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묶여있는’ 조석래·이재현 역할론 막전막후

회장님에 기회를…무르익는 석방 분위기

[일요시사 경제팀] 양동주 기자 = 경제인 사면은 언제나 민감한 사안이다. 그들이 취한 엄청난 폭리 규모는 서민들이 평생을 일해도 모으기 힘든 천문학적인 액수가 다반사다. 그만큼 반대 여론이 거세다. 다만 이들에게 무작정 법의 잣대를 내세우기란 그리 쉽지 않다. 경우에 따라 이들의 허물을 덮어줘야 할 필요성마저 부각되기 때문이다. 물론 잡음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특별사면은 특정 범죄인에 대한 형벌 집행을 면제하거나 유죄선고의 효력을 상실시키는 대통령의 조치를 뜻한다. 역대 대통령들은 ‘국민 화합’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사면을 단행했다. 주로 연말·연초나 국경일, 석가탄신일, 성탄절 등 특정 계기가 있을 때마다 특별사면을 해왔던 게 관례. 다만 특별사면에 대한 반감도 만만치 않아 최근에는 횟수가 이전보다 현격히 줄어든 모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면은 일종의 필요악으로 비춰지곤 한다. 일단 경제 전반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법의 심판대에 오른 기업 총수들의 향후 거취에 대한 추측이 벌써부터 흘러나오고 있다. 최근 화제의 중심에 서있는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과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그 주인공이다.

건강 안좋고
나이도 많아

지난 9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 및 피고인들의 조세포탈 혐의 등에 대한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조 회장에게 징역 10년에 벌금 3000억원을 구형했다. 또한 조현준 사장에게는 징역 5년에 벌금 150억원, 이상운 부회장에게는 징역 6년과 벌금 2500억원을 구형했다. 앞서 조 회장은 분식회계 5010억원, 탈세 1506억원, 횡령 690억원, 배임 233억원, 위법 배당 500억원 등 총 7939억원의 기업 비리를 저지른 혐의로 지난해 1월 기소됐다.

검찰은 조 회장이 가짜 기계장치, 해외 페이퍼컴퍼니 등을 통해 납세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대한민국 조세권을 무력화했다고 보고 있다. 효성의 대주주라는 점을 이용해 회사 자금을 개인적 용도로 유용하고 회사를 재산 축적의 수단으로 이용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재계에서는 조 회장의 행동을 단순히 법적 잣대로 처리하기에 애매하다고 말하고 있다. IMF 당시 효성은 누적된 부실자산으로 생존의 기로에 섰지만 일부 계열사를 정리하는 데 실패했다. 정부와 금융권에서 정리를 반대한 까닭이다. 대신 그룹 내 우량계열사와 합병해 부실을 떠안아야 했다.

재계 관계자는 “IMF 당시 부실 계열사 정리를 하지 못한 효성의 속사정에는 외부의 압박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자체적으로 위기를 타개하다보니 어려움이 가중된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소재 부문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한 효성그룹의 위상을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제기된다.

조석래 회장의 선고는 내년 1월에 있을 예정이지만 형량이 확정되더라도 수감생활을 하기는 힘들 전망이다. 조석래 회장은 2010년 담낭암이 발생해 수술을 한 적이 있다. 이후 복귀까지는 약 3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됐다. 여기에 더해 최근 부정맥과 전립선암까지 발견돼 형 집행정지를 신청할 가능성이 높다.

조만간 판결 예고…집유 가능성 높아
‘필요하다면’ 바로 사면 필요성도 제기

효성의 변호인단은 “조 회장이 담낭암에 전립선암까지 추가로 발병하면서 건강이 좋지 않고 그동안 한국 경제 발전에도 기여했다”며 선처를 호소했다.

이재현 CJ그룹 회장 역시 비슷한 처지다. 지난 10일 서울고법에서는 1600억원대 조세포탈·횡령·배임 혐의로 항소심에서도 실형을 선고 받은 이재현 회장의 파기환송심 첫 공판이 열렸다. 이날 검찰은 2심과 같은 징역 5년에 벌금 1100억원을 구형했다. 서울고법 형사12부 심리로 열린 이날 공판에 이 회장은 휠체어를 타고 법정으로 향했다.
 

건강문제로 구속집행정지 중인 이 회장은 지난해 9월 법정에 선 뒤 14개월만에 법정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1990년대 중·후반 비자금 1600여억원을 조성한 사실이 드러나 2013년 7월 구속기소된 이 회장은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 받았다. 2심 재판부는 원심에서 횡령으로 인정한 600억원을 무죄로 판단해 징역 3년으로 감형했다.


대법원은 이 회장에게 2심까지 배임 혐의에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경법)’을 적용해왔지만 “배임에 따른 이득액을 구체적으로 산정할 수 없다”고 판단해 형법을 적용하라는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형법상 배임죄는 금액에 관계없이 10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특경법에 따른 배임죄는 5억∼50억원 미만일 경우 3년 이상의 유기징역, 50억원 이상이면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 등에 처해진다. 이 회장의 배임 혐의 액수는 323억원이다. 이 회장에 대한 집행유예 선고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범죄 정황이 드러난 이상 조 회장과 이 회장에게 무죄가 선고될 확률은 거의 없다. 다만 집행유예로 풀려날 가능성은 충분해 보인다. 문제는 집행유예로 끝나더라도 효성그룹과 CJ그룹이 입는 타격이 상당히 클 것이라는 점이다. 이렇게 되자 특별사면이 이뤄질 경우 두 사람이 명단에 포함될 수 있다는 주장이 벌써부터 제기되고 있다.

통상 특별사면을 앞둔 시점이 되면 어떤 인물이 사면 명단에 이름을 올릴지 관심이 집중된다. 특히 대기업 총수를 비롯한 경제인들은 특별사면이 이뤄질 때마다 요주의 대상이었다. 올해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난 8월 행해진 광복절 특별사면에서도 대기업 총수 일부의 이름을 찾아 볼 수 있었다.

엄벌이냐 선처냐
난처한 회장님들

지난 7월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광복 70주년의 의미를 살리고 국가 발전과 국민 대통합을 이루기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광복절 특별사면 대상 및 범위에 대한 검토를 지시한 바 있다.
이후 법무부는 의견수렴을 거쳐 지난 8월 사면심사위원회 회의를 열고 사면 기준 및 대상자 명단을 정리했다. 다만 관심을 모았던 재벌 총수 사면 폭은 그리 크지 않았다.

당시 특사 명단 포함 여부를 두고 이름이 오르내린 재계 인사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필두로 구본상 전 LIG넥스원 부회장, 구본엽 전 LIG건설 부사장, 집행유예 중인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등이었다. 그러나 최태원 회장을 제외한 대다수는 특사에 포함되지 못했다.
 

재계에서 특별사면에 민감한 건 그만큼 재벌 총수 사면 효과가 즉각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SK그룹이 대표적이다.

최태원 회장 특별사면 소식이 전해진 8월13일 SK그룹 관련주들은 일제히 뛰어올랐다. SK이노베이션(6%), SK하이닉스(3%), SK(2%) 등 당일 SK관련주 가운데 SK텔레콤(-1.38%)을 제외한 모든 계열사 주가가 올랐다. 무엇보다 최 회장이 자리를 비운 사이 미뤄둔 대규모 투자와 경영공백 우려감 등이 일거에 날아간 까닭이다.

SK그룹 관련주들에 대한 긍정적인 전망이 이어진 것은 당연했다. 큰 결단이 필요한 대규모 인수합병과 글로벌 진출 등 굵직한 경영 의사 판단에 속도가 붙을 것이란 관측도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최 회장이 복역 중이던 2년7개월간 M&A 시장에서 번번이 쓴맛을 봐야 했던 것과 비교하면 천지차이다.

두 그룹이 흔들리면 경제가 휘청
죄는 미워도…대내외 역할론 부상

반면 김승연 회장의 사면을 내심 기대했던 한화그룹은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었다. 앞서 집행유예로 풀려난 김 회장이 사실상 그룹을 진두지휘하고 있지만 완전한 경영복귀로 해석하기엔 한계가 따른다. 현재 김 회장은 공식적인 대표권이 없으며 해외출장도 자유롭지 못하다.


그룹 차원에서 의욕적으로 추진 중인 해외 사업에 걸림돌이 될 가능성도 크다. 이라크 신도시 개발 프로젝트를 비롯해 북미 태양광 시장 진출, 국내외 태양광 셀 생산 구축 등 해외에서 굵직한 사업을 벌이는 만큼 아쉬움은 배가 된다. 한발 더 나아가 특별사면의 영향력은 업계 전반의 분위기마저 바꿔놓고 있다.

광복 70주년 특사는 4대강, 호남고속철사업 등 입찰담합 대형 건설사에 부과된 관급공사 입찰참가제한 등 행정처분마저 해제했다. 행정처분 사면 조치에 해당되는 건설사는 78곳에 이르렀다. 현대건설, 삼성물산 등 시공능력평가 30위 내 업체가 26곳, 100위 내 업체가 53곳이다.

이 조치로 공정위에서 이미 입찰담합으로 적발돼 관급공사 입찰참가제한을 받은 건설사들에 내려진 영업정지, 업무정지, 자격정지, 경고 처분이 일순간 해제됐다. 또 현재 공정위의 담합 조사가 진행 중이거나 조사가 진행될 예정인 사업에 대해서도 특별조치 이후 일정기간 내에 담합사실을 자진신고할 경우 입찰참가제한을 하지 않기로 했다.

건설업계에서는 사면으로 그동안 국내외 사회간접자본(SOC)시장에서 위축됐던 국내 건설사들의 위상이 다시 올라갈 수 있게 됐다고 안도하고 있다. 무엇보다 해외경쟁사들의 마타도어로 수주에 어려움을 겪는 해외시장에서 우리 업체들이 받는 불이익은 크게 줄 것으로 보인다.

특사 한다면…
즉각적인 효과

건설업계 관계자는 “해외 프로젝트 수주경쟁에서 중국 등 다른 건설사들이 한국기업의 입찰제한 처분 사실을 발주처에 제보해 불이익을 받는 사례가 속출했다”며 “사면 덕택에 수주에 숨통이 트이게 됐다”고 설명했다. 물론 내년 초 특별사면이 이뤄질 가능성을 벌써부터 언급하기란 시기상조일지도 모른다. 앞서 광복절에 특별사면이 있었던 만큼 내년 초 특별사면이 또 다시 행해지기란 힘들다는 게 주된 요지이다.
 


실제로 대다수 사람들은 오는 2017년 대선 직후 성탄절 또는 2018년 신년, 2018년 차기 새통령 취임 등을 계기로 특사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설사 특사가 이뤄진다 해도 법정 형기를 마치지 않은 기업인까지 포함 시킬지는 미지수이다. 재벌 스스로 윤리경영을 강화하고 기업이미지를 쇄신하려는 노력이 제대로 실행되느냐 역시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게다가 박 대통령은 취임 후 특별사면을 상당히 자제해왔다. 김영삼(9차례), 김대중(8차례), 노무현(8차례), 이명박(7차례) 등 전임 대통령들이 10차례 가까이 특별사면을 시행한 것과 달리 박 대통령은 지난 광복절 특별사면을 포함하더라도 단 2번에 그쳤다. 무분별한 특별사면을 시행하지 않겠다고 대선 당시 언급한 내용을 지금까지는 충실히 지키고 있는 셈이다. 사면이 이뤄지더라도 조 회장과 이 회장이 명단에 포함되리란 법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잡음에 휩싸인 이들에 대한 사면의 가능성이 언급되는 것은 그만큼 기대할 수 있는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광복절 특별사면이 결정될 즈음 여당은 국민대통합 차원에서 경제인 사면이 필요하다고 역설한 바 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역시 “국민의 삶이 힘든 시점에서 국민대통합과 경제회복을 위해 매우 시의 적절한 결정”이라면서 “국가 에너지를 하나로 모으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며 특사의 긍정적인 영향을 언급한 바 있다.

특별사면이 결정되더라도 경제인 포함 여부는 아직까지 불분명하다. 다만 이전부터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대폭적인 사면이 됐으면 좋겠다는 뜻을 여당 측이 누누이 밝혀왔던 점은 조 회장과 이 회장에게 한 가닥 희망의 끈이나 다름없다.

결과는 언제쯤?
빠르면 내년 초

올해 3%대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사실상 물 건너간 가운데 내년 전망 역시 밝지 않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내년 경제성장률을 3%대로 예측했지만 대다수 국내외 경제기관들은 전망치를 내리거나 2%대 성장률을 예상하고 있다.

결국 현재 처한 위기를 슬기롭게 대처하기 위해서라도 기업의 역량이 극대화되어야 함은 자명한 사실이다. 더욱이 서민경제 살리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정부의 의중이 명확히 부각되기 위해서라도 기업의 현실을 일정 부분 이해하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밉던 곱던 간에 이들이 차지하는 비중을 무작정 간과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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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뒤통수로 다시 꼬인 한·미·일

트럼프 뒤통수로 다시 꼬인 한·미·일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불확실성의 시대에 가장 확실하다고 굳게 믿었던 관계에서 파열음이 나오고 있다. 새 정부 초기부터 보이기 시작한 적신호가 이제 눈 돌릴 수 없을 정도로 커진 모습이다. 어디서부터 균열이 시작된 걸까? 우리나라 외교는 한미동맹을 배경으로 진행됐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중립 외교를 꾀한 때도 있지만 대체로 한·미 혹은 한·미·일 관계가 우선시됐다. 하지만 최근 들어 우리나라와 미국이 삐걱거리는 모습이 자주 포착되고 있다. 상수였는데 변수됐나 지난 12일 미국 이민 당국에 체포·구금됐던 한국인 근로자 316명이 귀국했다. 이번에 구금된 한국인은 총 317명으로 남성 307명, 여성 10명이다. 이 가운데 1명은 잔류를 택했다. 지난 4일, 미국 이민 당국의 불법체류 및 고용 전격 단속에서 체포돼 포크스턴 구금시설 등에 억류된 지 8일 만이다. 이들은 미국 조지아주 엘러벨의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중에 체포·구금됐다. 문제 해결을 위해 조현 외교부 장관이 미국을 급히 방문했다. 당초 이들은 지난 10일(현지시각)에 전세기를 타고 출국할 예정이었지만 ‘미국 측 사정’으로 지연됐다. 외교부는 이번에 체포·구금된 한국인이 향후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미국에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에 따르면, 조현 외교부 장관은 마코 루비오 미 국무부 장관에게 이들이 신체적 속박 없이 신속히 귀국하고 향후 미국에 재입국하는 데 불이익이 없게 해달라고 요청했고 미국 측으로부터 긍정적인 답을 받았다고 한다. 체포·구금된 한국인이 미국을 떠나는 방식을 두고 우리나라와 미국 간의 이견이 있었다. 우리나라는 ‘자진 출국’을, 미국은 ‘추방’을 언급한 것이다. 자진 출국 방식으로 귀국하면 향후 ‘5년 입국 제한’ 등의 불이익이 없다. 반면 추방 명령으로 미국을 떠나면 영구적으로 기록이 남아 최대 10년간 미국에 들어갈 수 없다. 지난 8일 크리스티 놈 미국 국토안보부 장관이 이번 사안과 관련해 “법대로 하고 있다. 그들은 추방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출국 형태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다. 다행히 미국 측과 조율이 이뤄지면서 자진 출국 형태로 귀국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에 따르면 루비오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도 이재명 대통령과 도출한 한미 정상회담의 성과를 높이 평가하고 있고, 이 사안에 대한 한국인의 민감성을 이해하고 있다. 특히 미국 경제·제조업 부흥을 위한 한국의 투자와 역할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인 체포·구금 사태 야 “700조원 줬는데도?”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측이 원하는 바대로 가능한 한 이뤄질 수 있도록 신속히 협의하고 조치할 것을 지시했다”고 설명했다. 우리 정부의 노력으로 상황이 봉합되는 모양새지만 한국인 체포·구금 사태의 후폭풍이 상당할 것이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한국인 체포·구금 과정에서 드러난 미국 이민 당국의 모습을 두고 동맹을 고려하지 않은 처사라는 말이 나왔다. 실제로 미국 측은 한국인 체포 과정에서 수갑을 채웠고, 이들을 환경이 열악한 수용소에 구금했다. 야권에서 ‘외교 참사’가 일어났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6일, 한국인 체포·구금 사태 이후 내놓은 논평에서 “이재명정부는 700조원 선물 보따리를 미국에 안겼지만 회담은 공동성명조차 발표하지 못한 채 끝났다”며 “그 결과가 고스란히 현대차-LG 합작 공장 단속 사태로 돌아왔다”고 맹공을 퍼부었다. 그러면서 “국민 사이에서는 실컷 투자해 주고 뒤통수 맞은 것 아니냐는 분노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며 “700조원에 달하는 투자를 약속해 놓고도 국민의 안전도, 기업 경쟁력 확보도 실패한 것이 이재명정부의 실용 외교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우리나라는 관세 협상, 한미 정상회담 등을 통해 미국에 5000억달러(약 700조원)를 투자하겠다고 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도 지난 6일 페이스북에 글을 썼다. 수갑 채우고 수용소 넣고 장 대표는 “이번 사태는 단순한 불법체류자 단속을 넘어 앞으로 미국 내 한국 기업 현장과 교민 사회 전반으로 피해가 확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사안”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수많은 한국 기업이 미국 전역에서 공장을 건설하고 투자를 확대하는 상황에서 근로자들이 무더기로 체포되는 일이 되풀이된다면 국가적 차원의 리스크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우리 정부는 이 같은 사태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미국 측과 방지책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조 장관은 루비오 장관 등과 만난 자리에서 이번 사태의 재발 방지책과 대미 투자 한국 기업 관계자들의 비자 문제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에 따르면 조 장관은 유사 사례 재발 방지를 위해 새로운 비자 카테고리를 만드는 등 다양한 방안 논의를 위한 ‘한미 외교부-국무부 워킹그룹’ 신설을 제의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를 한미 관계 차원에서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미 관계가 순탄하게 흘러가고 있지 않다는 신호로 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당선 직후부터 관세 등을 무기로 전 세계를 흔들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가 동맹 취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은 끊임없이 제기된 바 있다. ‘삐걱거림’은 이정부 출범 초기부터 감지됐다. 미국 백악관은 이재명 대통령 당선과 관련해 처음 내놓은 메시지에서 중국을 언급해 ‘이례적’이라는 말을 들었다. 백악관은 지난 6월3일 한국 대선 결과에 대한 언론의 질문에 “한미동맹은 철통같이 유지된다”면서도 “한국은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진행했지만 미국은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들에 대한 중국의 개입과 영향력 행사에 대해서는 여전히 우려하며 반대한다”고 말했다. 백악관의 메시지를 두고 이정부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행사 견제, 실용 외교를 표방하는 이 대통령이 중국과 거리두기를 해야 한다는 압박 등 다양한 해석이 이어졌다. 당시 미국은 중국과 관세를 두고 이른바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었다. 시간이 가면서 다소 소강상태가 되긴 했지만 갈등의 골은 여전히 남아 있다. 분위기만 화기애애? 관세 협상이나 한미 정상회담을 두고도 여전히 후폭풍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협상 시한으로 정한 날짜를 하루 앞두고 미국과 타결을 이뤄냈다. 당초 한미FTA로 우리나라와 미국 사이의 관세는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 ‘0’이었기에 타격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서한을 통해 언급한 상호 관세 25%를 15%로 낮추는 데는 합의했지만 과정은 난항을 거듭했다. 루비오 장관의 방한이 취소되는가 하면 ‘한미 2+2 통상 협의’를 앞두고 미국 측의 취소로 구윤철 기획재정부 장관이 발길을 돌리는 일도 벌어졌다. 일본이 먼저 관세 협상을 마무리하면서 기준이 생기고 시간에 쫓기는 등 여의치 않은 상황이 지속됐다. 결국 미국과의 관세 협상은 일본과 비슷한 수준에서 정리됐고 동시에 천문학적인 수준의 대미 투자를 약속했다. 이때도 관세 협상 결과를 두고 이견이 나타났다. 우리 정부 측은 쌀, 소고기 등 농산물 개방은 없다고 주장했던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전면 개방을 말했다. 또 대미 투자의 방식에서도 서로 다른 생각을 보였다. 이견은 한미 정상회담을 거치고도 조율되지 않은 모양새다. 미국 측은 관세 협상 타결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 대통령의 방미를 언급했고 실제 한미 정상회담이 열렸다. 정상회담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치러졌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앞에 두고 면박을 주는 등의 돌발 행동을 보인 바 있어 우려가 제기됐지만 무난하게 마무리됐다는 평을 받았다. 문제는 명문화된 결과가 없다는 점이다. 지난달 25일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진행했지만 공동합의문은 발표하지 않았다. 역대 우리나라 대통령들은 정상회담 이후 공동성명을 통해 동맹의 성과와 협력 의제를 문서화해 왔다. 당선 메시지에 중국 언급 정상회담 합의문도 없어 당시 공동합의문이 나오지 않은 데 대해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제기될 정도였다. 정상회담에서 각종 현안을 폭넓게 논의했지만 구체적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결과였다. 특히 자동차 관세가 확정되지 않으면서 업계는 ‘불확실성’을 해소하지 못했다. 관세 협상에서 자동차 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내용으로 타결했지만 문서로 명시되지 않은 것이다. 안보 문제 역시 마찬가지였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한미 정상회담 이후인 지난달 28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공동발표문이 항상 있는 것은 아니”라며 “정상 간 논의 내용은 상당 부분 생중계됐고 나머지는 언론 브리핑을 통해 양국 국민에게 효과적으로 설명했다”고 말했다. 위 안보실장은 “문건을 만들어내기까지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많은 공감대가 있었다. 그런 공감대를 바탕으로 추가 협의를 하면 마무리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8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나온 조 장관의 발언은 조금 더 구체적이었다. 그는 “투자 부문에서 국민에게 큰 부담이 될 수 있어 수용하지 않았다”며 공동합의문이 발표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말했다. 이어 “미일 간 합의문 내용을 보면 왜 우리가 협상을 지연해 가면서까지 안을 만들고 있는지 이해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일본은 관세 협상에서 제조업·항공우주·농업·에너지·자동차 등 분야에서 미국에 시장을 개방하고 5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하는 내용의 합의를 진행했다. 또 합의 불이행 시 미국이 관세를 재조정할 수 있다는 조항이 담긴 것으로 알려지면서 ‘굴욕 협상’이라는 말도 나왔다. 조 장관은 “일본의 타결 협상안을 보면 우리가 비슷한 협상안을 받아들인다고 할 때 여러 문제점이 많다”며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분명히 하며 협상을 강하게 하다 보니 합의가 지연되고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 품목 관세가 부과될 때 최혜국 대우가 불확실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현재로서는 그렇다”고 인정했다. 불확실성 해소될까? 우리나라와 미국 사이에 자리한 불확실성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이 타국을 대하는 방식은 이제 변수를 넘어 상수가 되는 모양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가 한미 관계를 더 흔들 가능성도 있는 상황이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