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포구여행 ⑤경남 거제시

향긋한 굴구이, 시원한 대구탕…겨울 해산물 가득한 거제여행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이 즈음이면 전국의 포구는 미식가들로 붐비기 시작한다. 겨울이면 한껏 기름기가 오르는 생선이며 조개를 맛보려는 미식가들의 발걸음으로 유명식당 문턱이 닳는다. 도루묵이며 숭어 등등 겨울이면 맛이 드는 여러 해산물 중에서도 최고의 맛을 꼽으라면 단연 굴과 대구가 아닐까. 향긋한 굴구이와 시원하면서도 얼큰한 대구탕 한 그릇이면 코끝을 얼리는 차가운 겨울 바람이 오히려 고맙게 느껴진다.

진한 굴향, 육즙 가득 고인 굴구이
알 잔뜩 머금은 천하일미 겨울 대구

거제는 굴구이와 대구요리 등 싱싱한 겨울 해산물을 맛볼 수 있는 대표적인 겨울별미 여행지다. 별미여행의 시작은 거제면 내간리에 자리한 굴구이집이다. 굴하면 이웃한 통영을 떠올리지만, 거제에서도 통영 못지 않게 굴이 많이 생산된다. 통영에서 신거제대교를 넘어 호곡, 녹산, 법동 등지를 지나 거제면 내간리까지 이어지는 1018번 지방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해안가에 굴양식을 위한 지주들이 끝 간 데 없이 꽂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바다 위에는 가지런히 떠있는 투하식 굴양식장의 부표들도 장관을 이루고 있다. 거제 사람들은 굴을 주로 구이로 먹는다. 예전에 굴을 캐던 사람들이 모닥불을 피우고 구워먹던 것이 세월이 흘러 자연스럽게 상품화가 됐다고 한다. 내간리 해안가에 굴구이를 내는 집이 모여있다.

굴구이를 주문하면 맛보기로 생굴이 나오고 곧 이어 굴튀김과 굴무침이 가득 담긴 접시도 놓여진다. 고추, 파와 함께 바삭하게 튀긴 굴튀김은 일식집에서 맛보던 그것과는 또 다른 맛을 낸다. 매콤한 맛이 이마와 콧등에 송글송글 땀을 맺히게 한다. 각종 야채와 함께 버무려진 굴무침도 매우면서도 새콤한 맛으로 젓가락질을 바쁘게 만든다.

굴무침과 굴튀김을 다 먹을 때면 커다란 철판 하나가 불 위에 올려진다. 뚜껑을 열어보면 껍질을 까지 않은 생굴이 가득 담겨있다. 가장자리에 검은 테두리가 선명한데, 이는 굴이 싱싱하다는 증거다. 거제 굴구이는 구우면서 동시에 찌는 방식. 다 익기까지는 5분 정도가 걸리는데, 장갑을 끼고 칼로 껍질을 까서 먹는다.


입안 채우는
탱글탱글 식감

굴껍질을 까보면 육즙이 가득 고여 있다. 칼로 굴을 살짝 들어내면 탱글탱글한 굴이 보기에도 먹음직스럽다. 특유의 진한 굴향도 후각을 강하게 자극한다. 초장에 살짝 찍어 입으로 가져가면 짭조롬한 맛이 입안을 가득 채운다. 굴 자체에 간이 되어 있어 양념을 찍지 않고 그냥 먹어도 맛있다. 거제의 굴구이 집 대부분은 굴구이, 굴죽, 굴국밥 등 다양한 굴요리를 파는데, 굴구이 세트를 시키면 굴구이와 굴튀김을 비롯한 다양한 굴요리를 코스로 먹을 수 있다.

거제의 또다른 겨울 별미는 대구다. ‘눈 본 대구, 비 본 청어’라는 속담도 있듯, 찬바람이 부는 겨울은 대구에 맛이 제대로 드는 때다.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는 대구 산란기인데, 이때 잡히는 알 잔뜩 머금은 대구는 천하일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외포항이 자리한 진해만에는 겨울이면 전국 최대규모의 대구 어장이 형성된다. 1980년대 한때 진해만을 가득 메웠던 대구가 사라지면서 ‘금대구’라고 불리던 시절도 있었다. 어쩌다 한두 마리가 잡히면 수십만원에 팔렸다는 기사가 신문에 소개될 정도로 귀한 생선이었다. 그러다 1990년대 중반 거제수협이 대구알 방류 사업에 성공하면서 2000년대 중반부터 외포항으로 대구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이른 아침부터 외포항에 자리한 거제수협 외포출장소 어판장은 대구 경매에 참여한 중매인들로 북적거린다. 어판장 바닥에 늘어선 갓 잡은 대구를 꼼꼼하게 살피던 중매인들은 경매가 시작되면 경매사에게 손가락 신호를 열심히 보낸다. 이렇게 30분이 지나면 나무상자에 담겨 있던 대구는 모두 팔려나간다.

대구잡이에는 호망을 쓴다. 호망은 대구를 유인하기 위해 길그물을 길게 놓고 그 끝에 둥그런 통그물을 붙인 것이다. 통그물의 모양이 단지(壺)처럼 생겨 호망이라 부른다. 야행성인 대구는 밤에 쏘다니다 호망에 걸리는데, 그물코에 꿰는 것이 아니니 산 채로 올라오는 대구도 많다.

외포항에는 대구요리를 내는 식당 10여곳이 늘어서 있다. 대구탕 거리로도 불린다. 대구는 회나 찜도 좋지만, 이맘땐 탕만 한 게 없다. 뽀얀 국물이 언뜻 보기에는 꼭 곰탕같다. 국물은 구수하면서도 진하다. 소금만으로 간을 해 깊고 그윽한 맛을 낸다. 외지인들은 생대구가 좋다고 하지만, 어민들은 살짝 말린 대구를 더 선호한다. 내장과 아가미, 알과 이리 등을 제거하고 해풍에 3~5일 말린 대구는 수분이 쏙 빠져 더욱 차진 맛을 낸다. 말린 것으로 탕을 끓이면 더 뽀얗고 구수한 맛의 국물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상인들의 귀띔이다.


외포항 곳곳에서는 대구를 말려 건대구로 만드는 작업을 쉽게 볼 수 있는데, 부둣가 햇볕이 드는 곳에는 어김없이 내장을 빼고 나무꼬치로 꿴 대구가 널려 있다. 말린 대구를 콩나물, 채소 등과 함께 쪄 먹는 대구찜도 맛있다. 생대구에서는 맛볼 수 없었던 쫀득한 맛과 말린 생선 특유의 감칠맛을 함께 느낄 수 있다. 코다리찜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대구는 지방 함유량이 적고 열량도 높지 않아 다이어트에 그만이며 각종 비타민이 많이 들어 있어 원기 회복에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굴과 대구로 배가 든든해졌다면 거제도의 아름다운 풍경 속으로 들어가보자. 거제는 우리나라에서 제주도 다음으로 큰 섬이다. 350km가 넘는 해안선을 따라 바다와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비경이 펼쳐진다.

볼거리 가득한
거제 관광지

거제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광을 꼽으라면 아마도 신선대와 ‘바람의 언덕’일 것이다. 해금강 가는 갈곶리 도로 오른편에 신선대, 왼편에 바람의 언덕이 각각 자리한다. 신선대는 신선이 내려와 풍류를 즐겼다고 할 정도로 해안 경관이 절경이다. 파도가 쉴 새 없이 밀려와 기암괴석에 부딪혀 하얗게 부서지는 모습이 감탄을 자아낸다. 바람의 언덕은 갈곶리 도장포마을 북쪽 해안에 있는 언덕으로 사시사철 바닷바람이 분다고 해서 이렇게 이름붙었다. 바다와 풍차가 어우러진 이국적인 경치가 매력적이다.

신선대 입구에 자리한 해금강테마박물관은 가족들과 함께 돌아보기 좋은 곳이다. 1950~1980년대까지의 생활상을 볼 수 있는 곳으로 다이얼식공중전화, 대폿집 풍경을 재현한 전시장, 난로 위에 놓인 알루미늄 도시락 등 ‘그때 그 시절’을 구경하다 보면 시간가는 줄 모른다.

학동에 있는 학동흑진주몽돌해변도 놓치기 아까운 풍경이다. 흑진주처럼 반들반들 윤이 나는 검은 몽돌이 덮인 몽돌밭 해변이 1.2km에 걸쳐 펼쳐져 있다. 바닷물이 밀려들고 나갈 때마다 몽돌밭에서는 ‘자글자글’하는 소리가 나는데, 우리나라 자연 소리 100선에 선정될 만큼 아름답고 감미롭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해안선을 따라 즐기는 바다 드라이브도 거제 여행의 낭만을 더해준다. 특히 여차~홍포간 해안도로는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닷길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 푸른 바다와 정다운 포구마을, 깍아지른 해안절벽이 어우러진 풍경은 자꾸만 차를 세우게 만든다. 거가대교도 빼놓을 수 없는 명소다. 장목면과 부산 가덕도를 연결한 4.5km의 사장교로 일출과 일몰을 감상하기에도 좋다.

<자료제공: 한국관광공사>

----------------------------여행 정보----------------------------
당일 코스 내간리 굴구이→해금강테마박물관→신선대→바람의 언덕→외포항

1박 2일 코스
첫째 날: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내간리 굴구이→학동흑진주몽돌해변→학동 숙박
둘째 날:해금강테마박물관→신선대→바람의 언덕→외포항

관련 웹사이트
· 거제문화관광 http://tour.geoje.go.kr
· 해금강테마박물관 www.hggmuseum.com

문의 전화
· 거제시청 관광과 055-639-4173
· 해금강테마박물관 055-632-0670


대중교통
·버스 서울-거제(고현): 서울남부터미널에서 하루 28회(06:40~24:00) 운행, 약 4시간 20분 소요.
* 문의: 서울남부터미널 1688-0540, 고현시외버스터미널 1688-5003
           전국시외버스통합예약안내서비스 www.busterminal.or.kr 

자가운전 대전통영고속도로→통영 IC→남해안대로 거제 방향→신거제대교→거제대로→1018번 지방도→내간리

숙박
· 라이트하우스호텔: 거제시 장승포로, 055-681-6362
· 베니키아호텔거제: 거제시 성산로, 055-991-1000
· 머그학동: 거제시 동부면 학동3길, 010-5036-3889

식당
· 원조거제굴구이: 굴구이, 거제면 거제남서로, 055-632-4200
· 외포효진횟집: 대구탕, 장목면 외포2길, 055-635-6340
· 양지바위횟집: 대구탕, 장목면 외포5길, 055-635-4327
· 항만식당: 해물뚝배기, 거제시 장승포로7길, 055-682-4369

주변 볼거리 지심도, 해금강, 외도보타니아, 칠천량해전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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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독주가 이어지고 있다. 당원의 명령인 개혁을 완수하기 위한 질주다. 당의 ‘아웃사이더’였던 그가 당을 휘어잡기까지 수많은 당원이 등을 밀어줬다. 비주류에서 주류 ‘인싸’로 자리 잡기 위한 정 대표의 다음 스텝이 주목된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행보가 매섭다. 윤석열정부에서 막힌 과제를 해치우는 동시에 공약이었던 각종 개혁을 빠르게 완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 대표는 같은 당 박찬대 의원보다 덜 알려졌다는 평이 나오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위원장으로서 보여준 ‘사이다’ 면모가 주목받으면서 강성 지지층의 환호를 받았다. 정청래가 걸어온 길 비주류였던 그가 당 대표가 되기까지의 여정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21대 국회 때는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 수석 최고위원을 지냈고, 22대 국회에선 법사위원장으로서 국민의힘에 호통을 치며 유튜브 단골 주제가 됐다. 당시 정 대표는 국민의힘이 반대하는 쟁점 법안을 밀어붙이고 상대편 의원과 대립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인기를 끌었다. 그동안 정 대표는 언론 대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유튜브 등 SNS를 통해 지지자와 직접 소통해 왔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보다 주목도가 떨어진다는 평이 나오지만 팬덤 정치에 최적화된 모습을 보여줬다. 정 대표는 최근에도 자신을 둘러싼 의혹과 청-명 프레임에 대해 직접 입장을 밝혔다. 그는 SNS에 ‘언론의 자유와 횡포 그리고 언론의 게으름의 관성’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조국 전 대표의 사면·복권을 놓고 일부 언론에서 ‘정청래 견제론’을 말한다.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근거 없는 주장일뿐더러 사실도 아니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바로 반박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어 “정청래는 김어준이 밀고, 박찬대는 이재명 대통령이 밀었다는 식의 가짜 뉴스가 이 논리의 출발”이라며 “어심이 명심을 이겼다는 황당한 주장, 그러니 정청래가 이재명 대통령과 싸울 것이란 가짜 뉴스에 속지 말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각을 세울 일이 1도 없다. 당정대가 한 몸처럼 움직여 반드시 이재명정부를 성공시킬 생각이 100(이다)”이라고 덧붙였다. 계파 갈등 프레임이 씌워질 조짐이 보이자 이를 사전에 차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 대표의 정치적 뿌리를 따지자면 친노(친 노무현)에 가깝다. 그러나 문재인 전 정부서는 친문(친 문재인),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는 친명(친 이재명)으로 분류되는 등 계파색이 비교적 옅은 편이다. 1989년 미국 대사관저 점거 농성을 주도한 혐의로 2년형을 선고받은 등 학생 운동권 출신이지만, 대표 운동권인 민주당 86 그룹과의 친분을 공개적으로 과시하지 않았다. 따라서 정 대표는 당의 주류보다 비주류에 가깝다는 게 여의도에 떠도는 평이다. 친문? 친명? 오히려 ‘계파 청산파’ “잘못된 586 문화 배운 97도 청산” 전당대회가 한참이던 당시 한 민주당 의원은 “사석에서 만난 정 의원은 아주 뚝심 있는 사람이었다. 박찬대 의원은 특유의 재치로 호감을 얻는 편이라면 정 의원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할 말은 제대로 하는 캐릭터”라며 “그래서 계파를 분류하기 어려운 것 같다. 나만의 길을 가는 것 같으면서도 한번 정한 길은 꺾지 않고 걷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오히려 정 대표는 ‘계파 청산’을 외치는 인물이다. 그는 당 대표 후보이던 당시 “국민께서 비판하시는 586의 운동권 문화는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라디오에 출연해서는 “계파는 당을 좀먹는 독약”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정파와 노선은 필요하지만, 계파는 없어져야 한다. 저 스스로 계파에 가입하지 않고, 그런 데서도 저는 안 불러준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586의 질서, 운동권의 수직적 관계가 싫었다. 그런 분들과 몰려 다니는 게 너무 비생산적”이라며 “586의 안 좋은 문화를 따라 배운, 너무 빨리 늙어버린 97 세대들의 그런 것도 청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수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당원들의 요구를 파악해 발 빠르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8·2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는 당선 이후 “이 대통령이 대통령이 된 것은 민주당 주류가 바뀌었단 뜻이고, 민주당에서 정청래가 대표가 됐다는 것은 당의 주인인 당원들이 당의 운명을 결정하는 시대가 왔다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해석했다. 이날 전당대회를 “예전에는 당원들이 국회의원 눈치를 봤지만, 이제는 국회의원들이 당원 눈치를 봐야 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민주당의 민주화’가 드디어 그 깃발을 높이 든 8·2 전당대회”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이처럼 정 대표를 탄탄히 받쳐주는 건 여의도 인맥이 아닌 당원이었다. 정 대표는 이들을 대주주 삼아 힘을 키워 주류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에는 당원권에 힘을 쏟으며 역사상 처음으로 ‘평당원 최고위원’ 선출을 시도하는가 하면 당원 주권 정당 실현을 강조하기 위해 ‘대의원 1인1표제’를 띄우기도 했다. 대의원 1인1표제는 당원들의 권한을 대폭 향상하는 방안이다. 정 대표는 지난 18일 열린 국회 당원주권 정당특위 출범식에서 “10년 넘게 당원주권정당, 1인1표를 주장해 왔지만, 아직까지도 열리지 않았다”며 “헌법에서 얘기하고 있는 평등 선거가 민주당에서도 구현이 될 수 있도록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3대 개혁 풀가동 이어 “대한민국 헌법에는 평등 선거가 명시돼있고, 많은 선거에서 1인1표가 행사되지만 유독 더불어민주당에선 누구는 1표, 누구는 17표를 행사한다”며 “헌법적으로 보나 상식적으로 보나 매우 부끄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재명정부가 국민주권시대를 강조하는 만큼 이에 발맞추기 위해서라도 민주당은 권리당원의 권리를 보장하고 상징적인 ‘1인1표’ 시대를 반드시 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밖에도 정 대표는 당헌·당규 개정을 비롯한 ▲평당원 선출 준비 지원 ▲연말 당원 콘서트 지원 등을 약속했다. 당원의 힘이 커질 수록 정 대표의 정치적 입지도 넓어진다. 정 대표는 연일 국민의힘 때리기에 집중하며 당원으로부터 지지를 받았고, 민주당의 목표로 3대 개혁 완수를 내걸었다. 이는 비주류였던 자신의 정체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전략으로도 읽힌다. 이 대통령이 ‘사이다’ 발언으로 당권까지 올랐다면 정 대표는 각종 특위를 띄우며 거침없는 개혁가의 모습을 굳히겠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강성 지지층의 요구에 따라 검찰개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청을 폐지하는 대신 가칭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과 공소청을 신설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다음 달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정 대표는 지난달 21일 의원총회에서 이 대통령과 당 지도부의 만찬 회동을 언급하며 “검찰청 폐지, 공소청·중수청 설립을 담은 정부조직법을 9월 내 본회의에서 처리하자고 당과 대통령실이 입장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약속드린대로 추석 귀향길 뉴스에서 ‘검찰청은 폐지됐다’ ‘검찰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는 기쁜 소식을 국민 여러분께 전해드릴 수 있도록 당에선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임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된 추미애 의원 역시 “법사위원장 선출은 검찰과 언론, 사법개혁 과제를 완수하라는 국민의 명령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전폭적으로 힘을 실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위원회도 속속들이 들어섰다. 우선 민주당은 ‘국민주권 검찰정상화 특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정 대표는 출범식 및 1차 회의에 참석해 “지금의 시대적 과제는 내란 종식, 내란 척결, 이정부 성공에 있다”며 “가장 시급히 해야 할 개혁 중 개혁이 검찰개혁”이라며 “개혁도 골든타임을 놓친다면 저항이 거세져서 좌초되고 말 것이기 때문에 시기가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특위의 주요 과제로는 ▲수사·기소 완전 분리 ▲국민 주권 실현 및 민생 뒷받침 등을 제시했다. 새로운 구심점 이어 언론개혁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언론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추석 전까지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언론의 허위·조작 보도에 대해 피해자에게 손해액의 최대 5배 배상을 의무화하는 법적 장치다. 언론뿐만 아니라 ‘유튜버’도 포함하는 안이 논의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중심 사법개혁특별위원회’도 출범했다. 정 대표는 “대법관의 증원과 추천 방식을 변경하는 내용의 사법개혁안을 추석 전까지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구석구석 눈도장을 찍기 위한 지역별 공략에도 나섰다. 지난 21일 호남발전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다들 대한민국 민주화에 대해서 호남이 기여한 바가 지대하다는데, 국가는 ‘호남을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에 대한 답을 이제 할 때가 되지 않았나”라고 꼬집었다. 정 대표는 “호남만 발전시키면 되겠느냐”며 영남발전특위도 띄웠다. 이는 내년 6월에 있을 지방선거를 대비해 대구·경북 등의 표밭을 다지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광폭 행보를 보이는 정 대표를 구심점으로 신흥 세력이 탄생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정 대표는 계파 정치와 거리를 두겠다고 거듭 밝혔지만, 권력자의 주변에 사람이 모이는 것은 당연하다는 해석이다. 정 대표의 편에 선 동료 의원들에게도 시선이 쏠린다.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를 공식적으로 지지했거나 개혁 선봉에 함께 섰던 의원 등이다. 정 대표가 당권 도전을 선언한 국회 기자회견장에는 장경태·최기상·문정복·임오경·양문석 의원 등이 자리했다. 여의도 이야기를 종합하면, 정 대표는 ‘당원 중심 정당’ 철학에 부합하는 인사로 장 의원을 꼽았다. 현재 장 의원은 평단원 최고위원 선출 절차를 위한 특위위원장을 맡고 있다. 최민희 의원은 정 대표를 공개 지지한 인물이다. 당시 정 대표가 수박 논란에 휩싸였을 당시 최 의원은 “심하게 비난받는 정청래 후보를 지켜보면 짠하다”며 “비난에도 역비난하지 않고 여전히 유쾌·상쾌하게 선거운동하는 정 후보를 격하게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 밖에도 한민수·김영환·이성윤 의원은 경선 유세 현장에 함께하며 힘을 실어줬다. 왼쪽으로 붙는 민주당…좁아지는 공간 강성 지지층 등에 업고 개혁가의 길로 개혁가의 길을 걷는 정 대표의 존재감이 커지자 일각에서는 조기 대선을 거치며 ‘중도 보수론’으로 넓혀놨던 민주당의 정치 공간이 다시 좁아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 대표의 강경한 태도가 민주당의 기조가 된다면 야당과의 협치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평이다. 실제 정 대표는 “악수는 사람하고만 한다”며 국민의힘을 척결 대상으로 대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6주기 추모식에서 정 대표는 국민의힘 송언석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과 악수는커녕 인사조차 나누지 않았다. 송 비대위원장 역시 적대감을 드러내면서 그야말로 ‘국회 빙하기’ 시대가 열렸다. 여당인 민주당은 좌우를 넓게 아우르는 정당이 돼야 앞으로 다가올 선거에서 유리한 구도를 유지할 수 있다. 지금처럼 국민의힘이 보수로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왼쪽은 조국혁신당, 진보당 등에 맡겨둔 채 중도 보수를 자처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당원의 힘으로 대표가 된 만큼 그는 개혁을 완수하기까지 지금과 같은 태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민주당 상임고문단도 “집권여당은 당원만 바라보고 정치를 해선 안 된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당 상임고문단 간담회에서 “정당의 주인은 당원이어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면서도 “우리 국민은 당원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도 “내란의 뿌리를 뽑기 위해 전광석화처럼, 폭풍처럼 몰아쳐 처리하겠다는 대목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과유불급이다. 의욕이 앞서 결과를 내는 게 지리멸렬한 것보다는 훨씬 나으나, 지나치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또 다른 민주당으로 민주당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포스트 이재명’ ‘이재명 키즈’가 아닌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새로운 길을 열어야 당이 계속해서 순환하는 등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어 “민주당의 주류는 강성 지지층이다. 당원이 당을 좌지우지하는데 그들의 숫자가 얼마가 되든 목소리가 커 여론을 만드는 것”이라며 “이 주류의 흐름에 올라탄 사람이 정 대표다. 이 대통령이 대표이던 때와는 다른 모습의 민주당을 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아직 남은 정 견제 세력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SNS에 올렸다 곧바로 삭제한 게시글이 화제다. 민주당은 지난달 19~20일 양일간 경주를 찾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준비 상황을 점검했는데 정 대표가 마치 천마총 금관을 쓰고 있는 듯한 착시 사진이 문제가 된 것이다. 정 대표가 금관을 직접 착용한 것은 아니지만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시에 왕 노릇을 한다” “벌써 왕인 것처럼 군다” 등 거친 비판이 쏟아졌다. 현재 해당 사진은 삭제됐지만 8·2 전당대회 때 불거진 박찬대 의원과의 앙금이 아직 남은 게 아니냐는 뒷말이 나온 이유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