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황천우는 지금까지 역사소설 집필에 주력해왔다. 역사의 중요성, 과거를 알아야 현재를 알고 또 미래를 올바르게 설계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아울러 그 과정에서 ‘팩션’이란 장르를 만들어냈다. 팩트와 픽션, 즉 사실과 소설을 혼합하여 교육과 흥미의 일거양득을 노리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오래 전부터 의심의 끈을 놓지 않은 사건을 들추어냈다. 필자는 그 사건을 현대사 최고의 미스터리라 칭함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바로 1974년 광복절 행사 중 발생했던 영부인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이다.
“이 부장, 나갈 것 없네. 이미 최고급 참치회를 주문했네.”
호룡이 다시 고개 돌려 석원 옆에 자리 잡았다.
“석원 군의 영웅적 행동에 대해서는 이 부장으로부터 귀가 따갑도록 들었네. 아울러 수령님과 북조선은 석원 군에 대해 상당히 기대하고 있네.”
앞에 앉은 남자의 치사에 석원이 자세를 바로하고 고개 숙였다.
“이 몸은 북조선과 김일성 수령님 것입니다. 기필코 목숨을 바쳐서라도 임무를 완수하겠습니다.”
“암 그래야지. 그래야 하고 말고.”
잠시 소소한 이야기로 대화를 나누는 중에 요리가 들어오고 술잔이 오고가기 시작했다.
“이 술 받으세요. 이 술은 북조선을 대표하여 주는 잔입니다.”
그 순간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던 여인이 술병을 들었다. 석원이 급히 무릎을 꿇고 공손하게 술을 받았다.
“한 번에 쭉 들이키세요.”
“문 군 영광이네, 영광. 지도원 동무의 잔은 아무나 받는 게 아닌데. 허허.”
호룡의 말에 석원이 한 번에 잔을 비워냈다. 그리고는 안주도 먹지 않고 비워 낸 잔의 처리를 두고 고민하는 듯 호룡에게 시선을 주었다.
“받았으면 드려야지 뭐 하는가?”
호룡의 제안에 시선을 여인에게 주었다.
“내 석원 군의 성의를 보아 특별히 한잔 받겠어요.”
40대 초반 정도 되어 보이지만 뽀얀 피부 그리고 아담한 몸매를 살피면 정확한 나이가 가늠되지 않았다. 석원이 잔을 건네고 공손하게 술병을 들어 잔을 채우자 여인이 손에 들려 있는 잔과 모두를 바라보았다.
“우리 석원 군을 위해 함께 건배하도록 하지요.”
여인의 제안에 모두 잔을 마주치고는 단번에 비워냈다.
“그래, 구체적인 계획은 세웠는가?”
“지금 차근차근 계획을 실행하고 있습니다. 그 일은 제게 일임하여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남자의 질문에 호룡이 자신 있다는 투로 이야기하자 여인이 흡족하다는 듯 미소를 보였다.
“당연히 믿고 말고요. 그래도 혹여 도움이 될까 싶어 그러니 개략적인 계획이라도 들려 줄 수 없는가요?”
여인이 한마디 한마디 똑부러지게 이야기하자 호룡이 석원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미국 대통령 케네디 암살 사건을 알고 계십니까?”
“부장님, 저는‥‥‥.”
문석원이 말하다 말고 두 사람의 눈치를 살폈다.
“석원 군, 주저 말고 말해보세요.”
“저는 지금 영국 작가인 프레드릭 포사이스란 사람이 쓴 『재칼의 날』이란 소설을 읽으면서 그곳에서 답을 찾으려 하는 중입니다.”
“재칼!”
모두의 입에서 동시에 흘러나왔다.
“허허, 그 정도까지 진행 중에 있었던가?”
“물론 케네디 대통령 암살 사건도 생각하지 않은 게 아닙니다. 그러나 미국이란 사회와 남조선 사회는 다르기 때문에 굳이 재칼의 날을 모방하는 편이 이롭다 생각하였습니다.”
연이은 석원의 설명에 모두 혀를 찼다.
“지금도 계속 연구 중입니다.”
쐐기를 박듯 석원이 덧붙였다.
“석원 군 금년에 나이가 어떻게 되는가.”
“스물 둘입니다.”
“허허 그 나이에 이렇게 생각이 깊을 수가.”
남자가 여인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그러게 말이에요. 그 나이에 어쩌면 생각이 그리 깊을 수 있는가요.”
마지막 축하연…과연 살아 돌아올까?
케네디 암살사건이 프로젝트 롤모델?
“역시 이 부장의 안목이 남다르기는 남다른 모양이오.”
“중앙위원님 그리고 지도원 동무, 너무 과찬이십니다.”
이호룡이 가볍게 손사래쳤다.
“아니오, 두 사람이 마치 환상의 커플 같소. 그렇지 않소?”
“당연합니다.”
남자의 추임에 여인이 화답했다.
“우리는 그저 아무 걱정 없이 수령 동지께 사실대로 보고만 하면 되겠습니다.”
“절대 실망시켜드리지 않겠습니다.”
고개 숙여 답하는 석원의 어깨가 가볍게 들썩였다. 그를 살피던 여인이 몸을 일으켜 석원 곁으로 다가가 자리 잡았다. 이어 석원의 손을 가볍게 잡았다 떼고 술병을 잡았다.
“북 조선 영웅에게 다시 한 잔 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인이 미소를 보내자 석원이 급히 잔을 비워내고 공손하게 앞으로 내밀었다. 여인 역시 공손하게 술을 따랐다.
“석원 군, 결코 나를 괄시해서는 안 됩니다.”
“무슨 말씀이신지요?”
“너무나 듬직하고 또 반드시 일을 성사시키리란 예감이 들어서 그럽니다. 그런 경우 석원 군은 북조선이 아니라 조선 전체가 영웅으로 떠받들 터인데 절대 나를 모르는 척 하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석원이 민망한지 아니면 고무되었는지 단번에 잔을 비워냈다. 여인이 참치 회를 곱게 싸서 석원의 입에 넣어주었다.
“허허, 지도원 동무께서 석원 군에게 완전히 빠졌습니다. 내게는 술 한잔 따르는 법도 없더니만 석원 군에게는 안주까지. 이거 이러다간…”
남자가 부러운 듯한 시선으로 석원을 바라보며 가볍게 혀를 찼다.
“지도원 동무, 석원 군이 그리도 자랑스럽습니까?”
“이 부장, 그걸 말이라 하십니까. 내가 조금만 젊었어도….”
“아직도 팽팽합니다.”
남성이 다시 혀를 차며 부러움을 표했다. 잠시 대한민국의 중앙정보부로 돌아온 동일이 신임 부장에게 독대를 청했다. 물론 지휘계통을 밝고 올라가야 하나 사안이 사안인 점을 고려한 처사였다.
아울러 부장이 바뀐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또 후임 간부들 인사이동 문제로 뒤숭숭했던 터라 그 기회를 이용하고자 하는 의도 역시 감추어 있었다.
“지휘계통까지 무시하면서 독대를 청한 사유가 무엇인가?”
신임 부장인 신영수로부터 동일이 염두에 두었던 말부터 흘러나왔다.
“사안의 중대성에 비추어 볼 때 극비리에 보고해야 한다 판단하였습니다. 결례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말을 마침과 동시에 노란 봉투를 건넸다.
“일단 앉게.”
부장이 곧바로 봉투를 열어 내용물을 꺼내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잠시 후 읽기를 마친 부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를 오가더니 책상으로 갔다. 이어 경비전화로 대통령 경호실장과 통화를 마치고 동일 곁으로 다가왔다.
“뭐하는 겐가. 어서 앞장서지 않고.”
동일이 얼떨결에 자리에서 일어나자 부장이 문을 나서면서 차를 대기시키라 지시 내렸다. 현관을 벗어나자 부장 전용 승용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수행 비서가 앞좌석에 타고 동일은 뒷좌석 안쪽으로 자리 잡았다.
“일본 근무한 지 얼마 되었는가?”
“만 2년이 되어가고 있습니다만 일전에도 여러 번 근무한 적 있습니다.”
“일본통이로구만. 그러면 윤대중 납치사건에도 참여했었는가?”
“일정 부분 참여하였습니다.”
“그러면 자네가.”
부장이 뭔가 말하려다 말고 다시 봉투에서 내용물을 꺼내 상세하게 살펴보았다.
“지금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 알겠는가?”
“경호실장과 통화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경호실장과 협의를 거치고 각하를 뵐 필요가 있다면 그리 할 걸세.”
<다음호에 계속>
[저자는?]
▲ 서울시립대 영문학과 졸업
▲ 정당사무처 공채(13년 근무)
▲ 서울과학기술대 문예창작과 중퇴
▲ 소설가
▲ 주요작품
단편소설 <해빙> <파괴의 역설>
장편소설 <삼국비사> <여제 정희왕후> <수락잔조> 등 다수
희 곡 <정희왕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