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황천우는 지금까지 역사소설 집필에 주력해왔다. 역사의 중요성, 과거를 알아야 현재를 알고 또 미래를 올바르게 설계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아울러 그 과정에서 ‘팩션’이란 장르를 만들어냈다. 팩트와 픽션, 즉 사실과 소설을 혼합하여 교육과 흥미의 일거양득을 노리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오래 전부터 의심의 끈을 놓지 않은 사건을 들추어냈다. 필자는 그 사건을 현대사 최고의 미스터리라 칭함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바로 1974년 광복절 행사 중 발생했던 영부인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이다.
말을 마친 부장이 더 이상 입을 열지 않고 서류와 창밖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오래지 않아 청와대 근방에 도착하자 곧바로 경호실장 집무실로 향했다.
“아니 이거 축하연 베풀지 않았다고 일감부터 가져오시는 겁니까.”
박상규 경호실장이 너스레를 떨자 신영수가 곧바로 정동일을 소개했다. 아울러 예의 노란 봉투를 건넸다. 박상규가 사안의 중요성을 감지했는지 정색하고는 내용물을 꺼내 차근히 읽기 시작했다. 이어 읽기를 마친 박 실장이 길게 한숨을 내쉬며 신 부장을 바라보다 동일에게 시선을 주었다.
“미스터 정은 정보부에 근무한 지 몇 년 되었는가?”
“창설 당시부터 근무했습니다. 주로 일본에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상당히 신빙성 있다는 이야기인데. 그래, 부장께서는 어떻게 처리하였으면 좋겠습니까?”
“이 일에 관한 타당성 여부도 그렇지만, 실은 이 일이 제 소관인지 실장님 소관인지 그도 알 겸 의견 나누려 이렇게 급히 찾아왔습니다.”
박상규가 가볍게 신음을 내지르고는 자리에 앉을 것을 주문했다.
“향후 이 친구의 움직임은 어찌 전개될 것 같은가?”
“보고서에 밝힌 대로 북한과 조총련에서 적극적으로 나설 듯합니다. 그런 경우라면 그 친구는 어쩔 수 없이 따라가야 합니다.”
“그야 당연한 일이고. 그런데 문석원이란 자가 암살을 시도한다면 어떤 방법을 선택할 것 같은가.”
“여권 만든 일을 살피면 반드시 한국 내로 잠입해서 거사를 벌이려 할 것입니다. 그런 경우 문석원의 충동적인 성정 그리고 대한민국의 사정을 감안하면 권총이 유력하리라 판단합니다.”
권총이란 말이 흘러나오자 박상규가 무의식적으로 허리에 차고 있던 권총을 만지작거렸다.
“그런데 권총 사격 시 명중률은 어떻게 됩니까?”
신영수의 질문에 박 실장이 슬그머니 어색한 웃음을 흘리고 권총에서 놀던 손을 급하게 끌어들였다.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는 효과 있지만 사실 권총은 실전에서는 그리 유용하지 못합니다. 그저 장식용으로 보면 되지요.”
박 실장의 말이 끝나자 신 부장이 동일을 주시했다.
“그런데 자네는 왜 권총이 유력하다 생각하는가?”
“물론 폭발물 혹은 저격용 총을 상정할 수 있지만 폭발물은 대상이 구체적이지 않을 때 즉 다량 살상을 위해서는 유리하지만 일단 타깃이 대통령 각하로 정해졌다고 한다면 폭탄은 배재해도 좋다고 봅니다. 또한 저격용 소총의 경우 대통령 각하의 동선을 정확하게 따를 수 있어야 하는데 그건 불가능하리라 판단됩니다.”
“그래서 권총이 유력하다는 말이지?”
박 실장의 손이 또 권총으로 옮겨졌다. 그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신 부장의 시선이 그리로 향하자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그렇고 그 친구를 이용할 수 있을 수 있다는 부분에 대해 보충설명 해보겠는가?”
“외람되지만 윤대중 납치사건으로 인해 대한민국이 상당히 곤경에 빠져 있습니다. 지금 표면상으로는 해결된 듯 보이지만 이면에서는 그리 녹녹한 상황이 되지 못합니다. 지금도 언론과 의회는 물론 좌익세력들은 연일 그 일을 빌미로 일본 정부를 압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건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을 수 있다는 이야기인가.”
“어차피 암살계획이 우리에게 알려진 이상 성공할 수는 없습니다. 하여 그들에게 기회를 제공해주고 사건이 발생한다면 지금 대한민국이 곤경에 처한 모든 일들을 한 번에 만회할 수 있다 생각합니다.”
“결국 잔칫상만 차려주고 생색은 우리가 내자는 이야기로군.”
박상규가 지속적으로 말을 이었다.
“각하께 보고 드리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어떻게요. 이런 소문이 있는데 주의하셔야겠다고요.”
저격용 총보단 권총으로 거사
대통령 암살 카운트다운 시작
박상규의 답변에 신영수가 가벼이 고개 저었다.
“그러면 어떻게 처리하면 좋겠습니까?”
“각하께는 구체적인 움직임이 있을 때 보고하도록 하지요. 그리고 그보다도 먼저 대응팀을 구성해야 할 듯합니다.”
신영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가 팀을 이끌도록 하게.”
박상규의 말에 동일이 신영수를 주시했다. 신영수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대통령의 안위에 관한 일이니 경호실에서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실장께 상의 드리는 거 아닙니까.”
“저.”
두 사람의 대화에 동일이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말하게나.”
“보고체계는 일원화하였으면 좋겠습니다. 부장님과 실장께서는 사사로이 대화를 나누실 수 있지만 실무에서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아도 알아듣겠다 싶어 중간에 말을 흐렸다.
“자네 말이 옳네. 부장 생각은 어떻습니까?”
신영수가 즉답에 앞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궁극적으로 이 일은 각하의 안위가 걸려 있는 문제이니만큼 실장께 보고 라인을 정하도록 함이 타당하다 봅니다.”
박 실장 역시 즉답을 피하고 잠시 침묵을 지켰다.
“부장께서 그리 이해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하면 제가 지휘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기로 하고. 정 군, 우리가 도와줄 일은 없겠는가?”
“있습니다만.”
“뭔가. 기탄없이 말해보게.”
“현재 조총련 쪽에서 활동하고 있는 정보원을 제게 붙여주십시오. 향후 그쪽의 동태를 하나도 놓쳐서는 안 될 일입니다.”
“그야 당연한 일이지.”
박상규가 대신 말을 받고 신 부장을 주시했다.
“자네가 일본으로 돌아가는 즉시 접선할 수 있도록 조처 취하겠네.”
“그러면 내가 도와줄 일은?”
“현지의 일은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실장께는 구체적인 행동이 보일 때 그때 부탁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동일이 힘주어 답하자 박 실장이 동일의 손을 잡았다. 그 해 마지막 날 오후 석원이 오랜만에 부인 이정숙과 두 살짜리 아들 신일과 함께 망중한을 보내고 있었다.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어머니께 가서 손자 보이는 게 어떨까?”
“빈손으로!”
방금 전까지 차분한 표정을 유지했던 아내가 갑자기 싸늘하게 변해갔다.
“어머니께 가는 데 빈손으로 가면 어떻다고.”
“그거야 당신 생각이고. 나까지 그럴까. 그러면 어머니께서 좋아하시겠다.”
아내의 얼굴에 찬바람이 몰아쳤다. 그를 살피던 석원의 얼굴에 잠시 전 비쳤던 생기는 온데간데없이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
“당신, 이제는 아버지야. 그런데 계속 이럴 거야?”
“나도 노력하고 있잖아.”
“노력, 누구를 위해서. 당신 그거 몰라?”
“뭐?”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고 말이야.”
“느닷없이 그건 무슨 소리야?”
“집안도 다스리지 못하면서 무슨 민족 운운하는 게 가소롭다는 생각 들지 않아? 우리 신일이가 웃겠다 웃겠어.”
아내가 세 살이나 연상이라 그런지 혹은 딱히 대꾸할 말이 없는지 석원의 얼굴이 침울하게 변해갔다.
“애도 태어났고 또 어머니께서 집도 사주고 했으면 이제 가족에 시선을 돌려야지. 아직도 어린애들처럼 사회주의 운동 운운하고 참으로 가당치 않네.”
“이 사람아, 나 혼자 먹고 살자 하는 게 아니잖아.”
“이봐요, 당신 꼬라지를 살펴봐. 당신이 뭐 내세울 것 있다고 사회 운동 운운하는 거야. 남들이 알면 웃는다 웃어.”
“이런 씨발!”
순간적으로 석원의 목소리는 물론 손도 올라갔다.
<다음호에 계속>
[저자는?]
▲ 서울시립대 영문학과 졸업
▲ 정당사무처 공채(13년 근무)
▲ 서울과학기술대 문예창작과 중퇴
▲ 소설가
▲ 주요작품
단편소설 <해빙> <파괴의 역설>
장편소설 <삼국비사> <여제 정희왕후> <수락잔조> 등 다수
희 곡 <정희왕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