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경기대학교 김기봉 교수

“역사교육은 정답이 아닌 해답을 찾는 과정”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국정화 사태에 도무지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역사논쟁은 어느덧 이념논쟁으로 변질 된 지 오래다. 사회 또한 정치권처럼 이판사판의 막판으로 갈라진 모습이다. 바야흐로 혼탁해진 윗물의 정화가 필요한 시기, 국민들은 역사교육 정상화 이전에 정치의 정상화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정부·여당은 야당을 ‘화적떼’에 비유하는가 하면, 국정화를 반대하면 국민이 아니라는 식의 발언도 서슴지 않고 있다. 야당 또한 대통령을 ‘무속인’에 비유하는 등 강 대 강으로 되받아쳤다. 정가의 이러한 모습을 두고 일각에서는 파국이 예정된 한편의 막장드라마 같다고 지적한다.

끊이지 않는 싸움에 피로감을 호소하는 국민들은 올바른 진단과 처방을 바라고 있다. ‘에드워드 카’가 말했듯 역사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면, 현재에서 이 같은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대화가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이에 <일요시사>는 직접 역사학과 교수를 찾아가 국정화 사태에 대한 얘기를 나눠봤다.

다음은 경기대학교 김기봉 교수와의 일문일답.

- 사학자로서 이번 국정화 사태를 진단해 달라.
▲역사교육 정상화라는 명분으로 국정화를 강행하고 있다. ‘역사교육 정상화의 방법으로 국정화가 과연 옳은 것인가’라는 질문부터 해야 한다. 국정화란 국가가 역사교육의 주체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됐을 때 역사가는 국가종교의 사제되어야 한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 일각에서는 반대하는 사람들을 두고 국정교과서가 나오지도 않았는데 과민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한다.
▲발상의 전환을 한번 해보자. 철도인들은 철도 운영을 국가가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반면 역사에 대해서 역사가들은 국가가 소유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이 같은 반응의 차이가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둘 다 공공재라는 점은 같다.

하나는 철도라는 물질적 공공재고, 다른 하나는 역사라는 정신적 공공재다. 철도는 이미 존재하는 것이지만, 역사는 아니다. 대한민국 역사는 하나의 정답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가들이 연구를 통해 합의해 나가는 과정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하나의 올바른 역사가 있다고 믿는 게 문제다.


- 교수들의 잇따른 집필거부는 당연한 반응인가?
▲그렇다. 자존심의 문제다. 담당자들의 직분을 유보시키고, 국가가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그동안 역사가들이 잘못했다는 의미인데, 역사가의 입장에선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없다. 또 국가가 검정이라는 제도를 통해서 역사가들에게 집필의 자율권을 주었는데, 국정으로의 전환은 자율권의 박탈이기 때문에 역사가라는 직업의 위기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 집필거부를 두고 역할거부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국정화는 역사가들에게 지금까지 역사가들이 잘못했으니 국가가 역사교육을 신탁통치 하겠다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다. 정치가 역사를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가 정치를 통제하는 것이 동아시아 사관의 전통이고 사명이었다. 그런데 사관에게 왕조사의 집필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역사가들의 집필기준과 방향을 정하는 국정화는 통치자가 역사 집필에 개입해 수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역사가들은 사화를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 정부는 좌편향 교과서를 지적하는데, 지금의 교과서가 문제 있다고 보는가.
▲근본적인 문제는 사실이 아니라 사실을 보는 눈이다. 자기가 쓰고 있는 안경에 따라 역사교과서가 빨갛게 또는 파랗게 보일 수 있다. 역사교과서가 중요한 이유는 국가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교과서를 매개로 해서 학생에게 주입시켜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의 역사교과서 논쟁이 원래 정부가 의도했던 것과는 다르게 대한민국을 이끌어 갈 학생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정치가의 권력투쟁 도구로 전락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논쟁 자체가 너무도 비교육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정말 누굴 위한 역사교과서 논쟁이란 말인가. 현재의 권력투쟁이 아니라 학생들이 살아야 하는 미래를 위한 역사교과서 논쟁이 되어야 한다. 자라나는 미래 세대가 부닥쳐야할 문제들에 대해 역사적으로 사고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교과서를 어떻게 쓰느냐를 주제로 해서 논쟁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지금은 그게 아니다.

정상화 방법은 국정화? “역사 주체되겠단 말”
“역사교과서는 국민 정체성 가르쳐주는 것”

- 정치권에서 손을 떼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역사학에서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은 정치화다. 정치권의 개입은 사회가 합의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주는 선에서 그쳐야 한다. 교과서 내용을 좌지우지하려는 것은 정치화를 의미한다.

모든 역사는 정치적이다. 근데 모든 정치는 결국 역사가 된다. 이것이 역사가 가진 최대 장점이고 미덕이다. 그 때문에 역사는 정치를 통제하는 기능을 한다. 역사는 과거의 정치지만, 현재의 정치는 역사가 된다. 역사가는 현실 정치의 통제자이며 자기 시대의 증언자가 되어야 한다. <조선왕조실록>이 역사가에게 그런 기능을 부여한 좋은 예다.

실록은 왕도 못보고 사관만 봤다. 읽지 못하는 책을 만든 것이다. 그렇지만 왕이 가장 두려워해야 하는 게 실록의 기록이었다. 이렇게 조선왕조실록이라는 보이지 않는 ‘숨은 신’이 있었기 때문에 조선왕조가 500년 동안 유지될 수 있었다.


- 해결책으로 야당은 사회적 합의기구 설치를 제안했다. 적절한 안이라고 보나?
▲그것은 이상적인 제안이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 내년 말까지는 교과서가 써져야 하는데, 언제 합의기구를 만들고 토론을 하겠나. 너무 늦었다.

그럼 대안이 뭐냐면, 과거 실록을 편찬했을 때처럼 독립기구를 설치하자는 것이다. 국사편찬위원회는 정부기관이지만, 그런 기능을 할 수 있는 독립적인 연구소든 부서든 만들어서 대한민국의 역사를 편찬하는 본래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현재의 막장 드라마를 종식 시킬 수 있는 길은 집필진을 여·야의 추천을 받아 구성해 쟁점 사항에 대해 합의해 나가면서 역사교과서를 쓰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라 본다.

- 독립기구가 설치된다 해도 독립성이 유지되는 것은 다른 문제다.
▲그렇다. 시행착오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가 정체성 교육을 위해 비상조치로 국정화를 할 수 밖에 없다는 현 정부의 취지를 살리면서 정치로부터 독립성을 보장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야 만약 정권이 바뀌더라도, 다시 과거로 회귀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

일단 독립기구를 신설하고 정부가 부여한 미션을 역사가들 스스로가 수행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지속가능한 역사교육의 정상화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이번에 비상조치로 단행 된 국정화가 역사교육의 정치로부터의 독립을 위한 제도화로 귀결된다면 결국 역사가들도 동참할 것이라고 믿는다.

- 우려되는 점이 있다면?
▲지금 시급한 현안은 국내 문제보다는 동아시아 정세를 둘러싼 국외 문제다. 그런데 국정교과서가 국정을 마비시키고 있다. 계속 이런 식으로 국정화를 밀어붙이면 역사가들이 참여하지 않고 대안교과서를 쓰는 운동을 벌일 것이다. 그러면 교육 현장에서 커다란 혼돈이 야기된다.

과거 금성출판사 발행 한국근현대사교과서 문제가 불거졌을 때, 뉴 라이트 진영에서 대안교과서를 썼다. 이번에는 그 반대 현상이 나타나서, 진보 진영이 안티테제로 국정교과서에 대한 대안교과서를 쓰고자 할 것이다. 결국 이는 역사교육의 정상화가 아니라 정치화의 심화다.

역사교육은 역사의 정답이 아니라 해답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해답은 푸는 과정에 있다. 집필 기준과 방향은 현재의 정치가 아니라 자라나는 학생들이 살아야 할 미래를 향해야 한다. 지금은 학생들은 안중에 없는 역사교과서 논쟁을 벌이고 있다.

- 마지막으로 독자들께 한마디 부탁드린다.
▲논쟁의 판을 바꿔야 한다. 모든 국민이 마주달리는 두 열차 가운데 어느 하나를 꼭 타야만 하는 식으로 논쟁이 진행돼서는 안 된다. 양극단을 지양할 수 있는 제3지대가 필요하다.

니체는 “괴물과 싸우는 자는 스스로가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말을 했다. 그런데 지금 역사교과서 논쟁이 서로가 서로를 괴물로 만들고 있다. 지금의 선악의 이분법 구도를 뛰어넘어야 한다. 생태계가 틀림이 아닌 다름으로 진화해 나듯이, 우리는 역사를 보는 눈이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해야만 관용적인 사회가 됨으로써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

 

[김기봉 교수 프로필]

▲성균관대 대학원 사학과 석사
▲독일 빌레펠트대학 박사
▲한국연구재단 인문학단장 역임
▲현 경기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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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