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경기대학교 김기봉 교수

“역사교육은 정답이 아닌 해답을 찾는 과정”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국정화 사태에 도무지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역사논쟁은 어느덧 이념논쟁으로 변질 된 지 오래다. 사회 또한 정치권처럼 이판사판의 막판으로 갈라진 모습이다. 바야흐로 혼탁해진 윗물의 정화가 필요한 시기, 국민들은 역사교육 정상화 이전에 정치의 정상화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정부·여당은 야당을 ‘화적떼’에 비유하는가 하면, 국정화를 반대하면 국민이 아니라는 식의 발언도 서슴지 않고 있다. 야당 또한 대통령을 ‘무속인’에 비유하는 등 강 대 강으로 되받아쳤다. 정가의 이러한 모습을 두고 일각에서는 파국이 예정된 한편의 막장드라마 같다고 지적한다.

끊이지 않는 싸움에 피로감을 호소하는 국민들은 올바른 진단과 처방을 바라고 있다. ‘에드워드 카’가 말했듯 역사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면, 현재에서 이 같은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대화가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이에 <일요시사>는 직접 역사학과 교수를 찾아가 국정화 사태에 대한 얘기를 나눠봤다.

다음은 경기대학교 김기봉 교수와의 일문일답.

- 사학자로서 이번 국정화 사태를 진단해 달라.
▲역사교육 정상화라는 명분으로 국정화를 강행하고 있다. ‘역사교육 정상화의 방법으로 국정화가 과연 옳은 것인가’라는 질문부터 해야 한다. 국정화란 국가가 역사교육의 주체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됐을 때 역사가는 국가종교의 사제되어야 한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 일각에서는 반대하는 사람들을 두고 국정교과서가 나오지도 않았는데 과민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한다.
▲발상의 전환을 한번 해보자. 철도인들은 철도 운영을 국가가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반면 역사에 대해서 역사가들은 국가가 소유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이 같은 반응의 차이가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둘 다 공공재라는 점은 같다.

하나는 철도라는 물질적 공공재고, 다른 하나는 역사라는 정신적 공공재다. 철도는 이미 존재하는 것이지만, 역사는 아니다. 대한민국 역사는 하나의 정답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가들이 연구를 통해 합의해 나가는 과정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하나의 올바른 역사가 있다고 믿는 게 문제다.


- 교수들의 잇따른 집필거부는 당연한 반응인가?
▲그렇다. 자존심의 문제다. 담당자들의 직분을 유보시키고, 국가가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그동안 역사가들이 잘못했다는 의미인데, 역사가의 입장에선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없다. 또 국가가 검정이라는 제도를 통해서 역사가들에게 집필의 자율권을 주었는데, 국정으로의 전환은 자율권의 박탈이기 때문에 역사가라는 직업의 위기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 집필거부를 두고 역할거부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국정화는 역사가들에게 지금까지 역사가들이 잘못했으니 국가가 역사교육을 신탁통치 하겠다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다. 정치가 역사를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가 정치를 통제하는 것이 동아시아 사관의 전통이고 사명이었다. 그런데 사관에게 왕조사의 집필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역사가들의 집필기준과 방향을 정하는 국정화는 통치자가 역사 집필에 개입해 수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역사가들은 사화를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 정부는 좌편향 교과서를 지적하는데, 지금의 교과서가 문제 있다고 보는가.
▲근본적인 문제는 사실이 아니라 사실을 보는 눈이다. 자기가 쓰고 있는 안경에 따라 역사교과서가 빨갛게 또는 파랗게 보일 수 있다. 역사교과서가 중요한 이유는 국가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교과서를 매개로 해서 학생에게 주입시켜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의 역사교과서 논쟁이 원래 정부가 의도했던 것과는 다르게 대한민국을 이끌어 갈 학생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정치가의 권력투쟁 도구로 전락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논쟁 자체가 너무도 비교육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정말 누굴 위한 역사교과서 논쟁이란 말인가. 현재의 권력투쟁이 아니라 학생들이 살아야 하는 미래를 위한 역사교과서 논쟁이 되어야 한다. 자라나는 미래 세대가 부닥쳐야할 문제들에 대해 역사적으로 사고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교과서를 어떻게 쓰느냐를 주제로 해서 논쟁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지금은 그게 아니다.

정상화 방법은 국정화? “역사 주체되겠단 말”
“역사교과서는 국민 정체성 가르쳐주는 것”

- 정치권에서 손을 떼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역사학에서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은 정치화다. 정치권의 개입은 사회가 합의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주는 선에서 그쳐야 한다. 교과서 내용을 좌지우지하려는 것은 정치화를 의미한다.

모든 역사는 정치적이다. 근데 모든 정치는 결국 역사가 된다. 이것이 역사가 가진 최대 장점이고 미덕이다. 그 때문에 역사는 정치를 통제하는 기능을 한다. 역사는 과거의 정치지만, 현재의 정치는 역사가 된다. 역사가는 현실 정치의 통제자이며 자기 시대의 증언자가 되어야 한다. <조선왕조실록>이 역사가에게 그런 기능을 부여한 좋은 예다.

실록은 왕도 못보고 사관만 봤다. 읽지 못하는 책을 만든 것이다. 그렇지만 왕이 가장 두려워해야 하는 게 실록의 기록이었다. 이렇게 조선왕조실록이라는 보이지 않는 ‘숨은 신’이 있었기 때문에 조선왕조가 500년 동안 유지될 수 있었다.


- 해결책으로 야당은 사회적 합의기구 설치를 제안했다. 적절한 안이라고 보나?
▲그것은 이상적인 제안이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 내년 말까지는 교과서가 써져야 하는데, 언제 합의기구를 만들고 토론을 하겠나. 너무 늦었다.

그럼 대안이 뭐냐면, 과거 실록을 편찬했을 때처럼 독립기구를 설치하자는 것이다. 국사편찬위원회는 정부기관이지만, 그런 기능을 할 수 있는 독립적인 연구소든 부서든 만들어서 대한민국의 역사를 편찬하는 본래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현재의 막장 드라마를 종식 시킬 수 있는 길은 집필진을 여·야의 추천을 받아 구성해 쟁점 사항에 대해 합의해 나가면서 역사교과서를 쓰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라 본다.

- 독립기구가 설치된다 해도 독립성이 유지되는 것은 다른 문제다.
▲그렇다. 시행착오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가 정체성 교육을 위해 비상조치로 국정화를 할 수 밖에 없다는 현 정부의 취지를 살리면서 정치로부터 독립성을 보장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야 만약 정권이 바뀌더라도, 다시 과거로 회귀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

일단 독립기구를 신설하고 정부가 부여한 미션을 역사가들 스스로가 수행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지속가능한 역사교육의 정상화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이번에 비상조치로 단행 된 국정화가 역사교육의 정치로부터의 독립을 위한 제도화로 귀결된다면 결국 역사가들도 동참할 것이라고 믿는다.

- 우려되는 점이 있다면?
▲지금 시급한 현안은 국내 문제보다는 동아시아 정세를 둘러싼 국외 문제다. 그런데 국정교과서가 국정을 마비시키고 있다. 계속 이런 식으로 국정화를 밀어붙이면 역사가들이 참여하지 않고 대안교과서를 쓰는 운동을 벌일 것이다. 그러면 교육 현장에서 커다란 혼돈이 야기된다.

과거 금성출판사 발행 한국근현대사교과서 문제가 불거졌을 때, 뉴 라이트 진영에서 대안교과서를 썼다. 이번에는 그 반대 현상이 나타나서, 진보 진영이 안티테제로 국정교과서에 대한 대안교과서를 쓰고자 할 것이다. 결국 이는 역사교육의 정상화가 아니라 정치화의 심화다.

역사교육은 역사의 정답이 아니라 해답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해답은 푸는 과정에 있다. 집필 기준과 방향은 현재의 정치가 아니라 자라나는 학생들이 살아야 할 미래를 향해야 한다. 지금은 학생들은 안중에 없는 역사교과서 논쟁을 벌이고 있다.

- 마지막으로 독자들께 한마디 부탁드린다.
▲논쟁의 판을 바꿔야 한다. 모든 국민이 마주달리는 두 열차 가운데 어느 하나를 꼭 타야만 하는 식으로 논쟁이 진행돼서는 안 된다. 양극단을 지양할 수 있는 제3지대가 필요하다.

니체는 “괴물과 싸우는 자는 스스로가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말을 했다. 그런데 지금 역사교과서 논쟁이 서로가 서로를 괴물로 만들고 있다. 지금의 선악의 이분법 구도를 뛰어넘어야 한다. 생태계가 틀림이 아닌 다름으로 진화해 나듯이, 우리는 역사를 보는 눈이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해야만 관용적인 사회가 됨으로써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

 

[김기봉 교수 프로필]

▲성균관대 대학원 사학과 석사
▲독일 빌레펠트대학 박사
▲한국연구재단 인문학단장 역임
▲현 경기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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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초반 난맥상이 이어지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용꿈을 꾸지만, 새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강경 보수 세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 대표에게 그와 용꿈을 함께 꿀 수 있는 창조적 소수가 없는 이유는 뭘까? 국민의힘은 지난달 장외투쟁에 집중했다. 지난달 21일엔 대구에서, 지난달 28일엔 서울에서 각각 개최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장외투쟁을 통해 정부·여당의 잘못을 국민에게 알렸다”며 “그 과정에서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하락했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고, 지지층 결집으로 싸울 동력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벌어지는 지지율 격차 하지만 외부의 평가는 다르다. 보수 신문 <조선일보>는 지난달 23일 사설에서 “스마트폰과 각종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라서 국민은 정치권 소식을 실시간으로 보고 듣는다”며 “장외투쟁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느낌을 준다”고 비판했다.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2일 오후엔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체포됐다가 지난 4일 체포적부심이 인용돼 석방됐다. 김건희 여사의 경기 양평군 공흥지구 개발사업 개입 의혹과 관련해 김건희 특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던 고 정희철 단월면장도 “특검이 강압 수사를 했다”는 취지의 자필 메모를 남긴 채 같은 날 사망했다. 이후 국민의힘은 국회에 정 면장의 분향소를 차렸고, 의원들이 돌아가면서 빈소를 지키고 있다. 지난달 6일 방송된 JTBC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엔 이재명 대통령 부부가 출연했다. 이 방영분은 지난달 26일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사건 이후인 지난달 28일 촬영됐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국가적 재난 때문에 지금도 국민은 피해를 보고 있는데, 한가하게 예능 촬영하고 있었다면, 이 대통령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추석 연휴 내내 쟁점화를 주도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대여 투쟁엔 힘이 붙지 않는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일부터 2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전주 대비 2.4% 하락한 35.9%로 확인됐다. 47.2%의 지지를 얻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보다 11.3% 뒤처지는 수치였다. 이는 장 대표의 자화자찬과는 다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이 대통령과 민주당엔 ▲검찰 해체 시도 ▲조희대 대법원장과의 갈등 ▲이 대통령의 예능프로 출연 논란 ▲김현지 제1부속실장 관련 논란 등 악재가 이어졌다. 그런데도 지지율 격차가 10% 이상 벌어진 결과가 나온 것이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지난 13일 장 대표와 상임고문단의 오찬 회동에 참석해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정 전 의장은 장 대표에게 “과거 안하무인 정치 행태를 보여온 보수 정당의 잘못이 크다는 걸 인정해야 하고, 깊은 반성과 성찰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 등과 함께 못할 이유가 없다. 새 지도부는 용광로 같은 화합의 정치를 만들어내길 바란다”며 “부정선거론이나 ‘윤 어게인’ 같은 낡은 의제와 결별하고, 민생을 살피면서 국가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데 온 힘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답 없는 장외투쟁에 멀어지는 대권 ‘밖에서’ 집착… 본질 “사람 없어서” 정 전 의장의 발언 중 핵심은 한 전 대표를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와 관련해 의견이 엇갈려 한 전 대표와 결별했다. 장 대표는 지난달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전 대표를 지지하는 분들이 무차별적으로 저를 비난·모욕·배척하는데 어떻게 정치 행보를 같이 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엔 자신의 당 대표 당선을 도운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의 반발을 감수하면서 당내 중도 성향으로 평가받는 김도읍 의원을 정책위의장으로 발탁하는 등 중도 공략을 고려하는 것으로 보였다. 유튜버 고성국씨는 이에 크게 반발하면서 “많은 분이 ‘김도읍이 웬 말이냐’고 비판하는데, 김 의원은 그런 비판을 받을 만하다”고 주장했다. 고씨는 “국민의힘은 자유통일당 등 원외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양보하라”고 요구했다. 장 대표는 이들의 요구를 일체 무시하면서 이들의 영향력 감소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였다. 한때는 “공천 청탁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보수의 김어준 반열에 오르려는 것 아니냐”는 평가까지 들었던 전한길씨도 최근엔 전당대회 당시의 기세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장 대표는 추석 연휴이던 지난 7일, 서울의 한 극장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 2>를 관람했다. <건국전쟁 2>는 1947년부터 군·경찰·서북청년단 등과 남조선노동당이 제주도에서 번갈아 이어간 학살 사건인 4·3 사건을 다뤘다. 이를 연출한 김덕영 감독은 주로 남조선노동당의 학살 위주로 내용을 구성했다. 김 감독은 평소 이승만 전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부정선거론을 주장해 왔던 인물이다. 4·3 사건은 국가 폭력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여전히 민감하다. 하지만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 일각에선 잊을 만하면 양민 학살을 부정하거나 군경의 대응을 찬양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장 대표의 <건국전쟁 2> 관람은 보수 정당 수장이 4·3 사건에 대한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를 남긴다. 아울러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주장을 수시로 제시하는 세력은 강경 보수 세력이다. 이런 대응은 이재명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국민의힘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힘 지지율 추세로 확인할 수 있다. 추석 연휴 전까지 집중했던 장외투쟁도 장 대표 스스로 직접 전면에 나서 여론을 움직이려 한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하지만 장 대표가 강경 보수 진영의 지원을 토대로 당선됐던 것 자체가 강경 보수 외 유권자에겐 큰 호감을 주지 못하는 족쇄가 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민의힘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됐던 것은 당내 쇄신이었다. 기행은 멈췄지만… 특검 3개(김건희·내란·채 상병)가 국민의힘을 동시에 겨냥하는 현 상황은 모두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따라서 국민의힘엔 ▲부정선거론 근절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 제거 ▲중도 공략 등 산적한 숙제가 있었다. 장 대표가 무시 전술로써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을 서서히 줄이고 있지만, 유권자로선 만족을 느끼기 어렵다. 정권을 맡을 수 있는 정당으로 다시 도약하기 위해선 확실한 절연이 필요했다. 하지만 장 대표 스스로 <건국전쟁2>를 관람하면서 그동안 구사했던 무시 전술도 그 진의를 의심받을 가능성이 열렸다. “당내 쇄신이 아닌 자신의 영향력 확대만을 위한 무시였느냐”는 의심이다. 특정 세력의 지원을 받은 수장이 수성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대개 토사구팽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정치력을 높이 평가받는 역사적 인물들은 적절한 토사구팽을 통해 수성기를 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이 이전과 달라진 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장 대표 취임 이전 국민의힘은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전 원내대표가 일명 ‘쌍권 체제’를 구성해 ▲대선후보 심야 교체 시도 ▲자체 개혁안에 대한 특정 계파의 조직적 저항 등 기행을 저지르면서 여론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에서 이런 기행은 잘 보이지 않으나, 그 이상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다. 이는 재보궐선거 당선으로 국회에 입성해 재선 의원이 된 지 불과 1년여가 지난 장 대표의 짧은 정치 경험 등 부실한 정치 기반으로부터 비롯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에 대해 꾸준히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이를 직접 부인하진 않는다. 그런데 용꿈은 특정 정치인 1명이 특출나다는 이유만으로 꿀 수 있는 꿈이 아니다. 장 대표는 아직 “용꿈을 꿀 만큼 특출난 정치인”이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다. 용꿈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선 ▲시대적 사명 구현 ▲강한 개혁 의지 ▲구체적 개혁 대안 제시 ▲강도 높은 자체 혁신 ▲추상적 비전을 구체화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 구성 등 요소가 필요하다. 용꿈은 용이 되려는 사람과 이를 뒷받침하는 집단의 상호 작용으로 현실이 된다. 전문가 집단은 추상적 비전을 구체적 개혁 대안으로 제시해야 하고, 용꿈을 꾸는 사람은 구체적 개혁 대안을 현실에서 구현해 민심의 호응을 얻어야 한다. 부실한 정치 기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저서 <역사의 연구>를 통해 ‘창조적 소수’라는 개념으로 용꿈을 현실화하는 과정을 이론화했다. 토인비는 문명의 순환을 통해 역사의 변혁 과정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문명이 쇠퇴하거나 낯선 도전에 직면했을 때 이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발전을 꿈꾸는 집단이 나타난다. 토인비는 이들에게 ‘창조적 소수’라는 이름을 붙였다. 장 대표가 강경 보수와의 관계에 명확하게 선 긋지 못한 채 장외투쟁에 집중하는 것에 대한 해답도 있다. 토인비는 창조적 소수가 새로운 발전을 이끌 수 있는 비결로 혁신적인 구상을 제시했다. 혁신적인 구상을 통해 세상에 충격을 주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우리 역사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진골 귀족들 간 왕위 쟁탈전이 장기간 이어져 중앙정부가 지방 통제 능력을 잃었던 통일신라 말기엔 후삼국시대가 이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미 멸망한 고구려·백제가 통치했던 지역에선 유민 의식이 유지되고 있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을 물리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정치적 비전이었다. 왕건은 ‘삼한일통’이란 구호를 내걸면서 신라에 우호적인 관점을 유지했다. 이는 신라를 무력으로 함락해 경애왕을 살해한 후 신라의 각종 기술자를 후백제로 압송했던 견훤의 대응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견훤의 대응에 분노했던 신라 호족은 고려로 기울었고, 이는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게 된 결정적 밑거름이 됐다. 훗날 고려는 원나라의 간접 지배와 권문세족의 수탈로 인해 저물었다. 권문세족이 산과 강을 경계로 대농장을 소유하면서, 조세·부역을 직접 감당하는 평민의 경제 기반이 무너졌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2000명 규모의 사병 집단 가별초를 거느린 대부호였다. 그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기반으로 왜구와의 전쟁에서 대활약해 실력자로 부상했다. 그의 막료로 가담한 정도전·조준·남은·윤소종은 당시 새로운 흐름이었던 성리학을 배운 신진사대부였다. 이들 중 조준은 권문세족의 토지 겸병을 막을 수 있는 방편으로 과전법을 제시했다. 과전법은 권문세족의 토지를 모두 몰수해 국유화한 후 전·현직 관료에게 경기도에 한정해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였다. 과전법은 이성계의 막강한 권력·군사력을 기반으로 실현됐고, 그가 새 왕조의 문을 열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됐다. 과전법이 시행돼 백성들이 춤을 추면서 기뻐할 때, 국왕 즉위 이전부터 대토지를 보유했던 고려 마지막 임금 공양왕은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다. 고려가 왜 멸망했고, 조선이 왜 개창될 수 있었는지 잘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싸울 동력 확보” 자화자찬 “이미 한계만 노출” 평가도 이성계의 등장 이전 강력한 권력과 군사력을 가졌던 사람은 최씨 무신정권을 열었던 최충헌이었다. 그런데 최충헌은 정치개혁과 체질 개심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정예 병력을 자신의 사병 조직에 포함할 뿐, 거란 유민의 고려 침공을 방치했다. 거란 유민은 당시 떠오르던 몽골과의 협력을 통해 물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늑대를 몰아내고 호랑이를 불러들였을 뿐이었다. 최충헌 사후 닥친 국난은 여몽 전쟁이었다. 최우 등 최충헌의 후계자들은 임시 수도 강화도에서 오로지 정권 보위에만 집중했다. 그들은 몽골군이 쳐들어오면 항복한 후 몽골군이 철군하면 항복 조건을 어기는 행태를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백성들은 각자도생해야 했다. 최씨 정권이 몰락한 후 집권했던 무신 집권자들도 이 행태를 반복했다. 그들이 국난 극복을 등한시한 결과, 고려는 몽골이 중국을 접수한 후 세운 원나라의 간섭을 장기간 받아야 했다. 이는 현대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역대 정권은 모두 새로움을 강조하는 슬로건을 제시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군정 종식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람 사는 세상을,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제위기 극복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적폐 청산을, 이 대통령은 내란 종식을 제시했다. 토인비가 문명의 순환을 강조했던 이유는 성공하거나 많은 것을 누리면 나태해지는 인간의 속성과 관련돼있다. 토인비는 “성공한 창조자는 다음 단계에서 다시 창조자가 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는 “성공 자체가 큰 흠결이 되기 때문”이라며 “이미 성공했기 때문에 노를 젓는 손을 쉬고 있어서 사회 발전에 쓸모를 다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에선 김용태 전 비대위원장과 윤희숙 전 혁신위원장이 당 체질을 개선할 혁신안을 발표한 후 실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일명 ‘언더 찐윤’으로 통하는 영남권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은 조직적으로 이를 방해했다. 이를 똑똑히 목격한 장 대표는 지방선거 승리를 외치면서도 당내 혁신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 주류와 반목하는 한 전 대표와 친한계(친 한동훈)를 겨냥해 패널 인증제를 언급하는 등 당 주류의 영향력을 고착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누구나 꿈꿔도 이룰 수 없는… 하지만 여론은 국민의힘의 혁신과 중도 확장을 바라고 있다. 이 때문에 이재명정부의 초반 난맥상에도 불구하고,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용꿈을 함께 실현할 창조적 소수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기 사람은 진득하게 비전을 통해 설득하면서 만들어진다. 장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국정감사 이후엔 어디서 장외투쟁을 하느냐”가 아니라 “왜 내 주변엔 사람이 없어서 내가 직접 장외투쟁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용꿈은 누구나 꿀 수 있지만, 아무나 이룰 수는 없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