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스러진 달 (11)요주의 인물

두 가지 요구로 국면 전환

소설가 황천우는 지금까지 역사소설 집필에 주력해왔다. 역사의 중요성, 과거를 알아야 현재를 알고 또 미래를 올바르게 설계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아울러 그 과정에서 ‘팩션’이란 장르를 만들어냈다. 팩트와 픽션, 즉 사실과 소설을 혼합하여 교육과 흥미의 일거양득을 노리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오래 전부터 의심의 끈을 놓지 않은 사건을 들추어냈다. 필자는 그 사건을 현대사 최고의 미스터리라 칭함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바로 1974년 광복절 행사 중 발생했던 영부인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이다.

“잘못된 게 아니라 당신이 영사관 요주의 인물이라 하더라고. 그래서 혹여나.”

“왜 혹시 무슨 일이라도 발생할까 염려되어 그래.”

“당연하잖아. 행여나 당신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나는 어쩌라고.”

석원이 슬그머니 팔을 빼어 기미코를 가슴으로 껴안았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기미코가 석원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한고비 넘겼는데…

“당신도 전에 윤대중 선생 연설 들어본 적 있잖아.”

“물론 그랬었지. 당신과 함께.”

“그때 그분께 상당히 감명 받았고 앞으로 우리 조선사회는 그분이 의도하는 방향대로 나아가야 한다 생각해.”

“물론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하지만 여하한 경우라도 당신이 우선이니 그것만은 반드시 알아두어야 해.”

오사카 영사 유창열이 도쿄에 있는 한국대사관을 방문하여 김 대사와 조 참사관과 자리를 함께하는 중이었다.

“그곳은 조용하오?”

“이곳보다야 덜 하겠지요.”

김 대사의 질문을 받은 유창열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거 참. 한고비 넘은 듯한데 다시 일이 꼬이는 것 같습니다.”

“무슨 말씀이신지요?”

유창열의 질문에 김 대사가 조 참사관의 얼굴을 주시했다.
 



“일본 정부는 이제 그만 접으려 하는데 의회와 언론은 더욱 기승부리고 있습니다. 특히 언론은 마치 조사기관을 방불하듯 헬기까지 띄워 대사관을 탐색 중에 있습니다.”

“헬기까지요?”

“그뿐만 아닙니다. 직원들이 업무를 보지 못할 정도로 공갈 협박 전화가 끊임없이 걸려오고 있습니다.”

“허허 참. 그거 보면 이거 우발적이 아니라 조직적인 움직임이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조직적이라 하였소?”

잠자코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김효 대사가 나섰다.

“저희 영사관에도 협박 전화가 계속 걸려오고 있습니다. 특히 난조 샤쿠겐이라 이름을 밝힌 한 청년은 윤대중을 일본에 데려오지 않으면 다이너마이트로 영사관을 폭파하겠다고 수시로 전화하고 있습니다.”

“난조 샤쿠겐이라.”

“자신의 소속을 한청이라 밝히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재일 한국인 청년인 듯합니다.”

“경찰에 신고하시지 않았습니까?”

“신고한다면 지금 일본 경찰이 신경 쓰고 수사에 임하겠습니까?”

“하기야.”

조 참사관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니 절로 수그러들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대사님.”

“말씀하세요.”

“일본 정부와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지금 주한 일본대사관을 통해 우리 정부와 협상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아무래도 일본 측에서 모양새를 위해 한국 측에서 이번 사건에 대해 적극적인 성의를 보여 줄 것을 요청하는 모양입디다.”

“당연히 그러하겠지요. 그리고 그 이성원 서기관 건은 어찌 진행되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이 서기관에 대해 조처 취하려 합니다.”

“조처라니요. 그러면 이 서기관이 진짜 사건에 개입되었다는 이야기입니까?”

“그렇지는 않지요. 그러기에 조처 취하려 합니다.”

유 영사가 이해되지 않는지 조 참사관의 얼굴을 주시했다.

언론 집중조명 "덮을 수 없는 사건"
외신의 활약…궁지 몰린 정부 선택은?


“일종의 압박이지요.”

“압박?”

“사건과 전혀 연관도 없는 이 서기관을 범인 중 한 사람으로 지목한 일본 경시청의 처사에 대한 항의입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유 영사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면 서울로 보내시렵니까?”

“당연하지요. 아울러 그 일이 이 사건에 대해 우회적으로 일본에 항의하는 방법이 될 테지요.”

“일본 측에서 요구하는 윤대중 씨의 방일에 대해서는 어떻게 한답니까?”

“그는 안 될 일입니다.”

“무슨 사유라도 있습니까?”

“당연한 거 아닙니까? 일본으로 돌아오면 또 망명정부니 헛소리하면서 돌아다닐 터인데 그를 방관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단지 그 사유 때문인가요?”

“하면?”

“혹여 납치사건에 대해 우리 측에 불리한 진술을 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는 없습니까?”

“그 부분은 조금도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워낙 완벽하게 일처리 해서. 그리고 이 서기관과 관련하여 윤대중 씨와 양일영, 김수인 의원 등에게 확인한 결과 그들 모두 일면식도 없었다 진술했답니다. 그러니 참고하세요.”

“허허, 그런데 경시청은 어떻게 그런 무모한 짓을 벌였답니까. 소문에 의하면 극비로 정보를 입수한 걸로 알고 있는데.”

“그러게 말입니다.”

은근하게 답한 김 대사가 조 참사관에게 고개 돌렸다.

“조 참사관은 그 출처를 알고 있소?”

“전혀 아는 바 없습니다.” 

조 참사관 역시 시치미 떼고 말을 맺었다.

“그런데 이 사람 올 때 되지 않았소?”

김 대사의 이야기에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시계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노크 소리가 들리고 문이 열리며 일본 외무성의 고이즈미가 들어서고 있었다.

“영사께서도 오셨습니다.”

들어서자마자 유 영사의 존재를 확인한 고이즈미가 가볍게 고개 숙이며 자리 잡았다.

“차관께서 오신다고 하여 여러 일이 궁금해 발걸음 하였습니다. 이 자리에 참석해도 결례는 아니 되겠지요.”

“결례라니요, 함께 해결해야지요.”

해결이라는 말에 세 사람이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어려운 말씀 드리고자 이렇게 만나자고 하였습니다.”

고이즈미가 세 사람의 의중을 간파한 듯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말씀 주시지요.”

조 참사관이 세 사람을 대표하여 말을 받았다.

“우리 일본 정부는 작금에 발생한 윤대중 씨 납치사건과는 별개로 일본과 대한민국의 관계는 정상화시켜야 한다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윤대중 납치사건은 어떻게 처리하기로 하였습니까?”

이번에는 김효 대사가 말을 이었다.

“그 사건은 그대로 지속하여 수사하기로 하였습니다.”

납득되지 않는다는 듯 세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고이즈미에게 쏠렸다.

“비록 이 서기관의 알리바이가 입증되었고 윤대중 씨 등이 이 서기관을 본 적이 없다고 진술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에 한국 측이 개입되었다는 정황이 뚜렷한 만큼 사건을 주도한 세력에 대해서는 반드시 그 실체를 밝혀내야 한다는 게 일치된 주장입니다.”

결국 의회와 언론 등 여론을 의미했다. 특히 요미우리는 한국 관리의 말을 인용하여 윤대중 납치사건과 관련 한국정보기관이 저질렀다 보도하였고, 급기야 한국 문공부는 요미우리 서울 지국까지 폐쇄조치했던 터였다.

급기야 폐쇄조치

“아울러 일본 정부는 윤대중 씨 사건이 대한민국 정부가 개입된 증거는 찾을 수 없었고 또한 이에 대해 한국 정부가 성의 있는 답변을 보내준 데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 사건은 여하한 경우라도 대한민국이 관여되어 있다 판단합니다. 하여 이 부분과 관련하여 두 가지를 요구하고자 합니다. 물론 이는 주한 일본대사관에서도 귀국 외무부에 요청하기로 하였음을 밝힙니다.”


<다음호에 계속>


[저자는?]

▲ 서울시립대 영문학과 졸업
▲ 정당사무처 공채(13년 근무)
▲ 서울과학기술대 문예창작과 중퇴
▲ 소설가

▲ 주요작품
단편소설 <해빙> <파괴의 역설>
장편소설 <삼국비사> <여제 정희왕후> <수락잔조> 등 다수
희    곡  <정희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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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