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국내 철강업계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값싼 중국산 철강재의 위협이 거세지는데다 공급과잉, 보호무역 강화 등 거듭된 악재가 한꺼번에 분출되고 있는 양상이기 때문이다. 위기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닌 요즘이다. 꾸준히 몸집을 키워온 세아그룹 역시 예외는 아니다. 안팎의 시선에서 일말의 불안감마저 엿보인다.
1960년 창립한 부산철관공업을 모태로 하는 세아그룹은 철강 제조업을 주력으로 성장해왔다. 세아제강과 지주회사인 세아홀딩스를 주축으로 총 23개의 계열회사가 세아그룹이라는 우산을 공유하고 있다. 세아홀딩스는 세아베스틸, 세아특수강, 세아창원특수강 등 특수강 사업과 비철강 사업을 관장하고 세아제강은 강관 사업과 해외 자회사들을 거느리는 구조다.
웃고 있지만
걱정이 태산
2015년 4월 기준 상호출자제한 일반기업 지정에 따른 세아그룹의 재계 서열은 40위, 자산총액은 6조8010억원이다. 건실한 성장을 거듭한 끝에 2014년부터 동국제강을 밀어내고 포스코·현대제철과 함께 철강업계 'Big3'로 자리매김했다.
지난해 세아그룹은 세아베스틸의 덕을 톡톡히 봤다. 세아홀딩스가 지난해 거둔 영업이익은 약 2875억원. 전년 대비 12.5% 증가한 수치다. 매출과 당기순이익도 각각 3.9%, 25.9% 뛰어 오른 4조482억원, 2070억원을 기록했다. 계열사인 세아베스틸이 특수강 사업을 앞세워 전년 대비 26.8% 증가한 영업이익 2223억원을 달성한 게 결정적이었다. 사실상 세아베스틸이 세아홀딩스 전부를 먹여 살린 셈이다.
세아베스틸의 선전을 위안 삼는 세아홀딩스와 달리 세아제강은 볼품없는 성적표를 꺼내들었다. 세아제강은 지난해 10.7% 감소한 2조190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데 그쳤고 영업이익은 반토막 수준으로 주저앉았다. 종합하자면 그룹 전체 실적은 상승했지만 세아베스틸을 제외한 나머지 계열사들은 별다른 수익을 창출하지 못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문제는 세아그룹의 올 한해가 그 어느 때보다 험난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이다. 현대제철의 공격적인 행보는 가장 큰 위협이다.
현대제철은 2월 초부터 당진에 위치한 특수강 공장에서 상업생산에 돌입한 상황이다. 2013년 특수강 사업 진출을 선언한 현대제철은 지난해 2월 동부특수강을 인수하는 등 착실히 기틀을 다져 왔다. 100만톤 규모(봉강 60만톤, 선재 40만톤)의 당진 특수강 공장과 포항공장(봉강 50만톤) 생산량과 합하면 현대제철의 특수강 생산능력은 연산 150만톤에 이른다.
현대제철은 당진 특수강 공장에서 자동차 부품 생산의 상공정에 속하는 봉강·선재를 생산하고, 현대종합특수강에서 하공정인 자동차 엔진·변속기 등의 주요 부품소재를 만들 방침이다.
현대제철의 특수강 생산은 당장 세아그룹에게 고민거리다. 주력 계열사인 세아제강이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으며 특수강 부문 매출 비중의 약 30%를 현대·기아차에 기대고 있는 세아베스틸 역시 안심할 수 없다. 세아특수강도 현대기아차에 납품하긴 마찬가지다.
실적은 괜찮지만…빛 좋은 개살구
현대제철에 손발 잘릴까 전전긍긍
주력 계열사의 공장 가동률이 꾸준히 하락세라는 점도 불안요소. 세아제강의 가동률은 2012년 87%를 기록한 이래 꾸준히 떨어졌다. 지난해에는 가동률이 70%에도 못 미쳤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세아베스틸의 가동률도 2011년(88%)을 기점으로 내리막을 걷고 있다. 현대제철이라는 호적수가 등장한 올해는 가동률이 더욱 하락할 것으로 점쳐진다.
물론 세아그룹이 국내 특수강 시장의 절반을 차지하는 기업이라는 점에서 단기간에 주도권이 현대제철로 넘어갈 가능성은 희박하다. 연산 400만톤에 이르는 세아그룹의 특수강 생산능력은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아베스틸은 현대제철이 지난 2013년 특수강 시장 진출을 공식화하자 제품 포트폴리오 다양화와 수출 비중 확대를 고려해왔다. 지난해 3월 포스코특수강을 1조1000억원 규모에 인수한 것도 특수강 사업 다각화를 위해 움직임이었다. 다만 내수의 상당부분이 잠식당할 가능성은 배제하기 힘들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제철의 신규 설비가 본격적으로 가동되면 나머지 철강업체들의 점유율에 일대 변화가 예상된다”며 “현대자동차와 현대제철의 관계를 감안할 때 내수 의존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흔들리는
특수강 최강
철강업계에 미묘한 분위기가 조성되는 가운데 최근 세아그룹은 3세 경영체제를 의욕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3세 경영체제는 수많은 뒷말을 쏟아내는 단초가 되기도 한다.
세아베스틸은 지난 18일 정기 주주총회에서 이태성 전무가 사내 등기이사로 선임됐다고 밝혔다. 세아제강도 오는 25일 주총에서 이주성 전무를 신규 등기임원으로 선임할 예정이다.
동갑내기 사촌 관계인 두 사람은 각각 고 이운형 전 세아그룹 회장과 그의 동생인 이순형 현 회장의 맏아들이다. 이들은 지난해 세아홀딩스, 세아제강의 전무로 승진한 바 있다. 둘 다 1년여 간 서울 본사와 지역 공장을 주 2~3회 왕복하며 경영수업을 쌓아 온 것으로 알려졌다.
3세 경영체제는 그룹 계열분리 소문과 묘하게 연결되는 양상이다. 얼마 전 이태성 전무가 보유 중이던 계열사 지분 매각에 나선 것도 남다르게 여기지지 않는 대목이다.
지난 1월 이태성 전무는 세아제강 주식 4만주(0.67%)는 그룹 계열사인 해덕기업에 매도했다고 공시했다. 주된 이유는 상속세 마련이다. 처분 단가는 4만9800원으로 책정됐고 이 전무에게는 19억9200만원 규모의 현금 여유분이 생겼다. 이태성 전무는 이운형 회장이 타계한 뒤 세아홀딩스 지분 71만주 가운데 약 33만주(8.41%)를 물려받은 바 있다.
이태성 전무의 세아제강 주식 매각은 자연스럽게 이순형 회장의 세아제강 지배력 강화로 이어진다. 여타 회사들과 조금 다른 세아그룹의 내부 조직도가 이를 뒷받침한다.
대변화 예고하는 3세 시대
꼬리무는 계열분리 가능성
세아그룹은 지주사 세아홀딩스가 다른 계열사를 지배하는 형태다. 이태성 전무와 그의 일가가 보유한 지분은 절반을 약간 초과한다. 세아홀딩스는 세아베스틸, 세아특수강 등 대부분의 주요 계열사 지분 절반 이상을 보유하고 지배력을 공고히 하고 있다.
다만 세아제강은 예외다. 형제경영체제를 이어오면서 느슨한 이분화 형태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3분기말 기준 이태성 전무 일가가 보유한 세아제강 지분은 21.48%, 이순형 회장과 이주성 전무 일가가 보유한 지분은 28.24%다. 하지만 2014년부터 이태성 전무가 세아제강 지분 일부를 꾸준히 매도했고, 이주성 전무는 꾸준히 매입해 기존 격차가 더 벌어졌다.
드디어 시동
3세 경영체제
이태성 전무와 이주성 전무가 각각 세아홀딩스와 세아제강의 지분을 늘리면서 일각에서는 향후 경영권 분리가 이뤄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태성 전무가 세아그룹 경영권을 승계하고 이순형 회장과 이주성 전무를 주축으로 세아제강이 독립한다는 계산이다.
후대로 갈수록 이전 세대의 끈끈한 유대관계가 희석되는 형제경영체제의 일반적인 통념과 갈수록 엄격해지는 정부의 대기업 규제 정책이 이 같은 소문을 부채질하는 형국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매년 4월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지정 현황’을 발표한다. 재벌에 의한 시장경쟁 저해를 막는다는 취지하에 직전년도를 기준으로 자산 5조원이 넘는 대기업의 명단을 공개하는 것이다.
세아그룹 역시 이 명단에 포함돼 있다. 단, 세아제강이 계열분리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지난 14일 공시된 자료에 따르면 세아제강의 자산규모는 2조738억원이다. 7조원에 육박하는 자산을 지닌 세아그룹에서 세아제강이 분리되면 세아그룹은 대기업 집단에서 이탈할 수도 있다. 이 경우 외형 축소에 따른 대외적 위상 약화는 어쩔 수 없다.
다만 반대급부로 2년 내에 계열사 간 채무보증 완전 정리 규정을 비롯한 각종 골치 아픈 제약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미 대기업 집단 하위권에 속한 몇몇 기업은 몸집을 줄여 해당 규제를 피하고자 하는 의도를 은연중에 드러내기도 한다.
실제로 지난달 17일, 공정거래위원회는 세아그룹을 비롯해 태광, 현대산업개발이 내부거래 관련 공시를 제대로 했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현장점검에 나선 바 있다.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소속회사는 특수관계인과 자본금의 5% 또는 50억원 이상의 내부거래를 할 경우 미리 이사회 의결을 거친 후 공시해야 한다. 이번 점검은 지난해 하반기 세아그룹의 공시대상 내부거래 서면조사 결과를 토대로 사실 여부을 확인하는 차원에 불과했지만 신경 쓰이는 사안임에는 분명했다.
계열 분리?
계속되는 뒷말
물론 형제경영으로 유명한 세아그룹인 만큼 경영권 분쟁이 아닌 현 체제 지속 가능성이 더 크다. 세아그룹은 2013년에 공정위의 대기업 규제 강화 대책이 발표되자 곧바로 세아네트웍스와 해덕스틸의 지분정리 및 청산에 나서는 등 정부 정책을 최전선에서 이행하는 기업이기도 하다. 세아그룹 역시 계열분리 가능성을 뜬소문을 치부하긴 마찬가지다.
세아그룹 관계자는 “최근 들려오는 그룹의 계열분리 가능성에 대한 언급은 뜬소문에 불과할 뿐”이라며 “불황이 장기화되는 시점에서 그룹의 힘을 합치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