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벌은 법과 질서를 유지하고 사회를 보호하며 잠재적 범법자를 억제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모든 사법제도의 핵심적 관점이다. 죄와 범죄에 대한 적절한 형벌의 적용은 개인의 행위를 형성하고, 공동체의 안위를 지키는 데 있어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형벌은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 개인에게 부과되는 법률적 결과로서 벌금, 보호관찰, 사회봉사, 수용, 또는 심지어 사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를 갖는다. 형벌의 1차적 목표는 ▲응보(Retribution) ▲교화개선(Rehabilitation) ▲무능력화(Incapacitation) ▲억제(Deterrence)로 집약될 수 있다.
응보는 범죄로 초래된 해악에 대한 payback과 정의감을 제공하는 것이다. 교화개선은 범법자를 개선해 사회로 재통합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무능력화는 위험한 사람을 사회로부터 제거하는 것이며, 억제는 범죄 행위의 결과를 보여줌으로써 잠재적 범법자의 범행 의욕, 의지를 꺾는 것이다.
형벌은 어떻게 적용되느냐에 따라 사회 전반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공정하고 효과적인 형사사법제도는 시민들에게 신뢰를 심어주고, 궁극적으로 안전감을 제공한다. 적절하게 적용된 형벌은 일종의 억제제(deterrent)로서, 사람들이 형벌이라는 범죄 결과의 두려움에 기인해 범죄 활동에 가담하는 것을 억제한다.
여기에 더해 공정한 형벌 적용은 어쩌면 최후의 사법 정의 실현이라고도 할 수 있다. 형벌이 피해자를 위한 안전조치(safeguard)로서 작용해 피해자에게 일종의 종결과 정의를 제공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로 죄와 벌의 균형, 즉 ‘비례성(proportionality)’이다. 이는 곧 어떤 범죄에 대해 어떤 형벌이 정당화되는가의 문제다. 형벌이 범죄에 상응하는지 여부를 결정하는 과정서 다양한 요인이 고려되지만, 지금까지는 거의 배타적으로 범법자·피의자 중심으로만 고려되다시피 했다.
더 중요한 피해자의 관점은 완전히 배제됐다는 것이다.
당연히 시민의 눈, 특히 피해자의 시각에서는 죄와 벌이 균형을 이루지 못한 것으로 비춰졌고, 결과적으로 비례의 원칙, 비례의 이론은 기대하기 어려웠다.
동일한 범죄라도 가해자 혹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에 따라 범죄의 심각성과 피해의 정도가 확연하게 달라질 수 있다. 그럼에도 지금껏 우리는 가해자 특성만 고려한 가중과 감경을 저울질했다. 물론, 아동·장애인·여성·노인 등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 범죄는 가중처벌했다.
하지만, 이는 비례의 원칙보다는 동기의 흉악함이 가미된 고려였을 것이고, 이 경우 가해자의 특성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그러나 사법제도의 궁극적인 목표가 사법 정의 실현이라면, 가해자 특성만을 고려한 비례의 원칙이나 죄와 벌의 균형 및 죄에 상응한 처벌은 요원한 것이 되고 만다. 특히 피해자 및 피해자 가족이 사법제도를 불신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 죄와 벌의 불균형, 죄에 상응하지 않는 처벌에 기인한 것임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피해자 입장서 사법 정의란 피해의 회복이어야 한다. 회복을 위해서는 피해에 대한 종결(closure)이 있어야 하는데, 그 종결의 하나가 자신에게 가해진 피해에 상응한 처벌이 가해자에게 가해짐을 확인하는 것이다.
이는 곧 양형 요소가 현재의 가해자 중심서 피해자 중심으로 이동돼야 함을 의미한다. 동일한 성격의 범죄라고 판단한 채 피해자가 누구건 그 피해의 정도가 어떻게 다른지 고려하지 않고, 획일적으로 가해자에 따라 감경해 나가는 양형 결정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남녀노소를 감안하지 않고 같은 부위의 외상이라고 치료 방식을 동일하게 하는 것과 다들 바 없는 것이다.
양형은 가해자 특성과 차이에 무관하게 피해자의 특성과 피해의 특성과 정도에 따라 결정돼야 한다. 그래야만 피해자에게 사법 정의는 실현되고, 제대로 사건이 일단락돼야 회복이 시작될 수 있는 것이다.
[이윤호는?]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명예교수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