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24.11.23 03:01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조선 중기의 학자 이성령이 조선 초·중기의 역사를 편년체로 정리한 사서 <춘파일월록(春坡日月錄)>에 실려 있는 글을 요약해본다. 『광해가 탐욕스럽고 음란하였으므로 개똥이가 안팎에서 제 마음대로 하며 이이첨과 한 마음이 되어 어울렸다. 뇌물을 받고 벼슬을 팔아 기강이 전연 없었으니, 대궐 안의 모든 일이 개똥이의 손에서 한결같이 결정되었다. 궁녀가 광해의 잠자리를 모시는 것도 광해가 개똥이의 허락을 얻어야 되었기 때문에 개똥이가 여러 계집에게서 뇌물을 받았는데, 그 값의 많고 적음에 따라 광해로 하여금 동침하게 하면 광해가 감히 거스르지 못하였다. 하루는 광해가 개똥이를 데리고 잠자리에 들려 하였는데, 박씨라는 옛 상궁이 땅에 꿇어앉아 간하니 광해가 부끄러운 빛이 있었다. 또 개똥이의 말을 어기는 일이 있을 때는 성내어 말하기를 “큰 덕을 감히 잊는단 말이오. 내 입에서 말이 나올 것 같으면, 임금이 자리를 보전하지 못할 것이오”하니, 광해가 당황하고 부끄러운 빛이 있었다.』 광해는 임금의 시호를 받지 못한 임금, 즉 광해군을 의미하고 개똥이(介屎, 김개시)는 광해군이 시호를 받지 못하는 과정에
지난 해 여름 <일요시사> 지면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의 의식세계를 엿보다’라는 제하로 7회에 걸쳐 박 대통령의 문제를 샅샅이 훑어보았다. 그리고 마지막회에 신라의 여주 진성여왕을 거론하며 박 대통령의 하야를 주장한 바 있다. 잠시 당시의 글을 요약해보자. 『진성여왕은 보위에 오르자 엄연히 가정과 부인이 있는 유부남 위홍을 궁으로 끌어들여 사랑을 나누며 초기에는 그런대로 국정에 의욕을 보인다. 그러나 이듬해에 위홍이 죽자 진성이 돌변한다. 위홍을 대신할 미소년 3명을 몰래 궁으로 불러들여 음란하게 지내고, 급기야 그들에게 요직을 주어 전면에 내세우며 나라의 정사를 맡긴다. 상황이 이에 이르자 국가 기강이 문란해지고 또한 도처에서 반란이 발생하면서 파국으로 치닫는다. 이에 직면하자 진성여왕은 일대 용단을 내린다. <삼국사기>에 실린 그녀의 변이다. “근년 이래로 백성의 생활이 곤궁해지고 도적들이 봉기하니, 이것은 내가 덕이 없기 때문이다. 숨어 있는 어진 자에게 왕위를 넘겨주기로 나의 뜻을 결정하였다.” 이어 그녀는 헌강왕의 아들인 효공왕에게 보위를 넘기며 조용하게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왜 당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최근 탈고한 작품 중 일부를 인용해본다. 『어머니께서 신발 가게에서 검정 고무신 하나를 골라 들고는 발에 맞는지 신어보라 하신다. 신발을 바라보며 잠시 망설였다. 신어서 발에 맞으면 그 신발을 사줄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신발을 신지 않자 어머니의 성화가 이어졌다. 짐짓 모른 체하며 곁에 있는 하얀 고무신을 바라보았다. 어머니의 시선 역시 그곳으로 향했다가 모른 체하며 다시 성화를 이어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티자 어머니께서 한마디 하신다. “그러면 깨끗하게 신어야 돼.” 어머니께서는 가격이 비싼 것보다도 쉽게 때가 타는 하얀색을 싫어하시는지 몰랐다. 여하튼 함박웃음을 보이며 “그러마”라고 답하고 하얀 고무신을 집어들었다. 얼른 구멍이 송송 뚫린 검정 고무신을 벗어버리고 하얀 고무신을 신어 보았다. 조금은 작은 듯했다. 그 고무신보다 한 치수 더 큰 신을 골라 신어보았다. 이번에는 너무 커 보인다. 두 신발을 두고 갈등에 빠질 무렵 어머니께서 또 한 말씀하신다. “금방 발이 자랄 테니 큰 신으로 고르라.” 또 생각에 잠겨든다. 큰 신발을 신으면 어머니 말씀대로 오래
최근 언론에 실린 내용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의 회고록 논란과 관련 자신의 페이스북에 “새누리당이 송 전 장관 회고록을 근거로 진실을 묻고 있다”며 ‘판문점 총질을 사주한 총풍 사건’을 거론한 뒤, “당신들은 그렇게 하면 안 된다. 그것이 염치다. 죽지 못해 산다는 국민들을 위한 예의다”라고 적었다.’ 상기의 내용을 빌면 박 시장은 ‘총풍 사건’이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의 사주로 발생했다고 단정하고 있다. 동 사건은 지난 1997년 12월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 앞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측의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 당시 청와대 행정관을 비롯한 3명이 중국 베이징서 북한의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참사 박충을 만나 휴전선에서 무력시위를 해달라고 요청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사건이다. 동 사건으로 3명은 보안법 위반 혐의 등으로 대법원서 징역 2~3년과 자격정지 2년에 집행유예 3~5년의 형이 확정된다.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오래전 정치판을 떠난 필자가 왜 이를 문제 삼는지에 대해 논해야겠다. 이야기는 지난 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왕조실록 영조 51년(1775) 8월 기록이다. 『임금이 ‘고금동충(古今同忠)’이라는 4자를 써서 내려 주고 이르기를 “신수근은 포은(정몽주)과 충의가 같다”하고 호조에 명하여 사우를 만들어 주고 그 곁에 각을 세워서 이것을 새기어 걸게 하라고 하였다.』 영조가 고려시대에 정몽주가 있었다면 조선시대에는 신수근이 있어 자랑스럽다고 했다. 아울러 그에게 믿음의 지존이라는 의미의 신도(信度)라는 시호를 내린다. 그런데 정몽주는 누구나 알고 있는데 반해 신수근이란 인물은 생소하다. 그 사유는 이외로 간단한다. 정몽주는 고려라는 국가를 위해 충성을 다한데 반해 신수근은 표면상으로 살피면 한 개인, 그것도 조선 최고의 폭군이었던 연산군에게 충성한 것으로 살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수근의 이면을 살피면 단순히 연산군 개인에게 충성한 게 아니었다. 하여 그 진실을 알게 된 영조가 사우를 만들어주고 또한 편액까지 하사한다. 그 사연을 살펴보자. 신수근은 연산군의 처남(폐비 신씨의 오빠)이며 중종의 장인(단경왕후의 아버지)이었다. 흘낏 살피면 신수근의 처지가 참으로 곤란하리란 사실이 한 눈에 살펴진다. 연산군이 중종반정으로 폐위
누누이 밝혔지만, 나는 우리 역사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을 가장 존경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박 전 대통령께서 짧지 않은 기간 이 나라를 경영하면서 그저 그런 백성에 머물 수밖에 없던 내가 인간군에 포함될 수 있었기 때문. 즉 맹자의 사상 무항산무항심(無恒産, 無恒心 : 항산이 없으면 항심이 없다는 말로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바른 마음을 견지하기 어렵다)에 따른다. 이와 관련해 구체적으로 나열해보자. 나보다 인생 오래 사신 분들도 그러하겠지만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나의 어린 시절, 그리고 당시 주변에 삶의 방식은 고려, 조선시대 일반 백성들의 삶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집은 수수에 진흙을 바른 초가였고, 지금은 펑펑 쓰고도 남아도는 전기는 그 실체도 알지 못했고, 연료 또한 나무가 전부였고(그런 연유로 마을서 밥을 짓는 과정에 여러 번 화재 발생했다), 수도는커녕 펌프도 없어 개울서 빨래하고 날이 밝자마자 소 몰고 논밭으로 나가 밤이 돼서야 파김치가 되어 집으로 돌아오고 어쩌다 계란 하나 먹으면 여러 날이 든든했고…. 그러던 삶의 방식은 박 대통령이 이 국가를 경영하면서 그야말로 급격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초가가 기와집으로 변했고
지난 19대 국회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었다. 월급은 받아가면서 일하지 않아 국회를 해산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월급 또박또박 받아가도 좋으니 제발 일 좀 하지 말아주었으면 좋겠는데, 그게 오히려 국익에 도움이 되는데 굳이 일을 하려고 하니 해산하라는 의미라 했다. 그런데 출범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20대 국회를 바라보면 19대가 무색할 정도다. 각설하고, 대한민국 국회는 이 사회서 무용지물을 떠나 지극히 해로운 기생충으로 전락되었다. 입만 열면 헛소리고 일만 벌리면 삼천포로 빠지고 만다. 그런데 더욱 문제는 자신들의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도 모르고 나아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점이다. 왜 그럴까. 가장 중요한 원인은 국회의원 개개인 모두 주제 파악이 안 된다는 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의 역량은 그야말로 쥐꼬리만 한데 이 사회서 받는 대우는 지나칠 정도로 과도하기 때문이다. 하여 차제에 국회가 이 사회에 필요한지 진중하게 살펴보자는 이야기다. 국회의 가장 중요한 기능인 입법 활동에 관해서다. 국회의원들이 가뭄에 콩 나듯 법을 만드는 경우를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법 정말 그들이 고생해서 만들어낼까. 알 만한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다. 해당
조선왕조실록에 실려 있는 조선 최고의 책략가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한명회와 관련한 기록을 살펴보자. 『조선조 9대 임금인 성종 때의 일이다. 명나라 사신인 정동(鄭同)이 한강변에 있는 한명회의 정자, 압구정을 구경하기 원하자 한명회가 성종에게 용봉차일(龍鳳遮日, 용과 봉의 형상을 아로새겨 만든 장막. 임금의 행차 때 쓰는 것) 치기를 청한다. 그러자 당시의 대간(임금에게 잘못을 고치도록 간하는 사람)들이 한명회의 무례함을 가리켜 ‘임금이 없는 것처럼 여기는 마음이 있다.’하여 죄 주기를 강력하게 아뢴다. 결국 성종은 그들의 성화에 떠밀려 그저 죄 주는 시늉만, 한명회의 직첩만 회수한다. 그러나 그도 잠시 성종은 한명회의 직첩을 회수한지 두 달도 못되어 다시 복직시킨다. 성종의 조처에 대해 사간들의 반발이 없을 수 없다. 대사간(大司諫) 강자평(姜子平)과 집의(執義, 조선시대 정사를 비판하고 관리들을 규찰하며, 풍속을 바로잡던 사헌부 소속 종3품 직제) 이명숭(李命崇)이 경연이 파하자 성종에게 간곡하게 아뢴다. “두어 달도 못가서 갑자기 복직시킨 것은 악한 자를 징계하는 뜻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자 성종이 한마디 한
더불어민주당 손학규 전 상임고문(이하 손학규)이 전남 해남군 해남문화원서 문화예술계 지지자들이 주최한 ‘손학규와 함께 저녁이 있는 문화 한마당’을 찾아 “더 이상 물러설 데가 없다는 것을 느낀다. 여러분께서 저에게 필요한 용기를 주셨다. 그 용기 국민에게 꿈과 희망으로 되돌려드리겠다”고 말했다. 애써 에둘러 표현했지만 필자는 이 발언을 사실상 정계복귀 선언이라 판단한다. 또한 필자는 수차례에 걸쳐 손학규가 차기 대권의 주인이라 강변하면서 일찌감치 손학규의 정계복귀를 시사했었다. 그런데 최근에 김대중 노벨 평화상 기념관서 열린 ‘평화와 희망의 밤 콘서트’에서 만난 더민주 문재인 전 대표(이하 문재인)로부터 “빨리 당에 돌아오셔서 힘을 넣어주시라”는 요구를 받았다. 그에 대해 손학규는 그저 웃기만 했다. 이와 관련해 이야기를 풀어보자. 만약 손학규가 문재인의 제안대로 더민주에 입당하게 되면 손학규는 다시 강진으로 내려가야 한다. 왜 그런지 손학규가 더민주에 입당하는 경우를 살펴보자. 더민주는 문재인계가 다수를 점하고 있다. 손학규가 입당할 경우 문재인 측은 국민의당과 통합 이전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필자가 경험했던 일을 풀어보자. 때는 1996년으로 필자가 신한국당(현 새누리당) 서울시지부 조직부장으로 근무할 때다. 그 당시를 정확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그 이후 연수부장으로 임명받아 태어나서 처음으로 서울을 떠나 천안에 소재한 연수원으로 일시적으로 생활터전을 옮긴 탓이다. 여하튼 당시 업무와 관련해 서울 모 경찰서에 근무하는 정보과 형사와 함께 저녁 식사를 겸하여 각각 소주 한 병을 마시고 2차를 위해 이동하는 중에 정말 재수 없게도 음주운전 단속 팀과 마주하게 되었다. 앳되보이는 경찰이 다가와 음주 측정을 요구하자 운전대를 잡고 있던 형사가 창문을 내리고는 신분증을 건네며 딱 한마디 했다. “업무와 관련하여 저녁식사하며 한잔 했으니 그렇게 알라”고. 신분증을 받아든 경찰이 잠시 신분증과 그 형사의 얼굴을 번갈아 주시하더니 한마디 했다. “경찰이면 오히려 모범을 보여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 한마디를 건네며 신분증을 돌려주는 경찰을 잠시 멍한 상태에서 주시했다. 그리고는 잠시 후 그 경찰이 등을 돌리자 형사가 한마디 했다. “뭐 저런 놈이 다 있어!” 얼굴에 핏대를
지난 봄에 서울북부기술교육원에서 함께 산림관리교육을 받았던, 공교롭게도 필자의 중학교 후배인 친구가 찾아왔다. 그 어느 때보다 무더운 금년 여름날에 글 쓰느라 고생하는 선배를 위해 저녁 대접해야겠다는 고마운 의도에서 비롯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좌석에서 술이 여러 순배 돌자 후배가 휴가는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가난한 필자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운을 떼었다. 자신이 휴가 중에 겪은 일을 <일요시사>를 통해 알려주었으면 좋겠다는 요지였다. 하여 후배에게 무슨 일인지 설명을 요청했다. “어머니를 모시고 가족과 함께 경기도에 소재한 경치 좋은 계곡을 찾았다. 그곳에서 물과 숲이 주는 안락함에 모두가 편안한 시간을 보내는 중에 일단의 사람들이 주위로 찾아들었다. 그리고는 마치 작정이라도 한 듯 불을 피우고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순간적으로 고기 타는 냄새와 연기가 계곡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고 방금 전까지 누리던 평화가 깨지기 시작했다. 결국 작심하고 그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옳지 못한 행위에 대해 시정해줄 것을 요구했다. 그 계곡은 취사가 금지된 곳이었던 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의 시정 요구를 묵살하고 오히려 자신을 질타하고 나
잠시 시간을 거슬러 지난 18대 대선 때로 가보자. 이명박정권의 지독한 실정으로 권력이 야당으로 넘어가는 듯 보였다. 그런데 정말로 이외의 현상이 발생했다. 당시 야당은 정치, 또 선거 경험이 별로 없는 초선의 문재인을 후보로 선출한다. 그리고 문재인은 정치에 관해서는 아마추어답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선거를 진행해간다. 대통령 하겠다는 사람이 국회의원 배지에 연연하고 자신의 주적이 누군지 명확하게 설정하지도 못하면서 그 좋은 기회를 놓치고 만다. 하여 필자는 이와 관련 당시 대선후보로 출마했던 사람들 중에서 문재인만 제외하고 어느 누가 나섰더라도 권력은 야당으로 돌아갔을 것이라 했었다. 특히 손학규였다면 손으로 땅 짚고 헤엄치기식으로 권력을 차지했을 것이라 했다. 그런 연유로 문재인은 선거에 패한 이후 야당 내 다른 세력들의 눈치를 보느라 선거 결과에 대해 조무래기들을 시켜 트집 잡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본인까지 나서서 대선 결과에 대해 강력하게 이의 제기를 하는 역시 아마추어의 본색을 여실히 드러냈었다. 이제 현실로 시선을 돌려보자. 작금에 실시된 새누리당 전당대회서 이와 유사한 아니 한 치의 오차도 없어 보이는 현상이 발생했다. 다른 사람이 아닌 이정현 의원
최근 <일요시사>를 통해 여러 차례에 걸쳐 차기 대권의 향방에 대해 언급했었다. 하여 이제는 차기 대통령이 누가 될 것인지 필자의 정치판 경험을 근거로 구체적으로 밝히고자한다. 차기 대권의 향방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현 박근혜 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인데 주지하다시피 역대 정권 중 최악이다. 거기에 이명박정권의 실정까지 더하여 새누리당 정권 10년을 두고 ‘권불십년(權不十年)’이란 말이 생겨난 듯 착각할 정도다. 이는 김대중 전 대통령으로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으로 이어진 10년 기간을 그대로 답습할 전망이다. 당시 노무현정권에 신물을 느꼈던 국민들이 자연스럽게 당시 집권당이었던 대통합민주신당(이하 민주당) 정권에 심판을 가했던 일 말이다. 이를 유념하고 새누리당이 정권을 잡았던 10년이란 기간을 상세하게 살펴보자. 사실 살펴보자고 했는데 볼 필요도 없다. 이미 이 땅에 거주하는 사람들이라면 새누리당 정권을 언급하기도 싫을 정도로 그 실정에 대해 피부로 느끼고 있다. 그렇다면 차기 대권은 야당 후보가 당선되게 되어 있는데 일전에 ‘차기 대권, 박지원 손에 달렸다’에서 밝힌 바 대로 국민의당 박지원
“각하, 통일 대박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 불이행으로 가뜩이나 골머리를 앓고 있던 국무총리가 박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느닷없이 ‘통일 대박’을 들고 나서자 통일부 장관과 함께 청와대를 찾아 비서실장의 안내로 대통령 집무실로 들어섰다. “총리께서 무슨 말씀을 그리 하시나요!” “네….” 막상 대답을 기대했는데 엉뚱한 말이 이어지자 총리가 의미를 헤아리기라도 하듯 실장과 장관의 얼굴을 차례로 주시했다. 시선을 받은 두 사람이 그 시선을 회피하고는 깊은 속내를 시원하게 밝혀달라는 듯이 은근한 표정을 지으며 대통령을 바라보았다. “장관과 비서실장이야 정치인 출신이 아니지만 총리께서는 오랜 기간 정치에 종사하셨던 분 아닌가요?” “하면 통일 대박을 정치 논리에서 찾아야 한다는 말씀이십니까?” “당연한 거 아니겠어요.” “정치 논리라는 게 무슨 의미입니까?” 총리가 잠시 생각에 잠겨든다는 듯이 눈을 껌벅거리자 실장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대화에 끼어들었다. &ld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사드와 전자파, 아니 사드에 대해 자세히 모르는 나로서는 사드가 아닌 휴대전화와 전자파에 대해 이야기해야겠다. 왜 국민들이 사드가 내뿜는 전자파에 대한 의혹을 쉽게 풀어낼 수 없는지를 설명하기 위함이다. 언제인가부터 생식기가 전기에 감염된 것처럼 ‘찌릿찌릿’하며 저려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보다 했다. 그러나 꾸준히 운동하는 나로서는 쉽사리 납득되지 않았다. 여러 고민 끝에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시선을 휴대전화에 주었다. 주로 집에서 작업하는 내가 간혹 외출할 때면 항상 휴대전화를 바지 앞주머니에 넣고 다녔던 터였다. 그런 연유로 휴대전화를 의심하며 멀리하였고, 며칠이 지나자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기분 나쁜 증상이 말끔하게 사라졌다. 이 일이 비단 나에게만 국한되는 일은 아니었다. 예전에 나처럼 휴대전화를 바지 앞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슬그머니 질문한다. “거기 괜찮으냐”고. 그러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문한다. “어떻게 아느냐”고. 당연히 나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상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바지 앞주머니에서 휴대 전
최근 <일요시사>를 통해 국방부의 행태에 대해 쓴 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우리가 후진국이던 시절, 운동선수들에게 주었던 병역면제 혜택을 폐지해야 하고 동일 선상에서 병역특례 혜택 폐지에 대해서도 좌고우면하지 말고 계획대로 진행해야 한다고 했다. 또한 장병들의 금연과 관련해 황당하기 그지없는 포상계획에 대해 강도 높게 질타했었다. 그런데 정말 우스운 일이 다시 발생했다. ‘군사분계선(MDL) 인근 최전방 지역에 설치된 고정식 대북확성기 방송시설을 연말까지 현재보다 2배 가까이 늘리고 이동식 확성기 방송 차량도 2배 확대해 운용할 계획’이라는 내용이다. 상기 보도를 접하자 불현듯 지난해 8월 우리 군이 북한의 비무장지대(DMZ) 지뢰도발에 대응해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했던 일이 생각난다. 당시 대북확성기 방송이 재개되자 북한은 민감하게 대응했고 급기야 방송 열흘 만에 남쪽을 향해 포탄을 발사했다. 당시 북한의 대응에 대해 박근혜정부는 물론이고 도하 모든 언론은 대북방송이 김정은의 아킬레스건으로 규정내리고 연일 대북방송의 효과에 대해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와 맞물려 그야말로 ‘개나 걸’이나 김정은에 대한
차기 대권과 관련하여 다시 이야기를 풀어나가 보자. 최근 대권주자로 거론되는 인사들에 대해 여론조사를 실시하면 반기문 유엔사무총장과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부동의 1, 2위를 고수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런 연유로 다수의 사람들이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대권을 차지할 것이라 믿고 있다. 그러나 필자가 살필 때 두 사람은 그저 허울만 좋을 뿐이지 차기 대권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는, 즉 절대로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문 전 대표는 일전에도 이야기한 바 있지만 야당 후보에게 필수적인 호남의 지지가 요원한 만큼 일찌감치 대상에서 제외하고 반 총장에 대해 살펴본다. 반 총장의 경우 정치적 이미지, 즉 카리스마도 그다지 강하지 않고 정치 경험이 전혀 없다는 단점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누누이 이야기한 바 있는 충청도 출신이라는 치명적인 단점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새누리당 일부, 특히 친박 측에서 반기문 카드를 내세워 충청과 영남이 결탁하면 차기 대권이 가능하다는 듯이 밀어붙이고 있다. 그야말로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가설에 불과하다. 이는 정치에 관한한 선민의식을 지니고 있는 영남의 속성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나온 발상이다. 영남은 출신 지
오는 8월13일에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이 실시된다는 보도를 접했다. 이를 접하자 주로 역사소설을 집필하는 입장에서 상당히 우려스러운 생각이 든다. 일전에도 <일요시사>를 통해 여러 차례에 걸쳐 우리 역사 기록의 오류에 대해 지적한 바 있다. 필자가 일일이 나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오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험을 실시한다면 과연 정답 처리를 어떻게 할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단지 이뿐만이 아니다. 역사 기록에 대한 국가기관의 해석의 오류 역시 심각하다. 이와 관련 내 고향 노원을 실례로 들어보자. 조선조까지 존재했었던 노원역에 대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기록이다. ‘노원역은 조선시대에 한성부에 소속되어 청파역과 더불어 병조의 직접적인 지휘를 받은 역으로 오늘날의 서울특별시 노원구 상계동 일대에 위치해 있었으며 가장 중요한 업무는 역마를 관리하는 일이었다.’ 이 기록으로 많은 사람들은 물론이고 노원에 거주하는 사람들 역시 지난 시절의 노원역이 노원에 존재했었다고 믿고 있다. 또한 이로 인해 노원의 들판을 말들이 뛰어놀았다고 해서 ‘마들 평야’라 지칭하고 있다.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단어에 대한 개념부터 살피고 넘어가자. '원칙과 고집'의 사전적 정의에 대해서다. 원칙은 어떤 행동이나 이론 따위에서 일관되게 지켜야 하는 기본적인 규칙이나 법칙, 고집은 자기의 의견을 바꾸거나 고치지 않고 굳게 버티거나 또는 그렇게 버티는 성미를 의미한다. 이에 따르면 원칙은 긍정적인 개념으로 정리할 수 있는데 고집은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물론 고집하는 일의 옳고 그름으로 인해 긍정과 부정으로 나뉠 수 있고 어떤 측면에서 살피면 원칙과 동일하게 취급될 수도 있다. 그러나 고집에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접두사 ‘옹’을 덧붙이면 그 고집은 제목에 등장한 아집으로 변질된다. 아집에 대해서도 사전적 정의를 살펴보자. 이에 대해서는 <신원문화사>가 발간한 ‘Basic 고교생을 위한 사회 용어사전’에서 언급한 내용을 인용한다. 이에 따르면 아집은 ‘생각의 범위가 좁아서 전체를 보지 못하고, 자기중심의 한 가지 입장에서만 사물을 보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고방식을 말한다. 즉 자기를 세상의 중심으로 삼는, 자기에게 집착하고 자기를 내세우는 모든 생각과 마음이 아집이다. 아집은 과거의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지난 총선 과정에 발생했던 홍보비 파동에 대한 책임을 지고 당대표직에서 사퇴했다. 사퇴하면서 내어 놓은 그의 변이다. 그는 “이번 일에 관한 정치적 책임은 전적으로 제가 져야한다고 생각한다”며 “모든 책임을 지고 대표직을 내려놓겠다”고 말했다. 이어서 “정치는 책임지는 것이다. 막스 베버가 책임 윤리를 강조한 것도 그 때문이다”라며 “제가 정치를 시작한 이래 매번 책임져야할 일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온 것도 그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동 사건과정과 그의 변을 살피면서 두 가지 흥미로운 생각이 일어난다. 사건이 발생하게 된 그 과정 그리고 그에 대한 안 전 대표의 처신 즉, 대표직 사퇴로 정치적 책임만 지는 일이 적절한가에 대해서다. 먼저 사태가 불거진 배경을 살펴보자. 애초에 국민의당 홍보를 맡았던 업체는 ‘브랜드앤컴퍼니’라는 업체였다. 그런데 지난 3월3일 안 전 대표가 박선숙 사무총장과 함께 브랜드호텔을 방문하여 김수민 당시 대표와 처음 만나고 3월14일 전격적으로 김 대표의 ‘브랜드호텔’로 업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