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 새수장' 김병원 공약 대해부

지금부터 개혁이 시작된다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김병원 농협중앙회 신임 회장의 공식 취임이 이뤄졌다. 삼수 끝에 이룬 결실이지만 마냥 기뻐하긴 이르다. 곳곳에 가시밭길이 펼쳐져 있다. 일단 김 회장이 공약으로 내건 내용들조차 제대로 실현될 수 있을지 미지수다. 공수표로 치부될 가능성마저 배제하기 힘들다.

지난 1월12일 서울 농협중앙회 본관에서는 제5대 민선 농협중앙회장 선거가 치러졌다. 승자는 삼수를 선택했던 김병원 후보였다. 농협에 몸담은 지 4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뒤에야 이룬 성과였다. 14일 취임식을 거치며 김 회장은 공식적으로 농협을 진두지휘하는 수장으로 거듭났다. 회장이라는 직함은 또 다른 의미의 시작에 불과하다. 그에게는 많은 숙제가 남겨져 있다.

농협 뒤흔드는
경제지주 폐지

1978년 농협과 인연을 맺은 김 회장은 말단 직원으로 시작해 농협중앙회의 맨 꼭대기 자리를 꿰찬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의 이름이 본격적으로 오르내린 건 약 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라남도 나주의 남평농협에서 능력을 검증받은 김 회장은 2007년 중앙무대로 눈길을 돌렸다. 제4대 민선 농협중앙회 회장선거에 자신의 이름 세 글자를 올린 것이다. 첫 시험대는 절반의 성공이었다.

1차 투표에서 1위를 차지하며 선전했던 김 회장은 2차 투표에서 최원병 후보의 당선을 지켜봐야만 했다. 합천가야농협 조합장이던 최덕규 후보가 범영남권이었던 최원병 후보를 지지한 게 결정타였다.


절치부심 끝에 2012년 농협중앙회 회장선거에 재도전했지만 현실의 벽은 여전히 높았다. 최종 투표일 전날 이뤄진 최덕규 후보의 사퇴가 영남권 표 단일화로 이어진 까닭이다. 결국 최원병 후보는 연임에 성공했고 김 회장에게는 4년이라는 인고의 세월이 더해졌다.

아쉬움이 짙게 베인 탓일까. 김 회장은 제5대 민선 농협중앙회 회장선거에 다시 출사표를 던졌다. 선거인 289명이 참석한 이번 선거는 낙생농협 조합장을 역임했던 이성희 후보와 김병원 회장의 2파전 양상이었다. 다만 이 후보가 최 전 회장의 측근이라는 점이 부각되면서 김 회장의 당선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되는 분위기였다.

실제로 최덕규 후보까지 3인이 경합한 1차 투표에서는 이 후보가 104표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 상위 득표자 2인으로 압축된 2차 결선 투표가 진행되기 전부터 이 후보의 우세가 점쳐진 건 당연했다.

허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전체 유효 투표수 289표 중 56.4%인 163표를 획득한 김 회장이 126표를 얻은 이 후보를 제치고 신임 회장으로 선출된 것이다.

2007년부터 세번째 도전 ‘집념의 사나이’
호남사람…지역주의 극복 우선과제 제시

김 회장의 당선은 사상 첫 호남출신 인사라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지금껏 영남권에서 회장 지위를 독식했다는 것을 감안할 때 더욱 이례적이다. 김 회장 역시 앞선 두 차례의 선거에서 지역주의에 기반을 둔 투표 행태로 눈물을 삼켰던 전례가 있다. 영남출신 인사를 배제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된 배경이기도 하다.

다만 선거 과정에서 빚어진 선거법 논란은 오점이었다. 선거관리위원회는 특정 후보가 김 회장 지지를 요청하는 문자메시지를 발송한 점을 문제 삼은 바 있다. 또한 선거 당일 1차 투표 결과 발표 직후 특정 후보가 김 후보의 손을 들어 올린 뒤 투표 장소인 농협중앙회 대강당을 돌아다닌 것을 위반 사항이라고 판단했다. 실제로 특정 후보는 투표장에 있던 선관위 직원들의 제지를 받고 난 뒤에야 투표장을 돌아다니는 행위를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농협중앙회를 대표하는 자리에 오른 김 회장의 어깨는 그 어느 때보다 무겁다. 달리 말하자면 곳곳에 산재한 난제를 헤쳐 나가야 한다는 뜻이다. 김 회장이 내건 개혁적인 성향의 몇몇 공약은 이 같은 특징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물론 농협이라는 거대 조직의 지원을 받는다는 점에서 김 회장이 내건 청사진에 기대를 걸어봄 직하다.

4년 임기의 비상근 명예직임에도 불구하고 농협중앙회장이 지닌 권한은 실로 막강하다. 235만명에 이르는 농민 조합원을 대표하는 동시에 농협임직원 8만명의 인사권을 책임진다. 대외업무 집행권, 총회·대의원회·이사회 의장, 직원임면권 등을 모두 포함한다. 430조원에 이르는 엄청난 자산과 30곳이 넘는 계열사도 명목상 통솔하는 위치다. 괜히 ‘농민 대통령’이라는 말이 나오는 게 아니다.

개혁적 성향
과연 통할까

김 회장의 공약에서 화두가 되는 사안은 단연 ‘경제지주 해체’다. 그는 선거에 돌입한 순간부터 농협경제지주 폐지를 강력히 주장했다. 경제지주가 탄생하면 중앙회와 지역 농협의 업무경합이 이뤄진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2020년까지 경제지주 폐지를 완료한다던 일본의 사례는 그의 주장에 신빙성을 더한다.

선거 당시 김 회장은 “중앙회장 임기 4년을 중앙회의 잘못된 관행을 고치는데, 회원 농협의 균형발전을 이루는데, 교육개혁을 이루는데, 국민의 농협을 만드는데 각각 1년씩을 쓰겠다”며 “경제지주는 반드시 사라져야할 것”이라고 입장을 드러냈다.

하지만 경제지주 해체는 그리 단순한 사안이 아니다. 우선 농협법 개정과 농림축산식품부의 반대를 무릎써야 한다.

농협은 2012년에 농협금융지주와 농협경제지주를 만들었다. 기본 취지는 농협중앙회의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을 분리해 경제사업을 활성화시키고자 함이다. 농협이 농업인이 원하는 농축산물 유통과 판매 등을 소홀히 한 채 돈 되는 신용사업에만 치중한다는 비판을 잠재우기 위한 방침이었다.

현재까지 농협경제지주는 농협유통, 남해화학 등 농협중앙회 소속 13개 경제 자회사를 이관받았다. 농협중앙회의 판매·유통사업도 지난해 2월 넘겨 받았다. 농협중앙회는 마무리로 내년 2월까지 유통, 제조 등 나머지 경제 사업을 경제지주에 넘겨야 한다.

구조 개편 의지
험난한 가시밭길

문제는 농협 경제지주 신설을 위해 농협법을 개정한 게 불과 4년전의 일이라는 사실이다. 2011년 3월 개정된 농협법에 따라 농협은 ‘1중앙회-2지주사(농협경제, 농협금융)’ 체제로 전환이 필수다. 농협금융지주가 2012년 농협중앙회에서 분리됐고 경제지주도 내년 2월까지 분리해야 한다. 게다가 농협법 개정 주체가 국회라는 점에서 쉽사리 해결될 일이 아니다. 농협경제지주를 찬성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도 부담요소다.
 

농협 홍보실 관계자는 “이제 막 김 회장님의 취임식이 이뤄졌을 뿐 아직까지 별다른 검토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내부적인 지원 사항에 대해서는 추후 면밀한 내용 분석을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상호금융 독립법인화 공약도 실현 가능성에 의문부호가 따르긴 마찬가지다. 김 회장은 선거 과정에서부터 농협중앙회의 상호금융 부서를 분리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았다. 오래 전부터 농민단체 및 회원조합들의 독립법인화 요구가 빗발친 만큼 적극 추진한다는 방침이었다. 


만약 상호금융 부문이 독립법인화되면 기존 새마을금고나 신협 같은 개별 단위법인의 연합회 성격을 띨 것으로 예상된다. 농협금융지주나 경제지주처럼 중앙회 산하의 별도 지주회사 형태로 가거나 아예 별도 출자과정 밟아 새 법인형태로 출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 회장은 “상호금융이 돈을 벌면 이것을 지역농협에 줘야 하는데 중앙회에 정체돼 있다”면서 “상호금융을 별도의 중앙은행으로 독립시켜서 5% 이상의 수익을 회원농협에 돌려주겠다”고 말했다.

다만 독립법인화를 추진한다던 김 회장의 의중만 있을 뿐 아직까지 구체적인 방안에 대한 밑그림은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다. 농림축산식품부와 금융위원회 등 관련 부처는 물론 국회와 업무 조율을 거쳐야 한다는 점에서 공약이 제대로 실현될지 장담하기 힘들다.

“첫째도 개혁 둘째도 개혁”
전임이 남긴 미제도 산적

일각에서는 상호금융 분리를 요구하는 조합원들의 표심을 의식한 보여주기식 공약이라고 평가절하 하는 분위기다. 최원병 전 회장 시절부터 상호금융 부문을 별도로 분리해달라고 제기됐던 것을 회장 선거에 이용했다는 주장이다. 달리 말하자면 전임 회장과의 차별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표심 공약이라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독립법인화 추진 방침만 있을 뿐 구체적인 내용은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라며 “정부 역시 상호금융 경쟁력 강화라는 명분에는 동의하는 만큼 농민과 농협중앙회 측의 적극적인 요청과 구체적 방안이 나오면 검토해보겠다”고 밝혔다.


농협중앙회장 선거를 직선제로 전환하겠다고 밝힌 점도 논란의 대상이다. 1961년 이후 농협중앙회장은 대통령이 임명했다. 1988년 이후 직선제 요구 농민운동으로 농협중앙회장 선거는 1000여명의 조합장이 선출하는 직선제로 변모했다. 그러나 부정과 비리 문제가 거듭 드러나자 2009년부터 전국 291명의 대의원 조합장과 1명의 현직 농협중앙회장 등 292명이 선출하는 간선제로 바뀌었다.

물론 간선제로 치러지는 농협 중앙회장 선거의 직선제 전환 필요성은 수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사안이다. 회장 선거에 뛰어든 6명의 후보 중 5명이 내걸 정도였다. 다만 간선제가 시행된 지 5년밖에 지나지 않은 데다 정부가 직선제 회귀를 강력히 반대하고 있어 단순 공약에 그칠 수 있다.
 

어쩌면 공약 실천 여부는 둘째일지도 모른다. 당장 김 회장이 해결해야 할 과제가 널려 있다. 이 문제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하지 못한다면 선거 과정에서 내건 개혁적 시도는 공염불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일단 상대적으로 다른 시중은행에 비해 낮은 수익률을 보이는 농협중앙회의 고비용·저효율 구조를 해결해야 한다.

4조5000억원에 달하는 농협중앙회의 차입금은 반드시 해결해야 할 숙제다. 농협중앙회 사업구조개편을 위한 부족자본금 12조원 중 현물출자를 제외한 4조5000억원이 차입금이다. 2017년 2월부터는 원금과 이자를 갚아야 한다.

첩첩산중…
현안 처리는?

농협금융지주의 당기순이익은 2011년 7788억원에서 2014년 5227억원으로 32.8% 가량 급감했다. 자기자본대비 당기순이익률도 2014년 1.7%로 경쟁관계에 있는 다른 금융사와 비교해 안정적이지 않다. 농협 공제 수수료와 카드수수료가 갈수록 줄어드는 점도 농협중앙회의 수익성을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꼽힌다. 

금융권 관계자는 “김 회장이 농협의 부채 등을 해결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인다고 들었다”며 “다만 개혁적 취지가 제대로 실현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전임회장과 별반 변동이 없을 것이라는 목소리도 들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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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성 없는 ‘내란 TF’ 겉핥는 내막

강제성 없는 ‘내란 TF’ 겉핥는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이재명정부가 내란을 방조하거나 간접적으로 가담한 이들을 가리기 위해 TF를 구성했다. 내년 1월까지 공무원 75만명을 대상으로 참여·협조 여부를 조사한다. 일부 기관은 자체적으로 판단해 TF를 구성하는 걸 두고 고민하고 있다. TF는 강제성이 없으며, 이미 조사를 끝내 인사에 반영한 기관도 존재한다. 헌법 존중 정부 혁신 TF(태스크포스)는 중앙행정기관 49곳에 구성됐다. 구체적으로 각 부처 25곳이 포함됐다. TF는 총 48개다. 활동 목표가 인사에 합리적으로 반영하기 위한 것이라지만 각 기관 안팎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사실상 내란 특검팀(조은석 특별검사)의 연장선이 아니냐는 것이다. 방조·간접 가담자들 김민석 국무총리는 지난달 24일 TF 실무 책임자들과 첫 간담회를 갖고 “TF의 조사 활동은 대상, 범위, 기간, 언론 노출, 방법 모두 절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 총리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절제하지 못하는 TF 활동과 구성원은 즉각 바로잡겠다”면서 “TF 활동의 유일한 목표는 인사에 합리적으로 반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이 TF는 공무원 75만명의 ‘내란 참여·협조’ 여부를 개인 휴대전화까지 제출받아 조사한다는 방침 등이 인권침해란 논란이 일었다. 총리실에 설치된 ‘총괄 TF’는 이날까지 부처 25곳을 포함한 기관 49곳에서 TF 48개가 출범했다. 국무조정실·국무총리비서실로 구성된 총리실에 단일 TF가 설치되면서 TF 숫자는 하나 줄었다. TF는 대부분 10~15명으로 구성됐지만, 전체 인원이 많은 국방부(53명), 경찰청(30명), 소방청(19명) 등은 대규모 조사단을 꾸렸다. TF 48개의 총인원은 정부 내부 인사 536명을 포함해 661명에 달한다. TF 48개 중 32개에 외부 인사 125명이 참여했고 그중 76명(60.8%)은 법조인, 31명(24.8%)은 학자, 18명(14.4%)은 시민단체 관계자 등이 참여했다. TF는 ‘내란의 사전 모의나 실행, 사후 정당화, 은폐’를 한 공무원은 ‘내란 참여’로, ‘내란의 일련의 과정에 물적·인적 지원을 도모하거나 실행’한 공무원은 ‘내란 협조’를 한 것으로 보기로 했다. 적발된 공무원에게는 내년 2월13일까지 ‘징계’나 ‘승진 배제’ 같은 인사 조치할 방침이다. 또 ‘내란 행위 제보 센터’를 설치해 동료 공무원들에게 제보·투서를 받고, 의심 공무원은 개인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기로 했다. 한 정부 관계자는 “의혹이 상당하다고 판단되면 대상자의 휴대전화를 제출받아 들여다볼 예정이다. 의혹이 상당한 데도 조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수사 의뢰까지 가능한 선을 정했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TF 조사 권한을 두고 이견이 나온다. 형사가 아닌 행정 절차이지만 일반적인 조사가 아닌 만큼 행정법이 지켜져야 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공무원 75만명 전방위 조사 문제없나 형소법 원칙 유명무실…권력남용 소지 한 서초동 변호사는 “영장 없는 조사를 두고 많은 문제 제기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 행정조사기본법에 따르면 인사상 불이익으로 압박하거나 진술을 강요하면 직권남용 혐의가 성립될 수 있다. 최소한의 범위를 규정하고 조사해야 하는데 TF가 정한 선이 어느 지점까지인지가 핵심일 것 같다”고 조언했다. 국회도 과거 비슷한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022년 발간한 ‘권력적 행정조사의 쟁점 및 개선 과제’ 보고서에서 행정조사 과정에서 영장주의·진술거부권이 침해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행정조사에서 수집된 자료가 수사기관으로 넘어가 형사 처벌 근거로 활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형사소송법상 원칙이 유명무실해지고, 국가권력이 남용될 소지도 있다. 업무용 PC나 이메일에서는 변호사와 상담한 내용까지 확보되는 사례도 있어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위축될 가능성도 있다. 행정조사 위법성과 관련해서는 판례도 존재한다. 지난 2012년 서울고법은 기관이 업무용 휴대전화 통화 기록과 문자메시지를 동의 없이 확보해 공무원을 해임한 사건에서 이를 위법한 증거수집으로 보지 않았다. 법원은 기관이 통신비를 부담했고, 감사 목적이 공익적이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도 상고를 기각했다. 조직 내부 감사는 세무조사·공정거래위원회 조사·근로감독 등과 달리 별도의 법적 근거가 불명확한 경우가 많아 조사의 한계 역시 모호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정부 차원의 대규모 내부 감사가 법적 문제를 일으킨 선례 역시 많지 않다. 민간인의 TF 참여도 새로운 논란이다. 정부는 감사부서 공무원 외에 민간인을 포함하거나 아예 외부 전문가로만 구성된 TF를 둘 수 있다는 지침을 내렸다. 명확한 법적 근거 없이 민간인이 공무원에 대해 조사권을 행사하는 셈인데, 정부는 TF 설치를 위한 별도 입법을 마련하지 않았다. 논란 불구 조사 시작 공직사회는 뒤숭숭한 분위기다. 조사 기준이 모호해 억울한 문책 인사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반면 계엄을 방관했거나 동조한 세력을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상당하다. 핵심 조사 대상으로 거론되는 기관은 기획재정부·국방부·행정안전부·경찰·검찰·법무부 등이다. 기재부의 경우 최상목 전 기재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겸했다. 최 전 장관이 12·3 비상계엄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으로부터 국가비상입법기구 예비비 편성 등 계엄 지시 문건 등을 받고 1급 고위직들을 소집해 회의를 연 바 있어,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이들이 조사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월 국회 국정감사 때 김동일 전 예산실장과 신중범 전 대통령실 경제금융비서관 등이 아시아개발은행(ADB)과 아시아거시경제감시기구(AMRO)로 파견되기 직전 명예 퇴직금을 수령한 것을 두고 ‘해외도피’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다. 외교부는 이번 국감에서 비상계엄 직후 대통령실이 외교부 장관 명의로 ‘합법적 계엄’이란 내용의 공문을 주미한국대사관에 보내고, 이를 ‘3급 기밀’로 지정한 점을 지적받은 바 있다. TF가 가동되면서 외교부 인사는 사실상 ‘중단’ 상태다. 외교부는 애초 올해 말까지 1급 인사를 마무리할 계획이었지만, TF 활동이 시작되면서 어렵게 됐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반년이 다 되어가지만, 그동안 외교부 실·국장 및 재외 공관장 인사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외교부 인사는 특임 대사 임명과도 맞물려 있지만 인사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특히 현 정부는 특임 대사를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외교부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임 대사는 직업 외교관이 아닌 전문가·정치인·학자 등을 대통령이 재외공관장으로 임명하는 제도다. 주요 공관장 인사가 늦어지면서 사안이 터졌을 때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느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난 9월 미국 조지아주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발생한 한국인 불법구금 사태 당시에도 조지아주를 관할하는 주애틀란타총영사직은 공석이었고, 캄보디아 사태 때도 주캄보디아 대사직이 비어있었다. 필요는 한데… 이중 감사 검찰 TF는 최근 검찰 내부망인 ‘이프로스’에 다음 달 12일까지 제보용 익명 게시판과 별도의 이메일 계정을 통해 관련 제보를 받겠다고 공지했다. 단장은 구자현 검찰총장 대행이 김성동 대검 감찰부장과 주혜진 대검 감찰1과장이 각각 부단장과 팀장을 맡아 10여명이 참여했다. 법무부에 설치된 TF 역시 같은 날 공지를 게시했다. 법무부에선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TF 단장을 맡고 내외부 인사 10여명이 구성원으로 참여한다. 법무부는 내부 익명 게시판을 통해 제보를 접수하는 한편, 검찰과 별도의 이메일 계정을 개설해 운영할 예정이다. 경찰은 경무관 승진, 총경 인사를 앞두고 숨죽이는 분위기다. 앞서 계엄 수사로 조지호 경찰청장 등 수뇌부가 재판에 넘겨졌지만, 계엄 당시 국회 출입 통제나 체포조 투입에 관여됐던 간부 상당수는 기소를 피했다. 국방부는 이중 감사 논란이 일고 있다. 이미 12개 기관을 대상으로 내부 감사를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취임 직후 감사관실 주도로 중령급 이상 간부를 전수 조사해 지난주 보고서를 대통령실에 제출했고, 이는 이번 3성 장군 인사에도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는 총리실의 지시에 따라 기존 감사자료를 제출하는 수준에서 협조할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관실은 조사본부를 합류시켜 TF를 꾸릴 것으로 보인다. 지난 국방부의 자체 감사는 합참 현역 장교뿐 아니라 본부 군무원과 민간 공무원까지 포함한 대대적 감사였다. 지난 9월 진영승 합참의장 취임 이후, 권대원 합참차장을 제외한 합참 장군 전원과 2년 이상 근무한 중령·대령에 대한 대규모 인적 쇄신이 실제로 단행됐다. 합참의 지시에 따라 장교들의 진급이 보류되거나 보직이 변경됐다. 국정원은 이미 이종석 국정원장 취임 이후 직원들의 비상계엄 관련 여부 등 내부 조사를 마쳤다. 특히 의무적으로 TF를 구성해야 하는 기관이 아니다. 국정원은 지난 8월 첫 1급 인사를 단행하고 최근까지 2∼4급 인사를 마무리했다. 애매한 의혹 제기 투서 남발 우려 일부 기관 자체 판단 별도 TF 설치 이 인사는 이 원장 취임 이후 진행한 내부 조사 결과를 반영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국정원은 이 원장 취임 두 달 만인 8월 1급 간부 20여명의 인사를 단행하면서 그간 정권이 바뀐 뒤 1급 간부를 모두 교체하던 관행과 달리 윤석열정부에서 임명된 간부들을 일부 유임시켰다. 국정원은 대통령 직속 기관이다. TF 설치를 두고 대통령실이 직접 관리할 수 있다. 정부 관계자는 “본래 정권이 바뀔 때마다 신임 국정원장이 취임하면 국정원은 윗선 지침이 없어도 원장 지시하에 내부적으로 감찰이나 조사를 철저하게 해 왔다”며 “대통령실에서 직접 관리해 TF 조사가 이뤄져도 추가로 드러날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회 정보위원회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박선원 의원은 지난달 4일, 국정원 국정감사 이후 브리핑에서 “국정원이 불법적 비상계엄 상황에서 내란·외환 정보수집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는 점을 인정했다”면서 “국정원은 국정원법 4조에 따라 내란죄·외환유치 관련 자료를 특검에 이미 제출했고 계엄 시 국정원 역할 재정비와 실효적 안보조사체계 복원을 추진하겠다고 보고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인권침해 진정이 들어온 기구를 인권위가 설치하면 모순”이란 이유로 TF 설치를 거부했던 국가인권위원회는 TF 구성 반대 의결 과정에서 절차상 흠결이 지적되자 다음 전원위원회에 다시 상정해 논의하기로 했다. 앞서 인권위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등 독립기관은 TF 설치를 자율적으로 판단하기로 정해졌다. 안창호 인권위원장은 지난달 24일 열린 제21차 전원위원회에서 “정부에서 부처 내 헌법존중 TF를 자율적으로 만들라는 권고가 있는데 어떻게 할 것이냐”고 위원들에게 물었다. 이에 한석훈 위원이 구두로 안건 발의를 제안했다. 이후 안건 발의자로 참여한 김용원·이한별 위원 포함 발의자 세 명과 강정혜·김용직 위원, 안 위원장 등 6인이 ‘TF 구성 반대’에 손을 들면서 의결됐다. 부역자 남았나 인권위 안팎에선 자율적 설치라고 해도, TF 설립 취지에 비쳐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는 위원들이 안건을 즉석에서 상정해 반대 의결까지 한 건 부적절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특히 반대 의견을 낸 안 위원장과 김용원 위원 등은 지난 2월 ‘윤석열 방어권 안건’ 의결에 찬성해 특검에 내란 선동·선전 혐의로 고발된 상태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