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묶여있는’ 조석래·이재현 역할론 막전막후

회장님에 기회를…무르익는 석방 분위기

[일요시사 경제팀] 양동주 기자 = 경제인 사면은 언제나 민감한 사안이다. 그들이 취한 엄청난 폭리 규모는 서민들이 평생을 일해도 모으기 힘든 천문학적인 액수가 다반사다. 그만큼 반대 여론이 거세다. 다만 이들에게 무작정 법의 잣대를 내세우기란 그리 쉽지 않다. 경우에 따라 이들의 허물을 덮어줘야 할 필요성마저 부각되기 때문이다. 물론 잡음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특별사면은 특정 범죄인에 대한 형벌 집행을 면제하거나 유죄선고의 효력을 상실시키는 대통령의 조치를 뜻한다. 역대 대통령들은 ‘국민 화합’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사면을 단행했다. 주로 연말·연초나 국경일, 석가탄신일, 성탄절 등 특정 계기가 있을 때마다 특별사면을 해왔던 게 관례. 다만 특별사면에 대한 반감도 만만치 않아 최근에는 횟수가 이전보다 현격히 줄어든 모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면은 일종의 필요악으로 비춰지곤 한다. 일단 경제 전반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법의 심판대에 오른 기업 총수들의 향후 거취에 대한 추측이 벌써부터 흘러나오고 있다. 최근 화제의 중심에 서있는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과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그 주인공이다.

건강 안좋고
나이도 많아

지난 9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 및 피고인들의 조세포탈 혐의 등에 대한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조 회장에게 징역 10년에 벌금 3000억원을 구형했다. 또한 조현준 사장에게는 징역 5년에 벌금 150억원, 이상운 부회장에게는 징역 6년과 벌금 2500억원을 구형했다. 앞서 조 회장은 분식회계 5010억원, 탈세 1506억원, 횡령 690억원, 배임 233억원, 위법 배당 500억원 등 총 7939억원의 기업 비리를 저지른 혐의로 지난해 1월 기소됐다.

검찰은 조 회장이 가짜 기계장치, 해외 페이퍼컴퍼니 등을 통해 납세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대한민국 조세권을 무력화했다고 보고 있다. 효성의 대주주라는 점을 이용해 회사 자금을 개인적 용도로 유용하고 회사를 재산 축적의 수단으로 이용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재계에서는 조 회장의 행동을 단순히 법적 잣대로 처리하기에 애매하다고 말하고 있다. IMF 당시 효성은 누적된 부실자산으로 생존의 기로에 섰지만 일부 계열사를 정리하는 데 실패했다. 정부와 금융권에서 정리를 반대한 까닭이다. 대신 그룹 내 우량계열사와 합병해 부실을 떠안아야 했다.

재계 관계자는 “IMF 당시 부실 계열사 정리를 하지 못한 효성의 속사정에는 외부의 압박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자체적으로 위기를 타개하다보니 어려움이 가중된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소재 부문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한 효성그룹의 위상을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제기된다.

조석래 회장의 선고는 내년 1월에 있을 예정이지만 형량이 확정되더라도 수감생활을 하기는 힘들 전망이다. 조석래 회장은 2010년 담낭암이 발생해 수술을 한 적이 있다. 이후 복귀까지는 약 3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됐다. 여기에 더해 최근 부정맥과 전립선암까지 발견돼 형 집행정지를 신청할 가능성이 높다.

조만간 판결 예고…집유 가능성 높아
‘필요하다면’ 바로 사면 필요성도 제기

효성의 변호인단은 “조 회장이 담낭암에 전립선암까지 추가로 발병하면서 건강이 좋지 않고 그동안 한국 경제 발전에도 기여했다”며 선처를 호소했다.

이재현 CJ그룹 회장 역시 비슷한 처지다. 지난 10일 서울고법에서는 1600억원대 조세포탈·횡령·배임 혐의로 항소심에서도 실형을 선고 받은 이재현 회장의 파기환송심 첫 공판이 열렸다. 이날 검찰은 2심과 같은 징역 5년에 벌금 1100억원을 구형했다. 서울고법 형사12부 심리로 열린 이날 공판에 이 회장은 휠체어를 타고 법정으로 향했다.
 

건강문제로 구속집행정지 중인 이 회장은 지난해 9월 법정에 선 뒤 14개월만에 법정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1990년대 중·후반 비자금 1600여억원을 조성한 사실이 드러나 2013년 7월 구속기소된 이 회장은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 받았다. 2심 재판부는 원심에서 횡령으로 인정한 600억원을 무죄로 판단해 징역 3년으로 감형했다.


대법원은 이 회장에게 2심까지 배임 혐의에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경법)’을 적용해왔지만 “배임에 따른 이득액을 구체적으로 산정할 수 없다”고 판단해 형법을 적용하라는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형법상 배임죄는 금액에 관계없이 10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특경법에 따른 배임죄는 5억∼50억원 미만일 경우 3년 이상의 유기징역, 50억원 이상이면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 등에 처해진다. 이 회장의 배임 혐의 액수는 323억원이다. 이 회장에 대한 집행유예 선고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범죄 정황이 드러난 이상 조 회장과 이 회장에게 무죄가 선고될 확률은 거의 없다. 다만 집행유예로 풀려날 가능성은 충분해 보인다. 문제는 집행유예로 끝나더라도 효성그룹과 CJ그룹이 입는 타격이 상당히 클 것이라는 점이다. 이렇게 되자 특별사면이 이뤄질 경우 두 사람이 명단에 포함될 수 있다는 주장이 벌써부터 제기되고 있다.

통상 특별사면을 앞둔 시점이 되면 어떤 인물이 사면 명단에 이름을 올릴지 관심이 집중된다. 특히 대기업 총수를 비롯한 경제인들은 특별사면이 이뤄질 때마다 요주의 대상이었다. 올해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난 8월 행해진 광복절 특별사면에서도 대기업 총수 일부의 이름을 찾아 볼 수 있었다.

엄벌이냐 선처냐
난처한 회장님들

지난 7월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광복 70주년의 의미를 살리고 국가 발전과 국민 대통합을 이루기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광복절 특별사면 대상 및 범위에 대한 검토를 지시한 바 있다.
이후 법무부는 의견수렴을 거쳐 지난 8월 사면심사위원회 회의를 열고 사면 기준 및 대상자 명단을 정리했다. 다만 관심을 모았던 재벌 총수 사면 폭은 그리 크지 않았다.

당시 특사 명단 포함 여부를 두고 이름이 오르내린 재계 인사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필두로 구본상 전 LIG넥스원 부회장, 구본엽 전 LIG건설 부사장, 집행유예 중인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등이었다. 그러나 최태원 회장을 제외한 대다수는 특사에 포함되지 못했다.
 

재계에서 특별사면에 민감한 건 그만큼 재벌 총수 사면 효과가 즉각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SK그룹이 대표적이다.

최태원 회장 특별사면 소식이 전해진 8월13일 SK그룹 관련주들은 일제히 뛰어올랐다. SK이노베이션(6%), SK하이닉스(3%), SK(2%) 등 당일 SK관련주 가운데 SK텔레콤(-1.38%)을 제외한 모든 계열사 주가가 올랐다. 무엇보다 최 회장이 자리를 비운 사이 미뤄둔 대규모 투자와 경영공백 우려감 등이 일거에 날아간 까닭이다.

SK그룹 관련주들에 대한 긍정적인 전망이 이어진 것은 당연했다. 큰 결단이 필요한 대규모 인수합병과 글로벌 진출 등 굵직한 경영 의사 판단에 속도가 붙을 것이란 관측도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최 회장이 복역 중이던 2년7개월간 M&A 시장에서 번번이 쓴맛을 봐야 했던 것과 비교하면 천지차이다.

두 그룹이 흔들리면 경제가 휘청
죄는 미워도…대내외 역할론 부상

반면 김승연 회장의 사면을 내심 기대했던 한화그룹은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었다. 앞서 집행유예로 풀려난 김 회장이 사실상 그룹을 진두지휘하고 있지만 완전한 경영복귀로 해석하기엔 한계가 따른다. 현재 김 회장은 공식적인 대표권이 없으며 해외출장도 자유롭지 못하다.


그룹 차원에서 의욕적으로 추진 중인 해외 사업에 걸림돌이 될 가능성도 크다. 이라크 신도시 개발 프로젝트를 비롯해 북미 태양광 시장 진출, 국내외 태양광 셀 생산 구축 등 해외에서 굵직한 사업을 벌이는 만큼 아쉬움은 배가 된다. 한발 더 나아가 특별사면의 영향력은 업계 전반의 분위기마저 바꿔놓고 있다.

광복 70주년 특사는 4대강, 호남고속철사업 등 입찰담합 대형 건설사에 부과된 관급공사 입찰참가제한 등 행정처분마저 해제했다. 행정처분 사면 조치에 해당되는 건설사는 78곳에 이르렀다. 현대건설, 삼성물산 등 시공능력평가 30위 내 업체가 26곳, 100위 내 업체가 53곳이다.

이 조치로 공정위에서 이미 입찰담합으로 적발돼 관급공사 입찰참가제한을 받은 건설사들에 내려진 영업정지, 업무정지, 자격정지, 경고 처분이 일순간 해제됐다. 또 현재 공정위의 담합 조사가 진행 중이거나 조사가 진행될 예정인 사업에 대해서도 특별조치 이후 일정기간 내에 담합사실을 자진신고할 경우 입찰참가제한을 하지 않기로 했다.

건설업계에서는 사면으로 그동안 국내외 사회간접자본(SOC)시장에서 위축됐던 국내 건설사들의 위상이 다시 올라갈 수 있게 됐다고 안도하고 있다. 무엇보다 해외경쟁사들의 마타도어로 수주에 어려움을 겪는 해외시장에서 우리 업체들이 받는 불이익은 크게 줄 것으로 보인다.

특사 한다면…
즉각적인 효과

건설업계 관계자는 “해외 프로젝트 수주경쟁에서 중국 등 다른 건설사들이 한국기업의 입찰제한 처분 사실을 발주처에 제보해 불이익을 받는 사례가 속출했다”며 “사면 덕택에 수주에 숨통이 트이게 됐다”고 설명했다. 물론 내년 초 특별사면이 이뤄질 가능성을 벌써부터 언급하기란 시기상조일지도 모른다. 앞서 광복절에 특별사면이 있었던 만큼 내년 초 특별사면이 또 다시 행해지기란 힘들다는 게 주된 요지이다.
 


실제로 대다수 사람들은 오는 2017년 대선 직후 성탄절 또는 2018년 신년, 2018년 차기 새통령 취임 등을 계기로 특사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설사 특사가 이뤄진다 해도 법정 형기를 마치지 않은 기업인까지 포함 시킬지는 미지수이다. 재벌 스스로 윤리경영을 강화하고 기업이미지를 쇄신하려는 노력이 제대로 실행되느냐 역시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게다가 박 대통령은 취임 후 특별사면을 상당히 자제해왔다. 김영삼(9차례), 김대중(8차례), 노무현(8차례), 이명박(7차례) 등 전임 대통령들이 10차례 가까이 특별사면을 시행한 것과 달리 박 대통령은 지난 광복절 특별사면을 포함하더라도 단 2번에 그쳤다. 무분별한 특별사면을 시행하지 않겠다고 대선 당시 언급한 내용을 지금까지는 충실히 지키고 있는 셈이다. 사면이 이뤄지더라도 조 회장과 이 회장이 명단에 포함되리란 법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잡음에 휩싸인 이들에 대한 사면의 가능성이 언급되는 것은 그만큼 기대할 수 있는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광복절 특별사면이 결정될 즈음 여당은 국민대통합 차원에서 경제인 사면이 필요하다고 역설한 바 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역시 “국민의 삶이 힘든 시점에서 국민대통합과 경제회복을 위해 매우 시의 적절한 결정”이라면서 “국가 에너지를 하나로 모으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며 특사의 긍정적인 영향을 언급한 바 있다.

특별사면이 결정되더라도 경제인 포함 여부는 아직까지 불분명하다. 다만 이전부터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대폭적인 사면이 됐으면 좋겠다는 뜻을 여당 측이 누누이 밝혀왔던 점은 조 회장과 이 회장에게 한 가닥 희망의 끈이나 다름없다.

결과는 언제쯤?
빠르면 내년 초

올해 3%대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사실상 물 건너간 가운데 내년 전망 역시 밝지 않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내년 경제성장률을 3%대로 예측했지만 대다수 국내외 경제기관들은 전망치를 내리거나 2%대 성장률을 예상하고 있다.

결국 현재 처한 위기를 슬기롭게 대처하기 위해서라도 기업의 역량이 극대화되어야 함은 자명한 사실이다. 더욱이 서민경제 살리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정부의 의중이 명확히 부각되기 위해서라도 기업의 현실을 일정 부분 이해하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밉던 곱던 간에 이들이 차지하는 비중을 무작정 간과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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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법 개정안’ 급물살 내막

‘간첩법 개정안’ 급물살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정치권이 ‘간첩법 개정안’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정보사 사태의 심각성에 대해 여야 모두 공감한 분위기다.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이번 개정안이 진일보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강력한 처벌보다 더 많은 간첩을 잡으려면 국가정보원 대공수사권이 부활해야 한다는 지적이 거세다. ‘간첩법 개정안’에 속도를 내기 시작한 건 여당이다. 한 달여 전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당론 추진’을 언급하면서부터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는 국가정보원장 출신인 박지원 의원이 적극적으로 나섰다. 다만 두 당의 개정안에는 국정원 대공수사권 부활과 관련해 차이가 있다. 국회 본회의 테이블 통과를 장담할 수 없다는 말이다. 예상 못한 내부 세작 간첩법 개정안은 지난달 군검찰이 군 정보요원의 신상 정보를 유출한 혐의를 받는 국군정보사령부 소속 군무원 A씨를 구속 기소하면서 언급됐다. 앞서 국방부 검찰단은 정보사 요원 A씨를 기소하면서 ▲군형법상 일반이적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위반(뇌물)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등 혐의를 적용했다. 국군방첩사령부가 처음 A씨에게 간첩 혐의를 적용해 송치했으나 군검찰은 수사기록 검토 결과 적용하기 어렵다고 봤다. 군형법과 형법은 ‘적’을 위해 간첩 행위를 한 사람에 대해 간첩죄를 적용하는데, 여기서 적은 북한을 의미한다. 군검찰이 A씨에게 간첩죄를 적용하지 않은 것은 북한과 연계가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A씨에게 간첩죄가 적용되지 않자 정치권에서는 연일 논란이 이어졌다. 먼저 한 대표가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부활을 당론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의힘은 ‘적국’으로 한정했던 간첩죄 적용 범위를 ‘외국’으로 대폭 넓히는 간첩법 개정안도 당론으로 추진 중이다. 한 대표는 지난달 말 국회서 열린 간첩법 개정 입법토론회에 참석해 “이번 국회서 두 가지를 반드시 해내자”며 “간첩법서 ‘적국’을 ‘외국’으로 바꾸자. 그리고 그 법을 제대로 적용할 수 있도록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부활시키자”고 강조했다. 그는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 스파이를 적국에 한정해 처벌한 나라가 있느냐”며 “형법 조항서 ‘적국’을 ‘외국’으로 바꾸면 된다. 그러면 모든 것을 합리적으로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 대표는 지난 1일 당 최고위원회의서도 “민주당이 찬성만 하면 ‘적국’서 ‘외국’으로 바꾸는 간첩법 개정안이 반드시 통과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일명 간첩법은 형법 98조다. ‘적국’을 위해 간첩 행위를 하거나 ‘적국’의 간첩을 방조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는 내용이다. 북한 연관성 없으면 관련법 적용 불가 적국 아닌 외국으로 조항 신설 추진 간첩죄 적용 대상을 적국인 북한으로 한정해 북한 외 다른 나라를 위해 간첩 행위를 하더라도 간첩죄로 처벌할 수 없는 실정이다. 이에 ‘적국’을 ‘외국 및 외국인 단체’로 고치는 개정안이 지난 2004년부터 끊임없이 발의됐으나 매번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간첩법 개정안에 대해 가장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는 건 국민의힘이다. 강승규 의원은 지난달 같은 당 의원 24명과 함께 형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엔 허위·조작 정보를 유포해 사회 혼란을 초래하는 ‘영향력 공작’(인지전)을 수행하다 적발된 자에 대한 처벌 규정을 담았다. ‘외국, 외국인 단체나 외국 등으로부터 금품을 받은 자(안보위협인물)가 허위 사실과 왜곡된 정보를 유포할 경우 3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안보위협인물이 간첩 행위를 하거나 간첩을 방조한 경우 5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안보위협인물이 인지전을 통해 정부 정책 결정 또는 외교관계에 부당한 영향력을 미쳐 국가안보를 위협한 경우 10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특히 정보기관 소속으로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경우 가중처벌하도록 했다.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도 지난달 말 간첩죄의 적용 범위를 적국서 외국과 국내외 단체 및 비국가행위자로 확대하는 간첩법 개정안(형법·군형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이 법안은 외국이 국내에 단체를 만들어 간첩 활동을 할 경우에도 처벌할 수 있도록 했고, 군사기밀뿐 아니라 국가의 핵심기술 및 방위산업기술에 대한 유출 행위에 대해서도 간첩죄를 적용토록 했다. 윤 의원 측은 “현행 간첩법인 형법 98조는 적국을 위해 간첩 행위를 하거나 적국의 간첩을 방조한 자를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 징역에 처하게 돼있다”며 “군형법 13조서도 비슷한 취지의 조항을 두고 있지만 실질적인 적국에 해당하는 북한 외에 어느 나라를 위해서든 간첩 행위를 하거나 방조할 경우나 외국이 국내 단체를 만들어 간첩 활동을 하게 되면 처벌을 할 수 없어 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고 입법 취지를 설명했다. 신중한 민주당 민주당은 국정원장을 지낸 박 의원을 필두로 간첩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박 의원의 법안은 법망 미비를 보완하기 위해 ‘적국’은 물론 ‘외국 정부 또는 그에 준하는 단체 및 외국 정부 산하단체’를 이롭게 하기 위해 간첩 행위를 한 자도 7년 이상 징역에 처한다는 조항을 신설했다. 간첩 행위는 ‘국가기밀을 수집·탐지·보관·누설·전달·중개하는 행위’로 명확히 규정했다. 허위·날조 정보를 온·오프라인상에서 가짜뉴스 형태로 퍼뜨려 사회 혼란을 일으키고 정부 정책과 외교관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영향력 공작’(인지전)을 처벌하는 조항도 담았다. 이런 행위를 외국 등으로부터 대가를 받고 저지르는 경우 5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신분을 위조한 외국 정보기관원(흑색요원)이 인지전을 하다 적발될 경우 가중처벌하도록 했다. 국가핵심기술 유출 행위도 간첩죄로 처벌하겠단 구상이다. 박 의원은 “지금도 사이버상으로 자생적 공산주의 친북 세력이 교류하고 있다”며 “우리나라서 접선을 하지 않고 중국, 동남아시아 쪽에서 접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박 의원은 특히 산업기술 보호를 위해서도 간첩법 개정이 필수라고 강조하며 “진보적인 민주당서 내가 주장해야 국민을 설득하고 법안이 통과돼 국가를 지탱하고 산업을 보호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의 내용을 살펴보면 국민의힘 측 법안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른 점이 있다면 국정원 대공수사권과 관련해 이견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국정원 대공수사권은 문재인정부 시절인 지난 2020년 12월 대공수사권을 경찰로 이관하는 국정원법 개정안이 당시 여당이었던 민주당 주도로 통과돼 올해부터 시행 중이다. 한 대표가 국정원 대공수사권 부활을 당론으로 추진했다고 해도 야권의 반대가 심한 상황이다. 야권은 대공수사권 폐지는 불법사찰과 간첩 조작 사건 등 국정원의 공안 탄압을 없애기 위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한반도 지금 정보전쟁 중 특히 여야는 최근까지도 대공수사·조사와 관련한 국정원 역할을 놓고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은 나아가 대공수사권을 넘어 조사권까지 대폭 축소하자면서 사실상 국정원의 대공수사 ‘완박(완전박탈)’을 추진 중이다. 실제로 민주당 이기헌·김현·박홍근·윤건영 의원 등은 지난달 국정원의 대공조사권과 관련 사실조회 및 자료 제출 요구권을 폐지하는 국정원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국가정보원법은 ▲방첩·대테러·국제범죄조직에 관한 정보 ▲국가보안법 위반, 반국가단체와 연계가 의심되는 안보침해행위에 대한 정보 ▲사이버안보와 안보 관련 우주 정보 등에 대해 ‘조사권’을 보장하고 있다. 대공수사권이 없는 대신 현장 조사·문서 열람·시료 채취·자료 제출 요구와 진술 요청 등의 방식으로 조사를 할 수 있다는 의미다. 개정안에는 이 조사권이 오히려 수사권보다 광범위하게 인권을 침해할 수 있다며, 이를 폐지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수사권의 경우 헌법상 적법절차 원칙과 영장주의가 엄격하게 적용되지만, 조사권은 이런 견제는 받지 않으면서도 사실상 압수수색과 신문 조사의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게 골자다. 다만 민주당 내부서도 국정원의 대공조사권까지 없애는 건 과도하다는 시각이 존재한다. 이에 따라 민주당 내에서 국정원 근무 경력이 있는 박지원·박선원·김병기 의원은 해당 법안 발의에 참여하지 않았다. 민주당의 한 재선 의원은 “경찰의 대공수사가 제대로 자리 잡히지도 않은 상황서 과거로 회귀하면 경찰 내부의 불만이 폭발할 것”이라며 “국정원이 경찰 대공수사에 힘을 실어주는 협력관계로 가는 게 더 옳지 않겠냐”고 전했다. 이 의원은 “대공수사와 정보수집 기능을 분리하는 게 글로벌 스탠다드다. 국정원의 정치 개입을 막기 위한 핵심요소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일요시사>와 접촉한 복수의 국정원 및 정보기관 출신 전문가들은 간첩법 개정이 10년 전부터 추진됐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20~3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국제사회의 원조를 받으며 외국 간첩과 스파이들이 국내서 활동하는 경우가 적었으나 경제 대국이 된 지금은 다르다는 설명이다. 여야 국정원 대조권 두고 기싸움 한국은 미·중·러·일 스파이 ‘천국’ 국정원 파견 업무를 수행했던 부장검사는 “국정원 대공수사권이 사라지면서 간첩과 산업스파이 등 국익에 해가 되는 조직과 인물의 범죄 행위를 포착해도 법률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 크게 축소된 건 사실”이라며 “중국과 북한 간첩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표면적으로 우리의 우방국도 간첩이 존재한다. 미국도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한 정보기관 출신 관계자는 “중국, 북한은 기본이고 일본, 미국, 러시아, 독일 등 해외 강국들은 국내 수도권서 정보활동을 벌인다. 이들은 외교관(회색), 언론사 특파원, 유학생 등으로 신분을 세탁해 블랙으로 살아간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해외 각국 대사관에는 정보기관 담당 인사만 2명 이상 근무 중”이라며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고 강조했다. 최근 국내 대학가에서는 학생 신분으로 위장한 중국인 ‘산업스파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실제로 중국 산업스파이들이 유학생과 연구자로 위장해 국내 대학의 연구실, 연구기관 등에서 암약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추세다. 이들은 대학의 연구실을 매개로 대기업 등의 첨단기술 연구소까지 입지를 넓혀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학들 역시 이 같은 현실을 알면서도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학령인구가 줄면서 중국인 유학생을 받지 않고서는 정상적인 학교 운영이 불가능한 대학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산업스파이 문제를 공론화했다가 중국인 학생들의 집단 반발을 불러일으킬 가능성도 있다. 현재 국내 대학에 유학 중인 외국인 학생 수는 2022년 기준 16만6892명으로 2013년(8만 5923명) 대비 2배 가까이 늘었으며 이 중 중국인 비중은 통상 40%를 웃도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강대 등 일부 대학은 중국인 전용 강의까지 개설할 정도다. 본희의 통과 가능성은? 앞으로 한국을 향한 중국의 기술 탈취 시도가 더 강력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미중 갈등이 심화함에 따라 중국이 기술 자립에 속도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미 비영리기구인 국제교육원(IIE)에 따르면 미국 내 중국인 유학생 수는 2022~2023학년 28만9526명으로 집계돼 37만2532명을 기록했던 2019~2020학년 대비 22% 급감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