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 3대 임금인 태종 조에 일이다. 태종 이방원이 신문고를 설치하며 다음과 같은 교서를 내린다.
『대체로 억울함을 펴지 못하여 호소하고자 하는 사람으로, 서울 안에서는 주무 관청에, 외방에서는 수령·감사에게 글을 올리되 따져서 다스리지 아니하면 사헌부에 올리고, 사헌부에서도 따져 다스리지 아니한다면 바로 와서 북을 치라. 원통하고 억울함이 명확하게 밝혀질 것이다.』
그리고 말미에 덧붙인다.
『무고(誣告)한 자가 있다면 반좌(反坐)의 율로 죄줄 것이다.』
반좌의 율, 즉 반좌법은 무고 또는 위증으로 타인을 죄에 빠지게 한 자에게 ‘눈에는 눈, 이에는 이’식의 함무라비법전처럼 그 죄에 빠진 자와 동일한 형에 처하도록 규정한 동해보복법(同害報復法, 동일한 상해나 배상의 원칙을 적용한 처벌법)이다.
여하튼 이방원은 신문고를 이용해 무고를 범한 사람에게 무고죄가 아닌 반좌의 율로 죄를 주겠다고 했다. 그 당시에도 무고죄에 대한 법이 있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일까. 상기 교서를 상세하게 살피면 답이 나온다.
이방원은 신문고를 친 사람의 억울함을 해결하기 위해 주무관청 그리고 사헌부 등 국가기관을 상대로 직접 조사를 해야 했다. 이는 결국 한 개인이 아닌 국가기관을 상대로 무고한 경우로 변질되고, 따라서 이방원은 무고법이 아닌 반좌법을 적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제 최근에 발생한 일로 시선을 돌려보자. 정치자금법 위반과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경기도 지역의 모 자치단체장이 1심 법원으로부터 무죄를 선고받았다.
법원은 “대체로 제보자의 진술이 공소사실을 뒷받침하고 있지만, 이는 일관성이 없거나 사적인 대화 내용을 녹음한 것일 뿐 아니라 남의 이야기를 듣거나 추측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제보자의 진술을 그대로 믿을 수 없어 유죄의 증거로 인정하기 어렵다”며 “증거가 부족해 공소사실의 증명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한마디로 기가 막히다. 지난 주 필자가 게재했던 ‘조국의 도덕성과 검찰개혁’에 등장했던 필자의 목격담과 거의 동일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은 동 단체장에게 1심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는 점이다.
이 대목서 아주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그 사람 변호사에게 거액의 비용을 지불했겠구나’라는 생각 말이다. 경제사범도 그렇지만 정치사범들의 변호사 수임료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아울러 검찰이 정치사범으로 기소한 경우를 살피면 혹시라도 변호사들을 위해 사건을 고의로 만드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일어날 정도다. 대개의 경우 필자의 목격담, 그리고 상기 내용처럼 결정적 증거 없이 재판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그런 차원서 검사와 변호사는 한통속이 아닐까 하는 의심 역시 일어난다.
여하튼 상기와 같은 일이 비일비재한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는 당연하게도 검찰의 ‘아니면 말고 식’의 기소를 그 원인으로 보고 있다. 즉 기소로 인해 발생되는 모든 상황에 대해 검찰은 전혀 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크나큰 모순이 아닐 수 없다. 한 개인이 개인을 무고해도 무고죄로 처벌당하는데 하물며 국가기관인 검찰이 무기력한 개인을 무고해도 전혀 처벌을 받지 않는 현실은 참으로 개탄스럽다.
이런 경우 필자는 검찰에게 무고죄를 넘어 앞서 언급했던 반좌법을 적용해야 한다고 보는데 독자들의 생각은 어떨지 궁금하다.
※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