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 새수장' 김병원 공약 대해부

지금부터 개혁이 시작된다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김병원 농협중앙회 신임 회장의 공식 취임이 이뤄졌다. 삼수 끝에 이룬 결실이지만 마냥 기뻐하긴 이르다. 곳곳에 가시밭길이 펼쳐져 있다. 일단 김 회장이 공약으로 내건 내용들조차 제대로 실현될 수 있을지 미지수다. 공수표로 치부될 가능성마저 배제하기 힘들다.

지난 1월12일 서울 농협중앙회 본관에서는 제5대 민선 농협중앙회장 선거가 치러졌다. 승자는 삼수를 선택했던 김병원 후보였다. 농협에 몸담은 지 4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뒤에야 이룬 성과였다. 14일 취임식을 거치며 김 회장은 공식적으로 농협을 진두지휘하는 수장으로 거듭났다. 회장이라는 직함은 또 다른 의미의 시작에 불과하다. 그에게는 많은 숙제가 남겨져 있다.

농협 뒤흔드는
경제지주 폐지

1978년 농협과 인연을 맺은 김 회장은 말단 직원으로 시작해 농협중앙회의 맨 꼭대기 자리를 꿰찬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의 이름이 본격적으로 오르내린 건 약 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라남도 나주의 남평농협에서 능력을 검증받은 김 회장은 2007년 중앙무대로 눈길을 돌렸다. 제4대 민선 농협중앙회 회장선거에 자신의 이름 세 글자를 올린 것이다. 첫 시험대는 절반의 성공이었다.

1차 투표에서 1위를 차지하며 선전했던 김 회장은 2차 투표에서 최원병 후보의 당선을 지켜봐야만 했다. 합천가야농협 조합장이던 최덕규 후보가 범영남권이었던 최원병 후보를 지지한 게 결정타였다.


절치부심 끝에 2012년 농협중앙회 회장선거에 재도전했지만 현실의 벽은 여전히 높았다. 최종 투표일 전날 이뤄진 최덕규 후보의 사퇴가 영남권 표 단일화로 이어진 까닭이다. 결국 최원병 후보는 연임에 성공했고 김 회장에게는 4년이라는 인고의 세월이 더해졌다.

아쉬움이 짙게 베인 탓일까. 김 회장은 제5대 민선 농협중앙회 회장선거에 다시 출사표를 던졌다. 선거인 289명이 참석한 이번 선거는 낙생농협 조합장을 역임했던 이성희 후보와 김병원 회장의 2파전 양상이었다. 다만 이 후보가 최 전 회장의 측근이라는 점이 부각되면서 김 회장의 당선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되는 분위기였다.

실제로 최덕규 후보까지 3인이 경합한 1차 투표에서는 이 후보가 104표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 상위 득표자 2인으로 압축된 2차 결선 투표가 진행되기 전부터 이 후보의 우세가 점쳐진 건 당연했다.

허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전체 유효 투표수 289표 중 56.4%인 163표를 획득한 김 회장이 126표를 얻은 이 후보를 제치고 신임 회장으로 선출된 것이다.

2007년부터 세번째 도전 ‘집념의 사나이’
호남사람…지역주의 극복 우선과제 제시

김 회장의 당선은 사상 첫 호남출신 인사라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지금껏 영남권에서 회장 지위를 독식했다는 것을 감안할 때 더욱 이례적이다. 김 회장 역시 앞선 두 차례의 선거에서 지역주의에 기반을 둔 투표 행태로 눈물을 삼켰던 전례가 있다. 영남출신 인사를 배제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된 배경이기도 하다.

다만 선거 과정에서 빚어진 선거법 논란은 오점이었다. 선거관리위원회는 특정 후보가 김 회장 지지를 요청하는 문자메시지를 발송한 점을 문제 삼은 바 있다. 또한 선거 당일 1차 투표 결과 발표 직후 특정 후보가 김 후보의 손을 들어 올린 뒤 투표 장소인 농협중앙회 대강당을 돌아다닌 것을 위반 사항이라고 판단했다. 실제로 특정 후보는 투표장에 있던 선관위 직원들의 제지를 받고 난 뒤에야 투표장을 돌아다니는 행위를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농협중앙회를 대표하는 자리에 오른 김 회장의 어깨는 그 어느 때보다 무겁다. 달리 말하자면 곳곳에 산재한 난제를 헤쳐 나가야 한다는 뜻이다. 김 회장이 내건 개혁적인 성향의 몇몇 공약은 이 같은 특징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물론 농협이라는 거대 조직의 지원을 받는다는 점에서 김 회장이 내건 청사진에 기대를 걸어봄 직하다.

4년 임기의 비상근 명예직임에도 불구하고 농협중앙회장이 지닌 권한은 실로 막강하다. 235만명에 이르는 농민 조합원을 대표하는 동시에 농협임직원 8만명의 인사권을 책임진다. 대외업무 집행권, 총회·대의원회·이사회 의장, 직원임면권 등을 모두 포함한다. 430조원에 이르는 엄청난 자산과 30곳이 넘는 계열사도 명목상 통솔하는 위치다. 괜히 ‘농민 대통령’이라는 말이 나오는 게 아니다.

개혁적 성향
과연 통할까

김 회장의 공약에서 화두가 되는 사안은 단연 ‘경제지주 해체’다. 그는 선거에 돌입한 순간부터 농협경제지주 폐지를 강력히 주장했다. 경제지주가 탄생하면 중앙회와 지역 농협의 업무경합이 이뤄진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2020년까지 경제지주 폐지를 완료한다던 일본의 사례는 그의 주장에 신빙성을 더한다.

선거 당시 김 회장은 “중앙회장 임기 4년을 중앙회의 잘못된 관행을 고치는데, 회원 농협의 균형발전을 이루는데, 교육개혁을 이루는데, 국민의 농협을 만드는데 각각 1년씩을 쓰겠다”며 “경제지주는 반드시 사라져야할 것”이라고 입장을 드러냈다.

하지만 경제지주 해체는 그리 단순한 사안이 아니다. 우선 농협법 개정과 농림축산식품부의 반대를 무릎써야 한다.

농협은 2012년에 농협금융지주와 농협경제지주를 만들었다. 기본 취지는 농협중앙회의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을 분리해 경제사업을 활성화시키고자 함이다. 농협이 농업인이 원하는 농축산물 유통과 판매 등을 소홀히 한 채 돈 되는 신용사업에만 치중한다는 비판을 잠재우기 위한 방침이었다.

현재까지 농협경제지주는 농협유통, 남해화학 등 농협중앙회 소속 13개 경제 자회사를 이관받았다. 농협중앙회의 판매·유통사업도 지난해 2월 넘겨 받았다. 농협중앙회는 마무리로 내년 2월까지 유통, 제조 등 나머지 경제 사업을 경제지주에 넘겨야 한다.

구조 개편 의지
험난한 가시밭길

문제는 농협 경제지주 신설을 위해 농협법을 개정한 게 불과 4년전의 일이라는 사실이다. 2011년 3월 개정된 농협법에 따라 농협은 ‘1중앙회-2지주사(농협경제, 농협금융)’ 체제로 전환이 필수다. 농협금융지주가 2012년 농협중앙회에서 분리됐고 경제지주도 내년 2월까지 분리해야 한다. 게다가 농협법 개정 주체가 국회라는 점에서 쉽사리 해결될 일이 아니다. 농협경제지주를 찬성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도 부담요소다.
 

농협 홍보실 관계자는 “이제 막 김 회장님의 취임식이 이뤄졌을 뿐 아직까지 별다른 검토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내부적인 지원 사항에 대해서는 추후 면밀한 내용 분석을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상호금융 독립법인화 공약도 실현 가능성에 의문부호가 따르긴 마찬가지다. 김 회장은 선거 과정에서부터 농협중앙회의 상호금융 부서를 분리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았다. 오래 전부터 농민단체 및 회원조합들의 독립법인화 요구가 빗발친 만큼 적극 추진한다는 방침이었다. 


만약 상호금융 부문이 독립법인화되면 기존 새마을금고나 신협 같은 개별 단위법인의 연합회 성격을 띨 것으로 예상된다. 농협금융지주나 경제지주처럼 중앙회 산하의 별도 지주회사 형태로 가거나 아예 별도 출자과정 밟아 새 법인형태로 출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 회장은 “상호금융이 돈을 벌면 이것을 지역농협에 줘야 하는데 중앙회에 정체돼 있다”면서 “상호금융을 별도의 중앙은행으로 독립시켜서 5% 이상의 수익을 회원농협에 돌려주겠다”고 말했다.

다만 독립법인화를 추진한다던 김 회장의 의중만 있을 뿐 아직까지 구체적인 방안에 대한 밑그림은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다. 농림축산식품부와 금융위원회 등 관련 부처는 물론 국회와 업무 조율을 거쳐야 한다는 점에서 공약이 제대로 실현될지 장담하기 힘들다.

“첫째도 개혁 둘째도 개혁”
전임이 남긴 미제도 산적

일각에서는 상호금융 분리를 요구하는 조합원들의 표심을 의식한 보여주기식 공약이라고 평가절하 하는 분위기다. 최원병 전 회장 시절부터 상호금융 부문을 별도로 분리해달라고 제기됐던 것을 회장 선거에 이용했다는 주장이다. 달리 말하자면 전임 회장과의 차별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표심 공약이라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독립법인화 추진 방침만 있을 뿐 구체적인 내용은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라며 “정부 역시 상호금융 경쟁력 강화라는 명분에는 동의하는 만큼 농민과 농협중앙회 측의 적극적인 요청과 구체적 방안이 나오면 검토해보겠다”고 밝혔다.


농협중앙회장 선거를 직선제로 전환하겠다고 밝힌 점도 논란의 대상이다. 1961년 이후 농협중앙회장은 대통령이 임명했다. 1988년 이후 직선제 요구 농민운동으로 농협중앙회장 선거는 1000여명의 조합장이 선출하는 직선제로 변모했다. 그러나 부정과 비리 문제가 거듭 드러나자 2009년부터 전국 291명의 대의원 조합장과 1명의 현직 농협중앙회장 등 292명이 선출하는 간선제로 바뀌었다.

물론 간선제로 치러지는 농협 중앙회장 선거의 직선제 전환 필요성은 수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사안이다. 회장 선거에 뛰어든 6명의 후보 중 5명이 내걸 정도였다. 다만 간선제가 시행된 지 5년밖에 지나지 않은 데다 정부가 직선제 회귀를 강력히 반대하고 있어 단순 공약에 그칠 수 있다.
 

어쩌면 공약 실천 여부는 둘째일지도 모른다. 당장 김 회장이 해결해야 할 과제가 널려 있다. 이 문제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하지 못한다면 선거 과정에서 내건 개혁적 시도는 공염불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일단 상대적으로 다른 시중은행에 비해 낮은 수익률을 보이는 농협중앙회의 고비용·저효율 구조를 해결해야 한다.

4조5000억원에 달하는 농협중앙회의 차입금은 반드시 해결해야 할 숙제다. 농협중앙회 사업구조개편을 위한 부족자본금 12조원 중 현물출자를 제외한 4조5000억원이 차입금이다. 2017년 2월부터는 원금과 이자를 갚아야 한다.

첩첩산중…
현안 처리는?

농협금융지주의 당기순이익은 2011년 7788억원에서 2014년 5227억원으로 32.8% 가량 급감했다. 자기자본대비 당기순이익률도 2014년 1.7%로 경쟁관계에 있는 다른 금융사와 비교해 안정적이지 않다. 농협 공제 수수료와 카드수수료가 갈수록 줄어드는 점도 농협중앙회의 수익성을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꼽힌다. 

금융권 관계자는 “김 회장이 농협의 부채 등을 해결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인다고 들었다”며 “다만 개혁적 취지가 제대로 실현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전임회장과 별반 변동이 없을 것이라는 목소리도 들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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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개혁안 이후⋯‘초상집’ 검찰 내부 분위기

검찰개혁안 이후⋯‘초상집’ 검찰 내부 분위기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검찰청을 폐지하고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을 신설하는 정부 조직 개편안이 발표됐다. 개편안이 시행되는 것은 아직 1년여의 시간이 남았지만 검찰 내부에서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검찰수사관, 지휘부와 일선 검사들은 물론 퇴직 검사들까지 나서서 검찰청 폐지에 반대 중이다. 특히 공소청장을 검찰총장으로 한다는 개혁안에 대해 위헌이라는 의견이 강하게 나오고 있다. 대선 기간부터 말이 나왔던 검찰개혁안이 발표됐다. 이재명정부가 들어서고 검찰개혁안에 대해 쉬쉬하던 검찰 내부에서는 이제야 조직을 지키려는 반발이 나오고 있다. 수사관, 검사, 퇴직 검사, 지휘부 등 모든 관계자들이 검찰 해체가 ‘위헌’이라는 목소리를 내는 등 늦게나마 조직을 지키기 위해 나섰다. “위헌” 목소리 지난 7일 고위당정협의회에서는 검찰청을 폐지하고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을 신설하는 정부조직법 개편안에 의견을 모았다. 다만 시행 시기는 세부 방안 확정 등을 위해 1년 동안 유예하기로 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한정애 정책위원장은 “당정은 국정기획위원회에서 건의한 조직 개편안을 중심으로 사회 각계의 의견을 듣고 심도 있는 논의를 거쳐 마련한 정부 조직 개편방안을 추진했다”며 “개편 방안 중 검찰개혁을 가장 심도 있게 논의했다”고 말했다. 그는 “검찰개혁의 완성은 대통령의 핵심 공약”이라며 “그간 검찰의 견제받지 않은 권한의 남용과 공정성 훼손에 대해 지속적인 우려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당정은 검찰 수사·기소를 분리해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을 각각 신설하며, 중수청은 행정안전부 장관 소속으로 두기로 확정했다. 한 위원장은 “검찰청을 폐지하고 공소의 제기와 유지, 영장 청구 등을 수행하기 위해 법무부 장관 소속으로 공소청을 신설하는 한편, 부패·경제 범죄 등 중대 범죄에 대한 수사를 수행하기 위해 행안부 장관 소속으로 중수청을 신설하겠다”고 설명했다. 헌법의 검찰총장 임명 조항과 관련해 ‘공소청장이 검찰총장이 되느냐’는 취재진의 물음에 그는 “그렇게 되는 것”이라고 답했다. 당정은 구체적인 검찰개혁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국무총리실 산하 범정부 검찰개혁추진단을 구성해 당정대 협의를 거쳐 이른 시일 내에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한 위원장은 “오늘 협의 결과를 토대로 의원 입법을 통해 조속히 정부 조직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고, 추석 이전에 개편안을 시행하기 위해 이달 말에 법안이 통과되도록 노력하기로 했다”며 “정부 조직 개편에 특별히 야당의 적극적인 협조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지난 7일 정부 조직 개편안 발표 “잘못 인정하지만 폐지는 절대…”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지난 9일 야권에 ‘3대 개혁(검찰·사법·언론)’에 동참해줄 것을 촉구했다. 정 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검찰, 사법, 언론은 견제받지 않는 권력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려온 곳”이라면서 “3대 개혁은 비정상적인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고, 시대에 맞게 고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 대표는 “절대 독점은 절대 부패한다”며 “절대 독점을 해소함으로써 권력기관은 스스로 절대 부패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개혁은 타이밍”이라며 “추석 귀향길 뉴스에 ‘검찰청은 폐지됐다, 검찰청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는 기쁜 소식을 들려드리겠다”고 강조했다. 검찰 해체되는 검찰개혁안이 발표되자, 검찰 구성원은 이제야 뭉쳐 반발하는 분위기다.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대검찰청 차장검사)이 ‘검찰청 폐지’를 토대로 한 정부 조직법 개편안을 두고 “검찰이 개명당할 위기에 놓였다”면서도 “이 모든 것은 우리 검찰의 잘못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밝혔다. 노 대행은 지난 8일 오전 출근길에 취재진을 만나 전날 정부여당이 내놓은 정부 조직 개편안과 관련해 “헌법에 명시돼있는 검찰이 법률에 의해 개명당할 위기에 놓였다”면서도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우리 검찰의 잘못에 기인한 것이기 때문에, 저희들이 그 점에 대해선 깊이 반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향후에 검찰개혁 방향에 대해서 세부적인 방향이 진행될 것인데, 그 세부적인 방향은 국민들 입장에서 설계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언급했다. ‘반성’을 앞세우면서도 ‘강제 개명’ ‘국민 입장’ 등 뼈 있는 표현을 동원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앞으로 진행되는 과정에서 저희 검찰도 입장을 내도록 하겠다”고 검찰 존치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검찰 수사관들은 전국 검찰 수사관회의를 열어 달라고 대검찰청에 요청하고 있다. 이대로 사라지나 수사관 A씨는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 “현재 검찰 조직을 둘러싼 상황이 우리 가족에게, 내 친구들에게, 내 친척들에게, 내 이웃사촌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지 정말 우려스럽다”는 심경을 밝혔다. 자신을 8년 차 수사관이라고 소개한 그는 “저희는 노조(노동조합)도 없고 직장협의회도 없다”며 “검찰이 해체되면 도대체 1년 뒤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모른 채 일을 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어 “저는 수사가 하고 싶어 수사관이 됐는데, 앞으로 수사할 수도 없이 제가 8년간 소중히 여겨온 검찰 수사관이라는 직업을 빼앗겨야 한다”고 토로했다. A씨는 “대검 운영지원과에 조속히 전국수사관회의를 열어줄 것을 요구한다”며 “저희 검찰 수사관들을 위한 논의를, 검찰 조직의 방향을 위한 논의를, 형사법체계에 대한 논의를 반드시 검찰 구성원들끼리 나눠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문재인정부 때 더불어민주당이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을 강행하자 서울고검·대구지검 등 소속 검찰 수사관 수백명이 2022년 4월 검찰수사관회의를 열고 우려 입장을 밝혔다. 김건희 특검에 파견된 일부 검사들은 ‘원대 복귀’ 희망 의사를 특검 지휘부에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명 건진법사 게이트와 통일교 수사팀장을 맡은 부장검사 2명이 팀원들의 의견을 취합해 특검보에게 “전원 복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다만 특검 관계자는 이날 브리핑에서 관련 보도에 대해 “정식으로 해당 내용을 확인한 바 없다”며 “내심의 의사는 모르지만 아직 전달받은 내용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퇴직 검사들도 검찰청 폐지를 철회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퇴직 검사 및 검찰공무원 모임인 검찰동우회는 성명서를 내고 “정부와 여당은 검찰청을 폐지하겠다는 정부 조직법 개정안을 즉각 철회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다시 살릴 방법은? 이들은 “검찰의 신뢰가 바닥에 떨어져 해체 위기까지 맞이하게 된 데 대해 국민 앞에 먼저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면서 “검찰이 권력의 시녀라는 비판을 받는 것을 넘어 개혁 대상이 된 현실은 검찰 구성원의 과오에서 비롯됐음을 통감하며 국민 질책을 달게 받겠다”고 말했다. 이어 “검찰 권한을 조정하고 조직을 개편하려는 입법부의 결단을 존중하며 국민을 위한 검찰개혁에 동참할 것”이라면서도 “개혁은 헌법 테두리 안에서 이뤄져야 함을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다. 성급한 개혁은 위헌 논란을 야기해 개혁의 동력을 상실하게 할 위험이 크다”고 경계했다. 그러면서 “1948년 제헌 헌법은 수많은 직위 중 유독 검찰총장을 국무회의 심의 사항으로 명시했고 이 원칙은 70년 넘는 헌정사 동안 굳건히 지켜져 왔다. 검찰청과 그 책임자인 검찰총장이 단순한 행정 조직이 아닌 헌법적 차원에서 독립성과 중립성을 보장받는 헌법적 기관임을 명백히 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또 “헌법이 인정한 기관의 명칭을 법률로 변경하는 것은 헌법정신을 거스르는 일이며 법체계의 위계 질서를 무너뜨리는 행위”라며 “법률로 헌법상의 법원을 재판소로 바꾸거나 국무총리를 부통령으로 바꾸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국민이 원하는 진정한 개혁은 위헌적 논란을 감수하며 명칭을 바꾸는 방식이 아니어도 충분히 가능하다. 개혁의 핵심은 명칭이 아닌, 검찰이 국민을 위해 어떻게 기능할 것인가에 있어야 한다”며 “개혁의 과정에서 헌법적 가치가 훼손되는 일이 없도록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한 올바른 길을 찾아주길 호소한다”고 덧붙였다. 검찰청 폐지 위헌 주장은 헌법 89조16호에서 비롯됐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 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검찰개혁 공청회’에 진술인으로 참석해 “‘공소청장’을 헌법 제89조 제16호의 ‘검찰총장’으로 본다”는 공소청 법안 규정을 두고, “헌법상의 기관을 헌법 하위의 법률로써 바꾸는 것은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헌법 89조 16항 발목 잡나 “규정 넣으면 실질 갖출 수도” 그는 “헌법에서 예정하고 있는 검찰총장은 검찰청이라고 하는 조직의 수장이고 검찰청은 수사와 기소권을 모두 갖고 있는 조직을 말하는 것인데, 이런 조직의 명칭만 바꾸는 것도 위헌이고 명칭을 그대로 두고 내용을 바꾸는 것도 위헌”이라고 밝혔다. 헌법 제89조 제16호는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야 할 사항 가운데 하나로 ‘검찰총장·합동참모의장·각군 참모총장·국립대학교총장·대사 기타 법률이 정한 공무원과 국영기업체 관리자의 임명’을 규정하고 있다. 앞서 노태우정부에서도 합동참모본부를 국방참모본부로, 합동참모의장을 국방참모의장으로 각각 변경하는 내용의 국군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가 같은 헌법 89조에 따른 위헌 지적이 나오자 명칭 변경을 포기한 선례도 있다. 2010년에도 군 지휘구조 개편을 통해 합동참모본부를 합동군사령부로, 합동참모의장을 합동군사령관으로 변경하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위헌 가능성이 있어 개정안을 발의하지 못했다고 한다. 더 나아가 검찰청 폐지 역시 검찰총장을 명시한 헌법을 위반한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헌법상 검찰총장은 검찰청이란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한 것인데 이를 없애거나 두지 않는 건 ‘위헌적 입법 부작위’라는 취지다. 공소청 설치법에서 공소청장을 ‘헌법상 검찰총장으로 간주한다’는 취지의 규정을 두는 것은 하위 법률로 헌법에서 정한 사항을 무력화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논리로 연결된다. 검찰청 폐지가 위헌이라는 지적이 검찰동인회뿐만 아니라 법조계와 학계에서도 나오자 당정은 ‘검찰청이 헌법기관이 아니라 폐지하면 위헌이라는 주장은 거짓’이라고 반박했다. 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검찰총장을 헌법상 기관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김용민 의원도 “검사는 개개인 독립된 행정관청이고, 검찰총장은 그 집합체의 장일 뿐 조직법상 직위가 만들어질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총장 명시 헌법 위반? 헌법상 검찰총장이 명시돼있더라도 공석으로 임명하지 않은 채 충분히 신설 공소청장을 임명할 수 있다는 반론도 제기된다. 임지봉 서강대 로스쿨 교수는 “공소청장을 임명하면 검찰총장은 헌법 조문상에서만 존재하게 두고 법적 지위는 없어진 게 되는 것”이라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헌법 92조), 국가원로자문회의(헌법 90조) 등 헌법상 사문화된 기관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공소청 법안이 준비되면 공소청장 임명에 관한 규정에 ‘헌법 89조 16조의 검찰총장 임명 방식을 준용한다’는 규정을 넣으면 실질도 갖출 수 있다고 봤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법 역시 법적 미비점은 ‘형사소송법을 준용한다’ 등으로 명시해 근거를 마련했다는 게 근거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