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노동운동(좌파운동)은 자본가의 횡포에 맞선 노동자 계급의 대항과 투쟁이다. 그 동안 한국 노동운동 앞에는 ‘빨갱이’라는 낙인이 따라다녔다. 이런 탓에 노동운동은 지난 20년간 퇴보한다. 그 사이 노동자의 삶은 피폐해져만 갔다. ‘헬조선’ ‘수저계급론’ ‘지옥불반도’는 노동자를 향한 수식이기도 하다. 노동자를 대변할 정당과 정치인이 절실한 시점이다. 영국에 노동자를 대변하는 제레미 코빈 노동당 대표가 있다면, 한국에는 구교현 노동당 대표가 있다.
“여기 계신 경찰들도 공범입니다.”
지난 17일 구교현(38) 노동당 대표가 강신명 경찰청장 형사고발 기자회견에서 했던 말이다. 구 대표는 지난 14일 ‘노동개혁 5대 법안 반대’ ‘국정화 교과서 반대’ ‘친재벌 정책 반대’를 외치는 10만 민중 궐기 대회에서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아 뇌진탕으로 정신을 잃은 농민 백남기씨를 경찰이 살인미수를 했다며 경찰의 최고 책임자인 강 경찰청장을 고발했다.
젊은 정치인
이날 기자회견은 우여곡절이 많았다. 기자회견에 쓸 스피커가 트럭에 있는데, 경찰은 불법 주정 주차라며 견인차까지 불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 대표가 모두 발언을 하자 경찰 관계자도 마이크를 붙잡고 “불법 주정차 차량”이라고 맞받아치듯 말했다. 이 덕에 노동당 당원들의 모두 발언은 허공에 떠다니기만 했다. 이런 충돌로 기자회견은 1시간가량 뒤인 오후 12시에 끝났다.
불과 몇 분 전 기자회견 때 보여준 패기는 온데간데없이, 구 대표는 눈 풀린 사람 마냥 지쳐보였다. 구 대표는 “요즘 계속 일이 많다. 2주간 전국순회도 다녔고, 여러 집회도 많이 다니느라 피곤해서 그렇다. 박근혜정부가 너무 피곤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노동당은 소수 정당으로 비록 국회 원내에 들어가지 못했지만, 한국 사회에서 이어져 온 진보정당운동의 역사이기도 하다. 사회당,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등의 정당 정신을 이어오고 있다. 노동당은 노동자, 농민, 빈민, 중소영세상공인의 정당이며 여성, 청소년, 장애인, 이주노동자, 성소수자, 사회적 소수자의 권리를 실현하기 위해 앞장서고 있다.
구 대표는 지난 9월18일 노동당 대표에 당선됐다. 당시 구 대표는 55.4%인 1379표를 얻어 당선됐다. 구 대표가 이렇게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동안 그가 노동운동에 투신했을 뿐만 아니라, 알바노조를 설립하며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구 대표가 알바노조 위원장으로 있을 당시 아르바이트를 착취해온 맥도날드 점거 시위를 주도하며, 최저임금 인상을 외쳤다. 또 자본가들을 향한 풍자적인 퍼포먼스는 신선함을 더해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구 대표는 “진보운동이 변화가 필요하다. 특히 활동 방식에서 존재감을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당시 언론에서 알바노조를 주목했던 것도 이런 신선함 때문이 아닐까 한다.
구 대표는 이 때문에 ‘정치기획’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구 대표는 노동계나 진보진영이 이런 정치기획에 능하지 못하다고 밝혔다. 구 대표는 “어떤 이슈를 가지고 어떻게 토론하고, 행위를 할 것이며, 어떤 슬로건을 내세울지에 대한 기획이 필요하다”며 “하지만 진보진영에서는 이런 평가나 기획이 제대로 없다”고 말했다. 이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만한 메시지도 부족하다”고 덧붙였다.
힘없는 서민들·소수자 권리실현 앞장
청년당원 많아…평균 20∼30대로 구성
최근 정의당으로 여러 진보단체가 새로운 통합 진보정당을 창당한다고 발표했다. 당초 노동당도 통합정당에 합류할 예정이었지만, 당원총투표안이 부결되면서 빠지게 됐다. 대신 노동당 대표직을 맡았던 나경채 대표 등이 탈당 후 새로운 진보단체인 진보결집을 이뤄 합류했다. 이런 당원 탈당으로 노동당 내부는 한때 뒤숭숭했다.
구 대표는 이런 정당이 합당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밝혔다. 구 대표는 정당들이 합당하는 메커니즘에는 "인물 중심 정치"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구 대표는 “진보정치는 말 잘하고, 학벌 좋고, 똑똑한 사람들이 좌지우지 하고 있다. 특히 정의당이나 노동당 소수정당은 현행 선거제도로에서 불리하다”며 “그런 조건에서 당원이 아닌 특출한 인물이 정당을 좌지우지하다 보니 조직이 깨지고 힘이 빠진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정의당이 내년 총선을 염두하고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덩치를 부풀리기의 일환으로 보고 있다. 구 대표는 이런 합당이 “근시안적인 목표”라고 지적했다. 구 대표는 “인물 중심 정치로는 지지기반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없다. 결국 인물만 남고 조직은 없다. 이게 보수정치를 선택하는 과정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인물 중심 정치는 별로 민주적이지도 않다”고 덧붙였다.
구 대표는 대한민국의 정치조직이 중도적이기 때문에 조직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구 대표는 “이런 조건에서 진보정치가 살아남을 가능성은 없다. 정치라는 것은 기대할만 하고, 변화의 가능성을 보여줘야 한다”며 “인물 중심 정치는 결국 한계가 있다. 조직하고 설득하는 과정이 꾸준히 일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장기적인 목표를 바라보며, 정당의 텃밭을 갖춰야 한다는 의미다.
노동당은 이번 당원들의 이탈로 기세가 한풀 꺾였다. 이런 기세를 살리고자 노동당은 지난 3일부터 2주에 걸쳐 노동당 전국 순회를 했다. 순회를 돌며 ‘노동개악 반대’ ‘역사 쿠데타’라는 주제로 정당연설을 했다. 구 대표는 이번 전국 순회를 하며, 새로운 희망을 봤다고 밝혔다.
구 대표는 “언론에 이슈가 되고 그러지는 않았지만, 지역에 있는 젊은 청년 당원의 적극적인 모습과 당 차원의 노력을 봤다”고 말했다. 이 모습을 보며 구 대표는 “‘이런 게 우리가 해볼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번 2주간 전국 순회는 노동당이 기운을 모으는 계기였다.
노동당은 다른 정당에 비해 청년당원이 상당히 많다. 이번 전국 순회 때만해도 40명의 청년당원이 함께했다. 구 대표는 “노동당은 다른 정당과 다르게 청년당원이 많고 조직이 잘 돼 있다”고 말했다. 노동당 당원은 1만2000명으로 평균 연령대는 20∼30대 중반 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야당의 당원 평균 연령대가 58세라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젊은 정당이다.
진보운동 새바람
청년들이 노동당에 입당한 이유는 무엇일까. 구 대표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청년이 선택해야 하는 삶은 둘 중 하나다”며 “경쟁에서 살아남거나, 경쟁 구조를 강요하는 사회를 바꿔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 청년은 경쟁에서 살아남기를 선택한다”고 말했다. 이어 “노동당에 입당한 청년들은 이 구조가 문제라고 생각하고 이를 바꾸고 싶어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