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24.12.22 16:30
얼마 전 미국에서는 바이든 대통령의 가짜 동영상이 나돌아 큰 소란을 빚었으며, 이전에도 선거 과정서 각종 가짜 뉴스가 나돌아 선거판을 흐리게 하고, 국민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코로나19가 세계를 휩쓸었던 최근 몇 년간 각종 가짜 뉴스로 적지 않은 사람이 백신 접종을 거부하거나 머뭇거리게 만들었고, 이로 인해 인명의 손상이 더욱 증가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런 면에서 세계보건기구(WHO)서도 백신 관련 가짜 뉴스와 그로 인한 백신 저항이나 거부를 공중보건에 대한 가장 큰 위협으로 고려하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가짜 뉴스는 대중들에게 공포나 우려를 초래하거나 또는 국가경제, 국가의 방위와 공중보건 능력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게다가 인공지능(AI)의 발전으로 가짜 뉴스는 이전보다 빠르고 쉽게 제작되고 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경찰청에서는 ‘가짜 뉴스(Fake News)’ 진단 앱을 개발하기에 이르렀다. 가짜 뉴스의 급속한 확산은 선거는 물론이고 재정시장, 소비행태, 신뢰와 진정성, 사회관계 등 거의 모든 것을 왜곡시키고 옳고 그름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일부 국가에서는 가짜 뉴스의 점증하는 영향을 차단하기
형벌의 위협이 잘못된 행동을 하지 않도록 만든다는 생각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인간은 매우 이성적이고, 사고하는 능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형벌을 경험하게 하거나 가할 수 있다고 위협함으로써, 그 고통을 다시는 감내하기 싫어서라도 잘못된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극히 상식적인 이 같은 생각이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다. ‘억제(Deterrence)’는 일종의 신념에 가까운 것인데, 그 효과는 실제로 거의 없다. 이런 이유로 억제는 오히려 양형·형벌의 더러운 비밀이라고 일컬어지기도 한다. 학계에서는 엄중한 형벌이 범죄를 예방하기는커녕 오히려 반대의 결과를 초래한다는 극단적인 평가를 내놓기도 한다. 또 엄중한 형벌로 대중을 억제하려는 ‘일반 억제’는 물론이고, 이미 형벌이 확정된 범죄자가 장래에 또 다시 재범하지 않도록 하려는 ‘특별 억제’도 그 효과가 확인되지 않았다고 토로한다. 소위 ‘한계 억제(Marginal Deterrence)’라는 것으로, 형벌의 엄중성은 실제로 억제 효과나 또는 재범을 낮추는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유일한 억제 효과는 형벌의 ‘엄중성(Severity)’이 아니라 형벌의 ‘확실성(Certainty)’
한때 ‘영웅은 태어나는 것인가, 아니면 만들어지는가’에 대한 논쟁이 화두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저마다 그럴듯한 논리를 내세웠지만, ‘시대의 영웅’이라는 말만 봐도 어쩌면 영웅은 태어난다기보다는 만들어지는 것으로 보였다. 난세가 영웅을 만든다고 말처럼 말이다. 범죄학서도 비슷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범죄자는 태어나는 것인가, 아니면 만들어지는가’에 대한 논쟁이다. 범죄학에서는 이를 두고 ‘본성(Nature)과 양육(Nurture)의 논쟁’으로 이름을 붙이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생물학적 요인과 사회적 요인의 결합한 결과로 범죄를 야기한다는 것이다. 생물학적으로, 유전적으로 타고난 선천적 기질 및 성향과 범죄를 유발하거나 조장하는 범죄적 환경이 결합한 결과가 범죄 성향, 범죄성이라고 한다. 더 쉽게 말하자면 범죄성의 개인적 성향, 기질을 가진 사람이 범죄를 유발, 조장하거나 적어도 용이하게 하는 환경에 처하게 될 때 범죄 발생 개연성이 가장 높다고 한다. 그렇다면 생물학적, 유전적 요인이라고 할 수 있는 본성과 후천적인 사회적 환경이라고 할 수 있는 양육 요인이 개인의 범죄성에 얼마나 책임이 있을까? 과연 생물학적 본성 요인이 범죄 행위 유발에 더 많은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소비 행태도 예외일 수가 없다. 대면 거래보다 비대면거래가 상거래의 중심이 됐고, 결과적으로 백화점에는 명품 브랜드만 남을 것이라는 과장 아닌 과장도 나온다. 이런 와중에 각종 무인점포가 하루가 다르게 늘어가는 추세다. 상점주에게는 인건비 절감은 물론이고 24시간 영업이라는 달콤함이 있지만, 안타깝게도 ‘무인(無人)’이라는 특징이 누군가에게는 무주공산, 그야말로 주인이 없는 공공의 자산으로 여겨지는 듯하다. 바로 무인점포 절도 이야기다. 무인점포서 절도를 벌이는 이들에게 무인점포는 마치 달콤한 꿀이 가득한 꿀통처럼 갖고 싶고 싶은 게 가득한데도 아무도 없는 그야말로 무법지대가 된다. 한때 세간의 관심을 끌었던 ‘양심 냉장고’라는 프로그램이 일종의 양심 시험장이 됐듯이, 요즘 무인점포는 새로운 양심의 시험장이 된 것 같다. 양심 냉장고처럼 이곳도 양심에 따라 물건을 고르고 값을 치르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 양심 시험장이 우려스러운 이유는 또 있다. 무인점포는 신뢰를 기반으로 가능한 상행위다. 무인점포 절도가 성행하는 건 신뢰가 무너졌음을 뜻한다. 실제로 ‘Legatum’이라는 영국의 Think Tank서 발표한 ‘2023 번영 지수
재난과 사고로부터 근로자의 안전 담보를 최우선 가치로 제정된 ‘중대재해법’이 정치권과 재계서 뜨거운 감자로 부각되고 있다. 근로자의 안전을 위한 것이지만 기업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이유로 중소기업이나 사업장에 대해 일정 기간 유예를 허용했으나, 그 유예기간이 종료되면서 이를 더 연장하자는 주장과 당장 시행돼야 한다는 논쟁이 일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과 노동계를 중심으로 하는 시민단체에서는 이미 법이 적용되고 있는 대기업은 물론이고, 일정 규모 이하의 기업들에게 허용됐던 준비를 위한 유예기간이 끝났으니 이제는 모든 기업체에 적용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여당(국민의힘)과 산업계에서는 준비기간이 짧고 기업 부담을 이유로 한 번 더 연장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산업 안전은 여야나 정파를 떠나서 누구에게나 중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이를 대변하듯 세계 각국에선 다양한 방식과 형태로 근로자의 안전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게 사실이다. 이 같은 노력의 가장 극단적인 모습 중 하나가 바로 영국을 중심으로 일부 국가들의 소위 ‘기업 살인(Corporate Killing 또는 Corporate Homicide나 Manslaughter)’이라는 범죄가 아닐
잊을만하면 접하게 되는 뉴스가 바로 ‘보험사기’ 범죄다. 보험사기는 선진사회의 불편한 진실일지도 모른다. 보험이 발달할수록 보험 사기꾼이 많아지곤 한다. 모든 사기 범죄가 마찬가지겠지만 보험사기는 경제질서를 불안하게 하고, 궁극적으로 경제정의를 흔들리게 한다. 사법 정의와 경제정의를 한꺼번에 부정하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보험사기는 보험 과정을 속이고 사취하려고 행해지는 모든 행동을 말한다. 보험 청구인이 자신이 자격이 없는 어떤 혜택이나 이점을 취하려고 시도하거나, 반대로 보험사가 마땅한 어떤 혜택을 거부할 때 발생한다고 정의될 수 있다. 보험사 임직원이나 보험 청구인 모두가 보험사기의 가해자가 될 수 있다. 가장 익숙한 보험사기는 아마도 허위 보험 청구가 아닐까 한다. 이는 기만적인 의도를 가지고 신청된 보험 청구라고 할 수 있다. 보험사기는 오래된 범죄며, 그만큼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보험사에 접수되는 보험 청구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매년 엄청난 재정적 손실과 부담을 초래하게 만든다. 보험사기는 의료보험·실업보험·생명보험·자동차보험·화재보험·상해보험 등 거의 모든 보험 분야서 발생하며, 무고한 사람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곤 한
최근 정치적 테러가 연이어 발생해 전 국민을 놀라게 했다. 테러건 아니건, 정치적이건 아니건 폭력은 어떤 경우에도 용납도, 용서될 수도 없다. 그럼에도 이번 정치인에 대한 폭력을 더 우려스럽게 바라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아마도 대중적 지명도가 높은 정치인이 폭력의 대상이었다는 점과 그 폭력의 동기와 폭력 행위자의 특성 때문일 것이다. 단순한 폭력과 테러는 경계가 다소 애매할 수 있지만, 단순한 폭력이 사적 동기와 목적의 사적 행동의 결과라고 한다면, 반면에 테러는 사적이기보다는 상징성을 강조하는 개인 또는 단체의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의 두 정치인에 대한 폭력을 우리가 정치적 테러라고 부르는 것은 물론 언론의 작명이지만, 정치인이라는 공인을 표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그 상징성이 더 크고, 정치인과 가해자 사이의 사적인 관계와 동기를 찾을 수 없다는 점에서 언론의 정치적 테러라는 표현은 틀리지 않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 같은 정치적 테러가 일어나는가? 다양한 설명과 이유가 있겠지만, ‘급진화(Radicalization)’를 하나의 이유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세계 테러
올해는 세계 각국서 굵직한 선거가 치러진다. 대만에서는 얼마 전 총통 선거가 끝났고, 미국에서는 정당별 대통령 후보자 선출을 위한 선거가 한창이다. 한국에서는 오는 4월 총선이 예정돼있다. 흔히 선거를 두고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말하곤 한다. 아마도 보통·평등·직접·비밀·자유 4대 원칙에 따라 치러지기 때문일 것이다. 선거의 기본원칙을 지키는 것이 민주국가의 사명이기에 국가는 선거와 관련된 법과 제도를 엄격하게 집행하고 있다. 선거의 원칙은 지극히 평범하고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기본을 지키지 않는 사례를 찾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선거가 끝나기 전부터 선거법을 위반하는 각종 행위가 적발되기 일쑤다. 선거법은 비교적 엄격한 편이어서 위법 행위에 대해서는 엄중하게 처리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그럼에도 선거사범이 없어지지 않는 이유는 뭘까? 흔히들 인간을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존재라고 한다. 흉악한 범죄자조차 사고하고 생각하는 능력을 가진 존재로 보기도 한다. 사실 합리적·이성적이라는 건 인간이 계산할 줄 안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더 쉽게 말하자면 인간은 범죄 행위를 포함한 모든 행동을, 그 결과 얻어지는 이익과 그로 인한 비용을 합리적·이성적으로 계
최근 경기 북부 지역서 연쇄 살인범이 다방 여주인 두 명을 연이어 살해한 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주고 있다. 물론 이 같은 유형의 잔혹한 범행이 처음은 아니며, 이보다 훨씬 더 경악스러운 범행이 심심치 않게 발생한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번 사건은 우리에게 숙제를 던져주고 있다. 살인범이 두 명의 여성을 잔인하게 살해하고 반성할 줄 몰라서가 아니라, 연쇄 살인범이 거쳐온 시간과 삶의 방식 때문일 것이다. 여기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살인범이 살아온 삶의 궤적이다. 그가 지난 20여년을, 흔히 말하는 교도소서 형을 사는 수형자, 재소자로 살아왔다는 사실을 먼저 이야기하고 싶다. 교도소는 유죄가 확정돼 자유형을 선고받은 범죄자를 수용해 다양한 처우로 교화시켜 사회로 복귀할 수 있도록 하는 곳이다. 때 묻은 옷을 세탁소에 보내듯 범죄인이 교도소라는 세탁소서 새 사람으로 만들어지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우리의 기대와 동떨어져 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교도소를 세탁소가 아니라 염색공장이라고 비난한다. 교도소에 들어갈 때보다 더 나빠지기가 더 쉽다는 것이다. 이유는 이렇다. 먼저 우리의 교도소가 너무나 큰 시설에 너무나도 많은 재소자를 수용하기에 제대로
최근 야당 대표가 공격받은 일로 세상이 시끄럽다. 정치적 의미와 결과는 차지하더라도 사건이 주는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다. 야당의 대표가 공격받은 대상이라는 점에서 사건 자체의 상징성이 작지 않지만, 정치적으로 이용하기에 앞서 “왜?”라는 물음이 선행돼야 할 것 같다. 왜 그는 야당 대표를 공격했으며, 왜 그런 동기를 가졌으며, 그가 바라는 바는 무엇일까? 테러에 대한 다양한 논의와 연구가 있지만, 실무나 학문적으로 한결같이 동의하는 바는 테러범들이 과거에는 무작위적으로 폭력을 폭발시켰으나 이제는 테러가 무작위 폭력이 아니라 철저하게 표적을 선택한 작위적으로 계획된 폭력에 가깝다는 것이다. 테러범은 테러가 주는 상징성이 크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큰 불안을 고조시킬 수 있는 대상을 표적으로 삼곤 한다. 이런 점에서 야당 대표에 대한 테러가 자행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이 같은 유형의 범죄를 어떻게 규정하는 게 옳은 걸까? 아마도 신념이라고 믿을 정도로 확신에 찬 범행이라고 규정하는 데는 별 문제가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야당 대표를 공격한 사람은 왜 확신 범죄자가 됐으며, 무엇 때문에 확신적 신념을 가졌을까?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확신 범죄는 종교적·정
어느 유명 배우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세상을 놀라게 했고, 부고를 접한 많은 사람들은 분노했다. 나아가 그의 죽음은 ‘공개 망신 주기’의 어두운 단면을 부각시켰다. 물론 이 유명 배우의 죽음이 공개 망신 주기가 초래한 비극의 유일한 사례는 아니다. 과거에도 유사한 사건은 심심치 않게 발생했다. 수사기관의 수사를 받던 유력 기업인이나 정치인의 안타까운 죽음도, 어쩌면 공개 망신 주기에서 비롯된 비극일지도 모른다. 안타깝게도 이토록 치명적일 수 있는 공개 망신 주기를 공론화하려는 움직임은 지금껏 그리 부각되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국내는 물론이고, 미국에서도 종종 목격하게 되는 어두운 사회적 그림자임에도 말이다. 그렇다면 공개 망신 주기란 무엇일까? 미국에서는 공개 망신 주기를 ‘Public Humiliation’ 또는 ‘Public Shaming’이라고 표현한다. 보통은 범법자나 수형자, 특히 공적인 위치나 지위에 있는 사람을 불명예스럽게 만들거나 망신을 주는 형벌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형태의 형벌은 물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존재했고, 우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멍석말이’와 같은 사례가 공개 망신 주기의 과거 형태라고 할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는 ‘
언론을 통해 해외서 온 여행객이 절도와 강도를 당했다거나, 택시·버스 기사가 손님으로부터 폭력을 당했다는 소식을 심심치 않게 접하곤 한다. 여행객이나 운전기사가 범죄 피해에 취약한 이유를 학계에서는 상황적 취약성과 직업적 취약성으로 설명하고 있다. 경제적 발전과 함께 찾아온 세계화의 물결에 따라 물리적 국경은 큰 의미가 없어졌고, 누구나 자유롭게 여행을 즐길 수 있게 됐다. 다만 이 같은 변화는 약간의 역기능도 초래했는데, 그중 하나가 여행객에 대한 범죄다. 여행객은 현지서 일시적으로 범죄에 노출되고, 자신의 방어에 취약해진다. 여행지의 지리와 사정을 잘 알지 못하는 데다, 그곳의 사람과 관습을 잘 모르는 이방인이기 때문이다. 반면 범행 동기를 가진 그 지역의 잠재적 범죄자는 범행으로 취할 수 있는 이익이 크고, 피해자가 신고할 개연성은 낮아 붙잡힐 위험이 크지 않다는 이유로 여행객을 범죄 대상으로 선택한다. 여행객은 현금을 다량으로 소지하고, 주변사람의 도움을 받기 어렵기에 아주 매력적인 표적이 된다. 결국 여행객은 일시적이나마 범죄 발생의 필요충분조건을 잠재적 범죄자들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범법자들은 말·행동·의상 등으로 여행자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배우자 또는 연인을 대상으로 하는 폭력 행위는 어제오늘에 국한된 범죄가 아니다. 어쩌면 인류 역사와 함께한 인간사회의 한 단면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빈번하게 이어져왔다. 학대적인 관계서, 여성은 약자의 위치서 빈번하게 폭력에 노출되곤 한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여성 셋 중 한 명 비율로 생애 어느 시점에 학대적인 관계를 경험했으며, 9초마다 여성 한 명이 폭력을 당하고 있다고 한다. 비록 여성이 배우자인 남성을 살해하는 사례도 적지 않게 보고되고 있지만, 이는 학대 관계를 벗어나기 위한 마지막 수단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전히 폭력 행위에 따른 절대 다수의 피해자는 경제적·신체적·사회적 취약성에 노출된 여성이다. 통계적으로 배우자 살해의 70%는 여성이 피해자다. 동남아시아 지역서 발생한 여성 살인사건의 약 55%는 남편이 범인이었고, 아프리카와 미국서 벌어진 여성 살해사건 역시 40%는 남편이 저지른 것으로 보고된다. 이 같은 통계는 배우자 살해와 관련해 여성이 일반적으로 피해자 위치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배우자 살해를 의미하는 ‘Uxoricide’는 라틴어로 아내를 뜻하는 ‘Luxor’와 죽이다(kill) 또는 자르다(cut)라는 뜻을 가진 ‘Cae
누구는 범죄의 피해자가 되고 그것도 한 번만이 아니라 두 번 세 번 반복적으로 피해자가 되는 반면, 누구는 평생 단 한 번도 범죄 피해를 경험하지 않는다면 대체 무슨 이유에서 그럴까? 사람마다 범죄의 피해자가 될 개연성이 다른 이유는 다양할 수 있으나 피해자학에서는 범죄 위험성에의 노출과 노출 시 자기 보호와 방어능력의 차이에서 찾고 있다. 보통 사람들은 이를 범죄 취약성(Vulnerability)이라고 한다. 범행의 가능성이나 위험성이 많은 범죄자 또는 잠재적 범죄자와 근접(Proximity to Crime/Criminals)하거나, 범죄가 많이 발생하는 시간과 장소에 많이 노출되면 범죄에 희생될 확률, 위험성도 높아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어떤 사람은 범죄의 위험에 노출되지 않고 어떤 사람은 많이 노출(Exposure)되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피해자학에서는 대체로 개인의 생활양식(Lifestyle)과 일상 활동(Routine activity)에 따라 범죄 위험성에의 노출이 달라진다고 말한다. 마치 미세먼지나 황사가 덮칠 때 각자의 일상적 활동이나 생활 유형에 따라 노출되는 빈도와 정도가 달라지는 것과 같다. 황사나 미세먼지가 심하면 누
최근 어느 종교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다시 한번 극단적 선택 문제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극단적 선택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건 비단 우리 사회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만 해도 2019년 4만7000명 이상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등 전체 사망 원인 중 10번째였다고 한다. 특히 10~34세 사이의 청장년층에서는 2번째 사망 원인이었고, 35~44세 장년층에서는 4번째로 높은 사망 원인이었다. 비록 극단적 선택을 예측하는 건 쉽지 않지만, 사회적·문화적·환경적 위험요소를 해소함으로써 예방할 수 있다. 안타까운 건 잘못된 통념과 오해가 극단적 선택에 관한 사람들의 신념과 태도를 형성하게 하고, 이 신념과 태도가 도움을 구하는 데 주요 장애가 된다는 것이다. 몇몇 사람은 극단적 선택을 할 위험이 높은 누군가와 이야기를 주고받는 게 오히려 그 사람의 극단적 선택을 부추긴다고 생각한다. 현실은 이와는 반대다. 극단적 선택을 생각하는 사람과 묻고 이야기하는 것은 불안을 낮추고, 소통을 열고, 충동적 행동의 위험을 낮출 수 있다. 또 다른 통념은 흔히 극단적 선택을 언급하는 사람은 그냥 관심을 추구할 뿐이지, 행동으로 옮기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극단적 선
공공 분야, 민간 분야를 막론하고 효과성 그 이상의 효율성을 따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민간 분야는 이익이나 이윤을 높여서 자원을 어느 정도 확보할 수도 있겠지만, 거의 전적으로 예산에 의존하는 공공 분야는 그 예산 자원에 언제나 우선순위가 있고 당연히 그에 따라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특히 치안 예산은 국가 예산서 최상위 순위에 해당한다고 보기 쉽지 않은 것 또한 사실이다. 그만큼 경찰 예산이란 자원은 한계가 명확하다. 그래서일까? 최근 예산이나 경찰 자원과 관련된 두 가지 흥미로운 사건이라면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 하나는 경찰 예산을 절감했다는 포상으로 특별승진이 있었다는 소식이고, 나머지 하나는 예산·인력 상 어려움으로 치안센터를 대대적으로 폐쇄할 계획이라는 소식이었다. 사실 예산 절감은 자원의 한계에 민감할수록 중요한 일이고, 그 보상으로 특별승진까지 주어질 정도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막무가내식 예산 절감은 오히려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음으로써 절감되는 예산이라면 포상이 아니라 처벌의 대상이어야 한다. 예산 절감이 중요하지 않고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치안센터의 폐지는 훨씬 더 깊은 고
최근 초등학교 교사들의 의문의 사망과 관련한 가해자, 또는 원인 제공자라고 추정되는 사람들에 대한 신상 털기가 논란이 되고 있다. 이런 형태의 신상 털기는 결국 일종의 ‘사적 제재’로 작용하기에 문제가 될 수 있다. 사적 제재를 간단하게 정의하자면 법적 절차 없이 사적으로 내리는 형벌이다. 법치주의 국가서 사적 제재는 엄연히 금지되고 있다. 사적 제재 문제는 비단 국내에 국한된 게 아니며, 전혀 새로운 것도 아니다. 세계적으로 코로나19 펜데믹을 계기로 마스크 미착용자를 향한 일종의 사적 제재가 유행병처럼 번지기도 했다. 미국에서는 사적 제재 행위를 ‘공개적 수치심 주기(Public Shaming)’ ‘공개적 망신 주기(Public Humiliation)’ 등으로 부르고 있다. 거의 모든 민주주의 법치국가서 사적 제재를 금지하는 건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먼저 오판의 위험이다. 잘 짜인 체계를 갖춘 국가서도 무고한 사람이 억울하게 처벌을 받는 오판 사건이 적지 않게 발생하는 마당에, 사적 제재가 광범위하게 벌어진다면 오판의 위험은 훨씬 더 커지기 마련이다. 국가기관이라면 다양한 검증 장치가 있지만, 사적 제재에는 아무런 검증 장치가 없다. 국가에 의한 오
최근 주요 대중매체는 물론이고 각종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유사한 신종 범죄의 위험성이 부각되고 있다. 연애를 빙자해 벌어지는 이른바 ‘연애사기(‘Romance Scam’ ‘Romance Fraud’)’가 바로 그것. 연인이란 가면을 쓰고 벌이는 각종 연애사기는 전 세계에 전염병처럼 퍼지고 있다. 실제로 미 연방거래위원회(FTC)는 지난해 미국인 7만여명이 연애사기로 무려 13억달러를 잃었다고 발표했다. 미국 정부는 연애사기에 각별하게 주의할 것을 당부했고, 넷플릭스는 ‘데이트 앱 사기가 당신을 노린다’는 내용을 담은 <The tinder swindler>를 방영해 사람들이 경각심을 갖도록 했다. 그럼에도 피해자는 좀처럼 줄지 않고 있으며, 이에 따라 피해 금액도 더 커지고 있다. 국내서도 별반 다르지 않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전체 온라인 사기 중 연애사기를 포함하는 기타 유형으로 분류된 사기가 2017년 1만7073건서 지난해 4만7087건으로 5년 사이에 4배가량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모든 기타 유형이 연애사기를 뜻하는 건 아니지만, 그 증가폭은 무서울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연애사기를 표현할 때 ‘Scam’은 대체로
이태원 참사, 묻지마 범죄 등 사회적으로 공론화되는 사건이 발생하면, 경찰이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느냐에 관한 물음이 부각되곤 한다. 그때마다 경찰은 조직과 구조 개혁을 내세우곤 했지만, 눈높이를 맞추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경찰이 추진하는 개혁이 ‘찻잔 속의 바람’이 아니라 ‘태풍의 눈’이길 원하는 시민에게는, 그들이 내놓은 자구책이 그리 와 닿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다면 경찰은 시민의 바람을 몰라서였을까, 아니면 알면서도 지각변동을 일으킬만한 개혁적 변화를 원치 않았던 걸까? 변화보다는 현상 유지를 선호하는 게 관료제라지만, 국민을 보호할 사명을 가진 경찰이라면 더 과감해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경찰개혁의 필요성을 논하는 많은 사람은 기형적인 조직구조를 타파해야 한다고 말한다. 경찰은 순경서부터 경찰청장인 치안총감에 이르기까지 무려 11개 계급이 있고, 조직 형상은 철탑형, 항아리형, 피래침형 등으로 표현된다. 조직이 커질수록 업무를 관리하고 감독하는 역할에 보다 많은 인력이 투입된다. 이는 곧 내근 인력의 증가로 이어지고, 일선 현장 인력의 부족을 초래한다. 도둑을 잡는 경찰보다, 그 경찰을 관리·감독하는 경찰이 많아진다는 뜻이다. 경찰은 부채꼴 모
경찰은 전통적으로 범죄를 통제하며, 그만한 책임과 역할이 있다고 여겨져왔다. 그리고 거의 모든 경찰이 안전의 중심에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현실은 더 안전해지기보다 범죄로부터 더 위험하고 두려운 ‘잔인한 세계 증후군(Mean World Syndrome)’에 노출돼있다. 이 같은 현실의 이면에는 범죄예방과 관련된 경찰의 역할에 관한 오해와 과신이 있다. 안전과 보안에 관한 전통적 접근은 ‘범죄와의 전쟁(War on crime)’으로 대표되는 ‘범죄에 대한 강경 대응(Tough on crime)’이 핵심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이 같은 접근법이 사회 안전에 끼친 영향은 미미한 수준이었다. 최선의 범죄대책은 범죄가 일어나지 않도록 사전에 예방하는 것이지만, 그간 경찰은 범죄 발생 이후 대응법에 집중했던 게 현실이다. 질병을 치료하려면 비용, 고통, 시간 등을 투입해야 한다. 게다가 치료하더라도 질병에 걸리기 전보다 몸 상태가 좋아진다고 확신하기도 어렵다. 범죄 역시 마찬가지다. 질병을 예방하려면 병의 원인을 진단하고 진단에 따라 사전조치를 해야 하듯이, 범죄도 예방을 위해서는 범죄를 유발하거나 초래하는 저변의 근본적 원인을 찾아야 한다. 안타깝게도 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