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황천우는 지금까지 역사소설 집필에 주력해왔다. 역사의 중요성, 과거를 알아야 현재를 알고 또 미래를 올바르게 설계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아울러 그 과정에서 ‘팩션’이란 장르를 만들어냈다. 팩트와 픽션, 즉 사실과 소설을 혼합하여 교육과 흥미의 일거양득을 노리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의심의 끈을 놓지 않은 사건을 들추어냈다. 필자는 그 사건을 현대사 최고의 미스터리라 칭함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바로 1974년 광복절 행사 중 발생했던 영부인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이다.
아울러 암살을 시도한다면 박정희 대통령이 공식 행사에 참석했을 때가 적기라 판단했고 아마도 국가 기념일 등 경축 행사에서 일을 도모할지도 모른다 생각했다. 그렇다면 가장 가까운 경축행사는 삼일절이 될 터였다.
하여 신영수 부장에게 부탁했던 일이 하루빨리 실현되기를 학수고대했던 터였는데 급기야 오늘 전화가 걸려왔다. 동일이 문석원의 얼굴을 또한 국경일 행사를 주로 개최하는 국립극장을 떠올렸다.
문석원처럼 젊고 무모한 사람이 그리고 전문 암살자가 아닌 이상에 암살 장소는 국한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일전에 박 실장과 신 부장에게 설명했었던 대로 방법 역시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동일이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신년 초라 그런지 거리가 그 어느 때보다도 한산하게 느껴졌다. 아니 본국이 아닌 이국의 날씨가 우중충해 더욱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도 몰랐다.
처음 문석원에 관한 이야기를 접했을 때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일어났다. 아울러 아마추어의 일시적인 객기를 잘만 활용하면 자신의 주도로 이루어졌던 윤대중 납치사건의 여파를 한 번에 해소할 수 있다 판단했다.
그 판단에 따라 상부에 보고가 이루어졌고 역시 현 실정에 대해 그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또 그 방편을 알고 있는 윗선은 선선히 허락해 주었다. 그리고 부장의 약속대로 조총련 측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에게 연락이 왔다.
창가를 서성이다 먼발치에서 바라본 문석원의 얼굴을 생각하며 자리로 돌아가 소소한 일을 마무리하기 시작했다. 얼추 시간이 되어 자리를 정리하고 약속장소로 향했다.
오사카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횟집에 들어서자 세기문화사 사장을 언급했다. 안내원의 안내에 따라 한 룸으로 이동했다. 안내원이 문을 열자 마치 전부터 잘 알고 지냈던 사람처럼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반갑게 맞이했다.
곧바로 문이 닫히자 상대방이 명함을 건넸다.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세기문화사 차주선이라 간단히 쓰여 있었다. 동일도 자신의 명함을 건넸다.
“정 팀장께서 혹여 회를 좋아하시지 않는 건 아닌지요?”
“음식 가리지 않는 스타일입니다. 그저 씹히면 뭐든 맛있게 먹습니다.”
간단한 대화가 끝나자 동일이 긴장을 풀고 다시 한 번 자신을 소개했다. 그러자 차주선도 자신의 직위, 조총련 중앙위원 직책을 맡고 있음을 밝혔다.
“지금부터는 철저하게 정보를 함께 공유해야겠지요?”
“당연합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아무래도 차 사장께서 주도적으로 임해주셔야 할 일입니다. 어차피 제 활동은 한국 내에 치중될 것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물론 문석원과 관련해서입니다.”
차주선이 곧바로 문제의 핵심을 파고들었다.
“차 사장께서는 문석원에 대해 알고 계시는 모양입니다.”
“비단 저뿐만 아니라 이미 조총련 쪽에는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아울러 일전에 그 친구를 직접 만나본 적 있습니다.”
문석원에 대한 소문이야 그렇다고 해도 이미 직접 만나보았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이 뚫어지게 응시하다 가볍게 혀를 찼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그동안 나름대로 문석원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습니다만, 그 부분을 실기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조총련 오사카의 이코노 지부 정치부장으로 이호룡이란 작자가 있습니다. 그 사람을 통해서 일전에 북한의 정치국 지도원과 함께 만나 식사한 적 있습니다. 물론 일에 대한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부연되는 이야기를 듣자 충분히 가능하다는 생각이 일어났다.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겠다 공언하고 돌아다니는 그 친구를 차주선이 놓칠 리 만무했다. 동일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부에서도 긴가민가…불안감 고조
다가오는 거사일, 초조해진 암살단
“이호룡이란 사람은 어떻습니까?”
“이번 일에 있어 또 다른 문석원으로 간주하면 좋을 듯 싶습니다.”
“선뜻 이해되지 않습니다만.”
“그저 천방지축으로 나대는 사람으로 문석원과 조금도 차이나지 않는다 보시면 무방할 것입니다.”
동일이 그 의미를 새기고 가볍게 혀를 찼다.
“아울러 문석원이 지금은 이호룡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고 있으나 그리 오래 이어지지 못할 듯합니다.”
“교체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되겠습니까?”
“교체라기보다는…”
차주선이 말하다 말고 표정을 밝게 했다.
“결국 차 사장께서 그 일을 지휘하시겠다는 말씀이십니다.”
“일을 완벽하게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그리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당연한 일입니다만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습니까?”
“어차피 이번 일이 저나 정 팀장에게 일본에서의 마지막 임무가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멋지게 해결해야지요.”
동일이 그 말의 의미를 새기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는 중에 주문한 음식이 들어오고 있었다. 상에 차려지는 음식을 바라보며 차주선이 음식들에 대한 품평회를 열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동일 역시 맞장구를 쳐주었다. 물론 한국말이 아닌 일본말로였다.
“제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문석원이 국경일에 한국내로 잠입하여 권총으로 암살을 시도할 것으로 보입니다만.”
상이 차려지고 종업원이 물러가자 동일이 말문을 열었다.
“정 팀장의 분석이 정확합니다. 문석원 본인 말에 의하면 권총으로 시도하겠다는 분명한 암시를 준 바 있습니다. 아니 이제 제가 기획하게 되는 일인 바 반드시 그리 되도록 일을 이끌어가야겠지요.”
“부연하여 말씀드리자면 문석원이 적기로 잡고 있는 때가 금년 삼일절 행사가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그리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금년 삼일절 행사 시는 곤란합니다.”
“무슨 이유라도 있습니까?”
“박정희 대통령 근처는커녕 행사장에 들어갈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차주선이 잠시 생각에 빠져들었는지 상 위에 음식들로 시선을 주었다.
“우리는 문석원에게 확실한 잔칫상을 차려주겠다는 입장입니다.”
“그리고 실리만 취하겠다는…”
“바로 그렇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살피면 금번 삼일절 행사에는 잔치판조차 열 수 없다는 치명적 단점이 있습니다.”
“박 실장의 물 샐 틈 없는 경호 관례를 살피면 당연히 그리 되겠지요. 하면?”
“광복절로 잡아주십시오.”
“상황을 조성할 수 있겠습니까?”
동일이 답하지 않고 술병을 들었다.
“한잔 하시겠습니까?”
차주선이 잔을 들자 동일이 술을 따랐다.
“하여 이번 삼일절 행사를 빌미로 삼으려 합니다. 그를 이용하여 광복절 행사에 문석원이 참석할 수 있는 여지를 조성하려 합니다.”
차주선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동일의 잔을 채워주었다.
“차 사장께 한 가지 더 부탁드리려 합니다.”
함께 잔을 비워내고 서로의 잔이 채워지자 동일이 입을 열었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