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윤석금 판결 막후

다들 잡아넣고 윤 회장만 봐주나

[일요시사 경제팀] 양동주 기자 = 하루를 사이에 두고 재벌그룹 오너 두 사람이 연이어 법정에 섰다. 1000억원대 배임 행위라는 비슷한 혐의를 받았지만 판결은 감형과 실형으로 엇갈렸다. 전자는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 후자는 이재현 CJ그룹 회장이다. 재판부의 결정을 두고 논란이 불거진 건 당연했다. 사법부가 말하는 공정성이라는 잣대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게 주된 이유다. 한쪽만 봐준 것 아니냐는 목소리마저 들끓고 있다.

책 외판원에서 대기업 총수로 올라선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은 ‘샐러리맨 신화’의 주인공이다. 1980년 한국 브리태니커에 입사한 이래 최고의 영업맨으로 불리던 그는 자본금 7000만원으로 독립해 웅진그룹의 기반을 만들었다. 이후 웅진그룹은 웅진식품, 웅진코웨이 등 15개 계열사를 거느린 거대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샐러리맨 신화
경제사범으로

탄탄대로일 것만 같았던 웅진그룹의 위용은 미국발 금융위기가 불어닥친 2000년대 후반부터 조금씩 흔들린다. 건설경기 악화, 금융업 부실, 태양광산업 침체 등 연속된 악재로 위기에 봉착한 것도 이 무렵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윤 회장은 지난 2012년 7월부터 9월까지 채무 상환의 능력과 의사가 없는데도 1198억원 상당의 CP를 발행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당시 웅진그룹은 CP 발행 전에 이미 회생신청을 내부적으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져 ‘CP 발행 사기’ 의혹을 샀다. 2011년 9월부터 2012년 5월까지 웅진홀딩스·웅진식품·웅진패스원 등 우량회사 자금을 임의로 끌어다 부실회사인 웅진캐피탈에 지원해 968억원의 손해를 입힌 혐의도 추궁 받았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8월 윤 회장의 구속 여부가 본격적으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당시 서울중앙지법 재판부는 윤 회장이 극동건설과 웅진캐피탈 등 그룹내 부실 계열사에 715억원을 부당지원한 배임횡령 혐의에 대해 유죄판결을 내렸다. 다만 윤 회장이 2012년 1000억원 규모의 기업어음을 발행한 사기혐의는 무죄로 판결했다.

피해보전을 위해 노력한 점을 감안해 법정구속은 하지 않아 항소심에서 감형 받을 여지도 남겨뒀다. 이 같은 결정은 웅진그룹이 경영공백을 맞이하면 피해자 구제가 더욱 어려워질 것을 감안한 선택이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피해 회사들에 대한 구체적 변제계획을 제출했다”며 “항소심에서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을 위해 법정구속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어음 발행부분이 무죄로 인정받으며 최악의 상황을 모면한 웅진그룹은 형량 감형을 위해 항소했고 예상은 보기 좋게 맞아떨어졌다.


지난 14일 열린 항소심에서 결국 윤 회장에게 재판부는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서울고법 형사4부(부장판사 최재형)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윤 회장에게 징역 4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징역 3년과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추가적인 변제 방안을 모색했다는 점을 상당부분 인정해준 셈이다. 윤 회장과 함께 기소된 웅진그룹 전·현직 임직원들에게는 징역 2년6개월과 집행유예 3∼4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윤 회장의 지원행위 자체가 지원 회사 고유의 이익보다는 극동건설이나 서울상호저축은행을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데 주된 목적이 있었다”며 “윤 회장은 CP 발행 당시 웅진코웨이 매각대금으로 CP를 변제할 구체적인 계획을 세운 뒤 웅진코웨이 매각을 진정성 있게 추진했다”고 판시했다.

문제는 윤 회장에게 감형을 선고한 재판부의 판단을 수긍하기 애매하다는 점이다. 재판부는 추가 변제 방안을 위해 노력한 윤 회장의 행보를 사실상 인정했지만 이전부터 윤 회장 주변에서는 크고 작은 잡음이 이어져왔다. 특히 웅진홀딩스와 극동건설의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 신청 직전에 윤석금 회장의 부인이 웅진씽크빅 보유주식을 전량 처분했던 정황은 도덕성에 대한 자질을 의심케 만들었던 사건이었다.

불구속 재판
처음부터 영∼

윤 회장의 부인인 김향숙씨는 지난 2012년 9월24일과 25일 양일에 걸쳐 소유하고 있던 웅진씽크빅 주식 4만4781주(0.17%) 전량을 장내에서 팔았다. 웅진씽크빅 주가가 8850∼8960원이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매도금액은 3억9750만원가량이다.

당시 증권가에서는 김씨가 웅진홀딩스와 극동건설의 동반 법정관리 신청 직전에 보유 주식 전량을 매도해 손실을 줄였다고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실제로 김씨가 주식을 팔던 당시 웅진씽크빅 주가는 8000원 후반이었고 26일 종가가 전일보다 13.39%(1200원) 내린 7760원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김씨는 법정관리 신청 하루 전에 보유 주식을 매도해 5000만원가량의 손실을 줄인 셈이다.

1000억대 배임 혐의 항소심서 집유
실형 선고받은 이재현 회장과 상반

이렇게 되자 김씨가 웅진씽크빅 미공개 내부 정보를 이용해 손실을 회피했다는 의혹이 일었다. 회사 측은 “김씨가 보유한 지분이 워낙 적고 경영권과 관련이 없었기에 진작부터 정리하려 했던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논란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윤 회장의 친인척들이 비슷한 시기에 웅진코웨이 주식 장내 매도에 나선 정황도 포착됐다. 당시 웅진코웨이 주가는 매각 이슈로 3만원대에서 4만원 이상으로 올랐다.


윤 회장의 감형은 최근 대기업 오너일가의 비리에 엄중한 법의 잣대를 들이대던 사법부의 입장과도 궤를 달리한다. 하루를 사이에 두고 상반된 결정이 이뤄진 이재현 CJ그룹 회장과 비교하면 더욱 극명해진다. 

지난 15일 서울고법 형사12부(부장판사 이원형)는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 회장에 대한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징역 2년6개월에 벌금 252억원을 선고했다. 1600억원대 횡령·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 회장에게 적용된 252억원 상당의 조세 포탈 혐의와 115억원 상당의 횡령 혐의는 지난 9월 대법원 판결의 기속력에 따라 더 이상 변동의 여지가 없게 됐다.

재판부는 “다수 임직원을 동원해 거액의 세금을 포탈하며 조세 정의를 심각하게 훼손한 것은 책임을 낮게 평가할 수 없다”며 “기업의 총수라도 엄중히 처벌받게 된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하게 할 필요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선고 직후 이 회장 측 변호인은 재상고할 뜻을 밝혔지만 대법원의 판단이 크게 달라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대법원의 취지에 따라 형법상 업무상 배임죄를 적용한 파기환송심을 대법원이 다시 깨뜨릴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만성신부전증으로 신장이식 수술을 받기 위해 구속집행정지가 결정된 이후 이 회장은 건강상태 악화로 불구속 상태에서 치료를 받으며 재판을 이어왔다. 신장이식 수술 뒤 급성 거부 반응, 수술에 따른 바이러스 감염 의심 증상, 유전적인 질환인 ‘샤르코마리투스(CMT)’질환 등을 앓는 것으로 전해졌다.

비록 실형 선고를 받았지만 이 회장은 곧바로 수감절차를 밟지는 않는다. 내년 3월21일까지 예정된 구속집행정지 결정이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이다. 다만 대법원은 이 회장이나 검찰 측의 상고로 심리가 진행되면 기록을 넘겨받은 이후 구속집행정지 만료일 전까지 유지 또는 연장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부도 전 주식처분
도덕성도 꽝인데…

구속집행정지가 연장되지 않을 경우 이 회장은 2년6개월 가운데 지난 2013년 7월1일∼8월20일, 지난해 4월30일∼6월24일까지 두 차례 구금된 일수를 제외한 나머지 형기를 채워야만 한다. 이 회장이 재상고 하더라도 10년 미만 징역형에 대해선 양형 부당을 이유로 대법원에서 다툴 수 없다. 혐의 중 일부에 대해 무죄 판단을 받지 못하는 한 이 회장은 별다른 대응책을 찾기 힘든 셈이다. 

이 회장에 앞서 자금 수백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돼 대법원으로부터 실형 확정 판결을 받았던 최태원 SK그룹 회장 과 최재원 부회장 형제 역시 재판부로부터 비슷한 설명을 들어야 했다.

최 회장 형제 사건을 맡았던 항소심 재판부는 “기업인으로서 정상적인 경영활동을 통해 이윤을 추구하고 부를 축적해야함에도 일확천금 획득을 위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물론 윤 회장과 마찬가지로 김승연 한화 회장의 경우 개인적 이익을 위한 범행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전례가 있다. 김 회장에 대한 파기환송심 사건을 맡았던 재판부는 “한화그룹 자체의 재무적 위험을 해결하기 위해 우량 계열사 자산이 동원된 것으로 기업주가 회사 자산을 개인적으로 사용한 전형적 사안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고 선을 그었다. 다만 윤 회장과 김 회장의 사례는 시기상으로 격차가 있고 그 사이 오너 일가의 비리를 바라보는 재판부의 시선이 달라졌음을 감안해야 한다.

윤 회장의 감형은 웅진그룹에 청신호나 마찬가지다. 윤 회장의 두 아들을 그룹 전면에 내세우고 본격적인 2세 경영체제로 들어갔지만 아직까지 그룹에는 윤 회장이 필요한 상황이다. 두 아들 모두 30대에 불과한 젊은 나이인 점을 감안하면 윤 회장의 빈자리를 대체하기엔 아직 부족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윤 회장의 경험과 추진력이 절실한 셈이다.

재판부가 나서 웅진그룹 걱정?
비슷한 죄목 전혀 다른 법 잣대

실제로 현재 웅진그룹은 법정관리를 거치며 외형이 크게 줄어들었다. 웅진코웨이(현 코웨이)와 웅진케미칼(도레이케미칼), 웅진식품 등 핵심 계열사 대다수는 팔려나갔다. 윤 회장은 우선 그룹이 적극적으로 진행 중인 화장품사업에 역량을 집중할 전망이다. 과거의 방식을 벗어나 온라인 방문판매를 도입하는 등 새로운 방식을 개발 중이며 수입 위주의 제품에서 자체 브랜드 화장품을 선보이겠다는 전략도 마련했다.


또 2017년부터는 정수기와 공기청정기 등 현재 코웨이가 하고 있는 환경생활가전사업도 추진할 수 있다. 2013년 매각 당시 5년간 겸업을 할 수 없다는 조항을 뒀지만 5년이 지난 시점부터는 이 사업을 재개할 수 있다. 웅진싱크빅을 중심으로 스마트러닝사업에도 탄력이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총수 부재에 직면한 CJ그룹은 불투명한 미래에 직면했다. 특히 투자비용이 많이 드는 해외 시장 개척이나 대규모 인수합병에서 회장 부재로 인한 차질이 크다. 이는 그룹의 성장동력과 직결되는 사안이기도 하다. 실제로 CJ그룹 투자실적은 해마다 줄어드는 추세다. 2012년 3조원에 육박했던 CJ그룹 투자는 지난해 2조원을 밑돌았다. 이 회장 부재 이후 큰 규모의 투자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봐도 무방하다.

“기회 줘야한다”
그룹 재건 가능?

현행법에 따르면 300억원 이상 배임횡령의 양형기준은 징역 5∼8년이고 감형사유에 따라 징역 4∼7년형이 선고된다. 그러나 법의 적용은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비슷한 배임혐의라도 ‘국가 경제활동에 기여할 기회를 줘야한다’는 판결과 ‘누구에게나 비슷한 잣대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엇갈린다. 물론 법 적용 과정은 끊임없는 고민의 산물이다. 다만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사안인가에 대한 물음에는 여전히 의문부호가 따른다. 감형이 결정된 윤 회장에게 꼬리표처럼 붙는 의문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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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100일 결정적 장면들

이재명의 100일 결정적 장면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체감상 1년은 된 것 같다.” 어느 덧 이재명정부가 출범 100일째를 맞았다. 이재명 대통령에겐 숨 가쁜 3개월이었다. 12·3 비상계엄 선포, 탄핵 정국, 조기 대선 등 대형 정치 이슈는 지나갔다. 이제 본격적으로 국정 운영의 청사진을 실현해야 하는 시기다. 지지율은 이미 요동치고 있다. 어떤 이슈가 이정부를 뒤흔들었던 걸까? 지난 6월3일 21대 대통령선거가 열렸다. 지난해 12월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 6개월 만에 대선이 치러졌다. ‘어대명(어차피 대통령은 이재명)’이라는 말이 대선 전부터 파다했고 실제로 이변은 없었다. 재수 끝에 대통령에 당선된 이재명 대통령은 역대 최다 득표수를 기록했다. 다만, 과반 득표율에는 미치지 못했다. 무정부 상태 산적한 이슈 이번 대선은 대통령 탄핵으로 치러진 보궐선거여서 인수위원회 기간 없이 바로 임기가 시작됐다. 이 대통령 앞에는 비상계엄 사태 수습, 민생 회복, 국민 통합 등 국내 문제는 물론 미국발 통상 전쟁 등 국외 문제까지 이슈가 산적한 상태였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무정부’나 다름없는 상태로 6개월 동안 이어진 국정 공백을 메워야 했다. 이 대통령은 당선이 확정된 후 소감 연설에서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민주공화정 공동체 안에서 국민이 주권자로 존중받고 협력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것, 반드시 그 사명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란 극복 ▲민생 회복 ▲국민 안전 ▲한반도 평화 ▲국민 통합 등을 언급했다. 실제 이 대통령은 국회의 과반 의석을 등에 업고 ‘윤석열정부 지우기’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이재명 정부 1호 법안으로 ‘내란 특검법’ ‘김건희 여사 특검법’ ‘채 해병 특검법’ 등을 통과시켰다. 김건희 특검법, 채 해병 특검법 등은 윤정부에서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로 번번이 폐기됐던 법안이다. 이 대통령은 취임 엿새 만인 6월10일 국무회의에서 3대 특검법을 의결했다. 그는 국무회의 이후 SNS를 통해 “이재명 정부 1호 법안인 3대 특검법은 내란 심판과 헌정 질서 회복을 열망하는 국민의 뜻을 받들기 위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특검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를 구속 기소하는 등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침체된 내수를 회복하기 위한 소비쿠폰도 지급했다.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을 거치면서 사회 분위기가 흉흉해졌고 이는 곧 경기 부진으로 이어졌다. 정치 상황이 좋지 않다 보니 사람들이 소비를 줄이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연말 연초 대목 장사를 망친 자영업자는 폐업을 걱정해야 할 지경에 몰렸다. 민생 회복 소비쿠폰 지급은 이 대통령이 대선후보 때부터 내세운 공약이다. 지난 7월21일부터 전 국민을 상대로 1차 소비쿠폰이 지급됐다. 기본 15만원에 인구 감소 지역 등에 일정 금액을 더했다. 2차 소비쿠폰은 상위 10%를 제외한 국민 90%가 오는 22일부터 신청할 수 있다. 13조원의 재정이 투입됐다. 윤정부 때부터 이어진 의료계와 정부의 갈등은 이재명정부 들어서도 쉽게 출구 전략을 찾지 못하는 모양새다. 무엇보다 의대생 수업 복귀에 대한 이정부의 행보에 민주당 지지자 사이에서도 불만이 제기됐다. 의료 정상화를 이유로 조건 없이 의대생 복귀를 추진하는 모습에 공정과 원칙이 깨졌다며 실망감을 표출한 것이다. 두 번의 도전 끝에 당선 내란 종식, 민생 첫 손에 의정 갈등은 윤정부 시기인 지난해 2월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리겠다는 보건복지부의 발표로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전공의는 집단 사직하며 병원을 떠났고 의대생은 집단 휴학을 강행했다. 응급실 뺑뺑이 사건 등 의료 공백이 가시화되고 의료 붕괴까지 우려되다가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핵심 이슈에서 멀어졌다. 새 정부의 현안으로 넘어간 것이다. 이 대통령이 정은경 전 질병관리청장을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하면서 의정 갈등 해소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정 장관 지명 이후 의료계에서 일제히 환영 입장을 내놨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대생 복귀와 관련해 특혜 논란이 나왔고 국민 여론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의료계와 국민 여론의 괴리가 큰 상황이라 해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산재와의 전쟁’은 임기 초 이정부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는 모양새다. 이 대통령은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SPC 공장을 현장 방문하는가 하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반복 공시로 주가 폭락’ 등 수위 높은 발언으로 건설업계를 겨냥했다. 이 대통령이 산업재해 근절을 외치자 건설업계가 납작 엎드렸다. 산재 사고가 발생하면 사용주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내용의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고도 일터에서 근로자가 죽는 사례가 거듭 일어나자 대통령이 직접 칼을 빼든 것이다. 연이어 산재 사고가 발생한 포스코이앤씨는 대표이사가 바뀌었고 DL건설은 임직원 전원이 사의를 표명했다. 일각에서는 이정부가 지나치게 기업을 ‘잡도리’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코스피 5000’을 외치며 주가 부양을 공언한 것과 실제 행보는 정반대라는 의견이다. 지금까지의 주가 상승은 이정부에 대한 기대감에서 비롯됐다면 앞으로의 상승분은 실물 경제에서 끌어 올려야 하는데 이를 이끌 기업을 너무 옥죄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 나온다. 경제 정책의 방향도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된다. 지난달 1일 코스피 지수가 126.03포인트(3.88%)나 하락했다. 주가 3200선이 깨졌고 하락률은 미국발 상호 관세 부과로 충격을 받았던 지난 4월7일(-5.57%) 이후 4개월 만에 가장 컸다. 이른바 ‘검은 금요일’의 배경은 전날 이재명 정부가 발표한 세제 개편안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침체된 경기 소비쿠폰으로 이정부는 주식 양도소득세 과세 대상인 대주주 기준을 50억원에서 10억원으로 낮추고 최고 35% 배당소득 분리과세 도입 등을 담은 세제 개편안을 공개했다. 금융투자소득세 도입 조건부로 인하된 증권거래세율도 현재의 0.15%에서 2023년 수준인 0.2%로 환원됐다. 또 법인세 세율을 모든 과세표준 구간에 걸쳐 1%포인트씩 일괄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검은 금요일’의 후폭풍은 상당했다. 무엇보다 국내 주식시장에 대한 투자 심리가 위축됐다는 게 문제였다. 주가가 폭락한 지난달 1일 이후 열흘 사이에 거래 대금이 20%가량 줄었다. 이른바 ‘국장’에서 빠져나간 개인 투자자들이 ‘미장(미국 주식시장)’으로 몰려가면서 나스닥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가뜩이나 관세 협상으로 전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증시 부양책에 대한 의구심이 커졌다는 방증이었다. 일명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제2·3조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점도 우려를 더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노란봉투법은 하청 노동자에게 원청과의 교섭권을 부여하고 파업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이 골자다.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 활동이 위축될 것이라는 예상이 끊이지 않았다. 법안이 통과되기 전부터 한국경영자총연합회 등 경영계를 대표하는 경제단체는 물론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 등이 노란봉투법에 반대 의사를 드러냈다.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이 규제가 덜한 외국으로 나갈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경제단체 등은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시행을 유예해 달라고까지 했지만 그대로 진행됐다. 대통령실은 법안 통과 이후 상황을 주시하는 모습이다. 이 대통령은 노란봉투법 통과 이후 “노란봉투법의 진정한 목적은 노사의 상호 존중과 협력 촉진”이라며 “노동계도 상생의 정신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책임 있는 경제 주체로서 국민 경제 발전에 힘을 모아주시기를 노동계에 각별히 당부드린다”고 강조했다. 광복절을 앞두고는 사면 문제가 불거졌다. 취임한 지 2개월 밖에 되지 않았고 전임 정부에서 임기 초 정치인 사면을 한 적이 없던 터라 이정부 역시 같은 길을 갈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했다. 사면 대상으로 거론되던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가 자녀 입시 비리 혐의 등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수감된 지 8개월 밖에 안된 점도 ‘사면 불가론’에 힘을 더했다. 주가 부양 공약 반대되는 정책 지난해 12월12일 대법원은 자녀 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등의 혐의로 기소된 조 전 대표에게 징역 2년에 추징금 600만원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조 전 대표는 나흘 뒤인 12월16일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만기 출소일은 내년 12월15일이었다. 조 전 대표가 이끌던 조국혁신당은 당시 대선에서 후보를 내지 않고 이 대통령을 지지했다. 조 전 대표의 사면 관련 언급이 나올 때마다 ‘대선 청구서’라는 말이 따라붙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후 종교계, 시민단체, 정치권 일부에서 조 전 대표를 사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조 전 대표가 검찰의 횡포에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있다는 주장도 일부 진영에서 제기됐다. 특히 문재인 전 대통령이 대통령실 등이 조 전 대표의 사면을 직접 요구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조 전 대표는 문재인정부 시절 민정수석, 법무부 장관 등 요직을 맡은 바 있다. 문 전 대통령은 조 전 대표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고 언급하는 등 각별히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빗발치는 사면 요구에 고심을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정치권 등에서 조 전 대표를 사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과 달리 여론이 좋지 않았기 때문. 특히 민주당 지지층 내에서도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목소리가 나왔다.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입시 비리 혐의 등이 민주당 지지층이 중요하게 여기는 공정과 상식의 가치에 반한다는 것이다. 지지율이 떨어지는 등 민심 이반이 예상된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이 대통령은 장고 끝에 조 전 대표의 사면을 결정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11일 조 전 대표를 비롯해 윤미향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은수미 전 성남시장,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 등 정치인과 고위공직자 27명을 포함해 총 83만6678명에 대한 대규모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분열과 반목의 정치를 끝내고 국민 대화합 차원에서 이뤄지는 광복절 특사’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광복절 사면은 이 대통령의 지지율을 뒤흔들었다. 사면 논의가 시작됐을 때부터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한 지지율은 발표 이후 눈에 띄게 꺾였다. 조 전 대표가 사면 이후 ‘광폭 행보’를 보이며 노출도가 높아진 것도 한몫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세제 개편안·사면으로 지지율 흔들 한일·한미 정상회담은 긍정적 평가 조 전 대표는 이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에 대해 ‘(사면이 끼친 영향은) N분의 1 정도’라고 발언한 부분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조 전 대표는 수감 한 달여 만에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여권 내에서도 조 전 대표의 행보를 불편해하는 기류가 감지되며 야권에서는 이정부를 공격하는 소재가 된 모양새다. 특히 조 전 대표를 비롯한 조국혁신당에서 우리의 길을 가겠다는 ‘마이웨이’ 행보를 공언하면서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계 개편이 일어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대통령의 임기 5년간 외교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정상회담도 잇따라 열렸다. 이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부터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던 ‘트럼프발 통상 전쟁’의 대응 방향이 윤곽을 드러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당선 직후부터 ‘관세’를 무기로 전 세계에 싸움을 걸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미 FTA’로 쌀 등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 관세가 ‘0’이었기에 타격이 불가피했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국방비 증액 등을 언급했다. 시장을 개방하고 미국에 이른바 ‘동맹 비용’을 내라는 요구였다. 실무진이 진행한 관세 협상은 그 시발점이었고 정상회담은 미국발 청구서의 윤곽이 드러난 자리였다.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표면상으로는 성공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각국 정상을 불러놓고 면전에서 망신주기 하는 등 어디로 튈지 모르는 방식의 트럼프 대통령과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한 점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일각에서는 정작 중요한 사안은 하나도 논의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앞서 조선업 협력, 원전 문제를 비롯해 자동차 등 주력 산업에 붙는 관세까지 불확실성을 해소하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일반적으로 실무진이 틀을 만들고 정상회담에서 결정되는 방식의 외교 관행이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먹히지 않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공동성명이나 합의문 등은 나오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앞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도 만났다. 이 대통령은 일본 방문 전 과거 한일 간 위안부 합의와 징용 배상 문제와 관련해 “국가 간 약속은 존중돼야 한다”며 기존 합의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당시 한일 정상회담에서는 미국발 관세 관련 논의도 이뤄졌다. 당분간 민생 집중 취임 후 첫 외교 시험대를 넘은 이 대통령은 당분간 민생을 살피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당분간 국민의 어려움을 살피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민생과 경제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이규연 대통령실 홍보소통수석은 “몇 주간 정상회담에 몰두했기 때문에 국내, 특히 민생·경제성장과 관련된 부분을 앞으로 주력해서 챙기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