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천만 감독’ 왕사남 장항준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6.03.13 09:42:43
  • 호수 15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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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 감각 살려 사극까지 접수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한국 영화계에서 ‘이야기 잘하는 감독’으로 평가받는 장항준 감독이 ‘천만 감독’이 됐다. 신작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개봉 한 달 만에 누적 관객 1200만명을 돌파한 것이다.

올해 첫 1000만 관객을 넘은 영화가 탄생했다. 이번 흥행은 단순한 숫자를 넘어 침체된 한국 영화 시장에 의미 있는 신호로 해석된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나 프랜차이즈 영화가 아닌 정통 사극 드라마가 천만 관객에 도전한다는 점에서 극장가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25년 만에
기적 흥행

장 감독은 1969년 대구에서 태어나 서울예술전문대학 연극과를 졸업한 뒤 방송 작가와 연출을 거치며 영화계에 입문한 인물이다. 2002년 영화 <라이터를 켜라>로 감독 데뷔를 한 이후 <불어라 봄바람> <기억의 밤> <리바운드>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선보이며 독특한 연출 세계를 구축해 왔다.

그의 이력은 일반적인 영화감독과 다소 다르다. 학창 시절에는 특별히 공부에 흥미가 없었지만, 이야기와 설정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뛰어나 주변 친구들에게 영화 줄거리를 만들어 들려주곤 했다. 온라인에 게시된 장 감독의 고등학교 시절 일화도 눈길을 끈다.

지난 18일 온라인상에는 ‘장항준 고등학교 동창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와 눈길을 끌었다. 자신을 장 감독의 동창이라 소개한 작성자는 “항준이는 고등학교 때도 범상치 않은 괴짜였다”며 과거를 회상했다. 이어 “혼자 흰 머리띠에 ‘필승’이라는 글자를 비장하게 동여매고 공부하는 척하더니, 알고 보니 머리띠 뒤로 만화책을 숨겨보고 있더라”는 유쾌한 폭로를 덧붙여 폭소를 자아냈다.

해당 글을 접한 누리꾼들은 “역시 장항준, 떡잎부터 시트콤 캐릭터였다” “선생님들도 어이없어서 허허 웃으셨을 듯” “사람이 어쩜 저렇게 한결같냐” 등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학창시절을 마친 장 감독은 방송국에서 막내 작가로 일하며 방송 제작 현장을 경험했고, 시나리오 작업을 계기로 영화계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장 감독은 영화뿐 아니라 예능과 방송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하며 대중적 친밀도를 쌓았다.

<접속! 무비월드> <알쓸범잡>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특유의 유머와 이야기 전달 능력을 선보이며 ‘영화감독이면서 동시에 이야기꾼’이라는 독특한 이미지를 구축했다.

또 그는 <시그널> <킹덤> 등을 집필한 유명 드라마 작가 김은희와 부부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는 1998년 김 작가와 결혼해 슬하에 딸 한 명을 두고 있다. 20대 시절 사수와 부사수로 만나 인연을 맺은 두 사람은 연예계 대표 잉꼬부부로 통한다. 두 사람은 창작 활동과 방송에서 서로를 언급하며 유쾌한 에피소드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1000만 관객 넘은 이야기꾼 감독의 진화
침체된 한국 영화 시장에 의미 있는 신호

장 감독은 평소 방송을 통해 아내 김 작가와의 결혼을 인생의 ‘신의 한 수’라 표현하며, 아내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와 외조를 아끼지 않는 모습을 보여왔다. 특유의 낙천적인 성격과 유머 감각으로 ‘신이 내린 꿀팔자’라는 별명까지 얻은 그는, 이번 영화의 흥행으로 감독으로서의 저력까지 입증하며 일과 사랑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최근 장 감독을 다시 화제의 중심으로 끌어올린 작품이 바로 <왕과 사는 남자(이하, 왕사남)>다. 이 영화는 조선 제6대 왕 단종이 폐위된 뒤 강원도 영월 청령포로 유배된 마지막 시기를 소재로 삼은 사극이다. 작품은 어린 왕 단종과 마을 촌장 엄흥도의 관계를 중심으로 인간적인 이야기를 풀어내며 역사적 비극을 따뜻한 휴머니즘으로 재해석했다.

영화는 개봉 이후 놀라운 속도로 관객을 끌어모았다. 개봉 5일 만에 100만명을 돌파했고, 12일째 200만, 27일째 900만명을 넘기는 등 빠른 흥행 곡선을 기록했다. 특히 온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무해한 영화’라는 입소문이 확산되며 세대를 아우르는 관객층을 확보한 것이 흥행 요인으로 꼽힌다.

흥행의 여파는 문화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영화 속 배경이 된 단종의 역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조선왕조실록’ 관련 서적 판매가 증가하는 등 역사 콘텐츠 소비에도 영향을 미쳤다. ‘왕사남’ 흥행 돌풍은 출판 시장과 관광지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천만 관객 돌파를 눈앞에 두면서 극 중 단종의 이야기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관련 역사서 판매와 유배지 방문객도 함께 늘어나는 모습이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영화 왕사남이 개봉한 지난달 4일부터 이달 2일까지 약 한 달 동안 ‘조선왕조실록’을 키워드로 한 도서 판매량은 개봉 이전 기간보다 2.9배 증가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도 2.1배 늘어 영화 흥행이 독서 수요로 이어진 것으로 분석된다.

역사적 비극
휴머니즘으로

판매 상위권에는 대중 역사서가 이름을 올렸다. <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왕이 들려주는 조선왕조실록> 등이 독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여러 권으로 구성된 이덕일의 <조선왕조실록> 시리즈 가운데서는 세종 문종 단종’편이 특히 주목받았다.

단종을 주인공으로 한 고전소설 <단종애사>도 재조명받고 있다. 이광수가 1928년부터 1929년까지 <동아일보>에 연재한 작품으로, 작가 사후 70년이 지나 저작권이 소멸된 상태다.

영화 개봉 이후 출판사 새움이 새 판을 선보였고 열림원과 더스토리도 출간을 앞두고 예약 판매를 진행 중이다. 먼저 나온 새움판 <단종애사>는 지난 3일 기준 교보문고 소설 부문 일간 베스트 22위에 오르며 전날보다 무려 14계단이나 상승했다.

영화 인기는 관광지에도 영향을 미쳤다. 강원 영월군에 따르면 삼일절 연휴였던 지난달 28일부터 이달 2일까지 사흘 동안 단종의 유배지인 청령포와 장릉을 찾은 관람객은 총 2만6399명으로 집계됐다.

설 연휴 방문객까지 합치면 올해 들어 두 곳을 찾은 인원은 4만4315명에 달한다. 이는 지난해 연간 방문객 26만3327명의 약 34% 수준이다. 특히 청령포 방문객 비중이 전체의 약 60%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영월군은 최근 영화 <왕사남>의 주요 배경으로 청령포가 등장한 영향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왕사남>은 폐위된 단종 이홍위(박지훈)가 영월 유배지 청령포에서 촌장 엄흥도(유해진)와 마을 사람들을 만나 교감하며 마지막 시간을 보내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2024년 <파묘> <범죄도시4> 이후 약 2년 만에 국내 영화 천만 관객 기록을 갈아 치웠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장 감독 특유의 유쾌한 이미지가 영화 홍보와 맞물려 흥행을 가속화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과거 라디오 방송에서 “천만이 되면 개명과 성형을 하겠다”고 농담 섞인 공약을 내걸었는데, 영화가 실제로 천만 관객을 눈앞에 두자 이 발언이 다시 화제가 되며 온라인에서 화제를 모았다.

장 감독이 영화 <왕사남> 개봉을 앞두고 농담처럼 내걸었던 성형, 개명 등 ‘천만 공약’의 이행 여부가 또 다른 화젯거리가 되고 있다. 영화 흥행을 바라며 우스갯소리로 던진 공약이지만, 왕사남이 실제로 천만 관객 돌파를 눈앞에 두면서 장 감독은 급히 타개책을 찾았다.

허무맹랑한 공약은 없던 일로 하고, 대신 관객들에게 감사를 전하는 소소한 이벤트를 연다.

유쾌하게
영화 홍보

지난 5일 배급사 쇼박스는 장 감독이 오는 12일 정오에 서울시 중구 서울신문사 광장에서 시민들을 대상으로 커피차 이벤트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장 감독이 직접 참석해 시민들과 소통하는 시간도 마련할 예정이다.

장 감독은 전날 SBS 파워FM <배성재의 텐>에 출연해 커피차 이벤트를 추진하게 된 배경을 소개하기도 했다. 장 감독은 “우리끼리 얘기지만, 뱉은 말을 어떻게 다 지키고 삽니까”라며 "“웃자고 한 얘기였고, 제가 대안으로 시내에서 시민들을 위해 커피차 이벤트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함께 출연한 <왕사남> 제작사 비에이엔터테인먼트 장원석 대표도 “(천만 관객은) 정말 상상도 못했기 때문에 웃자고 한 얘기지, 조금이라도 달성 가능성이 있었다면 맨정신에 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수습했다. 장 감독은 영화 개봉 직전인 지난달 1일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해 <왕사남> 천만 관객 돌파 시 성형과 개명, 귀화, 요트 선상 파티 등을 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한편, 한국 영화 산업 측면에서도 이번 흥행은 의미가 크다. 최근 몇 년간 극장 관객 감소와 콘텐츠 소비 변화로 인해 한국 영화계는 침체를 겪어 왔다. <왕사남>의 이런 성과는 최근 영화 흥행의 흐름이 된 입소문과 뒷심이 가장 극적으로 작동한 결과라 눈길을 끈다.

지난달 4일 개봉 직전 예매자는 15만4000여명으로 높지 않았고, 첫날 관객 수도 12만명을 밑돌아 우려를 자아냈다.

하지만 SNS에서 호평이 늘면서 개봉 2주차 주말에 관객이 더 많아졌고, 설 연휴에 경쟁작 <휴민트>를 따돌리면서 본격적인 흥행 가도에 올랐다. 개봉 4주차인 삼일절 휴일에는 하루 관객 80만명을 넘기며 개봉 이후 최고 관객 수를 찍었다. 역주행 영화는 많지만 개봉 4주차에 최고 관객 수를 기록하는 건 유례가 드물다.

무해한 영화 평가 ‘왕사남’ 열풍
‘김은희 남편’ 수식어 “이젠 안녕”

영화가 처음 공개됐을 때 만듦새에 대한 비판이 적지 않았다. 극 초반의 작위적인 이야기 전개와 어설픈 컴퓨터그래픽 등이 지적받았다. 그럼에도 관객들의 지지가 확산된 데는 조선에서 가장 비운의 왕으로 꼽히는 단종의 실화와 역사의 이면에서 찾아낸 엄흥도라는 인물의 존재가 현재적 의미로 다가왔다는 분석이다.

역사학자인 심용환 역사엔(N)교육연구소장은 “단종의 죽음은 조선 전기에는 금기로 취급되다가 후기에 이르면서 복권되고 엄흥도라는 인물이 부상하는 등 조선시대 이래로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의 소재가 되어왔다”며 “영화는 왕의 비극에 머물지 않고 엄흥도로 상징되는 평범한 사람의 시선에서 슬픔과 용기를 그려내며 내란 사태로 민주공화국의 정당성이라는 문제에 부딪혔던 한국 사회의 분위기나 한국인들의 지친 마음에 더 크게 다가온 측면이 있다”고 짚었다.

홍수정 영화평론가는 이 영화처럼 비극의 정치사를 다룬 <서울의 봄>에 대한 대중의 호응에 주목하면서 “두 영화는 역사의 현장으로 거슬러 올라가 비극을 막아보려는 인물을 그리면서 숨겨진 욕망을 건드린다”며 “<왕과 사는 남자>는 과거 자신이 지지하는 통치자를 지키지 못했다는 대중의 무의식 속 좌절감에 감응한다”고 말했다.

<왕사남>의 손익분기점은 260만명, 순제작비는 100억원가량으로, 제작비가 많이 드는 사극 장르라는 점을 고려하면 크지 않은 규모의 영화다. 볼거리도 화려하지 않고 이야기도 복잡하지 않다. 제작비 200억~300억원대의 대작 장르물이 실패를 거듭하는 최근 극장가에서 지난해 최고 흥행작 ‘좀비딸’과 함께 중급 영화 제작 활성화의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

올해 초 순제작비 30억원대의 중저예산 멜로영화 <만약에 우리>에 이어 <왕사남>을 잇따라 성공시킨 투자배급사 쇼박스의 조수빈 홍보팀장은 “자극성이 강한 장르물이 주류를 이루는 오티티(OTT) 시리즈와 달리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영화에 대한 요구들이 있는 것 같다”며 “<파묘> <좀비딸> 등 최근 흥행작들을 보면 강력한 서사의 힘 못지않게 캐릭터 간의 밀도 있는 관계성이 중요한 관람 포인트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최종 스코어
어디까지?

이 영화의 최종 스코어가 어디까지 이를지도 관심사다. 영화 산업 침체로 3~4월 한국 영화 경쟁작이 없어 <왕사남>의 독주는 상당 기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장 감독은 데뷔 이후 코미디, 스릴러, 스포츠 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대중성과 이야기성’을 동시에 추구해온 감독이다. 그리고 지금, 그의 이름 앞에는 또 하나의 기록이 추가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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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 이후 꺼낼 국민의힘 개헌 꽃놀이패

지방선거 이후 꺼낼 국민의힘 개헌 꽃놀이패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여야 6당이 참여한 개헌 시도는 국민의힘의 투표 불참으로 인해 결국 무산됐다. 입법적 전격전을 선호하는 민주당은 지방선거 이후 내년 재보궐선거까지 약 10개월 동안의 공백기를 노릴 가능성이 있다. 국민의힘의 청야전술은 이를 막아낼 수 있을까? 국민의힘을 제외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여야 6당이 발의한 헌법 개정안이 지난 7일 의결정족수 미달로 투표 불성립 처리됐다. 국민의힘은 이날 표결 불참을 당론으로 정한 후 의원 전원이 불참했다. 이튿날인 8일, 국민의힘이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예고하자, 우원식 국회의장은 개헌안 처리를 중단했다. 정족수 미달 투표 불성립 현행 헌법에 따르면, 개헌안은 국회 재적 의원 과반이나 대통령이 발의할 수 있다. 대통령은 이를 20일 이상 공고해야 하고, 국회는 공고일로부터 60일 이내에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해야 한다. 이어 30일 이내에 국민투표를 거쳐 유권자 과반이 투표하고, 투표자 과반이 찬성해야 확정된다. 지난 7~8일 기준, 국회 재적 의원은 286명이라서 개헌안 가결에는 191명의 찬성이 필요하다. 국민의힘 의원은 모두 106명이다. 여야 6당 의원 전원이 개헌안 투표에 참여해 찬성한다면, 국민의힘에서 최소 11명 이상의 이탈자가 나와야 한다. 개헌안에는 ▲헌법 전문에 5·18 광주 민주화 운동과 부마 민주항쟁 명시 ▲계엄 선포 시 48시간 이내 국회 승인을 받아야 유효하도록 변경 ▲국회가 계엄 해제를 능동적으로 주도할 수 있도록 대통령 권한 축소 등의 내용이 담겼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지난 7일 청와대 앞에서 진행된 현장 최고위원회의에서 “이재명은 연임 불가 선언 요구를 끝내 거부했다”며 “개헌을 하겠다면, 먼저 이재명이 연임 불가를 선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지난 8일 기자들을 만나 “부마 민주항쟁과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등을 헌법 전문에 담는 데 대해 근본적으로 반대하지 않는다”며 “헌법 전문은 특정 사건에 대한 게 아니라, 통합적 역사 인식 아래 균형 잡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건국·새마을운동·근대화도 다 헌법 전문에 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지난 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1987년 개헌은 오로지 제왕적 대통령 견제에만 집중해서, 국회에 예산·입법 등 막강한 권한을 몰아주는 기형적 구조를 탄생시켰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회가 권력남용을 이유로 언제든 대통령과 국무위원들을 탄핵의 심판대에 세울 수 있다면, 헌정 질서를 무너뜨리면서 폭주하는 국회도 해산의 심판대에 설 수 있어야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완성된다”며 “의회해산권 도입을 본격적으로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 의원은 지난해에도 민주당을 비판할 때마다 의회해산권 도입을 주장했다. 국민의힘 주요 관계자들의 발언에 대해서는 “개헌안 속 숨겨진 덫을 잘 파악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개헌은 통치 구조 개헌의 전초전일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에 대해서는 “헌법적 상식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헌법 제128조 제2항은 “대통령의 임기 연장 또는 중임 변경을 위한 헌법 개정은 그 헌법 개정 제안 당시의 대통령에 대해서는 효력이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과거 대통령들이 개헌을 통해 정권을 연장했던 과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반성적 고려 차원에서 삽입된 조항이다. 대통령이 해당 조항의 효력을 무시하면서 임기 연장·중임 변경을 추진하려면 하야한 후 재선을 노려야 한다. 건국·새마을운동·의회 해산 쏟아내…과연? 이재명 독재 연장? 헌법 구조상 불가능한데… 하지만 이런 상황에선 대통령이 감당해야 할 정치적 책임이 매우 클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상식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송 원내대표가 헌법 전문에 추가할 것을 요구한 건국·새마을운동·근대화도 실제로 시도할 경우, 엄청난 논쟁이 불거질 가능성이 있다. 헌법 전문은 실제 헌법재판에서 보충적 규범으로 활용되는 등 단순한 선언이 아니라 법 규범으로서의 효력을 가지고 있으며, 국가의 정체성과 헌법의 취지를 선언하는 문장이다. 따라서 국민 대다수가 동의하는 가치를 담아야 한다. 이를 위해선 역사적 평가가 끝난 불가역적 가치를 담는 게 원칙이다. 그래서 현행 헌법 전문에는 ▲3·1 운동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 ▲4·19 민주 이념 등이 담겨있다. 여야 6당이 전문 추가를 시도했던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부마 민주항쟁 등도 역사적 평가가 끝났다. 특히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재평가를 주도했던 정권은 국민의힘의 전신 신한국당 소속 김영삼 전 대통령의 문민정부였다. 송 원내대표가 주장한 건국 이념 반영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곧바로 충돌한다. 임시정부 법통 논란은 해방 직후에도 치열하게 진행됐던 논쟁이었다. 임시정부의 법통을 인정했던 진영은 이승만 전 대통령·한국민주당 등 우익 진영이었다. 제헌의회도 임시정부 시절 임시의정원의 정통성을 승계하는 방향으로 정통성을 확보했다. 이는 김 전 대통령·김대중 전 대통령도 인정한 후 역사적 상식으로 굳어졌다가 뉴라이트 진영이 건국절 논란을 일으키면서 송 원내대표의 주장으로까지 흘러간 것이다. 건국 이념 반영은 임시정부 법통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 나 의원이 주장한 의회해산권에 대해서는 “대통령제와 맞지 않는다”는 반박이 나온다. 의회해산권은 의원내각제 국가에서 총리가 보유하는 권한이다. 의회가 갖는 내각불신임권과 함께 상호 견제를 위한 짝패를 이룬다. 국무총리가 있고, 현역 의원이 내각에 참여하는 우리 통치 체제는 일정 부분 의원내각제 속성을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대통령은 직선제로 선출된다. 대통령은 의회가 아닌 국민을 향한 정치적 책임을 진다. 아울러 국회는 대통령에 대해 탄핵소추권을 가질 뿐 대통령과 내각을 불신임할 수 없다. 대통령은 구조적으로 의회해산권을 가질 수 없다. 대통령이 의회해산권을 가졌던 것은 유신 헌법과 제5공화국 헌법이었다. 이 헌법은 대통령에게 강력한 권한을 부여했던 프랑스 드골 헌법을 참고했다. 역사적 평가 불가역 가치 국민의힘이 개헌안 표결에 불참하거나 필리버스터를 시도하는 것에 대해선 “나름대로 이유는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106석을 보유한 국민의힘으로서는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아울러 개헌안의 주요 내용인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부마 민주항쟁 등은 모두 전신 민주공화당·민주정의당을 포함한 국민의힘의 약점이다. 국민의힘으로서는 4·19 혁명에 이어 역사적 약점이 헌법 전문에 추가되는 굴욕을 감당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국민의힘은 자가당착에 빠질 수 있는 부분까지 감수하면서 개헌안 표결에 불참했다. 부마 민주항쟁의 무대 부산·마산은 오랫동안 국민의힘을 탄탄하게 받쳐주던 주된 지지 기반이었다. 부산·경남은 노무현 전 대통령 등장 이후 경합 지역이 됐다. 국민의힘은 개헌 투표에 불참하면서 부산·마산의 위업을 헌법 전문에 담는 것을 걷어차는 외통수에 갇혔다. 비상계엄 관련 개헌안은 근본적으로 대통령의 권한을 약화시키면서 국회의 권한을 강화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국민의힘으로서는 개헌을 반대할 수밖에 없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서는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 내부에서조차 평가가 일단락된 사안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국민의힘이 배출한 전직 대통령의 업보가 헌법에 명백하게 못 박히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위헌 정당”이라는 암시가 새 개헌안에 담기는 것을 배제하기 어렵다. 여야 6당 중 민주당에 대해선 “국민의힘의 구조적 약점을 날카롭게 찌르면서 기습적인 총력전을 시도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각 정당은 이미 6·3 지방선거라는 총력전을 앞두고 있다. 국민의힘이 개헌안 표결에 불참한 이유에 대해선 “개헌 시도가 지방선거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인식을 한 것 같다”는 분석이 나온다. 민주당이 ‘총력전 속 총력전’을 시도한 것과 비슷하다. 개헌 시도와 6·3 지방선거를 묶는 연환계를 구사하면서 전쟁을 양면 전쟁으로 바꾸는 것이다. 당세가 줄어들어 물량 동원에 한계를 보이는 국민의힘을 상대로 심리적·물리적 과부하를 유도한 것이다. 이는 장 대표의 지도력 논란까지 파고들어 결정적 지점에 화력을 집중하고, 국민의힘의 정치적 명분까지 꺾으려 했던 난도 높은 승부수였다. 개헌안 표결은 진행하지 못했지만, 국민의힘의 궁색한 현실을 전방위적으로 폭로했기 때문에 “졌지만 지지 않은 승부”라는 평가가 나올 수도 있다. 국민의힘은 그 궁색한 현실 때문에 투표 불참·필리버스터라는 고전적인 청야전술을 동원할 수밖에 없었다. 총력 공격 총력 방어 이는 명장들이나 강대국이 자주 구사하던 전법이었던 사실을 전쟁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당 태종은 제1차 고당(고구려-당나라) 전쟁에서 패배한 이후 전략을 바꿔 수시로 소규모 부대로 고구려를 침공해 변방을 교란하는 등 소모전을 병행했다. 태종의 뒤를 이은 당 고종은 2회에 걸쳐 대규모 침공을 감행했다. 고구려의 연개소문은 제2차 고당 전쟁 당시 사수에서 당나라 대군을 격파했지만, 방어선이 한반도 내부로 점점 밀리고 있는 양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어 제3차 고당 전쟁에서는 내부 배반까지 겹쳐 고구려가 끝내 멸망하고 말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군도 독일군이 서부전선 노르망디 상륙작전이라는 기습을 당해 방어에 모든 신경을 쏟고 있을 때, 바그라티온 작전이라는 총력전을 진행해 동부전선 내 독일군을 완전히 전멸시켰다. 민주당이 노린 전세는 이 같은 구도였다. 민주당은 이재명 대통령이 대표로 재임할 당시부터 윤석열정부를 상대로 30건이 넘는 탄핵소추를 발의하거나 법안 물량 공세를 펼치는 등 총력전 양상의 입법전을 주도했다. 170석이라는 압도적 의석수를 확보한 데서 비롯됐다. 원래 민주당은 압도적 지방선거 승리를 기대했다. 그러다가 이 대통령 공소 취소를 강하게 추진하는 상황에 대한 일부 유권자의 반감을 사면서 일부 지역에서는 보수층이 결집하는 등 선거 구도가 백중세로 바뀌고 있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이 대통령 공소 취소에 대한 의지를 꺾지 않고 있고, 개헌까지 시도했다. 지방선거 종료 이후엔 내년 4월 재보궐선거 전까지는 선거가 없는 만큼, 오는 6월부터 내년 4월까지 약 10개월 동안 여야가 전면전을 치를 가능성은 높지 않다. 이는 실제 정치학·정책학 이론으로도 입증된다. 존 W. 킹던 미국 미시간대 명예교수는 ‘정책의 창’ 이론을 주장했다. ▲사람들이 문제의식을 느끼고 ▲준비된 해결책이 있으며 ▲정치권이 움직일 수 있는 분위기 등 3박자가 맞물리면 ‘정책의 창’이 열린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관점에서는 선거 종료 이후 유권자로부터 직접 심판받지 않는 그 10개월이 정책의 창이 열리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개헌 및 이 대통령 공소 취소 등 물량 공세를 밀고 나갈 수 있는 전략적 시간대라고도 볼 수 있다. 업보·약점 헌법 전문 실리면 위헌 정당? 투표 불참·필리버스터…청야전술 한계 전술적으로 보더라도, 국민의힘이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은 투표 불참·필리버스터라는 청야전술격 수동적 방어밖에 없다. 법안을 반복적으로 밀어붙이면, 국민의힘은 투표 불참·필리버스터로 대응하게 된다. 그럴수록 국민 피로도가 높아지고, 중도층의 의심을 받게 된다. 진영이 확고하게 나뉜 상황에서는 중도층이 캐스팅 보트를 행사한다. 필리버스터는 말 그대로 마지막 방법이어야 하지만, 국민의힘이 거듭 사용하면서 식상해져 그만큼 비장함의 강도도 낮아졌다. 민주당의 입법적 전격전과 국민의힘의 투표 불참·필리버스터는 일종의 경로가 됐다. 양당 모두 경로 의존성이 생긴 것이다. 물론 국민의힘은 송 원내대표와 나 의원을 통해 ▲건국 담론 ▲새마을운동 ▲근대화 ▲대통령의 의회해산권 등 반격 카드를 제시했다. 하지만 모든 국민의 지지를 얻기 어려운 담론이기 때문에 기존 경로를 고칠 만큼 파급력이 강한 승부수가 되긴 어렵다. 아울러 민주당은 압도적 의석을 가진 집권여당이라는 위치를 이용해 선거 기간이 아닌 10개월 동안에도 지지층을 결집하면서 중도층의 설득을 얻을 영구적 선거운동을 할 준비를 마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이 대통령 공소 취소에 대해선 중도층의 의견이 아직 명확하게 확인되지 않아 민주당으로서도 도박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개헌안의 경우는 다르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부마 민주항쟁 ▲비상계엄 선포 및 해제 요건 변화 등은 국민 대다수가 이미 평가를 마친 사안이다. 이 대통령 공소 취소에 대한 중도층·보수층의 비판을 상쇄할 수도 있다. 민주당은 이 같은 영구적 선거운동을 통해 내년 재보궐선거에까지 대비하는 입법적 공세를 치르려고 한다. 청야전술은 자신의 경제 기반을 모두 허물면서 진행하는 극단적 처방이다. 국민의힘이 투표와 토론을 포기하거나 체력을 소비하는 등 극단적 처방을 할수록 대중·언론의 관심을 얻지 못하는 딜레마에 빠졌다. 이어 지지 기반인 부산·경남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헌법 전문에 담는 것까지 포기해야 하는 악순환의 고리에 접어들었다. 2200년 역사를 자랑하던 동로마 제국이 몰락을 이기지 못했던 사례가 있다.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세운 테오도시우스 3중 성벽은 오스만 술탄국이 준비한 대형 ‘우르반 대포’를 이겨내지 못했다. 또 예니체리 등 최정예 병력을 앞세운 오스만 술탄국의 물량 공세도 이겨내지 못했다. 여기에 방어전을 실질적으로 주도했던 용병 대장 조반니 주스티니아니가 부상 때문에 전장을 이탈하는 불운까지 겹쳤다. 궁색한 현실 자충수 되나 물론 청야전술에도 한계는 있다. 국민의힘에는 연개소문이나 조반니 주스티니아니조차도 없다. 지방선거가 끝나면 민주당에는 정책의 창이 열릴 것이다. 지도력 공백을 회복하지 못한 국민의힘은 이제 청야전술을 넘어선 새 전술을 고안해야 한다. 국민의힘은 과연 정책의 창을 막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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