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는 지금> 경영권 잡은 새파란 딸들 '빛과 그림자'

‘믿어도 돼?’ 공주님이 회사 쥐락펴락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오너일가 2·3세를 바라보는 세간의 인식은 마냥 호의적이지 않다. 이들을 지칭하는 ‘금수저’에는 부정적인 뉘앙스가 담겨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3세 대다수는 별다른 능력 검증을 거치지 않고 회사를 물려받는다. 경영 일선에 나서는 연령대마저 낮아지면서 새파란 나이에 그룹 내 요직에 이름을 올리는 경우도 심심치 않다.

재벌가 후계자들은 평균적으로 20대 후반에 아버지 회사에 입사해 30대 초반에 임원으로 승진한다. 임원으로 승진하기까지 걸린 기간은 4년이 채 되지 않는다. 말단 직원의 임원 승진 확률이 극히 희박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분명 출발선부터 다른 셈이다. 한발 더 나아가 임원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연령대는 더 낮아지고 있으며 남성에 국한되던 승계구도에도 일대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경영일선서
진두지휘

지난달 22일 부산 향토기업인 조광페인트 최대주주에 고 양성민 회장의 셋째 딸인 양성아(1977년생)씨가 이름을 올렸다. 영업본부 상근이사직으로 조광페인트에서 근무 중인 양씨는 지분 17.84%을 보유해 언니 양은아(5.82%)씨나 양경아(5.73%)씨보다 많은 지분을 확보했다.

30대에 불과한 여성 후계자가 그룹의 최전선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사실은 분명 이례적이다. 다만 비슷한 사례가 전혀 없던 것은 아니었다. 한술 더 떠 20대 때부터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여성 후계자들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곤 했다. 특히 젊은 피 수혈에 적극적인 패션분야 중견기업에서는 약 10년 전부터 지속되고 있는 현상이다.

메트로시티 브랜드를 선보이고 있는 엠티콜렉션의 양지해 대표는 창업주인 양두석 회장의 장녀다. 20대 중반이던 2004년 사장으로 취임한 후 400억원 수준이던 매출을 약 1300억원 규모로 키워놓았다. 일찌감치 후계자로 낙점된 덕분에 사업계획 수립뿐만 아니라 창업자와 직원 간 소통 창구 역할도 한다.


박순호 세정그룹 회장의 막내딸 박이라씨는 계열사인 ‘세정과미래’의 대표를 맡고 있다. 그는 캐주얼 ‘NII’의 재도약과 ‘크리스크리스티’ 시장 확대를 성공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20대 중반부터 이름을 알린 그녀는 남편인 김경규 사업본부장과 함께 웰메이드를 론칭해 2년 만에 4000억원대 매출을 올리며 경영능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최혜원 형지I&C 상무는 20대 때부터 착실히 실력을 쌓은 후 최근 여성복 '캐리스노트' 사업부장으로 당당히 모습을 드러냈다. 패션그룹형지가 새롭게 조직을 꾸리는 가운데 최 상무가 백화점 영업을 진두지휘하게 된 것이다. 최병오 패션그룹형지 회장의 장녀인 그는 그동안 본사 경영기획실 이사로 활동하다 지난해부터 영업 일선에 섰다.

20대 나이에 경영일선 전면 등장
요직에 이름 올리고 영향력 확대

어쩌면 앞에서 열거한 사례는 시작에 불과하다. 최근에는 오너일가 여성 후계자들의 경영 일선 진출 연령대가 더욱 낮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0대에는 실무를 쌓고 30대 나이에 본격적으로 일선에 모습을 드러내던 유형은 더 이상 흥밋거리가 되지 못한다. 20대 중반부터 요직을 차지하는 경우가 빈번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28일 본사 지하 1층 회의실에서 열린 토니모리 정기 주주총회에서 배해동 회장의 장녀인 배진형 씨의 사내이사 선임안이 통과됐다. 배씨의 선임 안건이 통과되면서 토니모리의 사내이사는 2명에서 3명으로 늘었다. 현재는 배해동 회장과 홍현기 경영지원본부장이 사내이사직에 올라있다.

1990년생인 배씨는 뉴욕대학교를 졸업한 후 지난해 토니모리 해외사업부에 입사해 경영수업을 받아왔다. 현재 토니모리 지분 8.5%(100만주)를 소유하고 있다. 이를 포함한 특수관계인 지분은 모두 64.94%에 달한다. 최대주주인 배 회장의 지분율은 30.93%다. 배씨는 지난해에야 회사에 처음으로 발을 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남에 기반을 둔 주류업체 보해양조는 지난해 11월 파격적인 인사를 단행했다. 창업주인 고 임광행 회장의 손녀이자 보해양조 최대주주인 임성우 창해에탄올 회장의 장녀 임지선(1985년생)씨가 부사장으로 승진한 것이다. 재계에서는 임 부사장에 대한 인사 조치를 ‘3세경영’ 차원으로 보고 있다.
 


임 부사장은 대표이사 재임기간 ‘부라더시리즈’를 선보여 주류시장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 점을 높게 평가받았다. 그러나 지난 4월 대표이사에 선임된 데 이어 부사장으로 임명되자 생각 이상으로 승진 속도가 빠르다는 지적이 제기된 것도 사실이다.

여식에게
믿고 맡긴다

경영 일선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더라도 직간접적으로 회사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입지를 다지는 경우도 빈번해지고 있다. 이 경우 다량으로 보유한 지분이 큰 무기가 된다. 장기적으로 본다면 2세 경영의 초석으로 비춰질 수 있는 사안이다.

아모레퍼시픽의 서경배 회장의 장녀인 서민정씨의 아모레퍼시픽그룹 지분은 26.48%로 서 회장 다음으로 많은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에뛰드와 이니스프리 지분 외에도 지난 2003년과 2006년 서 회장으로부터 아모레퍼시픽 우선주를 증여받아 지분 0.01%를 보유하고 있으며, 외가 쪽인 농심홀딩스 주식 1만주(0.26%)를 보유해 20대 여성 주식부호 1위에 올라있다.

서씨는 2014년 코넬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지난해 7월께 베인앤컴퍼니에 입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벌써부터 재계는 민정씨가 서 회장의 뒤를 이어 총수에 등극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오리온그룹 담철곤 회장의 딸 담경선(1985년)씨는 2004년 서울국제학교를 졸업한 뒤 미국 유학을 떠나 2008년 뉴욕대학교를 졸업했다. 현재 오리온 지분 0.53%를 갖고 있으며, 어머니 이화경 부회장(14.48%), 아버지 담 회장(12.9%)에 이은 3대 주주다. 오리온그룹에 따르면 담씨는 후계자 수업을 받기 위해 2010년 오리온에 입사해 ‘마켓오’ 사업부에서 근무를 시작했고, 현재는 전략기획팀으로 자리를 옮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의 장녀 박하민씨는 미국 코넬대 인문학부에서 사학을 전공한 뒤 조기 졸업했다. 이후 매킨지코리아와 다국적 부동산컨설팅 업체 CBRE에서 근무했으며 현재 미래에셋자산운용 홍콩법인 소속으로 국외부동산 투자업무를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가 보유한 미래에셋컨설팅 지분은 8.19%다.
 

구소희씨는 LS그룹 구자균 부회장의 차녀다. 구 부회장은 LG그룹 창업주 고 구인회 동생 구평회 E1 명예회장의 3남이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구씨는 구자균 LS산전 부회장의 차녀로 LS그룹 오너 여성 중에선 처음으로 회사에 입사했다. 뉴욕 시러큐스대 마케팅학과를 졸업한 뒤 고려대 대학원 국제통상학과를 수료했던 그녀는 2011년 말 사직했다.

지분 쥐고
영향력 확대

이성훈 서울반도체 대표이사의 딸인 이민규씨는 서울반도체의 지분을 지분 8.71%을 보유한 2대 주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주가 폭락 시기에 서울반도체 지분을 저가로 대량 증여받은 뒤 주식가치가 크게 올라 편법 증여 논란이 일었다. 

2008년 12월 서울반도체 주식 448만주씩을 주당 9000원에 넘겨받았다. 증여 당일 종가 기준으로 주식가치는 406억원이었으나 서울반도체가 코스닥 시가총액 1위를 기록하는 등 주가가 크게 오르며 지분가치가 높아졌다. 2014년 이민규씨는 국내 주식부호 조사에서 28세의 최연소 주식부자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오뚜기 창업주인 함태호 명예회장의 손녀이자 함영준 회장의 장녀인 함연지씨는 오뚜기 주식 4만주를 보유하고 있다. 지분율은 1.16%. 함씨는 ‘뮤지컬 천재소녀’라고 불려질 만큼 뮤지컬계에서도 유명하다. 함연지는 2008년 뮤지컬 <인어공주’의 ‘Part of the world>를 부른 동영상으로 화제를 모았다. 또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제작사에 따르면 함씨는 지난해 9월 오디션에서 300 대 1 경쟁률을 뚫고 얼터너티브에 뽑히기도 했다.


지분 대량 보유…후계구도 초석
‘미검증 금수저’ 임원은 부글부글

잇단 여성 후계자들의 등장에 대해 재계에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분위기다. 시대적 흐름에 맞고 여성의 ‘꼼꼼함’이 경영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 김은선 보령제약 회장 등이 대표적이다.

다만 이들의 경우 40∼50대 나이가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회사의 전권을 넘겨받았다는 점에서 20대 여성 후계자들과 차이가 있다. 달리 말하자면 능력에 대한 검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되는 20대 자녀를 향한 승계 구도는 부정적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뜻이다.
 

통상 재벌가 2·3세는 조기 해외 유학을 다녀와서 20대 중반에 입사한 후 초고속으로 승진해 임원 배지를 달고 경영자의 지위에 오른다. 평사원을 거치는 경우는 손에 꼽는다. 설령 밑에서부터 차근히 단계를 밟더라도 짧은 시간 동안 경영능력을 검증받고 통솔력을 갖추기란 그리 쉽지 않다.

경험 부족은 위기관리능력의 부재로 연결된다. 재벌가 2·3세가 임원에 임명된다는 것은 핵심 의사결정권자로 발돋움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들의 의사결정에 따라서 기업의 운명이 좌우될 수 있는 것이다.

선대와 달리 기업가 정신이 부족하다는 지적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이전 세대가 개척자 정신으로 회사를 일궜다면 2·3세는 선대의 의지를 갖추지 못한 경우가 빈번하다. 대다수 재벌 2·3세들을 잡초 근성이 부족한 온실 속의 꽃으로 바라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재계 관계자는 “창업주와 달리 2·3세로 경영권이 넘어가면서 책임감이 희석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평범한 직장인들이 꿈꾸기 힘든 자리에 어렵지 않게 도달하는 2·3세들은 애초부터 특권의식에 사로잡히곤 한다”고 언급했다.

부정적 시선
그래도 금수저

예전부터 재벌그룹의 최대 난제는 대외적인 정세 변화가 아닌 ‘오너리스크’란 말이 있다. 강력한 리더십을 갖춘 창업주가 일신상의 이유로 자리를 비운 상황에서 후임자의 능력 부족으로 위기에 봉착하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목격할 수 있다. 이런 위험이 회사 내부에서 사그라 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하긴 힘들다.

재계 관계자는 “물론 20대 젊은 여성 후계자들이 등장했다는 이유만으로 손가락질할 수는 없다”며 “다만 실무 경험이 미천한 재벌가 2·3세에게 애초부터 큰 기대를 갖는다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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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성 없는 ‘내란 TF’ 겉핥는 내막

강제성 없는 ‘내란 TF’ 겉핥는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이재명정부가 내란을 방조하거나 간접적으로 가담한 이들을 가리기 위해 TF를 구성했다. 내년 1월까지 공무원 75만명을 대상으로 참여·협조 여부를 조사한다. 일부 기관은 자체적으로 판단해 TF를 구성하는 걸 두고 고민하고 있다. TF는 강제성이 없으며, 이미 조사를 끝내 인사에 반영한 기관도 존재한다. 헌법 존중 정부 혁신 TF(태스크포스)는 중앙행정기관 49곳에 구성됐다. 구체적으로 각 부처 25곳이 포함됐다. TF는 총 48개다. 활동 목표가 인사에 합리적으로 반영하기 위한 것이라지만 각 기관 안팎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사실상 내란 특검팀(조은석 특별검사)의 연장선이 아니냐는 것이다. 방조·간접 가담자들 김민석 국무총리는 지난달 24일 TF 실무 책임자들과 첫 간담회를 갖고 “TF의 조사 활동은 대상, 범위, 기간, 언론 노출, 방법 모두 절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 총리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절제하지 못하는 TF 활동과 구성원은 즉각 바로잡겠다”면서 “TF 활동의 유일한 목표는 인사에 합리적으로 반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이 TF는 공무원 75만명의 ‘내란 참여·협조’ 여부를 개인 휴대전화까지 제출받아 조사한다는 방침 등이 인권침해란 논란이 일었다. 총리실에 설치된 ‘총괄 TF’는 이날까지 부처 25곳을 포함한 기관 49곳에서 TF 48개가 출범했다. 국무조정실·국무총리비서실로 구성된 총리실에 단일 TF가 설치되면서 TF 숫자는 하나 줄었다. TF는 대부분 10~15명으로 구성됐지만, 전체 인원이 많은 국방부(53명), 경찰청(30명), 소방청(19명) 등은 대규모 조사단을 꾸렸다. TF 48개의 총인원은 정부 내부 인사 536명을 포함해 661명에 달한다. TF 48개 중 32개에 외부 인사 125명이 참여했고 그중 76명(60.8%)은 법조인, 31명(24.8%)은 학자, 18명(14.4%)은 시민단체 관계자 등이 참여했다. TF는 ‘내란의 사전 모의나 실행, 사후 정당화, 은폐’를 한 공무원은 ‘내란 참여’로, ‘내란의 일련의 과정에 물적·인적 지원을 도모하거나 실행’한 공무원은 ‘내란 협조’를 한 것으로 보기로 했다. 적발된 공무원에게는 내년 2월13일까지 ‘징계’나 ‘승진 배제’ 같은 인사 조치할 방침이다. 또 ‘내란 행위 제보 센터’를 설치해 동료 공무원들에게 제보·투서를 받고, 의심 공무원은 개인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기로 했다. 한 정부 관계자는 “의혹이 상당하다고 판단되면 대상자의 휴대전화를 제출받아 들여다볼 예정이다. 의혹이 상당한 데도 조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수사 의뢰까지 가능한 선을 정했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TF 조사 권한을 두고 이견이 나온다. 형사가 아닌 행정 절차이지만 일반적인 조사가 아닌 만큼 행정법이 지켜져야 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공무원 75만명 전방위 조사 문제없나 형소법 원칙 유명무실…권력남용 소지 한 서초동 변호사는 “영장 없는 조사를 두고 많은 문제 제기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 행정조사기본법에 따르면 인사상 불이익으로 압박하거나 진술을 강요하면 직권남용 혐의가 성립될 수 있다. 최소한의 범위를 규정하고 조사해야 하는데 TF가 정한 선이 어느 지점까지인지가 핵심일 것 같다”고 조언했다. 국회도 과거 비슷한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022년 발간한 ‘권력적 행정조사의 쟁점 및 개선 과제’ 보고서에서 행정조사 과정에서 영장주의·진술거부권이 침해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행정조사에서 수집된 자료가 수사기관으로 넘어가 형사 처벌 근거로 활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형사소송법상 원칙이 유명무실해지고, 국가권력이 남용될 소지도 있다. 업무용 PC나 이메일에서는 변호사와 상담한 내용까지 확보되는 사례도 있어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위축될 가능성도 있다. 행정조사 위법성과 관련해서는 판례도 존재한다. 지난 2012년 서울고법은 기관이 업무용 휴대전화 통화 기록과 문자메시지를 동의 없이 확보해 공무원을 해임한 사건에서 이를 위법한 증거수집으로 보지 않았다. 법원은 기관이 통신비를 부담했고, 감사 목적이 공익적이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도 상고를 기각했다. 조직 내부 감사는 세무조사·공정거래위원회 조사·근로감독 등과 달리 별도의 법적 근거가 불명확한 경우가 많아 조사의 한계 역시 모호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정부 차원의 대규모 내부 감사가 법적 문제를 일으킨 선례 역시 많지 않다. 민간인의 TF 참여도 새로운 논란이다. 정부는 감사부서 공무원 외에 민간인을 포함하거나 아예 외부 전문가로만 구성된 TF를 둘 수 있다는 지침을 내렸다. 명확한 법적 근거 없이 민간인이 공무원에 대해 조사권을 행사하는 셈인데, 정부는 TF 설치를 위한 별도 입법을 마련하지 않았다. 논란 불구 조사 시작 공직사회는 뒤숭숭한 분위기다. 조사 기준이 모호해 억울한 문책 인사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반면 계엄을 방관했거나 동조한 세력을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상당하다. 핵심 조사 대상으로 거론되는 기관은 기획재정부·국방부·행정안전부·경찰·검찰·법무부 등이다. 기재부의 경우 최상목 전 기재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겸했다. 최 전 장관이 12·3 비상계엄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으로부터 국가비상입법기구 예비비 편성 등 계엄 지시 문건 등을 받고 1급 고위직들을 소집해 회의를 연 바 있어,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이들이 조사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월 국회 국정감사 때 김동일 전 예산실장과 신중범 전 대통령실 경제금융비서관 등이 아시아개발은행(ADB)과 아시아거시경제감시기구(AMRO)로 파견되기 직전 명예 퇴직금을 수령한 것을 두고 ‘해외도피’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다. 외교부는 이번 국감에서 비상계엄 직후 대통령실이 외교부 장관 명의로 ‘합법적 계엄’이란 내용의 공문을 주미한국대사관에 보내고, 이를 ‘3급 기밀’로 지정한 점을 지적받은 바 있다. TF가 가동되면서 외교부 인사는 사실상 ‘중단’ 상태다. 외교부는 애초 올해 말까지 1급 인사를 마무리할 계획이었지만, TF 활동이 시작되면서 어렵게 됐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반년이 다 되어가지만, 그동안 외교부 실·국장 및 재외 공관장 인사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외교부 인사는 특임 대사 임명과도 맞물려 있지만 인사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특히 현 정부는 특임 대사를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외교부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임 대사는 직업 외교관이 아닌 전문가·정치인·학자 등을 대통령이 재외공관장으로 임명하는 제도다. 주요 공관장 인사가 늦어지면서 사안이 터졌을 때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느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난 9월 미국 조지아주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발생한 한국인 불법구금 사태 당시에도 조지아주를 관할하는 주애틀란타총영사직은 공석이었고, 캄보디아 사태 때도 주캄보디아 대사직이 비어있었다. 필요는 한데… 이중 감사 검찰 TF는 최근 검찰 내부망인 ‘이프로스’에 다음 달 12일까지 제보용 익명 게시판과 별도의 이메일 계정을 통해 관련 제보를 받겠다고 공지했다. 단장은 구자현 검찰총장 대행이 김성동 대검 감찰부장과 주혜진 대검 감찰1과장이 각각 부단장과 팀장을 맡아 10여명이 참여했다. 법무부에 설치된 TF 역시 같은 날 공지를 게시했다. 법무부에선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TF 단장을 맡고 내외부 인사 10여명이 구성원으로 참여한다. 법무부는 내부 익명 게시판을 통해 제보를 접수하는 한편, 검찰과 별도의 이메일 계정을 개설해 운영할 예정이다. 경찰은 경무관 승진, 총경 인사를 앞두고 숨죽이는 분위기다. 앞서 계엄 수사로 조지호 경찰청장 등 수뇌부가 재판에 넘겨졌지만, 계엄 당시 국회 출입 통제나 체포조 투입에 관여됐던 간부 상당수는 기소를 피했다. 국방부는 이중 감사 논란이 일고 있다. 이미 12개 기관을 대상으로 내부 감사를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취임 직후 감사관실 주도로 중령급 이상 간부를 전수 조사해 지난주 보고서를 대통령실에 제출했고, 이는 이번 3성 장군 인사에도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는 총리실의 지시에 따라 기존 감사자료를 제출하는 수준에서 협조할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관실은 조사본부를 합류시켜 TF를 꾸릴 것으로 보인다. 지난 국방부의 자체 감사는 합참 현역 장교뿐 아니라 본부 군무원과 민간 공무원까지 포함한 대대적 감사였다. 지난 9월 진영승 합참의장 취임 이후, 권대원 합참차장을 제외한 합참 장군 전원과 2년 이상 근무한 중령·대령에 대한 대규모 인적 쇄신이 실제로 단행됐다. 합참의 지시에 따라 장교들의 진급이 보류되거나 보직이 변경됐다. 국정원은 이미 이종석 국정원장 취임 이후 직원들의 비상계엄 관련 여부 등 내부 조사를 마쳤다. 특히 의무적으로 TF를 구성해야 하는 기관이 아니다. 국정원은 지난 8월 첫 1급 인사를 단행하고 최근까지 2∼4급 인사를 마무리했다. 애매한 의혹 제기 투서 남발 우려 일부 기관 자체 판단 별도 TF 설치 이 인사는 이 원장 취임 이후 진행한 내부 조사 결과를 반영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국정원은 이 원장 취임 두 달 만인 8월 1급 간부 20여명의 인사를 단행하면서 그간 정권이 바뀐 뒤 1급 간부를 모두 교체하던 관행과 달리 윤석열정부에서 임명된 간부들을 일부 유임시켰다. 국정원은 대통령 직속 기관이다. TF 설치를 두고 대통령실이 직접 관리할 수 있다. 정부 관계자는 “본래 정권이 바뀔 때마다 신임 국정원장이 취임하면 국정원은 윗선 지침이 없어도 원장 지시하에 내부적으로 감찰이나 조사를 철저하게 해 왔다”며 “대통령실에서 직접 관리해 TF 조사가 이뤄져도 추가로 드러날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회 정보위원회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박선원 의원은 지난달 4일, 국정원 국정감사 이후 브리핑에서 “국정원이 불법적 비상계엄 상황에서 내란·외환 정보수집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는 점을 인정했다”면서 “국정원은 국정원법 4조에 따라 내란죄·외환유치 관련 자료를 특검에 이미 제출했고 계엄 시 국정원 역할 재정비와 실효적 안보조사체계 복원을 추진하겠다고 보고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인권침해 진정이 들어온 기구를 인권위가 설치하면 모순”이란 이유로 TF 설치를 거부했던 국가인권위원회는 TF 구성 반대 의결 과정에서 절차상 흠결이 지적되자 다음 전원위원회에 다시 상정해 논의하기로 했다. 앞서 인권위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등 독립기관은 TF 설치를 자율적으로 판단하기로 정해졌다. 안창호 인권위원장은 지난달 24일 열린 제21차 전원위원회에서 “정부에서 부처 내 헌법존중 TF를 자율적으로 만들라는 권고가 있는데 어떻게 할 것이냐”고 위원들에게 물었다. 이에 한석훈 위원이 구두로 안건 발의를 제안했다. 이후 안건 발의자로 참여한 김용원·이한별 위원 포함 발의자 세 명과 강정혜·김용직 위원, 안 위원장 등 6인이 ‘TF 구성 반대’에 손을 들면서 의결됐다. 부역자 남았나 인권위 안팎에선 자율적 설치라고 해도, TF 설립 취지에 비쳐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는 위원들이 안건을 즉석에서 상정해 반대 의결까지 한 건 부적절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특히 반대 의견을 낸 안 위원장과 김용원 위원 등은 지난 2월 ‘윤석열 방어권 안건’ 의결에 찬성해 특검에 내란 선동·선전 혐의로 고발된 상태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