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통계는 거짓을 논하지 않는다. 다만 통계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수치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끔 해석할 뿐이다. 이 과정에서 통계는 일정부분 왜곡되곤 한다. 사적인 이익을 배제한 공익적 의도임을 부르짖더라도 마찬가지다. ‘White Lie(악의 없는 거짓말)’라는 면죄부가 주어질지언정 통계를 취사선택 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일감몰아주기에 대한 기존 해석과 상반되는 한 편의 보고서가 세간의 관심을 받고 있다. 재벌기업을 겨냥한 정부의 일감몰아주기 규제에 반기를 들었다고 봐도 무리는 아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아전인수’라며해석을 반박하고 나서면서 양측의 입장 차이가 한층 명확해지고 있다.
공정위와 시각차
지난 15일 한국경제연구원은 <대규모 기업집단 계열사 간 상품·용역거래에 대한 경제분석> 보고서를 내놨다. 보고서는 기업집단 소속 계열사가 총수 가족의 소유지분이 높은 기업으로부터 상품이나 용역을 매입할 경우 수익성이 증대됨을 말하고 있다. 일감몰아주기의 부당성을 정면으로 반박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가장 눈에 띄는 건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오너체제로 움직이는 민간 기업집단의 계열사 간 상품·용역거래 분석 결과다. 일감몰아주기 규제 대상인 오너일가 소유지분이 30% 이상인 상장사나 20% 이상인 비상장사와 거래한 계열사의 총자산순이익률(ROA)이 다른 기업보다 2.86%포인트 높다는 게 핵심이다.
내부거래 계열사 중 오너일가 소유지분이 높은 기업의 매입 비중이 10%포인트 증가할 때마다 총자산순이익률(ROA)은 0.38%포인트 증가한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즉, 계열사 간 일감몰아주기는 사익편취가 아닌 수익성 등 효율성 증대가 목적이라는 해석이다.
김현종 연구위원은 "기업집단 내 계열사들이 총수가족의 소유지분이 높은 기업으로부터 상품·용역을 매입하면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일감몰아주기 규제 도입 근거와 달리 계열사들이 이익을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보고서는 총수가족의 소유지분이 증가할 때 계열사에 대한 매출 비중이 감소했음을 거듭 지적한다. 총수지분이 커질수록 오히려 거래가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나 ‘일감몰아주기’가 오히려 줄어든다는 주장이다.
오너일가 실질소유권(현금흐름권)이 10%포인트 증가하면 계열사 매출비중은 1.72%포인트 감소했고 소유권과 지배권의 격차를 나타내는 소유지배 괴리도가 높아질 때마다 계열사 매출비중이 증가했다는 것이다. 실증 분석 결과 계열사의 매출 비중이 높아져도 수익성은 증가하지 않기 때문에 '사익 편취 가설'이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주장을 뒷받침한다.
김현종 연구위원은 “연구결과 일감몰아주기 규제가 적용되는 기업이라도 계열사 매출을 통한 이익의 이전은 나타나지 않았다”며 “이는 일감몰아주기 규제가 도입된 근거가 부적절하다는 의미”라고 비판했다. 한경연의 보고서는 그간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강화한다던 공정위의 입장과 상충된다. 한경연이라는 조직의 특수성을 짚어봐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1981년 설립된 대표적인 민간 경제연구소 가운데 하나인 한경연은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연구기관이다. 경제 및 산업 동향에 대한 정보 수집 및 분석 업무를 수행한다. 전경련 회원사들이 내는 회비를 운영 재원으로 삼는다. 친기업적 성향을 읽을 수 있는 배경이다.
“내부거래 규제 실효성 낮다” 재검토 촉구
대기업 회비로 운영…당연한 친기업 성향
반면 공정위는 지난해 2월부터 총수가족의 소유 지분이 30% 이상인 상장회사와 20% 이상인 비상장회사를 대상으로 이들 계열사의 내부거래를 조사하는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시행 중이다. 올해 1분기 중 일감몰아주기 규제 조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실제로 공정위는 SK그룹의 부당지원행위 과징금 취소 판결에 편승해 재계가 물타기한다고 의심하는 듯한 인상이다.
지난 10일 법원은 SK그룹 계열사 7곳이 과징금 납부명령을 취소하라며 공정위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과징금 347억3400만원 역시 돌려받게 됐다. 앞서 SK텔레콤 등은 2012년 SK C&C에 인건비와 전산장비 유지보수비를 과다지급했다는 이유로 공정위로부터 과징금 처분을 받자 소송을 냈다.
SK그룹의 사례는 한진·하이트진로·CJ·현대·하이트진로 등 공정위가 일감 몰아주기 조사를 진행 중인 다른 대기업들에게도 희소식이다. 벌써부터 정상가격 10% 범위 내에서 일감 몰아주기가 빈번해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번 판결이 일종의 가이드라인으로 작용할 수 있는 까닭이다.
하지만 공정위는 일감몰아주기에 여전히 단호하다. 오너 일가 사익 편취 금지 규제는 이해관계자의 의견 수렴을 위한 공청회와 여야 합의를 거쳐 도입된 제도인 만큼 한경연의 문제제기를 납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불법승계를 위해 계열사 간 일감몰아주기가 이뤄져도 효율적으로 규율하는 장치가 여전히 미흡한 만큼 규제의 필요성은 더욱 부각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재계가 뒷배경
공정위 관계자는 “한경연이 일률적 규제로 효율적 일감몰아주기를 위축시킨다고 주장하지만 오너일가 지분이 높은 기업과의 모든 일감몰아주기를 금지하는 것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즉, 규제 대상 기업의 부당한 일감몰아주기만 제재한다는 뜻을 내비친 셈이다.
<djy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전경련이 전망한 경제회복은?
전국경제인연합회는 30대 그룹의 80%가 올해 전반적 경영여건을 부정적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지난 9일, 전경련은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장관이 주재한 투자기업 간담회에서 30대 그룹의 2016년 투자계획은 122조7000억원이라고 발표했다. 전년 대비 5.2% 증가한 규모다.
시설투자는 지난해 실적보다 7.1% 증가한 90조9000억원, R&D투자는 0.1% 증가해 전년과 비슷한 31조8000억원으로 추산됐다.
주요 그룹들은 어려운 대내외 경제여건에도 불구하고 반도체, OLED, 유통, 에너지 등 기존 주력업종의 과감한 설비투자와 신성장동력 개발을 위한 R&D투자 프로젝트에 집중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30대그룹 중 투자가 지난해보다 증가한 그룹은 18개, 지난해 수준으로 동결인 그룹은 3개, 감소한 그룹은 9개였다.
30대 그룹을 대상으로 실시된 ‘2016년 경영환경 전망 설문조사’ 결과 80%의 기업들이 전반적인 경영여건의 악화를 예상했다.
13.3%는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일 것이라고 답했으며 6.7%만이 소폭개선 될 것이라고 응답했다. 예상경제회복 시기에 대해서는 96.7%가 ‘2018년 이후(56.7%)’또는 ‘2017년 이후(40.0%)’가 될 것으로 답변해 경기부진이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