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황천우는 지금까지 역사소설 집필에 주력해왔다. 역사의 중요성, 과거를 알아야 현재를 알고 또 미래를 올바르게 설계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아울러 그 과정에서 ‘팩션’이란 장르를 만들어냈다. 팩트와 픽션, 즉 사실과 소설을 혼합하여 교육과 흥미의 일거양득을 노리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의심의 끈을 놓지 않은 사건을 들추어냈다. 필자는 그 사건을 현대사 최고의 미스터리라 칭함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바로 1974년 광복절 행사 중 발생했던 영부인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이다.
“뭐든지 말씀하십시오.”
“범행에 사용될 권총에 대해서입니다.”
“권총 구하는 일은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지요. 북조선에 부탁해도 되는 일이고.”
“물론 북조선이나 암시장에서 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권총을 반드시 일본 정부와 연계시켜야 합니다. 아울러 두 자루를 부탁합니다.”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일본을 확실하게 엮어 넣으려 합니다.”
주선이 의미를 새기며 잔을 비워냈다.
“그런데 권총을 구하는 거야 그렇다고 해도 어떻게 한국으로 반입하겠다는 말입니까. 그리고 두 자루라니요.”
“한국으로의 반입 문제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한국으로 가지고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아울러 한 자루는 이곳에서 문석원이 사격연습 하는데 그리고 한 자루는 실제 사건에 사용하려 합니다.”
“그런데 정 팀장께서 가지고 입국한다는 말은 무슨 의미입니까?”
“결국 제가 전해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떻게 정 팀장께서….”
“차 사장께서 제게 역할을 주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주선이 잠시 의미를 새기고는 미소를 보냈다.
“정 팀장의 말씀 충분히 이해하겠습니다. 그런데.”
주선이 말하다 말고 동일을 주시하며 뜸을 들였다.
“왜 그러십니까?”
“제가 들은 바로는 이 모두 정 팀장 개인의 생각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참으로 기발한 발상입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마음이 더욱 무거워집니다.”
“허허, 그건 그렇다 하고. 정 팀장께서는 어떻게 문석원이 고도 난시인 점을 알아채셨습니까?”
“고도 난시라고요?”
차주선이 이외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사실은 모르고 있었습니까?”
차주선의 말소리가 은근히 올라갔다.
“외람되지만 금시초문입니다.”
“아마도 하늘이 정 팀장을 아니 우리 대한민국을 도와주는 모양입니다. 그 친구 안경 벗으면 바로 앞 사람도 식별 못할 정도라 합니다.”
정동일이 가볍게 혀를 차자 차주선이 미소를 보냈다. 2월 초 차주선이 이호룡을 도쿄 조총련 본부로 호출했다. 물론 문석원의 박정희 대통령 암살과 관련해서였다. 호룡이 도착하자 의장실에서 여러 사람과 대화를 나누던 차주선이 호룡을 다른 방으로 안내했다.
“박정희 암살과 관련하여 자네 오기 전에 의장단과 긴밀하게 의견을 교환했네.”
“무슨 말씀들을 나누셨는지요.”
“결론은 항상 똑같네.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이야기지.”
차주선이 힘주어 이야기하자 이호룡이 가볍게 신음을 내뱉었다.
“무슨 문제 있는가?”
“열의가 식은 듯 보입니다.”
“그게 무슨 소린가?”
“전처럼 강한 의욕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면 안하겠다고 물러선다는 말인가?”
“그건 아닙니다만. 여하튼 현재로서는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다가오는 거사일…사격연습 돌입
권총 두 자루 밀매…거대한 음모
이번에는 차주선이 가볍게 신음을 내뱉었다.
“송구합니다, 위원님.”
“자네가 송구할 일이 아니지. 여하튼 자네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번 삼일절 행사에는 투입하기 힘들다는 이야기로고.”
“삼일절 행사요?”
“박정희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외부에 확실하게 노출되는 날이 남조선 국경일 외에 더 있겠는가.”
“그야 지당한 말씀입니다만, 아무래도 삼일절에는….”
“그렇다면.”
차주선이 말하다 말고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잠시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다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그러면 결국 광복절을 디데이로 잡아야 한다는 이야기로고.”
“그러면 가능하겠습니다.”
“그런데 이 부장. 자네도 잘 알고 있겠지만 이번 건에 우리 조총련은 물론 김일성 수령의 관심도 지대하다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잠시 전 의장단과 대화를 나누었다네. 이 일이 성사되기까지 내 소관 하에 일처리 하기로 말일세.”
“하면, 저는.”
“지금처럼 지속해주면 될 듯하네. 그리고 거사에 앞서 먼저 문석원에게 확고한 사상과 자긍심을 심어주어야겠네. 지금처럼 그저 젊은이의 객기만으로 접근하면 낭패 보기 십상이네.”
“특별한 방법이라도 있습니까?”
“한 달 정도 집중적으로 정신교육을 강화토록 하세.”
호룡이 이외의 방안인지 그저 차주선을 바라보기만 했다.
“일종의 세뇌교육일세.”
“북조선으로 보냅니까 아니면 만경봉호입니까?”
“그 방법은 안 되네. 그런 경우 일본 내에 있는 남조선 기관 애들에게 포착될 우려가 있네. 그러니 병을 위장하여 병원에 입원시키도록 하게.”
“병원이오?”
“이곳과 가까운 곳에 있는 아카후토 병원에 입원시키도록 하고 수시로 이곳에 불러들여 정신교육을 강화토록 하세.”
“하면 이제 본격적으로 총련에서 개입하겠다는 의미입니다.”
“이 사안의 중요성에 대해 방금 전에 말하지 않았는가.”
호룡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자네는 지금 바로 오사카로 돌아가서 이러한 사실을 문 군에게 전하게.”
차주선이 말을 마침과 동시에 봉투를 꺼내들었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생계 보조비로 쓰라 하게. 그리고 병원장에게는 내가 별도로 이야기할 터이니 문 군으로 하여금 입원하면서 원장을 찾으라 이르게. 물론 입원할 때 본명을 써서는 안 되네.”
“무슨 사유라도 있습니까?”
“만사 조심해서 처리하자는 의미일세.”
이호룡이 더 이상 묻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주선에게 인사하고 조총련 본부를 벗어난 이호룡이 곧바로 오사카 이코노구 문석원의 집을 향했다. 중간에 슬쩍 봉투의 내용을 살펴보았다.
무려 30만 엔이 들어 있었다. 잠시 생각에 잠겨들었던 호룡이 그 중에서 10만 엔을 꺼내 자신의 주머니에 넣고 20만 엔을 다시 봉투에 넣었다. 호룡이 석원의 집에 이르자 마침 홀로 집안을 지키고 있었다.
“집 사람은 어디 갔는가?”
호룡이 집안에 들어서면서 주위를 살펴보았다.
“저 혼자 있습니다.”
호룡의 방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겠다는 듯 석원이 차분하게 말을 받았다.
“본부에서 지령이 하달되었네.”
호룡이 앉자마자 봉투를 꺼내 석원에게 건넸다. 그 자리에서 내용물을 확인해 보았다. 20만 엔이란 적지 않은 금액을 살피며 다시 넣었다.
“지령이란 무엇입니까?”
“이제 구체적으로 거사에 임하자는 이야기로 먼저 자네에 대한 사상 교육이 실시될 것이네.”
석원의 표정이 마뜩치 않게 변해갔다. 호룡이 건넨 봉투에 이상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작용했을지도 몰랐다.
“사상교육이란 무엇을 의미하는지요?”
“말 그대로 자네의 영웅적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여 자네의 마음을 확고하게 재무장하는 일을 의미하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