원들이 조화를 이뤄 함께 보듬으며 세상을 살아가도록 유도하는 일련의 종합예술로 보여진다. 물론 두 관점의 목적은 동일하다. 그러나 그 과정에선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바로 지도와 조화의 측면이다. 지난 시절 지도가 정치의 핵심이었다면, 오늘날은 조화에 그 주안점을 둬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제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 황교안 대표에게 시선을 돌려보자. 황 대표가 지금까지 보인 행보를 살피면 오래전 구시대의 유물로 용도 폐기된, 이른바 ‘각 세우기식 정치’에 올인하여 그 반사이득을 챙기려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존재하지도 않는 진보에 각을 세워 역시 유명무실한 보수의 지도자로 부상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바라보면 안타까울 정도다. 그가 생각하고 있는 정치의 실체가 무엇인지, 혹은 사상이나 철학을 지니고 있는지 의심
필자의 사생활을 잠시 언급하고 본격적인 이야기를 풀어보자. 지금으로부터 2년6개월여 전의 일이다. 나이가 60줄에 가까워지자 묘한 생각이 일어났다. 나이를 더 먹기 전에 육체노동에 종사해봐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 순간까지 필자의 삶은 조금은 복잡했다. 대학 졸업 후 정치판서 15년, 그리고 이후 15년은 소설 집필에 오로지 매진했다. 그런 삶을 이어온 필자에게 육체노동에 종사하고자 하는 욕구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을지도 모른다. 여하튼 머리가 아닌 몸으로 세상을 접해보고자 경기도 포천시에 소재한 한 식품제조사에 문을 두드리고, 그야말로 기막히게 운 좋게도 필자 나이에 정규직 사원으로 취직하게 된다. 그곳에서 외포장팀에 배치돼 내포장팀과 연결된 금속검출기를 통과한 완제품을 냉장창고에 보관하는 일에 종사하며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제 제목에 등장하는 비비안에 대해 언급해야겠다. 비비안은 필자가 근무하는 외포장팀과 유리벽으로 분리된 장소인 내포장팀서 실링을 담당하던 필리핀 출신 여인이다. 참고로 실링(sealing)은 비닐에 담겨 있는 식품을 진공 상태로 긴밀히 접착시키는 일을 지칭한다. 그녀가 유독 필자의 시선을 사로잡은 이유가 있다. 실링을 담당했던 많은 여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