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황천우는 지금까지 역사소설 집필에 주력해왔다. 역사의 중요성, 과거를 알아야 현재를 알고 또 미래를 올바르게 설계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아울러 그 과정에서 ‘팩션’이란 장르를 만들어냈다. 팩트와 픽션, 즉 사실과 소설을 혼합하여 교육과 흥미의 일거양득을 노리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오래 전부터 의심의 끈을 놓지 않은 사건을 들추어냈다. 필자는 그 사건을 현대사 최고의 미스터리라 칭함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바로 1974년 광복절 행사 중 발생했던 영부인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이다.
“오라버니가 속이 타는 모양이에요.”
“일본 언론과 좌익도 그렇지만 특히 조총련 사람들이 계속 기승을 부리고 있잖은가? 아직도 그놈의 공갈 협박 전화 때문에 업무가 마비될 정도야.”
“그 정도에요.”
동일이 대답 대신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 그 중에 문석원이라는 사람은 없어요?”
“문석원이라, 들어본 적 없는데. 왜?”
“그러면 난조 샤쿠겐은?”
순간 동일의 눈이 반짝였다.
“영자가 그 놈을 안단 말이야!”
“그 애가 문석원이에요.”
동일이 잠시 심각한 표정을 짓다가 술잔을 비워냈다. 물론 유창열 영사를 통해 그의 신원을 알고 있었지만 내색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면 그 사람도 재일 한국인이란 말이지.”
동일의 표정이 호기심으로 들어차자 마치 그를 즐기기라도 하듯 영자가 술잔을 기울였다.
“그런데 애라니?”
“나이가 20대 초반이니 애지요.”
동일이 기가 찬 모양으로 연신 혀를 찼다. 이어 병을 들어 영자의 잔 그리고 자신의 잔을 채웠다.
“그런데 오라버니!”
영자가 의미심장한 시선을 주었다. 동일이 그 의미를 새기는 듯 잠시 침묵을 이어가다 팔을 뻗어 영자의 상반신을 끌어당겼다.
“그게 아니고요.”
“그러면.”
“그 문석원이란 애 말이에요. 그 애가 윤대중이란 사람에게 완전히 빠진 모양이에요. 윤대중 선생을 구출하기 위해 남조선으로 건너가서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겠다고 돌아다닌다 하더라고요.”
공갈협박 전화에 업무마비
불안한 미래, 싹트는 사랑
“뭐라!”
말이 말 같지 않은지 혹은 이외의 말이어서 그런지 동일이 영자의 얼굴을 빤히 주시했다.
“정말이에요. 조총련 핵심 인물에게 들은 내용이에요.”
“핵심이고 뭐고 말이 말 같아야지. 제 놈이 무슨 수로 한국으로 건너간다는 말인가. 밀항해서라면 몰라도.”
“오라버니가 생각해도 가당치 않지요.”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그러지 말고‥‥‥.”
동일이 애써 정색하고는 잔을 비우고 영자를 껴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뭔가 새로운 기운이 가슴으로부터 솟구치고 있었던 때문이었다.
신혼여행
“석원 군, 기미코는?”
“일 끝나는 대로 오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왜 기미코와 함께 오라 하였는지요?”
저녁 무렵 오사카 시내 한 다방에서 호룡과 문석원이 자리를 함께했다.
“그 보다도, 두 사람 사이는 요즈음 어떠한가?”
“잘 아시지 않습니까. 비록 기미코가 지금은 지 남편과 결혼하여 살고 있지만 마음뿐 아니라 몸까지 제 곁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러면 문제없겠군.”
“무슨 말씀이신지요?”
“자네가 남조선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겠다고 하면 남조선으로 가야하지 않겠는가.”
“그야 그렇지요.”
“물론 밀항의 방식을 취할 수 있지만 그건 너무 힘들지. 북조선 공비들의 침입에 대비해서 남조선에서 워낙 해안경계를 철저히 하기 때문에 힘들다고 봐야지.”
“그러면 갈 수 없는 건가요?”
석원의 목소리 마냥 표정도 시무룩하게 변했다.
“그래서 기미코와 자네의 관계를 물어본 것이라네.”
“그게 무슨 관련 있다고‥‥‥.”
“자네가 기미코의 남편이 되는 거야. 즉 고타로 명의로 여권을 만들자 이 말이지.”
“네?”
석원이 순간적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주위를 살피고 찻잔을 들었다.
“그런데 말이야, 이 사실은 기미코가 몰라야 하네.”
“기미코 몰래 어떻게 고타로 명의의 여권을 만든다는 말입니까?”
“이런 답답한 사람하고는.”
호룡이 테이블에 놓여 있는 찻잔을 만지작거렸다.
“여권은 당연히 알게 만들어야지. 그러나 구체적인 내용은 알아서는 안 된다 이 말이네.”
석원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서 내가 생각한 건데. 자네와 기미코 잠시 해외여행 다녀오라고.”
역시 이해되지 않는지 석원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이해 안 가는가?”
“도저히 무슨 말씀이신지‥‥‥.”
“자네가 남조선으로 가자면 반드시 여권과 비자를 받아야 하는데, 여권이야 문제없지만 비자 받기는 힘들 거 아닌가. 남조선 영사관에서 발부하니 말이야.”
“그야 그렇지요.”
“그러니 그를 미리 준비해놓자는 이야기야. 고타로 명의의 여권을 만들어 둘이 해외여행을 다녀오고 후일 자네가 남조선에 입국할 때 다시 그 여권으로 비자를 받자 이 말이야. 그래야 기미코도 전혀 의심하지 않을 거 아닌가.”
석원이 그 말의 의미를 새기고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어디로.”
말이 끝나기 무섭게 호룡이 상의 주머니에서 편지봉투를 꺼내 건넸다. 석원이 받아 내용물을 꺼내자 비행기 티켓 두 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홍콩행 왕복 비행기 티켓이야.”
말을 마침과 동시에 석원의 손에 들려있는 티켓을 빼앗다시피 가져가 다시 자신의 주머니에 넣었다. 석원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잠시 후 기미코가 오면 정식으로 주도록 하겠네.”
“부장님, 정말 고맙습니다.”
잠시 그 의미를 살피던 석원이 가볍게 고개 숙였다.
“고맙기는‥‥‥. 오히려 내가 고마워해야지. 지금 자네가 하고자 하는 일이 어떤 일인지 빤히 알고 있는데.”
“어차피 목숨 걸고 하는 일입니다.”
석원의 말소리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이보게 석원 군.”
“네, 부장님.”
“죽음이란 있을 수 없네. 내가 자네를 죽게 나둘 것 같은가?”
“어차피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면 사형당하지 않겠습니까?”
“절대 일이 그리 흘러가지는 않을 거네. 우리 두 가지 측면에서 바라보세.”
“두 가지요?”
“첫째, 자네가 성공할 경우야. 그러면 자네는 일약 우리 민족의 영웅이 될 거고 또한 영웅을 죽일 수는 없는 노릇이네.”
석원이 영웅을 되뇌며 어깨를 들썩였다.
“두 번째, 자네가 실패할 경우야. 그래서 일본 사람인 고타로 명의로 여권을 만들라는 이야기인데, 설령 자네가 실패하더라도 국제법에 따라 자네는 일본으로 돌아와 재판받게 될 것이고. 그런 경우라면 쉽사리 구해낼 수 있네. 그러니 너무 부담가질 필요 없네.”
“죽고 살고에는 관계없습니다. 오로지 박정희 대통령 암살에 주력하여 반드시 일을 이루도록 하겠습니다.”
석원이 힘주어 말하는 중에 기미코가 다가왔다. 서로 가볍게 인사를 교환하고 호룡의 제안으로 곧바로 근처에 있는 식당으로 이동했다.
“기미코 양, 술 한 잔 해도 되겠지.”
“그렇지 않아도 저도 은근히 마시고 싶었는걸요.”
기미코가 석원 옆에 자리 잡으며 미소를 보였다.
“그런데 어쩐 일로 부장님이 저희 둘에게 저녁을 사주시는지 궁금하네요.”
호룡이 미소로 답하고 음식과 함께 술을 주문했다.
<다음호에 계속>
[저자는?]
▲ 서울시립대 영문학과 졸업
▲ 정당사무처 공채(13년 근무)
▲ 서울과학기술대 문예창작과 중퇴
▲ 소설가
▲ 주요작품
단편소설 <해빙> <파괴의 역설>
장편소설 <삼국비사> <여제 정희왕후> <수락잔조> 등 다수
희 곡 <정희왕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