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스러진 달 ⑨역공의 서막

중앙정보부 공격에 맞서다

소설가 황천우는 지금까지 역사소설 집필에 주력해왔다. 역사의 중요성, 과거를 알아야 현재를 알고 또 미래를 올바르게 설계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아울러 그 과정에서 ‘팩션’이란 장르를 만들어냈다. 팩트와 픽션, 즉 사실과 소설을 혼합하여 교육과 흥미의 일거양득을 노리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오래 전부터 의심의 끈을 놓지 않은 사건을 들추어냈다. 필자는 그 사건을 현대사 최고의 미스터리라 칭함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바로 1974년 광복절 행사 중 발생했던 영부인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이다.

“대사님, 이제 슬슬 역공을 준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역공이라니.”

“이 서기관을 지목한 일에 대해 우리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그들의 행태를 비난해야지요.”

“이 사람아, 그게 어디 가당한 일인가?”

“네!”

“어차피 그 사건은 대한민국 중앙정보부 작품 아니던가.”

피할 수 없는 역풍

“그래도.”

“강한 역공은 역풍을 맞을 수 있네. 그러니 우리는 저들의 공세에 수세적인 입장에 처하면서 저들의 기세가 수그러들기를 기다려야 하네.”

조 참사관이 잠시 생각에 잠겨들 즈음 노크 소리가 들리며 비서가 일본 외무성 고이즈미  차관이 방문했음을 알려왔다. 김 대사와 조 참사관이 급히 정색하고 고이즈미를 들였다.

“차관께서 이른 시간에 연락도 없이 어쩐 일입니까?”

자리를 잡자마자 김 대사가 단도직입적으로 질문했다. 고이즈미가 즉답을 피하고 난처한 기색을 보였다.

“무슨 일인지 기탄없이 말해보세요. 우리 사이에 이거저거 따질 필요 없잖소.”

김 대사의 은근한 말에 고이즈미가 가볍게 헛기침하고 의자를 앞으로 당겼다.

“지금 일본 경시청에서 윤대중 납치사건과 관련하여 대사관에 근무하는 이성원 일등 서기관을 소환해야 한다는 강력한 요청이 있어서 왔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요?”

“경시청이 모처에서 극비 정보를 입수했는데 이성원 서기관이 사건에 깊숙이 개입되어 있고 또 그래서 반드시 수사를 해야 한다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게 가능한 일입니까.”

김 대사가 짤막하고 단호하게 말을 맺고는 굳은 표정으로 고이즈미를 주시했다.

“차관님, 어떻게 일국의 외교관을 심증만으로 소환 조사하겠다는 겁니까?”

“조 참사관, 단순히 심증만이 아닙니다. 경시청에서 구체적인 물증을 가지고 요구하고 있어요.”

“구체적 물증이라니요?”

“잠깐만이오!”

김효의 반문에 고이즈미가 막 입을 열려는 순간 조 참사관이 개입했다.

“왜 그러는 겐가?”

“대사님, 이 서기관을 경시청에 보내는 대신 이 자리에 불러 차관님과 대면하여 함께 사건을 풀어가는 것이 어떠할는지요.”

조 참사관의 긴급제안에 김효가 눈을 깜박이며 고이즈미를 주시했다.

“그렇게라도 해주신다면 저로서는 고맙지요.”

고이즈미의 답이 이어지자 조 참사관이 곧바로 전화기를 들어 이 서기관을 대사 집무실로 호출했다.

“이보세요, 차관님.”

“말씀하세요, 대사님.”

“만약에 말이오. 이 서기관이 그 사건에 연루되었다고 한다면 지금까지 대사관에 근무하도록 배려했을까요?”

“저도 그런 의문이 들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경시청이 워낙 확고하게 주장해서.”

“그런데 그 극비로 입수했다는 정보의 출처는 알고 있습니까?”

“우리에게까지 함구하고 있습니다.”

김효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근심스런 표정을 지었다.

“이보게, 조 참사관.”

“네, 대사님.”

윤대중 소재파악 되다
목격자와 은밀한 접촉

“윤대중 선생 납치사건이 일어났던 그 시각에 이 서기관이 어디 출타한 적 있는가?”

“한창 근무 시간인데 그럴 리 없습니다. 저도 아침 일찍 이 서기관이 연루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이 서기관과 동료 직원들을 접촉한 바 있습니다. 그 결과 동 사건이 발생했던 시간 대사관에 있었던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확신에 찬 조 참사관의 변이 이어지자 고이즈미의 표정이 어둡게 변해갔다. 순간 문이 열리며 이 서기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서기관, 오해 말고 이야기 잘 들어보게.”

이 서기관이 자리하자 조 참사관이 설명을 곁들였다.

“저도 대충 이야기는 들었습니다만 어찌 제가.”

이 서기관이 목소리를 높이며 고이즈미를 주시했다.

“저는 그 시간 사무실에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만.”

이 서기관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그것 참. 여하튼 경시청이 강력하게 의문을 제기하는 사항에 대해 질문할 터이니 답변해 줄 수 있겠습니까.”

“말씀해보시지요.”

“먼저 이 서기관이 흥신소에 윤대중 씨의 소재 파악을 의뢰했다는 정보가 있소만.”

“전혀 납득되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도대체 제가 무슨 사유로 윤대중 씨를 찾았다는 말씀인지. 그리고 흥신소라니요. 정말 이해불가입니다.”

“이 부분은 정확하게 이 서기관을 지목한 건 아니오. 다만 이 서기관과 비슷하게 생긴 사람이 윤대중 씨의 소재 파악을 의뢰했다는 이야기요. 그건 그렇고 당일 호텔 내 엘리베이터에서 이 서기관을 보았다는 목격자가 나왔답니다.”

“당일 그 시간에 말인가요?”

“그렇소만.”

“저는 그날 오후 사무실에서 한 발자국도 밖으로 나간 사실이 없는데요.”

“혹시 다른 날 본 건 아니오?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 서기관이 손님을 만날 때 주로 그 호텔을 이용한다 하던데.”

김효 대사가 슬그머니 끼어들었다.

“그날은 아니고 그 전날 저녁에는 방문했었습니다만.”

“전날 저녁에요?”

“일본 주재 기자들과 저녁을 함께 했었습니다.”

“그래서 곳곳에 이 서기관의 지문이 남아 있다는 이야긴가.”

고이즈미가 마치 자학하듯 한마디 했다.

“그건 무슨 말씀입니까!”

순간 조 참사관이 목소리를 높였다.

“아닙니다. 호텔 곳곳에 이 서기관의 지문이‥‥‥.”

“그런 엉터리 주장이 어디 있습니까. 어떻게 그 지문들이 이 서기관의 지문이라 주장할 수 있습니까. 그러면 일본 경시청에서 우리 직원들의 지문까지 확보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만. 그렇다면 이는 윤대중 사건이 아닌 더 큰 문제를 불러일으키리라 봅니다.”

“아니요. 확실한 것은 아니고 다만.”

고이즈미가 말을 해놓고는 저도 이상한지 고개를 흔들었다. 

“차관님, 분명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지문이 일치하다니요. 물론 이 서기관이 자주 그곳을 방문하니 지문이 곳곳에 남아 있을 수 있지요. 하지만 그게 이 서기관의 지문이라 단정함은 우리 직원들의 신상에 대해 철저하게 조사를 마쳤다는 이야기가 됩니다만. 이는 치외법권을 지니고 있는 한국 대사관으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일입니다. 이에 대한 엄중한 조사를 하여야 한다 봅니다.”

강하게 주문한 조 참사관이 고이즈미를 주시했다.

“아니오, 내 이야기 잘못 꺼냈소. 그러니 그 이야기는 접읍시다.”

조 참사관의 강공에 고이즈미가 기어코 안경을 만지작거렸다.

“난조 상.”

오사카 이즈미오쓰에서 집회를 마치고 이코노구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집회에 참석했던 기미코가 은근하게 문석원에게 다가섰다.


입수한 극비 정보

“고타로는 무슨 일로 참석하지 않았는데?”

“오늘 회사에 중요한 일이 있어 도저히 짬을 내지 못하겠다 하더라고.”

“그래, 잘 되었네.”

“왜?”

“그걸 몰라서 물어?”

문석원의 힐책 아닌 힐책에 기미코가 슬그머니 눈을 흘기며 팔짱을 꼈다.


<다음호에 계속>


[저자는?]

▲ 서울시립대 영문학과 졸업
▲ 정당사무처 공채(13년 근무)
▲ 서울과학기술대 문예창작과 중퇴
▲ 소설가

▲ 주요작품
단편소설 <해빙> <파괴의 역설>
장편소설 <삼국비사> <여제 정희왕후> <수락잔조> 등 다수
희    곡 <정희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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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광로 내각’ 눈에 띄는 이재명 사람들

‘용광로 내각’ 눈에 띄는 이재명 사람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11개 부처 장관 후보자와 국무조정실장 인선을 발표했다. 취임 후 첫 개각인 만큼 이 대통령의 국정 철학과 정부의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다. 초대 장관인 데다가 이력도, 배경도 독특한 이들이 합류하면서 주목도는 배로 높아졌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에는 배경훈 LG AI연구원장이, 외교부에는 조현 전 1차관이 후보자로 지명됐다. 이 밖에도 ▲통일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동영 의원 ▲국방부 민주당 안규백 의원 ▲국가보훈부 한나라당 권오을 전 의원 ▲환경부 민주당 김성환 의원 ▲고용노동부(이하 노동부) 김영훈 전 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 위원장 ▲해양수산부 민주당 전재수 의원 ▲여성가족부 민주당 강선우 의원 ▲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 한성숙 네이버 대표이사 ▲국무조정실장 윤창렬 LG글로벌 전략개발원장 등이 후보자로 임명됐다. 가리지 않고 사람만 보고 큰 폭의 내각 변화가 일어난 가운데 유독 주목을 받는 인물이 있다. 이력이 독특하거나 발탁 배경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등 청문회 과정 역시 순탄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이슈는 국방부 장관으로 내정된 안규백 후보자다. 안 후보자는 5선 국회의원으로 약 20년 동안 국회 국방위원을 지내며 의정 활동 대부분을 국방 분야에서 보냈다. 내란 사태 당시 ‘윤석열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내란 특위)’ 위원장 등을 맡기도 했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안 후보자는 국회 국방위 간사·위원장 등 5선 국회의원 이력 대부분이 국방위 활동이기에 군에 대한 이해도가 풍부하다”며 “64년 만에 문민 국방 장관으로 계엄에 동원된 군의 변화를 책임지고 이끌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 후보자는 지난해 12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군은 문민통제가 돼야 한다. 비상계엄 당시 문민통제가 공고했다면 대통령이 내란을 지시하더라도 시작 단계부터 군이 반대해 따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안 후보자가 청문회를 통해 최종 임명된다면 64년 만에 민간인 출신 국방부 장관이 탄생한다. 첫 민주노총 출신 장관이 탄생할지에도 이목이 쏠린다. 김영훈 후보자는 현직 철도 기관사로, 1992년 철도청(현 코레일)에 입사해 올해로 34년째 근무 중이다. 장관 후보로 지명되기 전날까지 김 후보자는 경부선 부산-서울 구간에서 새마을호 열차를 운행했다. 국민의힘은 김 후보자가 민주노총 출신인 점을 거론하며 이번 인선이 일종의 ‘청구서’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원석 원내대표는 “내각이 아니라 민주당 선대위 같다”며 “능력이나 전문성보다 논공행상이 우선된 거 아닌가 하는 국민적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진행된 노동 개혁 성과는 후퇴하고,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과 중대재해처벌법 등 주요 현안에 대한 새 정부의 반 기업적 스탠스를 명확히 못 박아두는 인사 아닌지 우려된다. 민주노총의 정치적 청구서가 본격적으로 날아오는 신호탄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고 밝혔다. 김 후보자가 노동부 장관으로 임명된다면 지난 3년간 거부권에 가로 막혔던 노란봉투법을 비롯한, 주 4.5일 근무제 등이 거대 여당을 등에 업은 채 졸속으로 처리될 것이란 비판이 나온다. 민간 국방 장관, 기관사 노동 장관 파격 인사에 국민들 관심도 ‘쑥’ ↑ 이를 의식한 듯 김 후보자는 쟁점 법안에 대해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면서도 “명분만으로 밀어붙이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주 4.5일 근무제가 어려운 기업이 있다면 무엇이 어렵게 하는지 정부가 잘 살펴보고 공동의 길을 모색해보겠다”고 설명했다. 교수 출신 인사가 없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번 개각 명단을 보면 대부분 실무형 인사 위주로 곧바로 실전에 투입할 수 있는 실용성 있는 인재를 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기업인이 과기부·중기부 장관 후보자 등으로 내각에 포함된 것 역시 궤를 같이한다. 강 대변인은 “배경훈 과기부 장관 후보자는 AI 학자이자 기업가로서 초거대 AI 상용화로 은탑산업훈장을 받은 인물”이라며 “하정우 AI미래기획수석과 함께 AI 국가경쟁력을 높일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앞서 이 대통령은 네이버 클라우드 AI 랩 소장, AI 미래포럼 공동의장 등을 지낸 하정우 수석을 대통령실 AI 미래기획 수석으로 지목했다. 이재명정부는 “100조를 투자해 AI 강국을 만들겠다”고 선언한 만큼 하 수석과 배 후보자가 손발을 맞춰 글로벌 시장의 주도권을 잡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배 후보자는 서울 종로구 광화문우체국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단 사무실로 출근하며 취재진과 만나 “이 대통령의 1호 공약인 AI 3대 강국이 되기 위해 3강의 정의부터 해봤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로선) 우리가 3위를 한다고 해도 미·중과 너무 차이가 크다. 1·2위에 근접한 3위가 돼야 하며 사실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며 “AI 3강 목표를 반드시 2∼3년 이내에 달성해야겠다는 사명감이 있고, 소속됐던 기업에서 좋은 사례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중기부 장관 후보자로는 한성숙 네이버 고문이 내정됐다. 한 후보자는 지난 2017년 네이버 최초로 여성 최고경영자(CEO)에 선임됐으며 같은 해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제13대 회장을 맡은 인물이다. 역대 중기부 장관을 살펴보면 통상 관료나 정치인이 낙점된 만큼 민간 기업 출신 후보자라는 점에서 신선하다는 평이 나온다. 중소기업계는 한 후보자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일꾼도 실용주의 중소기업중앙회는 논평을 내고 “중소기업계는 이재명정부 초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으로 한성숙 후보자가 지명된 것을 환영한다”며 “한 후보자는 네이버 등 IT산업에 오랜 경험을 가진 기업인 출신으로 산업 대전환기에 중소기업·소상공인의 AI·디지털화를 촉진하는 등 디지털 생태계를 구축할 적임자”라고 평가했다. 이처럼 정부와 중소기업이 한 후보자에게 기대를 걸고 있지만 과거 국정감사 이력이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고용노동부 등 국정감사 ‘단골’로 불릴 만큼 여러 차례 소환됐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2021년 네이버 직장 내 괴롭힘으로 한 직원이 극단적 선택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의원들의 질책이 잇따랐다. 민주당 노웅래 의원이 당시 네이버 대표였던 한 후보자에게 “최인혁 (네이버파이낸셜) 대표를 징계했느냐”고 묻자 “네이버에서 본인이 사임을 했다”고 짧게 답했다. 노 의원이 “징계를 했느냐”고 재차 물었지만 한 후보자는 “징계가 있었다”면서도 정확히 어떤 처분이 내려졌는지 답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노동계 등에서는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라는 비판이 나왔다. 이 밖에도 뉴스 편집 조작과 댓글 여론 조작 방조 의혹 등으로 2017년부터 4년 연속 국감 증인으로 소환됐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박상웅 의원은 한 후보자 지명과 관련해 “거대 포털과의 전략적 야합이라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한성숙 후보자 지명은 과거 민주당의 규제를 통한 견제가 아니라 포털과의 인사 유착을 통해 정권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시도로 비쳐질 수 있다”며 “플랫폼 권력과 정치 권력의 야합이라는 심각한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는 것이 국민적 시각”이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2021년 국감을 언급하며 “직원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극단적 선택까지 했던 괴롭힘의 현장을 방치한 책임자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를 지원해야 할 부처의 수장으로 지명된 것은 납득할 수 없는 결정”이라며 “국민 신뢰를 저버린 매우 전략적이고 노골적인 이번 인사는 즉각 철회돼야 한다”고 거듭 지적했다. 성급했나? 잡힌 발목 실용과 통합을 위한 지명도 이뤄졌지만 여야 모두에게 질책을 받으면서 오히려 자충수라는 비판이 나온다. 윤석열정부 출신인 송미령 농식품부의 장관 유임과 한나라당 권오을 전 의원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송 장관이 유임된 배경에 대해선 “첫 국무회의에서 대부분 사의를 표한 후라 소극적이고 구체적이지 않은 답변이 많았던 반면, 송 장관은 상당히 구체적으로 대통령 질문에 답하고 국정 방향에 대해 미리 준비하고 적극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여러 안을 가지고 왔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일할 수 있는, 준비된 현직 국무위원이라고 판단한 것 아닌가 하는 짐작을 해본다”고 설명했다. 강 대변인은 “이 대통령은 지난 24일 유임을 발표한 뒤 첫 국무회의에서 송 장관에게 ‘사회적 충돌, 혹은 이해관계에 있어서 다른 의견이 있다면 유임된 장관으로서 적극적으로 들어보고 갈등을 조정하는 데 직접 역할을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고 부연했다. 아울러 “(송 장관이) 그에 대해서 수긍한 것으로 본다”며 “유임 결정까지는 대통령실에서 한 것이지만, 이후에 갈등 조정 기능도 내각에 임명 혹은 내정된 분들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송 장관의 유임을 두고 민주당, 특히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이하 농해수위) 소속 의원을 중심으로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는 분위기다. 지난 3년 동안 양곡관리법 등을 반대하고 이를 ‘농망법’이라고 부르는 사람을 기용하는 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다는 게 주된 이유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 진보당도 목소리를 높였다. 혁신당 박웅두 농어민위원장은 논평을 통해 “이재명정부의 ‘국민통합정부’ 의지를 높이 평가한다”면서도 “남태령 응원봉의 주역이자 이재명 대통령 당선에 뜻을 함께했던 농민들은 송 장관의 유임에 당혹감과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송 장관은 윤석열 농정에 대해 공식적으로 참회와 반성, 사과와 유감의 발언도 없었고 공개적인 평가의 과정과 책임의 경중을 논의한 바가 없는데 누가 송미령을 장관으로 추천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식량주권에 대한 손톱만큼의 애정이 있다면 유임 결정을 즉각 철회하라”고 밝혔다. 농해수위 소속인 진보당 전종덕 의원 역시 “농망 장관”이라며 지명 철회를 촉구하는 1인 시위에 나섰다. 통합용 지명? 여야 모두 아우성 ‘윤의 사람’ 그대로 품은 이유는? 일부 야권에서도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송 장관은 민주당이 추진한 양곡법과 속칭 농민3법을 농업의 미래를 망치는 농망법이라며 대통령 거부권 행사까지 건의했다”며 “그런데 이재명정부의 농림부 장관으로 지명되니 ‘새정부 철학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추진하겠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장관을 오래하려면 송미령 같이’라는 자조가 공직사회 전반에 퍼지지 않겠느냐”며 “금번 인사를 보니 이 대통령이 말하는 실용주의의 정체를 알겠다. 그건 실용의 이름으로 포장된 기회주의이자 국익으로 덧발라진 밥그릇 챙기기”라고 꼬집었다. 논란에 대해 한 민주당 관계자도 “나름 탕평 인사로 가장 탈이 안 날 것 같은 인물을 유임시킨 것 같은데 아마 이 대통령도 뒷말은 예상했을 것”이라며 “내란 종식을 내걸고 정권을 잡은 만큼 모순된 면이 있다. 그날 밤(12월3일) 용산에 모인 국무위원을 내란 동조자, 내란 방관자라고 하더니 ‘일을 잘하니 함께 가겠다’라는 건 국민에게 조금 더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권 전 의원이 보훈부 장관으로 지목된 것 역시 탕평 인사로 분류된다는 해석이다. 권 후보자는 지난 4월 6·3 조기 대선 당시 이재명 후보 캠프에 합류에 눈길을 끌었다. 친유승민계로 분류되는 권 후보자는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을 거쳐 바른정당에서 최고위원을 지냈다. 보수 인사였던 그는 이재명 캠프에 합류하면서 “대구와 경북의 정치적 발언권을 보장하기 위해 참여하게 됐다”며 “민주당의 중도 보수 지향에 대해 힘을 보탤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훈식 대변인은 권 후보자가 보훈부 장관으로 지명된 것에 대해 “경북 안동에서 3선 의원을 역임했다”면서 “지역과 이념을 넘어 특별한 희생에 특별한 보상이라는 보훈 의미를 살리고 국민통합을 이끌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권 후보자는 보수와의 소통에 힘을 쏟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국민통합을 강조하며 “소통의 장을 자주 마련하면 광화문 태극기 부대와 촛불 부대가 서로 소통이 되고 이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통령께서 국민통합이라면 소통의 장을 마련해 각자가 논리의 주장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해보고 들어봐서 반영하라고 하셨다”며 “그래도 자기 진영 논리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면, 이해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을 자주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유임된 송 장관을 제외한 10개 부처에 대한 개각이 이뤄지면서 국회 역시 각 상임위가 바쁘게 돌아갈 예정이다. 시기상 장관 후보자 청문회는 7월 말에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 청문회를 겪은 국민의힘은 남은 장관 후보자들에 대해서도 ‘송곳 검증’을 하겠다며 벼르고 있다. 격돌의 7월 관전 포인트 다만 한 야권 관계자는 “김민석 후보자의 청문회가 이틀 동안 진행됐지만 총리로서의 자격 검증은 뒷전이고 돈 문제만 물고 늘어졌다”며 “물론 총리 후보자의 부도덕한 면을 부각시킬 수 있겠지만 총리 후보자 청문회인 만큼 더 다양한 각도에서 질문을 해야 했다. 곧 있으면 다른 장관에 대한 청문회도 진행될 텐데 지금처럼 (청문회를) 진행해서는 국민의힘도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