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스러진 달 (22)신년전야

  • 황천우 작가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6.03.02 09:58:02
  • 호수 10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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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칫상만 차려주고 생색은 다른 사람이?

소설가 황천우는 지금까지 역사소설 집필에 주력해왔다. 역사의 중요성, 과거를 알아야 현재를 알고 또 미래를 올바르게 설계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아울러 그 과정에서 ‘팩션’이란 장르를 만들어냈다. 팩트와 픽션, 즉 사실과 소설을 혼합하여 교육과 흥미의 일거양득을 노리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오래 전부터 의심의 끈을 놓지 않은 사건을 들추어냈다. 필자는 그 사건을 현대사 최고의 미스터리라 칭함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바로 1974년 광복절 행사 중 발생했던 영부인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이다.

 

말을 마친 부장이 더 이상 입을 열지 않고 서류와 창밖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오래지 않아 청와대 근방에 도착하자 곧바로 경호실장 집무실로 향했다.

“아니 이거 축하연 베풀지 않았다고 일감부터 가져오시는 겁니까.”

박상규 경호실장이 너스레를 떨자 신영수가 곧바로 정동일을 소개했다. 아울러 예의 노란 봉투를 건넸다. 박상규가 사안의 중요성을 감지했는지 정색하고는 내용물을 꺼내 차근히 읽기 시작했다. 이어 읽기를 마친 박 실장이 길게 한숨을 내쉬며 신 부장을 바라보다 동일에게 시선을 주었다.

“미스터 정은 정보부에 근무한 지 몇 년 되었는가?”

“창설 당시부터 근무했습니다. 주로 일본에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상당히 신빙성 있다는 이야기인데. 그래, 부장께서는 어떻게 처리하였으면 좋겠습니까?”

“이 일에 관한 타당성 여부도 그렇지만, 실은 이 일이 제 소관인지 실장님 소관인지 그도 알 겸 의견 나누려 이렇게 급히 찾아왔습니다.”

박상규가 가볍게 신음을 내지르고는 자리에 앉을 것을 주문했다.

“향후 이 친구의 움직임은 어찌 전개될 것 같은가?”

“보고서에 밝힌 대로 북한과 조총련에서 적극적으로 나설 듯합니다. 그런 경우라면 그 친구는 어쩔 수 없이 따라가야 합니다.”


“그야 당연한 일이고. 그런데 문석원이란 자가 암살을 시도한다면 어떤 방법을 선택할 것 같은가.”

“여권 만든 일을 살피면 반드시 한국 내로 잠입해서 거사를 벌이려 할 것입니다. 그런 경우 문석원의 충동적인 성정 그리고 대한민국의 사정을 감안하면 권총이 유력하리라 판단합니다.”

권총이란 말이 흘러나오자 박상규가 무의식적으로 허리에 차고 있던 권총을 만지작거렸다.

“그런데 권총 사격 시 명중률은 어떻게 됩니까?”

신영수의 질문에 박 실장이 슬그머니 어색한 웃음을 흘리고 권총에서 놀던 손을 급하게 끌어들였다.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는 효과 있지만 사실 권총은 실전에서는 그리 유용하지 못합니다. 그저 장식용으로 보면 되지요.”

박 실장의 말이 끝나자 신 부장이 동일을 주시했다.

“그런데 자네는 왜 권총이 유력하다 생각하는가?”

“물론 폭발물 혹은 저격용 총을 상정할 수 있지만 폭발물은 대상이 구체적이지 않을 때 즉 다량 살상을 위해서는 유리하지만 일단 타깃이 대통령 각하로 정해졌다고 한다면 폭탄은 배재해도 좋다고 봅니다. 또한 저격용 소총의 경우 대통령 각하의 동선을 정확하게 따를 수 있어야 하는데 그건 불가능하리라 판단됩니다.”

“그래서 권총이 유력하다는 말이지?”

박 실장의 손이 또 권총으로 옮겨졌다. 그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신 부장의 시선이 그리로 향하자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그렇고 그 친구를 이용할 수 있을 수 있다는 부분에 대해 보충설명 해보겠는가?”

“외람되지만 윤대중 납치사건으로 인해 대한민국이 상당히 곤경에 빠져 있습니다. 지금 표면상으로는 해결된 듯 보이지만 이면에서는 그리 녹녹한 상황이 되지 못합니다. 지금도 언론과 의회는 물론 좌익세력들은 연일 그 일을 빌미로 일본 정부를 압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건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을 수 있다는 이야기인가.”

“어차피 암살계획이 우리에게 알려진 이상 성공할 수는 없습니다. 하여 그들에게 기회를 제공해주고 사건이 발생한다면 지금 대한민국이 곤경에 처한 모든 일들을 한 번에 만회할 수 있다 생각합니다.”


“결국 잔칫상만 차려주고 생색은 우리가 내자는 이야기로군.”

박상규가 지속적으로 말을 이었다.

“각하께 보고 드리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어떻게요. 이런 소문이 있는데 주의하셔야겠다고요.”

저격용 총보단 권총으로 거사
대통령 암살 카운트다운 시작

박상규의 답변에 신영수가 가벼이 고개 저었다.

“그러면 어떻게 처리하면 좋겠습니까?”

“각하께는 구체적인 움직임이 있을 때 보고하도록 하지요. 그리고 그보다도 먼저 대응팀을 구성해야 할 듯합니다.”

신영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가 팀을 이끌도록 하게.”

박상규의 말에 동일이 신영수를 주시했다. 신영수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대통령의 안위에 관한 일이니 경호실에서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실장께 상의 드리는 거 아닙니까.”

“저.”

두 사람의 대화에 동일이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말하게나.”

“보고체계는 일원화하였으면 좋겠습니다. 부장님과 실장께서는 사사로이 대화를 나누실 수 있지만 실무에서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아도 알아듣겠다 싶어 중간에 말을 흐렸다.

“자네 말이 옳네. 부장 생각은 어떻습니까?”

신영수가 즉답에 앞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궁극적으로 이 일은 각하의 안위가 걸려 있는 문제이니만큼 실장께 보고 라인을 정하도록 함이 타당하다 봅니다.” 

박 실장 역시 즉답을 피하고 잠시 침묵을 지켰다.

“부장께서 그리 이해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하면 제가 지휘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기로 하고. 정 군, 우리가 도와줄 일은 없겠는가?”

“있습니다만.”

“뭔가. 기탄없이 말해보게.”

“현재 조총련 쪽에서 활동하고 있는 정보원을 제게 붙여주십시오. 향후 그쪽의 동태를 하나도 놓쳐서는 안 될 일입니다.”

“그야 당연한 일이지.”

박상규가 대신 말을 받고 신 부장을 주시했다.

“자네가 일본으로 돌아가는 즉시 접선할 수 있도록 조처 취하겠네.”


“그러면 내가 도와줄 일은?”

“현지의 일은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실장께는 구체적인 행동이 보일 때 그때 부탁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동일이 힘주어 답하자 박 실장이 동일의 손을 잡았다. 그 해 마지막 날 오후 석원이 오랜만에 부인 이정숙과 두 살짜리 아들 신일과 함께 망중한을 보내고 있었다.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어머니께 가서 손자 보이는 게 어떨까?”

“빈손으로!”

방금 전까지 차분한 표정을 유지했던 아내가 갑자기 싸늘하게 변해갔다.

“어머니께 가는 데 빈손으로 가면 어떻다고.”

“그거야 당신 생각이고. 나까지 그럴까. 그러면 어머니께서 좋아하시겠다.”

아내의 얼굴에 찬바람이 몰아쳤다. 그를 살피던 석원의 얼굴에 잠시 전 비쳤던 생기는 온데간데없이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

“당신, 이제는 아버지야. 그런데 계속 이럴 거야?”

“나도 노력하고 있잖아.”

“노력, 누구를 위해서. 당신 그거 몰라?”


“뭐?”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고 말이야.”

“느닷없이 그건 무슨 소리야?”

“집안도 다스리지 못하면서 무슨 민족 운운하는 게 가소롭다는 생각 들지 않아? 우리 신일이가 웃겠다 웃겠어.”

아내가 세 살이나 연상이라 그런지 혹은 딱히 대꾸할 말이 없는지 석원의 얼굴이 침울하게 변해갔다.

“애도 태어났고 또 어머니께서 집도 사주고 했으면 이제 가족에 시선을 돌려야지. 아직도 어린애들처럼 사회주의 운동 운운하고 참으로 가당치 않네.”

“이 사람아, 나 혼자 먹고 살자 하는 게 아니잖아.”

“이봐요, 당신 꼬라지를 살펴봐. 당신이 뭐 내세울 것 있다고 사회 운동 운운하는 거야. 남들이 알면 웃는다 웃어.”

“이런 씨발!”

순간적으로 석원의 목소리는 물론 손도 올라갔다.
 

<다음호에 계속>

 

[저자는?]

▲ 서울시립대 영문학과 졸업
▲ 정당사무처 공채(13년 근무)
▲ 서울과학기술대 문예창작과 중퇴
▲ 소설가
▲ 주요작품
단편소설 <해빙> <파괴의 역설>
장편소설 <삼국비사> <여제 정희왕후> <수락잔조> 등 다수
희    곡 <정희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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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