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흥기업 ‘하도급 후리기’ 고발

상생 나몰라…너무한 슈퍼 갑질

[일요시사 경제팀] 양동주 기자 = 상생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강조되고 있지만 뿌리 깊은 갑을문화의 폐해는 여전하다. 힘을 가진 자는 약자를 핍박하고 구석으로 몰린 약자는 별다른 선택지조차 넘겨받지 못한 채 나락으로 떨어지는 게 다반사다. 나약한 하도급업체를 상대로 전형적인 갑의 논리를 행사한 진흥기업 역시 예외는 아니다.


토목·건축·플랜트 사업을 주력으로 하는 진흥기업(대표 차천수)은 2015년 기준 건설사 시공능력평가 43위에 이름을 올린 효성그룹 핵심 계열사다. 지난해 매출액은 약 6400억원. 이미 ‘해링턴플레이스’라는 아파트 브랜드를 앞세워 건설업계에서 탄탄한 입지를 구축했다. 한 때 자금난에 처했지만 조만간 워크아웃을 졸업할 거란 희망 섞인 전망도 흘러나온다. 그러나 최근 군산에서 불어 닥친 예상치 못한 악재가 진흥기업을 당황스럽게 만들고 있다.

고래들 싸움

전라북도 군산시 내초동 일대에서는 ‘군산 비위생매립장 정비사업’이 한창 진행중이다. 272억원이 투입된 이 사업은 비위생 매립에 의한 환경오염 최소화 및 주변 생활환경 개선하기 위한 것으로 2016년 4월 완료 예정이다. 이 사업을 수주한 진흥기업은 주도적으로 공사를 이끌어왔다.

별 탈 없던 공사현장에 갑자기 암운이 드리워진 건 추석을 앞둔 시점에서였다. 지난달 23일 진흥기업은 정비사업에 참여한 하도급업체들에게 일방적인 공사 일시 중단을 통보한다.

진흥기업은 공사 중단의 원인 제공자로 군산시를 지목했다. 발주처인 군산시와 도급계약을 맺고 공사를 진행중인 상황에서 발주처가 자금을 지원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공사를 중단했다는 게 주된 이유다. 그사이 공사 완료 날짜도 반년 가량 늦춰졌다.

사전에 진흥기업으로부터 공사 중단과 관련해 어떤 언질도 받지 못한 하도급업체들은 뜻밖의 소식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공사에 참여한 하도급업체 직원 수십명은 사실상 실직상태로 내몰렸고 장비들은 그대로 가동을 멈췄다.

반면 현장에 투입된 진흥기업 물자는 노트북 2대, 전화 2대, 인력 2명이 전부였다. 피해는 고스란히 하도급업체들의 몫이었다.


실제로 하도급업체 A사는 시가 30억원이 넘는 장비를 투입한 상태에서 현재까지 심각한 금전적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또 다른 하도급업체 B사 역시 장비는 계속 세워놔야 하는 상황인데 공사 투입일은 극히 적다며 불만이 가득하다.

참다못한 하도급업체들이 진흥기업에 불만을 최고조에 달한 당연한 처사였다. 무엇보다 공사를 재개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극단적인 결정을 내린 채 별다른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다.

물론 공사 중단의 일차적 책임은 군산시에 있고 이 같은 사실을 군산시 내부에서도 충분히 숙지한 상황이었다. 군산시가 내년 1월 초 밀린 공사비 지급을 약속하고 공사 속개를 바랬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결국 진흥기업과 원만한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실패했다.

보다 못한 지역 건설사 한곳이 올해 말까지 자신들이 책임지고 공사를 진행하겠다고 나섰지만 이마저도 결론이 나지 않았다. 하도급업체들은 이 과정에서 진흥기업이 사실상 공사 중단 의지를 꺾지 않았던 게 주된 요인이라고 보고 있다.

그 사이 진흥건설이 공사를 속개하지 않는 이유를 두고 전혀 다른 소문마저 돌기 시작했다. 군산시와 진흥기업 간 알력 다툼에 애꿎은 하도급업체들이 피해본다는 성토가 제기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지난 2012년 9월 진흥기업은 전북 군산시가 지난 6일 발주한 ‘군산 해망동 보금자리주택 건립사업 공사’에 신성건설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설계에서 수주까지 일괄 진행하는 턴키방식으로 공사를 수주했다. 공사비 319억원이 투입되는 이 공사는 약 2년2개월간 지상 15층 5개동, 총 483가구를 건설하는 대단위 사업이었다.

그러나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문제는 돈이었다. 낙찰에 성공했지만 진흥건설은 정작 별다른 수익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 몰렸고 군산시에게 변경승인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군산시는 진흥건설의 요구를 거절했고 여기서 양측은 갈등을 겪게 된다.


일부에서는 비위생매립지 정비사업 공사 중단을 해망동 보금자리 주택건립 공사와 연관짓고 있다. 군산시와 대립각을 세운 진흥기업이 자금 미지원을 핑계로 이참에 힘겨루기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진흥기업은 이 같은 소문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이규성 진흥기업 현장소장은 “해망동 건과 이번 건을 엮는 건 말도 안되는 일”이라며 “각 사업별 진행 주체가 다른데 둘을 같은 선상에서 놓고 보는 건 잘못된 생각”이라고 말했다.

군산 현장 일방적으로 공사중단 통보
발주처 핑계로 대금 지급도 차일피일

다양한 의혹이 확산되는 사이 그동안 하도급업체에 진흥기업이 취한 강압적 태도가 순식간에 수면위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달리 말하자면 진흥기업에 대한 하도급업체들의 불만이 폭발했다고 볼 수 있는 사안이다.

하도급업체들이 가장 목소리를 높인 건 공사대금 결제 방식이었다. 지금껏 진흥기업은 하도급업체에 공사대금으로 어음을 발행해왔다. 어음은 전달 공사대금을 익월 말 계산하는 형식이었다. 그러나 이 어음은 4개월 기한이었다. 사실상 하도급업체들이 어음을 현금으로 융통하려면 5개월이라는 시간이 필요한 셈이다.
 

게다가 진흥기업은 하도급업체들에게 약속한 어음할인수수료마저 지급하지 않았다. 일부 하도급업체는 진흥기업이 차일피일 미루며 약속을 지키지 않아 현재까지 어음할인수수료만 8000만원에 육박한 상황이다.

문제는 이 같은 금전적 피해를 하도급업체들이 보상받기 까다롭다는 데 있다. 하도급업체들은 계약 당시 진흥기업과 하도급계약이 아닌 기술용역계약을 맺고 공사에 투입됐다.

통상 하도급계약 이후 하도급업체가 부당한 대우에 처하면 하도급법 위반 수위에 따라 최대 3배까지 손해배상이 이뤄진다. 그러나 기술용역계약은 법의 테두리 밖에 있다. 하도급업체들은 진흥기업이 기술용역계약을 강제한 이유를 여기서 찾고 있다.

즉, 처음부터 자신들은 하도급계약을 원했지만 진흥기업이 기술용역계약을 줄기차게 요구했고 이 모든 게 어음할인수수료를 비롯해 불공정계약으로 엮일 수 있는 여건을 사전 차단하기 위함이라는 주장이다.

A사 관계자는 “공사대금이라도 제대로 줬으면 이해하겠지만 그것도 아닌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공사를 중단하니 황당할 따름”이라며 “진흥기업이 워크아웃인 상황이라 어음 가치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데 약속한 어음할인수수료를 줄 생각조차 안한다”고 언급했다.

반면 진흥기업측은 어음할인수수료를 지급을 요구하는 하도급업체들과 다른 입장을 내놓고 있다. 기본적으로 기술용역계약을 체결했고 어음할인수수료를 자신들이 지급한다고 약속했다는 하도급업체의 주장은 해석의 여지가 있다는 애매한 답변이었다.

다만 공사 재개의 필요성은 자신들도 충분히 공감하고 있으며 11월중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준비과정을 거치는 중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하도급업체들은 지금껏 공사 재개와 관련한 어떤 입장도 전달받지 못한 상황이다.


게다가 진흥기업은 병(하수급인)→을(수급인)→갑(발주자)의 단계로 순차를 띄는 일반적인 세금계산서 발행과 달리 역순차 방식으로 하도급업체들에게 세금계산서를 전달한 것으로 드러나 세금 탈루 의혹마저 받고 있다.

이를 두고 진흥기업 관계자는 “전자세금계산서가 등장한 이후 최근 건설사들 사이에서 통상적으로 세금계산서 역발행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해명했지만 하도급업체들은 의혹을 거두지 않는 상황이다.

등터진 새우들

한편 진흥기업은 효성그룹 계열사 가운데 피소 소송 건수와 소송가액이 가장 많은 곳으로 나타났다. 경영성과 평가사이트인 CEO스코어에 따르면 올해 반기 보고서를 제출한 효성그룹 5개 계열사의 6월 말 기준 피소 소송건수는 총 61건, 소송가액은 1468억 원으로 각각 집계됐다.

특히 진흥기업의 피소건수와 소송가액은 각각 32건, 677억9000만원으로 계열사 5곳 중 가장 많았다. 계열사 중 덩치가 가장 큰 (주)효성보다도 잡음이 많았던 셈이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