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줄 막힌' 북한 조총련 역할론

자금줄 '조긴신용금고 파산' 등 일본발 외화벌이도 먹구름

[일요시사 취재1팀] 신승훈 기자 = 북한의 일본발 외화벌이 창구 역할을 한 조총련이 시련을 겪고 있다. 북한 핵실험으로 일본의 대북제재가 강력해진 상황해서 조총련의 위세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한때는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북한에 큰 도움을 준 조총련이 각종 위기사태 속에서 새 국면을 맞고 있다.

일본 정부는 지난 10일 북한의 4차 핵 실험 및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관련돼 대폭 강화한 대북 독자 제재안을 발표했다. 제재안에는 방북한 조총련 간부의 일본 재입국 금지, 10만엔 이상 소지한 채 방북하거나 300만엔 이상 북한 송금 시 신고 의무화, 북한 국적자의 입국까지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조치가 포함됐다.

지난 2014년 7월 북-일 납치 피해자 재조사 합의에 따른 대북 제재 완화 이후 1년6개월여 만에 재개된 강력한 조치다.

위기의 ‘조선적’

제재안으로 인해 조총련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것으로 보인다. 조총련은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의 약칭으로 친북한계 재일본인 단체다.

이들은 1955년 결성돼 크게 ‘북송사업’ ‘자금줄’ 등의 역할을 해 왔다. 북송사업을 통해 1959년부터 1984년까지 25년 동안 재일동포 9만3340명이 북한으로 갔다. 북송사업은 조총련과 북한, 일본의 합작품으로 양국은 인도주의적 차원의 사업이라 주장했다. 하지만 북한의 경우 해방 이후 노동력이 절실한 상황이었고 일본의 경우는 재일동포를 일본사회의 골칫거리로 여기고 차별했다.


두 나라의 이해관계 속에서 북송사업은 진행됐다. 북송사업에 대해 인제대학교 통일학부 진희관 교수는 “북송된 사람들의 직계 가족 숫자가 35만에서 50만명에 달한다”며 “직계가족이 일본에 존재하고 방계가족까지 합하면 제일동포 대부분이 북한에 가족이 있다고 봐야한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조총련 동포들의 행보는 조심스러운 상황이다.

진 교수는 “조총련 동포들이 북한 내 가족들로 인해 북한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며 “본인들의 일본에서의 활동이나 북측의 변경 문제 등 모든 것을 신경 쓸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북송사업을 주도적으로 진행한 조총련들이 현재는 북송의 휴유증을 겪고 있는 모습이다.

조총련의 활동 중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북한으로의 송금이다. 송금은 6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재일동포들이 북한당국에 보내는 송금과 북송되어있는 가족들에게 보내는 사적인 자금으로 나뉜다. 67년부터 애국공장헌납운동과 국수공장, 우유공장의 경우 청련중앙본부가 주도가 되어 북한에 공장을 지어줬다.

제재안에 위축되는 조직
“못 하겠다” 포기자 속출

북한에 돈을 보낸 조총련 기업인들의 이름을 딴 ‘김만유 병원’, ‘안택상 거리’가 평양에 있을 정도로 조총련의 위세는 굉장했다. 특히 야끼니꾸(일본식 불고기), 금융업, 빠칭코는 조총련들이 주도가 되어 사업을 추진해 1990년대 초반까지 대북송금 자금줄 역할을 했다. 하지만 1990년대 말부터 문제가 생겼다.

1997년 조총련의 자금줄이던 ‘조긴신용금고’가 파산했다. 조총련은 이 금고를 통해 계열기업들을 지원하고 평양에 송금하기도 했다. 금고의 파산으로 조총련의 대북 송금은 줄어들었다. 진 교수는 “일본 버블경제가 꺼지고 야끼니꾸가 위기로 빠지면서 조총련도 예전같지 않다”며 “조총련 차원에서 꾸준히 크든 작든 조국에 대한 지원은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야끼니꾸의 경우 광우병파동으로 인해 일본사람들에게 가게가 넘어갔고 야끼니꾸 사업에 외국인, 일본인, 한국인이 뛰어들면서 수입이 크게 줄어든 상황이다. 빠칭코의 경우 일본이 조총련에 대한 세무조사를 실시하면서 힘이 빠졌고 그로 인해 조총련을 지원할 수 있는 재정이 취약해졌다. 일본의 한 전문가는 “2000년도에는 일본 돈으로 40에서 50억엔 정도 많은 돈이 북한으로 송금됐다”며 “2008년도에는 2억엔 정도로 급감했다”고 말했다.

2000년대 들어 재정이 크게 악화된 모습이다. 1977년부터 1983년까지 있었던 ‘일본인 납치 사건’은 경제적 어려움 속에 있던 조총련을 궁지로 몰아넣었다. 2002년 고이즈미 총리가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났고 북한은 납치문제를 인정했다. 당시 조총련 간부가 납치사건에 연루됐다는 의혹이 퍼지면서 조총련 회원들은 충격에 빠져 조직을 떠났고 일본 내 조총련의 위상은 땅에 떨어졌다.

조총련의 어려움은 재일동포의 숫자 감소에서도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진 교수는 “일본 외국인 등록증에 한국국적의 재일동포의 경우 단기체류자건 장기체류자건 한국이라고 쓰여 있다”며 “북한국적의 재일동포의 경우 북한이라고 쓰지 않고 조선이라고 쓴다”고 말했다.
 

북한과 일본은 수교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일본에서는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국적의 재일동포는 ‘조선적’ 명칭을 받게 되는데 조선적자의 숫자가 현재 10만명도 되지 않는다. 재일동포의 감소는 일본국적 취득의 용이, 한반도의 분단 상황, 북한 체제의 불안전성과 경제적 어려움이 원인으로 풀이된다. 지금까지 조총련의 근간이 됐던 민족주의교육에도 한계점이 드러난 상황이다.

진 교수는 “조총련이 힘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유치원부터 대학교가지 전일적인 교육체계를 가지고 민족주의 교육을 했기 때문”이라며 “대학이 있다는 점은 선생님을 양성해 다시 재교육할 수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조총련의 조선대학은 과거에 비해 위세가 많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현재까지 1000여명의 학생이 다니고 있다. 이처럼 총련 동포들을 하나로 묶어주던 민족주의 교육이 조선학교 숫자의 감소와 조선적 학생 수 감소로 위기에 직면했다.

명맥만 유지

진 교수는 “조선적이 아니라 한국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과반수를 넘어가고 주요 학교인 도쿄, 오사카 중·고교의 경우 80% 가 한국국적을 가지고 있다”며 “마지막 동아줄로 동포들을 민족교육으로 조총련 주변에 묶어 세우지만 현재는 많이 취약해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 조총련은 해당관계자들과 관계자 식구로만 연결된 위축된 조직으로 바뀌고 있다”며 “와해되거나 해체되지는 않겠지만 그 위세는 현격하게 줄어든 형태로 명백을 유지하는 수준으로 변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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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일요시사 취재1·정치팀] 오혁진·박희영·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났다. 특검이 출범하면서 관련 수사도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현재까지 여러 언론을 통해 핵심 인물들의 수사 기록이 일부 보도됐다. 그러나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에 대한 내용은 구체적으로 언급된 바 없다. <일요시사>는 경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의 ‘노상원 수사 기록’을 단독으로 입수해 공개하기로 했다. “부정선거 증거가 차고 넘치고 나중에는 드러날 것이다.”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수사기관에 진술한 내용이다. 그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처럼 부정선거 음모론에 꽂혀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노 전 사령관은 윤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주최하는 집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사실상 수년 전부터 망상에 빠져있었다고 볼 수 있다. 같은 생각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주도하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에 참여하기 시작한 건 2년 전부터로 추정된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노 전 사령관 수사 기록에 따르면 그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의 집회에 여러 차례 참여했다. 노 전 사령관이 전 목사와 개인적으로 알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에게 집회에 참여할 때마다 당시 분위기와 참석자들이 윤 전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텔레그램으로 자신의 의견을 전달했다. 1년간 ‘극우 집회’를 분석한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는 “문상호, 정성욱, 김봉규 등과 만날 때 주로 어떤 말을 했느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 “선관위를 얘기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선관위가 부정선거의 온상이라고 김용현 전 장관이 많이 말씀하셨다. 나에게도 여러 번 선관위의 부정선거에 대해 알아보라고 지시했고 네이버로 찾아도 봤다”고 말했다. “부정선거를 주로 누구에게서 들었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는 “관련 집회에 여러 번 참여하면서 들었고 특정 인물이 누구인지 실명을 거명하긴 그렇다. 나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를 해야 해서 스스로 공부도 많이 했다. 여론조사 조작이나 선거 부정은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고 했다. 전 주도 윤 지지자 극우 집회 직접 참석 김과 텔레그램으로 부정선거 자료 공유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의 근거로 “선관위 산하에 여론조사심의위원회가 있다. 여론조사기관은 여론조사심의위에 등록해야 한다. 여론조사기관의 갑이다. 여론조사심의위원회는 9명으로 위원장 이대영 사무총장과 강성봉 등이고 그 밑에 쭉 있는데 7명이 진보 계열 인물이다. 여론조사기관이 편향되어 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주장하는 임시선거사무소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네이버에 검색하면 다 나오는데 2021년 국회의원 선거 때 동작구 선거사무소가 있는데 옆을 임대해서 임시선거사무소를 만들었었다. 언론에 나오니까 발뺌했었고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자 김 전 장관이 더 많은 자료를 보내 줬었다”고 했다. 노 전 사령관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며 “결국에는 다 까질 것이다. 전산은 한 번 가지면 되돌릴 수가 없다. 폭파하거나 고물상에 갖다 버리지 않는다면 전산은 결국 까진다. 북한이 쳐들어온 것도 아니고 서울 상공에 포를 쏜 것도 아니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께서는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고 생각하시고 정국이 전시에 준하는 사태라고 민감한 상황이라고 보신 것 같다. 그런 상황이 아닌데도 그렇게 행동한 건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2시간짜리 호소였다. 만약 국회 결정을 윤 전 대통령께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유혈사태가 났을 것”이라고 윤 전 대통령을 옹호했다. 노 전 사령관은 12월 초 후 선관위가 서버 교체를 검토했다가 교체하려 했던 것을 두고 “윤 전 대통령께서 어디에선가 확실하고 핵심적인 정보를 들으셨을 것 같다. 서버 조작이 있었기에 그 서버를 우리가 확보하려 할 때 선관위 측이 폭파했을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의 군검찰·검찰 피의자 신문조서를 보면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초 ‘정보사 군무원 간첩 사건 수사 결과’를 보고받는 자리에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 등 인물들에 대해 “비상대권을 사용해 이 사람들에 대해 조치를 해야 한다”며 “현재의 사법체계, 형사소송법, 방탄국회 및 재판지연 아래에선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조치’ ‘2시간짜리 계엄’ 겹치는 윤·노 발언 "서버 확보하려 했다면 선관위가 폭파했을 것” 주장 윤 전 대통령이 “비상대권을 사용한 조치”를 언급한 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만큼 이 대통령과 자신의 의견을 거스르는 인물들에 대한 복수심이 극에 달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노 전 사령관도 마찬가지다. 노 전 사령관은 경찰에 “김용군(대령)과 구삼회 등에게 ‘이재명은 죄가 7개인데 봐주고 지연시키고 구속도 안 되고 당 대표까지 하는데 더불어민주당이 감사원장, 중앙지검장, 판사 등을 모두 탄핵하려고 하는 게 과연 올바른 세상이냐’고 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윤 전 대통령과 노 전 사령관이 언급한 말이 일치하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12일 “국정원 직원이 해커로서 해킹을 시도하자 얼마든지 데이터 조작이 가능했고 비밀번호도 아주 단순해 ‘12345’ 같은 식이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노 전 사령관도 “선관위는 헌법기관인데 스스로 깨끗해야 하거나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하는데 황제·세자 채용 등 문제가 나왔다. 각종 할 수 있는 최악의 것은 다 저질렀다. 그리고 전산 해킹이 언급될 때 서버 본체를 보여준 것도 아니고 일부 샘플만 살짝 보여줬는데 얼마든지 전산 조작이 가능하고 해킹에 얼마나 취약하면 비밀번호가 ‘1234’냐. 이미 그런 게 다 나왔다. 그렇게 떳떳하면 왜 본체를 못 열어주나”고 말했다. 그러나 조태용 국정원장은 같은 해 12월 검찰 조사에서 “선관위 시스템에 보안상 취약점이 발견됐지만, 부정선거에 관한 단서는 전혀 포착하지 못했다”는 내용으로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일각에서는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과 직접 비화폰으로 연락을 주고받았을 것이라는 보고 있다. 실제 노 전 사령관도 지난해 12월2일 자신의 지인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했다. 노 전 사령관은 당시 “나 같은 경우는 브이(V, 윤 전 대통령 지칭)하고 이렇게 좀 도와드리고 있다. 원래 한 4~5년, 3~4년 전에 알았다뿐이고 그래서 이제 뭐 이렇게 여러 가지로 좀 도와드리고 있다. 비선으로”라고 했다. 친분 과시 노 전 사령관은 안산 ‘롯데리아 회동’에 참석했던 구삼회 전 육군 2기갑여단장에게도 “며칠 전에는 김용현과 함께 대통령도 만났다. 갈 때마다 대통령이 나한테만 거수경례를 하면서 ‘사령관님 오셨습니까’라고 한다. 내가 이런 사람이다. 대통령과 장관 같이 만난다. 나는 벌써 여러 번 만났다”고 했다. <hounder@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