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천만 감독’ 왕사남 장항준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6.03.13 09:42:43
  • 호수 15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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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 감각 살려 사극까지 접수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한국 영화계에서 ‘이야기 잘하는 감독’으로 평가받는 장항준 감독이 ‘천만 감독’이 됐다. 신작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개봉 한 달 만에 누적 관객 1200만명을 돌파한 것이다.

올해 첫 1000만 관객을 넘은 영화가 탄생했다. 이번 흥행은 단순한 숫자를 넘어 침체된 한국 영화 시장에 의미 있는 신호로 해석된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나 프랜차이즈 영화가 아닌 정통 사극 드라마가 천만 관객에 도전한다는 점에서 극장가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25년 만에
기적 흥행

장 감독은 1969년 대구에서 태어나 서울예술전문대학 연극과를 졸업한 뒤 방송 작가와 연출을 거치며 영화계에 입문한 인물이다. 2002년 영화 <라이터를 켜라>로 감독 데뷔를 한 이후 <불어라 봄바람> <기억의 밤> <리바운드>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선보이며 독특한 연출 세계를 구축해 왔다.

그의 이력은 일반적인 영화감독과 다소 다르다. 학창 시절에는 특별히 공부에 흥미가 없었지만, 이야기와 설정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뛰어나 주변 친구들에게 영화 줄거리를 만들어 들려주곤 했다. 온라인에 게시된 장 감독의 고등학교 시절 일화도 눈길을 끈다.

지난 18일 온라인상에는 ‘장항준 고등학교 동창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와 눈길을 끌었다. 자신을 장 감독의 동창이라 소개한 작성자는 “항준이는 고등학교 때도 범상치 않은 괴짜였다”며 과거를 회상했다. 이어 “혼자 흰 머리띠에 ‘필승’이라는 글자를 비장하게 동여매고 공부하는 척하더니, 알고 보니 머리띠 뒤로 만화책을 숨겨보고 있더라”는 유쾌한 폭로를 덧붙여 폭소를 자아냈다.

해당 글을 접한 누리꾼들은 “역시 장항준, 떡잎부터 시트콤 캐릭터였다” “선생님들도 어이없어서 허허 웃으셨을 듯” “사람이 어쩜 저렇게 한결같냐” 등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학창시절을 마친 장 감독은 방송국에서 막내 작가로 일하며 방송 제작 현장을 경험했고, 시나리오 작업을 계기로 영화계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장 감독은 영화뿐 아니라 예능과 방송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하며 대중적 친밀도를 쌓았다.

<접속! 무비월드> <알쓸범잡>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특유의 유머와 이야기 전달 능력을 선보이며 ‘영화감독이면서 동시에 이야기꾼’이라는 독특한 이미지를 구축했다.

또 그는 <시그널> <킹덤> 등을 집필한 유명 드라마 작가 김은희와 부부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는 1998년 김 작가와 결혼해 슬하에 딸 한 명을 두고 있다. 20대 시절 사수와 부사수로 만나 인연을 맺은 두 사람은 연예계 대표 잉꼬부부로 통한다. 두 사람은 창작 활동과 방송에서 서로를 언급하며 유쾌한 에피소드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1000만 관객 넘은 이야기꾼 감독의 진화
침체된 한국 영화 시장에 의미 있는 신호

장 감독은 평소 방송을 통해 아내 김 작가와의 결혼을 인생의 ‘신의 한 수’라 표현하며, 아내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와 외조를 아끼지 않는 모습을 보여왔다. 특유의 낙천적인 성격과 유머 감각으로 ‘신이 내린 꿀팔자’라는 별명까지 얻은 그는, 이번 영화의 흥행으로 감독으로서의 저력까지 입증하며 일과 사랑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최근 장 감독을 다시 화제의 중심으로 끌어올린 작품이 바로 <왕과 사는 남자(이하, 왕사남)>다. 이 영화는 조선 제6대 왕 단종이 폐위된 뒤 강원도 영월 청령포로 유배된 마지막 시기를 소재로 삼은 사극이다. 작품은 어린 왕 단종과 마을 촌장 엄흥도의 관계를 중심으로 인간적인 이야기를 풀어내며 역사적 비극을 따뜻한 휴머니즘으로 재해석했다.

영화는 개봉 이후 놀라운 속도로 관객을 끌어모았다. 개봉 5일 만에 100만명을 돌파했고, 12일째 200만, 27일째 900만명을 넘기는 등 빠른 흥행 곡선을 기록했다. 특히 온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무해한 영화’라는 입소문이 확산되며 세대를 아우르는 관객층을 확보한 것이 흥행 요인으로 꼽힌다.

흥행의 여파는 문화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영화 속 배경이 된 단종의 역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조선왕조실록’ 관련 서적 판매가 증가하는 등 역사 콘텐츠 소비에도 영향을 미쳤다. ‘왕사남’ 흥행 돌풍은 출판 시장과 관광지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천만 관객 돌파를 눈앞에 두면서 극 중 단종의 이야기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관련 역사서 판매와 유배지 방문객도 함께 늘어나는 모습이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영화 왕사남이 개봉한 지난달 4일부터 이달 2일까지 약 한 달 동안 ‘조선왕조실록’을 키워드로 한 도서 판매량은 개봉 이전 기간보다 2.9배 증가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도 2.1배 늘어 영화 흥행이 독서 수요로 이어진 것으로 분석된다.

역사적 비극
휴머니즘으로

판매 상위권에는 대중 역사서가 이름을 올렸다. <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왕이 들려주는 조선왕조실록> 등이 독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여러 권으로 구성된 이덕일의 <조선왕조실록> 시리즈 가운데서는 세종 문종 단종’편이 특히 주목받았다.

단종을 주인공으로 한 고전소설 <단종애사>도 재조명받고 있다. 이광수가 1928년부터 1929년까지 <동아일보>에 연재한 작품으로, 작가 사후 70년이 지나 저작권이 소멸된 상태다.

영화 개봉 이후 출판사 새움이 새 판을 선보였고 열림원과 더스토리도 출간을 앞두고 예약 판매를 진행 중이다. 먼저 나온 새움판 <단종애사>는 지난 3일 기준 교보문고 소설 부문 일간 베스트 22위에 오르며 전날보다 무려 14계단이나 상승했다.

영화 인기는 관광지에도 영향을 미쳤다. 강원 영월군에 따르면 삼일절 연휴였던 지난달 28일부터 이달 2일까지 사흘 동안 단종의 유배지인 청령포와 장릉을 찾은 관람객은 총 2만6399명으로 집계됐다.

설 연휴 방문객까지 합치면 올해 들어 두 곳을 찾은 인원은 4만4315명에 달한다. 이는 지난해 연간 방문객 26만3327명의 약 34% 수준이다. 특히 청령포 방문객 비중이 전체의 약 60%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영월군은 최근 영화 <왕사남>의 주요 배경으로 청령포가 등장한 영향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왕사남>은 폐위된 단종 이홍위(박지훈)가 영월 유배지 청령포에서 촌장 엄흥도(유해진)와 마을 사람들을 만나 교감하며 마지막 시간을 보내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2024년 <파묘> <범죄도시4> 이후 약 2년 만에 국내 영화 천만 관객 기록을 갈아 치웠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장 감독 특유의 유쾌한 이미지가 영화 홍보와 맞물려 흥행을 가속화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과거 라디오 방송에서 “천만이 되면 개명과 성형을 하겠다”고 농담 섞인 공약을 내걸었는데, 영화가 실제로 천만 관객을 눈앞에 두자 이 발언이 다시 화제가 되며 온라인에서 화제를 모았다.

장 감독이 영화 <왕사남> 개봉을 앞두고 농담처럼 내걸었던 성형, 개명 등 ‘천만 공약’의 이행 여부가 또 다른 화젯거리가 되고 있다. 영화 흥행을 바라며 우스갯소리로 던진 공약이지만, 왕사남이 실제로 천만 관객 돌파를 눈앞에 두면서 장 감독은 급히 타개책을 찾았다.

허무맹랑한 공약은 없던 일로 하고, 대신 관객들에게 감사를 전하는 소소한 이벤트를 연다.

유쾌하게
영화 홍보

지난 5일 배급사 쇼박스는 장 감독이 오는 12일 정오에 서울시 중구 서울신문사 광장에서 시민들을 대상으로 커피차 이벤트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장 감독이 직접 참석해 시민들과 소통하는 시간도 마련할 예정이다.

장 감독은 전날 SBS 파워FM <배성재의 텐>에 출연해 커피차 이벤트를 추진하게 된 배경을 소개하기도 했다. 장 감독은 “우리끼리 얘기지만, 뱉은 말을 어떻게 다 지키고 삽니까”라며 "“웃자고 한 얘기였고, 제가 대안으로 시내에서 시민들을 위해 커피차 이벤트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함께 출연한 <왕사남> 제작사 비에이엔터테인먼트 장원석 대표도 “(천만 관객은) 정말 상상도 못했기 때문에 웃자고 한 얘기지, 조금이라도 달성 가능성이 있었다면 맨정신에 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수습했다. 장 감독은 영화 개봉 직전인 지난달 1일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해 <왕사남> 천만 관객 돌파 시 성형과 개명, 귀화, 요트 선상 파티 등을 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한편, 한국 영화 산업 측면에서도 이번 흥행은 의미가 크다. 최근 몇 년간 극장 관객 감소와 콘텐츠 소비 변화로 인해 한국 영화계는 침체를 겪어 왔다. <왕사남>의 이런 성과는 최근 영화 흥행의 흐름이 된 입소문과 뒷심이 가장 극적으로 작동한 결과라 눈길을 끈다.

지난달 4일 개봉 직전 예매자는 15만4000여명으로 높지 않았고, 첫날 관객 수도 12만명을 밑돌아 우려를 자아냈다.

하지만 SNS에서 호평이 늘면서 개봉 2주차 주말에 관객이 더 많아졌고, 설 연휴에 경쟁작 <휴민트>를 따돌리면서 본격적인 흥행 가도에 올랐다. 개봉 4주차인 삼일절 휴일에는 하루 관객 80만명을 넘기며 개봉 이후 최고 관객 수를 찍었다. 역주행 영화는 많지만 개봉 4주차에 최고 관객 수를 기록하는 건 유례가 드물다.

무해한 영화 평가 ‘왕사남’ 열풍
‘김은희 남편’ 수식어 “이젠 안녕”

영화가 처음 공개됐을 때 만듦새에 대한 비판이 적지 않았다. 극 초반의 작위적인 이야기 전개와 어설픈 컴퓨터그래픽 등이 지적받았다. 그럼에도 관객들의 지지가 확산된 데는 조선에서 가장 비운의 왕으로 꼽히는 단종의 실화와 역사의 이면에서 찾아낸 엄흥도라는 인물의 존재가 현재적 의미로 다가왔다는 분석이다.

역사학자인 심용환 역사엔(N)교육연구소장은 “단종의 죽음은 조선 전기에는 금기로 취급되다가 후기에 이르면서 복권되고 엄흥도라는 인물이 부상하는 등 조선시대 이래로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의 소재가 되어왔다”며 “영화는 왕의 비극에 머물지 않고 엄흥도로 상징되는 평범한 사람의 시선에서 슬픔과 용기를 그려내며 내란 사태로 민주공화국의 정당성이라는 문제에 부딪혔던 한국 사회의 분위기나 한국인들의 지친 마음에 더 크게 다가온 측면이 있다”고 짚었다.

홍수정 영화평론가는 이 영화처럼 비극의 정치사를 다룬 <서울의 봄>에 대한 대중의 호응에 주목하면서 “두 영화는 역사의 현장으로 거슬러 올라가 비극을 막아보려는 인물을 그리면서 숨겨진 욕망을 건드린다”며 “<왕과 사는 남자>는 과거 자신이 지지하는 통치자를 지키지 못했다는 대중의 무의식 속 좌절감에 감응한다”고 말했다.

<왕사남>의 손익분기점은 260만명, 순제작비는 100억원가량으로, 제작비가 많이 드는 사극 장르라는 점을 고려하면 크지 않은 규모의 영화다. 볼거리도 화려하지 않고 이야기도 복잡하지 않다. 제작비 200억~300억원대의 대작 장르물이 실패를 거듭하는 최근 극장가에서 지난해 최고 흥행작 ‘좀비딸’과 함께 중급 영화 제작 활성화의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

올해 초 순제작비 30억원대의 중저예산 멜로영화 <만약에 우리>에 이어 <왕사남>을 잇따라 성공시킨 투자배급사 쇼박스의 조수빈 홍보팀장은 “자극성이 강한 장르물이 주류를 이루는 오티티(OTT) 시리즈와 달리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영화에 대한 요구들이 있는 것 같다”며 “<파묘> <좀비딸> 등 최근 흥행작들을 보면 강력한 서사의 힘 못지않게 캐릭터 간의 밀도 있는 관계성이 중요한 관람 포인트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최종 스코어
어디까지?

이 영화의 최종 스코어가 어디까지 이를지도 관심사다. 영화 산업 침체로 3~4월 한국 영화 경쟁작이 없어 <왕사남>의 독주는 상당 기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장 감독은 데뷔 이후 코미디, 스릴러, 스포츠 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대중성과 이야기성’을 동시에 추구해온 감독이다. 그리고 지금, 그의 이름 앞에는 또 하나의 기록이 추가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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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경찰이 압수한 비트코인 1700여개 중 1400개 이상이 사라졌다. 전체 피해액은 최소 1300억원에서 최대 1500억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충격적인 것은 탈취 시점과 방식, 그리고 접속 기기까지 모두 경찰 수사 과정과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단순 해킹으로 보기 어려운 정황이 잇따라 확인되면서 사건의 성격이 ‘내부 연루 의혹’으로 급격히 기울고 있다. 사건의 출발은 2021년 11월 광주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의 불법 도박사이트 수사였다. 광주청 수사과 소속 경사 김모씨 등은 범죄수익은닉 혐의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하며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을 받은 비트세븐 거래소 대표 이모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에 접속했다. 6분 간격 연결고리 당시 경찰은 피의자 이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 계정에 접속해 비트코인 1798개를 확인했다. 경찰은 같은 날 오전 11시58분부터 약 40분간 27차례에 걸쳐 135개를 이체하며 1차 압수를 진행했다. 이후 접속이 차단됐다고 주장했지만, 불과 몇 시간 뒤인 11월10일 새벽과 오후, 경찰청 사무실에서 추가로 185개를 더 이체했다. 총 320개가 ‘정식 압수’됐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2021년 11월10일 오후 8시28분. 김 경사는 압수된 계정의 연동 이메일을 자신의 구글 계정으로 변경한다. 그리고 불과 12분 뒤인 8시40분부터, 지갑에 남아 있던 비트코인 1477개가 195차례에 걸쳐 외부 주소로 빠져나갔다. 압수 직후, 그것도 계정 권한이 경찰에게 완전히 넘어간 직후 벌어진 대규모 탈취였다. 블록체인닷컴이 제출한 IP 로그는 더욱 노골적이다. 11월9일부터 10일 오후 8시32분까지 모두 한국 IP를 사용한 수사관 접속 기록이다. 이후 마지막 김 경사의 접속 6분 뒤, 미국·우크라이나·캐나다 IP를 통한 접속이 연속으로 발생한다. VPN을 이용한 김 경사로 의심되는 ‘탈취자’의 접속이다. 수사관 로그인 → 6분 후 탈취 로그인 → 즉시 대량 이체로 이어진 것이다. 외부 해커의 우연한 침입이라 보기에는 타이밍이 지나치게 촘촘하고 정교하다. 결정적인 단서는 디바이스 로그다. 블록체인닷컴 측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해당 계정에는 단 두 종류의 기기만 기록돼있다. 하나는 윈도우 기반 데스크톱, 다른 하나는 안드로이드 모바일이다. 이 중 안드로이드 접속은 단 한 번, 우크라이나 IP를 통해 이뤄졌다. 나머지 탈취 접속은 모두 윈도우 데스크톱이다. 문제는 그 윈도우 기기다. 로그에는 수사관이 사용한 윈도우 기기 외에 다른 데스크톱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 즉, 탈취자가 사용한 윈도우 PC가 별도 기기였다면 반드시 추가 로그가 남아야 하지만 그마저도 없다. 탈취 접속에 사용된 윈도우 기기가 수사관이 사용한 기기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수사관 접속 후 VPN 유출 시작 경찰이 사용한 기기가 쓰였다? 탈취 당시 상황도 석연치 않다. 계정 연동 이메일이 김 경사의 개인 계정으로 바뀐 직후 탈취가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최소 198건의 출금이 발생했다. 정상이라면 동일 수량의 알림 이메일이 수신돼야 한다. 그러나 김 경사의 이메일에는 단 7건만 남아 있다. 나머지 191건은 흔적조차 없다. 더욱이 김 경사는 당시 사무실에 남아 있었고, 탈취 시간 동안 계정 재접속을 시도했다고 진술했다. 그럼에도 본인 이메일로 전송된 출금 알림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단순 실수로 보기엔 삭제 규모가 과도하다. 선택적 삭제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수사 협조 전문가 박모씨의 분석 자료에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정황이 발견됐다. 박씨는 11월11일 저녁, 탈취 자금 흐름을 분석한 노드 자료를 김 경사에게 전달했다. 그런데 해당 자료에는 그 시점 기준 아직 발생하지 않은 미래 트랜잭션이 포함돼있었다. 실제 해당 거래는 다음 날 새벽에야 블록체인에 기록된 것으로 확인된다. 블록체인 구조상 발생하지 않은 거래를 사전에 확인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해당 자료가 사후 수정됐거나, 탈취 경로를 사전에 알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이씨는 사건 발생 한 달 뒤 탈취 사실을 인지하고 검찰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후 추가 진정까지 제출했지만, 수사는 2024년까지 사실상 진행되지 않았다. 그러다 뒤늦게 수사가 이뤄졌고, 결과는 반전이었다. 탈취 의혹은 규명되지 않은 채, 오히려 피해자가 허위 고발을 했다며 무고 혐의로 기소된 것이다. 국가 수사기관이 압수한 비트코인이 경찰 손을 거친 직후 대량으로 사라졌으나, 코인의 주인은 구속되고 경찰은 의심에서 벗어났다. 단순 해킹이라 보기에는 시점과 방식, 그리고 이후 수사 흐름까지 모든 것이 비정상적이다. 법원도 이미 “누군가 계정에 접근해 비트코인을 이체했다”고 판단했고, 검찰은 수사 정보 유출 의혹까지 제기하고 경찰을 상대로 압수수색을 벌였다. 정작 탈취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무고 혐의로 법정에 서 있는 상황이다. ‘누가 훔쳤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은 여전히 답을 얻지 못한 채 사건은 미궁으로 빠졌다. 알림 191건 흔적 없이… 경찰은 1일 전송 한도 때문에 압수가 며칠에 걸쳐 이뤄지는 사이, 이씨 측이 이를 빼돌렸다고 판단했다. 반면 이씨 측은 정반대 주장을 펼쳤다. 계정 접근권한을 사실상 장악한 수사기관 내부에서 탈취가 이뤄졌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사건은 단순 범죄수익 환수 문제를 넘어 ‘압수된 국가 관리 자산이 어떻게 사라졌는가’라는 근본적 의문으로 확장됐다. 광주지법 항소심은 도박공간 개설과 범죄수익은닉 혐의 자체는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사라진 1476개 비트코인에 대해서는 이씨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누군가 이씨의 블록체인 계정에 접근해 당시까지 남아있던 비트코인 대부분을 다른 지갑으로 이체해 갔다”고 판시했다. 이는 곧 해당 비트코인의 이동 주체가 이씨로 특정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 결과 1심에서 600억원대에 달했던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에 대한 추징금은 항소심에서 15억원 수준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이 판결은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법원이 최소한 “외부 혹은 제3자의 개입 가능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다. 즉, 단순히 피고인이 숨기거나 빼돌린 사건이 아니라, 압수된 계정에 대한 추가 접근이 있었고 실제 자산 이동이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되지 않았다. 검찰 역시 이 사건을 단순히 피고인 책임으로만 보지 않았다. 2023년 11월 검찰은 광주경찰청과 서부경찰서를 상대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수사 정보가 외부로 유출됐을 가능성과 압수 과정의 적법성을 확인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 과정에서 사건 브로커와 거액 자금 흐름까지 거론되며 사건은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번졌다. 단순한 도박사이트 수사가 아니라 수사 기밀, 로비, 가상자산 이동이 뒤엉킨 구조적 사건으로 확장된 것이다. 최근 공판에서는 또 다른 쟁점이 드러났다. 증인으로 출석한 전문가 박씨 측 인물은 사라진 비트코인의 이동 경로를 분석한 결과 특정 거래소 계열 지갑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확인된다며, 도박사이트 운영 세력이 직접 자금을 이동시켰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의심받는 수사관 반면 이씨 측은 사건 직후 오히려 검찰에 진정을 제기하며 탈취 의혹을 먼저 제기한 점을 강조하며, 스스로 범행을 저질렀다면 그런 행동을 할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다. 또 블록체인닷컴 측 자료에 따르면 ‘탈취자’는 VPN을 이용해 해외 IP로 접속했으며, 일부 접속은 데스크톱 환경에서 이뤄진 것으로 분석됐다. 만약 이 분석이 사실이라면, 압수 과정에서 사용된 기기와 탈취에 사용된 기기가 동일하거나 밀접하게 연관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다만 이 같은 기술적 분석은 현재까지 법원에서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는 점에서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메일 기록 역시 의문을 키운다. 탈취 과정에서 수백건에 달하는 출금이 발생했다면 이에 상응하는 알림 메일이 존재해야 정상이다. 그러나 일부 기록만 남아 있고 상당수는 확인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온다. 만약 실제로 알림이 발송됐음에도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면, 이는 단순 오류가 아니라 의도적 삭제 가능성까지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이 사건은 세 가지 축으로 압축된다. 첫째, 경찰이 압수한 가상자산이 왜 완전히 확보되지 못했는가. 둘째, 압수 이후 누가 해당 계정에 접근해 자산을 이동시켰는가. 셋째, 그 과정에서 수사기관 내부 혹은 외부 세력의 개입이 있었는가다. 상식적으로 국가가 압수한 자산은 그 어떤 개인소유보다도 안전하게 보호돼야 한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는 정반대 결과가 나타났다. 압수 직후 대규모 자산이 사라졌고, 책임 소재는 규명되지 않았으며,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오히려 피고인 신분이 됐다. 계정 변경 직후 사라져 이메일 변경 직후 작업 이 사건이 단순한 형사사건을 넘어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만약 압수된 자산조차 안전하게 관리되지 못한다면, 국가 형사사법 시스템에 대한 신뢰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특히 가상자산과 같이 추적과 관리가 기술적으로 가능한 자산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점은 더욱 심각하다.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만 놓고 보면, 이 사건은 ‘탈취’가 아니라 ‘내부 유출’ 가능성을 강하게 의심케 한다. 한편, 지난달 15일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인물은 범행 주체가 경찰이 아니라 탈취범으로 지목된 이씨와 그의 아버지일 가능성이 크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광주지방법원 형사10단독 유형웅 판사는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을 받고 있는 이씨 부녀에 대한 속행 공판기일 재판을 열었다. 이씨 부녀는 2021년 11월 경찰 압수수색이 진행되던 중 자신의 블록체인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76개를 빼돌린 혐의로 기소됐다. 검사는 이날 A씨를 증인으로 신청해 신문했다. A씨는 과거 이씨 측 부탁을 받고 비트코인 환전에 도움 준 인물이다. 현재는 코인 관련 별도 사기 혐의로 보석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A씨는 이날 검사의 질문을 받고 “이씨 지갑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00여개의 행방을 쫓기 위해 거래 내역을 분석한 결과, 비트세븐 거래소와 연결된 지갑이 다수 등장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경찰은 일일 전송 제한량이 걸려 있어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을 여러 날에 걸쳐 경찰 지갑으로 옮겨 압수했는데, 같은 시기 탈취범은 순식간에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00여개를 빼간 것으로 나타났다”고 증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달리 이씨 지갑에서 순식간에 다량의 비트코인을 탈취해 간 점, 탈취된 비트코인 이동 경로에 비트세븐 거래소 지갑이 활용된 점을 고려할 때 탈취범은 비트세븐 거래소를 통제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며 사실상 이씨 부녀를 겨냥했다. 구속된 코인 주인 A씨가 언급한 비트세븐 거래소는 정상적인 가상자산 거래소가 아니라, 이씨 부녀가 해외에 서버를 두고 운영했던 도박사이트라는 주장이다. 비트세븐 거래소와 관련해 이씨는 도박공간 개설 혐의 등으로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확정받았다. 다만 해당 재판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76개에 관한 추징(현 시세 기준 약 1620억원) 책임은 인정되지 않아, 검찰은 범죄수익은닉 혐의를 적용해 이씨를 부친과 함께 추가 기소했다. A씨의 증언에 대해 이씨 부녀 측은 즉각 반박하는 대신 별도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